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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사[1] |
백 소령의 몽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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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7년 1월 3일 40대로 추정되는 신원미상의 한 남성이 한밤 중 경기도 화성시 서해안의 한 소초로 접근해 초병 및 소초장과 상황병을 속이고 총기를 사취(詐取)[2]한 사건으로, [age(1997-01-03)]년이 지난 현재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해당 인물이 백 소령이라고 사칭하여, 군단 백 소령 사건이라고도 한다.
2. 경과
MBC 뉴스데스크 기사KBS 뉴스 9 기사
중앙일보 기사
1997년 1월 3일 밤 10시 50분경, 경기도 화성군[3] 서신면 궁평리 육군 제51보병사단 168연대 해안 경계 소초 위병소 후문에 육군 전투복 차림의 소령 계급장을 단 신원 불명의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얼마 전 수도군단에 새로 전입 온 백 소령이라고 신분을 밝힌 남자는 "해당 소초 작전 지역의 지형 숙지 및 순찰을 위해 왔다"고 말한 뒤, 초병에게 "암구호를 잊어버렸다"며 암구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초병은 그가 진짜 군인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의심 없이 암구호를 알려주었다.그렇게 백 소령이 암구호까지 알아낸 뒤 해안선에 설치된 철조망을 따라 밤 11시 20분 즈음 생활관으로 들어가자, 병사들이 힘차게 경례를 했다. 야간 근무일지를 작성하던 소대장은 경례 소리를 듣고 뛰어나갔다. 백 소령은 15명 정도가 자고 있던 생활관을 둘러보고 “수고 많다. 나는 수도군단에서 전입한 백 소령인데, 이지역이 평소 간첩이 자주 출몰하는 의심지역이기에[4] 지형을 숙지하기 위해 해안 순찰을 하러 왔다”고 말했다.
이에 소초장인 남정훈 소위는 20여 분 동안 백 소령에게 인삼차를 대접하고, 소초 현황 및 경계작전 지역에 대한 브리핑을 실시했다.[5]
백 소령은 브리핑 중간중간에 중대 행정보급관 도 상사의 안부를 묻거나, 살곶이 소초[6]와 용두리 포구의 위치까지 묻는 등 너스레를 떨었다. 백 소령은 브리핑이 끝나자 총기 보관함에 있던 K2 소총에 관심을 보이며 만지작대더니, 총기보관대를 보며 “저 총이 K2 소총이냐”고 묻고 “내가 소대장을 할 때는 저 총이없었다”며 소총을 집어들고 신기하다는 듯이 연신 개머리판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안 가, 결국 백 소령은 본색을 드러냈다. “순찰 좀 하겠다. 이 지역에는 간첩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니, 순찰을 나가기 위해 K2 소총과 실탄을 빌려 달라”고 소초장에게 요구했다.[7]
그러자 남 소위는 부소초장이었던 이영모 중사의 K2 소총 1자루와 15발들이 30발 탄창 2개[8]를 백 소령에게 건넸고, 자신이 순찰 수행을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칭 백 소령은 “이쪽 사정엔 빠꼼이야. 수행할 필요 없다.”면서, 이곳에 빠삭하기 때문에 괜찮다며 남 소위의 수행을 거부했다.[9] 그렇게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밤 11시 50분쯤 소초에서 나와, 자신이 타고 온 쥐색 기아 프라이드 베타 승용차를 몰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난 1월 4일 새벽 1시 30분, 중대장이 순찰을 위해 소초에 들렀다. 소초장 남소위는 군단에서 온 백 소령에 대해 보고하면서 "백 소령이 K2 소총과 실탄을 갖고 순찰을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딘가 미심쩍었던 중대장은 즉시 인근 초소마다 인터폰으로 연락해 백 소령이 왔는지 물었으나, 누구도 그를 보지 못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중대장은 군단에 상황을 보고하고, 군단에서 백 소령을 보낸 적이 있는지 질문했다.
그리고 군단 상황계통으로부터 놀라운 사실이 전해졌는데, 군단에서는 '백 소령'이라는 사람을 내려보낸 적이 없었으며, 게다가 이름이 비슷한 '백 소령'은 수도군단은 아니지만 수도방위사령부에 실제로 근무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백 소령은 사건 발생 당시 취침 중이었고 해안소초에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돼, 군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당연한 소리지만 수도방위사령부는 육직부대이고 51사단은 수도군단-제3야전군사령부[10]가 상급부대이기에 감찰을 비롯해서 어떠한 관계가 없어,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간부가 제51보병사단의 해안초소를 불시에 방문할 이유도 없다.
이후 새벽 2시 10분 경에 수도군단의 출동 지시 조치로 51사단 5분대기조가 출동해 초소 인근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화성경찰서도 112 타격대를 출동시켜 전경들에게 초소 인근 군경 합동수색을 실시하도록 했으며, 새벽 3시를 기해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었다.
총기 사취 사건으로 대한민국 육군본부에까지 보고되면서 사건이 전 군은 물론 경찰 차원까지 확대되었다. 육군 수도군단과 제2해병사단, 서울/경기/인천지방경찰청에서 화성시와 수원시, 오산시, 용인시 등을 비롯한 경기도 남부는 물론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경기도 북부 등 수도권 지역 전역과 충청남도, 충청북도, 강원도까지 검문검색 및 수사가 이루어졌으나, 늑장 대응으로 인해 백 소령이라고 주장했던 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막 독립한 해양경찰청도 해군 함정들과 함께 간첩 침투 가능성에 대비해 해안선에서 의아선박 색출 및 검문검색 등에 나서며 대침투 작전을 펼쳤다.
