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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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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사태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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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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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대내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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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color=#fff> 전쟁·전투 교전국
<colbgcolor=#405486,#000031> 서부전선 교전
1948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개성 인근 교전
1949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개성 송악산 전투
1949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포천 전투
1949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옹진-은파산 전투
1949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양양 돌입 사건
1949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춘천 682고지 전투
1949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6.25 전쟁
1950 ~ 195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소련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지리산 공비 토벌전
1951 ~ 1954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남로당 깃발.png 조선인민유격대
일본 해상보안청의 평화선 침범 사건
1952 ~ 1965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일본 해상보안청의 독도 무단침범 및 점령시도 사건
1953 ~ 1956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독도 대첩
1954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진주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6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한반도 비무장지대 분쟁
1966 ~ 1969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1967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1.21 사태
1968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8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베트남 전쟁
1965 ~ 1973
파일:베트남 국기.svg 북베트남
파일: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기.svg 베트콩
3.7 완전작전
197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대한민국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
1974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3.23 완전작전
1980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판문점 총격사건
1984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걸프 전쟁
1990 ~ 1991
파일:이라크 국기(1991-2004).svg 파일:헤자즈 왕국 국기.svg 이라크
5.22 완전작전
1992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부여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5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6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여수 반잠수정 격침사건
1998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제1연평해전
1999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 ~ 2007
파일:탈레반 기(1996~2021).svg 탈레반 정권
제2연평해전
2002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이라크 전쟁
2003 ~ 2011
파일:이라크 국기(1991-2004).svg 파일:바트당 당기.svg 이라크
파일:지하드 깃발.svg 알 카에다 및 저항 세력
항구적 자유 작전
2009 ~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파일:해적기.svg 소말리아 해적
대청해전
2009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천안함 피격 사건
2010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연평도 포격전
2010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아덴만 여명 작전
2011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파일:해적기.svg 소말리아 해적
연천 대북전단 발원지 격파사격
2014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서부전선 포격 사건
2015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대 IS 군사 개입
2015 ~
파일: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국기.svg ISIL
2020년 5월 GP 총격 사건
2020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2022년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건
2022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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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북한 국장.svg
북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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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역사적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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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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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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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무산 (1994) · 고난의 행군 (1994~2000) · 북미 제네바 합의 (1994) ·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6) · 심화조 사건 (1997~2000) · 제1연평해전 (1999) · 남북정상회담 (2000) · 조미 코뮤니케 (2000) · 제2연평해전 (2002) · 새로운 경제관리개선조치 (2002) · 북일정상회담 (2002~2004) · 6자회담 (2003~2009) · 제1차 핵실험 (2006) · 남북정상회담 (2007) · 제2차 핵실험 (2009) · 화폐개혁 (2009) · 천안함 피격 사건 (2010) · 연평도 포격전 (2010) · 김정일 사망 (2011)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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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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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전쟁 발발 책임 · 승패 인식
백두혈통
우상화
김응우 (제너럴 셔먼호 사건) · 김형직 · 강반석 · 김정숙 · 김정일 출생지 왜곡
관련 서적 미제와 일제의 조선침략 죄행 ·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 세기와 더불어 · 조선력사
* 괄호 안의 연도는 북한의 주장에 근거한 연도이며, 실제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체 및 사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연도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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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북한 국장.svg 북한의 대내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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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전쟁·분쟁 교전국
<colbgcolor=#ed1c27> 서부전선 교전
194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개성 인근 교전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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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송악산 전투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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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전투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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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진-은파산 전투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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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돌입 사건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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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682고지 전투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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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950 ~ 195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파일:UN기.svg 유엔군
진주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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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무장지대 분쟁
1966 ~ 1969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베트남 전쟁
1967 ~ 1969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남베트남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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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사태
196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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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121 격추 사건
1969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제4차 중동전쟁
1973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대한민국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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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 내전
1975 ~ 1980년대
파일:앙골라 완전독립 민족동맹 당기.svg 앙골라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파일:앙골라 민족해방전선 당기.svg FNLA 파일:카빈다 월경지 해방전선기.svg FLEC 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기.svg 남아프리카 공화국
3.23 완전작전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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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 내전
1980 ~ 1986
파일:우간다 국기.svg 민족저항군
판문점 총격사건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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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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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여수 반잠수정 격침사건
199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제1연평해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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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순시선 괴선박 격침 사건
2001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제2연평해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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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단호 사건
2007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Flag_of_Edward_England.svg.png 소말리아 해적
대청해전
200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연평도 포격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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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2011 ~
파일:시리아 국기.svg 자유 시리아군 파일:지하드 깃발.svg 알 카에다 파일: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국기.svg ISIS
연천 대북전단 발원지 격파사격
