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P. 루카스 John P. Lucas | |
본명 | 존 포터 루카스 John Porter Lucas |
출생 | 1890년 1월 14일 |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커닐스빌 | |
사망 | 1949년 12월 24일 (향년 59세) |
미국 일리노이주 그레이트레이크스 해군기지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소장 |
복무 기간 | 1911~1949 |
학력 | 미국육군사관학교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웨스트버지니아주 커닐스빌에서 태어났고 1911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기병 소위로 임관했다.[1] 임관 1년 뒤 포병으로 전과했으며 판초 비야를 쫒는 원정대에 참전했다. 1차 대전당시 제33보병사단 예하 포병연대에 있었으며 아미앵에서 독일군 포탄에 부상을 입었다. 전시계급 중령까지 올랐다.전후 원 계급인 대위로 환원했고 미시간 대학교 학군단 훈육관으로 복무하다가 야전으로 복귀해 여러 보직을 거치고 지휘참모학교를 수료한 후 콜로라도 농업 칼리지 학군단 군사학교수로 재직했다.
1930년 야전으로 복귀했고 육군전쟁대학을 수료하고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1940년 대령으로 진급했다. 1년 뒤 준장으로 진급하고 제2보병사단 포병여단장으로 있다가 얼마 안 가 제3보병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소장으로 진급했고 그가 속한 3보병사단은 제3군단편제에 들어가 조지아주에 있는 포트 베닝에서 훈련을 마치고 이탈리아 전선에서 제6군단의 지휘를 받았다. 안치오 상륙작전당시 상륙에 성공 후 구스타프 라인 후방으로 상륙해서 당황한 독일군이 로마 북서쪽으로 후퇴하는게 만드는 것이 임무를 받았으나 전진은 커녕 모든 병력과 장비를 비좁은 교두보를 강화시키는데 투입했다.
하지만 독일군이 배수펌프를 멈춰 습지대가 바닷물에 침수돼버렸고 미군은 분지에 고립되었다. 그리고 고지대의 독일군은 4주 동안이나 고립된 미군에게 포탄을 쏟아부었다. 이에 책임지고 해임되었으며 루시안 트러스콧이 후임으로 들어왔다. 이후 4군부사령관으로 있다가 종전을 맞이했다.
이후 중국에서 군사고문관으로 있었고 5군 부사령관으로 있다가 1949년 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