당연히 대한민국 육군 및 대한민국 해군은 물론[11] 대한민국 경찰청까지 합세해 중대본부에 군경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관할 경찰서인 화성경찰서 정보보안과에서 몽타주를 만들어 배포하였으며, 경찰청은 수원지방검찰청 공안부의 지휘 하에 수사망을 전국으로 확대해, 보안과 형사들을 급파하고 해당 부대 전역자까지 이 잡듯 조사하였다. 하지만 용의자와 그가 사취한 총기 및 실탄의 행방은 [age(1997-01-03)]년이 지난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당시 신문기사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사람에게 덜컥 총기를 넘겨준 남정훈 소위는 결국 구속되었고, 지휘선상에 있는 상관들도 연대장급까지 목이 날아갔다는 주장이 통설이었으나, 이와 달리 당시 사고가 난 부대에서 복무했던 한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문제의 연대장은 목이 날아가기는커녕 멀쩡히 장성 진급까지 성공했다. 이 정도로 거한 대형사고를 차고도 별 다는 거 보니 대통령 빽인가보다 싶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실수로 모르는 사람에게 총기를 넘겨준 남정훈 소위는 1999년 군용물분실죄로 기소되었으나, 군용물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 속아서 넘겨줬기 때문에 분실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다. 그러나 경계에 실패했기 때문에, 만약 장기복무의 꿈이 있었다면 접어야 했을 것이다.[12]
2.1. 초병, 상황병, 소초장, 부소초장의 실책
제일 우선적으로, 당연한 말이지만 야간에 초병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에게 절대로 암구호를 알려주거나 영내(營內)[13]로 들여보내선 안 되었다. 군법상 초병은 직속 상관 외에는 상대가 설령 진짜 4성 장군 혹은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신원미상자 또는 거수자로 판단될 경우에는 항명할 권리와 유사시에는 제압해서 포박할 권리 또는 사살할 권리가 있다. 그 이유는 민간인이 군장점에 가서 어렵지 않게 군복과 계급장들을 구매해 간부인 척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14]원칙은 이러하지만, 몇몇 부대에서는 간부가 초병의 암구호에 불응하고 영내로 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다. 게다가 중국집 배달원이 암구호 없이 들어가는 일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초병이 간부의 목소리와 억양, 얼굴, 이름과 계급, 보직, 체형, 키, 걸음걸이 등의 특징을 대충 알기 때문이고, 어느 특정 시간에 누가 온다거나 하는 사전 정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군사작전 지역에서 야간에 암구호에 불응하면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초병에게 무턱대고 접근한다면 사살당해도 할 말이 없다. 군부대에서 야간에 외부인의 방문을 철저하게 경계하는 것은 군부대 안에 군사보안과 관련된 비문들과 무기고와 탄약고가 있기 때문이다. 무기고와 탄약고를 군인들이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괴한이 털 수 없도록 지킨다는 의미가 강하다. 즉 암구호도 그냥 모른다고 하고 얼굴도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단지 영관급 장교 군복을 입고 있으니 위세에 눌려서 군부내 안으로 일단 들인 것부터 엄청난 잘못이다. 설사 위세에 눌려 엉겁결에 영내로 들였다고 해도, 이후에는 신분증 확인과 함께 상급부대 상황실에 유선전화로 확인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거기다 소초장 남정훈 소위는 경험 미숙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아둔했다. 제아무리 계급이 높다고 할지라도 경계초소로 야간 순찰을 나간다면, 당연히 총기, 방탄모, 탄띠, 수통, 탄입대 등은 필수적으로 가지고 왔어야 하며, 특히 이 지역의 민감도를 감안해 총기와 방탄모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15] 총기와 방탄모, 탄띠, 수통은 단독군장의 기본 요소로 군대에서 거의 한 세트로 취급되며 항상 같이 움직이는 물품이다.
방탄모와 수통은 계급장과 위생 문제 등으로 남의 것을 빌려쓰는 경우가 전혀 없으며, 그렇다면 애초에 순찰을 도저히 나갈 수 없는 복장상태인 것이다. 영관급 장교나 된다는 사람이 단독군장의 개념도 잘 모르고 복장불량 상태로 순찰을 나간다고 총기를 빌려 달라고 했을 때 행동의 모순점을 느끼고 강한 추궁을 했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제아무리 영관급 장교라고 해도 순찰을 돈다면 당연히 개인화기로 권총+방탄모는 필수이고, 백 번 양보해서 최소한 방탄복이라도 챙겨와야 한다. 1990년대는 당장 1995년 충청남도 부여군 정각사에서 접선 중이던 무장한 고정간첩 2명이 이들을 검거하려던 안기부 요원들 및 부여경찰서 전투경찰들과 교전해서 경찰관과 의경 순직자가 나온 부여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있기도 했고, 그 전 해인 1996년에는 그 유명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까지 있었던 험악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진짜 상급부대 순찰이 예정되어 있으면 상급부대 상황병이 해당 부대로 사전 통보를 해 주며, 이를 접수한 소초 상황병이 소초장과 부소초장, 위병소와 각 경계 초소와 진지에 나가 있는 병사들에게도 대략 어느 정도 즈음 순찰자가 온다는 걸 알려준다. 그렇지 않으면 심야 시간에 오인 사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육해군 공통이다. 해군만 해도 군항 근처 해안가 쪽은 밤에 죽기 싫으면 가면 안 되는 곳이며, 만일 상급부대 순찰이 뜰 경우 사전에 모두 공지해 준다. 해군 예하의 해병대도 이 점은 똑같다. 게다가 영관급 장교가 자신이 소속된 부대 외의 타 사단, 그것도 평범한 내륙에 위치한 물자지원 부대 같은 곳도 아닌 GOP, GP, 해안 경계, 강안 경계 근무 부대 같은 진지에서 실탄을 소지하고 근무하는 군사작전지역 부대를 주간도 아니고 야간에 사전 예고도 없이 불쑥 방문하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지형정찰이면 지형정찰이고 순찰이면 순찰이지, 지형정찰+순찰을 밤에 동시에 하러 온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지형정찰은 주간에, 순찰은 야간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지형은 보통 가시성이 좋은 대낮에 해가 있을 때 숙지해야 하는 거지, 깜깜한 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숙지가 될 리 없다. 일반인도 밤에 움직이면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기 때문에 처음 찾아가는 곳은 대개 해가 떠 있을 때 찾아가려고 한다. 또 군단의 영관급 장교가 독립 부대인 사단의 책임 지역에 순찰을 가는 경우는 있어도 지형정찰을 나간다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강한 의구심을 가졌어야 했다.
