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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기계화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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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기계화보병사단
{{{#ffffff 第二十六機械化步兵師團}}}
The 26th Mechanized Infantry Division
파일:제26기계화보병사단 부대마크.svg
[ruby(氣, ruby=기)]가 살아있는 최정예 공격부대
창설일 1953년 6월 18일(제26보병사단)
1994년 10월 1일(제26기계화보병사단)
해체일 2018년 11월 30일
상칭명칭 불무리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7기동군단
규모 사단
역할 공격 부대, 전시 진격
해체 전 사단장 예)중장 최진규 (학사 9기)
위치 경기도 양주시

1. 개요2. 상세3. 예하부대4. 출신인물
4.1. 사단장4.2. 장교/부사관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5.2. 사단가 및 구호5.3. 훈련
6. 사건사고7. 여담

[clearfix]

1. 개요

경기도 양주시를 근거지로 했던 제7기동군단 소속 사단. 별칭은 불무리부대. 1953년 6월 18일 창설되었으며, 2018년 11월 30일 해체되었다.

2. 상세

6.25 전쟁 막바지인 1953년 6월 18일 전북 익산군(현 충남 논산시)[1]에서 제73, 75, 76연대를 기반으로 창설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화천군, 양구군, 연천군을 거쳐 1964년 현 주둔지인 양주시에 자리를 잡았다. 사단 본부와 직할대 일부는 양주에 있지만 각 여단들이 동두천-연천까지 아주 넓게 흩어진 관계로, 간부가 아닌 이상, 또 대규모 훈련이 아닌 이상 같은 여단 외의 부대원들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수도기계화보병사단과 같이 (시위, 쿠데타를 진압하는) 충정부대였다. 1980년대까지는 진압훈련도 빡세게 받았으나, 1990년대 들어 민주화가 되며 간소화되었다고 한다. [2]

1994년 10월 1일부로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달랑 장비만 던져준 탓에, 기존 기계화부대의 노하우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교리조차 전달받지 못했다. 결국 당시 부대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해가며 하나하나 습득하는 바람에 장교로부터 병사들까지 꽤나 고생했다. 이 와중에 사격장에서 병사가 소대장ㆍ중대장을 사살하거나 장갑차가 전복되어 사망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1994년에 30사단 소속 92여단 120기보를 26사단 소속으로 바꾸어 교육하여 다소 체계가 잡혔다.[3] 다른 기보사단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3개 기계화보병사단과 여러 기갑여단이 있는데 4번째 기보사단으로 개편되며 일어났다. 즉, 대한민국 국군이 이미 해당 병과 장교와 부사관을 상당수 확보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2014년 호국훈련에서 최초로 하루만에 여주 남한강 방어선을 돌파했다. 상대는 제11기계화보병사단이었다.

별칭은 불무리부대. 해와 달이 동시에 하늘에 떠있는 형상이고 24시간 임무중이란 의미로 불무리[4] 라는 설과 불가능은 없다는 의미로 不無理 라 한다는 설이 있다.[5] 부대 마크가 마스터카드 로고를 연상시켜 '(마스터)카드부대'라고 자주 불리며[6], 로고가 고환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쌍불알부대'[7]라는 별명이 있고, 그 밖에도 과거 60~80년대에는 '피고름 사단[8]' 등의 별명이 있었다.[9] 원래 해와 달을 형상화한 마크라, 해가 뜨면 고생 시작해서 달이 떠도 고생이 안 끝난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경례구호는 공격. 대한민국 국군을 통틀어 26사단만 사용했다. 호불호가 갈리는 구호. 콩! 격! 이유는 과거 최정예 공격사단이었다는 것. 실제로 기계화여단과 사단들 중에서 가장 공격에 특화되었었고 그럴 목적으로 존재한 사단이었기 때문이다 K2 흑표K21도 없는 주제에 왜 공격에 특화된 사단이라는 말이 나오는지는 묻지 말자. K2와 K21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무튼 유일한 경례구호로 인해 26사단 신교대에서 훈련받고 후반기교육을 이수하러 후반기교육부대에 들어가, 그 교육부대의 경례구호가 아니라 (신교대에서 했던) '공격'을 외치다가 주변 교육생들이 웃는 일도 일어났다. 발음상 크게 외치기 힘든 구호라, 크게 외칠 때는 홍혁으로 발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논산 출신이 26사단에 와서 충!격! 이라고 외친 일도 있었다.[10]

