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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05:28:36

국군정보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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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참모본부 [[대한민국 육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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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정보사령부
大韓民國 國軍情報司令部
Korea Defense Intelligence Command (KDIC)
파일:attachment/국군정보사령부/KDIC.png
우리는 금석을 뚫는 충성심으로 점을 찾아
선을 이어 통일성업 완수에 헌신한다
창설일 1946년 1월 15일(조선국방경비대 정보과 편성)
1990년 9월 29일(국군정보사령부 창설)
1999년 3월 30일(국방정보본부 편입)[1]
약칭 정보사
소속 대한민국 국군
상급부대 국방정보본부
종류 기능사령부
역할 국군 정보작전업무 수행
사령관 육군 소장 문상호(육사 50기)
참모장 O군 준장 OOO
정보단장 O군 준장 OOO
위치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1. 개요2. 역사3. 특징 및 업무
3.1. 북한 관련3.2. 해외 관련
4. 편제
4.1. 직할부대
5. 출신인물
5.1. 사령관5.2. 장교/부사관5.3. 병
6. 기타
6.1. 들의 근무환경6.2. 지원 및 선발
6.2.1. 지원 관련 여담
6.3. 부대가
7. 부대 위치와 이전
7.1. 서초동 시기7.2. 안양 이전
8. 사건사고9. 여담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국방정보본부령
제4조(부서와 부대의 설치)
② 정보본부 예하에 다음 각 호의 부대를 둔다.
  1. 군사 관련 영상지리공간인간기술ㆍ계측ㆍ기호[2] 등의 정보(이하 "영상정보등"이라 한다)의 수집ㆍ지원 및 연구에 관한 업무와 적의 영상정보등의 수집에 대한 방어 대책으로서의 대정보(對情報)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기 위한 정보사령부
국군정보사령부는 대한민국 국군의 해외 정보 담당 정보기관, 즉 첩보부대다.[3] 군의 정보기관 중 하나로, 해외 정보 중에서도 주로 군사정보 수집에 초점을 두고 있다. 방첩 업무 또한 수행한다.

대한민국 국방부 직할부대인 국방정보본부 산하에 설치되어 있다. 신호정보를 관장하는 777사령부와 함께 국방정보본부의 관리·지휘를 받으며, 국가정보원으로부터도 정보 예산 및 관련 업무안을 기획조정받고 함께 조율한다. 사령관소장이 맡는다.[4] 업무 보안상 대외 노출을 피하기 위해 대외용 위장 명칭과 사무실을 사용해, 속칭 회사(Company)라고 불린다.

2. 역사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대한민국의 과거 북파공작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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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첩보부대
(설악개발단)
육군 첩보부대
(돼지부대)
육군 첩보부대
(SC지대)
해군 첩보부대
(UDU)
공군 제20특무전대
(AISU)
해병 첩보부대
(MIU)
미군 한국연락사무소
(KLO)
미국 CIA 주한합동고문단
(JACK)
※ 관련 틀: 대한민국 군의 특수첩보부대
}}}}}}}}} ||
국군정보사령부 변천사
1940년 ~ 1950년 1950년 ~ 1960년 1960년 ~ 1970년
군정청 국방 총사령부 정보과(1946년 1월)
→조선경비대 총사령부 정보국(1948년 8월)
대한민국 육군본부 정보국 정보대(1948년 11월)
육군 정보국 정보대(1과)육군 정보대
Military Intelligence Group
육군 정보국 공작과(2과)(1950년 7월)
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첩보분견대본부 독립(1951년 3월)
육군 첩보대(1961년 7월)
Army Intelligence Unit
해군 작전국 정보과(1948년 9월)해군 정보부대 (1954년)
Navy Intelligence Unit
공군 20특무전대
Airforce Intelligence Service Unit
1970년 ~ 1990년 1990년 ~ 현재
육군 정보사령부(1972년 2월)
Army Intelligence Command
국군 정보사령부
(육군·해군·공군 정보부대 통합)
Defence Intelligence Command
해군 첩보부대(1971년 5월)
Underwater Demolition Unit
공군 20특무전대
Airforce Intelligence Service Unit

육군의 정보 부대는 처음 1946년 1월에 군정청 국방 총사령부 정보과로 발족하여, 1946년 8월 조선경비대 총사령부 정보국을 거치고, 같은 해 11월 말 육군본부 정보국으로 개편되었다. 이것이 입수 정보를 분석 판단하는 정보대인 1과로 불렸고, 후에 육군 정보대(MIG)가 된다. 1950년 7월에 육군본부 정보국 내에 공작과가 만들어져 주로 첩보를 담당하는 2과(영문약자가 HID였다.)로 불리다가, 1951년 3월 독립된 첩보부대가 되었다. 첩보분견대본부(HID)는 1961년 육군 첩보대(AIU)로 개칭하고, 1972년 정보대(MIG)와 첩보대(HID)를 통합해 육군정보사령부(AIC)가 되었다.

해군의 정보 부대는 1948년 9월 해군 작전국 내 정보과로 발족하였으며, 1955년부터 자체적으로 UDU요원을 선발했다. 1970년 이전까지 NIU내 해상정찰대의 UDT요원 들을 해군첩보 수중파괴단(UDU)이라 불렀고, UDT부대에서 북파공작원을 직접 양성후 해군 정보부대(NIU)에 전속 하였다. 1971년 5월 5일 해군첩보부대령에 의해 UDT교관단으로 구성된 해군 첩보부대 교육대가 설치 되면서 공식적으로 UDU라고 불렸다. UDU 기수는 UDT기수를 그대로 이어받아 UDU 1기가 아닌 UDU 17기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공군의 정보부대는 1954년 9월 美 극동공군이 일본으로 이전함으로서 美 6006부대가 사라지게 되자, 20특무전대가 6006부대의 임무를 떠맡았다. 일명 실미도 부대라 불리는 684부대가 바로 20특무전대 산하 부대였다.

최종적으로 1990년 기존에 있던 육군의 AIU, 해군의 UDU, 공군의 AISU 등 육·해·공군 정보부대를 통합한 국군정보사령부로 개편되었다.

한편 방첩부대였던 제3과는 국군기무사령부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거쳐 국군방첩사령부로 확대개편되었다.

