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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국회의원 선거/정당별 결과/새로운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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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지역별 성적
3.1. 수도권
3.1.1. 서울3.1.2. 인천3.1.3. 경기
3.2. 강원도3.3. 충청권
3.3.1. 대전3.3.2. 세종3.3.3. 충북3.3.4. 충남
3.4. 전라도
3.4.1. 광주3.4.2. 전북3.4.3. 전남
3.5. 대경권
3.5.1. 경북
3.6. 부울경
3.6.1. 울산
4. 총선 후

1. 개요

파일:새로운미래 개표상황실.jpg
침울한 분위기의 새로운미래 중앙당 회의실
새로운미래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다.

2. 상세

반 이재명 연대를 구축한다는 목표로 당을 창당했지만 최종적으로 지역구 1석을 얻는데 그쳤는데, 이마저도 당이나 후보 본인의 힘으로 얻은 지역구라기보다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이영선의 등록무효로 인한 어부지리의 결과이므로 실질적으론 궤멸 수준의 냉혹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특히 이낙연 공동대표의 지역구 부진이 뼈아팠다. 이낙연은 민주당 출신 원로로서, 저번 총선까지만 하더라도 민주진영 최대 대권주자로 평가받았던 인물이었으나, 새로운미래 간판을 달고 광산구 을에서 13.84%에 그쳐 선거비 전액 보전조차 받지 못한 채 낙선하였다. 비슷하게 민주당을 탈당하여 소나무당 간판으로 광주 서구 갑에 옥중 출마를 감행한 송영길도 17%를 득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담한 결과며 수도권과 호남을 비롯한 그 어느 지역을 돌아봐도 지지기반을 찾을 수 없으니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이낙연의 낙선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당대표 김종필의 비례대표 1번 낙선 이래 20년 만에 네임드 정당의 맹주가 낙선한 사례이다.

역시 비이재명을 외치며 당을 탈당해 본인 지역구에 출마했던 홍영표, 설훈, 박영순 의원 역시 2위는 커녕 선거비 반액 보전도 못얻는 득표율에 그치면서 체면을 구겼다. 김종민과 이낙연을 제외하면 모두 한 자릿수 득표에 그쳤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를 떨어뜨릴 만큼의 유의미한 표 분산을 일으킨 지역구가 단 한 군데도 없었다.[1]

유일하게 당선된 김종민 의원조차도 민주당 후보의 공천 취소에 따른 국민의힘 후보와의 양강 구도 속에 세종시의 친 민주당 성향을 위시한 정권심판론에 편승한 유세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며, 이로 인해 민주당과의 협력 관계를 끊기 어려워져서 민주당 비주류의 자력생존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2] 실제로 오영환 총괄선대위원장의 선거 결과에 대한 입장표명 회견에서 "(민주당 또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나 복당에 대해서 당장은 어렵지만 당원들의 총의를 협의한 뒤에 고려할 사안"이라고 언급하면서 비대위나 전당대회 관련한 발언보다 흡수통합 관련 논의가 먼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만약에 김종민 의원이 먼저 독자행동을 하여 예를 들면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으로 이적한다든가 하는 변수가 생긴다면, 새로운미래는 그 길로 바로 원외정당으로 전락하여 안그래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지만 아예 미래를 생각할 수도 없는 정당이 된다. 김종민은 지역구(세종특별자치시 갑)로 당선된 것이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탈당 후 다른 당으로 이적해도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는다.[3] 쉽게 말해서 김종민을 빼고 본다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생당의 복사판 수준이다.

이에 대해 결국 4월 16일 김종민 의원은 이같은 상황에 대해 스스로 직접 인정해버렸고 5월중으로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4] 다만 현재 언론에서 나오는 복당, 탈당 등은 억측이라고 밝혔다.