사단 구호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나는 전투중이다" 였고 전병력이 반탄모에 푸른색띠에 흰색 글씨로 "나는 전투중이다" 라는 쓰여진 띠를 두르고 있었다. 이후 "Speed 불무리! Victory 불무리!" 나중에는 그냥 '참싸움꾼 그린존 26 구호'라고 하여 "존중과 배려! 칭찬과 격려! 헌신과 솔선수범! 선진병영문화 정착으로 유쾌한 그린존 26사단(또는 각 예하부대)!"로 바뀌었다.

공격 대원 수첩이라는 것을 나눠주었다. 2015년 서부전선 포격 사건 당시 반격 포격한 여단이 이 사단 소속이다.[11]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또한 모든 훈련소 중 유일하게 신교대에서 무박 공격대원 극기훈련을 한다는 것도 자랑한다. 죽을 맛이다. 전날에 공격대원 출정식을 한 뒤 사격행군ㆍ사격ㆍPRIㆍ주간 각개ㆍ야간 각개를 하고 나서 쉬지도 못하고 야간행군에 돌입했다. 그리고 끝나면 재우는 게 아니라 맹세식이라고, 사단 본부 사단장 앞에서 인식표와 사단 마크를 수여하는 행사를 한다. 도중에 쓰러지는 사람이 나오면 간부들은 식겁... 이고 자주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군 구조를 개혁하려는 작어에 따라 2010년대 중반부터 슬슬 해체하는 과정을 거쳤다. 2016년 12월 1일부로 6군단에서 7군단으로 예속된 것도 사단 개편을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75여단ㆍ76여단 등이 먼저 해체되었고 75 예하 38전차가 5기갑여단으로 복귀했으며, 76예하 126기보대가 5기갑으로 배치되었다. 75여단 산하 125기보대는 73여단으로 옮겨졌고, 27전차는 분해되었으며 마찬가지로 25전차도 해체되었다. 그래서 옆으로 누워있던 사단마크가 옆으로 서서 오뚜기가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이 사단도 저출산에 따른 군비축소 대상이 되어 2018년 11월 30일, 국방개혁 2.0에 따라 제8기동사단으로 통합되었다.

3. 예하부대

3.1. 사단 직할대



파일:26사단 기갑수색대대.jpg

편제는 1개 본부중대와 3개 전투중대로 나뉘었다. 자세한 편제 및 관련정보는 수색대 문서의 기갑수색대대 항목 참조 바람.

위병소를 지날 때에는 흉장과 같은 호랑이와 포승줄이 그려진 부대마크가 쇠기둥사이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사열대 상단에 적혀 있던 문구는 '언제나 마음은 태양'

막사는 침상형 생활관의 구형 통합막사를 사용했다. 지어진 지는 오래됐지만 몇 번 보수공사를 하여 특별한 문제는 없다. 정비과나 수송부 등 처부를 제외하고 모든 중대와 모든 처부가 한 건물에 있다. 사단본부에서 차로 10분 거리라 검열을 자주 받았다.

교통여건이 굉장히 --심지어 사단사령부보다 더 좋기도 했다. 이 부대가 일종의 목진지인 셈. 부대 앞에 전용 버스정류장이 있을 정도이며 버스도 많이 다닌다. 양주역 혹은 덕정역과 접근성이 가장 높아 영내에서 생활하는 독신간부들에게는 상당히 좋지만, 병사들에게는 그림의 떡. 근무 서면서 전철 지나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데, 보통 10번 보면 근무가 끝났다.