순찰을 나갈 때 수행을 거절하는데 아둔하게 그냥 손 놓고 보내 준 것에서도 남 소위의 미숙함이 드러난다. 소초장은 순찰자가 순찰할 경우 수행을 위해 동행해야 하며, 사단본부 등에서 순찰을 나온 순찰자는 대한민국 해병대의 제2해병사단 기준으로도 당연히 개인화기를 미리 가지고 와서 순찰에 나선다. 애초에 정상적인 순찰 장교는 총기를 굳이 꺼내갈 이유가 없고 뭔가 딴 생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수도군단에 최근에 전입와서 지형 숙지를 위해 나왔다"는 사람이 말을 완전히 바꿔 "지형에 빠삭하다"고 핑계를 대며 순찰 수행을 거부했을 때도 말이 모순됨을 의심하고 추궁했어야 한다.
그리고 순찰을 나온 경우 제 아무리 사단장이나 군단장, 심지어 대한민국 대통령이 오더라도, 소초장은 자신의 책임 구역 안에서는 꼭 붙어서 수행하며 안내하는 게 원칙이다. 주간에는 낚시 등을 사유로 해안소초에 상급 부대 관계자들이 와서 소초장의 수행 없이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만, 야간에는 상상하기 힘들다. 오인 사격의 위험성이 존재해서, 소초장이 직접 무전기로 통신을 주고 받으며 위치를 부대원들에게 전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방에선 실탄이 지급되고 수류탄과 단검 등도 같이 지급되며, 재수 없으면 침투하는 적으로 오인해서 수류탄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 즉 문자 그대로 사살을 당한다. 바다표범 같은 대형 해양생물이나 부엉이 같은 맹금류 등이 야간에 적군으로 오인되어 사살되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16] 2002년 영화 해안선에 해병대 해안경계부대의 경고를 씹고 해안선에 몰래 들어갔다 오인 사격으로 사살당한 동네 양아치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참고로 여기서 그 동네 양아치를 사살한 해병은 오히려 포상휴가를 나갔는데, 실수로 민간인을 죽여도 군사작전 지역에선 작전 성공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소초 상황병도 이런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전혀 의심을 안 하고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상황병이면 보통 순찰자를 여러 명 맞이해봤을텐데, 이상한 낌새를 먼저 눈치채고 소초장이나 부소초장에게 귀띔해 줬거나 소초장이 가짜 백소령과 대화를 하는 도중에라도 인트라넷이나 국방인사정보체계 등을 통해 백소령에 대해 찾아봤어야했다. 물론 규정에 어긋나는 부조리가 당시에도 있었거니와, 계급이 상황병보다 소초장이 당연히 높기 때문에 전적으로 책임은 소초장이 지게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소초장이 소위였던 만큼 야전 경험이 별로 없고 상대가 영관급 장교 행세를 해서 지나치게 권위에 종속되는 면이 없잖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 경계근무 관련 프로세스가 잡힌 2020년대 대한민국 국군을 기준으로 보면, 이처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일어난 1990년대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이런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당시 국군은 계급 높고 지휘관이면 장땡이었는데,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간부가 야밤에 개인차를 타고 나와 부대식당에서 회식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며, 심지어 지휘관들이 해안 철책 안에 가족이나 지인들을 불러 해변 바캉스를 즐기는 일도 많았다.[17] 영관급만 되어도 소규모 부대에서는 그냥 영주이자 왕 그 자체였다. 게다가 상급부대에서 소령이라는 계급장을 단 장교라는 사람이 와서 경상도 말투로 너스레를 떠니, 권위주의적인 당시 군대 특성상 권위에 눌려서 홀린 듯 속아넘어가서 일어난 어이없는 실수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총체적 난국이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이후 각군 사관학교는 물론이고 사관후보생을 양성하는 육군학생군사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교육사령부 및 대학교 학군단 등 각군 장교후보생 훈련소에서 경계 관련 교육에 이 사건 예화가 꼭 사고 사례로 들어가며, 만일 대통령을 자칭하는 자가 나타나도 절대 총기를 넘겨주거나 수행 없이 혼자 순찰을 돈다며 활보하게 놔두지 마라고 교육시키고 있다. 각 학군단 훈육관들만 해도 한 번씩 꼭 예화로 이 사건을 들며 경계 똑바로 서야 한다고 한다. 그게 상식이기도 하다.