3. 특징 및 업무

정보사는 말 그대로 군의 정보기관이다. 관련 법령에서 명시해놨듯이 주 업무는 해외 첩보 및 기밀업무이며, 군 소속인만큼 해외정보 분야 내에서도 군사/안보 분야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가장 주력한다. 이에는 전세계 모든 군사집단을 상대로 한 전략, 전술, 무기, 장비, 기술, 연구 현황은 물론, 관련 인프라와 경제 상황 등에 관한 정보수집과 분석 등이 포함된다.

국방정보본부의 실무 사령부라는 지위에 걸맞게, 국군방첩사령부(前 기무사,안보지원사)와 정확히 반대되는 일을 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대정보, 즉 방첩 업무 또한 수행하며, 현재는 불명이지만 과거에는 국내에서도 정치공작 및 테러, 감청 등을 진행한 적이 있다.[5] 오홍근 테러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 그 외에도 탈북민의 관리 또한 맡고 있다.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문서 참조. 또한 국가정보원이 탈북자들에 대해 심문하고 대공 정황이 포착되면 정보사령부에 탈북자를 넘긴다.

777사령부가 담당하는 신호정보를 제외한 모든 출처의 군사정보를 모조리 수집하고 분석하는 부대와 부서가 대거 존재한다. 무엇보다 휴민트와 특수정보의 수집을 위해,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스파이 업무를 실제로 수행하는 사령부 비밀공작단이 예하에 특수부대를 포함해 곳곳에 지부를 두고 전세계 각지에서 활동한다.

해외 휴민트/군사정보 등의 특수 영역에 집중된 임무, 그리고 일반인 출신이 절대다수인 국가정보원과 같은 타 정보기관들에 비해 소속 인력/편제 차원 모두에서 훨씬 전문적인 수준의 무력을 갖춘 ' 첩보부대'라는 특성상 흑색 작전 쪽으로 임무성향이 매우 치중된 기관이다. 앞서 서술했듯 산하에 대규모 수집분석부서를 보유한 것은 물론, 대한민국 국군이 관리하는 방대한 양의 정보수집자산/부대와 연결되어 있기에 기관 전체적으로 모든 정보분야에 있어 손 꼽힐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지니고 있다.[6] 수행하는 업무 자체가 과거 북파공작대 시절부터 워낙 음지의 영역이다 보니, 대단히 비밀스럽고 민감한 곳이라 그 흔한 홈페이지마저 없으며, 채용 또한 모두 비밀리에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민간에 풀린 관련 정보가 매우 적어 그 존재를 아는 사람들조차 잘 없는 수준[7]이다. 전세계를 상대로 어마어마한 양의 첩보를 수집하는, 특히 그 중에서도 세계 최악의 "군사"독재국가의 "군사"정보 및 "인간"정보 영역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군" 첩보기관인 만큼, 상술했듯 여타 기관은 취급도 못 하는 수준의 극히 위험도/민감도가 높은 업무를 담당한다.[8]

당장 언론에 공개된 소수의 활동 사례만 보아도 과거 냉전시기 북한 직파 공작은 물론이고, 현대에도 북한 접경지역,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와 같은 민감한 지역에서 굉장히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단적인 예로, 모 영관급 공작장교가 첩보임무 도중 위장 사무소가 타국 요원들에게 습격받아 피를 흘리는 전투 끝에 납치되어 고문 당하거나, 그 외에도 임무 중 순직하는 등의 언론에 공개된 실제 케이스가 존재한다. 2022년 9월자 조선일보 월간 단독보도에서 인터뷰한 前 국가정보원 고위 관계자가 "애초 ‘있어서는 안 될 조직’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같은 국방정보본부 예하의 777사령부 외에도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경찰청 정보국/외사국/보안국/경비국, 검찰청 공안부과 같은 국내 정보기관들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의 협업을 지속해오고 있으며, 동일 부서간 인사교류 또한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외에도 직할 부대는 아니지만 공군 소속의 제28비행전대나, 각 육해공 예하의 정보단도 업무 연계가 굉장히 긴밀하게 되어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국가정보원과는 업무 체계 뿐만 아니라 인사 등 모든 것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운명공동체의 관계이다. 태생부터 한 뿌리이고, 과거 중정 시절부터 민간에선 처리하기 힘든 전문/위험 업무를 군 정보기관 조직에 위탁하는 형식의 대한민국 정보기관 조직도 특성상 당연한 결과.

그로 인해 기획재정부에게 예산 할당을 받은 상급기관으로부터 운영 비용을 지원받는 일반적인 행정부처와 달리, 국군정보사령부를 비롯한 국군 첩보부대들은 국방부 외에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아예 별도의 정보 예산을 지원 받으며[9], 정보업무 기획과 실행안 다수를 국가정보원과 사전 협업/조율한다.

해외에선 국정원, 국내에선 국군방첩사, 경찰 등과 정보업무 과정 중 경쟁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사령부 공작대에서 활동하는 블랙요원들의 경우에는 공작원 혹은 공작관(Agent Handler)이라는 임무 특성을 띄고 다년차 이상의 간부들이 여러 특기별로 선발되어 군생활 내내 관련 부대에서만 활동하게 되는데, 블로그를 운영했던 모 출신 예비역 대위의 말에 따르면 특정 특기의 경우 예하 특수임무부대 경력을 반드시 요구한다고 한다. 현장에서 공작원/공작관으로 뛰는 최고 직급은 대령[10]이라고 한다. 현재는 팀장이라고 부르고 있으며[11] 각 팀의 정보를 요약 보고하는 임무를 띠는 '전무'라는 직급[12]이 있다. 대령 이상은 대부분 현장에 나가지 않고 주로 여단이나 예하부대에서 지휘/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보사는 침투용 70t급 잠수정을 포함한 여러 침투수단을 운용하고 있다. 70t급 잠수정의 경우 10명 내외의 특수요원이 탑승해 적진 정찰 및 기뢰봉쇄 등의 특수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필요할 경우 대형함정도 폭파할 수 있는 무장이 가능하다. (정보사 소속 침투단정을 타고 휴가중인 장교의 친구들과 놀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후 잠수정이 정비 중 폭발해 인명피해가 난 사고도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보안을 위해 현장에서는 보고문건을 국내로 보내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자칫 도청당했다간 적 측 방첩기관에 도청된 보고문건을 증거로 꼬투리 잡혀 공작관원 모두 몰살당할 위험은 당연하고 수년간 막대한 돈을 들여 구축한 현지 정보망이 일순간에 붕괴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정원처럼 현장에서는 평문처럼 위장된 암호화 단문으로 간단히만 보고하고, 해당 내용의 정식 보고는 귀국 후 국내에서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보사가 수집한 각종 첩보 중 일부는 군사기밀등급에 알맞게 분류되어 가공된 후 일선 군 부대에 정보공유의 일환으로 제공된다.

