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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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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왕국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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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왕국의 통상적인 강역도
<colbgcolor=#cf091f,#cf091f><colcolor=#fff> 600년 무렵~925년
<rowcolor=#fff> 성립 이전 통일 이후
서로마 제국
[[로만 브리튼|
브리타니아 속주
]]
잉글랜드 왕국


1. 개요2. 등장 배경3. 구성국4. 사회5. 로만 브리튼과의 연속성6. 잉글랜드 통일 왕국의 탄생7. 칠왕국 이외의 국가들8. 기타9. 창작물10. 둘러보기

1. 개요

칠왕국(七王國, Heptarchy) 시대는 5세기말부터 브리튼섬에 이주해오기 시작한 앵글로색슨족에 의해 6세기말에 형성된 7개의 왕국과 그 왕국이 존속한 시대를 뜻한다. 초기의 역사가 불분명하여 정확한 성립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600년 경에는 국가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10세기 초까지 지속되고, 이 기간에 걸쳐 브리튼인켈트계 언어와 문화는 북해게르만계 앵글로색슨의 언어와 문화로 완전히 대체된다.

중세 이후의 잉글랜드인들은 앵글로색슨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칠왕국 시대를 비로소 본인들의 제대로 된 역사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명칭은 잉글랜드(앵글족의 땅)이라는 명칭에서도 나타난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원삼국시대 같은 시대이고, 중국으로 치면 춘추전국시대, 삼국시대같은 시대이다. 민족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인 만큼, 수많은 역사와 비사들이 넘쳐나는 고대 역사의 황금기이다.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암흑시대(Dark Ages)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로마 이후의 브리튼(Sub-Roman Britain, 410년~600년)을 종식시킨 시대이기도 하다.[1]

칠왕국이라는 명칭은 12세기 잉글랜드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었고, '일곱'을 뜻하는 고전 그리스어 ἑπτά(hepta, 헵타)와 '통치하다'라는 뜻의 ἀρχή(archē, 아르케)의 합성어였다. 다만 이 영단어가 보편적으로 통용된 것은 16세기 이후부터였다.

6세기 말 칠왕국이 성립되던 시기, 앵글로색슨족의 브리타니아 정복은, 기록이 길게 남아 있지만 대개《앵글로색슨 연대기》같이 수사적, 신화적이고 간략한 기록이 남아서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 보니 정복 과정의 연도나 국가들의 판도가 제각각 다르게 나온다. 편의상 잉글랜드 지방의 고대 왕조들을 칠왕국이라고 한데 모아 부르지만 시대 구분을 위한 것이고, 실제로는 각자의 부족이 세운 소규모의 개별적인 왕국들이 존재하였고, 시대마다 잔존 국가들의 수도 달랐다.

2. 등장 배경

이민족이 국경 전역을 강타하자 국력이 급속도로 감소한 로마 제국속주의 군대들을 전부 소집해 제국을 방어하고자 했다. 일부 군대가 남아 있었지만 407년 콘스탄티누스 3세가 황제를 참칭하며 브리타니아 주둔군을 이끌고 갈리아를 침공했고, 그곳에서 전멸하는 바람에 본토는 무방비로 노출되고 말았다. 410년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가 브리타니아로 편지를 보내 스스로를 지키라고 명령하며 로마 제국은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전격적으로 철수하였다. 이어서 그 빈자리로 주트족, 앵글족, 색슨족 등 게르만 대병력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거주하던 브리튼인들을 스코틀랜드, 웨일스, 브르타뉴, 콘월로 몰아냈다.

주트족 이주민들은 처음에는 브리튼인들과 함께했지만 꾸준히 브리타니아의 항구들을 확보해나가며 세가 불어나자 스스로의 세력을 구축하여 브리튼인들과 반목했다. 그리고 먼저 잉글랜드 동남부에 켄트 왕국을 세웠다. 뒤이어 같은 게르만계 민족인 색슨족, 프리지아족, 앵글족도 이 정복 활동에 동참해 웨식스, 서식스, 머시아 등 잉글랜드 곳곳에 자신들의 왕국을 건국해 로마 제국의 보호가 없는 브리튼인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정복 활동을 벌였다.