3. 용의자
자신을 자칭 백 소령이라고 밝힌 문제의 사취범의 정체가 무엇인지[18], 무슨 목적으로 K2 소총을 빼돌렸는지, 어떻게 관계자가 아니면 알기 힘든 해당 부대 내부 정보를 알고 있었는지 등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이 인물이 북한의 고정간첩이나 해당부대 전역자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둘 다 확실한 증거는 없다.
따라서 아래에 후술할 내용들은 모두 추측이다.
3.1. 북한 간첩
대한민국 국군의 제식 소총인 K2 소총을 빼돌려 복제품을 만들기 위해 침투한 간첩의 소행이라는 설로,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가장 가능성 높은 가설로 여겨진다.북한은 과거에도 특작부대를 대한민국 국군으로 위장시키기 위해 M16 소총을 북한에 반입하여 복제품을 만든 적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져 로트번호(총기번호)가 없는 복제품이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발견된 바 있다. 몇 달 전 최전방 아군 모 OP에서 공비를 사살했을 때 "공비가 가짜 한국군 군복과 국군에 보급되는 K2의 총번 형식과 다른 총번이 새겨진 복제로 추정되는 K2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국군 측 병사의 목격담도 있다.
2015년 서부전선 포격 사건 당시에도 북한 특수부대가 한국군 화강암 디지털 전투복과 피아식별띠, K2 소총의 복제품으로 무장한 채 북한 측 통문[19]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아군을 향해 도발을 일삼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을 봤다는 대한민국 국군 측 병사의 목격담이 후일 떠돌기도 했다.
또한 2020년에는 이란의 무기 박람회에서 한국 생산 정품이 아닌 K7 소음기관단총 카피 총기가 전시되었다. 북한이 K2계열 총기를 복제생산해서 이란에 수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북한에서는 그 동안 어떤 식으로든 적성장비인 한국군 제식 무장을 입수해서 복제해 왔는데, 사건이 일어난 1997년만 해도 K2소총은 해외에 수출되지 않았으므로[20] 이런 식으로 장비를 입수했다는 것. 실제로 과거 북한군 38항공육전여단 출신 최승찬의 증언[21]에 따르면 한국군의 주력 소총이 1980년대부터 K2 소총으로 바뀌면서 북한 역시 최소 1990년대부터 K2 소총의 존재를 인지했고, 또한 특수부대용으로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22]
여기에서 추가 설명이 필요한 지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먼저 가짜 백 소령은 현역 군인이 속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는 군부대 내부 지형 지물의 위치 내지 지명을 상당한 수준으로 알고 있었고, 부대 내 행정보급관이었던 도 상사의 신상까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불과 2달 전에 계급장 색깔까지 바뀐 전투복[23]을 구해서 착용하고 왔으며, 북한 간첩으로 추정되면서도 유창한 동남 방언을 구사했다. 물론 오랫동안 남한에 잠복했던 고정간첩이 부대 근처에 있던 다른 고정간첩의 도움을 받으면 해결 가능한 부분이다.
또 하나는 현직 간부를 사칭하면서 현역 장교에게 너스레를 떨 만큼 뛰어난 간첩을 노출시키면서 고작 소총 하나 탈취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남정훈 소위를 비롯한 당시 소초원 전원이 대단히 해이한 기강을 보였으니, 이 방심을 틈타 소초의 주요 인사를 죽이거나 소초를 폭파시키고 K2 이외에 다른 총기도 사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겠느냐는 밀덕 일각의 의견이 있다. 물론 이 또한 쉽게 설명이 가능한 부분인데, 적국이 새로 배치한 무기를 입수하는 건 '겨우 소총 1자루'라고 낮춰 볼 만한 사안이 아니다. 냉전 시대에 미국이 AK-74 실물을 가져오는 무자헤딘에게 거금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T-72 주포 구경 확인하겠다고 오만가지 해프닝을 벌였던 사례도 있다. 특히나 북한은 전시에 아군으로 위장한 대규모 특작부대 운용을 예정 중이므로 국군의 제식화기 파악에 심혈을 기울일 만하다.
또한 소총 탈취 외에 다른 임무을 하기에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부담되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막말로 부대 침입에서 소초원들을 전부 죽이자면 그거는 진짜 전쟁까지 하자는 건데, 아무리 전쟁 드립을 달고 사는 북한이라도 이렇다 할 계기도 없이 무작정 도발하는 건 자신들에게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저질러 온 무력 도발도, 그게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철저한 계산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그리고 겨우 소총 1자루라고 낮춰 볼 게 아니다. 적은 여럿이고 아군은 본인 혼자뿐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췄어도 상대방이 엇 하는 순간 틀어지는 것이 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침투자 입장에서는 "내가 여기 들어온 것도 정말 천운이 겹친 거다"라고 생각하여 필수 임무만 정확히 완수하고 아무 말썽 없이 떠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고 적의 추격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기준으로 남한 침투에서 소총을 탈취하는 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였지만, 2010년대 이후 K2 소총의 해외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레바논, 이라크, 바레인, 카타르 등 중동 및 이집트, 남아공 등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필리핀, 라틴아메리카, 미국[24]에서 하나 구해오면 되므로, 굳이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까지 남한의 군부대에 침투해서 가져올 필요가 없어졌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에는 북한이 대한민국의 정보를 빼오는 방식이 직접 무장공비나 간첩을 침투 시키는 방식에서 SNS,메신저를 통한 포섭으로 방법이 바뀌었다.