그 외에 언론 보도로 알려진 소소한 임무로는 지상군 페스티벌과 같은 안보 관련 행사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남파공작원 및 간첩 등으로부터 노획한 침투장비 전시도 담당하고 있다. 이는 정보사가 기술정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상단 정보사령부령 참고.

3.1. 북한 관련

과거 북파공작원으로 불리는 요원들을 대규모로 침투시키는 등 활발한 직접 침투 공작이 일어났지만, 공식적으로 7.4 남북 공동 성명 이후 미수복지역으로 직접 투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민간에 나온 정보로는 1994년까지의 파견 경력이 확인되었다. 업무 내용이 극도로 민감해 보안을 철저히 하다보니 알려진 것이 적다.

정보사라고 해서 공작요원이 무조건 현지에서 목숨걸고 위험한 임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은 당연 절대 아니다. 이 사람들은 굉장히 비싸고 똑똑한 최고급 국가인력이다. 제대로 된 첩보요원 한 명을 양성하려면 기본 6~7년 이상은 걸리는데, 이들을 그리 쉽게 험지에 파견하는건 수지에 맞지 않는다. 주로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할 때는 현지 정보원을 통한 수집을 즐겨하며 '북한인, 조선족, 중국인, 탈북자' 등을 주로 정보원으로 포섭해 첩보를 얻어낸다.

물론 저 정보원들은 들키면 처형당한다. 애초에 이런 방법이 정보기관 요원들이 휴민트를 수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며, 영화에서처럼 직접 특수팀을 파견해 정보를 수집하는 경우는 정말 어쩔 수 없거나 극도로 중요한 경우에만 한정이 된다. 그 비싼 돈 들여서 양성한 우리 기관 특수요원들이 갔다가 변이라도 당하면 엄청난 손해이기 때문이다. 당장 정보기관 엘리트 몇 명을 잃은건 둘째 치더라도, 혹여나 심문당해 기밀정보라도 불게 된다면 그땐 정말 국익에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1997년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대포동 미사일기지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고 하자. 일반인의 상상대로라면 특수임무부대의 요원들이 방탄복, 야시경, 군복과 소총 등으로 완전무장하고 들어가 사진을 찍어오거나, 북한에 고정간첩으로 잠입해있는 공작요원이 몰래 찍어온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사 소속의 공작관들은 아주 스마트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술했듯 모든 정보를 그런 개고생을 해서 캐오기보다는, 일부는 훨씬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직접 요원들을 북한으로 잠입시키는 것도 있지만, 중국 선양이나 베이징 같은 곳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탈북북한군 출신을 고용해 카메라와 돈을 줘서 보내는 식으로 비교적(?) 쉽고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얻어내며, 이렇게 얻은 자료가 상당히 많다.

물론 이 과정도 정보사 소속 요원들이 타국에서 직접 목숨걸고 위장회사를 차리고 간첩을 포섭하는 등의 불법공작 활동을 하는 것이니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건 마찬가지긴 하지만[13], 아무래도 직접 총들고 북으로 몰래 들어가는 것보다는 부담이 덜 되는게 사실이다. 게다가 포섭된 탈북민들은 국경부터 미사일기지까지 길을 정확히 아는데다, 잡혀도 자신의 고용주 얼굴 말고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찍어온 사진은 미국의 첩보위성으로도 정확히 판별되지 않는 자세한 설비를 판별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평안북도 녕변군 녕변원자력연구소나 핵실험장에서 물, 흙 등의 시료를 채취해오는 것도 정보사 특수임무수행팀 보다는 중국인이나 북한 치하의 거주민들을 통해서 제공되는게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중앙일보(2011)에 보도된 'CKW 사건'에 따르면, 1998년 40대 초반의 정보사 중령이 북한에 7개월간 납치된 뒤 고문당하고 이중간첩으로 전향한 일이 있었다. 그는 단둥의 한국고려인삼공사 지사장으로 위장해 대북 공작망의 현지 총괄책임자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위치가 노출되어 은신처에 보위부 요원들이 침입하였고, 그는 여러명의 보위부 요원들과 피를 흘릴 정도의 격렬한 전투를 벌인 끝에 결국 납치 당한 것이다. 처음엔 파견된 수습팀이 현장에 있던 다수의 혈흔을 보고 사망처리했지만, 어느날 다시 모습을 나타낸 해당 요원을 현지 요원들과 외교부가 본국으로 안전히 송환해 치료 후, 방첩기관에서 전향을 밝혀내었다. 이에 군 당국은 그를 전역시킨후 군무원 2급으로 재채용하였다. 중앙일보(2011)는 "1996년에서 1999년 사이에 정 중령 외에 피랍된 장교는 없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조선족, 탈북자 등 블랙요원 산하의 정보원들 일부가 잡혀서 납북되었다고 한다.

1997년 북한의 미사일 기지 근처에서 복무하다 탈북한 북한군 출신 2명을 모아서 기지에 침투시키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오게 했다. 1명은 탈출 과정에서 사살당했다.

2006년 가을 중국 내 한국 정보사 블랙요원의 지시를 받은 탈북자 출신 공작원 2명이 함경북도 길주군의 한 야산에 잠입했다. 한 명은 바닥의 흙을 긁어냈고, 다른 한 명은 그 과정을 소형 캠코더로 촬영했다. 이들이 채취한 흙과 물은 며칠 뒤 북-중 국경을 넘어 남한 요원에게 전달되었으며, 캠코더로 현장을 찍은 동영상 파일은 핵실험 현장 주변에서 가져왔다는 근거가 되었다. 그 해 10월 9일 북한은 핵실험 사실을 공식 발표했으며, 얼마 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정원장은 "북한 핵실험의 규모와 핵 물질 성분을 분석했다, 핵 실험장 근처 시료를 우리 휴민트가 직접 가져와 분석했다"고 발표했다.