앵글로색슨의 칠왕국이 등장해 브리튼인들을 공격하자 웨일스, 콘월, 바다 건너 브르타뉴 지방으로 브리튼인들이 피신했다. 이 과정에서 브리타니아 중남부를 장악한 앵글족의 이름으로부터 잉글랜드라는 지명이 탄생했다. 앵글로색슨계 왕국들은 주변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공고히 했다.

3. 구성국

칠왕국 구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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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섬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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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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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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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식스
주트족 파일:켄트 왕국 국장.svg
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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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

기본적으로 앵글로색슨 왕국들의 사회는 가장 큰 단위인 왕국을 지배하는 왕(대군주)과 그 하위 지역을 지배하는 귀족(earldorman이라고 불림) 또는 독립적으로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부족 지도자가 있었고, 그 밑에는 자유민(ceorl)과 노예로 구분되었다. 자유민은 앵글로색슨인 평민들로 구성되었고, 노예는 절대다수가 로만 브리튼인들의 후손들로, 이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데인인의 침공으로 사회가 초토화되기 이전까지 매우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상인이나 수도자와 같이 이에 속하지 않는 계급들은 왕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체올(ceorl)이라 부르는 자유민은 기본적으로 게르만 부족사회에서 유래한 것으로, 후스카를처럼 한 개의 대가족의 수장이었으며, 그의 가문과 그에 속한 가문원들은 가장(자유민)에게 속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들은 필요할 때 자체적으로 무장하였으며, 왕국의 법의 적용을 받았다. 물론 재판을 걸 수도 있었다.

반면, 농지를 경영하는 농부들은 이런 체올들과는 별개로 여겨졌는데, 앵글로색슨의 토지는 내야-외야 토지로 구분되었으며 농부들은 대개 외야 토지를 경영했다. 그들은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가졌으며, 대군주(왕)에게 지대와 몇몇 의무들을 지불, 또는 수행하여야 했다. 농부들은 이를 통해 자신이 속한 친족 및 문화적 집단 내에서 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이들과 별개로 각 왕국들 내에서 자치를 유지하는 부족들이 칠왕국을 통틀어 35개 존재했다. 이들은 Tribal Hidage라고 불렸는데, Hidage는 하이드세를 뜻하는 단어로 토지 1하이드(Hide) 단위로 왕에게 바치는 세금을 뜻한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각 왕국별로 이들 부족들의 영토와 부족원의 수를 측정하고 세금을 매기기 위해 1하이드 단위로 쟀기 때문이다. 이 각 부족들의 족장들은 자신들이 통치하는 지역에 있어서 왕가가 통치하는 지역과 동등하게 여겨졌으며, 공물이나 세금도 따로 냈다. 이 부족들 대부분은 6세기에서 늦어도 7세기까지는 각 왕국들에 통합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앵글로색슨인이었지만 예외적으로 브리튼 부족들이 그대로 자치권을 인정받은 경우도 있었다. 한편 이 Tribal Hidage에 속하지 않는 반독립적인 부족들도 존재했다. 이 부족들은 Tribal Hidage에 포함되기에는 너무 크지만 그렇다고 독립적인 왕국을 이루기에는 애매한 부족들로, 때때로 그들이 속한 왕국이 혼란에 빠지거나 힘이 약해졌을 때 왕을 자칭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머시아 동남부 동앵글리아 국경에 인접한 중앵글족(Middle Algles)이나 동앵글리아의 귀르워스(Gyrwas)족, 서식스의 해스팅가스 또는 하에스팅가스(Haestingas)족 등이 있다.

