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추어 경력
동산고 2학년까지는 평범한 투수였으나 3학년 때부터 경인권에서 수위를 다투는 좌완투수로 꼽혔으며, 우완투수 손호광과 2002년 졸업의 같은 동기생이다. 연고 구단인 SK 와이번스의 1차 지명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2차 지명으로 밀려나 현대 유니콘스의 2차 3라운드 지명을 받은 후 인하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쯤되면 완벽한 인천 홈보이. 스톡킹에서는 지명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프로 입단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지명 순위도 높고 계약금도 준다고 하길래 프로에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대졸 선수를 선호하는 분위기[1]가 아직 남아있고 해서 일단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2]인하대에 진학한 이현승은 충실히 웨이트에 전념하며 체중을 거의 10kg 가까이 불리면서 130km/h 중후반대에 그치던 구속을 최고 140km/h 후반대에 이를 정도까지 끌어올리며 경성대의 장원삼과 함께 최고의 대졸 좌완 투수로 꼽히게 된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현대 유니콘스로서도 이현승을 놓칠 수 없었고, 1억 8,000만 원에 이르는 막대한 계약금을 안기며 이현승을 입단시키는 데 성공했다. 참고로 장원삼은 2억 5,000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
그러나, 장원삼 및 이현승과 나머지 신인들은 그해에 계약금을 완전히 받지 못했다. 그 사정에는 현대그룹의 지원이 끊긴 상황에 KBO의 위탁을 맡은지라 그 돈은 현대가 해체 될쯤 구단에 받았다고 한다.
2. 현대 유니콘스 시절
2.1. 2006 시즌
입단 첫 해 병풍으로 인해 두 좌완투수 공백에 시달리던 현대 유니콘스의 좌완 중간계투로 기용된 이현승은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1군 70경기에 등판하며 19홀드(3위)를 기록하는 등 쏠쏠한 활약을 했다. 이 당시 현대 투수진은 삼성 다음으로 좋았으며 거기다가 박준수와 신철인의 호투[3]도 다른 년도에 비해서 남부럽지 않게 호투를 했다.2.2. 2007 시즌
하지만 그 다음해에는 먼지나게 두들겨 맞으며 7점대의 ERA로 바로 버로우. 그야말로 신인들이라면 한번쯤은 겪는 2년차 징크스를 보여줬다. 이런 점에서 팀 선배였던 마일영과 평행 이론[4]이다. 거기다가 동기생이자 친구 장원삼 역시 살짝 방어율이 높고 승수도 지난해에 비해 3개나 까먹었다.
3. 우리 히어로즈 시절
3.1. 2008 시즌
이광환 감독이 선발감으로 눈여겨보면서 2008년 전반기 계투와 선발을 오가던 이현승은 후반기부터 로테이션에 확실히 정착하며 상당한 호투를 보여주는데, 2008년 9월 23일 두산전 2.2이닝 9실점만 아니었어도 더 나은 성적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리고 운명의 2009년이 밝았다.
3.2. 2009 시즌
2009년 4월 4일 첫 선발 등판부터 이현승의 질주가 시작된다. 전반기를 끝낸 이현승의 성적은 114.1이닝 11승 6패 ERA 3.15. 전년도에 트레이드 파동으로 후유증에 시달렸던 에이스 장원삼의 시즌 아웃과 김수경의 부진, 어쩔 수 없이 스윙맨을 오가야 했던 황두성[5] 등으로 인해 확정되지 못한 로테이션을 떠받드는 에이스 노릇을 한 이현승은 히어로즈 팬들에게 있어 일종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후반기, 첫 풀 타임 선발로서의 시즌이었기 때문인지 이현승은 완전히 말 그대로 꼴아박았다. 2승 4패 ERA 6.31의 초라한 성적[6]을 기록하게 되었고, 전반기의 에이스가 후반기에는 그리 되리라고는 쉽게 예상할 수 없었기에 팬들은 실망보다는 위로를 보냈다. 이현승은 다음 해의 희망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4. 두산 베어스 시절
두산 베어스 선수시절 |
4.1. 2010 시즌
하지만 2010 시즌 시작 후 선발 이현승은 두산의 입장에서 재앙에 가까웠다. 당시 이현승은 아직 미필이라 아시안게임 대표에 뽑혀야 되는 부담감 때문인지 몰라도,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만 강했을 뿐 선발로서는 완벽하게 개죽을 쑤고 말았다. 결국 팔꿈치 통증까지 겹치며 2군으로 강등당했고, 1군 복귀 후에는 그 해 부진했던 지승민을 대신하여 좌완 불펜으로 밀려났다. 그나마 중간계투에서는 좌완이라는 메리트로 어느 정도 던져 주었지만, 안정감을 주지 못해 두산은 고창성과 정재훈에게 매달리게[11] 되었다.설상가상으로 그 부진한 피칭으로 인해, 아시안 게임 예비 엔트리조차 들지 못해 군 입대가 확정됐다. 그래서 야구 팬들은 두산이
