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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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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개인적 면모3. 일화
3.1. 대통령이 되기 이전3.2. 대통령 재임 시절
4. 기타
4.1. 키(신장) 관련

1. 개요

대한민국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여담을 다루는 문서.

2. 개인적 면모

이한수 전 서울신문 사장은 "육 여사가 죽은 뒤 박 대통령의 주변에 '인의 장막'이 둘러쳐져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 주변의 많은 인사들이 그의 '실정'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 박정희'의 소탈하고 서민적인 면모는 유신체제 출범 뒤 그 '물'이 많이 빠졌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증언이다. 이 무렵부터 그의 술자리에는 막걸리보다 '시바스 리갈'이 자주 올라왔고, 여자들과의 추문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물구나무 서기와 검도로 체력을 단련했던 그가 골프에 푹 빠진 것도 이 무렵부터다. 박 대통령이 '장학생'으로 관리하던 몇몇 기자들과 사이가 틀어진 것도 이 때다. 박 대통령은 1978년 출입기자들과의 만찬에서 술에 잔뜩 취한 채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한 일간지 기자의 이마를 들이받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독재권력이 종말에 가까울수록 ‘인간 박정희’도 서서히 망가져 갔던 것이다.
파일:2번타자 박정희.jpg
타석에 들어선 2번 타자 2루수 박정희[19]

3. 일화

3.1. 대통령이 되기 이전

3.2. 대통령 재임 시절

4. 기타

파일:박정희와 호시노 아이.png}}}

4.1. 키(신장) 관련

박정희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단신 이미지를 갖고 있는 대통령이다.[45][46] 세간에는 박정희의 신장이 158cm로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키 작아도 유능하고 카리스마 넘친다'라며 치켜세우는 반면, 싫어하는 사람들은 '키 작은 놈이 포악하다'는 식으로 깎아내리곤 한다.[47] 그런데 구글 검색 결과 박정희의 신장은 165cm로 나오고,[48] 대통령 재임 시절 작성된 공무원 인사기록카드상 신장은 163cm 또는 165cm로 기재되어 있다. 박정희에 대해 연구한 조갑제는 그 중간인 164cm인 걸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는 박정희가 1910년대생임을 생각하면 평균 수준의 신장이다.

사실 박정희는 키가 작지 않았으며,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단신으로 알려졌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첫째로 그의 아버지 박성빈과 형 박상희의 신장은 각각 170cm와 180cm 정도였는데, 그들이 살던 시대에 이는 상당히 장신이었다. 특히 박상희는 현대에도 충분히 장신으로 취급받는다. 그의 다른 형제들도 모두 장신이었다고 전해진다. 그에 반해 박정희는 나이 차이가 40살이 넘는 아버지보다도 작은 키였기에, '가족들은 다 장신인데 박정희만 작았다'가 당시 평균 이하의 단신인 걸로 와전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둘째로 그의 배우자인 육영수의 신장은 170cm로, 당시 여성으로선 엄청난 장신이었다는 점이다.[49] 남편인 박정희보다도 클 정도였으니 대통령 내외가 함께 다니면 박정희는 더욱 작아보였기에 단신이라는 말이 퍼졌다는 설이다. 셋째로 박정희는 소년 시절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롤 모델로 존경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나폴레옹은 단신의 대명사로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50] 사람들이 박정희가 같은 단신으로서 나폴레옹을 존경한 걸로 와전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단 박정희 본인부터가 자신을 단신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잦았다. 일례로,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유세 중에 박정희는 조선시대 황윤길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키가 작고 몸이 마르나 눈이 호랑이 같다'고 평한 것을 '나와 닮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또한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박정희는 누가 자신의 키에 대해 언급하면 '작은 고추가 맵다'고 맞받아쳤다 하며, 자신의 단신을 유머 소재로 삼아 주변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다고 한다.# 박정희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그의 첫인상으로 단신을 꼽은 사례도 많다. 최측근 김종필은 박정희의 첫인상을 '참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새카맸다'고 회고한 바 있다.# 영부인 육영수는 박정희와의 맞선 때 첫인상을 떠올리며 '남자가 체구가 작은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말하는 태도가 아주 침착해보였다'고 증언했으며,# 박정희의 前 내연녀 이현란도 '키도 조그마한 양반이 볼품이 없었다만, 일본 육사를 나와서 그런지 박력과 기품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박근혜도 2024년 11월 14일 박정희 탄생 107돌 행사에서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작은 체구로 어찌 그런 인생을 사셨는지"라고 언급했다.#