중앵글족은 머시아와 동앵글리아 국경에 끼인 앵글족들을 이르는 말로, 이들 이외에 밑에 남앵글족(South Angles)나 북쪽에 북앵글족(North Angles)도 있었으나 이들은 독립적인 단위를 이루지 못하고 소멸했다. 중앵글족 역시 독립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7세기 머시아의 펜다 왕 통치 기간에 머시아에 병합되었으나 이후로도 머시아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적인 영토 단위로 간주되어 광범위한 자치를 누렸으며, 교회 교구도 따로 설치되었다. 한때는 머시아 교구와 중앵글리아 교구가 동등한 단위로 주교를 각기 임명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늦어도 8세기까지는 독자의식이 희미해지고 머시아의 일부로 완전히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귀르워스족은 앵글로색슨족이 주변에 가득한 상황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로만 브리튼계 부족으로, 어떻게 살아남았냐면, 그들이 사는 지역은 현재 케임브리지셔 구역과 정확하지는 않으나 얼추 일치하는데, 당시는 이곳이 육지가 아니라 늪지대였다. 앵글인들은 굳이 그 지역까지 진입하는 것을 꺼렸기에 브리튼계이면서도 거의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앵글로색슨어로 Gyr는 깊은 늪지대라는 뜻으로, 깊은 늪지대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들 부족은 각각 머시아와 동앵글리아에 분할 점령되었다.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다.

하에스팅가스족은 오늘날 헤이스팅스 지명의 어원이 된 부족으로, 바로 그 유명한 헤이스팅스 전투가 그들이 사는 영역에서 발발했다. 하에스팅가스라는 이름은 하에스타라는 족장의 부족이라는 뜻이다. 한때 이들이 프랑크족이라는 가설이 제안되었으나 현재는 켄트 왕국의 주트족과 동계라고 본다. 6세기 또는 늦어도 7세기에는 정착했으며, 686년 켄트가 웨식스에게 국경지대 영토를 할양했을 때 이들도 웨식스령으로 넘어갔으나, 771년 머시아의 오파 대왕이 에식스, 켄트, 서식스, 웨식스를 개발살내놨을 때 이들도 오파에 맞섰으나 대패하고 이후로는 서식스에게 귀속되었다. 이들은 무려 11세기까지 독자성을 유지했다고 한다. 참고로 7세기 말~8세기 초에 켄트와 서식스가 모두 개판일 때 거의 완전한 독립을 누렸는지, 서식스에서 이 부족의 지도자를 '왕'이라고 자신들과 동등하게 언급하는 서신이 존재한다.

앵글로색슨 사회에서 엘리트적인 귀족 가문의 존재는 상당히 중요했다. 앵글로색슨 잉글랜드 내 패자를 뜻하는 브레트왈다는 본래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의 지도자를 부르던 명칭이라고 하며, 이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지역 게르만 부족왕국들이 그랬듯 전쟁에서 싸우는 전사에 가까웠고 왕권의 기반 또한 전쟁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워딘(오딘)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신화적인 가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왕국에 속한 이들에 대해 '친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배했다. 왕은 군대를 소집해 전쟁을 벌일 수 있었으나 대신 음식이나 숙소, 무기를 병사들에게 지원해 주어야 했던 의무관계였다. 또 왕은 자유민들로부터 식량을 빌렸으며, 약탈에 나서 획득한 약탈품들을 통해 잉여가치를 만들어냈다.

한편 앵글로색슨족은 7세기를 기점으로 매장이 쇠퇴하고 무덤을 만들게 되는데, 동시에 무역을 위한 무역소들이 설치되고 약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물품들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소 또한 설치되었다. 그 결과로 이전에 약탈에 의존하던 시절보다 수지가 크게 개선되었고, 잉여생산물이 증대됨으로써 왕들은 무덤에 화려한 귀금속과 같은 것들을 같이 묻을 수 있게 되었다. 또 동시에 사회적 부의 재분배 또한 이전보다 크게 활발해져, 사회적 계층 형성이 뚜렷해지고 토지 및 영토에 대해 더 수월한 관리가 가능해졌다. 또 브레트왈다의 정의가 명확해지고 전체 앵글로색슨 권역이 단순한 regnum(왕국)들의 집합체가 아닌 하나의 imperium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각 왕국들 간의 정치적 역학관계도 변화했다. 머시아의 펜다나 오스위우, 오파 같은 왕들이 브레트왈다로서 주변국들에게 삥을 뜯고 내정에 간섭하며 사실상 속국으로 삼았던 행위들은 이러한 관념의 변화를 상징한다. 한편 오스위우는 북부의 픽트족이나 컴브리아인처럼 앵글로색슨의 권역에 포함되지 않는 부족들에 대해서도 통제를 시도했다. 이 시도는 결과적으로 실패했으나 훗날 전체 브리튼 섬을 통합한 단일 국가라는 관념이 이미 이 시기에 아주 미약하게 싹텄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발전의 결과로 독립을 누리던 부족들이나 군소 왕국들은 서서히 더 큰 왕국들에게 통합되었고, 최종적으로 9세기 즈음에는 잉글랜드를 통틀어 5개의 나라만이 멀쩡히 독립을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단순히 사회적인 변화를 통해 군사적으로 정복함으로써 영토를 단순히 확장하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베오울프 서사시에서 표징되는 것처럼 더 강한 세력을 가진 왕이 더 약한 세력을 가진 부족/소왕국들을 '보호'한다는 관념에 가까웠다. 위에서도 설명했듯 칠왕국에는 여러 부족들이 자치와 명예를 누렸고, 이들은 왕국에 종속된 것이 아닌 보호를 받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서서히 왕국 그 자체에 통합되어 이런 의미가 퇴색된 경우가 상당수이기는 하나, 서식스 왕국의 경우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서식스는 멸망할 때까지 합병한 부족들의 자치와 권역을 그대로 보존했기 때문이다.