냉정히 말해서, 김종민은 친낙도 아니고, 친노 출신 안희정계였었기 때문에 대표가 떨어져버린 70대 올드보이들이 가득한 정당에 굳이 남을 필요는 없게 됐다. 따라서 반이재명의 효과는 없다고 판단하고, 민주당에 복당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유승민계로 창당했던 새로운보수당이야, 유승민이나 하태경이 현역 의원이였기 때문에 그렇지, 김종민은 이적할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당장 이낙연의 필연캠프에 있었던 박성민 전 청년비서관 또한 민주당에 남았고, 이개호 또한 이낙연의 탈당을 비난하며, 이재명계로 굳어지는 쪽에 가깝다.[5]

비례대표에서도 봉쇄조항 3%을 넘지 못했다. 함께 원내 입성에 실패한 자유통일당녹색정의당보다도 못한 1.7%를 득표했으며[6], 이로 인해 선거보조금도 받지 못했다.[7]

어찌보면 애초에 선거 전략부터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선거는 국민의힘에서 떨어져 나온 개혁신당[8]마저도 본인들을 범야권이라 표명하면서 오히려 민주당보다도 적극적으로 대통령을 비판하고 오히려 조국혁신당과 반윤 경쟁을 벌일정도의 분위기였다.[9] 하지만 새로운미래는 이런 분위기 속에도 반윤보다는 양당혐오와 반이재명에 비중을 두는 메세지만을 반복적으로 내보냈다.

만약 18대 총선 때마냥 정권 심판론이 아주 약했다면 이런 전략이 어느 정도는 유효할 수도 있었겠지만[10], 이번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거센 시기였는데 윤석열보다도 이재명과 민주당에 대한 심판에 더 열중하는 모양새를 보여주었으니[11], 오히려 이런 전략이 역풍이 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것이 바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안철수라고 볼 수 있는데, 문재인의 지지율이 부동의 1위를 달렸던 것과는 별개로 해당 선거의 분위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박근혜 정부의 높은 비토와 그에 따른 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안철수는 여기서 자유한국당을 공격하며 지지율을 빨아들여야 하는 와중에 문재인만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실책을 저지르고 MB 아바타 같은 자폭을 시전하며 해당 대선을 2위도 아닌 3위로 마무리하는 치욕을 겪었는데, 이낙연 역시 윤석열 심판을 외쳤어야 하는 상황에서 윤석열과 싸웠다는 이미지를 전혀 얻지 못했다.

특히 호남권의 경우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토 여론이 높았다보니 그만큼 정권 심판론이 대세였는데, 이 상황에서 반윤 대신 양당 혐오 제3지대 포지션을 잡아버렸으니 당연히 호남에서 박살나는 건 물론이고, 동시에 영남권에서는 아예 관심을 받지 못했다.

호남권과 영남권에서 모두 부진했다면 수도권, 충청권, 강원도는 어떨지 안 봐도 알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전통적 정치 지지기반에서 득표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양당혐오 성향이 강한 2030대에 의존을 할 수밖에 없는데[12],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며 이들의 지지도 받지 못하면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13] 이러한 선거 전략은 당원들에게조차 지지를 받지 못해 미래대연합과의 연대 논의 당시의 당명 논란[14], 공보물 디자인 초안 퀄리티, 비례후보 공천 순번 등의 논란들에 있어 당원들의 반발을 불러오는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창당 당시에는 민주당 내 비명계 지지층의 지지를 노렸으나 개혁신당과의 합당 과정에서 벌어진 내홍과 갈라서기를 겪는 동안 제3지대로서의 대안적 성격도 보여주지 못하여 중도층의 이탈을 불러왔다. 이후에도 당의 명확한 성격과 방향을 유권자들에게 인지시키는 데 실패하면서 '새로운 민주당'이란 포지션을 가져오는 데 완전히 실패했고, 그 결과 지역구 이슈몰이는 커녕 최소한의 국민의 지지(비례대표 봉쇄조항)조차 얻지 못했다. 오히려 이러한 포지션은 이른바 '지민비조', 다시 말해 '지역구는 민주당에, 비례는 조국혁신당에'라는 시그널을 앞세우며 돌풍을 일으켰던 조국혁신당에 빼앗겨 버렸다. 무엇보다 책임위원으로 수도권 선거를 총괄했던 박원석도, '개혁신당과의 합당은 너무 성급했고, 이낙연에 대한 여론과 관련하여서는 정권심판 프레임을 새로운미래가 잘못 읽었다'면서 위와 같은 내용을 모두 인정하였다. (해당 인터뷰)

이낙연계에게 처음부터 탈당의 명분이 부족했다는 의견도 있다. 같은 제3지대 내의 인물로서 대선,지선 승리를 이끌고도 내쳐진 이준석과는 달리 이낙연은 4.7 재보궐선거 참패와 이명박근혜 사면 발언으로 당내 지지층들에 반감이 쌓여온 상황이였기 때문이다.[15]또한 이낙연은 경선 패배와 대선-지방선거 지원 후 사실상 미국에서 잠적하다가 총선을 3~4개월 앞두고 등장한 것이었고, 요구사항이 사실상 이재명 측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통합 비대위, 즉 "이재명 사퇴"였다.[16]