결정적으로 대구사범학교 5학년이던 1936년에 받은 신체 검사에선 159.2cm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1936년은 박정희가 19세가 되던 해였는데, 일반적으로 남자의 성장기는 10대 후반에 끝나기 때문에 성인기에도 줄곧 이 정도 신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51] 1937년 징병검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 청년 남성의 평균 신장은 164cm 정도로, 박정희의 신장은 평균보다 5cm 가량 작았던 것이다. 이는 1980년대~1990년대 출생자 기준(평균 173cm) 168cm, 2000년대 출생자 기준(평균 174cm) 169cm 포지션이다. 게다가 박정희는 키가 커 보일 목적으로 4cm 정도 높은 굽의 구두를 제작해 신었던 걸로 밝혀졌다.# 박근혜(162cm)와 찍은 사진으로 봐도 대략 158~160cm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김종필중앙일보에 연재한 회고록 '소이부답'에서 10.26 사건 당시를 회상하던 중 박정희의 키가 156cm라고 언급한 바 있다.[52]

결론적으로 프로필 키는 164cm 정도로 나오지만, 실제 키는 최대 160cm인 것으로 추정된다. 1917년 태생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키가 164cm이므로 박정희는 당시 기준으로도 단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53]


[1] 그래서 육영수 여사가 직접 최불암에게 전화를 걸어 "최불암 씨가 담배를 태우실 때마다 저 양반도 따라 태워요."라며 담배 피우는 장면을 줄여줄 것을 요청했고 그 다음 녹화분부터는 흡연 횟수를 회차당 1회로 줄였다고 한다.[2] 다만 딸인 박근혜는 비흡연자이며, 현재 한국의 보수정당에서는 흡연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고 한다.[3] 출처 : 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1권.[4]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이를 참고한 듯한 묘사가 등장한다.[5] 김형욱의 회고록에서는 “박정희가 맘에 안 드는 사람에게 재떨이를 집어 던지는 특기가 있었다”고 묘사했다(…)[6] 새마을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하기도 했다. 단, 작곡은 음악을 전공한 셋째딸 박근령이 "아버지의 요청으로 내가 작곡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반면, "풍금을 켜면서 직접 작곡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박정희가 풍금 코드를 기반으로 노래를 만들고, 박근령이 곡을 다듬고 악보작업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7] 일제시대 때 음악교사를 했으니 엔카 등 일본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8] 김계원과 박정희는 서로 키를 맞대어 보고 누가 더 작은지 옥신각신할 정도로 어린이들처럼 노는 사이였다고. 김계원에 따르면 박정희, 김계원, 김재규는 삼총사로 불릴 정도로 어울려 다녔다고 한다. 심지어 박정희를 사살한 김재규 그 자신도 재판에서의 진술에서 자신과 박정희의 관계를 "형제라도 그렇게 할 수 없을 정도"의 친근한 사이었다고 묘사했다.[9] 저 자리를 역임했던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박정희와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이니 사적으로 친분이 깊어서 반말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저 반말이라는 어투의 수위도 막대하는 어투가 아니라 "임자 생각은 어때?", "김형욱이처럼 사람 막 안패도 되니까 임자가 해!" 정도였다고. 다만 고향 후배인 김재규에게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도 유난히 공식석상이나 참모들 앞에서조차 거리낌없이 막대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습관들이 10.26 사태의 발화점이 되지 않았나 하는 의견도 존재한다.[10] 세간의 인식과 달리 차지철은 박정희와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거니와 상당히 내성적인 사람이라서 박 대통령과도 철저히 상사-부하의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박정희 역시 차지철에게 말을 걸 때 "차 실장 생각은 어떻소?"와 같은 식의 어투를 유지했다고 한다.