한편, 색슨족에게는 '위태나게모트'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의회 비스무리한 것이 있었다. 이것의 본질적인 역할은 왕에 대한 조언 정도였지만, 이들은 실제로는 더 강력한 영향을 발휘해 토지 소유나 전쟁, 교회 문제 등 더 복잡한 사안을 처리했으며 때때로 웨식스의 경우처럼 왕위 승계에 관여하기도 했다. 한편 서식스 같은 경우는 고대 게르만족의 고유한 의회였던 '팅그'가 정기적으로 열렸다. 초반에는 이들은 불과 수백 명 단위가 간편한 장소에 모여 회의하는 것에 불과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점 이들의 위상이 올라가 지방행정조직 간의 정기적인 만남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또 법원의 역할도 수행했다.

한편, 9세기에는 최초로 '사제', '전사', '노동자(농민)'으로 구성된 세 계급이 언급되었다. 이는 왕이 자신의 통치를 펼치기 위해 이 세 계급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에서 나온 것으로, 이에 따르면 이 세 계급의 협조를 얻지 못하는 왕은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없었다. 또 바이킹의 침략으로 인해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알프레드 대왕은 왕국의 방어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는 명분을 들어 이 세 계급이 통치에 협조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는데, 그는 이를 통해 단순히 자신의 통치권을 정당화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지주나 농민들의 토지 소유권들을 적극적으로 회수하였다. 이전까지 토지 증여는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이제는 영구적인 소유권 이전을 의미했다. 그는 이 토지를 교회에 증여했고, 이를 통해 교회의 권위를 확립함과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토지 소유를 퍼트렸다. 또, 이러한 개념의 도입은 토지의 세습을 정당화했으며, 곧 그 토지에 부속된 작위의 세습까지도 인정되었다. 이전 앵글로색슨 시대에는 대륙의 백작에 해당하는 지방행정관 earldorman은 세습되는 작위가 아니었으나, 이제는 세습되는 대륙식 백작 또는 공작과 유사해졌다. 이로써 고전적인 부족적 전통에 기반해 있던 앵글로색슨 왕국들은 봉건제기독교에 기반한 중세적 국가로 재편되었다.

5. 로만 브리튼과의 연속성

로마가 브리튼에서 철수한 이후 7왕국이 대체하는 과도기가 정복, 파괴와 학살, 이주의 시기로 기억되다 보니, 일반적인 편견에선 마치 로마 시대의 유산이 앵글로색슨 시기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동시대 다른 게르만계 왕국들처럼 칠왕국은 게르만의 전통에 로마의 전통을 어느 정도 융합하여 좀 다른 체계를 만들어내었다.