또한, 애초부터 비주류였던 이준석[17]과는 다르게 친문계의 일원으로서 중도층에게서 철저히 외면받아왔던 이낙연[18]이었기에 '제3지대'를 내세울 명분이 없다고도 말이 나왔다.[19]
파일: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로고.svg
연령별 비례대표 투표 정당(단위 %)[KBS]
연령대 더불어민주연합 국민의미래 녹색정의당 새로운미래 개혁신당 조국혁신당
30대 여성 38.2 20.3 5.0 5.9 3.5 23.2

세대별로 보면 30대 여성에서만 5.9% 정도로 유의미하게 얻었을 뿐, 나머지 세대/성별에선 3% 미만으로 저조했다.
파일: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로고.svg
지역구 투표 정당별 비례대표 투표 정당(단위 %)[KBS]
지역구 후보
(→)
더불어민주연합 국민의미래 녹색정의당 새로운미래 개혁신당 조국혁신당
더불어민주당 후보 49.1 2.9 2.4 1.7 2.8 39.2
국민의힘 후보 3.8 78.8 1.3 1.1 3.6 2.6

교차 투표의 양상을 보면 새로운미래의 지지층은 더불어민주당 투표자와 국민의힘 투표자로 거의 반반이다. 양당 모두 비판적인 제3지대 정당으로서 포지션을 잘 보여준 지표이다. 그러나 1%를 넘긴 정당들 중에서 양당 투표층 모두에게 제일 낮은 지지율이다. 새로운미래의 적극 지지층이 너무나도 얇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비례의 경우 이낙연이 출마한 광산구와 이낙연의 고향인 영광군에서 4%를 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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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역별 성적

3.1. 수도권

3.1.1. 서울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종로구 진예찬 1,080 (1.22%) 낙선 (4위)
성북구 갑 유승희 6,934 (5.16%) 낙선 (3위)
강북구 을 이석현 4,672 (5.54%) 낙선 (3위)
강서구 갑 남평오 3,060 (2.77%) 낙선 (3위)
동작구 갑 전병헌 5,626 (4.48%) 낙선 (3위)
그야말로 처참한 성적.

민주당 공천 파동의 반사이익을 노렸던 6선의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은 5%를 간신히 넘겼고 3선 중진의 유승희, 전병헌도 과거 자신들의 지역구에서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민주당의 공천 파동이 생각보다 빨리 수습되어갔기 때문이다. 이는 강북구 을의 중진 의원이였던 박용진 의원과, 오산시의 5선 의원 안민석 의원의 공천 승복이 결정적이였다.[22] 각각 공천이 유리했던 비명계 의원과 친명계 의원들이 낙천을 당한 것이 오히려 결정적으로 새로운미래에게는 최악의 악재였다.

3.1.2. 인천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부평구 을 홍영표 11,399 (8.25%) 낙선 (3위)
홍영표 후보는 현역임에도 8% 정도로 낙선하면서 현역 프리미엄도 누리지 못했다. 사실 홍영표는 인천내에서 다른 후보를 찍겠다는 높은 여론을 읽지 못 했던 모양이다. 따라서 인물론에서도 전혀 앞서지 못 했다.

결정적으로 홍영표가 자기 지역구에서 조차 외면을 받은 이유는 20대 비하 발언, 부평에 있는 자동차공장인 GM노조와의 결별 등의 악수를 연달아 두었기 때문이다.

3.1.3. 경기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부천시 을 설훈 9,087 (6.15%) 낙선 (3위)
부천시 병 장덕천 11,720 (7.51%) 낙선 (3위)
평택시 병 전용태 3,968 (3.75%) 낙선 (3위)
시흥시 을 김상욱 4,909 (3.89%) 낙선 (3위)
하남시 을 추민규 4,017 (4.63%) 낙선 (3위)
용인시 정 이기한 3,308 (2.05%) 낙선 (3위)
전원 10% 미만의 득표율로 낙선했고 특히 지역구 현역이었던 설훈은 5선 중진 타이틀(부천에서는 3선)이 무색하게 6.15%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아래 지역구에 나왔던 전 부천시장 장덕천이 기록한 7.51%보다 낮은 수치인데, 그만큼 설훈에 대한 지역 여론이 상당히 나빴음을 보여준 것.