결정적으로 군경의 대대적인 수사에도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 역시 출신이 불분명한 간첩이 한 짓이고, 곧바로 잠수정을 타고 월북했다면 쉽게 설명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당시 해군의 전력으로는 잠수정이 수중으로 숨어버리면 잡을 방법이 없었다. 2020년대 이후로도 21세기의 첩보위성은 광학 능력 등이 좋아지면서 정확도 등이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잠수정의 출항 여부만 확인할 수 있고 출항한 잠수정이 어디에 있는지는 결국 예나 지금이나 해군의 대잠전을 통해 알아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사건이 일어난 1990년대 대한민국 해군은 연안해군에 불과했기 때문에 해군력이 부족해 해안경계에 허점이 많았다. 한국 해군이 현재의 강력한 전력을 갖추게 된 건 이지스함이나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등이 연달아 취역하고 연안 해안선 경비를 위해 윤영하급 고속함 등이 새로 취역하게 된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다. 당시로써는 소총을 탈취한뒤 잠수정으로 들어가서 월북하면 그야말로 완전범죄였던 것이다. 게다가 탐지 수단인 음파의 특성 때문에 바다의 넓이 대비 대잠 경계망이 형성되는 넓이는 매우 협소하고 그나마 여러 원인[25]에 의해 왜곡되기 십상이라 지금도 잠수정의 완전 차단은 상당히 어렵다.
3.2. 해당 부대 전역자
해당 부대 전역자라면 각종 지형지물과 행정보급관의 신상을 알고 있었던 것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하지만 소초에 투입되는 소대는 주기적으로 교체되며 행정보급관도 주기적으로 바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즉 용의자는 최신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 의문점이다. 더구나 자칭 백 소령은 40대의 중년 남성으로 보였는데[26]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늦어도 20대 후반 전에는 전역하고 단기복무를 하는 ROTC나 학사장교도 빠르면 20대 후반, 늦어도 30대 초반[27]에는 전역을 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해당 부대 전역자가 병일 가능성은 아예 없고, 단기복무 장교일 가능성 역시 비교적 낮다. 40대 중년 남성이고 부대 사정에 빠삭했다면 100% 장기복무 장교나 사실상 평생 군생활을 하는 부사관이다.이러한 점을 아는 수사 당사자인 국방부 조사본부 및 수원지방검찰청 공안부/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는 1980년대에 복무한 간부까지 포함하여 총 560여명의 전역 간부들을 조사하였고, 그 중 몇몇 전역자를 남 소위와 대면시키는 등 확인 절차를 거쳤다. 그러나 결국 혐의가 있었던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단독으로 행동했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 보면 이 설은 가능성이 낮으나 해당 부대 혹은 상급부대 전역자가 전문적인 고정간첩과 커넥션을 가지고 해당 소초의 정보를 제공했다면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두어달 전에 바뀐 계급장을 완벽히 위장해서 범행에 사용했던 점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포섭당한 현역 간부가 전문적인 고정간첩과 커넥션이 있었다는 설명이 좀 더 타당하다. 특히 예전에 거쳐간 간부를 알고 있었다거나 하는 점을 미뤄 볼 때 군생활을 오래 한 장기복무 장교나 부사관 혹은 군무원이 포섭당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예전부터 북한의 간첩이나 공작원이 군인등을 포섭해서 일을 벌이는 사례가 비일비재했고 실제로 2022년에도 현역 특전사 대위가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당해 군사기밀을 유출하려다 적발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 고정간첩과의 커넥션은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3.3. 기타 가설
해당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기 전까진 해당 부대 전역자들 사이에서만 알음알음 떠도는 정도였고 명확하지 않은 소문이 떠도는 경우도 있었다. 후술할 가설들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본 사건이 특전사나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공작부대 등 경계태세 상태를 평가하는 보직의 부대들에서 상부 지시로 임의로 실시한 침투훈련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실탄을 소지하는 부대를 대상으로 야간에 그런 훈련을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기 때문에 지휘관이 제정신이라면 훈련 승인이 날 수 없다. 그런 경우가 설마 있었다고 하더라도 오인 사격으로 죽기 싫으면 보통 사전에 '대략 언제쯤 총기 탈취 모의 훈련을 할 것이니 대비하라'고 통보하고 훈련을 진행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소리 없이 눈을 피하는게 힘들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묘사되듯이 소음기로 암살해 가며 침투하는 게 보통인지라 훈련을 하자고 같은 국군 장병을 쏴 죽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실탄이 배분되고 장병 개개인마다 실탄을 소지하고 근무를 서는 부대의 훈련은 오인 사격 가능성과 훈련으로 인한 사전 준비 과정과 피로 누적, 그로 인한 경계 실패 가능성 때문에 쉽게 승인이 나지 않는다. 보통 훈련을 하더라도 경계 부대들도 로테이션을 도는데 로테이션에서 뒤로 빠져서 일반 내륙 부대로 들어왔을 때 훈련하지, 제1선에서는 훈련을 하지 않는다. 물론 철책이 아닌 비교적 후방에 있는 부대는 2011년 정승조 전 합참의장의 지시로 기습적으로 특전사와 특공대 부대들이 대항군으로 침투훈련을 감행하고 여러 예비대가 경계태세 미비가 지적당해 털린 적이 있었다.[28] 군사분계선 경계나 해안 경계 부대가 아닌 내륙에 위치한 일반 부대에서는 평소에 공포탄을 소지하며 실탄은 평소에 구경도 못 한다. 실탄은 사격장에서만 쓴다. 만약 훈련이었다면 내리갈굼과 함께 총기도 당연히 돌려줘야 정상이지만 해당 로트번호의 총기는 여전히 분실 상태다.