3.2. 해외 관련

북한 이외에도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러시아, 중동, 동남아를 비롯한 외국에 정보사 측 인원을 파견시킨다. 아무래도 정보기관이다보니 일반적인 국가 외에도 전쟁터군사분쟁/테러 위험지역과 같은 위험한 지역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시사인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 당시 자이툰 부대가 파견되기 전 정보사[14]이 선발대로 들어갔다.[15] 정보사령부의 업무 특성상 흑색으로 파견되는 것 외에도 해외 무관 신분, 즉 화이트로도 파견이 된다.

재외근무수당 지급대상에 외교부 직원, 국가정보원 전문관과 대위가 같이 병기되어있는데 화이트로 파견되는 위관급 장교의 경우 대부분 국방무관의 부관신분으로 주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부관업무도 수행하겠지만 중국, 일본측 요원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드러난 정보사를 대상으로한 공작활동 사례, 일본 측 화이트 요원들 활동 방식, 흑룡 정보유출 사례를 보면 대강 우리측 화이트 요원들도 어떤 활동을 수행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4. 편제

국방정보본부 소속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내부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특수 군사 II급비밀로 분류됩니다.[16]

4.1. 직할부대

'''[[대한민국|{{{#!wiki style="display: inline-flex; width: 27px; padding:1px;background:rgba(45,47,52,.2); vertical-align: mid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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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국군정보사령부/KDIC.png 국군정보사령부
특수임무대(육상(HID) / 해상(UDU))
파일:공중기동정찰사령부.png 공중기동정찰사령부
제28비행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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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출신인물

아마 출신인물은 장성급 사령관 이외에는 기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 이유는 국방정보본부 소속 인원들은 해당 소속으로 복무할 경우 아예 인사관리체계가 별도로 들어가서 국방인사체계에서 검색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17] 복무기간이 짧고 한 부대에서만 복무하는 병사들 뿐만 아니라, 국방정보본부나 방첩사와 같은 국직 정보부대의 경우 전문 직렬에 선발된 간부들도 계속 그 부대에만 있기 때문에 본인이 밝히지 않는 이상은 알아내기 힘들다.

다만 본 국군정보사령부 문서의 경우 이들의 전신인 과거 냉전기 각 육해공 북파공작대 시절은 물론 남북전쟁 시기 첩보부대부터 시작해, 국군정보사령부로 통합되는 현 시기까지의 약 70~80여년에 달하는 기간 중 전역 후 공개적으로 신분을 밝히고 언론이나 개인 블로그, 유튜브, 방송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현해 이력을 밝힌 인원들을 다소 기재해놓았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시기에 복무한 이력이 밝혀진 출신인물들은, 민간에서 예하 특수부대 부사관 요원으로 입대해 4년 가량의 단기복무만을 마친 후 전역하고 방송, 유튜브 등에 출연해 알려진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깊이 있게 복무한 인원들은 아무리 못해도 최소 약 10여 년 전에는 전역한 이들이다.

5.1.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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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대

김황록 ||<width=20%>
제00대

이친범 ||<width=20%>
제00대

최세환 ||<width=20%>
제00대

김영환 ||<width=20%>
제00대

이화수 ||
제00대

양전섭
※ 초대~현재: 소장
※ 관련 직위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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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국직부대 이전 과거 각 군 첩보사령부 사령관들은 아래 출신 인물 참조.
역대 국군정보사령관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000 사령관
00대 류근환 육군 소장 갑종 2기 사령관
00대 김영철 육군 소장 학군 4기[18] 제12보병사단
00대 김군식 육군 소장 3사 1기 사령관
00대 오향균 육군 소장 육사 29기 사령관 #
00대 장경욱 육군 소장 육사 36기 국군기무사령관
00대 김황록 육군 중장 육사 40기 국방정보본부장
00대 이친범 육군 소장 육사 40기 사령관
00대 이영기 육군 소장 육사 41기 사령관
00대 김영환 육군 중장 육사 42기 국방정보본부장
00대 최세환 육군 소장 육사 42기 사령관
00대 이화수 육군 소장 육사 44기 사령관
00대 양전섭 육군 소장 육사 48기 사령관
00대 문상호 육군 소장 육사 50기 사령관

통합 국직부대로 전환되었지만, 정보사령관 자리는 보통 육군 몫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건 똑같이 국방정보본부 예하부대인 777사령관도 동일한 사항이다. 정보사령관, 777사령관, 합참 정보부장 3자리 중 한 곳에서 국방정보본부장(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을 배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보와 무관한 야전 출신이 보직되는 경우도 있다. 허나 국방정보본부와 예하 국직 첩보부대들은 정보 병과라는 병과의 특성상 매우 분야가 전문적이고, 심지어 그 중에서는 전문 첩보특기를 부여받아 흔히 정보요원이라고 불리우는 이들, 혹은 국방무관으로 선발된 이들 등, 일반적인 군인들과는 다른 매우 특수한 간부들 또한 근무하는 곳인지라, 최근 국직 정보부대의 수장 보직에는 대다수가 최소한 정보병과 혹은 관련 부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인물들로 구성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보병과 혹은 내부인사가 발령나지 않는 이상은 국군방첩사령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관련 업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전문 간부들의 우두머리이자 실세 병과장의 느낌은 정보사령관이나 정보본부장이 아닌 정보단장/참모장 쪽이다.

5.2. 장교/부사관

※ 본 기관의 특성상 해당 문단은 예하 특수부대의 부사관 요원으로서 기본 단기복무 기간만을 마치고 전역해 메스컴에 얼굴을 비추며 공인으로 활동하는 예비역 민간인들이 절반 가까이로 구성되어 있다. 깊이 있게 복무한 인원들은 아무리 못해도 공개시점기준 최소 약 5~10년 전에는 전역한 이들이다. 때문에 메스컴에 나와 신변이 완전히 공개된 이들만 작성 바라며 인적사항 기재에 주의 바람.

5.3.