[11]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으나 성격이 아이 같은 면이 있고, 호색하지 않고, 군부 인사들 중엔 그나마 돈을 덜 밝혀서 박정희와 육영수의 총애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런 차지철의 면모를 극대화해서 코믹하게 표현한 것이 제4공화국(드라마)에서 이대근이 연기한 차지철이다.[12] ##[13] 경제학자 장하준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바스 리갈을 마시다 부하에게 암살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양주가 굉장히 좋은 술인 줄 알았어요. 영국에 와서 보니 가장 값싼 위스키 중 하나더군요. 어느 나라 독재자가 시바스 리갈 같은 싼 술을 마십니까?”#[14] 다만 장하준의 말대로 시바스 리갈이 지금에야 흔하디 흔하고 평범한 술이지만, 그의 주장에는 오류가 있다. 박정희 시대 당시 위스키의 위상을 현재와 대입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1970년대 한국에서 시바스 리갈 이나 조니워커 같은 위스키는 굉장히 구하기 힘들었고, 박정희는 외국에서 구한 로얄 살루트를 굉장히 아껴 먹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원액이 아예 없는 도라지 위스키나 원액을 아주 찔끔 넣은 대중 양주가 판을 치고 시바스리갈이나 조니워커 위스키 같은 양주는 사치품으로 가혹한 세금을 매기던 시절이기에 지금의 시바스리갈 12년의 위상과 1970년대 시바스리갈 12년의 위상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지금에야 시바스 리갈 12년은 코스트코나 대형마트, 편의점에서 4만원~5만원대면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널렸고, 로얄 살루트도 면세점에서 싸게 구하거나 코스트코에서 20만원대에 팔고 있으니 호기심으로나 장식용으로 눈 딱 한번 감고 사볼수 있는 정도이다. 여의치 않으면 로얄 살루트는 일본이나 대만에서 사오면 10만원대에 21년을 살 수 있다. 지금에야 싱글몰트 위스키 고숙성은 백만원, 천만원이 넘어가는 세상이고, 박정희가 먹었다는 로얄살루트나 시바스리갈이 코스트코나 마트에 쌓아놓고 파는 세상이지만, 박정희 시대의 시바스 리갈 12년과 로얄 살루트는 위상 자체가 아예 달랐으니(여전히 로얄 살루트는 발렌타인 30, 조니워커 블루와 함께 고급 블렌디드 위스키로 꼽히고, 박정희의 영향으로 2020년대 아직까지 시바스 리갈이 고급 술인줄 아는 노년층이 있긴 하지만) "세상에 어느 독재자가 값싼 시바스리갈을 마시냐"라는 장하준의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특권층, 상류층이 아니면 구하기 힘든 사치품이었다는 것.[15]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금슬이 보통이 아니였던 모양인지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이후부터 흡연과 폭음이 늘었었다는 당시 청와대 참모의 증언도 있고 술자리에서도 유독 슬픈 노래를 많이 불렀었다고 한다.[16] 남산의 부장들에서 이러한 모습이 잘 반영되었는데 김재규와 술을 먹는 장면에서 막걸리를 먹다가 예전같지 않다며 한 모금만 먹고 말아버린다던가 영화 후반부에는 차지철과 비싼 양주를 먹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인간성을 잃고 사치스러워지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그려졌다.[17] 이러한 것을 아비투스라고 부르는데,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서는 사회적 계급이 크게 올라가도 어린 시절에 겪은 생활 방식이나 어려서 먹던 음식 등을 여전히 찾는 사람들이 많다. 또 어릴 때 겪은 가난의 영향으로 인해 극도로 검소한 생활이 아예 몸에 배어서 딱히 의식적으로 아끼려 하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흙수저 집안에서 자수성가한 이명박도 식성이 서민적이어서 음식을 별로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기로 유명했다. 국밥이 바로 그것의 정점. 유일하게 싫어하는 음식이 잡곡밥이었다. 어린 시절 백미밥을 못 먹고 잡곡밥만 먹었던 게 한이 되었기 때문으로, 그 시절 어른들 중에는 지금도 가난의 트리거 때문에 잡곡밥이나 보리밥을 안 먹는 사람들이 많다.[18] 이런 면모는 박정희 뿐만 아니라 20세기 동시대 독재자들에게서도 흔히 발견된다. 김씨 3대, 모부투 세세 세코 등을 제외하면 의외로 많은 유명한 독재자들이 식생활이 사치스러운 경우가 극히 드물었는데, 가령 스탈린의 아침 식사는 우유를 섞은 쇠고기 국물에 오트밀을 넣은 죽이였고, 점심과 저녁에는 스프와 생선을 즐겼다고 한다. 