한편 이런 류의 사건/사고가 으레 그렇듯 총기를 분실해놓고 이를 무마하고자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서 책임을 전가한 것이라는 음모론도 제기된 바 있었으나 당연히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주장이다. 오히려 군에서는 당사자들의 실책이 언론에 노출되어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으면 은폐하면 은폐했지[29] 언론의 도움까지 받아 가며 사건을 크게 퍼뜨리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위 내용들이 만일 사실일 경우 남정훈 소위는 진짜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모든 것을 독박쓴 셈이 되는데 아무리 1990년대 군대가 막장 그 자체였다고 해도 초급장교를 그렇게 쉽게 희생시키진 못했으므로 현실적인 주장은 아니다. 장교는 한국군에서 홀대하는 편인 부사관이나 사병과 달리 군 입장에선 어떻게든 끌고 가야 할 인재로서 군대에서 장/단기 여부나 출신을 불문하고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장교에게는 품위유지라는 것이 있어서 소위 계급이라고 짚둥우리를 씌울 수가 없다.
4. 의문점
4.1. 총기의 행방
남 소위가 가짜 백 소령에게 건네준 총은 부소대장의 총기였다. 군대의 모든 총에는 고유 총기번호 및 로트번호가 있고, 기본적으로 모든 군인은 자신의 총기를 반납할 때까지 총기번호를 숙지하고 있다. 부소대장 역시 자신의 총기번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보통 미확인 총기가 발견되면, 군에선 즉시 총기번호 내지 로트번호를 확인하여 그 총의 출처를 확인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사취된 총기번호의 총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말은 즉 가짜 백 소령의 행방은 물론, 총기의 행방마저 현재까지 모른다는 뜻이다.
이미 해외로 반출되었을지, 아니면 누군가의 장롱 속에 고이 잠들었는지 아니면 진짜로 북한의 공장에서[30] 분석된 뒤인지는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가능성 높은 추측은, 북한의 공장에서 이미 카피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4.2. 신상은 어떻게 알아내었는가?
전술했듯, 가짜 백 소령은 허구의 인물을 사칭한 것이 아니었다. 사칭된 백 소령이란 인물은 실제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의 현역 군인이었다. 가짜 백 소령은 대체 어떻게 진짜 백 소령의 신상을 알아내었을까?또한 가짜 백 소령은 부대 내 행정보급관이었던 도 상사의 신상까지 알고 있었다. 이렇게 부대 내부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 소위가 완벽하게 속은 것이었는데, 서로 다른 부대에 있는 두 현역 군인의 신분을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현재까지 알 수 없다.
군 내에 간첩이 있다면 그들이 알려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존재 여부도 불명확하다. 물론 정황상 군 내에 포섭당한 인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4.3. 전투복은 어떻게 구했는가?
가짜 백 소령은 계급장 색깔까지 바뀐 소령 계급장의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계급장 색깔이 바뀐 게 고작 2달밖에 되지 않았음[31]을 본다면 치밀하게 준비한 셈인데, 생각해보면 소령 계급장에 계급장 색깔까지 바뀐 전투복을 다른 사람에게 구하는 것은 비교적 어려운 일일 것이다.물론 군장점을 이용하여 위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군장점은 계급장, 명찰등 군복 부착물만 판매하지 군복은 팔지 않는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군복에다 계급장 까지 풀세트로 구하는것은 굉장히 어렵고 국방부도 당연히 이를 알고 의심되는 군장점을 위주로 집중적인 조사를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흔적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짜 백 소령은 자체적으로 전투복을 위장했다는 말인가? 현재로서는 전투복 역시 출처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군 내의 고정간첩이나 매수된 동조자가 확보 혹은 이들이 제공한 정보로 북한에서 그럴듯하게 재현한 것이란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4.4. 범행 동기가 무엇인가?
범행 동기를 알 수 없다는 점 또한, 백 소령이 간첩으로 추측되는 큰 이유 중 하나다. 군에서 소총을 탈취할 정도면 뭔가 큰일을 벌이려는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군에서 무기를 탈취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현실에서도 대중매체에서도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대사건의 징조다. 10년 뒤 강화도에서 해병이 죽고 소총이 탈취되었을 때 이후 벌어질 국가를 뒤흔들 강력범죄가 무엇일지 확신할 수 없어[32] 군경에 비상이 걸렸다.그런데 백 소령은 소총만 손에 넣은 채 아무런 2차 범행을 하지 않고 수사망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백 소령의 정체가 간첩이며, 이미 북한으로 넘어간 게 아니냐"는 가설이 나온 것.
그렇다고 저렇게 주도면밀하고 치밀한 준비를 할 정도의 능력자가 단지 인생의 업적 삼아서 심심풀이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세상엔 상상을 초월하는 기인들도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0%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백 소령의 행동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강화도 사건 당시 범인은 근무 교대하고 걸어서 돌아가는 해병 둘을 차로 들이받아 간단하게 뺏어갔다. 이 방법은 굉장히 시끄럽지만 그만큼 신속하게 총기를 탈취할 수 있었고, 이후 군경은 총기와 범인을 체포하여 후속 범행을 방지하는 데 성공한다. 반면 백 소령은 위장에 심혈을 기울여, 복잡하고 위험하지만 방해 없이 조용하게 소총을 빼갔으며, 후속 범행은 발생하지 않았고 백 소령도 체포되지 않았다. 휴전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총기를 굳이 이런 복잡한 방법으로 조용히 입수해 후속 범행 하나 없이 증발해버린 이 기이한 백 소령의 행적이 간첩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만일 백 소령이 진짜 간첩이라면[33], 사건 이후 북으로 귀환했거나 아직 남한에 잔류해 신분을 바꿔서 숨어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사취한 총기는 진작에 북으로 빼돌렸을 것이다.