바로 옆에 축소사격장이 있어서, 사격훈련 시 안전을 위해서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의 입산을 통제하기도 했다. 일단 기계화부대인 만큼 부지가 상당히 크고 산에 걸쳐 있어서 부대관리하려면 꽤나 큰 공사가 된다. 부대 인근에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간 (구) 화학대 부지가 있어서 기갑수색대대에서 일반인 출입을 통제했다. 군사보안상 이유로 방치할 수 없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므로 애로사항이 많았다. 바로 뒤 공동묘지 방문객 및 등산객들에게는 이곳의 통행가능 여부에 따라서 먼 길을 돌아가느냐 아니냐가 갈리므로 중요했다. 게다가 부대 훈련로의 일부이므로 과거 작전과의 사전 미통지로 인해 이곳을 통행하지 못한다면 죽음을 맛보아야만 했다. 더불어 사단 유격장 관리도 맡아서 1년에 2번 부대 내 모든 인원이 투입되어 넓디 넓은 유격장을 보수하러 갔다.

다만 유격훈련이 줄어들어 아쉽게도(?) 파견 가는 일은 줄어들었다. 막사 건물 사이에 호랑이 멀티방이라고 컨테이너 건물에 노래방 및 플스방이 있고, 그 양쪽에 인조 잔디 풋살장 및 족구장이 있어서 쾌적하게 운동할 수 있다. 족구장은 주로 간부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시멘트 공구리 쳐서 만들어서 궤도차량 이동시에 잘못 기동하여 살짝 말이 살짝이지 건드려 깨지면 대대간부들에게 온갖 쌍욕을 먹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풋살장은 조명이 있어서 동절기에 일찍 어두워져도 사용할 수 있고, 철조망을 둘려쳐서 공 주으려고 고생하는 일도 줄어들었다.풋살장 바로 옆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참고로 식당 앞쪽으로 농구코트를 만들었는데, 역시 공구리 쳐서 만들었고 높이도 낮아서 농구하는 데 많이 불편했다.

영내 간부숙소[12] 앞에는 클레이코트 형태로 테니스장이 있어서 역시 간부들이 자주 이용한다.관리병은 죽어나간다. PX 앞에 막타워가 있었지만 안전점검 후 부적격 판정 받아 철거하고 씨름장이 들어섰다. 그 외에도 탁구장이나-헬스장 등을 만들었지만 일단 부대 내 건물이 노후화된 관계로 외부 가건물에 조성하였다(사라지고 헬스장은 본관 건물로 옮기고 탁구장은 없앴다.) 막사 건물이 노후화된 점만 제외하면 그외 부대시설은 타 부대에 비해 양호한 편이었다.

부대 내에 교회가 있어서 일요일마다 외부에서 목사님이 오셨다. 종교활동은 사단 사령부 종교시설로 갔다.

부대 내에 민간인 묘지가 있어서 명절때나 기일로 추정되는 날에 후손들이 정기적으로 출입했다. 2018년에 사단이 독립 기갑여단화되므로 직할대 건물은 앞으로도 현재 편제에서 신 막사가 될 일은 없을 듯하다.


사단 사령부 내에 같이 있다. 26사단 종교시설과 상당히 가깝고, 돈을 뽑을 수 있는 ATM기기도 근처에 있어, 종종 돈 뽑으러 오는 경우도 [13] 교육훈련 장소가 불곡산 등산로와 겹치는 바람에 교육훈련을 하다가 등산 동호회 사람들과 자주 마주친다.[14] 간혹 사단 내 다른 대대의 면회를 이쪽으로 오는 경우도 가끔 있다.[15] 그리고 간부아파트와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필요한 일이 생기면 거의 첫 번째로 불려가 작업하는 부대이기도 하다.(도서관 건설 전 땅 다지기, 헌병대 나무 가지치기 등등);


해체 전까지 2중대(1994년 양주 에서 전곡으로 이사)는 본부가 있는 양주가 아닌 75여단이 있던 경기도 연천군 전곡면 초성리에 독립중대 형태(정비중대 1개 중대와 공병2중대가 함께 )로 주둔했다. 독립중대로 1개 중대만 따로 나와있다보니 중대장과 행보관은 상급자 눈치를 보지 않고 왕처럼 생활했고, 이 때문에 본부와 달리 부대 분위기가 비교적 자유로웠다. 대신, 주변 전투부대가 훈련을 할 때마다 각종 훈련에 차출돼 다른 중대보다 훈련량은 많았다. 나중에 2중대는 공병대대 안으로 부대를 이동한다. 새건물을 짓지는 않았고 예전 체력단련실을 개조해서 생활관으로 만들었고 간이 화장실과 간이 샤워장을 이용한다.