6. 기타

6.1. 들의 근무환경

병은 각 출신 군대와 병과마다 다르다. 거기다가 예하부대가 주력이 해군인지 공군인지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지상 전투와 관련된 병과는 뽑지 않는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편하다. 안양으로 이전한 후 사령부 전경은 군부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좋은 시설을 갖췄다. 아무래도 -위험한 일을 하는 무서운-간부들을 보조하는 역할이기에 몸이 편하다. 근데 이것도 부서마다 다르다. 일반 야전부대에도 있을 부서들 (본부대대,의무대 등)은 후방 야전부대급이지만, 실제 정보를 다루는 부서들은 몸은 편하더라도 머리가 깨질 정도의 업무량과 높은 수준의 업무난이도를 경험하게 된다.

특이점은 육군만 선발 제한이 많다는 것이다. 아마 병과가 너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기군단/기훈단에서 얼마만큼 잘하냐에 따라 자대가 결정되는 해, 공군에 반해 육군은 육군훈련소를 수료한 병사들만 정보사령부에 갈 수 있다.[30] 한달마다 입대하는 해, 공군에 반해 1주마다 들어오는 육군이 약 500 ~ 2,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진짜 적은 수다. 단, 육군 영어어학병의 경우는 애초에 시험을 치르고 들어오기 때문에 선발제한을 신경쓸 필요 없지만, 운이 꽤 필요하다. 중국어, 아랍어 등 기타 외국어어학병의 경우는 영어어학병보다는 정보사령부에 들어올 가능성이 더 높다.

해군 갑판병 같은 경우에는 특이하게 6개월간 배를 타야하는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 단 기본적으로 육상근무라 다른곳으로 2차전입을 신청할 수 없는게 단점이다. 물론 육상근무라 2차전입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공군도 들어오긴 하지만 대체적인 필요병과(행정(특수정보), 보급, 수송, 통신, 전산)는 육, 해군이 대부분이라 헌병이 많이 가게 된다. 일단 세 군 중 가장 긴 시간 동안 부대 내부의 치안을 유지하기에 딱 좋은 수단이기 때문.(...) 일말인데 300일이 깨진 육군과, 상병 2호봉인데도 300일이 안 깨진 공군이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31] 다수의 통역병(어학병)이 선발을 거쳐 배치된다.[32] 정보사에 육군 어학병으로 들어와 특정 부대에 배치될 경우 무지막지한 번역 업무량에 시달릴 것이며 직장인마냥 실적 압박까지 받을 수 있다. 엑셀로 각 병사들이 매달 번역한 양을 비교하는 파일이 존재하고 이를 간부들이 보면서 갈군다는 썰이 있으며 옛날 군번의 경우 새벽에 울면서 화장실 한켠에서 단어장을 부여잡고 외웠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 그러나 능력이 있다면, 혹은 열심히 한다면 다른 일반 부대 병사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휴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세한 것은 어학병 자대배치 문항을 참조. 헌병 외에도 조리병, 설비병, 토건병 등이 자대 배치를 받는다. 특히 공병/시설 병과 장병들은 80kg AM-2 매트에서 영영 해방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근무시간 역시 부서마다 다른데, 3교대로 돌아가는 부대에 들어갔는데 들어오는 인원이 부족해 근무 두 탕을 뛰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외하면[33] 일단 공통적으로 일과 후에는 사지방, 노래방, 게임실을 포함, 실내체육관에서 체력단련 뿐만 아니라 농구, 배드민턴, 스쿼시(?!) 등을 즐길 수 있다. 이정도면 개꿀빠는거아닌가 게다가 휴가도 많다. 오히려 휴가를 다 못쓰고 전역한 사례도 있다는데, 실제로 사실인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군복무기간 단축에 따라 휴가 일수나 보상은 점점 박해지고 있다고 한다.

면회 및 출타 시 사복을 입고 나가므로[34] 밖에서는 입수보행을 하던, 폰을 하면서 걷던, 취식보행을 하던 헌병들이 터치하지 않으며 여타 상황에서 군인이라 호구잡히는 억울할 일도 덜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여담으로, 바로 길 건너편에 수도방위사령부 1113공병단이 위치해 있는데, 공병단 정문 앞 경계서는 병사들의 질투 및 부러움 섞인 눈초리를 느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부대가 민간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과 가까이 있으므로 면회 때 배달을 시킬때도 훨씬 선택의 폭도 넓고 편하다.[35]

부대 내 많은 수를 차지하는 어학병들의 특성 상 가족이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오래 전부터 다른 병들에게도 국외여행 허가가 잘 나오기도 했다. 다만 단순 여행 목적이라면 치안이 불안한 곳으로 여행을 신청했을 시 반려당할 수도 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홍콩 여행을 신청했다가 반려당한 케이스라던가...

단, 위와 같은 편한 복무환경은 안양 이전 이후의 이야기. 과거에 서초동 시절에는 열악한 환경과 각종 내무부조리가 만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을 몇 년 앞두고는 어차피 몇년 버티면 장땡이니 시설 투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서초동 시절 관물대가 모자라서 두 명이서 한 관물대를 나눠 쓴 경우도 있다.

전역 전에는 보안교육을 받는데, 웬만하면 어디가서 정보사 출신이라고 하지 말고 국방정보본부 출신 정도로 얼버무리라고 한다. 다만 전역증명서에는 예하부대까지 그대로 적혀서 나온다.

6.2. 지원 및 선발

채용 정보가 기밀 사항인 관계로, 출신을 대상으로 한 모 유튜버 인터뷰 및 민간 모집공고를 통해 공개된 일부 정보만을 명시함.

6.2.1. 지원 관련 여담

TV나 웹툰, 게임 등의 가상 매체에서 첩보 요원들이 멋지게 묘사되고 실제로도 정보기관은 스펙 쟁쟁한 엘리트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인식이 좋지만, 멋으로만 지원하기에는 난이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게 편한 수준이다. 심지어 그 중에서도 사령부 블랙요원으로 선발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면, 최소한 본인이 국가정보원 신입요원 공채에 합격할만한 수준은 되는지 객관적으로 잘 따져보는 것이 좋다.

정보병과는 적의 첩보를 수집하여 아군에게 브리핑 및 계획 수립에 참여하고, 정찰, 수색, 특공, 특전 등의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병과이다. 첩보요원은 그 정보병과의 보직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정보병과의 부사관과 장교들이 모두 첩보요원은 아니다.