201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서부전선 포격 사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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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GP 총격 사건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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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건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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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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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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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835B38> 일생 일생(진위 논란) · 평가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가족 틀:박정희 가문
역대 선거 제5대 대통령 선거 · 제6대 대통령 선거 · 제7대 대통령 선거 · 제8대 대통령 선거 · 제9대 대통령 선거
대중매체 야인시대 · 박정희: 경제대국을 꿈꾼 남자 ·그리고 목련이 필때면
사건사고 5.16 군사정변 · 황태성 사건 · 1.21 사태 · 3선 개헌 · 7.4 남북 공동 성명 · 10월 유신 · 저격 미수 사건 · 10.26 사건
관련 단체 박정희 정부 · 국가재건최고회의 (군사혁명위원회) · 민주공화당 · 통일주체국민회의 · 유신정우회 · 중앙정보부 · 정수장학회 · 육영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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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문서가 없는 평가 및 논란은 해당 주제 관련 문서를 참고
박정희 정부와 관련된 문서는 틀:박정희 정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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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835b38><colbgcolor=#f5f5f5,#2d2f34> 구성 인사(3공) · 인사(4공) · 통일주체국민회의
여당 민주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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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긍정적 평가 (사회·문화 · 안보·국방 · 외교 · 경제) · 부정적 평가 (정치 · 사회·문화 · 안보·국방 · 외교 · 경제) · 논란이 있는 평가
타임라인
대한민국 제2공화국: 박정희 내각
1961년 5.16 군사정변 · 국가재건최고회의 설립 · 혁명재판 · 전국 18개 학군단 창설 · 수도방위사령부 창설 · 농어촌고리채법 · 은행국유화(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 · 경제기획원 설립 · 중앙정보부 창설 · 한국전력주식회사 창설 · 농업협동조합 창설 ·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 · 연호에 관한 법률 개정
1962년 서력기원 사용 · 문화재보호법 제정 ·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발표 · 울산공업센터 지정 · 주민등록법 제정 · 화폐개혁 · 4대 의혹 사건 · 마포아파트 준공 · 김종필-오히라 메모 · 대한항공공사 설립 · 5차 개헌 공포 · 제1차 국민투표
196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 · 민주공화당 창당 · 3.16 성명 · 감사원 개원 · 의정부역-능곡역 구간 교외선 개통 · 서울 대확장 · 부산 직할시 승격 · 박정희 의장 예편 후 민주공화당 입당 · 삼양라면 출시 · 서울가정법원 개원 · 제5대 대통령 선거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 구로공단 조성 · 황태성 사건 · 의료보험법 제정
대한민국 제3공화국: 박정희 정부 제1-3기
1963년 국가안전보장회의 설치 · 파독 근로자 파견
1964년 미터법 실시 · 삼분폭리사건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보완계획안 발표 · 울산정유공장 준공 · 무장군인 법원 난입 사건 · 6.3 항쟁 · 베트남 전쟁 파병안 통과 ·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 · 무즙 파동 · 서독 공식 방문 · 국가기술자격 시행
1965년 한국독립당 내란 음모 사건 · 독도 밀약 · 수출제일주의 표방 · 제2한강교 준공 · 춘천댐 준공 · 광복회 발족 · F-5 20대 도입 · 원충연 반혁명 사건 · 한일기본조약 조인(한일협정 반대투쟁) · 전매청 신탄진공장 준공 · 야당 불참 속 한일협정 비준 및 베트남 전쟁 파병 동의안 가결 · 베트남 전쟁 1개 전투사단 파병 · 이승만 대통령 서거 · 한국해외개발공사 발족 · 농어촌 전화 사업 추진
1966년 KIST 설립 · 국세청 발족 · 장면 총리 별세 · 태릉선수촌 설립 · 한미행정협정 조인 ·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수립 ·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 · 국회 오물 투척 사건 · 사카린 밀수 사건
1967년 산림청 개청 ·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 한국외환은행 발족 · 대도시 그린벨트 설정 · 짜빈동 전투 · GATT 가입 · 과학기술처 신설 · 제6대 대통령 선거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발표 · 동백림 사건 · 한국수자원개발공사 설립 ·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 정부종합청사 착공
1968년 1.21 사태 ·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 684부대 창설 · 서울사범대학 독서회 사건 ·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설립 · 향토예비군 창설 · 주민등록법 개정 · 통일혁명당 사건 · 만화 검열제 · 육군3사관학교 창설 ·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 주민등록증 발급 실시 · 국민교육헌장 발표 ·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오산 구간 개통 · 경인고속도로 개통
1969년 교련 과목 개설 · 한국도로공사 발족 · 가정의례준칙 · 서울 중학교 무시험 제도 · 금화시민아파트 준공 · 경부고속도로 오산-천안-대전 구간 개통 · 호남정유 여수공장 준공 ·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 · MBC 개국 · 3선 개헌 · 제2차 국민투표 · 제3한강교 개통 · 울산고속도로 개통 · 경부고속도로 대구-부산 구간 개통
1970년 정인숙 살해사건 ·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 · 포항종합제철소 착공 · 새마을운동 제창 · 우편번호제 도입 · 경부고속도로 대전-대구 구간 개통 (완공) · 호남고속도로 대전-전주 구간 개통 · 백원 주화 발행 ·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수립 ·국방과학연구소 설립 · 병무청 설립 · 모산 수학여행 참사 · 전태일 분신 사건 · 번개사업 · 남영호 침몰사고 · 4대강 유역 종합개발 계획 확정 · 정부종합청사 개청
1971년 전국 중입시험 폐지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 고리 원자력 발전소 기공 · KAIST 설립 · 주한미군 7사단 철수 · 제7대 대통령 선거 · 진산 파동 · 제8대 국회의원 선거 ·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발표 · 광주대단지 사건 · 브레튼우즈 체제 종료 · 실미도 사건 · 국토종합계획 발표 · 통일로 개통 · 영동고속도로 신갈-새말 구간 개통 · 대연각호텔 화재
1972년 정병섭군 자살사건 · 경주고도개발 10개년 계획 확정 · 7.4 남북 공동 성명 · 통일미 개발 · 8.3 사채 동결 조치 · 제1차 남북 적십자 회담 · 10월 유신 · 울산석유화학단지 준공 · 제3차 국민투표 · 통일주체국민회의 발족 · 제7차 개헌 ·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
대한민국 제4공화국: 박정희 정부 제4-5기
1973년 중화학공업화 선언 ·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추진 · 남서울아파트 분양 · 장발 및 미니스커트 단속 · 승압사업 개시 · 제9대 국회의원 선거 · KBS 설립 · 베트남 전쟁 종전 · 유신정우회 창립 · 윤필용 사건 ·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 · 서울어린이대공원 개장 · 1973 서울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 화전민정리 5개년 계획 수립 · 포항종합제철소 준공 · 대덕연구단지 착공 · 불국사 복원공사 준공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 · 김대중 납치 사건 · 소양강댐 준공 · 제1차 오일쇼크 ·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 태백선 고한-황지 구간 개통(완공) · 호남고속도로 전주-순천 구간, 담양지선 개통(완공) · 남해고속도로 개통 · 친아랍 성명 4개 조항 발표
1974년 율곡사업 추진 · 긴급조치 1·2호 선포 · 긴급조치 3호 · 현대울산조선소 제1호선 진수 · YTL30호 침몰 사건 · 서울/부산 고등학교 평준화 첫 실시 · 창원국가산업단지 조성 · 민청학련 사건 · 긴급조치 4호 선포 · 팔당댐 준공 · 속초해전 ·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 ·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 ·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 ·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 · 새마을호 운행 시작 · 긴급조치 1·4호 해제 · 현대조선폭동사건 · 대왕코너 화재사고 · 주안국가산업단지 준공 ·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
1975년 제4차 국민투표 · 한강 이북지역 택지개발금지조치 · 핵확산금지조약 비준 · 민방위 결성 · 긴급조치 7호 선포 ·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사형 집행 · 김상진 할복 사건 · 종합무역상사 제도 실시 ·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 · 영동고속도로 새말-강릉 구간 개통(완공) · 동해고속도로 개통 · 여천석유화학단지 기공 ·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개장 · 1975 서울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1976년 포항 석유 발견 사건 ·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 한독맥주 사건 ·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 서울 UFO 격추미수 사건 ·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 · 한국수출입은행 발족 · 잠수교 개통 · 국산자동차 현대 포니 첫 수출 · 코리아게이트 · 안동댐 준공 · 함평 고구마 사건 · 직업훈련기본법 제정
1977년 제4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발표 · 백지계획 발표 · 박흥숙 살인사건 · 월성 원자력 발전소 기공 · 고리 원자력 발전소 1호기 가동 · 의료보험 시행 · 부가가치세 시행 · 남해화학 여수공장 완공 · 반국가행위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 · 구마고속도로 개통 · 이리역 폭발사고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발족 ·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 · 여천석유화학단지 준공 ·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 · 제9대 대통령 선거 · 8.8 조치 시행 · 백곰 미사일 발사 성공 · 자연보호헌장 선포 ·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사건 ·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1979년 서울 지하철 2호선 착공 · 정부 제2청사 착공 · 보문관광단지 개장 · 고리 원자력 발전소 3, 4호기 착공 · 2차 오일 쇼크 · YH 사건 · 성수대교 개통 ·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 · 김형욱 실종 사건 · 부마항쟁 · 삽교천방조제 준공 · 10.26 사건 ·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 · 서울의 봄 · YWCA 위장결혼식 사건 · 12.12 군사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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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사태 
파일:attachment/1.21사태/2008070600935_1.jpg
일시
1968년 1월 21일 새벽
장소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목적
박정희 대통령 및 청와대 관계자 암살[1]
교전 세력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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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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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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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124부대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제25보병사단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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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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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서울특별시 치안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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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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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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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제1보병사단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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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제2보병사단
결과
청와대 기습 및 박정희 대통령 암살 실패
영향
향토예비군, 방위병 창설
고등학교 교련 과목 실시
주민등록증 발급 실시
설악개발단, UDU, 684부대 등의 보복부대 창설
유격 훈련 실시
5분 대기조 실시
휴전선 철책 설치[2]
천리행군 훈련 실시
이순신 장군 동상 설치
북악스카이웨이 준공
반공 웅변대회 탄생
육군3사관학교, 육군과 해군 2사관학교 창설[3]
공군기술고등학교 창설
전투경찰대 창설
인왕산북악산 또는 청와대 근처 통행금지[4]
대통령 경호 강화 및 보안 강화
군복무 기간 연장[5]
피해
• 29명 사망[6]
1명 도주
1명 생포
• 군경 23명 전사
• 민간인 7명 사망
• 군경 및 민간인 52명 부상

