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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20:39:21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파일:독일 제국 전쟁기.svg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 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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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0> 프로이센 왕국의 왕자, 독일 제국군 해군 원수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Prinz Heinrich von Preußen
파일:Prince Henry of Prussia.png
이름 알베르트 빌헬름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Albert Wilhelm Heinrich von Preußen)
출생 1862년 8월 14일
독일 연방 프로이센 왕국 베를린
사망 1929년 4월 20일 (향년 66세)
바이마르 공화국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바르켈스비 헤멜마르크 성
배우자 헤센의 이레네 공녀 (1888년 결혼)
자녀 발데마어, 지기스문트, 하인리히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
어머니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형제 빌헬름 2세, 샤를로테, 지기스문트, 빅토리아, 발데마어, 조피, 마르가레테
서명 파일:China_Under_Empress_Dowager_(1914,_p_015).svg.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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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0> 복무 독일 제국군
최종 계급 해군 원수 (제독)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주요 서훈 백엽 푸르 르 메리트
검은 독수리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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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초기2.2. 독일 제국 해군 원수로서의 활약
3. 성격과 사생활4. 가족관계
4.1. 조상4.2.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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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의 2남으로, 빌헬름 2세의 동생. 독일 제국 해군의 대제독이다.

2. 생애

2.1. 초기

1862년 8월 14일, 하인리히는 베를린에서 프리드리히 황태자의 셋째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72년, 15세의 나이에 하인리히는 독일 제국 황립 해군에 사관 후보생으로 입대하였고, 1878년부터 1880년까지 전세계를 여행하며, 1884년부터 1886년까지 프로이센의 해군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2.2. 독일 제국 해군 원수로서의 활약

하인리히는 프로이센 왕국의 왕자로서 금방 독일 제국 해군에서 계급을 올렸고, 1887년 어뢰정을 지휘하였다. 정장을 거쳐 어뢰정 편대가 신설됐을 때 초대 편대장도 맡았다. 1897년부터는 여러 해군 기동 부대를 지휘했다. 동아시아에 배치되었던 부대에 하인리히도 포함되어 있었다. 청나라에도 파병되었으며, 이곳에서 외교적인 성공도 거두었다. 이후 의화단의 난 이후 독일에 사죄하러 온 순친왕과 만나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법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1899년에 그는 공식적으로 동아시아 함대의 사령관이 되었으며, 동년에 대한제국을 방문하여 한국 역사상 두 번째 서양 국빈이 됐다.[1][2] 실록에는 영어식으로 발음하여 헨리 친왕이라고 나온다.# 그에 대한 대접은 극진했고, 하인리히 왕자도 고종 황제에 대해 호평을 했지만 동시에 여러 사건 때문에 동정심을 자아낸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후 하인리히 왕자가 출국할 때 고종황제는 여러가지 선물을 줬다.# 1904년에는 대훈위 금척대수장을 수훈받았다.

주력 함대 중 공해 함대 사령관이 되었고 1903년에는 발트해 해군기지의 사령관이 되었다. 1906년부터 1909년까지 대양함대의 사령관으로 지냈으며, 1909년에는 드디어 독일 제국군 해군 원수로 진급하고 해군 감찰관(Generalinspekteur der Marine)[3]직에 임명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하인리히는 해군 감찰관을 겸하며 독일 제국 해군 발트 함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하인리히는 러시아 제국 해군에게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위험이 감지될 때 신속하게 결단을 내리고 적절한 대응을 지시하는 작전 능력을 보였다. 또한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부하 장교들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현장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결정을 내려 독일 해안을 향한 공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발트해 지역에서 독일의 해상 주도권을 유지하였다.

전후 독일 제국의 군주제가 사라지자 하인리히는 해군을 떠났고 이후 다른 왕족들은 혁명을 피해 다른 나라로 도망갔지만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은 도망가지 않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바르켈스비에 위치한 헤멜마르크(Hemmelmark)에 은거하며 전후에도 조용히 명예를 유지하며 자신의 여생을 보냈다.[4]

최후는 잦은 흡연의 결과로 아버지처럼 후두암으로 6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5] 그의 죽음은 패망한 왕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독일 사회 많은 이들이 그를 기리며 추모했다.

3. 성격과 사생활

하인리히는 성격적으로도 온화하고 겸손한 인물로 평가받었다. 그의 정치적 야망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과 인간적 매력 그리고 군사적 헌신 덕분에 그는 전쟁 이후에도 다른 왕족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았다. 또한 독일 제국에서 가장 먼저 파일럿 면허를 받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는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노년에도 자동차를 이용한 스포츠를 즐겼다고 한다. 하인리히는 동시에 용감하고 우수한 해군 선장이었다. 현대 기술에 관심을 가지며 여러 기술에 능통하였으며, 요트 타기를 즐겼다. 특히 해군 장교들이 설립한 킬 요트 클럽(Kieler Yacht-Club)의 회원 겸 후원자였는데, 클럽 회원들이 쓰는 모자를 즐겨 쓰고 다녀 '하인리히 왕자' 모자라는 이름으로 유행시키기도 했다. 독일 제국 군인들의 정모와 비슷하지만 크라운이 좀 더 작고 납작한게 특징이다.
파일:Prinz-Heinrich-Muetze.jpg
하인리히 왕자 모자