정보병과는 육/해/공 모두에서 병사, 부사관, 장교를 불문하고 똘똘한 고급인력들이 몰려 매우 상향평준화 된 병과이고, 그들을 포함해 전 육해공의 우수한 인원들이 진급 후 수차례의 선발 과정을 거쳐 가게되는 곳이 국방정보본부 예하 사령부/부대들이다. 그 안에서도 요원이 되는건 정말 엄청난 엘리트여야 한다. 국가의 정보요원, 그것도 매우 민감한 군 첩보부대 소속 요원이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 안보의 최전선, 그것도 제일 어두운 곳에서 본인의 목숨은 물론 나라 전체와 국민들의 안전까지 짊어지고 활동하는 막중한 직책이다.

때문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현역/예비역들에게는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없으며, 보안이 매우 철저한 부대이기에 이들 또한 대부분 알음알음으로 말하는 것이 대다수다. 정말 정보사령부를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그런식으로 관련 정보를 수집하지는 않을 것이다.

6.3. 부대가

땅과 바다 하늘에서 조국을 위해
자주정보 주도하는 정보의 산실
불타는 충정과 사명감으로
미래전에 승리하는 정보사령부
나가자 싸우자 겨레를 위해
죽고 또 죽으리라 조국을 위해
- 정보사령부가 1절

부대가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과거 신병교육 때 나눠주는 책자 책날개에 수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소위 말해서 '군기가 쎈' 서초 시절에는 이등병이 선임 앞에서 부대가를 완창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안양 시절로 오면서 이런 것들이 암기강요 문화라며 사라지면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위와 같은 이유로 안양 이전 후, 이병 시절부터 전역시까지 부대가를 직접 부를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편제와 관련되기때문에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부대 내 영상제작 관련 부서에서는 부대가 파일을 가지고 있었다. 언급한 부서에서도 막상 부대가를 영상물 제작에 활용한 경우가 없었다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

국방정보본부 또는 정보사의 민간망 홈페이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민간에서 부대가를 알 수 있는 방법 역시 없다.

7. 부대 위치와 이전

파일:external/www.hankyung.com/AA.7473647.1.jpg
사진 출처: 한국경제(2013)
모든 부대의 위치는 본래 대외비 이상의 기밀에 속한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면 제도권 언론의 신문기사로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현재는 정보사 본청이 이전하였기에 옛 부지 위치 자체를 밝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17년 2월 기준으로 위병소 자리는 터널 발착으로 인해 없어진 상태. 정보사 외에도 국가정보원 역시 본청의 위치는 언론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려저 있다. 물론 비인가자의 출입 통제는 한다. 실제로 예하부대가 위치한 곳을 가보면 기가 막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신병위로휴가를 갔다온 본청 병사들이 길을 몰라 택시를 타고 난 뒤 "대법원 근처예요."라면서 우물쭈물하면, 택시기사가 "아 정보사령부요?"하면서 데려다주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전입한 지 얼마 안된 참모부 병사가 밖에 야식을 시킬 떄 대외명칭인 '☆☆산업'을 말하면, 배달하는 중국집 사장님이 "아, 정보사요?" 하고 답하는 바람에 기분이 머쓱해진 적도 있다.

이렇게 잘 알려진 이유는 부대가 위치한 곳이 도시 한가운데이기 때문이다. 군부대의 존재가 지역발전에 장애가 되고, 한강 이남 도심을 가로지르는 대로를 막고 있어 도로가 끊겼고, 여기에 가로막힌 서초구 주민들이 강남구로 가려면 길을 빙 돌아가야 하는 때문에 부대 이전에 관심이 많다. 2005년에도 세곡동[37]으로 움직일 계획이 있었지만 국가정보원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 그러다 2013년에 돼서야 경기도 안양시 수방사 제1113공병단 인근으로 사령부를 이전하는 것이 확정되자, 2014년에 서울시의회에서 정보사 부지에 터널을 뚫는 공사를 승인했고, 2019년 4월 22일 개통했다.

처음 정보사가 위치할 때는 허허벌판이었지만 1970년대에 개발이 진행되면서 시가지에 둘러 싸이게 되어버렸다. 거기다 1992년 이 부지에 대한 초대형 사기사건이 터졌고, 정치권이 개입되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상당히 큰 정치스캔들로 퍼졌다. 결국 배후가 없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전 국민에게 정보사 위치가 알려졌다.

현재 이 부지는 2018년 12월 13일을 기하여(국방부고시 2018-034호)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되었으며, 사실상 안양 이전 직전 상태 그대로 방치된 채 출입을 막고 있다. 2019년 5월 31일에 1조956억2천400만원으로 MDM을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에게 낙찰되었다.

7.1. 서초동 시기

처음 지을 때는 가장, 위장을 목적으로 해서 크게 주목받지 않을 위치에 은밀하게 부대를 건설했는데, 20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니 방배동서초동을 잇는 요충지를 틀어막고 온갖 민원과 주목을 한몸에 받는 자리가 되어 버렸다.

걸어서 몇분만 가면 서초역이 나오는 기가 막힌 위치로 인해,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서울 시민에게는 선망의 부대였다. 외박을 갈 때 강남구, 삼성동 등 동일 강남권으로 나가기 좋기 때문이다. 2010년대 병 기준으로 외박은 허가되지 않았다. 대신 휴가에 붙여서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다른 부대와 달리 부대생활 하면서 서초동 시가지가 그대로 보이면서도 휴가 때 빼고는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우울감에 시달리기 딱 좋았다. 그리고 다른 부대와 달리 면회 금지였다.[38]

창설 당시 평당 800원이었던 부지가 이젠 3,000만 원으로 점프했다고 한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해도 수백 배 넘게 오른 셈. 강남 땅값이 다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부대 이전이 만년 떡밥이었기 때문에 (특히 내무)시설 개선 투자가 미흡했다(놀랍게도 나무 관물대 쓰는 평상 내무반이다). 윗선에서도 "어차피 옮길 건데 뭐" 라고 생각했던 듯 하다. 다만 이전되는 안양시에는 (내무시설을 포함하여) 확실히 좋은 시설로 짓겠다고 약속했었다고 한다.

철거시 울타리 일부가 없어졌고 데크가 깔렸으며 세콤이 없어졌다. 다만 안전상의 문제가 있으니 건물 내부, 특히 본청 지하는 들어가지 않는 것을 권했다.

부지 바로 뒤편 내방역 1, 8번출구로 나오는 방배e편한세상 1차-2차 사이에 서리풀터널이 개통되었다.