5. 재판
이 판결의 판시사항 및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다.
대법원 1999. 7. 9. 선고 98도1719 판결
[군용물분실][공1999.8.15.(88),1669]
【판시사항】
[1] 형벌법규의 해석 원칙
[2] 군형법 제74조 소정의 군용물분실죄의 법적 성질(=과실범) 및 '분실'의 의미
[3] 군용물을 편취당한 경우, 군형법 제74조 소정의 군용물분실죄의 성립 여부(소극)
【판결요지】
[1]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명문규정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
[2] 군형법 제74조 소정의 군용물분실죄라 함은 같은 조 소정의 군용에 공하는 물건을 보관할 책임이 있는 자가 선량한 보관자로서의 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여 그의 '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물건의 소지를 상실'하는 소위 과실범을 말한다 할 것이므로, 군용물분실죄에서의 분실은 행위자의 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물건의 소지를 상실한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며, 이 점에서 하자가 있기는 하지만 행위자의 의사에 기해 재산적 처분행위를 하여 재물의 점유를 상실함으로써 편취당한 것과는 구별된다고 할 것이고, 분실의 개념을 군용물의 소지 상실시 행위자의 의사가 개입되었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군용물의 보관책임이 있는 자가 결과적으로 군용물의 소지를 상실하는 모든 경우로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할 수는 없다.
[3] 피고인의 의사에 의한 재산적 처분행위에 의하여 상대방이 재물의 점유를 취득함으로써 피고인이 군용물의 소지를 상실한 이상 그 후 편취자가 군용물을 돌려주지 않고 가버린 결과가 피고인의 의사에 반한다고 하더라도 처분행위 자체는 피고인의 하자 있는 의사에 기한 것이므로 편취당한 것이 군용물분실죄에서의 의사에 의하지 않은 소지의 상실이라고 볼 수 없다.
[군용물분실][공1999.8.15.(88),1669]
【판시사항】
[1] 형벌법규의 해석 원칙
[2] 군형법 제74조 소정의 군용물분실죄의 법적 성질(=과실범) 및 '분실'의 의미
[3] 군용물을 편취당한 경우, 군형법 제74조 소정의 군용물분실죄의 성립 여부(소극)
【판결요지】
[1]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명문규정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
[2] 군형법 제74조 소정의 군용물분실죄라 함은 같은 조 소정의 군용에 공하는 물건을 보관할 책임이 있는 자가 선량한 보관자로서의 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여 그의 '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물건의 소지를 상실'하는 소위 과실범을 말한다 할 것이므로, 군용물분실죄에서의 분실은 행위자의 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물건의 소지를 상실한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며, 이 점에서 하자가 있기는 하지만 행위자의 의사에 기해 재산적 처분행위를 하여 재물의 점유를 상실함으로써 편취당한 것과는 구별된다고 할 것이고, 분실의 개념을 군용물의 소지 상실시 행위자의 의사가 개입되었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군용물의 보관책임이 있는 자가 결과적으로 군용물의 소지를 상실하는 모든 경우로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할 수는 없다.
[3] 피고인의 의사에 의한 재산적 처분행위에 의하여 상대방이 재물의 점유를 취득함으로써 피고인이 군용물의 소지를 상실한 이상 그 후 편취자가 군용물을 돌려주지 않고 가버린 결과가 피고인의 의사에 반한다고 하더라도 처분행위 자체는 피고인의 하자 있는 의사에 기한 것이므로 편취당한 것이 군용물분실죄에서의 의사에 의하지 않은 소지의 상실이라고 볼 수 없다.
이 판례는 형사법상 죄형법정주의를 강조한 판례 중 하나다. 군형법상 군용물분실죄는 과실범이므로 피고인(초병)처럼 기망을 당하여 자의에 의해 총기류를 처분한 경우에는 과실범이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군형법상 군용물분실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한 사례다. 이러한 이유로 해당 초병은 피기망자인 바, 군내 규정에 의한 징계 등을 받을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군형법에 따른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형사법의 원칙상 합당하다.