1. 개요2. 발단3. 대한민국의 사전대비4. 김신조 루트5. 자하문 초소 전투6. 진행7. 결말8. 사건의 직접적인 여파9. 생존자10.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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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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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김신조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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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6A3A3,#000> 124 부대 복장 재현
우리 31명 임무는... 저 박정희 모가지 뗄 임무고...
김신조, 생포 직후 기자회견에서[7]
종로 경찰박물관에 전시된 124부대의 당시 복장이다. 군모에 대한민국 국군 대위 계급장을 달아 한국 육군으로 위장 시도를 했다.[8] 자세히 보면 방망이에 못이 빼곡히 박혀 있는데 청와대에 진입할 때 청와대 경비병력을 조용히 제압하기 위해 가져왔다고 한다.[9]
대한뉴스 <서울로 침투한 무장간첩 사살 및 북한의 만행> 보도
<대한뉴스 제 863호>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10] 정찰국 소속 공작원(124부대)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로부터 300m 떨어져있는 종로구 세검정 고개[11]까지 침투하였던 사건이다.

총 침투한 31명 중 사살 29명[12], 미확인 1명[13], 투항 1명(김신조 소위)[14]의 전과를 올렸다. 유일한 생존자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이 사건을 일명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김신조는 이튿날의 기자회견에서 침투 목적을 묻는 기자에게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고 밝혀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원래 북한에서 최초로 세운 작전은 세 자리 숫자의 병력을 침투시켜서 본대는 청와대를 기습해서 박정희를 암살하고 나머지는 각 조별로 미 대사관 공격 및 요인 암살, 국방부 공격 및 요인 암살, 교도소 공격 후 죄수 석방 등 서울 시내에 총체적인 대혼란을 유도하고 석방시킨 죄수와 공격조가 동반 월북 후에 삐라를 뿌려서 남조선 내 반정부 세력의 의거로 꾸민다는 대규모 계획이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9일 뒤인 1월 30일에 베트남에서 일어난 테트 대공세와 같은 작전을 노린다는 것이다.[15] 그러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작전을 축소해 30여 명을 침투시켜서 청와대를 습격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난 것이다. 침투·습격·탈출조 등 3개조로 나누어 침투조가 청와대 보초를 제거하고 경계를 펴는 동안 습격조는 청와대 내부를 공격하고 철수하면 탈출조는 청와대 경내의 차량을 탈취해 시동을 걸어 놓고 있다가 임무를 마친 동료들을 싣고 문산 쪽으로 도주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을 고작 3∼4분 만에 끝낼 계획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김신조는 원래 교도소 공격조였다고 한다.