강남 서초동 정보사부지에는 자연녹지지역 일부를 제외하고 복합문화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다아주경제

7.2. 안양 이전

만안구 박달동으로 이전했다. 위치는 공식 보도자료로 배포되었기 때문에 군사기밀이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 애초에 정보사령부 같은 상급 부대의 이전은 너무 큰 이슈인 데다 근래의 도시화·정보화로 인해 숨기기도 어렵다. 사실 제대로 위치를 숨겨야 하는 조직은 사령부 본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여러 명칭으로 위장해 활동하는 예하 부대들이다.

대략적인 위치는 안양시 내의 대한민국 육군 수방사 직할 육군 제1113공병단 근처에 있다. 일부 수방사 출신들은 안양 유격장 맞은편이라고 하면 알 듯. 바로 앞에 안양역을 오가는 마을버스 정류장도 있다. 복무한 사람들의 경우 택시를 탈 때는 보통 예비군 훈련장까지 가달라고 한 뒤 부대 앞에서 내려달라고 하는 편. 확실히 본청은 잘 만들어 놓았다. 국방부합참 신청사같이 으리으리하게 지어 놓았다. 군부대라기보단 대학 건물같이 생겼다. 상기한 바와 같이 스쿼시장, 테니스장 등 체육시설 또한 잘 갖춰뒀으며 영외 야구장과 축구장의 경우 하술하는 이유로 군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이용 가능하다. 이와 더불어 영외에 꽤 규모가 큰 교회, 성당, 절이 존재하므로 종교가 있다면 종교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자유롭다.주중에는 그렇게 깐깐하던 간부가 주말에 교회에서 만나면 엄청 착한 얼굴로 토스트와 커피를 나눠준다.

물론 그래도 장병들 특히 서울/강남 권역이 본가인 이들 입장에선, 시설이 좀 안 좋더라도 서초구가 더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안양시도 나쁘지는 않지만. 특히 휴가 갈 때 걸어서 몇 분 정도면 서초역이 나왔던 걸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다만 버스로 10분만 가면 수도권 남부 최대의 번화가 중 하나인 안양 1번가와 안양역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접근성은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런 접근성은 일과후 외출 제도가 생겨난 이후 빛을 발하고 있다. 부대 주변에는 아파트단지들이 많기 때문에 도보로 편의점이나 식당 정도는 갈 수 있다. 부대 회식 명목으로 가끔 간부 인솔 하에 사복 입고 점심시간에 바깥에 나가 밥을 먹고 오는 경우도 있다.올때 양담배 한 보루 씩 사오는 게 국룰

이전 당시 현지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에, 주민 편의를 위해 복지·체육시설을 지역 주민들에게 일부 개방한다고 한다. 주민들의 반발도 이유가 있는 것이 이 동네는 이미 군 부대가 너무 많아서 개발이 거의 안 되고 있다. 사실 군 부대로 쓰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라 일제강점기부터 군 주둔지로 쓰였던 곳이다. 그래서 이전부터 국방부에서는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인근 국방부 소유 땅에 지역 숙원사업이었던 중학교를 세워줬는데 바로 박달중학교이다. #

