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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아버지 | 레온 3세 |
어머니 | 마리아 |
남편 | 아르타바스도스 |
자녀 | 니키타스, 니키포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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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이사브리아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아르타바스도스의 황후.2. 생애
레온 3세와 마리아의 장녀. 715년 테오도시오스 3세가 황위에 올랐을 무렵, 레온은 아르메니아인 장군 아르타바스도스에게 자신에게 협력해주면 딸 안나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717년 3월 레온 3세가 테에도시오스 3세를 굴복시키고 황위에 오른 후, 안나는 약속대로 아르타바스도스와 결혼하였다. 아르타바스도스는 레온 3세의 집권을 도운 공으로 쿠로팔라테스 계급에 올랐으며, 기존 아르메니아 테마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옵시키온 테마의 지휘권까지 쥐었다. 안나는 아르바스토스와의 사이에서 장남 니키타스, 차남 니키포로스를 낳았다.[1] 니키타스는 아버지로부터 아르메니아의 스트라고스 직위를 물러받았다.741년 레온 3세가 사망하였고, 장남 콘스탄티노스 5세가 황위에 올랐다. 그는 매부인 아르타바스도스에게 제국을 침략하고 있는 우마이야 왕조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아르타바스도스는 명령을 받들어 군대를 이끌고 가다가 돌연 행로를 바꿔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했다. 믿었던 매부가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던 콘스탄티노스 5세는 급히 탈출했고, 아르타바스도스는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했다. 방패 위에 아나스타시오스 총대주교와 함께 올라 그로부터 대관을 받았다. 그는 레온 3세의 성상 파괴령을 취소하고 교황 자카리아의 지지에 힘입어 성상 재건을 선포했으며 스스로를 성상의 수호자로 자처했다. 또한 아내 안나에게 아우구스타 칭호를 수여했고, 차남 니케포로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그러나 콘스탄티노스는 아나톨리콘 테마와 트라케시안 테마의 지지를 확보하고 아르타바스도스와 일전을 벌이려 했다. 743년 5월, 아르타바스도스는 사르데스에서 콘스탄티노스 5세와 격돌했다. 그러나 그는 전투에서 패했고 니케타스가 포로로 붙잡혔다. 이후 콘스탄티노스는 11월 2일 바다를 건너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였고, 아르타바스도스는 굶주리는 시민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면서까지 저항했으나 결국 입성을 허용했다. 콘스탄티노스 5세는 수도에 입성한 뒤 아르타바스도스와 두 아들을 공개적으로 실명형에 처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외곽의 초라한 수도원으로 유폐했다. 안나 역시 그 수도원에 따라가서 남편과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돌봤다.
테오파네스에 따르면, 콘스탄티노스 5세는 아르타바스도스의 난을 진압한 지 30년이 지난 후에도 원한을 여전히 풀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여동생 안나에게 아르타바스도스의 유골을 파헤쳐서 그녀의 망토에 넣어서 처형된 범죄자들의 시체가 있는 펠라기우스의 무덤에 던지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이후 안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1] 나중에 아르타바스도스가 황제에 오른 뒤 니키타스가 아닌 니키포로스를 공동 황제로 세운 것을 볼 때 니키타스의 어머니는 안나가 아니라 신분이 낮은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