여타 방공부대와 마찬가지로, 본부는 있으되 병사는 여기저기 흩어진 그런 부대다. 부대 부지가 거의 평지인 데다 포장도 잘 되어서, 아침에 뜀걸음하기 생각보다 매우 '적절한' 환경이다(...) 원래 발칸을 운용했지만 2006년도 후반기에 기존 발칸과 부대원 얼마를 쪼개서 다른 사단으로 보내고 비호를 도입해 부대를 다시 창설했다. 시설은 사단 내 탑5 안에 든다고 할 정도로 훌륭했고[16], 1중대는 독립중대로서 다른 위치에 주둔하다가[17] 대대로 통합되었다.

방공부대의 임무 특성상 적지 않은 병력이 방공지원 형태로 파견을 나가기 때문에, 대대에 주둔하는 병력은 총원에 비해 상당히 적다[18]. 특이하다면 특이한 것이, 인원이 매우 적기 때문에 대대 전체 병력이 선후임 관계라는 것. 대대 병사들 간에 전우님(아저씨)은 없다. 그러나 중대가 다르면 선/후임 호칭 외에는 서로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정보통신대대와 한 건물을 사용하며, 건물이 'ㄱ' 자로 나뉘어져 중간을 철문으로 막아놓았다.간혹 몰래 보급대 3층으로 가서 통신대 인원이 자는 일도 있다 보급중대와 수송중대로 나뉘며, 서로 경례는 하지 않지만 존칭은 써준다. PX를 관리하는 대대이며(2015년 기준 통신대 1명 보급대 1명 본부대 1명), 매주 월ㆍ수ㆍ금요일은 1종부식이 들어오는 날이기 때문에 보급중대에서 짬이 낮은 병사들이 차출되어 1종 창고병과 함께 부식을 싣는 '부식지원'을 한다.

사단 사령부 내에서 병사식당과 제일 가깝기 때문에 취사지원이 매일 중대에서 한 명 차출되어 나갔다. 2018년 대대가 2017년 해체된 65사단 자리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유야무야되고 지금까지도 이동하지 않았다.

신교대 앞에 정찰대가 있어서 간혹가다가 UAV(무인정찰기)가 비행을 한다. 간혹 정찰대 활주로로 사단장급들이 헬기를 타고 온다.


모든 건물이 신식건물인데, 교육중대 건물은 3층 침상형 신식건물이다(조교들은 침대형). 겨울에 더울 정도로 난방이 잘 되며[19], 교육중대 조교들은 교육과 위병소 근무(훈련병도 같이 참여)를 서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본부건물은 최신식 건물이며 2층 침대를 쓴다. PX를 포함해 사지방이 같이 있기 때문에 근무조건은 최고이며, 취사병들과 같은 중대라 간간히 건빵튀김이 배달 오는 경우도 있었다. 의무실 바로 앞에 PX가 있기 때문에 병사들에겐 상당히 편리한 막사.

의무실에서 치료받는 훈련병에겐 희망고문이지만 걱정 말자. 중대마다 다르지만 1주일에 1회 정도 전화 가능, 약 3주 후에 생필품 구매를 위한 PX 일 회 사용 가능, 약 1주에 2~3회 야간 부식을 제공한다(초코바ㆍ빙×레 바나xx맛우유 라이트ㆍx시콜라 등). 하지만 중대장의 재량에 따라 달랐다.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오는 곳이 신병교육대 보충대인데, 타 사단 보충대는 사단본부에 보통 있지만, 여기는 보충대가 신교대에 있어 보충대에서 교육을 받을 동안에도, 그리고 점호를 할 때도 신교대 방식으로 하기 때문에 타 사단 보충대보다 분위기가 엄했다. 사격장 등 훈련장을 가기 위해서 번화가가래비 으으를 지나서 걸어가야 했다.