2. 발단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인해 한, 미, 일 동맹체제가 구축되었고 북한은 고립되는 형국이었다.[16] 특히 베트남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가운데 파병된 한국군의 전투력에 고전하던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베트남의 호찌민김일성에게도 파병을 요청했지만 앞서 언급한 상황 때문에 김일성은 거절했고 남한이 더 이상 베트남에 전투부대를 파병하지 못하게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17] 그 약속에 따라 1968년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김일성이 북베트남을 돕기 위해 한국을 향한 강도 높은 안보도발을 시작했고 그 시작으로 청와대 침투 계획, 즉 1.21 사태를 주도했다.

3. 대한민국의 사전대비

1968. 1. 13 대한뉴스 제 657호<비상치안 회의>

대한민국 정부도 바보는 아니어서 북한의 침투 계획을 파악하고 있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여러 정보루트를 통해서 북한의 침투 정황들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으며 곧 북한이 남파간첩을 대규모로 남하시킬 것이라고 1967년 10월부터 청와대에 정식으로 수차례 보고[18]했다. 그리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이러한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무장공비가 침투하기 불과 2주 전인 1968년 1월 6일 강원도 원주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전군경지휘관 200여명이 참여하는 대간첩 작전회의인 비상치안 회의를 개최했는데 목적은 남파간첩 시도를 철저하게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상치안회의의 결과 전 군경에 대간첩작전을 위한 비상경계태세를 내려서 출동명령이 내려오면 즉시 대간첩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19]를 유지하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1월 13일 대한뉴스 방송으로 대규모 남파간첩 침투의 징조가 있으며 이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고 있음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알리고 적대 집단인 북한에도 공개적으로 천명한 상태[20]였다. 바로 그날 실제로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4. 김신조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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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6A3A3,#000> 김신조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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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진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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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6A3A3,#000> 김신조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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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식 진격로

1월 13일 조선인민군 정찰국장 김정태에게서 청와대 습격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124 부대원 31명은 1월 16일 밤 10시 황해북도 연산군의 제6기지를 차량으로 출발했다. 당시 1월 21일은 일요일로서 6.25 전쟁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주기 위해 날짜를 계산하고 투입한 것이다. 겨울에 투입한 이유도 국군과 주한미군이 겨울에는 훈련도 잘 안 하고 추위로 인해 근무도 대충 선다는 이유에 날짜를 겨울로 계산한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낮에는 쉬고 밤에 이동하는 등 산으로 침투하면서 이목 자체를 최대한 피하다가 침투용이었던 26사단 마크가 달린 국군 군복을 입고서도 마주친 나무꾼 4형제에게는 방첩대나 국군이라고 속이지 않고 오히려 연이은 침투성공에 기고만장하여 자신들이 북에서 내려온 인민군 선봉대라고 알려주었다. 이후 21일 시내 돌입 전 사복으로 환복하고 코트 아래 기관단총 등의 장비를 갖추어 19:00 경에 서울 시내에 진입하였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군, 경 검문시 방첩대라고 주장할 수 있는 시간이 21일 19:00 경 부터인데 이때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의 목적이 대통령 암살인 것은 예측하지 못했기에 청와대 자체 경계는 오히려 소홀한 편이었다.[33] 그러다가 제2방어선이었던 경찰이 공비 침투에 대비하여 서울 시내를 순찰/검문하고 있다가 천만다행으로 탐지한 것이다. 공비에 대비하여 순찰하다가 복귀하던 서대문경찰서 이각현 서장이 직접[34] 21:55 경에 2열종대로 둘 셋씩 붙어가던 이들을 발견하였다.[35] 이 서장은 세검정 파출소에 들어가 즉시 시 경찰망에 무장공비 의심 전파하면서 관계기관에 훈련이 있는지 확인, 헌병 3명 포함 병력 14명을 소집하여 짚차 2대, 트럭 1대에 태워서 차량 추적을 명령하고 30사단 작전참모에 동원병력을 소집할 것을 요구하여 이에 따라 22:00부로 해당 구역에 병력 배치가 시작되었다. 무장공비들이 이 추적을 따돌리고 마주친 최초의 검문소가 바로 후술할 두 형사가 있었던 곳이다. 22:05분에 본인들은 CIC 소속으로 훈련 복귀 중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했으나 형사들은 뭔가 수상하다고 낌새를 눈치채고 시간을 끌다가 코트 속 총기를 식별하였다. 따라서 최소한 침투 과정에서 CIC라면서 검문을 무사히 통과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5. 자하문 초소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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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6A3A3,#000> 자하문 초소 전투 당시 사망한 최규식의 동상

9시 50분, 124 부대원 31명은 청와대에서 불과 300m 남은 지점인 자하문 초소에서 이곳을 지키던 종로경찰서 소속 정종수 순경과 박태안 순경에게 첫 검문을 받게 되었다. 부대원들은 "우리는 CIC (당시 육군 방첩부대) 소속 대원이다. 특수훈련을 마치고 복귀 중인데 방해하지 말고 비키라.", "신분증은 볼 필요가 없다", "우리 부대로 가자" 등 위협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고 다그쳤지만 형사들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통에[36] 시간이 지체됐고 그 사이 무전으로 연락을 받은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과 경찰 병력이 출동했다.[37] 이때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2대가 길을 따라 올라오는 것을 보자 이를 군의 지원 병력으로 오인한 124 부대원들은 경찰 병력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버스에 수류탄을 던진 뒤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김신조의 회고에 의하면 버스에 국군 병력이 대거 타고 있다고 오인하여 벌인 일이라는데 사실은 민간인들이 타고 있던 원효여객 소속 1813번 시내버스였다. 시간도 야간이라 헤드라이트 빛 때문에 내부가 보이지도 않으니 패닉에 빠져 무작정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
31명 중 조장 김종웅이 최규식 총경을 향해 기관단총을 발사하면서 교전이 시작되었다. 최규식 총경은 지근거리에서 총탄 여러 발을 맞아 현장에서 전사하였고 검문을 하며 시간을 끌던 정종수 순경[38]은 동료 형사와 함께 무장공비 1명을 생포하였으나 이후 후퇴하던 공비들의 총에 중상을 입었고 치료 도중 사망했다. 그 외에도 많은 경찰이 부상당했으며 민간인 5명이 사망했다. 시내버스의 승객과 기사를 포함해 인근에 있던 애꿎은 시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고, 그중 1명은 자동소총에 실탄과 수류탄 등 온갖 살상무기들을 몸에 지니고 뿔뿔이 흩어진 공비들이 저지른 만행에 희생됐다. 서대문구 홍제동 민가에 쳐들어간 공비들이 총격으로 살해했던 것.