팀이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2010년 9월 3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0 마구마구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 1차전에 이어 베스트셀러를 집필하신 정작가에 이어 팀이 스코어 4:1로 10회초 1사 상황에서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⅔이닝 15투구수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팀은 스코어 4:1로 졌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2010년 10월 3일 사직에서 열린 2010 마구마구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스코어 2:2인 5회말 2사 2루 상황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⅔이닝 21투구수 2피안타 1몸에 맞는 공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6회 초에 1점, 9회초에 8점을 뽑아 스코어 11:4로 승리하여 이현승은 이 날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현승은 2010년 준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2⅓이닝 3피안타 1볼넷 1몸에 맞는 공 무실점, 1승을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10년 10월 13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스코어 5:5인 6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3⅔이닝 57투구수 1피안타 1몸에 맞는 공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 날은 장원삼도 삼성의 마지막 투수로 나와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후 삼성이 11회 말에 박석민의 끝내기 내야 안타로 스코어 5:6으로 이기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기에, 이 두 투수의 호투를 본 히어로즈 팬들은 그저 피눈물을[12] 흘렸다. 패전은 임태훈이 떠안았다.
이현승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 마구마구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5경기에 모두 나와서 7이닝 5피안타, 3볼넷, 1몸에 맞는 공, 11탈삼진, 2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1.29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이현승은 2010년 포스트시즌 10경기 중 7경기에 등판하여 9⅓이닝 1승 8피안타 4볼넷 2몸에 맞는 공 11탈삼진 2실점 1자책 평균자책점 0.96을 기록하여 비록 페넌트레이스 때는 대차게 말아먹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그나마 밥값을 하였다.
4.2. 2011 시즌
시즌이 끝난 후 2011년에 예정되어 있던 군 입대도 미루고 부활을 위해 이를 갈고 있다고 했지만, 잘 될 지 미지수였다. 왜냐하면 롯데 자이언츠만큼은 아니더라도 두산 베어스의 투수코치진 역시 만만찮게 엉망이었던 걸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2011년의 두산 베어스는 금지어의 스캔들로 인해 팀 분위기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었고, 그 해 6월에 김경문 감독이 사퇴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며 팀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2011년 8월 31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2:2 동점 연장전 상황에서 등판하여 2점 홈런을 얻어맞고 그 날의 역적으로 등극[13]했다. 이것만으로도 까일 판인데, 홈런을 쳐맞은 후 덕아웃에서 벤치에 다리를 올리며 웃는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찍히는 바람에 미치도록 까였다. 결국 2011년에도 두산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부진했다.(결국 망신 당한 시즌이였다.)
4.3. 상무 야구단 시절
2011 시즌 종료 후 상무에 합격하여 군 복무를 마치고 2013년 9월에 제대했다. 그러나 제대를 5개월 앞두고 2013년 4월 대학교 시절 남아있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토미 존 서저리와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10억 먹튀의 임팩트와 정규 시즌의 극심한 부진으로 인해 돡갤 등의 두산 베어스 팬커뮤니티에서는 '현퀴(현퀴벌레)'로 불렸다.
토미 존 서저리의 후유증으로 2014 시즌 중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재활이 빨리 진전됐는지 2014 시즌 전 연습경기에 등판했다[14]. 세이부를 상대로 1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무사 2-3루를 만들었지만 땅볼로 1점만 주는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
4.4. 2014 시즌
스톡킹에서 회고하길, 상무 제대하고 14시즌 복귀 이후 모든게 거의 다 원위치로 되돌아오면서 자리가 아예 보이지 않았고, 대체자로 있었다가 혜성같이 등장한 유희관으로 인해 마무리로 보직변경을 했다고 밝혔다. 거기다가 감독이 송일수로 바뀌어 있었다.4월 1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1차전에 구원 등판하였지만, 두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2실점하고 아웃 카운트는 하나도 잡지 못한 채 내려와야 했다.
