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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설립일 | 1949년 | |||
상급기관 | 경찰청 (警察庁) | |||
정원 | 936명 | |||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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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거 내 황궁경찰본부 청사(구 추밀원 청사) |
1. 개요
황궁경찰본부([ruby(皇宮警察本部, ruby=こうぐうけいさつほんぶ)])는 황족 등의 경호, 황거의 경비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본래 궁내성 소속으로 만들어져 2차대전 종전 이후 일제의 기존 무력 집단을 해산시킨 미군정에 의해 내무성으로 이관되어 일본 경찰청 소속기관이 되었으나 이곳에 소속된 황궁호위관은 경찰공무원과 별도의 신분을 갖고 있으며,[1] 사실상 경찰과는 별개 기관으로 존재하고 있다.2. 역사
2.1. 일제시대
메이지 유신 초기에는 일본 제국 육군의 근위대에서[2] 황궁을 전담했으나, 1878년 근위포병대대 등이 무장반란을 일으킨 다케바시 사건을 계기로 1881년 1월 궁내성에 문부(門部)를 설치하고 천황 친위세력인 토츠가와 향사를 대거 채용해 황거 내부를 맡으면서, 육군 근위대를 외곽 경비로 돌렸다.[3] 이어 1881년 6월에는 궁내성에 소방과를 신설해 기존에 경시청이 맡고 있던 소방 업무까지 흡수하여 황거 내부의 물리력을 궁내성이 독점하였다. 1886년 2월, 궁내성하에 황궁 경비 및 소방 업무를 전담하는 주전료(主殿寮)를 신설하고 동년 5월 주전료에 황궁경찰서(皇宮警察署)가 설치되어 기존의 문부/소방과 조직을 흡수통합함으로써 성립이 일단락되었다.1907년 10월에는 황궁경찰서가 황궁경찰부(皇宮警察部)로 확대 개편되었고, 1921년 10월에는 주전료 소속에서 궁내부의 대신관방[4]로 이관되었다(궁내성 대신관방 황궁경찰부). 1923년 4월 근접경호를 전담하는 특별경위과가 설치되어 특별경위과원들만 권총 휴대하도록 했다. 1927년 4월 분견소(現 호위서의 전신)가 설치되었고, 1932년 6월 5·15 사건을 계기로 일반 황궁경찰관도 권총을 휴대하도록 규정되었다. 1941년 4월, 궁내성에 경위국이 설치되면서 황궁경찰은 대신관방에서 경위국 소속으로 이관되었다.
종전 후 폐지되는 일본 제국 육군에서 근위사단만은 존속시켜 추후 재무장시 근간으로 삼으려는 의도에서[5] 일제 군부가 1945년 9월 궁내성 소속 내부부국으로 금위부를 만들고 근위사단의 1개 연대 병력(4천 명)을 궁내성으로 이관시켜 금위부 황궁위사총대로 개칭할 때, 황궁경찰 또한 금위부로 이관되어 황궁경찰부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을 완전히 비무장화하려는 맥아더의 지시로 1946년 4월 금위부가 폐지되고 근위연대(황궁위사총대)는 완전히 해체되었는데, 이때 황궁경찰부는 궁내성 황궁경찰서로 원상복구되었다.
2.2. 종전 이후
근위사단을 궁내성으로 이관해 '경호기관'이란 명목으로 존치하려던 일제 군부 때문에 GHQ는 더욱 철저하게 일제시대 무력 집단을 해산시키게 되었고, 궁내성 황궁경찰서 또한 법제상으로 폐지되어 쇼와 21년(1946년) 칙령 제628호 경시청황궁경찰부설치제(警視庁皇宮警察部設置制)에 의거 1947년 1월 1일부로 새롭게 내무성 경시청 황궁경찰부가 설치되었다. 다만 칙령 부칙에 따라[6] 실제로는 기존 궁내성 황궁경찰서가 그대로 황궁경찰부로 이행했다. 이때 황궁경찰 직원의 직명 또한 '황궁경찰관' 에서 '황궁호위관'으로 바뀌었으나, 정작 천황 등 황족의 근접경호 임무는 궁내성 시종직으로 이관되었다. 제국 일본 시절 자신들의 하위 기관쯤으로 여겼던 경찰에 예속되고, 핵심 임무인 근접 호위 업무를 박탈당한 것이었다.그러나 1947년 베를린 봉쇄 이후 본격적으로 냉전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1948년부터 일본의 재무장이 시작되고, 황궁경찰도 그 위상을 일정 부분 회복하게 되었다. 1948년 3월 旧경찰법 시행으로 경시청이 도쿄도의 지방경찰(자치경찰)이 되자 황궁경찰은 국가지방경찰본부(국가경찰)로 이관되었고, 궁내성 시종직으로부터 다시 근접경호 임무를 인수했다. 1948년 6월에는 황궁경찰국(皇宮警察局)으로 개칭되었으며, 12월에는 황궁호위관이 특별사법경찰관리로 지정되었다. 1949년 1월에는 국가지방경찰본부의 내부부국인 황궁경찰국에서 외청격인 황궁경찰본부(皇宮警察本部)로 승격되면서 사실상 독립된 경호기관이 되었다.