그런데 무장공비 중 김춘식 소위는 위의 형사들이 계속 말을 걸어대는 통에 혼자 대열과 떨어져 있다가 총성이 울리는 순간 형사들에게 짱돌을 맞고 제압되어 곧바로 생포되었는데 치안국으로 압송되어 무장해제를 받던 도중 실수로 수류탄 핀이 뽑히는 바람에 어처구니없게 폭사했다. 결국 사살로 치게 된다. 실수가 아니라 자폭이라는 설도 있으며 그나마 이때 직접 무장해제를 시키던 채원식 치안국장이 공비를 복도 쪽으로 밀어서 아군 측은 다행히도 부상자 없이 전원 생존했다.

인왕산비봉산, 의정부시 등지로 도주한 공비들은 그 뒤 크고 작은 전투를 통해 대부분 죽었다. 최종적으로 29명 사살, 1명 투항(김신조 소위), 미확인 1명이다. 대한민국 측의 피해도 상당했는데 최규식 서장을 비롯하여 제1보병사단 15연대장 이익수 대령[39]이 교전 중 피격당해 전사했고 특히 도주 과정에서 공비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여러 건 발생하기도 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40]나 경복중학교(현 경복고등학교)의 수위[41] 등 일반인, 심지어 참관 및 작전 지도차 온 주한미군까지 사망할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의도가 있었든 아니었든 무고한 민간인들도 희생당했다. 총 32명 사망(군 장병 25명, 민간인 7명)에 52명이 부상을 당했다.

6. 진행

사건 직후 고양군파주군 일대에 통금령이 떨어졌고, 이는 1월 23일까지 이어졌다.

1월 22일 새벽 2시 25분에 제30사단 92연대의 잠정 1개 중대와 5분 대기조가 인왕산 하단의 세검정 계곡에 있던 바위에서 무장공비를 발견했다. 군에서 "나오면 살려준다"고 회유하니 결국 무장공비 1명이 수류탄을 들고 나왔다. 자폭할 수도 있었지만 수류탄을 그냥 떨어뜨리고 손 들고 나왔다.[42] 그가 바로 김신조 소위였다. 때문에 국방부 공식기록은 '생포'였고 세월이 흐른 후 책이나 언론에서는 '투항'이나 '자수'라는 용어도 쓰인다. 정황상 어느 쪽이나 맞는 말인 듯. 김신조는 아예 독립가옥에서 전투가 없었고 자신은 검문을 피하기 위해 무기와 장비를 모두 드보크에 묻어두고 자폭용 수류탄 한 발만 들고 있었으니 자수라고 한다.

04시 15분경 김신조를 인계받은 방첩대는 그를 보자마자 '무기는 어디에 숨겨뒀냐?'고 물었다. 특공대원 25명은 김신조에게 직접 안내받아 전날 김신조가 매복했던 비봉 승가사 옆 200미터 지점에서 드보크를 찾아 침투 시의 일부 장비를 회수하였다. 이후에도 김신조는 정보 제공 등의 방법으로 공비 소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016년 6월 28일 출판된 당시 방첩부대 특공대장이었던 이진삼 대위[43]의 '별처럼 또 별처럼' 참조.

당시는 공비들이 엄청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이때의 무장 공비 사건으로 김신조의 증언에 의하면 체포 후 자신과 함께 산악지대를 누볐던 남한 특공대원들이 북한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자신과 실력이 똑같았다고 한다. 김신조가 산에서 죽어라 뛰었는데도 특공대원들이 옆에 딱 달라붙어 뛰었다고 한다.[44] 게다가 대한민국 국군과 교전이 시작되니 모두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부대가 완전히 와해되고, 끝내 전멸의 길을 걸은 점도 이들이 민간인에게 발각되거나 남한 군경과의 교전 가능성을 인지하거나 이에 대비한 훈련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련한 침투 전문가가 작전을 세웠다면 이런 돌발 급변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에 대처하는 준비나 훈련을 시켰을 텐데, 북한의 124부대에는 이런 치밀한 작전 수립체계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7. 결말

8. 사건의 직접적인 여파

위의 결말에서 대부분의 중요한 이야기는 나왔지만 그 밖에 이 사건이 후세에 크게 남긴 영향이 몇가지 있다.

9. 생존자

추정 인원이나 생사 불명 인원에 대해서는 말이 상당히 많았다. 80년대 자료에는 생사불명 1인은 북한에 가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사실은 32명이었는데 하나는 살고 하나는 북에 올라가서 부상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 중에는 3명이 살아서 도주했는데 박재경 외의 2명은 숙청되었다는 자료도 있다.관련기사

2004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신조 목사는 2명은 북으로 도주하였으며 그 중 한 명은 이후 2000년에 송이버섯을 들고 서울 땅을 밟은 박재경 대장이라고 주장했다.[60] 당시 김씨를 직접 조사했던 백동림 전 보안사 수사과장(당시 방첩부대 수사계장·대위)은 3인의 시체를 끝내 찾지 못했으며, 후에 북으로 도주에 성공한 한 군인의 이름과 그를 영웅시하는 내용을 북한 방송에서 확인했고 여러 정황상 한 사람만 살아서 갔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3인의 시체를 찾지 못했다는 것은 2명이 도주했다는 증언과도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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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6A3A3,#000> 김신조 사건 이후[61]

2000년 9월 11일 서울신라호텔 에메랄드 룸에서 열린 칠보산 송이버섯 선물 전달 행사. 가장 좌측은 임동원 대통령 특보, 우측 끝은 박재경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부국장. 박재경 대장은 당시 송이버섯을 전달하러 방문한 김용순 특사의 수행원이었다.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귀환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개성 CIQ에서 박재경(좌측) 인민무력부 부부장에게 송이버섯 선물을 받고 있다. 그런데, 2015년 7월 박재경현영철에 이어 다음 숙청 타겟이 된 것을 알고 해외로 망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게 사실이라면 인생무상이겠지만, 2022년, 2023년 북한 열병식에서 은퇴 장령으로 대접받는 모습이 북한 TV를 통해 보도되어 망명설은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10. 기타



