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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분폭리(三粉暴利) 사건은 국민 생활, 경제(건설)의 필수품이었던 설탕, 밀가루, 시멘트를 유통하던 재벌 기업이 독과점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세금포탈 및 엄청난 폭리를 취했고 이를 눈감아준 민주공화당 정권이 그 대가로 거액의 정치자금을 챙긴 사건이다.이들은 모두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수입에 달러를 사용해야 했다. 후진국에서 흔히 그렇듯이 공식환율과 시중환율이 큰 차이가 있어서 환전만 받아도 몇 배의 차익을 낼 수 있었다. 즉, 공식환율로 원료를 수입해서 시중환율에 맞춘 가격으로 제품을 파니까 엄청난 폭리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사건의 본질은 외화 사용허가 특혜를 얻기 위한 정치권 뇌물 사건이었다. 당시에는 한국의 외환사정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어서 달러를 구하려면 정부의 재무부장관의 외환사용 특별허가를 얻어야 했고 그 허가 자체가 큰 특혜였다. 민간인의 달러 소지는 불법이었고 전부 은행에 예금해야 했으며 유학생의 학비도 재무부장관의 사인이 필요했다.
문제가 된 기업들은 설탕은 제일제당, 밀가루는 대한제분, 시멘트는 동양 시멘트와 대한양회다.[1]
1964년 1월 15일 삼민회 대표 박순천 의원이 재벌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고 여당인 공화당은 이를 이용하여 정치자금을 챙기고 있다고 국회에서 폭로함으로써 일반에 알려지게 되었다.
2. 경과
박순천 의원의 폭로 이후 진상규명에 나선 민주당 류창열 의원과 삼성그룹[2]로 간의 싸움으로 번졌다. 그리고 민주당 측에서는 2월 5일 국회 제10차 본회의에 <특별국정감사 실시에 관한 결의안>을 상정했으나...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3. 파장
당시는 6.25 전쟁이 휴전된 지 불과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 극도의 혼란기[3]와 더불어 1962년에는 흉작으로 인해 심각한 식량난 속에 당장의 먹을 곡식도 부족하였던 실정이었으나 천조국으로부터 싼 값에 수입되어 온 밀로 만들어진 밀가루로 겨우 연명하는 시절이었으며 시멘트도 전쟁이 끝난 지 고작 10년 조금 넘은 그 시점에 한창 부서진 건물들을 복구하기 위해 엄청나게 쓰였음은 물론이고 생필품인 설탕도 싸게 들여온 사탕수수로 만든 것은 말할 것도 없다.문제는 이러한 생필품의 생산 및 유통을 몇 몇 재벌그룹들이 독과점하고 안그래도 굶어 죽어가던 사람들이 넘치던 시절에 사람들의 고혈을 더더욱 짜냈다는 것이다. 특히 원료를 수입하기 위해 정치권에 불법 정치자금을 뇌물로 주고 달러 사용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무력으로 집권한 박정희의 군사정권이 만든 여당, 공화당은 이를 견제해도 모자랄 판국에 뒷돈을 받아 챙기면서 국민들의 고통을 모른 척했다는 점에서 갓 출범한 군사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4]
4. 여담
- 국가의 간섭 없는 자유경쟁시장에서의 문제, 모순점이 잘 드러나는 사건으로써 상법이나 경제법 관련 공부를 하다 보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다.
- 2년 뒤인 1966년에 일어난 사카린 밀수 사건과 함께 박정희 군사정권 및 공화당의 치명적 오점 중 하나로 자주 회자되는 사건이다.
5. 둘러보기
[1] 양회(洋灰)는 서양의 석회 - 즉 시멘트라는 뜻이다.[2] 제일제당은 삼성그룹의 모태이자 당시 가장 큰 수익을 내는 핵심 기업이었다. 1987년 창업자 이병철이 사망한 후 2세들간의 지리한 상속권 싸움 끝에 장남 이맹희의 몫으로 결정되면서 1993년 삼성에서 분리되어 1996년 제일제당 그룹이 되었고 현재 CJ그룹으로 이어지고 있다.[3] 사사오입 개헌이라든지 3.15 부정선거라든지 4.19 혁명이라든가 5.16 군사정변 같은 평생 한 번도 겪기 힘든 매우 크고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 시기였다.[4] 물론 당시에는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