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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1:50:46

청량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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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
청량읍
靑良邑 | Cheongnyang-eup
<colbgcolor=#009a44><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울산광역시
기초자치단체 울주군
행정표준코드 3730179
관할 법정리 9리
하위 행정구역 32행정리 213반
면적 59.95㎢
인구 18,699명 [1]
인구밀도 311.9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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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 울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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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신덕하3길 5 (상남리 595-7)
청량읍 행정복지센터
1. 개요2. 역사3. 지역 특징4. 행정 구역
4.1. 동부권(읍내권, 행정복지센터 소재지)
4.1.1. 상남리4.1.2. 덕하리4.1.3. 용암리4.1.4. 동천리4.1.5. 중리4.1.6. 개곡리
4.2. 서부권(군청 소재지)
4.2.1. 율리4.2.2. 삼정리4.2.3. 문죽리
5. 시설
5.1. 주거시설5.2. 상업시설5.3. 교육시설
6. 교통
6.1. 철도6.2. 일반버스6.3. 직행버스6.4. 급행버스6.5. 지선버스
7.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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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동남부 및 중심부에 위치한 이다. 울주군청 소재지임에도 불구하고 울주군의 모든 중에서 인구가 가장 적다(개깡촌----).

2. 역사

삼국시대부터 조선초기까지 청량촌으로 불렸던 지역이었다. 청량(淸凉→靑良)이라는 지명은 신라 선덕여왕자장율사당나라 청량산-원래 이름은 오대산(五臺山)으로, 태화강, 태화루 등 명칭의 유래인 태화지(太和池)가 있던 산이다.-에서 수도하다 문수보살을 만나 진신사리석가모니가 입었던 가사를 가지고 돌아와 이곳에서 수도하였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신라 불교의 성지인 영축산[2]을 남암산(南巖山)# 또는 청량산(자장 율사가 수도하던 청량산이라는 이름이 전파)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청량’은 청정 도량을 뜻하는 불교적 지명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문수산 아래의 율리에서 영축사지가 발굴되었다.

조선 초기에 청량리로 있다가 조선 후기인 1672년에 남면(南面, 현재 남구 전역[3]울주군 청량읍, 온산읍, 온양읍, 서생면) 청량리에서 청량면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19세기 초에 울산-기장 간 도로를 기준으로 청북면(靑北面)과 청남면(靑南面)으로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쳐졌다.

1895년에 동래부 울산군 청량면이 되었다가, 1년 후에 경상남도 울산군 청량면이 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에 사방동, 목도동, 처용동, 신기동, 달포동, 산하동(현 온산읍 처용리, 방도리 일부, 학남리, 산암리)이 온산면에 편입되었고 웅촌면 신리동(현 청량읍 중리 일부)이 청량면에 편입되었다.

1962년에 두왕리(현재 남구 두왕동)가 울산시에 편입되었다.

1975년에 용암리, 학남리가 온산면(현 온산읍)에 편입되었다.

1985년, 울산시에 구제가 도입되었다. 이 때에 울산시에 편입된 두왕동남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7년에 용암리가 청량면에 환원되었다.

1995년에 울산시와 울산군이 통합하면서 울주구 청량면이 되었다가, 1997년 울산광역시 승격으로 울주군 청량면이 되었다.

2017년 12월에 남구 옥동에 있던 울주군청이 율리로 이전해 오면서 군청소재지가 되었고, 이로 인해 2018년 4월 1일에 청량읍으로 승격되었다.울산 울주군, 군청 소재지 청량면 '읍' 승격

3. 지역 특징

남구와 접한 덕하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산지지형으로 되어있고,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산은 문수산(해발고도 600.1m)이다.