[1] 원래는 청와대를 비롯한 국방부, 미 대사관 등을 목표로 하였으나 계획이 축소되었다.[2] 6.25 전쟁 이후 1965년에 설치된 미군 지역만 철책선이지만 다른 지역은 나무로 되었던 경계선이었다. 김신조 사건 이후 군사분계선 전체에 철책이 설치되었다.[3] 육군과 해군에서 2사관학교도 창설되었으나 육군은 3사관학교에 통합, 해군은 폐지하였다.[4] 인왕산은 1993년, 북악산은 2006년, 우이령은 2009년, 청와대는 2022년에 민간인에게 개방되었다.[5] 새로운 입대자부터 서서히 늘린 게 아니라 소급적용하여 의무복무중인 모든 장병의 복무기간이 일괄적으로 연장되었다. 당시 권위주의적인 사회였기에 가능했지 오늘날이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평이 많다. 또한 이후로 군복무 기간이 줄어들고 있으니 현재까지 군복무 기간이 연장된 유일한 상황이 되었다.[6] 31명 중 29명 사망(조장 김종웅 포함)[7] 기자회견 당시의 모습이 체포 당시의 얼굴과 약간 다르다. 지금은 종영된 예능인 MBN황금알에 출연하여 한 증언에 따르면 당시 생포당해서 가뜩이나 분노했는데 기자회견에 대한 언질조차 주지 않은 채 수갑 채우고 의자에 앉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8] 1.21 사태의 관련 기록들 중 대다수가 이 복장을 "국군 복장", "국방색 국군 군복" 등으로 칭하는 이유는 1950년대~1960년대 한국군 군복 중에 저 복장과 같은 카키색 군복이 실존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군사지식에 관심이 없는 많은 일반인들은 올리브색뿐만 아니라 카키색도 그냥 국방색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생각해 보면 왜 저 군복이 "국방색" 군복이라고 불렸는지 이해할 수 있다.[9] 나중에 채널 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김신조가 직접 밝힌 바에 의하면 해당 무장은 전원이 소지하지 않았으며 이 방망이를 소지한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고 한다. 즉, 맨 선두에 선 2명의 공비가 갖고 보초 병력을 때려눕히기 위해 손목의 고리에 미리부터 휴대하고 있었다.[10]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11]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 세검정 즈음에 있던 고개. 현재의 자하문 고개로 사건을 언급한 비석과 사망자의 동상이 있다.[12] 김춘식이라는 공비 1명도 생포되었으나 치안국으로 압송하는 과정에서 무장해제 도중 수류탄 핀이 뽑혀 폭발하여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측 피해는 없었고 사살로 포함한다.[13] 박재경으로 알려져 있으며 제1보병사단 15연대장 이익수 대령을 사살하고 나서 북한으로 도망쳤다. 이후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역임하다가 은퇴 후 명예직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14] 대한민국 국군에 투항해 협조했다. 총을 쏘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져 풀려났고 김재현으로 개명했다. 서울성락교회 목사로 일하다가 목회직에서 은퇴했다.[15] 실제로 동년 10월에 후방에 유격전 근거지(해방구)를 만든답시고 울진, 삼척 지역에 100여 명 규모의 대규모 게릴라를 침투시켰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문서 참조.[16] 당시 흐루쇼프소련이 서방과 화해를 모색하는 평화공존론을 주장하자 중국과 북한이 소련을 비판하고 이후 중국과 소련은 1962년 중소결렬로 인해 서로 틀어진 데다 얼마 뒤 중국은 1966년 문화대혁명으로 북한 체제를 비판했고 이에 따라 북한도 중국에게 반발을 하는 바람에 동아시아 쪽 사회주의 삼국의 동맹 관계가 틀어질 대로 틀어진 상황이었다.[17] 후일 기밀문서를 통해 북한이 직접 파병은 하지 않았지만 공군 조종사들을 비밀리에 보내 베트남 군복을 입혀 작전에 내보냈다는 것이 드러났다.[18] 1967년 말에 한국에 침투한 3인조 간첩의 남한 주민증 습득임무, 남한 침투목적 특수부대의 존재파악, 예상 침투 경로의 항공사진 자료를 수집해 보고했다.[19] 전군경에 대간첩작전 경계태세가 발령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공비들의 서울 침투가 확인되자 부대들이 즉시 빠르게 동원되어 공비들을 포위, 섬멸할 수 있었다. 서대문, 종로경찰서장 같은 경찰고위관료들이 밤 늦은 시간까지 관할구역에 남아 직접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게 바로 이 경계령 덕분이었다. 이는 평시에는 불가능할 일이다.[20] 북한 입장에서 대한민국이 철저히 침투를 사전대비하고 있다면 작전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1월 17일 대한민국 영토로 침투한 무장공비 일당에게 마지막으로 전송한 암호메시지인 전원 원대복귀를 명령한 데에는 이러한 사전 배경이 깔려 있는 것이다. 결국 원대복귀 명령을 수신하지 못한 무장공비들의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21] 당시 남방한계선은 대부분 지역이 나무로 만든 삼발이 정도밖에 설치되어 있지 않는 등 방비가 허술했다. 남방한계선이 완전히 철책으로 둘러진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특히 미군과 한국군의 담당 지역의 경계선을 따라 침투하여 더욱 손쉽게 돌파 가능했다고 한다.[22] 渡涉, 물을 건넘[23] 이만갑에 출연한 김신조는 이 때부터 어렴풋이 "아, 이건 실패다"라고 느꼈다고 한다.[24] 후술하지만 복귀하라는 명령으로 밝혀졌다. 북한 입장에서는 공비 한 명 키우는 데 오랜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에 침투 사실을 들킨 이상 차라리 복귀시키는 편이 합리적이었던 것. 하지만 이때부터 해석을 할 수 없어 복귀 명령임을 몰랐던 공비들은 아예 침투기간 내내 무선침묵을 해 버렸다. 이때 김신조는 "아 당국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암호를 풀지 못한 이유는 본인들에게 있었는데 난수방송을 통해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방송을 듣는 데는 성공했으나 해석하기 위한 난수표를 잘못된 것으로 들고왔으며 정작 가져와야 할 난수표는 놔 두고 왔기 때문이다.[25] 후일 김신조의 인터뷰에 의하면 작전 도중 만나는 민간인은 모두 죽이라고 지침을 받았는데 시체를 숨기기 위해 한겨울에 꽁꽁 언 땅을 파기 귀찮아서 혹은 이들의 행색을 보고 불쌍해서 땅 파기 힘들다는 핑계를 대며 그냥 살려줬다고 한다. 동료들 중에는 죽이자는 사람도 있었는데 김신조는 말렸다고 한다. 