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일반참모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오스트리아 제국군중위 페터 케스트르자네크(Peter Kestřanek, 1826-1858)와 알베르타 폰 빌헬름(Alberta von Wilhelm, 1835-1898) 사이에서 프라크에서 태어났다. 케스트르자네크는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여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제국군소장 요제프 폰 마이트너(Josef von Maytner, 1836-1914)와 재혼했는데, 후에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케스트르자네크는 아이젠슈타트에서 초기 군사교육을 받은 후 1871년 비너노이슈타트의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876년 소위로 임관하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점령 전쟁에 참전했다. 1881년 중위, 1886년 대위로 진급했으며, 같은 해 참모부로 전속되어 1888년부터 철도국장을 지냈다. 1895년 소령 진급과 함께 테메슈바르 생도학교 교장이 되었다. 이후 여러 보병 부대를 지휘했으며 1901년 중령, 1905년 대령으로 진급했다. 1910년 소장이 되었고 1913년에는 중장으로 진급하여 크라쿠프의 제12보병사단장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이 사단을 이끌고 고를리체-타르누프 공세에 참전했다. 1917년 보병대장으로 진급했으며, 1916년부터 보헤미아 군관구사령관으로서 프라하의 리히텐슈타인 궁전(Lichtenštejnský palác)에 사령부를 두었다. 1918년 10월 28일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을 선언했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을 이탈한 체코 장교들의 체포영장에 서명하고 계엄령 선포도 준비했다[포고문은]부하들의 무력 진압 요구에도 불구하고 체코슬로바키아 국민위원회와 협상을 선택했고, 10월 30일 항복을 요구받자 사임했다. 잠시 구금되었다가 가족과 함께 빈으로의 안전한 퇴거를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1919년 1월 1일부로 정식 퇴역했다. 이후 빈에서 지내며 빈 대학교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
= 여담 == 케스트르자네크는 은행가이자 철도 사업가인 자무엘 히르슐러-포르스텐하임(Samuel Hirschler-Forstenheim)의 딸 클라라 포르스텐하임(Klára Forstenheim, 1868-1925)과 결혼했다.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장남 안드레아스(Andreas)는 출생 직후 사망했고(1894), 차남 보르지보이(Bořivoj, 1895-1918)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장교로 1918년 11월 루마니아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막내 즈덴코 프란티셰크(Zdenko František, 1897-1976)는 빈에서 수사학과 성악 교사로 활동했다.
[1] 체코어로는 파벨로 불림[포고문은] 10월 28일자로 인쇄되었으나 공포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