크게 '덕하'로 통칭하는 동부권인 읍내, 그리고 서부 율리에 울주군청을 중심으로 약간의 아파트촌과 상권이 조성돼 있다. 동부의 상남리와 서부의 율리는 각각 청량읍 서쪽, 동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청량읍 자체가 동서로 긴데다 산이 그 사이에 있어서 같은 읍 소속이 맞나 싶을정도로 분위기와 생활권이 매우 다르다. 윗동네 범서읍도 중심지가 나뉘어져 있긴 하지만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고 서로를 이어주는 대중교통도 잘 되어있는데 상남리와 율리는 차편도 많이 없을 뿐더러 배차시간도 길기 때문에 왔다갔다 하기 쉽지 않다. 차량으로 청량로를 타면 10분 내로 도착이 가능하겠지만.모든 사람이 차가 있는건 아니다 쌍용(삼정리)은 이 두지역의 딱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모두 10분 이내로 오갈 수 있지만 버스가 많이 없다는 게 흠이다.

청량읍 자체가 전체적으로 남구를 서남쪽에서 감싸는 형태라 남구에 생활권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덕하로 통칭되는 상남리와 울주군청이 위치한 율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사실상 미개발 지역이나 개발제한 구역에 더 가깝다.

4. 행정 구역

4.1. 동부권(읍내권, 행정복지센터 소재지)

4.1.1. 상남리

상남(上南)이라는 지명은 상창(上倉)과 남포의 한 글자씩 따왔다. 한때 상창과 하창(下倉) → 화창(華倉)[4]이라는 세곡 창고가 있던 곳이었다.

북쪽 두왕동 경계에 동해선 덕하역과 청량읍행정복지센터가 있다. 이 덕하역 앞에 매달 2일, 7일에 덕하5일장이 열린다. 이 덕하역, 덕하시장에서 유래되어 울산시민들에게 통칭 덕하라고 불린다. 행정리로 신덕하1리, 신덕하2리 일대다. 사실 덕하시가지, 덕하시장, 덕하역, 덕하공영차고지 모두 덕하리가 아닌 상남리에 있고, 울산차량사업소(덕하기지)만 진짜로 덕하리에 있다. 애초에 현지인들도 상남리와 덕하리를 딱히 구분하지 않는다.

청량중학교가 위치해 있으나, 덕하리와의 경계에 있다.

상남리에서 버스로 10~15분 정도면 공업탑으로 갈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은데다가 온산공단과도 그렇게 멀지 않다보니 온산공단에서 일하는 미혼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원룸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덕신, 남창 방향으로 가는 버스보다 공업탑 뱡향으로 버스가 더 많다 보니 사실상 공업탑 생활권에 가깝다. 버스가 워낙 발달하다 보니 덕하역도 동해선 광역전철이 개통되기 전까지는 이용객이 계속 줄고 있었다.

현재는 서부권이 개발되며 읍내 주민 비중이 약 33%지만, 1998년에는 무려 55.1%였던 지역이었다.

4.1.2. 덕하리

읍내의 별칭인 '덕하(德下)'가 유래된 지역으로, 하정(下亭)과 덕정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1935년까지 이 지역의 중심지던 곳이다. 그러다가 1935년에 덕하역이 청량천 동쪽인 상남리에 세워지면서 소재지명과 다르게 당시 면사무소 소재지인 덕하리에서 따온 덕하역으로 정해지고 역 일대가 발전하면서 그 일대로 청량면사무소(現 청량읍 행정복지센터)와 덕하시장까지 이전하며 발전하게 되었다. 반면에 덕하역 옆으로 읍내 이동으로 면사무소와 시장을 잃은 덕하리는 동해고속도로(청량IC)와 14번 국도가 있고 읍내 유일한 초등학교인 청량초등학교, 울산차량사업소만 빼면 별 볼일 없는 시골 마을이 되었다. 그나마 초등학교만 이전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교육 중심지라는 게 위안거리다.

4.1.3. 용암리

용과 관련된 지명인데 대천못의 용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처용 전설의 처용암이라는 설이 있다. 처용 전설에서 언급되는 망해사가 율리에 있으며, 청량읍 전체가 외황강(청량천) 유역이다.