사실 설훈과 장덕천은 당내에서 이재명을 내내 비난했던 사람이고, 설훈은 아예 대선 경선 때부터 이재명 비난에만 앞섰던 사람이였기 때문에 공천 탈락 부동의 1순위였다.[23] 그리고 나서 이낙연이 창당한다고 시사했을 때 가장 먼저 앞장섰던 사람들이 이 두 사람. 영등포구청장을 역임한 채현일 후보가 영등포구 갑에서 전 국회부의장 김영주를 대파하고 이겼었던 것에 비해서 장덕천은 자신이 시장을 역임했던 부천에서도 외면 받았다.

3.2. 강원도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 갑 조일현 1,402 (1.06%) 낙선 (3위)

3.3. 충청권

3.3.1. 대전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서구 갑 안필용 3,171 (2.34%) 낙선 (4위)
유성구 을 김찬훈 3,124 (3.04%) 낙선 (3위)
대덕구 박영순 5,824 (6.01%) 낙선 (3위)
박영순 후보는 현역이였는데도 불구하고 6%p 대를 득표하며 낙선하였다. 이는 박정현 후보가 전 대덕구청장인 것도 있지만, 그가 첫 당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지역구민들에게 평가가 그리 좋지 못한 탓도 컸다. 그가 대덕 낙선왕이라는 이름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는 부분.

3.3.2. 세종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세종특별자치시 갑 김종민 65,599 (56.93%) 당선 (1위) 3선
김종민 공동대표가 당선되었지만, 민주당 이영선 후보의 후보등록 후 제명 사태로 인한 어부지리에 가깝다. 민주당 후보가 취소되기 전 3자대결 구도에서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후보보다 뒤지는 한자릿수%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민주당이 후보를 유지하거나 더 이른 시기에 사태가 일어나 후보 교체가 일어났더라면 김종민이 당선될 확률은 0%에 가까웠다. 그나마 덕분에 원외정당이 되는 꼴은 면할 수 있었으나 김종민 의원은 당선 초기부터 새로운미래 탈당을 시사했고, 결국 당선 후 5달이 채 안되어 탈당해버리고 만다.

3.3.3. 충북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제천시·단양군 이근규 3,991 (4.24%) 낙선 (4위)

3.3.4. 충남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아산시 갑 조덕호 1,652 (2.10%) 낙선 (3위)

3.4. 전라도

호남에 연고가 있는 유력 정치인이 창당한 당이지만,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의 기반인 호남에서 돌풍을 일으켜 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국민의당과는 정반대로 호남에서 매우 초라한 성적을 얻었다. 공동대표가 호남의 마지막 불씨라고 자칭까지 하였지만, 실상은 국민의힘보다도 못한 표를 받은 지역구가 대부분이다.

사실 호남 전 지역구 공천은커녕 절반의 절반인 25%밖에 못했다는 점부터, 총선 전부터 애초에 호남 지역기반은 존재하지 않았던 수준이라 봐도 무방하다.

3.4.1. 광주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북구 을 박병석 4,674 (3.37%) 낙선 (4위)
광산구 갑 정형호 3,145 (3.46%) 낙선 (4위)
광산구 을 이낙연 17,237 (13.84%) 낙선 (2위) [24]
이낙연 공동대표는 선거비용을 일부 보전받을 수 있는 득표는 받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당대표+대권잠룡으로까지 언급됐던 이낙연의 체급을 감안하면 반액 보전은 매우 극심한 부진이나 다름 없다. 민주당 버전 황교안이라고 해도 다를 게 없다.[25]

그 이유는 바로 소나무당송영길 후보가 광주 서구 갑에 출마해서 17%를 득표하며,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송영길은 옥중 출마로 인해 본인이 직접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음에도 이낙연 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이낙연이 얼마나 전국적으로 비토가 심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부분. 사실 대선 경선에서도 접전패배를 했던 곳이 이곳이였다.[26]

나머지 후보들은 진보당이나 국민의힘에도 뒤질 정도로 표를 못 받았다.

