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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정희 정부에 대한 평가를 다루는 문서."지지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가 6·25의 폐허에서 허덕일 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국민들에게 불러일으켰다. 정치를 하면서 우리가 최대 정적이었지만 국민들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평가할 만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3][4]
박정희는 한국 현대사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하나로, 긍정적인 면으로나, 부정적인 면으로나 한국 현대사에 있어 결코 건너뛰고 평가할 수 없는 인물로 여겨진다.김대중 전 대통령[3][4]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의 재건을 이끈 지도자라는 호평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인권을 억압한 독재자라는 악평이 공존한다. 때문에 한국 현대사에 대해 논할 때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제6공화국 출범 이후 보수 정권과 민주당 정권을 오가는 시대상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평가 역시 그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서 꾸준하게 최상위권의 긍정평가를 기록하고 있는 인물이다.[5]
2. 긍정적 평가
3. 부정적 평가
4. 논란이 있는 평가
[1] 2009년 SBS에서 방영한 육성 회고록 방송 中. YS는 박정희 정권 시절 초산테러, 의원직 제명 등 갖은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는 한평생 박정희를 증오하였으며 3당 합당 이후 보수계열 인사들, 특히 박정희 정부의 고위인사였던 김종필과 한배를 타게 된 이후에도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인 재평가는 한사코 거부하였다.[2] YS는 김대중 대통령이 재임중 박정희대통령기념관 건립을 추진하자 "박정희는 5.16 쿠데타로 헌정을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을 살상했으며, 영구집권을 꿈꾸면서 18년간 독재하다 부하에게 살해된 사람이다. 인권 탄압으로 냉엄한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의 기념관을 정부 주도로 짓겠다는 김대중은 정신나간 사람이다. 그런 돈이 있으면 어렵고 가난한 유신 독재의 피해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3] 출처. DJ 또한 YS와 마찬가지로 박정희 시절 갖은 정치적 박해를 받았고, 1973년에는 중앙정보부에 의해 일본에서 납치되어 살해될 뻔 하였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 화해와 용서의 정신을 내세우며 박정희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멘트를 여러차례 하였고, 집권기간동안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의 설립을 추진하고 예산을 지원하였다.[4] 당시의 이런 행보에 대해 DJP연합으로 공동정권을 잡은 김종필, 박태준 등 구 공화계 인사들의 존재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느냐 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미 그 이전에 서울의 봄 시기인 1980년 4월 26일 관훈클럽 기자회견에서도 김대중은 박정희 정부의 공과 과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잘한 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국민들이 "우리도 하면 된다. 하니까 되더라"는 자기가능성을 발견토록 한 것이다. 물론 우리 국민의 높은 능력과 본질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점은 지난 정권의 공이다. 앞으로 나올 정권도 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라고 답한 바 있다.#[5] 다만 박정희의 지지층은 60~70년대의 경제성장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노년층에 편중되어 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평가가 떨어지는 경향성은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