4. 가족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호엔촐레른 가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둘째 이모 헤센 대공비 앨리스의 3녀로 이종사촌인 헤센의 이레네 공녀와 결혼했는데, 이레네는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에게 물려받은 혈우병 보인자여서 장남과 3남이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다. 참고로 이레네의 둘째 언니 헤센의 엘리자베트 공녀는 하인리히의 형인 빌헬름 2세의 구애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만약 둘이 결혼했으면 겹사돈이 될 수도 있었다.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장남 발데마어와 3남 하인리히는 혈우병 환자였다. 하인리히는 4살에 요절했고, 발데마어는 56세까지 비교적 장수한 편이지만 자손이 없었다. 자녀를 둔 건 혈우병이 없던 차남 지기스문트 뿐이지만 코스타리카로 이민 가서 살았다.

차남 지기스문트는 에른스트 2세(작센알텐부르크)의 맏딸 샤를로테와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지만 장남 알프레드가 자녀 없이 죽어서 대가 끊겼다. 장녀 바바라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지막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의 2남 2녀 중 차남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와 결혼해서 슬하에 2녀를 두었는데,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의 장남 프리드리히 프란츠는 자녀 없이 사망했고, 바바라와 결혼한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역시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가문 역시 단절된다.

하인리히 왕자의 직계 자손의 대가 끊어지면서 빌헬름 1세 이후의 호엔촐레른 가문빌헬름 2세의 자손들만 대를 이어나가게 된다.[6]

그리고 메클렌부르크 가문 역시 슈베린의 직계 자손의 대가 끊어지면서 메클렌부르크 가문은 슈트렐리츠 계열의 자손들만 대를 이어나가게 된다. 다만 아들부자 호엔촐레른 가문과 달리 이쪽은 남자 계승자가 3명[7]밖에 없어서 자손 수가 별로 없다.

얼굴을 보면 알겠지만 형인 빌헬름 2세와는 달리 친척들인 조지 5세, 니콜라이 2세와 닮았다.

4.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
(Heinrich von Preußen)
프리드리히 3세
(Frederick III)
빌헬름 1세
(William I)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Frederick William III)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
(Duchess Louise of Mecklenburg-Strelitz)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 공녀
(Princess Augusta of Saxe-Weimar-Eisenach)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카를 프리드리히
(Charles Frederick, Grand Duke of Saxe-Weimar-Eisenach)
러시아 제국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Maria Pavlovna of Russia)[8]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Victoria,
Princess Royal)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 공자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1세
(Ernest I, Duke of Saxe-Coburg and Gotha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루이제 공녀
(Princess Louise of Saxe-Gotha-Altenburg)
빅토리아 여왕
(Victoria)
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 왕자
(Prince Edward,
Duke of Kent and Strathearn)
[9]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공녀
(Princess Victoria of Saxe-Coburg-Saalfeld)

4.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남 발데마어 왕자
(Prince Waldemar)
1889년 3월 20일 1945년 5월 2일 리페비스터펠트의 칼릭스타 공녀
2남 지기스문트 왕자
(Prince Sigismund)
1896년 11월 27일 1978년 11월 14일 작센알텐부르크의 샤를로테 공녀
슬하 1남 1녀
3남 하인리히 왕자
(Prince Henry)
1900년 1월 9일 1904년 2월 26일


[1] 첫 번째는 1895년 방한한 이탈리아 왕국의 아브루치 공작 루이지 아메데오# 실록에는 이탈리아 국왕의 조카 아부리 공작이라고 나온다.[2] 하인리히는 이때 조선의 전투 기술을 보여달라고 청하였는데, 이 중 궁술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고 조선의 국궁을 쏴 보기도 했다. 하인리히 왕자와 이레네 공녀 부부는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주들이었기에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잘 구사했지만, 정작 대한제국 측 통역관(민상호)의 한계 때문인지 대화는 피상적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방한 중에 정신병자 한 명이 난입해 고종에게 자신은 천주교 신자인데,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며 국가를 자신에게 인계하라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3] 독일 제국 해군의 전반적인 운영, 훈련과 장비 상태를 최종 감독하고, 해군 내 전략적 조언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핵심적 직위이다.[4] 그가 다른 왕족들과 다르게 도망가지 않고 독일에서 계속 살수있었던 이유는 다른 왕족들과 차원이 다른 해군 원수로서의 업적과 해군 감찰관, 발트 함대 사령관으로 쌓은 군사적 명성 그리고 성격적으로 온화하고 겸손한 인물이라 그가 사망할 때까지 독일 민간 사회와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고 존중받았기 때문이다.[5] 그래도 아버지보다는 10살 더 오래 살았다.[6] 프리드리히 3세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의 아들들 중 비교적 오래 살았지만 대가 끊긴 하인리히나 일찍 요절한 지기스문트와 빌데마르와 달리, 빌헬름 2세는 거꾸로 엄청난 아들 부자(6남 1녀)였고 빌헬름의 아들들과 손자들도 아들을 많이 낳아 현재까지 후손이 이어지고 있다.[7] 아들 2, 손자 1[8] 파벨 1세의 3녀이다.[9] 조지 3세의 4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