4월 5일에는 한 술 더 떠서 아웃 카운트는 잡지도 못하고 3실점을 했다. 시즌 초라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이쯤되면 이혜천이 다른 사람으로 환생한 수준.
위에서 보듯 시즌 초에 삽을 푸고 실점을 하며 말아먹는 경기가 많았기 때문에, 4월이 지나도록 승리조와 추격조 사이에 애매하게 껴서 이기는 경기, 지는 경기에 가리지 않고 등판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 시기 평균자책점은 6.14로 높은 편이었으나 4월을 지나면서 이혜천 모드에서 벗어나 점차적으로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며 조금씩 이기는 경기에 주로 등판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역할은 윤명준과 더불어 6, 7회를 막는 역할과 상대 타순이 좌타자일 때 구원 등판하는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 6점대이던 평균자책점도 3점대로 낮아지며 5월 17일까지 2승 4홀드 ERA 3.21을 기록 중.
그러다가 5월 24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구원투수로 등판, 아웃카운트는 하나도 잡지 못하면서 2실점하며 불을 질렀다. 그 다음날 25일에도 이용규를 잡기 위해 표적 등판했으나 볼넷을 내주고 강판당했다.
29일 KIA전에 등판, 0.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갔다.
30일 롯데전에 8회 등판. 좌타인 손아섭과 히메네스를 잡기 위한 표적 등판이었다. 그 결과 10구만에 손아섭을 삼진으로, 히메네스는 포수 파울플라이로 잡아내며 승리를 챙겼다.
6월에도 변함없이 경기 후반에 상대의 좌타 라인을 봉쇄하러 줄곧 등판했다.
6월 13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8회 등판한 오현택이 나바로에게 안타를 맞고 내려가자, 2번 박한이, 3번 채태인, 4번 최형우의 세 좌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등판했다. 결과는 박한이 희생번트, 채태인 삼진, 최형우 좌익수 플라이. 경기는 호르헤 칸투의 홈런포와 니퍼트의 호투 덕분에 6:4로 승리하였고 본인은 시즌 7홀드를 올렸다.
1, 2점차로 이기거나 지고 있는 접전일 경우 8회 즈음해서 좌타자가 1~3명 정도 포진해 있는 타순이 되면 거의 매번 등판해서 좌타자들을 저격하고 내려간다. 혹자는 잘 던지는 이현승이 1타자만을 상대하고 내려가는 게 아쉽다고 하기도 하지만, 등판 횟수가 많고 1이닝이나 그 이상 막는 경우도 종종 나오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한 건 사실.
10월 16일 SK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 5이닝 1실점으로 막았고 투구수가 여유있었음에도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타자 교체로 역전패당해 1272일만의 선발승을 날려버렸다.[15] 이때 경기를 봐왔던 김인식 전 감독의 발언이 압권.[16]
4.5. 2015 시즌
2015 한국시리즈 5차전 14년 만의 우승을 확정 지은 뒤 양의지와 함께 환호하는 모습 |
자세한 내용은 이현승/선수 경력/2015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4.6. 2016 시즌
자세한 내용은 이현승/선수 경력/2016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4.7. 2017 시즌
4월 1일 한화와의 2차전에 이용찬 뒤를 이어 등판했으나 동점 상황인 11회초 2사 상황에서 2실점으로 역전을 허용했고, 11회말 타선이 1득점에 그쳐 그대로 두산의 시즌 첫 패전투수가 되었다.4월 2일 역시 등판해 1.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4월 4일 kt와의 원정 경기에 9회말 등판해 심우준에게 투수 우측 번트로 내야안타를 허용했으나 이후 침착하게 2루수 뜬공-삼진-중견수 뜬공으로 1이닝을 삭제해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4월 28, 29일 롯데와의 홈 경기에서 이틀 연속 만루변태 본능을 과시하며 세이브를 2개 올렸다.
5월 2일 삼성전 9회말 2사 1,2루 상황에서 박해민에게 2타점 동점 3루타를 맞고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 후 10회말 1사 상황 다린 러프에게 끝내기 솔로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현재까지 평균자책점은 3.14로 괜찮지만 WHIP가 무려 1.6이다. 즉 주자 없는 상황에 올리면 한 이닝 정도는 그럭저럭 막아도 주자 있을 때 올리면 한두 명 정도는 들여보내고 시작할 스탯이라는 뜻.그런 주제에 만루만 되면 각성한다는 점에서 전 해와 비슷한 패턴이다.그나마 홈런을 하나밖에 안 맞아서 꾸역꾸역 괜찮은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는게 위안거리다.
