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01:44:43

테오도라(9세기)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 #4A3800; margin: -5px 0px"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리비아 드루실라 소(小) 안토니아 리비아 오레스틸라 롤리아 파울리나 밀로니아 카이소니아 메살리나 소(小) 아그리피나 클라우디아 옥타비아 포파이아 사비나 클라우디아 아우구스타 스타틸리아 메살리나
네 황제의 해 갈레리아 푼다나
플라비우스 왕조 소 도미틸라 도미티아 롱기나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폼페이아 플로티나 울피아 마르키아나 살로니아 마티디아 비비아 사비나 대(大) 파우스티나 소(小) 파우스티나 루킬라 브루티아 크리스피나
다섯 황제의 해 플라비아 티티아나 만리아 스칸틸라 디디아 클라라
세베루스 왕조 율리아 돔나 풀비아 플라우틸라
마크리누스 노니아 켈사
세베루스 왕조 율리아 코르넬리아 파울라 아퀼리아 세베라 안니아 파우스티나 율리아 마이사 율리아 소아이미아스 율리아 아비타 마마이아 살루스티아 오르비아나
군인 황제 시대 카이킬리아 파울리나 파비아 오레스틸라 안토니아 고르디아나 트란퀼리나 마르키아 오타킬리아 세베라 헤레니아 에트루킬라 코르넬리아 수페라 에그나티아 마리니아나 코르넬리아 갈로니아 코르넬리아 살로니나 술피키아 드리안틸라 빅토리아 제노비아 울피아 세베리나 마그니아 우르비카
사두정치 아우렐리아 프리스카 에우트로피아 갈레리아 발레리아 발레리아 막시밀리아
콘스탄티누스 왕조 플라비아 막시미아나 테오도라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 미네르비나 플라비아 막시마 파우스타 플라비아 발레리아 콘스탄티나 플라비아 율리아 콘스탄티아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의 딸 플라비아 에우세비아 파우스티나 헬레나
요비아누스 차리토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마리나 세베라 유스티나 알비아 돔니카 플라비아 막시마 콘스탄티아 레타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일리아 플라킬리아 플라비아 갈라 아일리아 에우독시아 마리아 테르만티아 아일리아 풀케리아 갈라 플라키디아 아일리아 에우도키아 유스타 그라타 호노리아 리키니아 에우독시아
레오 왕조 아일리아 마르키아 에우페미아 플라키디아 율리우스 네포스의 아내 아일리아 베리나 아일리아 아리아드네 아일리아 제노니스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에우페미아 테오도라 아일리아 소피아 아일리아 아나스타시아 콘스탄티나
포카스 레온티아
이라클리오스 왕조 파비아 에우도키아 마르티나 아우구스티나 아나스타시아 그레고리아 파우스타 아나스타시아 에우도키아 하자르의 테오도라
아나스타시오스 2세 이리니
이사브리아 왕조 마리아 안나 하자르의 이리니 마리아 에우도키아 이리니 암니아의 마리아 테오도테
니키포로스 왕조 테오파노 프로코피아
레온 5세 테오도시아
아모리아 왕조 테클라 에우프로시나 테오도라 에우도키아 데카폴리티사 테클라 안나 아나스타시아
마케도니아 왕조 에우도키아 잉게리나 테오파노 마르티나키아 조이 자우치나 에우도키아 베아나 조이 카르보노프시나 테오도라 엘레니 레카피니 소피아 안나 가발라 엘레니 테오파노 마마스 베르타 테오파노 테오도라 엘레니 알리피아 조이 테오도라
콤니노스 왕조 불가리아의 예카테리나
두카스 왕조 에브도키아 마크렘볼리티사 알라니아의 마리아
콤니노스 왕조 안나 달라시니 이리니 두케나 헝가리의 이리니 키예프의 도브로데이아 줄츠바흐의 베르타 안티오키아의 마리아 프랑스의 아녜스
앙겔로스 왕조 헝가리의 머르기트 에우프로시나 두케나 카마테리나 에우도키아 앙겔리나
라스카리스 왕조 안나 앙겔리나 아르메니아의 필리파 마리 드 쿠르트네 이리니 라스카리나 호엔슈타우펜의 안나 불가리아의 엘레나 아세니나
팔레올로고스 왕조 테오도라 팔레올로기나 헝가리의 언너 몬페라토의 이리니 아르메니아의 마리아 브라운슈바이크의 이리니 사보이아의 안나 이리니 아사니나 엘레니 칸타쿠지니 이리니 팔레올로기나 불가리아의 케라차 마리아 엘레니 드라가시 이리니 가틸루시오 안나 바실리예브나 몬페라토의 소피아 트라페준타의 마리아 }}}}}}}}}}}}


