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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02:07:19

폐후

1. 개요2. 폐후가 된 이후의 삶3. 유럽 왕실에서4. 폐후가 된 인물
4.1. 한국
4.1.1. 신라4.1.2. 고려4.1.3. 조선
4.2. 중국
4.2.1. 전한4.2.2. 후한4.2.3. 서진4.2.4. 당4.2.5. 송4.2.6. 요4.2.7. 금4.2.8. 원4.2.9. 명4.2.10. 청
4.3. 유럽
5. 폐후가 될 뻔한 인물6. 가공매체

1. 개요

폐후()는 황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행위, 또는 그렇게 된 황후를 말한다. 왕비의 경우는 폐비()라고 한다.

폐후(폐비)가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남편인 군주가 폐위되면 같이 폐출[1] 2. 군주에 의해 폐출(본인이 죄를 짓거나 후사를 보지 못하거나 정치적인 이유 등등)[2] 3. 아버지가 죄인이 되거나 친정이 죄로 인해 몰락할 경우[3]

2. 폐후가 된 이후의 삶

황후 또는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폐서인이 되었다는 것 자체로, 사실상 죽은 것만도 못한 사람 취급이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폐비는 중죄인 취급이라 사사로이 재물을 축적하기는커녕 밖을 나다니는 일조차 조심해야 했으며, 궐에서 간혹 의복과 음식을 보내주기도 하였으나 임금의 미움을 받은 폐서인에게 온정을 베푸는 일을 다들 꺼렸음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폐비 소생의 왕자녀는 궁궐에 계속 남아야 했는데 어머니가 폐출된거지 그 자식들은 폐출되지 않은 왕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그들의 처지는 참으로 기구해진다. 다만 왕자는 새로 들인 왕비에게서 더 이상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왕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연산군의 경우 폐비 윤씨의 소생임에도 이복 남동생 진성대군의 나이가 어린 바람에 더 정통성 있는 동생을 제치고 왕이 되었다. 결국엔 쫒겨났지만...

3. 유럽 왕실에서

원래 폐비·폐후는 한자권에만 존재한 단어이기에 유럽 왕실은 대응되는 단어가 없고, deposed queen(폐후는 deposed empress)을 대체 번역어로 사용하고 있다.

유럽 왕실은 귀천상혼제로 인해 왕실, 통치 가문끼리 결혼했고, 가톨릭의 영향으로 어지간한 이유[4]가 아니라면 혼인무효[5]가 불가능했기에 폐비/폐후가 존재하지 않았거나 혼인무효로 왕비·황후가 아니게 되었다 해도 재혼이 제한적으로 가능했고 동양처럼 중죄인 취급을 받는 것도 아니였기에[6] 동양권의 폐비·폐후 개념과 완벽히 대응되지 않았다.

유럽 왕실의 왕비·황후는 재혼할 시 재혼 상대가 군주가 아닌 일반 귀족이라면 왕비·황후(선왕비·선황후) 작위를 내려놓아야 했고, 군주였다 해도 해외의 군주였다면 자국의 왕비 작위를 내려놓고 해외의 왕비가 되어야 했다.

4. 폐후가 된 인물

4.1. 한국

4.1.1. 신라

4.1.2. 고려

4.1.3. 조선

4.2. 중국

중국은 고대사까지 폐출된 황후들은 "폐후" 라고 칭하기보다 남편의 시호를 인용한 XX황후라는 식으로 표기했다. 따라서 폐후나 그냥 황후로 기록된 경우는 남편의 시호조차 없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

4.2.1. 전한

4.2.2. 후한

4.2.3. 서진

4.2.4.

4.2.5.

4.2.6.

4.2.7.

4.2.8.

4.2.9.

4.2.10.

4.3. 유럽

상기 서술한 것처럼 혼인무효와 군주가 아닌 귀족과의 재혼으로 황후(왕비)가 아니게 되었다고해도 동양의 폐후(폐비)와 완벽히 대응되지 않았다. 따라서 본 문단은 동양권과 비교해서 엇비슷하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을 추천한다. 그나마 폐비로 볼 수 있는 인물도 앤 불린과 캐서린 하워드.

5. 폐후가 될 뻔한 인물

6. 가공매체


[1]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 연산군의 왕비 폐비 신씨, 광해군의 왕비 폐비 류씨[2] 성종의 1계비 폐비 윤씨, 숙종의 1계비 인현왕후 민씨 등[3]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 신씨 등[4] 부부성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내지는 남편이나 부인 중 하나가 성 기능에 문제가 있어 2세를 가질 수 없다.[5] 이혼이 아니라 혼인무효다. 자세한 것은 혼인성사 참조.[6] 본문에 서술된 것처럼 아라곤의 캐서린처럼 지저분하게 이혼해서 원한을 산 것이 아닌 이상 전 왕비가 재혼을 하지 않아도 우대 및 존중해주는 경우도 많았다.[7] 김순정의 부인이 그 유명한 수로부인으로 그녀가 삼모부인의 어머니라는 추측이 있다.[8] 연덕궁주이자겸의 3녀로, 언니가 인종의 모친순덕왕후 이씨이다.[9] 복창원주이자겸의 4녀로, 둘째 언니가 인종의 모친순덕왕후 이씨이다.[10] 1699년에 신원되었다[11] 무덤도 문종의 능인 현릉(동구릉 내)으로 옮겨짐[12] 정확히 말하면 문종(당시 왕세자)의 후궁→문종(당시 왕세자)의 세자빈→사후 현덕빈→문종 즉위 후 현덕왕후로 추존→사육신 사건 이후 폐비→중종 때 현덕왕후로 복위[13] 즉, 삼불거(三不去)에 해당이 되어 복위된거지 무혐의로 인해 복위된 것은 아니다.[14] 효무황후가 무제의 고모인 관도공주의 딸이다.[15] 유회라고도 하며 환제의 동생[16]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초대 황제.[17] 동대제국 황제 소비에슈의 일개 정부에 불과했으나 임신을 하면서 나비에를 제치고 황후가 됐지만, 부족한 자질과 안하무인인 성격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결국 황후가 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재판에 회부된다. 이 재판에서 그동안 저지른 악행과 도망 노예 출신임이 폭로되면서 정식으로 폐위된다. 재혼 황후에서 공식적으로 판명된 유일한 폐후.[18] 나비에의 경우 소비에슈에게 이혼당한 후에 서대제국의 황후가 되었지만 동대제국 한정으로 보면 폐후가 맞다.[19] 서대제국의 선왕비로 공식적으로 폐위된 건 아니지만 시동생인 하인리를 유혹하려다가 실패하고 이로 인해 평판이 추락하자 자신을 하인리의 정부로 삼아달라고 요구하는 전대미문의 추문을 일으켜, 국무회의까지 열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거짓말이 모두 드러나면서 황궁에서 쫒겨나 컴프셔 저택에 유폐되었으니 사실상 서대제국의 선왕비는 물론 왕족이라는 직위 자체에서 폐위된 거나 다름없다.[20] 전생 한정. 회귀하고 난 현생에는 자신과 가족들의 인생을 망친 자들에게 복수하고 사경행과 결혼해 대량의 황후가 되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21] 후일 다시 왕비로 복위된다.[22] 중종의 정비 단경왕후를 모티브로 한 인물.[23] 아들과 함께 목숨을 보존하는 대신 출궁을 하여 후궁이었던 은고가 황후가 되었다.[24] 다행히 5년후에 다시 황후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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