그러나 5월 중순부턴 이닝 가리지 않고 실점위기만 되면 올라오는데도 깔끔하게 틀어막고 있다. 평균자책점도 1점대까지 내렸다.
6월 4일까지 스탯티즈 기준으로 불펜투수 WAR KBO 전체 1위, 선발 투수를 포함해도 전체 10위를 기록중이다.
6월 6일 삼성전에서 8회에 김승회를 뒤이어 구원등판하여 배영섭을 볼넷으로 내보내고 박해민에게 안타를 맞은 후 구자욱을 삼진으로 잡았지만.. 자신의 시즌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했던 피홈런을 만들어낸 다린 러프에게 초구 안타를 맞으며 동점을 허용한 후 김헌곤한테 2루타를 맞으며 역전을 허용했고 이승엽에게 안타를 맞으며 불을 제대로 질러버렸다. 웃기는 건 또 두산이 경기 후반 따라잡아서 패전은 아니라는 점.[17]
6월 7일 유희관이 6이닝을 소화한 뒤 김승회-김성배에 이어 8회 1사에 등판해 앞의 두 투수들처럼 0.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 홀드를 얻어냈다.
6월 8일 구자욱에게 투런포를 맞으며 니퍼트의 승리를 날려먹었지만 팀은 10회말 김재환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했다.
6월 21일 허리통증으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8월 22일 SK전, 4이닝 6실점으로 일찌감치 무너진 보우덴, 1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한 김명신에 이어 3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중심타선을 상대로 삼진 2개를 잡는 등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이닝을 마무리하고 김승회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그의 깔끔한 투구를 보고 두산 팬들은 가을이 오나보다 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4.8. 2018 시즌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3번으로 교체했다.
전반기동안 16.9이닝 10실점(9자책) 25피안타(2피홈런) 8사사구 12삼진 방어율 4.79을 기록했다. 4월까지는 무난한 모습을 보였으나 그 이후로 무너지며, 전반기 후반에 와서는 1이닝도 제대로 못 먹어 패전처리로도 못 쓸 투수 취급을 받는 중. 그런데도 좌완이라는 이점[18] + 김태형 감독의 베테랑 기용이 합쳐져 2군으로도 내려가지 않아 팬들의 속을 활활 태우고있다. 후반기 첫경기에도 등판했으나 고작 1/3이닝 먹고 1피안타를 기록, 이미 팬들의 신뢰는 바닥을 쳤다. 이대로가면 무난한 먹튀 페이스.
개막장으로 치솟던 7월 21일 LG전 9회말에 등판해 병살타를 곁들인 이후 박용택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가르시아를 뜬공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마무리지었다.[19]
7월 25일 문학 SK전 팀이 11대3으로 뒤지는 상황에서 패전처리를 하러 올라왔다. 추가 실점이 예상되었으나 2이닝 1피안타 2삼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했다.
올시즌 팀에 끼치는 폐해가 상당한데, 그의 부진으로 팀내 믿을 만한 좌완은 함덕주가 유일해졌다. 이 때문에 함덕주가 필승카드이자 마무리투수로써 충분한 관리가 필요함에도, 좌완 등판이 필요할때마다 소환을 당하면서 집단 마무리 체제 및 불펜 과부하로 이어지고 있다.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르고 있는 박치국, 30대 후반의 김승회, 작년 혹사의 여파로 제 컨디션이 아닌 김강률의 혹사는 덤.
8월 7일 잠실 한화전 5대 4로 한점 앞서고 있는 와중에 등판해 한명의 타자도 잡지 못하고 이용규를 볼넷으로 내보낸 후 교체되었다.
그리고 8월 8일도 등판했으나 아웃카운트 하나만을 잡고 또다시 볼넷을 내주며 강판되었다. 결국 그 다음날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1군에 다시 등록되었다 9월 15일 대량 실점하며 팀의 패배에 쐐기를 박았고, 결국 다음 날 말소되었다.