호화로운 생일케이크로 악명높았던 무가베도 평소에는 고기는 조금만 먹고 야채는 많이 먹었으며, 짐바브웨인의 주식이자 옥수수가루를 반죽한 사자(sadza)를 선호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는 장관들과 컵라면을 끓여먹었고,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는 염소 치즈, 사워 크림에 계란을 얹은 채식 라자냐, 젤리에 넣은 루마니아식 잉어, 간단한 토마토, 양파, 페타 샐러드를 곁들인 스테이크, 특히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요리한 스튜 등 상당히 서민적인 식사를 즐겨 먹었다.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역시 빵, 와인, 햄, 치즈, 올리브 등의 '스페인식' 음식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간소한 필리핀 음식'을 선호하여 고기는 잘 먹지 않는 대신 생선, 해산물, 야채를 좋아했고, 가장 좋아한 음식은 디넨뎅(Dinendeng)이라는 이름을 가진, 생선 튀김을 곁들인 야채 수프였다. 알바니아의 엔베르 호자의 식단은 아침으로 잼이 든 치즈 한 조각, 점심으로 야채 수프, 작은 양고기나 생선, 후식으로 신 자두, 저녁으로 요구르트였다고 한다.[19] 등번호는 1번, 왼손잡이지만 우투우타였다.[20] 도원 야구장(경기 인천시), 한밭 야구장(충남 대전시), 청주 야구장(충북 청주시), 전주 야구장(전북 전주시), 무등 야구장(전남 광주시), 구덕 야구장(부산직할시) 등.[21] 이때 화로 안에 불을 지핀 숯이 있었다.[22]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매우 놀랐습니다. 전투중인 사단 참모가 아내를 불러다가 며칠이지만 함께 생활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할 수 없는 군기문란이었습니다. 박정희 참모장은 대구를 오고가는 보급차량대를 관리하고 있었으니 그런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23] 위 문장구조는 토론 AnIcyAndWillingAmusement에 근거합니다.[24] 토론 AnIcyAndWillingAmusement[25] 당시에는 둘 다 준장 보직이었다. 실제로도 박정희가 6군단 부군단장이 되기 직전의 보직이 5사단장이었다.[26] 박정희백인엽에게 한 행동이 하극상이기 때문이다.[27] 1년 전인 1957년 제6군단 부군단장으로 재직 중 군단장인 백인엽 중장과 싸운 일로 보직해임 당해 제7보병사단 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이 일로 인해 진급에서 배제되었으나 당시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이었던 김정렬의 옹호로 간신히 소장에 진급한다.[28] 태국에 만찬장이니만큼 상당히 센 양주였을 가능성이 높다. 근데도 매우 빠른 속도로 거의 병째 마셨다는 언급을 보면 주량이 엄청나다는 것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29] 박정희의 수행원으로 추정된다.[30] 하지만 박정희가 늦둥이라 큰형보다 이봉순 씨가 2살 어리고 둘째형 박동희보단 1살 많았다.[31] 참고로 박치기 세례를 받은 강성재 기자는 이후 신군부에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해직당하였으나, 이후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했으며, 신한국당 소속으로 15대 총선에 당선(서울 성북구 을)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32] 장남 은희은(殷熙元)과 차남 은희준(殷熙俊)은 1950년 6.25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했으며, 장녀 은봉남(殷鳳男)[54]은 구미, 차녀는 대구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33] 박정희 집권시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 은퇴 후 1980년 4월 서울 중구 장충동에서 외국인 전용 관광호텔을 준공하여 운영.[34] 2018년 9월 5일 사망.[35] 친자매 듀오 그룹 릴리시스터즈의 언니 김성아. 본명은 김금자다.[36] 전처 김연순(金蓮順) 사이에선 2남 3녀 5남매를 두었다.[37] 기계식 시계이기 때문에 오버홀을 제때 해주지 않으면 망가지기 쉬워서 있던 물건마저 고장나 폐기되고 있다는 듯 하다.[38] 근데 아무리 박정희빨이라고 해도 대통령에 국회의원 다선이 아무나 하는것도 아니고,오히려 부모로써는 크게 성공했다고 보는 게 맞다.어차피 박근혜는 출소한다고 해도 더 이상 정치나 돈에 미련도 없을 것인 데다가 지지세력도 진짜 자기 일가친척조원진 등, 정말 쥐어짜봤자 고작 은지원 정도로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므로 사고도 칠 테니.[39] 과거 몰래 충무공의 유물을 팔아 치우려 했던 전적이 있다.[40] 그가 태어나서 자란 동네인 상모사곡동을 지나간다![41] 동백아가씨가 금지곡이 되었을 때 이미자를 불러서 직접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42] 1961년 말 외무부장관 사임 후 신민당 당수를 역임하는 등 야당 인사로 돌아섰다.