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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6 18:03:51

엔봉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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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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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년전쟁 시기인 1342년 5월 ~ 6월, 샤를 블루아가 이끄는 블루아 가문 군대가 잔 드 플란데런이 이끄는 몽포르 가문 군대를 엔봉에서 포위 공격한 공방전.

2. 상세

1341년 4월 30일, 브르타뉴 공작 장 3세가 사망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기에, 그의 여조카인 팡티에브르의 잔이 브르타뉴 여공작에 선임되었다. 장 3세는 오래전부터 잔을 후계자로 정하고 철저하게 교육시켰으며,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의 조카인 샤를 드 블루아와 결혼시킴으로써 프랑스 왕실과 친프랑스파 귀족 및 성직자들의 후원을 받게 했다. 그러나 장 3세의 배다른 형제인 장 드 몽포르가 반발했다. 그는 프랑스 왕실이 필리프 5세부터 도입한 살리카법에 근거해 여자는 공작위를 계승할 자격이 없다며 자신이 공작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드 몽포르는 잔과 샤를 부부가 필리프 6세를 알현하게 위해 파리로 간 틈을 타 프랑스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는 귀족 및 평민들의 지지를 토대로 군대를 일으켜 낭트, 렌, 디낭, 브레스트 등 브르타뉴의 가장 중요한 도시 및 성들을 빠르게 공략했다. 이에 샤를 드 블루아는 아내의 권리를 지켜주겠다고 선언하고 그 해 9월까지 5,000명의 프랑스 군인과 2,000명의 제노바 용병을 모집한 뒤 장 드 몽포르가 근거지로 삼은 낭트로 진격했다.

1341년 10월, 샤를 드 블루아는 샹토소 전투에서 장 드 몽포르를 격파한 뒤 낭트를 포위 공격한 끝에 장을 사로잡아서 루브르 감옥에 가두었다. 그 후 샤를은 1341년 겨울 동안 브르타뉴 동부 전체를 공략하고 1342년 봄에는 렌을 비롯한 브르타뉴 서부 대부분을 공략했다. 하지만 장 드 몽포르의 아내인 플란데런의 잔은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항전하기로 마음먹고, 신뢰할 수 있는 측근 한 명을 잉글랜드로 보내 원군을 요청하게 한 뒤 엔봉에서 농성했다.

그 후 5월, 샤를은 엔봉을 향해 진군했다. 잔은 이 소식을 듣고 모든 군대에게 무장을 명령하고 큰 종을 울려 모든 사람을 도시 방어에 소환하도록 했다. 얼마 후 엔봉에 도착한 샤를은 포위망을 구축한 프랑스인과 제노바인 장병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는 전투가 며칠 안에 끝날 거라 예상했지만, 잔과 엔봉 수비대, 그리고 주민들의 저항을 쉽사리 물리치지 못했다. 장 르 벨의 연대기에 따르면, 그녀는 마을 여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돌과 생석회 항아리들을 성벽으로 가져와서 침략자들에게 던져라!"

파일:siege-of-hennebont.webp
15세기 판화, 성밖으로 출격하는 잔 드 플란데런.

잔은 공방전이 벌어지는 동안 방어가 어찌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매일 탑을 올라 관찰했다. 그러던 중 모든 포위군이 공격을 이끌기 위해 숙영지를 비운 채 전방으로 가 있는 광경을 보고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탑에서 내려온 뒤 공격을 받지 않는 성문을 지키고 있던 300명의 중장병을 소집했다. 이후 이들과 함께 말을 타고 성문을 열고 돌격해 적 숙영지를 급습하여 얼마 되지 않는 적군을 살육하고 진영에 불을 질렀다.

프랑스군은 자기들 진영이 불타는 광경을 보고 경악해 공격을 중단하고 "배신이다! 배신이다!"라고 외치며 숙영지로 달려왔다. 잔은 포위군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것을 보고 엔봉 마을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판단하고 브라이트(Brayt) 마을로 이동했다. 브라이트 마을에서 병사들의 인원을 점검한 잔은 닷새 후에 인근에서 모은 200명의 병사를 포함한 500명을 이끌고 엔봉으로 야간 행군했다. 새벽 즈음에 적 포위망을 뚫고 성문 하나에 도착한 그녀는 수비대와 주민들의 열띤 환호를 받으며 입성했다.

이렇듯 잔이 결사적으로 항전하면서 피해가 갈수록 커지자, 샤를은 엔봉 성벽을 파괴하기 위해 12대의 투석기를 제작한 뒤 레온의 에르베에게 공략을 맡기고 다른 마을을 공략하러 떠났다. 얼마 후 투석기가 마을과 성벽을 파괴하자, 수비대 사이에서 항복하자는 의견이 거세졌다. 급기야 엔봉 내부에 머물고 있던 레온 주교이자 에르베의 삼촌 기가 에르베와 밀통해 항복 여론을 조성했고, 잔의 허락도 받지 않고 항복 조건을 협상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이를 막으려 했지만 대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항복을 택해야 했다.

파일:Jeanne_de_Flandre.webp
15세기 판화, 잉글랜드 함대를 맞이하는 잔 드 플란데런.

하지만 얼마 후, 잉글랜드 함대가 나타났다. 장 르 베는 연대기에서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에르베 경은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을로 향했다. 이때 용감한 부인이 성의 창문을 통해 바다를 보고는 환희에 차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울부짖었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던 그들이 오고 있다!"
도시의 모든 사람은 그녀가 본 것을 보려고 성벽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엔봉으로 향하는 크고 작은 선박들을 목격했다.

월터 매니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은 무사히 상륙한 뒤 잔이 베푼 연회에 참석했다. 에르베는 이에 격분해 투석기를 동원해 밤낮으로 포격을 퍼부었지만, 월터가 잉글랜드 궁병대 300명을 이끌고 야밤을 틈타 빠져나온 뒤 투석기를 지키고 있던 적병들에게 일제 사격을 가해 몰아낸 후 투석기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적진에 불을 지른 뒤 프랑스군의 추격을 회피하고 귀환했다. 장 르 벨은 잔이 성에서 내려와서 월터 매니와 잉글랜드 병사들에게 차례로 두 세번 키스했다고 밝혔다.

결국 프랑스군은 6월경에 엔봉 공략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이후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잉글랜드 본대가 브르타뉴에 상륙한 뒤 반 시를 향한 공세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