훈련소 근처에는 식당이 많지만 한참 배고픈 훈련병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보충병들은 주간에 교육이 있으면 교육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취사지원을 하거나 다른 조교들과 함께 작업에 투입되기도 한다. 보충병은 훈련병 식당이 아닌 별도의 기간병 식당에서 식사한다. 영외 BOQ라서 독신 간부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부대.

하지만 2017년 17-16기를 끝으로 신교대 운영이 중단되고 2018년 11월 30일에 8기계화보병사단에 통합되어 사단이 해체됨으로써 신병교육대도 해체되었다.

보수대대와 마찬가지로 사단 사령부 내에 같이 있었다. 가보면 왠지 아니나 다를까 공대에서 느꼈던 그 분위기가 다시금 느껴지곤 한다(...) 운용중대와 무선중대ㆍ본부중대로 나뉘며 불곡산 정상에 통신파견은 무선중대가 담당했다. 영내/영외에 전화가 안 되면 막바로 달려가는 부대였다. 사단사령부 후문의 경계를 담당했다.

각 여단의 정비지원 및 수송, 병기부속보급 업무를 주로 한다. 정비대대는 본부 내 일반지원중대와 3중대까지 존재하여 각기 중대는 연천군 양주시 일대에 위치하였다. 위병소 후임 초소가 위치 한 곳에 피자가게 환기구가 있어 장병들이 꽤나 고통 받았다. 정비 이외에 각 사단급 훈련에서 ‘본업인 정비보다 훈련을 더 잘 받는 부대’ 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사단본부에서 진행한 화생방 교육과정에서 ‘화학대’를 이길 뻔 한 정도의 성적을 내며 위 타이틀에 대한 기염을 토했다. 대대본부가 사단사령부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있어서 쓸데없이 행사에 많이 동원되었다. 2018년 현재 대대가 2017년 해체된 65사단 자리에 위치한다.

양주역이나 의정부역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오면 정류장 이름이 '의무대'이다. PX가 없어서 다른 부대 갈 때 한 명이 싹 사오거나, 양주병원에 갈 때 이용하다가 2010년 컨테이너에 PX를 차렸다. 각 여단본부 내에 있는 의무대는 전부 사단의무대에서 여단본부로 파견 나가는 형식을 취하므로, 실제 군생활을 여단본부에서 하더라도 소속은 의무대대였다.

2004년쯤 유괴범들에게 쫓기던 여자아이가 울면서 의무대 위병소로 뛰어든 일이 있었다. 초병들이 총을 들고 유괴범(으로 추정되는) 차량에 다가서자 거수자들은 고민하다가 달아났다고... 당시 위병소 근무 서던 인원들은 전원 포상휴가를 받았다.

본부근무대 안에 군악대, 수송소대, 경비소대, 참모소대, 본부소대가 있으며, 신병교육대대와 마찬가지로 신식막사다. 소대가 서로 달라도 선후임으로 인정되지만 소대 간 터치는 없었다. 문제가 있으면 보통 타소대 친한 동기를 통해 문제를 해결을 했었던 편. 사단장과 중령급 이상의 간부들을 자주 만나야 하는 인원들로 구성되어[20] 똥군기와 부조리가 생기기 정말 쉬운 환경이었다. 실수가 나오는 순간 사단 전체에 피바람이 불 수도 있으므로.

사단사령부 안에 보수대ㆍ통신대ㆍ헌병대ㆍ공병대ㆍ본부대가 같이 있는데, 의무대가 유일하게 공병대대에만 있었다. 결국 2011년 본부대에 의무실을 개설하여 공병대 의무병과 (새로 받은) 본부대 의무병이 함께 있도록 했다. 공병대 의무병은 본부대 의무실을 처부로 삼아 출퇴근했다.

식사 및 PX 이용은 정보통신대대와 보급수송대대가 있는 곳에서 했다. 시설도 좋고 연등도 꽤 자유로운 편이었다고...물론 당직사관에 따라 달랐다.

