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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11-14 15: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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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이 측정 도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자(도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 옛날에 성인이 되면 지어주었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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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화권만의 이름. 중국어에서는 자가 갑이다

3. 감탄사

주로 남에게 뭔가를 권하거나 재촉할 때 쓰인다.
ex) “자! 이거 먹어.”

4. 도량형

척관법에서 사용하는 길이 단위로, 한자로는 척(尺)으로 표기하며 현행 1척은 약 30.303 cm[1]이다. 손가락을 이용해 길이를 재는 단위로서, 초기에는 손을 폈을 때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 사이의 길이, 즉 약 18 cm 정도의 길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단위가 점점 길어지면서 전한대에는 23 cm, 대에는 24.5 cm로 늘어났다.

삼국지관우가 8척(또는 9척) 장신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사람 키가 240 cm이 말이 되냐 ㅋㅋㅋ” 하는 경우도 있으나, 자의 정확한 길이는 시대에 따라서 달랐다. 후한척은 약 23 cm, 서진척은 약 24 cm, 동진척은 약 25 cm이므로, 후한척으로 8척이면 184 cm, 9척이면 207 cm로 아무리 고대인의 평균적 신체조건이 현대에 못미쳐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은 키는 아니다. 물론, 8척 키만해도 고대인의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만큼, 현대인 기준으로 2미터를 넘는 거인인 9척은 당시 고대인들에게는 괴물처럼 보일 수는 있을 것이다. 사실 240 cm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척(尺)이라는 단위로 표기했어도 실제로는 여러 길이를 혼용하여 썼는데, 황종척(黃鐘尺), 주척(周尺), 영조척(營造尺), 조례기척(造禮器尺), 포백척(布帛尺) 등이 있었다. 이 중 주척은 조선시대 초에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도입되었고, 그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듯하다. 각각의 길이가 난립하여 세종 시대에 박연이 밀랍기장을 기준으로 만든 황종척으로 표준화하였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표준도량형기가 소실되었다. 전란이 지나간 후에 도량형을 복구하였으나, 조선 전기와 비교하여 단위가 약간 달라짐은 피할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시대가 지나면서 도량형이 어지러워져 지역마다 서로 단위가 달라지는 등 문제가 생겼으나, 조선 조정은 이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

이 문제는 갑오개혁, 그리고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조선의 단위를 강제로 자기네와 일치시키면서 해결되었다. 조선시대에 자의 단위가 여러 개였으나, 지금 사람들이 30.303 cm짜리 하나만 아는 것도 이 영향이다.

현재 사용되는 자(尺)와 피트의 길이는 약 0.177 cm 정도밖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두 단위를 크게 구별하지 않고 쓴다. 옛날 군부대 유류고에 보면 "50자 이내 금연"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는데, 이는 "No smoking within 50 feet" 표시를 외래어 없이 억지로 우리말로만 표기하다 보니 생긴 결과다. 물론 이후에는 미터법 사용 장려 운동으로 인해 "15미터 이내 금연" 표기를 쓴다. 이후 안전규정이 개정되면서 이 거리는 16미터로 늘어났지만 아직도 15미터 표기가 남아있는 곳이 간혹 있다.

어항의 크기를 잴 때 이 단위를 쓴다. ex)1자, 2자, …

세종이 표준화한 자의 길이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학자에 따라 서로 의견이 다르지만, 대부분은 큰 차이가 없다.[2] 2000년에 문화재청이 발간한 서적 <<조선시대 표준 자>>와 실물모형에 따르면 아래와 같다.

포백척의 길이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 경국대전에서는 포백척 1척이 황종척으로 1척 3촌 4분 8리라고 설명하는데, 이에 따르면 포백척은 46.6 cm 정도가 되어야 한다. 학자들도 조선 전기 기준으로 포백척 길이가 46.6 cm쯤이 표준이라는 의견이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세종조의 표준도량형기가 소실되고 도량형 체제가 문란해지자, 영조 16년(1740)에 유척기는 유형원반계수록을 참고로 세종 28년(1447)에 만들어진 포백척을 근거로 세종 당시의 표준 자를 복구하자고 주장하여 조정에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조선시대 표준 자>>의 실물모형 또한 영조 16년에 복구한 자를 근거로 만들었는데, 경국대전에 규정된 바보다 길다. 만약 유척기가 참고했다는 포백척이 정말로 세종 28년에 만들어진 표준 자였다면, 이미 세종 때부터 포백척은 표준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고구려척은 35.6cm였다.

서양 역시 영국에서 쓰는 피트와 프랑스에서 쓰는 피트가 달랐기 때문에, 실제로는 평균 신장보다 6 cm 정도 더 컸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졸지에 영국에서 난쟁이로 소문나기도 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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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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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자. 자. 보통 개발자, 소비자처럼 접미사로 쓰인다. 일본어 훈독(뜻)은 もの[3], 음독은 しゃ[4].

7. 숫자의 단위 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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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성씨 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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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한문의 어미(語尾)활용

공자, 맹자 등의 이름난 학자들의 이름이나 사자, 모자와 같이 실제 그 대상을 가르키는 이름은 맨 앞의 글자가 다 하지만 어미(語尾)로서 붙이는 것으로, 고립어한문의 거의 유일한 어미활용법[5]이다.

여담으로 근본 없는 천한 사람은 자가 없다. 삼국지전위장연이 그런 경우.

[1] 1033{10 \over 33} m, 다시 말해 100033{1000 \over 33} cm이다.[2] 전대희는 <朝鮮代 度量衡器의 實크기에 관한 硏究>(1983)에서 세종 시절에 교정한 영조척의 길이를 홀로 27.6 cm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학자들의 연구와 비교해도 유독 오차가 크지만, 전대희의 연구를 제외하면 대체로 큰 차이 없이 모인다.[3] 모노[4][5] 한문이라 특정짓는 것은, 한나라 이후의 중국어는 북방 민족들의 영향으로 교착어로서의 특성을 가지게 되어 다양한 어미활용법이 생겼지만, 한문은 한대 이후의 중국인들의 입말과 거리가 멀어진 글말로 옛 한나라의 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까운 명나라 때만 해도 입말인 백화문과 글말인 한문의 차이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