훗날 모 종편방송 인터뷰에선 4형제 중 2명은 죽고 나머지 형제들과는 아직도 연락하고 만나기도 한다고 했다.[26] 공비들은 프롤레타리아를 억압 아래에서 해방시키려고 대남공작하는 것이라고 믿었다.[27] 김신조 “北선 비겁자, 南선 공비 손가락질…‘꿋꿋이 살라’ 백선엽 격려 큰 힘”, 2020-08-21, 문화일보에 의하면 김신조 일당들은 자신들이 환영받고 있다는 것에 감격하여 우씨 형제들을 죽일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28]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적에게 아군의 존재를 누설할 것이 뻔한 이 민간인을 죽여야 하는가, 석방해야 하는가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한다는 전제 하에 매우 복잡한 딜레마가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국 영화 론 서바이버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나오는 소재. 영화 론 서바이버의 배경이 된 실제 레드 윙스 작전에서는 4명의 네이비 씰 대원들이 자신들을 발견한 양치기 3명을 죽일지, 살릴지 의견이 서로 갈렸는데 결국 지휘관인 마이클 머피 대위가 풀어주라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풀려난 양치기 소년이 탈레반에 누설하는 바람에 네이비씰 대원 중 3명이 사망했고 그들을 구원하러 온 치누크 헬기도 격추되어 탑승자 20명이 몽땅 사망했다는 처참한 결말. 당시의 유일한 생존자가 론 서바이버의 저자 마커스 러트렐이다.[29]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1 2회에 나오는 정보에 따르면 이 속도를 무려 30kg 완전군장을 하고 맨발로 주파했다고 한다. 이미 남파 전에 최종 인원을 정하고 산악지대에서 맨발로 완전군장을 한 상태로 신속하게 목표 지점까지 주파하는 반복 훈련을 했다. 당시 대한민국 육군의 완전군장 후 산악행군 속도는 평균 시속 4km로 김성은 당시 국방부 장관은 "파주시에서 북한산비봉까지 행군을 한다면 해병대도 이틀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완전군장한 채로 그렇게 빠른 속도로 행군한다는 것은 내 군대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 발언했다고 한다.[30] 공비 출발 시간과 5시간 정도 차이난다. 다만 국군의 대응은 상기 서술과 같이 당연히 이게 전부는 아니다. 해당 지역 담당 사단인 25사단의 즉각적 대응을 기준으로 공비 위치와의 간격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한 것뿐이며 실제로는 지역 위아래로 전부 차단선이 펼쳐지는 것은 물론 국가 단위로 긴급대응 중이었다.[31] 이들은 나무꾼들을 풀어 주고 난 후 북한산 계곡을 따라 이동하던 도중, 북한에서 받은 지도에는 없던 이 이 나타나 당혹스러워했다 한다. 진관사는 6.25 때 파괴된 절이었는데, 1960년대 중반부터 마침 재건 중이었다. 북한에서는 이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으니 6.25 당시를 기준으로 지도를 만들었을 테고, 이로 인해 그들의 지도에는 누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상 밖의 상황이었던 데다가 절의 개까지 짖어대 위치가 노출될까 봐 매우 불안해했다고 한다. "박정희 목 따러 왔다"는 김신조, 진관사 앞에서 멘붕, 2020-11-14, 중앙선데이[32] 예정에 없던 숙영이다. 길이 험해서 많이 못 간 것.[33] 국군에게는 심리적 기습에 가까웠는데 다대한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무려 대통령을 암살한다는 것은 미처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많은 회고록과 보고서에도 일관되게 '청와대 경비를 놓쳤고 그때 공비들이 습격했다면 그대로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고 언급한다는 점에서 국군에게 다대한 충격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34] 서장이 순찰을 돌고 있다가 직접 발견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나듯이 결코 정부 차원에서 경계를 소홀히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2시간이 넘도록 성인 남성 30여 명이 코트를 입고 무리지어 다니는 걸 아무도 묻거나 검문하지 않았다는 점(적지 않은 통행인 및 군경들을 지나쳤다)이 더 비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35] 여기서 이각현 서장이 검문을 시도했으나 공비들이 CIC라고 주장하였기에 더 물어보지는 못하고 후술할 조치를 시행했다는 기록이 많다. 다만 이 경우에도 신중을 기하기 위해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추적감시하는 걸 방첩대라 무조건 열어 줬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36] 저 두 형사들도 직감적으로 공비라고 예상을 했지만 머릿수로도 밀리고 총도 없던 터라 쓸데없는 잡담을 해 가며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당시 공비들이 시내버스 한 대를 세운 뒤 서울 시내로 진입하려던 참이었다.[37] 최규식은 청와대를 관할 구역에 두고 있는 종로경찰서장이었고 군 복무 시절 박정희의 부관으로 일한 측근으로 전역 후에도 중용되고 있었다.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었기에 이들이 자기들을 방첩부대 소속이라고 주장해도 물러서지 않고 수하를 한 것.[38] 1935년 7월 17일 경북 상주 출생. 전사할 당시에는 순경이었으며 전사 후 태극무공훈장과 함께 경사로 1계급 추서(당시에는 경장 계급이 없었다). 2017년 6월 5일엔 전사한 지 무려 50년 만에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고개 현충시설에 그의 흉상이 건립되었다. 당시 함께 전사한 최규식 총경은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추서되었고 1969년 청와대 인근에 동상이 건립되었지만 정종수 형사는 하위 직급이었던 탓에 그동안 순직비 이외에 그 어떠한 것도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39] 북으로 도주에 성공한 박재경이 사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후 준장으로 추서되었다. 