파일:2331.jpg
테오도라를 그린 19세기의 이콘
지위 기간
테오필로스의 황후 830년 6월~842년 1월
미하일 3세의 섭정 842년 1월~856년 3월

1. 개요2. 여제 설

1. 개요

9세기 동로마 제국 아모리아 왕조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테오필로스의 황후. 아르메니아계라서 동명이인들과의 구별을 위해 '아르메니아인 테오도라(Theodora the Armenian)'라고 불린다.

대단한 미녀였다고 하며, 테오필로스가 10대의 나이로 단독 황제가 되자 그의 계모 에우프로시나는 830년에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테오필로스의 신부 간택을 위해 전국에서 후보를 불러모았고, 여기서 테오도라가 황후로 간택되었다. 테오도라는 황후로 지내며 테오필로스와의 사이에서 미하일 3세 등 7남매를 낳았다. 842년, 테오필로스는 신하 및 관리들에게 아내 테오도라와 아들 미하일 3세의 권리를 지켜달라 말하고선 죽었고, 테오도라는 어린 아들 미하일 3세의 섭정이 되었다.

남편 테오필로스는 물론 세계총대주교까지 성상 파괴주의자였음에도 테오도라는 섭정이 되자 정치력을 발휘하여 843년에 성상 파괴령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이로 인해 성상 파괴파인 파울리키아파를 박해하게 되었고, 박해를 피해 도망친 이들이 동방의 이슬람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동부 전선의 긴장이 높아지는 결과도 초래하였다.

아들 미하일 3세가 성년이 되자 며느리감을 짝지어 주었으나 미하일 3세는 어머니가 고른 에우도키아 데카폴리티사를 맘에 안 들어했으며[1] 점차 어머니의 영향력을 벗어나려 하였다. 결국 미하일 3세는 손위 외삼촌[2] 바르다스와 손잡고 일종의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테오도라를 실각시켰다. 856년 3월, 미하일 3세는 자신을 단독 황제로 선포하고 모친 테오도라의 아우구스타 지위를 박탈했다.

테오도라의 사후 그녀의 유해는 코르푸에 안치되었는데, 4차 십자군으로 콘스탄티노플 시내의 영묘들이 모두 파괴돼 버려 시신을 제대로 찾을 수 있는 소수의 황제 및 황후 중 한 명이 되었다.

2. 여제 설

현대 역사가들은 테오도라를 단순한 섭정 황태후가 아니라 여제로 보기도 한다. 테오도라의 통치 첫해에 발행된 동전의 앞면에는 테오도라만 단독으로 새겨지고 미하일 3세는 뒷면에 테클라와 같이 그려진 점, 테오도라의 통치 초기에 나온 황제의 옥새에 테오도라, 미하일 3세, 테클라 셋 다 '황제'라는 남성형 칭호로 칭해진 점 등이 증거로 제시된다.[3]
[1] 미하일 3세에우도키아 잉게리나를 정부(情婦)로 두었는데, 그녀는 훗날 바실리오스 1세의 황후가 되었다.[2] 즉 테오도라의 오빠다.[3] 그러니까 당시에는 테오도라가 최고 황제였고, 미하일 3세테클라는 로마에서 후계자에게 주던 명목상 공동황제였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