사령부 내에 같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편제상 본부대 소속. 참고로 이쪽도 신막사다.

파일:26사단 정찰대.jpg

비행장과 같은 주둔지에 있어서 본의 아니게 비행기를 자주 구경할 수 있다. [21] 비행장 안에 4개 부대가 있는데, 나머지는 UAV운용중대[22]이고 정찰대만 따로 병력을 유지한다.

박쥐 흉장을 사용하며, 신교대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둔다.

사단자체 국지도발이 걸리면 대항군으로서 사단사령부에 침투한다. 어느 병사는 "사단사령부 담장이 제일 넘기 쉬워요'." 하고 말한 적이 있다. 훈련을 나가면 저항군으로 자주 볼 수 있는데[23] 정작 간부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병사들끼리 숨바꼭질하는 것이다.[24]

26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이쪽으로 전입할 때 자신이 유단자라고 밝히거나, 운동을 좀 했거나, 축구를 잘하거나 하면 면접에서 유리할 수 있다. 부대 주변이 활주로라 구보하기 딱 좋다. 전방을 보면서 구보하면 마치 러닝머신에 올라선 듯했다. 종종 산악구보나 군장구보를 했다.

신교대에서 헬기 레펠 훈련을 하는 정찰대 병사들을 가끔 볼 수 있다. 헬기 레펠 훈련은 1년에 4번 받는데, 생명수당을 추가로 받기 때문에 부상 있는 병사를 제외하고, 간부를 포함한 전 병력이 참여하고자 한다. 1회 탈 때마다 거의 한 달 월급의 1.5배를 더 받는 수준. 신나는 유격 훈련 시즌이 되면 정찰대가 유격 조교 임무를 맡는다. 정찰대원은 유격훈련 이전에 유격장에 올라가 배정받은 코스에서 훈련하고 코스와 제원을 설명하는 대사를 외웠다.

PX는 정찰대가 관리하며 위병소와 마주 보는 작은 건물인데 매우 협소하다. 부대시설이 매우 열악해서 독서실ㆍ체력훈련장ㆍ족구장ㆍ농구코트 등이 전부였다. 족구장은 말이 족구장이지 활주로 도로에 네트쳐놓고 족구하는 것. 일과가 끝나면 대부분은 축구를 하지만, 이 좀 되는 인원들은 체력단련장에서 운동했다. 막사는 철관물대를 쓰는 구형 막사로 라디에이터로 난방했다.(...) 그리고 부대내에 활주로에 모병사가 잡아놓은 산토끼가 뛰어다니는걸 봤다는 사람도 있다.

역시 사단사령부 내에 같이 있다. 사단 사령부 내에 있는 것치곤 시설이 구렸으나 신 막사로 바뀌었다. 공병대대 신병들이 헌병대 신 막사를 보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공병대 가서 절망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타 기보사 헌병들과 다르게 사단사령부 바로 앞에 있는 정비대대 궤도차량 한 대만 움직여도 헌병지원(교통통제)을 나간다. 헌병인데 자대배치를 이리 받았다면, 확실히 전역 후에 쇼핑몰이나 웨딩홀 주차장 취직(?)은 보장된다 할 수 있겠다.

몇 년 전 공동묘지로 둘러싸인 곳에서 현 부지로 옮겨왔다. 현재는 정비 1중대와 같은 울타리를 쓰는 중이다. 막사는 오래된 신 막사라서 호불호가 갈렸다.

3.2. 제73기계화보병여단 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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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75기계화보병여단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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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76기계화보병여단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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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구)포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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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출신인물

4.1. 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이명재
00대 유학성 예) 대장 육사 1기 제3야전군사령관 [25]
00대 이존일 예) 소장 육사 2기 제3군관구사령관 전라북도지사
14대 장태완 예) 소장 육종 11기 수도경비사령관
15대 배정도 예) 소장 육종 6기 국방대학원장
16대 박희도 예) 대장 육사 12기 육군참모총장, 제3야전군사령관 [26]
00대 이병태 예) 중장 육사 17기국방부장관
00대 함덕선 예) 중장 육사 20기 제11군단장
00대 박남필 예) 소장 1990년대말~2000년대초
00대 김순신 예) 소장 육사 26기합참 작전부장, 육군교육사령부교훈부장 [27]
00대 박남수 예) 중장 육사35기 전 수도방위사령관, 전 육군사관학교장
00대 박찬주 예) 대장 육사 37기 제2작전사령관 [28]
35대 신인호 예) 소장 육사 42기 육군교육사령부 전투발전부장
00대 최진규 예) 중장 학사 9기 지상작전사령부 부사령관

4.2. 장교/부사관

4.3.

