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66> 독일 제국 육군 상급대장 알렉산더 폰 클루크 Alexander von Kluck | |
이름 | Alexander Heinrich Rudolf von Kluck 알렉산더 하인리히 루돌프 폰 클루크[1] |
출생 | 1846년 5월 20일 |
프로이센 왕국 | |
사망 | 1934년 10월 19일 |
독일국 베를린 | |
복무 | 프로이센 왕국 육군 |
1866년 ~ 1871년 | |
독일 제국 육군 | |
1871년 ~ 1916년 | |
최종 계급 | 상급대장 (독일 제국 육군) |
주요 참전 |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
주요 서훈 | 푸르 르 메리트 |
지휘 | 제1군 (독일 제국 육군) |
다른 직업 | 작가 |
[clearfix]
1. 개요
알렉산더 폰 클루크는 독일 제국군의 장군으로 최종계급은 상급대장이다. 슐리펜 계획에서 오른쪽 날개인 제1군을 지휘한 것으로 유명하다.2. 생애
2.1. 어린 시절
1846년 5월 20일, 클루크는 프로이센 왕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쿠르트 폰 클루크는 조각가였다. 그는 자신의 동네에 있는 Paulinum이라는 학교에 다녔다.클루크는 1866년 프로이센군에 입대했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도 참전하여 보르니-콜롬비 전투에 참여했고, 2번 부상 당하고,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클루크는 1906년 보병대장이 되었다. 1913년에는 제 7군단의 감찰장교가 되었다.
2.2. 제1차 세계 대전
▲ 클루크와 제1군의 참모진 가운데에 코트를 걸치고 있는 사람이 클루크이고, 왼쪽에서부터 세번째가 참모총장 헤르만 폰 쿨이다.
1914년 8월 2일, 클루크는 독일 제국군의 제 1군의 사령관이 되어 국경 전투, 마른 전투 등에 참전했다. 1915년 3월 17일 까지 제 1군을 지휘했다.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의 슐리펜 계획에 따라 제 1군은 오른쪽 날개의 일부였다. 슐리펜의 계획대로라면, 제 1군은 벨기에와 프랑스를 침공하여야 했다. 그의 제 1군과 카를 폰 뷜로의 2군은 프랑스와 벨기에를 침공했다. 초기에는 순조롭게 풀렸다. 에펠탑이 보이자, 클루크의 참모총장이었던 헤르만 폰 쿨은 승리를 확신할 정도였다. 하지만, 파리와 50km정도 떨어진 부근에서 프랑스의 제 5군과의 전투를 예측한 뷜로는 잠시 멈추고 클루크의 1군에게 도움것을 명령했다.[2] 이때 이미 클루크의 제 1군은 파리의 북쪽으로부터 13마일 떨어 진 곳에 있었다. 8월 30일, 클루크는 슐리펜 계획을 완전히 폐기하고, 제 1군을 파리 동쪽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8월 31일 클루크는 2군을 지원하기 위해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클루크는 뷜로프의 정체된 제2군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이는 조제프 조프르 장군의 새로운 제6군이 배치된 파리 방향으로 클루크의 오른쪽 측면을 노출시켰다. 프랑스군은 연합군 항공기의 보고와 독일군의 무선 감청 덕분에 9월 3일에 클루크의 진로 변경을 알게 되었다. 결국, 1914년 9월 6일, 프랑스 제6군이 마른강을 건너던 제1군을 공격했다. 클루크는 이와 같은 새로운 이변을 막기 위해 전선을 노련하게 변경했다. 이로 인해 제1군과 2군사이에는 50km 가량 되는 빈 공간이 있었다. 조프르 장군은 9월 8일, 제1군의 서쪽을 공격하면서 마른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그럼에도 클루크는 9월 8일 밤 몰트케에게 다음 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전보를 보냈다. 하지만, 9월 9일 독일 제국군의 본부는 뷜로 군대의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클루크가 자신의 문제를 대부분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군대의 퇴각을 명령했다. 클루크와 뷜로의 비협조적인 행동과 본부의 실책으로 슐리펜 계획은 실패로 끝났고, 마른 전투는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1916년의 클루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