1952년 12월 황궁경찰음악대, 1953년 6월에는 황궁경찰학교가 설치되어 신입 황궁호위관의 교육부터 각종 보수 교육까지 경찰에서 독립하여 황궁경찰본부 자체적으로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1954년 7월 新경찰법 시행으로 국가지방경찰본부에서 경찰청으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동년 9월 황궁경찰행진가를 제정했다. 1960년 6월 근접수행 및 경호를 맡는 시위관을 설치하고, 1973년 4월 호위부를 설치하여 1977년 12월부터는 황거 내부에 거주하는 황족 이외의 황족에 대해서도 상시 호위를 하기 시작했다.
3. 조직
- 황궁경찰본부
조직 정원은 936명이며, 이중 896명은 황궁호위관으로 특별사법경찰관리이다. 제복 등은 경찰과 유사하나 옷깃에 별도의 표식이 붙는 등 약간의 차이가 있다.
소방 업무도 담당하고 있으며, 지척에서 경호를 맡는 직원들은 시위관(侍衛官)이라고 한다. 황족들의 취미에 어울릴 수 있게 교양 교육도 받는다.
황궁호위관의 최고 계급은 황궁경시감으로 일본 경찰 최고계급인 경시총감 바로 아래의 경시감에 해당하며, 한국의 치안정감(경찰청 차장)에 상당한다. 인원 규모에 비해서는 황족에 대한 사무를 보는 점을 반영한 높은 계급이다.
전국의 일본 황실 소속의 사적지 등도 이곳에서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다.
4. 문제
황궁경찰은 그동안 사내 절도, 불륜, 갑질 그리고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한 각종 범죄 등 문제가 제기된 적 있었으나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지 않았다.2022년 6월 말 주간지 보도를 통해 황궁경찰의 알려지지 않은 부패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경호 대상인 황족들에 대한 비방 중상/악의적 비하[10], 수상한 중국인이 일반인 통제구역인 궁내청 본청 건물에 들어와 1시간 이상 활개치는 걸 경찰이 보고서도 무시한 점[11], 황족의 사적 스케줄을 몰래 친한 기자에게 넘겨주는[12] 등 각종 사건사고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해당 기사를 본 많은 일본인들은 충격을 받아서 황궁 경찰 무용론 혹은 대대적 쇄신론을 주장하고 있는 상태이나 황궁경찰의 현장 책임자급 인물마저도 아이코 공주를 망할 꼬맹이라고 대놓고 부르는 등[13] 이미 황궁 경찰 전체의 분위기가 개판인 상황이라서 거의 해체 수준의 쇄신이 아니고서는 개선 자체가 어렵고 그렇다고 무작정 황궁경찰을 해체할 경우 어차피 황족 경호 업무는 경찰이 보는 게 관례화되었기에 결국 이름만 다른 황궁경찰이 생기는 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기사가 나간 다음 경찰 캐리어 간부 등이 긴급 대책회의를 하고 그 후에 아키시노노미야 저택으로 찾아가서 사과했다고 보도되었는데 이에 대해서 일본 네티즌들은 궁내청이고 황궁 경찰이고 천황 내외를 무시하고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을 우대하는 지 모르겠다는 등 다소 날선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5. 제복
황궁경찰관 제복황궁경찰관 제복2
[1] 채용, 승진, 보직, 퇴직까지 전부 자체적으로 이뤄진다.[2] 추후 근위사단으로 확대되는 그 부대의 모체이다.[3] 5.16 군사정변 이후 대한민국 제3공화국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대통령경호실이 신설되고, 기존에 경호를 담당하고 있었던 경무대경찰서는 외부 경비 담당으로 밀려난 것과 유사하다.[4] 궁내부 수장인 내대신 직속 부서[5] 1차대전 후 독일 국방군의 재건 과정을 참고한 것이었다고 한다.[6] 시행 당시 궁내성 황궁경찰서의 직원이었던 자는 그대로 경시청 황궁경찰부 소속의 황궁호위관이 되는 등[7] 도쿄도 미나토구에 위치한다.[8] 사이타마현에 위치한다.[9] 도쿄 이타바시구에 위치한다.[10] 여성황족들 앞에서 외모평가하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다고 하며 인터뷰에 응한 한 여성황족은 그걸 알면서도 이들 경찰들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 없기에 모르는 척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11] 해당 사건은 일본 경찰청 고위 간부가 와서 조사한 다음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정황상 수상한 중국인이 공안측 감시를 받는 사람일 수 있다는 암시가 아닌가라고 추측하고 있다.[12] 참고로 원래는 궁내청측이 황족의 일정을 잘 안 가르쳐줘서 경찰 내부에서 궁내청에 대한 반감도 제법 강했다고 하는 데 이후 어떻게든 황족의 일정을 공유받기 시작했는 데 그렇게 공유받은 정보를 언론에 유출시킨 것이다. 이는 이들 황궁경찰들이 경호대상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위협에 노출하게 만들었다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비판을 받게 하기 충분했다.[13] 해당 책임자가 아이코 공주를 욕하는 이유는 아이코 공주가 초등학생일 때 경호 담당이었는데 이때 아이코 공주는 각종 비방중상과 학교에서의 따돌림 등으로 등교를 거부하기 일쑤라서 이를 설득해서 학교로 나가게 하려고 하는 당시 황태자 부부와의 실이로 자주 지각을 했었다. 이런 일들이 경호 담당 입장에서는 그닥 좋은 기억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발언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참고로 해당 발언자는 기자의 해명 인터뷰 요청에 다소 과격한 어조로 무시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