5. 기타

5.1. 근무환경

5.2. 사단가 및 구호

26사단가

1절
눈부신 햇살아래 옥토 삼천리
짙푸른 향내나는 내 조국 강토
어둠이여 사라져라 찬란한 아침
지켜서 억만년을 누려보리라

2절
흥안성 바라보며 말을 달리는
화랑의 뒷자손이 그 누구인가
꽃동산 무궁화 혼을 이어서
잃어진 북녘 땅을 다시 찾으리

3절
압록강 푸른 물에 칼을 씻는 날
쫓기어 멸망하는 붉은 오랑캐
우러러 달을 보라 백두산 천지
영광은 빛나거라 불무리부대여

후렴
아아 우리는 불무리의 용사
식을줄 모르는 불무리 용사
氣가 살아있는 최정예 공격부대
Be "The Best Warrior"
Speed 불무리! Victory 불무리!
참싸움꾼 그린존 26사단구호

존중과 배려!
칭찬과 격려!
헌신과 솔손수범!
선진병영문화 정착으로 유쾌한 Green Zone 26사단!
뜨거운 열정!
따뜻한 마음!
세계최강 공격부대!
불무리 불무리 Fighting!
(사단 전체 해당인지 모르지만 631포병대대에서는 사용했었음)
통신보안 존중과 배려를 실천하는 화학지원대 병장 xxx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사단가에서 '강토'를 '향토'로 아는 병사들이 많지만 공식가사는 강토다.

5.3. 훈련



6. 사건사고

7. 여담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로 침투할 때 침투로에 있었다(...) 그 때문에 이 라인에 있던 부대장들은 줄줄이 모가지 당했다. 예비사단인 만큼 기계화부대로 개편되기 전까진 당시 8사단, 11사단처럼 상당히 훈련이 많고 군기가 센 부대였다.

박희도 사단장 시절, 80년 8월부터 실시된 삼청교육대를 설치한 몇 안 되는 사단이다.

MBC <우정의 무대> 1990년 8월 5일 및 1995년 10월 1일 방영분에 나왔고, KBS1 <TV 내무반 신고합니다>의 경우 1999년 2월 1일, 2000년 3월 20일, 2001년 5월 21일 총 3번, <청춘 신고합니다> 2003년 6월 23일 방영분에도 나왔다. 2017년과 2018년 진행된 오버워치 솔저:76 토너먼트에서 2연속 준우승을 차지한 사단이다.


