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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02:06:57

자자 가보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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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colbgcolor=#fff,#1f2023><colcolor=#000,#fff> 자자 가보
Zsa Zsa Gabor
분야 텔레비전
입성날짜 1960년 2월 8일
위치 6915 Hollywood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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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DACA2><colcolor=#ffffff> 자자 가보
Zsa Zsa Gabor
본명 가보르 샤리
Gábor Sári
출생 1917년[1] 2월 6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부다페스트
사망 2016년 12월 18일 (향년 99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벨에어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63cm
가족 어머니 졸리 가보(1896~1997)
언니 매그다 가보(1915~1997)
여동생 에바 가보(1919~1995)
딸 프랜체스커 힐튼(1947~2015)
직업 배우
활동 기간 1934년 ~ 1996년
1. 개요2. 특징3. 주요 출연 작품4. 사생활5. 사망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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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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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배우.

2. 특징

할리우드 섹스심벌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했으며, 라스베이거스에서 자신의 엉터리 영어를 오히려 무기로 내세워 호화로운 쇼를 진행하며 명성을 얻어 큰 부를 축적했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애교 있는 이미지 연출에 능했고, 언론의 화제를 불러모으는 재치있는 언변이 있어 토크쇼를 돌며 대중의 관심을 잘 집중시켰다. "남편을 곁에 붙들어 놓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다리에 총을 쏴요"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예능신(神)'이었다.

미스 헝가리 출신이다.

존 휴스턴이 칭찬할 정도로 배우로서도 재능이 있었던 편. 다만 영화 경력은 흐름이 고르지 못해 대형 영화 주연 위치까지 가지 못했고 망작도 많았다. 후기로 갈수록 연기에 관심이 줄었는지 B급 영화 및 목소리 연기로 드문드문 나오다가 은퇴해버렸다.

3. 주요 출연 작품

무대와 TV 토크쇼를 통해 이름값을 얻은 경우라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들 중엔 유명한 작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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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고 있는 드레스는 유명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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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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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9번 했다. 남성편력이 심해 결혼 중에 외도를 많이 했다.

첫 번째 결혼은 15살 때 헝가리에 와있던 튀르키예 외교관과 했는데, 부부 관계를 전혀 갖지 않았다. 가보가 처음 성관계를 맺은 사람은 튀르키예의 국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7]다.

미국으로 건너와 칸래드 힐튼 시니어와 두 번째로 결혼했을 땐 양아들이 된 칸래드 니컬선 힐튼 주니어[8]와 가정 내 불륜을 저지르기도 했다. 가보에 따르면 딸 프랜체스커는 힐튼 시니어가 부부강간으로 임신시킨 아이다.

배우 조지 샌더스와의 3번째 결혼 후 도미니카 공화국 외교관이자 레이서였던 포르피리오 루비로사[9]가 가보에게 반해 이혼을 종용했다. 가보가 거절하자 루비로사는 복수로 보란듯이 사교계 명사인 백만장자 바버러 허튼[10]과 네 번째 결혼을 했다가 72일만에 이혼하고 다시 가보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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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조지 샌더스는 두 사람에 대한 맞대응으로 루비로사의 세 번째 아내였던 유명한 담배회사 상속인 도리스 듀크[11]와 맞바람을 피웠다. 샌더스는 뿐만 아니라 자자 가보와 결국 이혼한 뒤엔 오로지 전 아내 자자 가보를 괴롭히기 위해 언니 매그다 가보와 결혼했다가 1년 만에 이혼했다.

가보의 4번째 남편은 금융전문가, 5번째는 석유재벌 후계자, 6번째는 바비 인형 발명가 잭 라이언, 7번째는 변호사였다. 8번째인 멕시코 변호사 겸 배우 펠리페 드 알바[12]와는 7번째 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채로 중혼한 게 밝혀져 바로 다음날 혼인무효가 되었다.

그 이후 만난 게 27세 연하였던[13] 마지막이자 9번째 남편인[14] 독일 출신 사업가 프레데릭 프린츠 본 안할트[15]다. 안할트는 1983년 미국로 오면서 우상이었던 가보를 만나기로 결심했고, 유명인사들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기자에게 뇌물을 주고 가보가 나타날 식당을 알아내 안면을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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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할트는 가보랑 사이가 소원해졌을 때 다시 독일로 넘어가 17살짜리 미스 헝가리와 관계를 가졌는데, 어느 날 이 미스 헝가리가 리도카인[16]으로 자살하고 만다. 유럽의 언론사들은 "안할트가 임신시켜 놓고 책임지지 않겠다고 해 그런 것"이라며 추궁했고, 안할트가 그 유명한 가보와 관계를 가져왔던 남자라는 점 때문에 크게 뉴스거리가 되었다. 안할트는 할 수 없이 유럽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의 가보 곁으로 다시 도망을 왔는데, 가보는 안할트에게 새롭게 관심을 느끼고 언론 인터뷰에서 약혼을 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린다. 안할트는 당황했지만 '1년 뒤쯤 이혼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결혼을 승낙했다고 하는데, 그의 예상과 달리 결혼생활은 가보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안할트는 자자 가보의 어머니인 졸리 가보는 물론 자자 가보의 유일한 딸이었던 프랜체스커 힐튼과도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런데 자자 가보 역시 딸 프랜체스커 힐튼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2005년엔 딸이 지속적으로 노인학대를 했으며 사기를 쳐서 돈을 뺏었다고 법원에 고소하기도 했다. 프랜체스커 힐튼은 어머니 자자 가보에게서 돈과 집을 받은 건 맞지만 어머니가 자발적으로 준 것이라고 맞섰다. 프란체스카는 2015년 1월 자자 가보에 앞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많은 대통령들과 알고 지냈고 리처드 닉슨의 소개로 헨리 키신저와 데이트한 적도 있다.[17] 숀 코너리[18], 리처드 버튼[19], 프랭크 시나트러[20] 등과도 잠자리를 가졌다. 가보가 거절한 사람 중엔 존 F. 케네디진 폴 게티가 있다고 한다.