고고학적으로도, 앵글로색슨 이주 극초기인 5세기 이들 전사집단의 무덤에서는 로마식 유물들이 다량으로 출토된다. 또 6-7세기 가량의 앵글로색슨계 무덤들이 밀집되어 있는 서튼 후 지역의 봉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앵글로색슨계 지배자들이 기존의 켈트계 브리튼인들의 상징과 문화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어느 정도 받아들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의 연구자들은, 앵글로색슨 시대의 농촌 사회 조직은 다른 프랑크 왕국, 서고트 왕국등 대륙의 게르만계 왕국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 시대의 제도가 그대로 계승된 것으로 보았다. 또 자유민 = 앵글로색슨, 노예 = 켈트인이라는 통념과 달리 왕 혹은 부족장과 그의 가신에 속하지 않는 대부분의 농민 계급은 브리튼인들이었다. 여기에 더해 웨식스 왕국의 경우 초기 왕들의 인명이 브리튼식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색슨계 지배자들이 토착 브리튼계 유력자들과 통혼하고 그들을 수용하였음을 암시한다. 이렇듯, 앵글로색슨인의 이주는 다이나믹한 파괴와 학살을 통한 대체가 아니라 두 민족이 서로 점진적으로 융합해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로마의 유산은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런던을 비롯해 로마 시대 도시였던 곳들 대부분이 앵글로색슨 시대에도 남아 현재 잉글랜드의 도시로 계승되었다. 로마식 성벽과 도시 인프라가 그대로 보존되었던 것이다. 또 문화적으로 보더라도 색슨족은 전쟁을 함에 있어서 tufa라고 불리는 깃발을 드는 기수를 앞세우는 로마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했다.

그러나 더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로만 브리튼 영역으로 이주한 게르만족들은 다른 로마 영내로 이주한 게르만족 국가들관 달리 유전학적으로도 잉글랜드 동부는 켈트계에 비해 앵글로색슨족 비율이 높고[2][3][4][5] , 어휘적으로도 인명이나 지명 같은 고유명사[6]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게르만어로 대체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다른 게르만 왕국들관 달리 게르만족 또한 농촌을 포함한 많은 지역에서도 상당수를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dux, comes 같은 관직으로 보였던 명칭은 프랑크 왕국관 달리 제도적 명칭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게르만족의 귀족 칭호, 혹은 관직의 역어에 불과했단 가설이 있다. 이를 미루어보아 이전 학설처럼 현지인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정착한 것은 아니고, 현지인들과의 혼혈 및 현지 문화 수용은 일부 있었으나 프랑크 왕국, 서고트 왕국, 동고트 왕국등 대륙의 게르만 왕국들에 비해선 현지 문화와의 융합은 덜했던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6. 잉글랜드 통일 왕국의 탄생

칠왕국 초기는 당대 기록이 없어서 형성 과정이 명확하지 않으며 이들의 경계도 서서히 생겨났다. 잉글랜드인들은 대체로 서로를 정복하기보다는 가장 강력한 왕에게 복종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가장 강력한 종주국 왕을 아일랜드아르드리처럼 브리튼의 지배자라는 의미로 브레트왈다(brytenwalda)로 불렸다. 브레트왈다와 종주국은 나머지 왕국들을 명목상 종속국으로 삼았고, 각 왕국들에게 봉토를 수여하는 형태로 각 소왕(小王)들의 봉지를 인정해 주는 대신 주종 관계를 유지했다. 칠왕국 시절의 초창기인 5세기에는 남부 서식스, 이후에는 7세기 초 번영한 동부의 패자 동앵글리아, 7세기 중엽 펜다 왕과 8세기 오파 왕의 시절 번영한 중서부의 패자 머시아, 버니시아와 데이라의 연합 왕국인 북부의 패자 노섬브리아, 남부의 패자 웨식스 등 5개 왕국이 번갈아가면서 군림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웨식스가 주변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모조리 격파하고, 잉글랜드 통일의 발판을 다졌다.