3.4.2. 전북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전주시 갑 신원식 6,594 (6.15%) 낙선 (3위)
익산시 갑 신재용 3,572 (4.66%) 낙선 (4위)
남원시·장수군·임실군·순창군 한기대 2,163 (2.29%) 낙선 (3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네임드 정치인인 이낙연이 창당한 당인데도 익산시 갑에서는 국민의힘진보당에 뒤졌고, 남원시·장수군·임실군·순창군에서는 한국농어민당과 거의 동률의 표를 얻었다.[27]

3.4.3. 전남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담양군·함평군·영광군·장성군 김선우 2,228 (2.06%) 낙선 (4위)
담양군·함평군·영광군·장성군에서는 국민의힘보다 표를 적게 받았다. 특히나 여기가 이낙연의 고향이고 이전에 4선을 했던 걸 생각하면 그 영향력이 이전만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다. 애시당초 전남에서 후보가 김선우 후보 1명이었던 것 부터 인물난이 극심했다는 반증.

참고로 김선우 후보는 저번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11%(!)를 득표했던 인물이다(...). 여러 변수들을 고려해봐야겠지만, 단순 계산으로만 보면 이전의 5분의 1도 안 되는 득표율을 얻은 것이다. 새로운미래 당적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

전남권의 부진에는 이낙연 못지않게(어쩌면 그 이상으로) 전남 서부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힘도 작용했는데, 이낙연이 민주당을 탈당한 직후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자주 비판했고 막후에서는 서부권 조직들을 철저히 단속해 이탈을 막았다.

3.5. 대경권

3.5.1. 경북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상주시·문경시 김영선 3,466 (3.51%) 낙선 (3위)
경북도의회 비례대표 의원을 역임한 김영선 전 도의원이 출마했으나, 한자릿수로 낙선했다.

3.6. 부울경

3.6.1. 울산

선거구 이름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남구 갑 이미영 2,880 (3.09%) 낙선 (3위)
이미영 후보는 울산시 광역의원으로 재선을 지냈고, 재선을 지내던 시기인 7대 울산시의회에서 전반기 부의장을 맡고 저번 지방선거에서 남구청장 후보로 나섰던지라 나름 인지도 있는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한자릿수로 낙선했다.

4. 총선 후

2024년 9월 1일, 결국 유일한 당선자인 김종민이 탈당하며, 새로운미래는 완전히 원외정당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그나마 기초의회의원이나 광역의회의원이라도 있는 정의당과 달리 이들조차도 없기에 정의당보다도 더 암담한 상황이다.