이 판례의 주문과 이유 부분에 대해서는 판결문 전문을 참조 바람.판결문 전문
결과적으로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사람에게 덜컥 총기를 넘겨준 남정훈 소위는 구속되었지만 군형법이 상정하지 못한 사건이었던 탓에 무죄로 풀려나게 되었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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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복한 군인이 설치한 기관총은 M60이다.[2] 남의 것을 거짓으로 속여서 빼앗음.[3] 현 화성시.[4] 실제로 이 지역은 과거 몇 차례 간첩이 출몰했던 루트다. 해안선 쪽은 2함대가 담당한다.[5] 참고로 브리핑은 각 경계소초에 연대나 사단/군단 등 상급부대 순찰자가 소초를 방문 시 소초장이 작전 현황을 보고해야 하는 임무 규정으로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대한민국 해병대 소속 제2해병사단 및 제6해병여단, 해병대 연평부대 소속 해안초소들도 사단본부나 수도군단 등 상급부대에서 누가 방문하면 이렇게 브리핑을 한다.[6]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에 있는 소초로, 주변 경치가 상당히 멋있다. 밤에는 소초에서 보이는 제부도와 바다 건너의 당진시 현대제철소의 야경도 상당히 장관을 이룬다.[7] 순찰도 군사행동이고, 군사행동을 하겠다는 사람이 무기가 없거나 부족해서 소총이고 권총이고간에 빌려 달라고 했다는 건 대단히 어색한 상황이다. 여기서 남 소위는 '순찰을 왔다면서 개인화기를 챙겨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어야 하며, 적어도 "개인화기는 함부로 빌려줄 수 없다"고 둘러댔어야 했다.[8] 총 30발이었다.[9] 지형 숙지를 위해 해안순찰을 나왔다던 사람이, 남 소위가 "순찰 수행을 하겠다"고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이곳을 빠삭하게 안다'고 말을 바꿨다. 즉,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10] 2019년 1월 1일에 제1야전군사령부와 통합되어 지상작전사령부로 창설되었다.[11] 제2해병사단이 해군 소속인 해병대 부대로서 서해안을 관할한다.[12] 보통 소위 임관 후 1년이 지나면 중위로 진급하기 때문에, 수감 중에 중위로 진급했다고 할지라도 대위 진급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남 소위와 같이 1996년에 임관한 장기복무 장교들은 육사 52기, 학사 27, 28기에 해당되는 기수로, 2023년 기준으로 준장 진급자가 나왔다.[13] 군부대 안[14] 정확히는 현용 전투복은 판매가 불가능하지만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성인 남성이 전투복을 보유하고 있어,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간부용 계급장은 물론 철저하게 확인 후 주는 곳도 있지만, 아직도 그냥 파는 곳이 더 많은 편.[15] 제2해병사단은 취약시기 및 장소임을 고려해 무조건 개인화기를 불출한 후 순찰에 나선다. 순찰조는 2인 1조로 위관급 장교 1명과 부사관 1명으로 구성되고 노련한 상사급 부사관이 위관급 장교를 보좌해 순찰에 나서며, 취약시기에는 4인 1조로 증강되기도 한다.[16] 실제로 장수거북이 북한 공작원으로 오판받아 경찰에게 사살된 사건이 있었다. 해당 개체는 박제처리되어 남양주시 주필거미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17] 2020년대 국군에서 이랬다가는 영관급이고 장성급 장교고 간에 그냥 군복 벗는 거 확정이다.[18] 위에도 썼지만 백 모 육군 소령은 실존 인물로, 사건이 일어난 부대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19] GP가 위치한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20] 2010년대 이후로는 K2 소총의 해외 수출이 활발해졌기에 이런 위험한 방식으로 입수할 필요까지는 없어졌다.[21] 아카이브.[22] "교육 시간에는 피교육생 대표가 교관에게 ‘필승’이라는 구호를 붙여 경례하고 인원 보고를 한다. 교육에 들어가기 전 교관은 ‘국방군이 쓰는 총은 M16이었는데 최근 K2 소총으로 바뀌었다’는 설명과 함께 두 종류의 총을 보여준다. 그러나 M16과 K2 소총이 부족해 피교육생들에게는 M16 목총이 지급된다. 이 목총을 들고 ‘받들어 총’과 남한군 총검술을 배운다. 이때 피교육생들이 제대로 따라하지 않으면 교관은 ‘원산폭격’과 ‘김밥말이’, ‘뒤로 취침’ 따위의 남한군식 얼차려를 시킨다."[23] 1996년 9월에 일어난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계기로 그 해 11월 1일부로 전군의 계급장이 저시인성으로 바뀌었는데, 사건은 1997년 1월에 일어났다.[24] 다만 자동소총 규제로 인해 단발만 되게끔 제한된 상태다.[25] 부유물, 수심/해역에 따른 해수 염도/온도차, 해류/조수/파도 및 다른 선박들의 소음, 물고기 떼/ 고래, 돌고래, 상괭이, 범고래, 상어, 바다표범 등 해양생물 등이 있다. 특히 황해의 경우 수심은 얕으나 탁한 수질과 중국발 해양쓰레기들 때문에 파악이 더 힘들다. 동해는 그나마 낫지만 잊을만하면 러시아나 북한에서 해양쓰레기가 떠내려 오는 건 똑같다.[26] 소령 계급이 평균연령이 빨리 진급하면 30대 중반, 늦게 진급하면 30대 후반에서 40대의 중년층 나이다.[27] 군장학생일 경우엔 6-7년을 복무해 30대에 전역하며, 유학 등 이런저런 이유로 군대에 늦게 입대한 장교는 단기복무도 30세가 넘어 전역한다. 취업 시 나이를 따지면 굉장히 불리해지는게 장교 전역자들인게 이 때문이다.[28] 당시 합참 작전에 있었던 똘기 넘치기로 유명한 이영주 전 해병대사령관의 아이디어였다. 위의 내용을 고려했을 때 나름 미친 짓이기는 했다.[29] 다소 다른 맥락이지만 전역자들이 흔히 말하는 군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면 언론에 폭로하라는 조언이 함축하는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30] 사실 한국군과 직접 대치하지 않는 중국에서 굳이 K2 소총을 훔칠 이유는 없다. 대만의 중화민국군이 도입한 서방제 무기가 우선순위일 텐데 대만은 알다시피 첨단무기 도입에 제약이 걸린 상태라 별 영양가 있는 짓은 아니다. 그리고 1990년대는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고 장쩌민은 한국에 비교적 우호적인 주석이었기 때문에 중국 위협론이나 반중 여론도 별로 없었다.[31]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계기로 시인성이 낮은 계급장으로 바뀌었다. 노란색 계급장의 시인성이 너무 높아 간첩들에게 저격당한 소대장, 중대장이 너무 많아서 취한 조치였다.[32] 대선후보 살해, 은행강도, 북한의 대남 도발, 군에 대한 원한으로 인한 보복 등등[33] 전후사정을 따지면 그럴 가능성이 100%에 가깝지만 0.1%의 확률로 아닐 가능성을 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