5. 사망

2002년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2005년엔 뇌졸중에 걸렸다. 이후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면서 엉덩이뼈가 부러져 휠체어 신세가 됐는데 이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걸 싫어해서 말년에도 찾아주는 친구들이 많았음에도 방문을 거절하고 바깥 출입을 극구 삼갔다. 다리를 절단하고 사경을 헤매다 2016년 12월 18일 9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가보의 어머니도 100세까지 장수했던 편이다.

죽기 전에 살던 저택은 하워드 휴즈에게서 구매한 것이었다. 또한 승마를 좋아해 캘리포니아 시미 밸리에 42 에이커, 즉 5만 에 달하는 농장과 40마리의 말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장애인이 되면서 승마는 접은 지 오래인 상태였다.

생전 헝가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던지라, 2021년 안할트의 주선 하에 헝가리에 어머니와 함께 재안장 되었다고 한다.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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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폴란드 배우 루드비카 팔레타[24]가 가보를 연기했다.

[1] 본인은 1930년생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 갔을 때 매그다, 에이버와 함께 나이를 속였다는 셈이다.[2] Gina Kaus.[3] Jane Avril. 1868 - 1943.[4] Mario Lanza. 1921 - 1959.[5] Dämmerschlaf.[6] Lew Wasserman.[7] 많은 위대한 업적을 세운 위인이나 여성편력이 있었다.[8]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첫 번째 남편이다.[9] Porfirio Rubirosa. 1909 - 1965.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린 당대 최고의 난봉꾼이었다. 워낙 유명해 멕시코에 "Rubirosa"(2018)라는 웹 드라마 시리즈까지 존재한다. 가보는 말년까지도 루비로사를 특별하게 생각해서 아끼던 고양이에게 그의 이름을 붙여주었다.[10] Barbara Hutton. 1912 - 1979. 허튼에겐 루비오사와의 결합이 다섯 번째 결혼이었다. 허튼은 케리 그랜트의 두 번째 아내이기도 하다. 그랜트는 허튼의 세 번째 남편에 해당된다.[11] Doris Duke. 1912 - 1993. 독특한 생활 방식과 파란만장한 사건들로 몇 차례 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HBO에서 수전 서랜던 주연으로 영화 <버나드와 도리스(Bernard and Doris)>(2007)까지 제작했을 정도. 제목의 버나드는 도리스 듀크의 집사였으며 후엔 상속인이 된 버너드 래퍼티(Bernard Lafferty)를 가리킨다. 1999년 미니시리즈 "Too Rich: The Secret Life of Doris Duke"에선 로런 버콜이 묘사했다.[12] Felipe de Alba. 1924 - 2005.[13] 다만 안할트도 자신의 나이를 속였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래서 20살 나이차로 많이들 추정하고 있다.[14] 그러나 남편(들)이 더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9번째 남편인 안할트다.[15] Frédéric Prinz von Anhalt. 안할트 공국의 후손인 마리 아우구스테[25]에게 성인 입양을 당하면서 생긴 이름이다. 안할트는 마리 아우구스테의 아들과 친구였는데 이 아들이 갑자기 칠레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뒤 마리 아우구스테의 대리 아들 역할을 자처하다가 1980년 입양 기회를 얻었다. 이후 부동산과 헬스클럽 운영으로 얻는 수익 중 일부를 마리 아우구스테에게 매달 용돈 형식으로 줬는데, 이로 인해 "돈을 주고 작위를 샀다"는 소리를 들었다. 안할트는 그렇게 얻어낸 작위로 다시 돈을 벌어들였다. 기사 작위에 하나당 5만 달러를 쳐서 총 68개를 팔았고, 결혼 한 번에 400만 달러를 쳐서 총 6번을 돈 받고 결혼했다. 일반 대중들에겐 안나 니콜 스미스의 딸이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했던 일로 유명하다. 이는 친자확인 검사를 통해 거짓으로 논파되었다. 안할트는 성관계를 가진 건 맞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16] lidocaine. 국부마취제.[17] 키신저는 캄보디아 공격 때문에 두 번째 데이트 중간에 자리를 뜬 적이 있다고 한다.[18] 가보에 따르면 피부가 매우 부드러웠다고.[19] 침대에서 음란한 얘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20] 가보의 집 앞 진입로에 차를 대서 길을 막아놓고 "한 번만 같이 자달라"고 시위를 벌였다. 가보는 시나트러를 워낙 싫어해서 딱 한 번 관계한 뒤 다신 상대하지 않았다.[21] 하원의장 시절이던 2007년 7월 31일, 일본군 위안부 규탄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하는 데 보탬이 되었다. 의회 연설에서 아예 대놓고 "역사를 부정하고 희생자를 연기하려는 일본의 시도는 역겹다"라고 일갈했다.[22] 나이 든 가보가 이해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가보는 토크쇼나 배우 등 본업에 집중하면서 스캔들을 벌인 것이고, 힐튼은 본업이 연예계가 아니며 오히려 스캔들로 언론의 관심을 끄는 게 1차 목표였다. 힐튼도 똑똑해 이런 어그로와 사업을 연결하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평이 많지만, 연예계 활동 유형이 서로 달랐다는 의미다. 당연하지만 배우업을 살리기 위해 어그로를 끌었던 제인 맨스필드하고도 차이가 있다.[23] double entendre. 문자 그대로의 순수한 의미와 성적 완곡 표현이 동시에 담긴 구절을 사용하는 것.[24] Ludwika Paleta.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