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참모총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이자 보병대장. 동부전선과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1916년 야전포병대장으로 진급했다. 제국포병총감찰관(k.u.k. Generalartillerieinspektor)을 역임했고, 전쟁 말기에는 벨루노 군집단(Armeegruppe Belluno) 사령관으로서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에 참가했다.
1855년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 제국군소령 페르디난트 골리아(Ferdinand Goglia)와 그의 부인 비르기니아 포찌(Virginia Pozzi)의 아들로 태어났다. 골리아는 이후 마르부르크와 아이젠슈타트의 사관학교를 거쳐 빈 공과군사학교를 졸업했다. 1875년 라이바흐의 제12포병연대에 소위로 입대했고, 1878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점령 작전에 참가했다. 1879년부터 1881년까지는 빈 포병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아그람, 프레스부르크, 부다페스트 등지에서 근무했다.
1900년 중령으로 카샤우의 제16포병연대장이 되었고, 1904년 대령 진급 후 1905년 루체네츠로 이동했다. 1906년부터 빈의 제2포병연대장을 지냈으며, 1910년 소장 진급과 함께 포병학교장이 되었다. 1913년 중장으로 진급했다.
골리아는 동부전선으로 파견되어 제43포병여단장으로 렘베르크 전투에 참가했다. 1915년 5월 제5군단장이 되어 드네스트르강을 건너 니콜라예프를 점령하고 즐로타 리파 강 너머로 러시아군을 격퇴했다.[2] 1916년 브루실로프 공세 때까지 전선을 지켰으나, 이후 후퇴해야 했다. 같은 해 11월 포병대장으로 진급했고, 이후 포병대 총감찰관으로 빈으로 복귀했다.
1918년 여름 다시 전선에 복귀하여 제24군단장이 되었고, 9월에는 벨루노 군집단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2개 군단 9개 사단을 지휘했다.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최종 패배할 때까지 이 직책을 수행했다. 1919년 1월 1일부로 퇴역했으며, 1941년 9월 17일 빈에서 사망했다.
그의 동생 빅토어(Viktor)도 형과 같은 군인이었다. 이 쪽은 최종 계급 대령으로 예편.
[1] 골리아가 자신을 이탈리아계로 인식했다는 자료를 못찾았는데, 다만 부모가 이탈리아계고 결혼한 여자도 이탈리아계인걸 감안하여 독일식 발음인 고글리아가 아닌 이탈리어 발음인 골리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2] 이러한 전과로 1916년 7월 9일 프란츠 요제프 1세에 의해 귀족 작위를 수여받았으나, 관련 문서는 1917년 1월 31일에야 새 황제 카를 1세에 의해 발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