[43] 기묘하게도 타카기의 성우 타카하시 리에가 맡은 캐릭터 중 【최애의 아이】호시노 아이가 있는데, 후술하듯이 호시노 아이와 박정희가 비슷한 면이 많다.[44] 공통점은 대략 한때 자신을 추종하던 자(김재규/스가노 료스케)에게 살해당했고, 죽기 직전 '사랑해'(한국: 라나에로스포의 노래 사랑해(베댓)라는 말을 남겼고, 아들과 딸(아들: 박지만, 딸: 박근혜, 박근령/아들: 호시노 아쿠아마린, 딸: 호시노 루비)이 있고, 자식이 자신과 같은 직업(박근혜: 대통령/호시노 아쿠아마린, 호시노 루비: 아이돌)을 선택했고, 별이 2개 있다(소장, 두 눈에 별)는 것 등이 있다. 또 기묘하게도 아이의 성우 타카하시 리에가 맡은 캐릭터 중 타카기 성씨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도 타카기 마사오고, 두 타카기 다 高木이다. 심지어 딸이 칼 테러를 당했다는 것까지 닮았다![45] 다른 남성 대통령들은 모두 자기 세대 평균보다 컸고, 노무현(168cm)이 평균 정도였다. 박정희의 장녀이자 역대 유일한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1950년대생 한국 여성치곤 큰 편으로 동년배 여성 대비 6cm 정도 큰 162cm이다.[46] 사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전 세계 국가 지도자 중 단신이었던 사례는 적은 편으로 평균 이상의 키를 가진 사람이 훨씬 많았다. 봉건 사회에선 잘 먹고 자란 상류층 출신이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절대다수였으니 당연히 키가 클 수 밖에 없었고, 민주 사회에선 유권자들이 대체로 체격이 좋은 후보에 대해 더 좋은 이미지를 갖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처럼 마초 성향이 강한 나라일수록 더욱 그러한데,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키는 167cm로 1940년대생 여성으로선 장신이었지만, 상대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키가 무려 192cm였기에 미국 내에서 '힐러리는 폼이 안 산다. 키가 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제법 있었던 것이 그 일례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도 예외는 아닌데, 김정일·김정은 부자나 블라디미르 푸틴처럼 단신 콤플렉스가 있는 독재자들도 키높이 구두를 애용할 만큼 키가 더 커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것만 보아도 사람들이 키 큰 지도자를 더 선호한다는 것은 명백하다.[47] 마찬가지로 대머리라는 두드러진 외모적 특징을 갖고 있는 전두환소수의 지지자들에겐 '탈모에도 개의치 않고 당당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겐 그저 좋은 까임 소재에 불과했다.[48] 다만, 구글 검색 결과 나온 신장 수치는 그저 알고리즘에 따라 나온 것이기에 정확한 자료는 아니다.[49] 2020년대 기준으로도 육영수는 20~30대 여성 평균(161~162cm)보다 훨씬 큰데, 저 시대엔 모델이나 농구·배구선수 수준이었을 것이다.[50] 그러나 나폴레옹은 당시 프랑스인 평균 키(164cm)보다 4cm나 더 컸다. 다만 18세기 프랑스의 징병검사 기록에 따르면 귀족이 대부분이었던 장교층의 평균 키는 174.6cm였고, 프랑스 상류층의 평균 키는 전체 평균보다 7cm 높은 171cm 정도였다는 통계를 볼 때 나폴레옹의 키는 본인이 소속된 계층 내에서는 작았던 것이 맞다.[51] 20대 초반까지 키가 크는 경우도 제법 있으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크더라도 1~2cm 정도에 그친다.[52]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의 특성상 나이가 듦에 따라 50대 이후엔 키가 2cm 가량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10.26 사건 당시 박정희는 60대 초반이었으므로 156cm는 노화로 인해 줄어든 수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젊은 시절 키는 158cm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53] 2020년대를 기준으로 하면, 170cm에 근소하게 못 미치는 사람이 자신의 프로필 키를 174cm로 적어놓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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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위 부문에서 언급했던 박정희 자신보다 열흘 더 빨리 태어났다는 동갑내기 조카딸. 그래서 은지원과는 61살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