이후 새미래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1] 충북 제천 단양, 울산 남구 갑, 경북 상주 문경은 원래 민주당의 험지이니 논외. 애초에 이곳은 새로운미래의 표 분산이 없었더라도 민주당이 당선되기 어려운 곳이다.[2] 중도층 지지는 이낙연의 중도층 소구력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고, 민주진영 지지층 내 친문 지지도 사실상 없는 수준이며, 민주진영 내 소장파 지지층은 친문이었던 이낙연을 밀어줄 리가 없다.[3] 이는 비슷한 우여곡절을 겪은 개혁신당보다도 못한 처참한 결과인데, 적어도 이준석은 3자 구도에서 당선되었으며, 비례도 2석 건짐으로써 22대 국회에서 자력생존은 가능하다는 게 증명되었기 때문이다.[4] 상황은 다르지만 만약 김종민 의원이 새로운미래를 탈당하고 다른 정당으로 간다면 과거 한겨레민주당의 재림이라 볼 수 있다.[5] 국민의당-민생당 인사들이 딱 그러했는데, 어디까지나 이재명이 대사면을 해줬기 때문에 복당이 가능했다. 그 것도 어디까지나 친문들과의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해 탈당해서 차린 거였고, 당내 기조가 바뀌면 언제든 복당이 가능했지만, 새로운미래는 아예 이재명이 사라지던 말던 두 번 다시는 민주당에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나간 사람들이 많기에... 복당을 하더라도 시간이 꽤 흘러야 가능할 것이다.[6] 후술할 그 진보신당보다 겨우 0.5%p 이상 높다. 참고로 공교롭게도 이 정당 내부에도 오현주 등 진보신당 출신 인물이 있다.[7] 선거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최소 조건은 지역구 득표율과 비례대표 득표율의 합이 4%를 넘거나, 직전 선거(여기선 지방선거)에서 0.5%p 이상 받아야 한다. 새로운미래는 신생정당이니 전자를 만족해야 되는데, 문제는 지역구 득표율과 비례 득표율을 합쳐도 4%를 못 넘는다.[8] 실제로 이준석 대표도 당선 인터뷰에서 3년 후 대권 도전을 묻는 질문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정말 3년 뒤 대선이 확실하냐는 식으로 대답했으며, 다른 인터뷰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에 지고도 바뀌는게 없을 것 같다는 회의적 의견을 내기도 했다. 게다가 천하람 후보의 경우 선거기간 중 아예 대놓고 탄핵 가능성을 언급하기까지 했다.[9] 물론 비판하는 핀트는 조금 달랐다. '검찰독재' 주장보다는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이 소극적이었던 다른 부분들을 파고들었다.[10] 실제로 18대 총선당시 진보 제3지대를 표방한 진보신당이 18대 총선 때 원외가 되긴 했지만, 당시 세부 결과만 보면 망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심상정노회찬이 불과 한자릿수 격차로 석패하고, 비례도 2.94% 정도로 봉쇄조항에서 아슬아슬하게 모자랐기 때문이다.[11] 이로 인해 윤석열과 한패가 아니냐는 의혹이 더 심해졌다. 그러나 오영환 총괄선대위원장이 "우리의 주적은 민주당이 아닌 윤정부"라고 하고, 이낙연 공동대표가 창당이 야권확장을 위한 거라고 말하는 등 반윤이 컸다는 의견도 있다.[12] 실제로 2030대는 선거 막판까지 부동층 비율이 꽤 있었다. 만약 이들의 지지세를 제대로 잡았다면 적어도 비례에서라도 이정도 결과까진 안 왔을 것이다. 하지만 출구조사 기준 2030대 남성은 2%도 안되었으며, 20대 여성에서도 2%에 그쳤으며, 30대 여성인 경우는 20대 여성에 비해 높았긴 하나, 6% 내외에 그쳤다. 이는 정반대로 2030대 남성에서 높고, 2030대 여성에서 낮긴 하지만 남성에선 각각 17%(!), 10% 정도 받고, 여성에서도 3%대 정도의 지지세를 받아서 비례 입성을 성공한 개혁신당과는 매우 상반된 결과다.[13] 참고로 녹색정의당도 이렇게 선거 전략을 잘못 짜서 망했다.[14] 미래대연합 측의 의견과 요청으로 연대 논의 당시 초기 당명이 개혁미래당이였는데, 약칭을 개미당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정해 반발이 일었다.[15] 다만 지지층 반감이라면 이준석 또한 해당되기에 애매한 부분이다.[16] 새로운미래와 달리 어느 정도의 수확을 얻었던 이준석의 개혁신당과 비교해 보면, 이준석은 본인의 잘잘못을 떠나 어쨌든 윤석열이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던 데다가(대표적인 게 윤석열-권성동 텔레그램 논란), 또한 이낙연이 이재명에게 했던 비판보다 더 자세하게 윤석열 정부와 친윤 중심 국민의힘에 고언을 했다.[17] 친박과 멀어진 이후 주류에 들어갈 일은 없었다...[18] 사실 사면 발언도 이 때문에 내놓은 것이라는 추측이 많지만... 오히려 지지층의 이탈만을 불러왔다[19] 그 예로 2020년 총선 소수정당에게 피해를 준 꼼수인 위성정당 창당 당시 중대한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 있다.[KBS] [KBS] [22] 그 외에도 노웅래 의원 등이 승복했다.[23] 그래도 시정이나 지역구 관리라도 잘 했다면 중도, 비명 성향 민주당 지지층의 인정이라도 받았을텐데 이 둘은 부천 내에서 평이 가장 안 좋은 축에 속했기 때문에 탈당하고 독자출마 했음에도 지지율 흡수에 실패, 본인들의 경쟁력 자체가 부족했음을 드러냈다.[24] 선거비용 반액 보전[25] 재밌게도 이낙연과 황교안은 21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 후보들로 맞붙은 적 있다.[26] 당시 광주.전남 통합 경선에서 광주에서는 접전패했으나 전남에서 이를 뒤집으면서 그나마 총합으로 승리했는데, 이마저도 과거 자신의 기반이었던 서부 전남의 조직력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이낙연의 뒤를 이었던 친낙 대표인물 이개호는 이낙연의 탈당을 비판하면서 사실상 친명으로 돌아섰다.[27] 애당초 광주.전남과는 다르게 전북은 이낙연과 그닥 접점이 없는 편이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도 이낙연이 접전승한 광주.전남과 달리 전북은 무난하게 이재명이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