10월 5일 구위 점검을 이유로 다시 콜업되었다. 10월 7일 기아전 7회 초에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삼진 2개 포함 공 12개로 깔끔하게 삼자범퇴 처리했다. 10월 11일 SK전 7회 초에도 구원투수로 나와서 삼진 1개 포함 공 14개로 이닝을 마무리지으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금이나마 폼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자 기대하는 팬들이 간간히 보이고 있다. (팀은 SK한테 2승 4패로 패해 준우승 했다.)
4.9. 2019 시즌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다시 48번으로 바꿨다. 한편 시즌을 앞두고 이현승과 역할이 겹치는 좌완 베테랑 불펜 권혁이 영입되었는데, 지난 시즌 이현승이 부진했던 점을 생각하면 절치부심할 필요성이 있어보인다. 4월 26일에 종아리 통증으로 1군에서 자취를 감추고 2군 경기도 뛰지 못하고 있다.[20]한동안 소식이 뜸하다가 9월 25일 김승회와 함께 아주 오랜만에 1군 콜업되었다.
당일 6회 2사 만루 상황에 등판하여 삼진을 잡아내어 이닝을 마무리하고 7회에도 삼진 하나를 기록하고 최원준에게 마운드를 물려주었다.
시즌 내내 부진했던 박치국을 대신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 나쁘지 않게 활약해주었고, 팀은 4전 전승으로 6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4.10. 2020 시즌
자세한 내용은 이현승/선수 경력/2020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4.11. 2021 시즌
2021년 11월 9일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8회말 구원 등판해 박해민을 삼진으로 잡아내는 모습 |
자세한 내용은 이현승/선수 경력/2021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4.12. 2022 시즌
자세한 내용은 이현승/선수 경력/2022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시즌 초반에는 부진하긴 했지만 5월부터 2군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1군에 복귀하는 데 성공했고, 6월까지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7월부터 구위가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얼마 안가 1군에서 자취를 감추면서 2018년과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39세의 노장인데다 7월 달부터 시작된 부진 탓인지 이번 시즌이 현역 마지막 시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많이 나오고 있다. 결국 9월 28일에 은퇴 소식이 주변을 통해 알려지더니 정규시즌 종료 후인 10월 9일에 구단을 통해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 현역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5. 국가대표 경력
5.1. 2015 WBSC 프리미어 12
2015 WBSC 프리미어 12 |
경기 | 선발 | 이닝 | 방어율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피안타 | 실점 | 자책점 | 4구 | 삼진 | 상세 |
5 | 0 | 2⅔ | 0.00 | 0 | 0 | 0 | 2 | 0 | 0 | 0 | 0 | 1 | ## |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준결승전, 오재원이 불을 붙이면서 대한민국이 역전한 후 9회 말 스코어는 4:3, 1점차로 리드하고 있는 2사 주자 1루 상황에서 정대현의 뒤를 이어 마무리로 등판하여 대타로 나온 나카무라 다케야를 3루수 땅볼 아웃으로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참고로 경기를 치르기 이틀 전에 꼼수는 실력을 이길 수 없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결승전인 미국전은 김현수의 3안타와 박병호의 결정적인 3점 홈런 등의 활약에 힘입어 8점 차로 벌어지면서 등판하지 않았고, 조상우가 마무리했다. 대회 최종 성적은 2와 2/3이닝 ERA 0.00. 포스트 시즌부터 뒤이은 국제대회까지 마무리 보직을 맡으면서 15 2/3이닝 무자책점 행진을 이어 나갔고, 2015 WBSC 프리미어 12 대한민국 우승을 끝으로 2015년 커리어를 마감하게 된다.
