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턴 앨런비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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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dmund Henry Hynman Allenby 에드먼드 헨리 힌먼 앨런비 |
출생 | 1861년 4월 23일 |
영국 노팅엄셔 브라켄허스트 | |
사망 | 1936년 5월 14일 (향년 75세) |
영국 런던 | |
국적 | 영국 |
복무 기간 | 1880년 ~ 1925년 |
최종 계급 | 육군 원수 (Field Marshal) |
지휘 | 제1기병사단 (1st Cavalry Division) 기병군단 (Cavalry Corps) 제5군단 (V Corps) 제3군 (Third Army) 이집트 원정군 (Egyptian Expeditionary For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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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육군의 장군. 최종 계급은 원수이다. 서부전선에서는 실패했지만, 시나이 반도와 팔레스타인에서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승전을 일궈냈다.2. 생애
에드먼드 앨런비는 인도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자 했지만, 입시에서 떨어진 이후 샌드허스트에 입학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1882년에 기병 중위로 임관한 후, 남아프리카의 제6이니스킬링용기병연대에서 복무했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왔다가, 대위로 진급한 후에 다시 남아프리카에 배치되었다.앨런비는 참모대학에 입학하려고 했으나, 입학에 실패해 재수 끝에 참모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 당시 동기로는 후일 상관이 되는 라이벌 더글러스 헤이그가 있었다. 참모대학을 졸업한 후, 1897년에 소령으로 진급한 앨런비는 제3기병여단에 배속되었고 아일랜드에서 복무했다.
제2차 보어 전쟁이 발발하자 제6이니스킬링용기병연대에 복귀해 남아프리카로 파병된 앨런비는 지역 중령과 대령으로 진급했으며, '인기있고 유능한 기병 여단장'이라는 키치너 경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앨런비는 곧 중령으로 진급했고, 제5왕립아일랜드창기병연대장이 되었다. 1905년에 대령 진급과 함께 임시 준장이 된 앨런비는 1906년에 제4기병여단장으로 부임했다. 1909년에 소장으로 진급한 앨런비는 기병 감찰감에 임명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기병사단장에 임명된 앨런비는 영국 원정군이 확장되자 임시 중장 진급과 함께 기병군단장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제2차 이프르 전투 당시에 제5군단장으로 이동했지만, 큰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1915년 앨런비는 제3군사령관이 되었고 정식 중장으로 진급했다. 앨런비는 1917년에 아라스 전투를 이끌었고, 초반에는 비미 리지 전투라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후에는 손해를 보았다. 아라스 전투 이후 앨런비는 대장으로 진급했으나, 헤이그에 의해 제3군사령관에서 해임되고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앨런비는 시나이 전선에서의 공세를 원하는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수상에 의해 이집트 원정군사령관으로 지목되어 이집트로 파견되었다.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었음에도 앨런비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해 곧장 사막에서의 물 보급을 포함한 물류를 개선했고, 자주 전선을 방문해 병사들의 지지를 얻었으며,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이끄는 아랍 비정규군을 지원했다.
이러한 준비를 통해 앨런비는 시나이 반도에서 승리를 거두고,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이후 메기도 전투에서 다시 승리를 거둔 앨런비는 다마스커스와 홈스, 알레포를 점령해 오스만 제국을 항복시켰다.
1919년 원수로 진급한 앨런비는 메기도와 서퍽 카운티의 펠릭스토우의 앨런비 자작(Viscount Allenby of Megiddo and of Felixstowe in the County of Suffolk)에 서임되었고, 이집트 특별 고등판무관에 임명되었다. 이집트 특별 고등판무관으로서 앨런비는 1919년 이집트 혁명에 대응해 온건책을 펼쳤고, 자글룰 파샤가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도왔다. 하지만 다시 이집트에 폭동이 일어나자 자글룰 파샤를 추방하고 강경진압을 했다. 이후 앨런비는 영국과 이집트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이집트 왕국의 독립 후에 이집트와 수단 주둔 영국군 사령관이 암살당하자 이집트를 압박해 배상을 받아냈다.
앨런비는 1925년에 은퇴했고, 1936년 75세의 나이에 뇌동맥류 파열로 사망했다. 아들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했기 때문에, 작위는 조카에게로 계승되었다.
[1] 자작 본인에 대한 경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