당시 군에선 '일개 병사도 아니고 연대장이 전사할 정도면 이건 명백한 작전 실패'라며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임무 수행 중 전사했는데 응분의 포상을 하지 않는다면 군의 사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결론을 내리고 이익수 대령에게도 훈장 및 계급 추서와 같은 예우를 해 주었다. 출처는 이재전 회고록.[40] 당시 22세의 여성 윤정순 씨. 홍제동 파출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약혼자와 같이 차를 기다리던 중 총소리에 놀라 근처 가게로 뛰어들어가다 가슴과 배에 총탄을 맞아 사망했다.[41] 무장간첩 중 5, 6명은 무리지어 경복중·고교장 자택을 뛰어넘고 달아났다. 경찰이 집중사격했으나 이들은 달아나면서 수류탄을 집 뒷마당에 던져 변소와 유리창 등을 파손했다(집주인 가족들은 안방에 몰려 이불을 뒤집어쓴 채 긴장된 하루 밤을 새워야 했다). 공비들은 학교 담으로 엄폐하며 계속 응사했고 그러던 중 수위 정사영 씨가 놀라 뛰어나왔다가 이들이 던진 수류탄 폭발에 사망했다.[42]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때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하자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43]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으로 전역. 국회의원 당시 국회에 출두한 현역 장성들에게 군번줄 착용 여부를 물어 화제를 모았다.[44] 단 이때 김신조는 이전에 있던 산악고속행군으로 체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음을 감안해야 한다.[45]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사실 김신조는 당시 이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거기에 있었던 적도 없다고 이만갑에서 밝혔다. 김신조 루트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그저 자신이 살아남았으니까'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이용한 루트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세검정 쪽이다.[46] 인터넷 이용이 어려운 노인들에 한하여 전화 신청이 가능하며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신청을 받고 있다.[47] 당일치기 서울특집에 이수근의 북악산 성곽길 미션에서 나온다.[48] 후일 현 수방사 제1경비단의 두 전신 중 하나인 제30경비단으로 승격되었다.[49] 사실 북한은 꼬리를 잘라야겠다 싶으면 극렬 분자 운운한다.[50] 북한이 이들의 유해 인수를 거부하기 때문이다.[51] 간첩식별 위한 제도가 43년간 존속…번호 자체에 개인 고유정보 다 담겨, 2011-11-28, 한국경제[52] 당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6자리였다. 현재의 뒷자리는 개정을 통해 6자리에서 7자리로 개정된 것으로 뒷번호 두 번째와 세 번째 숫자는 출신 지역으로 변경된 것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인 즉, 박정희가 지금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을 경우 100001이 아니라 1710001이 되었을 것이다.[53] 당시 말년병장이었던 사람의 회고를 들어 보면 제대 날짜 세면서 매일 개울 가서 천렵하고 낚시하는데 갑자기 간첩이 넘어왔다고 하더니 3kg짜리 모래 주머니를 발에 채우고 매일 뛰게 시켜서 지옥 같았다고 한다. 이 때 군복무 기간이 늘어나면서 피해를 봤던 어느 사람은 전역 후 김신조와 우연히 마주치자 "네놈 때문에 군대에서 더 고생했다" 라며 멱살을 잡고 욕을 했다고 한다.[54] 물론 지금은 전투경찰순경은 물론 의무경찰 제도까지 모두 폐지되었다.[55] 예를 들어 가, 나 부대 사이에 초소 A, B, C, D가 있으면 가 부대가 A, C초소를, 나 부대가 B, D 초소를 담당한다.[56] 실무진의 책임자 격이었던 이재전 장군이 쓴 회고록이 국방일보에 연재되었으니 참고 바람.[57] 과목 자체는 2011년에야 폐지되었다.[58]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불과 1주일 앞두고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를 일으켰고, 1988 서울 올림픽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일으켰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제2연평해전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전쟁 중인 국가이자 안전하지 않은 나라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며 개최를 방해하는 작전을 펼쳤다.[59] 심지어 김일성 시기에는 이었고, 려행증 제도는 평양 주민들에게도 적용되었다.[60] 1·21 청와대 습격사건 생포자 김신조 전격 증언, 2004-01-29, 신동아[61] 위의 사건여파 문단 참조.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평안도 출신.[62] 북한 입장에서도 공비는 훈련에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에 쓸데없는 인력 낭비를 자제하기 위해 복귀하라고 한 모양이다.[63] 김신조 부대에 훈련내용을 하달한 124부대장 이재형과 우명훈은 인민위원회 건물을 진짜 청와대로 간주하고 거기 있는 인원들은 모조리 실탄으로 사살해도 된다는 지시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훈련 중 어떤 불상사가 생겨도 조선로동당이 전부 책임진다고 했다.[64] 김신조는 훗날 그 실전적이기 그지없던, 아니 실전 그 자체였던 훈련 당시 사회안전원과 노농적위대원 12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65] 이렇게 살벌한 팀킬로 전투력을 키우는 훈련은 조선시대부터 했던 것이며 조선인민군이 조선군의 전통을 잘 이어받은 군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훌륭한 사례이다.[66] 김신조 역할은 배우 성동일이 맡았으며 조장 김종웅(극중에선 김시웅이라는 이름으로 각색됨)의 역할은 야인시대에서 부산 도끼파의 두목 역을 담당한 황진영이 맡았다.[67] 코리아게이트와 영웅시대 두 드라마 모두 박정희 대통령 역할은 배우 독고영재가 맡았다.[68] 노량진 학원가 일대도 타격을 입기는 했으나 원래 노량진수산시장이 근처에 있을 정도로 교통의 요충지여서 타격이 덜했고 나중에 일대가 학원가가 되면서 대박을 쳤다.[69] 후일 유명한 탤런트가 됐다곤 하지만 누구인진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