5.2. 2017 WBC
2017 WBC |
경기 | 선발 | 이닝 | 방어율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피안타 | 피홈런 | 자책점 | 사구 | 삼진 | 상세 |
2 | 0 | ⅓ | 0.00 | 0 | 0 | 0 | 0 | 2 | 0 | 0 | 1 | 0 |
6. 수상 경력
6.1. KBO
| |
이현승의 KBO 수상 경력 | |
2009 | 웨스턴 올스타(감독추천) |
2015 | 한국시리즈 우승 / 준플레이오프 MVP |
2016 | 한국시리즈 우승 / 드림 올스타(베스트12) |
2017 | 드림 올스타(베스트12) |
2019 | 한국시리즈 우승 |
6.2. 국가대표
이현승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상 경력 | |
2015 | 2015 WBSC 프리미어 12 우승 |
7. 연도별 성적
- 푸른 글씨는 KBO 최다,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이현승의 역대 KBO 기록 | ||||||||||||||||
<rowcolor=#fab93d>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세 | 홀 | 이닝 | ERA | 피안타 | 피홈런 | 승률 | 4사구 | 탈삼진 | WHIP | ERA+ | sWAR |
2006 | 현대 | 70 (2위) | 2 | 0 | 0 | 19 (3위) | 40⅓ | 3.79 | 44 | 3 | 1.000 | 16 | 43 | 1.44 | 95.2 | 0.98 |
2007 | 45 | 1 | 2 | 0 | 5 | 22⅔ | 7.15 | 33 | 1 | 0.333 | 9 | 14 | 1.85 | 55.8 | 0.09 | |
<rowcolor=#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세 | 홀 | 이닝 | ERA | 피안타 | 피홈런 | 승률 | 4사구 | 탈삼진 | WHIP | ERA+ | sWAR |
2008 | 우리 | 40 | 6 | 8 | 0 | 1 | 120 | 4.58 | 132 | 10 | 0.429 | 58 | 78 | 1.54 | 92.6 | 1.88 |
2009 | 히어로즈 | 30 | 13 (4위) | 10 | 0 | 0 | 170 (5위) | 4.18 | 161 | 25 | 0.565 | 71 | 120 | 1.34 | 115.4 | 3.58 |
<rowcolor=#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세 | 홀 | 이닝 | ERA | 피안타 | 피홈런 | 승률 | 4사구 | 탈삼진 | WHIP | ERA+ | sWAR |
2010 | 두산 | 46 | 3 | 6 | 2 | 4 | 77⅔ | 4.75 | 80 | 8 | 0.333 | 28 | 50 | 1.35 | 95.7 | 1.26 |
2011 | 50 | 3 | 5 | 4 | 6 | 74⅔ | 4.82 | 85 | 8 | 0.375 | 31 | 50 | 1.49 | 85.0 | 0.74 | |
2012 | 군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 |||||||||||||||
2013 | ||||||||||||||||
2014 | 65 | 3 | 3 | 0 | 15 | 55 | 5.07 | 68 | 2 | 0.500 | 26 | 39 | 1.66 | 97.5 | 1.15 | |
2015 | 41 | 3 | 1 | 18 (5위) | 2 | 46⅔ | 2.89 | 45 | 3 | 0.750 | 12 | 41 | 1.18 | 162.1 | 2.21 | |
2016 | 56 | 1 | 4 | 25 (5위) | 1 | 57⅔ | 4.84 | 65 | 8 | 0.200 | 24 | 41 | 1.42 | 105.6 | 0.24 | |
2017 | 57 | 3 | 2 | 5 | 9 | 52 | 3.98 | 62 | 4 | 0.600 | 20 | 38 | 1.50 | 120.9 | 1.45 | |
2018 | 39 | 1 | 0 | 0 | 6 | 30⅔ | 4.99 | 39 | 4 | 1.000 | 15 | 21 | 1.73 | 101.3 | 0.35 | |
2019 | 9 | 0 | 1 | 0 | 2 | 6 | 3.00 | 4 | 0 | 0.000 | 0 | 4 | 0.67 | 136.8 | 0.16 | |
2020 | 62 | 2 | 1 | 2 | 10 | 42⅓ | 5.31 | 48 | 2 | 0.667 | 23 | 42 | 1.63 | 87.2 | 0.25 | |
2021 | 38 | 5 | 1 | 0 | 7 | 23⅓ | 1.93 | 16 | 1 | 0.833 | 6 | 20 | 0.94 | 223.7 | 0.97 | |
2022 | 23 | 1 | 0 | 0 | 2 | 8⅔ | 6.23 | 13 | 2 | 1.000 | 5 | 9 | 1.96 | 63.9 | -0.05 | |