[1]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북 익산 일부가 충남 논산으로 편입.[2] 1980년대 거의 모든 충정부대의 소요 진압훈련은 보통 경찰청 의무경찰 소개 문서의 훈련 동영상 수준이었으며, 장비 역시 방패와 장봉 등을 보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방패와 장봉으로 진압이 안 될 경우 소총에 착검하고 실탄이 지급된다고 규정했다고 한다.[3] 원래 보병부대였던 관계로 기갑전술을 모르는 장교와 부사관이 태반이라, 사단 내에서 가장 전문가인 전차대대 소속 이스라엘 유학파 출신 위관급 장교가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가르쳐야 했다고 한다. 한동안 장비에 이스라엘 군처럼 쐐기꼴 기호를 그리고 이스라엘식으로 부대를 운용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실제 사례로 모 화기소대는 훈련 중 통제관이 돌발상황을 부여하자, 보병일 때처럼 감제고지를 선점하려고 장갑차 세우고 뛰쳐나와 그 무거운 M60 기관총 둘러메고 산 위로 뛰어올라갔다가 전멸판정을 받자, 빡친 나머지 통제관과 멱살 잡고 대판 싸웠다고 한다. 훈련이 끝나고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된 바로는, 당시 통제관이 부여한 상황에서는 상급부대에 통보하고 우회기동하는 것이 정답이었다고 한다.[4] 해 와 달 무리[5] 아무래도 전자인 불무리가 더 설득력있다.[6] 2016년에 로고 변경으로 마스터카드 글자가 밑으로 내려와서 더 닮아보인다.[7] 사단 사령부 입구를 따라 쭉 들어가면 부대 마크를 3D화한 조형물(현재는 철거되었음)이 있는데, 계속 보다 보면 기분이 매우 아스트랄해진다....[8] 血膿師團[9] 이 별명은 2000년대에도 전해져서 부대마크의 푸른색까지 더해, 피·고름·멍 사단이라 부르기도 했다.[10] 반대로 26사단 신교대 출신이 다른 부대로 가서 공!성! 등으로 외치기도 했다. (사단 훈련병 양성과 자대배치가 일치하지 않았던 시대의 일화.)[11] 기보사 예하 연대급 부대는 편의상 보병사단과 구분을 위해서 여단이라는 명칭을 쓴다. 단 단대호에서는 연대로 표기한다.[12] 사단 내에서 정비대 다음으로 간부가 많으므로 독신간부 수요가 많아서 간부숙소 보수공사를 진행했다.[13] 공병대대 막사에서 사단 방면으로 쭉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14] 불곡산은 양주에서도 유명한 등산코스이다. 가족이나 등산 동호회가 자주 다니고, 거의 병사의 부모님뻘 되는 사람이 자주 다니기 때문에, 운(?)이 좋다면, 먹을 것도 가끔 받기도[15] 사단 끝자락에 있어서, 도로를 타고 오다가 맨 처음 보이는 군부대라, 여기가 26사단이 맞는지 물어보려고 오거나, 여기가 XX대대인가 보다 착각해 들어오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16] 재창설과정에서 시설을 보강했다고 한다. 병력이 바글바글한(...) 부대가 아니라 시설유지가 비교적 용이한 점도 있다.[17] 별도의 주둔지에 있었지만 1중대도 침대형 생활관을 비롯해 시설이 좋은 편이었다.[18] 앞선 서술에서는 1중대와 2중대가 대대에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독립중대는 1중대뿐이었으며 2중대는 독립부대였던 적이 없고 중대 단위 파견이 있었다.[19] 바깥쪽 생활관이 좀 더 춥다.[20] 경비는 사령부 위병소 근무 및 환경미화, 수송은 사령부 간부들의 운전병 역할, 군악대는 각종 사열의 중심, 참모소대는 각 처부의 비서/노예[21] 한때 여기에 사단직할 비행대대가 있었으나, 1999년에 군단직할로 넘어갔다.[22] 수도군단ㆍ1군단ㆍ5군단ㆍ6군단 예하로 모두 다른 군단 소속이다![23] 주둔지 외곽에 만든 야전화장실 옆 사로에서 서로 바지 내리고 마주치는 난감한 상황도 일어난다.[24] 저항군 정찰대 병사를 야전지휘소(확장벤) 바로 앞에서 잡아도 간부가 그냥 잘했다 풀어줘라 하더라고...[25] 1970년대 초반 사단장을 지냈다. 국방부 군수차관보로 재직시 박희도와 함께 12.12군사반란에 참여하였고 그 공로(......)로 대장 진급 후 예편,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다.[26] 12.12 군사반란이 끝나자 그 공로(…)로 육군 소장에 진급한 뒤 1980년대 초반에 사단장을 지냈다. 박희도의 최종보직은 육군참모총장.[27] 1990년대말 사단장을 지냈다. 연평해전 당시 합참 작전부장으로 한국군의 승리를 이끌었다.[28] 2010년대 초반에 사단장을 지냈다. 이후 기갑병과 역사상 최초로 대장 진급에 성공하여 명성을 날리는가 싶었지만... 나중에 기갑 병과 역사상 최대의 치욕으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