동해선의 지선이자 화물노선인 울산신항선 용암역이 있는 곳이다.

4.1.4. 동천리

과거에는 양천(梁川)으로 불리었던 지역이다. 양천이라는 지명은 현재도 마을 이름으로 남아 있다.

2027년 이후 옥동에 있는 군부대가 이전될 곳이다.

남쪽 끝에 있다 보니 덕하역보다 망양역이 더 가까운 지역이다.

4.1.5. 중리

조선 전기 때 양천리(현 동천리)에 속했던 지역이었는데 그 때 양천리의 중간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중리(中里)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는 회야댐으로 인해 인구가 아예 없는 지역이다.

4.1.6. 개곡리

지명은 개산과 진곡의 한 글자씩 따왔다.

청량읍 가운데에 있는 지역. 남북으로 길쭉한 형태라 남쪽 끝이 덕하역 부지에 들어가 있으며, 신울산전력소가 있다.

4.2. 서부권(군청 소재지)

4.2.1. 율리

지명은 율현마을에서 따왔다.

웅촌로를 통해 남구 무거동과 울주군 웅촌면, 양산시 웅상, 부산 노포동을 이어주는 길목 역할을 하는 서부권의 중심. 그래서 시내버스 율리공영차고지가 있으며 인근에 2017년 울주군청이 이전하였다. 부산-양산-울산 광역철도도 율리에 정차할 예정이다.

청량율리보금자리주택지구가 지정되어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다. 또한 울산시민들이 즐겨찾는 문수산의 등산로 입구 중 가장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청량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문수산 바로 아래에 있는 지역이라서 한때 울산 불교의 중심지였기도 했다.

산들이 두 지역을 나누고 있어서 읍내 쪽보단 무거동이나, 양산시 소속인 웅상에 가는 게 더 편하다.

율현마을에는 등산객들이 하산 후 즐겨찾는 막걸리 한잔에 정구지찌짐을 파는 국시집들이 즐비하다.한 집만 장사 잘 되는건 함정. 맛은 그저 그런데.. 이 곳은 사실상 남구 무거동 생활권이라고 봐야한다.

4.2.2. 삼정리

반정(盤亭)과 상정(上亭), 신정(新亭) 마을이 있다고 해서 삼정(三亭)이 되었다.

반정삼거리를 통해 진입할 수 있는 '쌍용하나빌리지'라는 아파트 단지와 (통칭 쌍용) 몇몇 작은 시골마을을 제외하면 싹다 미개발지역이다. 쌍용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버스를 타고 10~15분이면 남구 무거동이나 율리, 또는 웅촌에 도착할 수 있어서 무거동 생활권인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951번 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하여 웅촌초등학교쪽 시가지를 이용하는 주민도 간혹 있다. 웅촌쪽이라 별거 아닌거 같지만 맛집이랑 프렌차이즈 식당이 꽤 있다.

4.2.3. 문죽리

지명은 수문에서 ‘문(文)’, 죽전에서 ‘죽(竹)’을 따왔다.

울산구치소와 농업용수를 저장·공급하는 수문저수지가 있는 곳이다.

5. 시설

5.1. 주거시설

5.2. 상업시설

5.3. 교육시설

6. 교통

6.1. 철도

6.2. 일반버스

6.3. 직행버스

6.4. 급행버스

6.5. 지선버스

7. 출신 인물


[1] 2023년 7월 주민등록인구[2] 양산시와의 경계에 있는 영축산이 아니라 문수산(의 부봉 영취산)을 가리킨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반구대 암각화 문서 참고.[3] ‘두모악 - 울산역사문화대전’ 문서에 발췌된 1609년(광해군 원년) 울산도호부 호적대장에 남면 대대여리(大代如里)가 있고, 현 남구 해칠방(海七坊, 바닷가 7마을)으로 설명한다.[4] 사실 화(華)는 일제 잔재다. 왜나라 항목의 '당인'(唐人) 부분 및 당인 항목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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