8. 사건사고

9. 여담

즉 A 씨가 B 요원의 라인으로 '등록'되면 C 요원은 A 씨를 활용할 수 없다. 요원 1인이 다수의 정보원을 거느리고, 그 요원이 거느리는 정보원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형태로 운영되는 셈이다. '라인별 점조직' 형태다.
"제 담당자가 한 사람으로 지정이 돼 있다. 그 사람 라인으로 돼 있어서 그 사람(요원)하고만 연락이 된다. 기관 간에 미묘한 라인 싸움이 있다. 만약에 정보사에 등록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가 우연한 기회에 국정원 사람하고 연결이 된 것이다. 그래서 국정원이 이 사람을 자기 라인으로 등록하려고 하면 (윗선에서) 반려된다. 정보사 쪽에 등록이 돼 있기 때문에 국정원에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라인은 뺏어가지 못하게 돼 있다" 기관 등록 정보원 인터뷰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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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비행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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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군정보사령부령이 폐지되며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편입되었음.[2] Measurement and Signature Intelligence. MASINT. 지진파 등.[3] 북한의 정찰총국과 그 역할이 상응된다.[4]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 당시 정보사, 기무사의 사령관이 중장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 취임 직후 모두 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다. 하지만 편제는 그대로 두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정보사는 이후 국방정보본부를 개편해 본부장에 중장을 앉히고, 거기에 정보사와 777을 배속시켜 실질적으로 정보본부를 구성하게끔 편제하였다.[5] 방첩 및 국내 정보 담당의 기무사령부는 과거 보안사 시절부터의 불법 정치 개입 등이 비교적 잘 드러나 아예 해체 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재개편되는 등 큰 일을 겪었다. 하지만 정보사령부는 이러한 국내 불법 공작 의혹 중 확증이 많은데다가 아직도 방첩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제대로 된 전말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6] 특히 대북 관련 업무에서는 가히 전세계 최고라고 봐도 손색이 없다. 오죽하면 과거 2021년 미 국가정보국장 방문 당시에도 국정원은 패스하고 바로 국방정보본부를 들렀을 정도.[7] 업무 특성상 보안으로 인해 인지도 자체가 낮은 것과는 별개로, 업계에서의 실력은 몹시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모 대령 예비역에 따르면 과거 예하 OO정보단 시찰 당시 파견교류된 미국 국방정보국 요원들이나 국정감사를 나온 국회정보위원회 의원들도 깜짝 놀라는 수준이었다고. 당장 국가정보원에서 다루는 해외정보, 그 중에서도 몹시 중요한 휴민트 및 근황정보의 대다수가 정보사령부 소속 요원들과 분석관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8] 이로인해 타 기관에선 이들의 업무에 감히 간섭조차 못 할 정도이다. 비록 제6공화국 극초기 시절이지만 군부의 힘이 약화되고 언론과 문민의 힘이 매우 강력해졌던 1988년, 대낮 아파트 한복판에서 기자를 상대로 한 불법 정치테러를 일으켰음에도 그토록 공권력이 강했던 당시 경찰/검찰청이 영장 발부마저 함부로 하지 못 했다.[9] 이 때문에 정보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은 타 기관 공무원들에 비해 급여를 훨씬 더 세게 받는다.[10] 대부분 중령이나 대령팀장의 경우도 없지않다.[11] 국방부에서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A형, B형이 따로 있다.[12] 팀장보다 높은 직급이나 실제론 새로 중령진급한 간부가 맡는 경우가 많다. 대위나 소령은 경험이 적고 오랜 공작활동을 한 중령이나 대령 팀장이 맡기에는 애매한 위치이기 때문[13] 실제로 한 정보사 소속 공작요원이 중국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다가 북한 보위부 공작원들과 은신처에서 전투를 벌인 끝에 납치된 사례가 있다. 본 문단 아래 참조.[14] 정확히 무슨 인원들이 어떤 목적으로 갔는지는 물론 밝혀진 바 없다. 한가지 확실한건 저 예비역 중령은 그 당시 사령부 공작관이었다는 것.[15] 웃긴건, 해당 예비역 중령 공작관이 중의사 자격증을 딴걸 보도하는 것이 중점이었지, 이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간걸 중점적으로 밝히는 기사가 아니다. 그냥 과거의 짧은 일화 하나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나온 국가가 아프가니스탄일 뿐이다. 즉 기자가 해당 인물과 친분이 없거나 인터뷰하지 않았다면 정보사 인원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가 작전한 것은 영영 세간에 알려지지 않을 뻔했다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은 저들이 이런 식으로 암암리에 해외에 파견되어 얼마나 많은 작전을 수행했을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16] 예하 부대의 이름이 이따금씩 드러날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기밀을 올리면 안된다. #[17] 특히 비취를 직접 하지 않는 지원과 병들(운전병, 조리병)도 검색이 안 된다.[18] 고려대[19] 이순진 前 합동참모의장과 동기다.[20] 정보사령부 위장 직급. 보안상 이유로 기재하진 않겠음.[21] 말이 도와주웠다지, 주먹질하다가 폭행죄로 벌금형을 받았다는 것이다.[22] 2015년에 입대했으며 이 때문에 정보사 장교 출신이라는 말이 있긴 하다. 92년생인 그의 나이를 보면 재입대자가 아닌 이상 다소 늦은 나이에 입대를 한 셈인데 보통 장교들이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갖추고 임관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92년생 자원은 15년도에 임관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가능성이 있는 셈. 허나 장교와 부사관이 선후배라고 칭하는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그냥 예비역 중사로 추정된다.[23] 2016년에 27살이라는 늦은 나이로 입대했으며 입대전 육상선수와 체육교사를 역임했다. 계급은 예비역 중사로 추정된다.[24] 2016년에 재입대했으며 2014년에 21사단에서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를 했다. 여담으로 1살많은 친형도 정보사 특수부대(2011년 입대) 출신이다. 계급은 예비역 중사로 추정된다.[25] 2017년에 19살의 나이로 입대했다. 계급은 예비역 중사로 추정된다.[26] 육상인지 해상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27] 전 시즌 한재성의 말로는 팀장(장교)이었다고 하며 2017년에 정보사로 왔다고 한다.[28] 2014년에 입대했으며 현직 해양경찰특공대라고 한다.[29] 2015년에 입대했으며 2022년 전역했다는 걸로 봐서 장기인듯 하다.[30] 논산 훈련소에서 1차 선별후 면접을 통해 차출함. 논산훈련소 이후 군사학교에서 주특기 교육 후 배치된다.[31] 실제로 국직부대라는 특성 때문에, 여기 근무하는 공군들은 300일은 무슨. 육군 후임이 공군 선임보다 먼저 전역하는, 정신적으로 매우 해로운 꼴을 아주 빈번하게 봐야한다. 치안 담당을 제외하고도 공군 고참이 분대장을 장기 역임하는 동안 육군 후임들 다수는 똥병장으로 편하게 지내다가 먼저 전역을 해버린다. 국직부대라 해도 결국 선후임은 달군번으로 퉁을 치기 때문에, 여기 근무하는 공군 병들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는다. 뭔 일만 생기면 외특박을 제한해버리는 개 같은 육군 출신 사령관은 덤이다[32] 한미연합사 또는 육군본부와 더불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어학병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편제 역시 작지 않다. 수도권이나 광역시의 유명 어학원 또는 SAT/ACT 준비학원만 가도 이 부대에서 근무한 강사나 조교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33] 이런 일이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보직이 소수언어 어학병. 이쪽은 일단 붙었다 하면 50%에서 100%의 확률로 정보사 배치가 예정되어 있는 대신 3교대로 돌아가는 모 예하부대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사람이 적은 경우 낮 12시에 출근해 4시에 퇴근했다 다시 밤 6시에 출근해 익일 00시에 퇴근하는 등 기괴한 근무시간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있다. 대신 이러면 초과근무로 휴가가 어느정도 떨어지긴 할 것이다.[34] 맞선임들이 신병에게 첫 면회를 나갈 때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미리 사복을 준비해서 올 것을 부탁하라고 일러두며, 생활관 구석에 따로 사복을 보관하는 옷장이 있다.[35] 배달원들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곳이 대충 뭐하는 곳인지는 아는지 고객 유치를 위해 올때마다 피자집, 치킨집, 중국집 찌라시를 엄청나게 뿌리고 갔다.[36] 사실상 없다. 차출이 없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극한에 이르는 난이도의 훈련과 극도의 과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자기 의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외부 스펙이 우수하다고 하여 차출해 훈련시키고 임무를 줘봤자라는 뜻이다.[37] 지금의 보금자리주택 강남지구 일대[38] 그 대신에 외특박 및 휴가를 나갈 때 사복을 입고 나가는 부대였다. 문제는 가끔 몇몇 본근대 주임원사가 두발규정을 이상할 정도로 빡세게 굴리는 바람에 사복입은 빡빡이가 되어 사복을 입고 나가는 것 자체가 무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20대 남자가 멀쩡한 사복을 입고 머리를 빡빡 깎고 있으면 그것도 꼴이 상당히 묘할 수도 있다. 본사의 경우는 '군인답게' 두발규정을 적용하는 경우가 상당하나 예하 회사의 경우는 본사에 비해 자유로운 편[39] Rigid Inflatable Boat의 이니셜이다.[40] 영역을 뜻하는 일본어 유래 은어[41] 김영철, 고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