KBO 통산 (15시즌) | 671 | 47 | 44 | 56 | 88 | 827⅔ | 4.47 | 895 | 81 | 0.516 | 344 | 610 | 1.45 | 101.5 | 15.26 |
[1] 팀 선배였던 유한준의 사례가 있었다. 부모님 께서는 한때 교사를 했는데 아마도 공부 라는것을 게을리 하는걸 원치 않기에 보낸듯 하다.[2] 대학교를 선택하면 지명권 소멸이 유예가 3년이였으나 1년 후에 KBO에서는 효력을 2년 줄였다.[3] 신철인은 홀드 4위를 기록, 박승민은 오승환 다음으로 두산의 정재훈과 세이브 공동 2위를 했다.[4] 마일영은 데뷔 시즌부터 2002시즌 까지 나름 평범해서 괜찮았다. 다만 03~04년에는 선발과 중간계투를 계속 뛰었으나 아무런 자리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5선발 , 6선발 및 중간계투 급으로 실망한 성적을 냈다. 시절이 시절인지라...[5] 팀 후배 이보근 이전에 김시진의 남자라고 불릴정도로 엄청나게 어깨를 갉아 먹었다.[6] 심지어 한 번은 9-0의 리드 상황에서 한 회에 7실점한 적도 있었다. 팀은 결국 이도형, 이범호가 맹공을 몰아친 한화에게 11-9로 패하며 최다 점수차 역전 타이기록의 희생양이 되었고, 이 날로 히어로즈의 마지막 남은 4강의 희망마저 사라졌다.(본인의 다승왕도 사라졌다.) 여담으로 이 날은 정민철의 은퇴식 날이었다.[7] 2018년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으로 당시 이적료가 무려 30억임이었음이 밝혀졌다.[8] 두산이 이런 소위 돈질을 하는 것을 본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현금 10억을 실제로 주고 트레이드한 것은 뻥이고, 돈 없는 히어로즈가 서울 연고 가입금을 두산과 LG에 내는 대신 선수 하나씩 무료 증정한 걸로 모두가 믿고 있다.[9] 비록 금민철의 포텐이 못터져서 아쉬웠으나 2009년의 금민철은 이현승 보다 성적은 아래였어도 후반기에는 좋은 피칭을 보여줬다. 그리고 해외에서 활동하던 이혜천이 없던것도 두산 입장에서 한몫했다.[10] 후에 시즌 두산 선발진의 버팀목이 되는 김선우는 09년도 당시만 해도 kbo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30대 초반의 나이탓에 두산팬들의 기대가 떨어져 있었고 선발요원이 전무한 탓에 세이브왕 출신인 정재훈을 선발로 돌리려다 누적된 혹사로 결국 무너지고 말았을 정도로 두산에 선발로써 이닝을 먹어줄 선수가 아예 없었다.[11] 임태훈이 선발로 보직을 옮겼기 때문에 이런 고창성의 등판은 엄청난 악수를 하게 된 셈이였다.[12] 또는 이장석을 욕했다.[13] 반대로 LG에 트레이드 된 전직 넥센 선배 송신영은 몸담은 반년동안 넥센전 등판한적이 없다고 하였다.[14] 저 당시 선발이 진야곱이었고 자기는 두번째 대기조였고 이때 선발도 아니었는데 진야곱이 1회 투구하다 손가락에 물집이 터지는 바람에 긴급하게 올라왔다고 스톡킹에서 밝혔다.[15] 훗날 스톡킹에서 회고하길, 저날 송일수 감독이 주전이었던 김현수와 홍성흔을 휴식 준다면서 확 빼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타자로 교체한게 결정타가 되었고, 이 여파로 2014시즌 내내 부진했던 금지어, 정대현, 노경은을 끝까지 이기겠다고 잇따라 올려서 두산판 살려조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겨우 잡은 선발 승리기회를 순식간에 날려먹었다고. 노경은도 진짜로 부진한 상태였는데 아예 강제로 집어넣었으니....... 노경은의 현역시절을 참조하자.[16] 두산이 못했기 때문에 SK가 이긴 걸로 생각되는데 두산도 처음 나온 선수도 있고 주로 퓨처스리그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많은데 열심히 했지만 감독이 최선을 다 안 하지 않았나 이렇게 보아집니다.[17] 이날의 패전투수는 연장 10회초 이승엽에게 결승 투런을 맞아버린 이용찬.[18] 좌완 원포인트로써의 활용도를 염두에 두고 1군에 두는 것 같은데 정작 좌타자에게나 우타자에게나 잘 맞는다.[19] 이현승의 올 시즌 성적이 대단히 부진했던 만큼 많은 팬들은 9회말 이영하, 박치국 등의 등판을 예상했지만, 갑작스런 이현승의 등판에 웬 3번 유니폼 입은 일반인 남성이 시구한다(…)면서 불안해했다.[20] 참고로 팀 내 역할이 겹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는 별개로 이현승과 권혁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라고 한다. 이현승, 권혁 모두 언급한 바 있으며 배영수까지 언급하며 확인사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