최초의 종주왕은 켄트 왕국애설버트라고 할 수 있다. 켄트는 해안가에 있어서 대륙과 접촉한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616년 애설버트가 죽고 동앵글리아의 왕이었던 조카 래드왈드에게 잠시 권력이 넘어갔다가 노섬브리아가 부상했다. 7세기 초는 노섬브리아의 전성기였다. 에드윈은 서쪽 바다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북쪽으로도 국경을 확장하여 요새(Edwin's burgh)를 지었는데 곧 오늘날의 에든버러(Edinburgh)이다. 그러나 에드윈은 632년 그위네드와 머시아의 귀족 펜다의 동맹군의 침공으로 전사하여 머시아에 권력이 넘어갔다. 펜다는 중부 잉글랜드를 연합하여 왕이 되었다. 머시아는 654년 노섬브리아를 침공했다가 패배하여 노섬브리아 왕 오스위가 다시 브레트왈더가 되었다. 그러나 670년 오스위가 사망하고 내분에 휩싸여 다시 머시아가 부흥했다.

머시아의 특출난 왕으로 오퍼(757-796)가 있다. 오퍼는 이남으로 세력을 넓혀 런던까지 판도에 넣었다. 오퍼의 업적으로 오퍼의 방벽이라는 토성이 있다. 오늘날 웨일스와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건설된 240km 길이의 대규모 토목 공사였다. 오퍼는 내치에도 관심을 기울여 법률, 경제, 무역, 종교 여러 면에서 업적을 세워 앵글로 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프랑크카롤루스 대제가 오퍼를 동등한 왕으로 대우한 것이다. 그러나 오퍼가 사망하고 웨식스의 대두, 바이킹의 침입, 무능한 후계자로 권력이 웨식스로 넘어갔다.

이처럼 칠왕국은 대략 100년 단위로 번갈아가며 흥망성쇠했는데 500년대에는 켄트 왕국, 600년대에는 노섬브리아, 700년대에는 머시아가 강성하다가, 800년대부터는 웨식스가 부상했다. 웨식스 왕 에그버트(802-839)는 엘렌던 전투에서 머시아를 물리치고 브레트왈다로 인정받았다. 에그버트는 남부 잉글랜드 전역을 지배했으나 연합은 느슨했고 지배권도 확고하지 않았으며 바이킹을 막아낼 군대가 없었다.

앵글로색슨인에게는 뚜렷한 우주관이 없었고 자신들의 종교보다 권위에 복종하고 상속권을 규정하는 등 여러 기독교의 교리가 국가 운영에 더 잘 부합했기 때문에 잉글랜드 왕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잉글랜드인들은 로마 교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켈트족의 교회라는 두 경로로 기독교를 접하여 서로 대립하기도 했다. 부활절 날짜도 달라서 왕과 왕비가 다른 날을 지켜야 하는 경우도 었었다. 663년 결국 노섬브리아 왕 오스위는 회의를 소집해서 로마 교회의 손을 들어주어 로마 교회가 잉글랜드를 종교적으로 통일했다.

나머지 6개 국가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간의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동쪽에서 침공해 들어오는 바이킹들의 침공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9세기 무렵 앵글로색슨 왕조들은 데인족 바이킹의 침략인 이교도 대군세에 휩쓸려 잉글랜드의 패권을 둔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웨식스의 명군이었던 앨프레드 대왕의 맹활약으로 유일한 독립국인 웨식스를 바이킹으로부터 지킬 수 있었다.

브리튼 섬에 정착한 바이킹들을 바로 데인족이라 부른다. 그들은 노섬브리아 남부, 동부 머시아와 에식스 및 서식스, 그리고 동앵글리아를 정복했다. 그곳의 데인족들은 덴마크노르웨이의 고향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으며, 지속적으로 브리튼 제도의 패권을 두고 웨식스와 교전을 벌였다.

이 시기를 데인로(Danelaw)라 부르는데 9세기 중반부터 925년까지 이어진다. 앨프레드 대왕 사후 여러 명의 왕을 거치면서 웨식스-머시아 연합군과 데인족들의 왕국은 치열한 공방전을 주고 받았고, 10세기에 들어서자 연합군이 서서히 데인족들을 압도하기 시작해 그들이 점령한 도시들에서 하나 둘씩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머시아 동부의 도시들을 시작으로 동앵글리아의 왕 구트룸 2세를 전사시키며 동앵글리아를 합병했고, 노섬브리아의 데인족들을 성공적으로 정복했다.

칠왕국의 잔재와 바이킹의 잔존 세력을 모조리 격파한 웨식스는 통합 앵글로색슨 왕국인 잉글랜드 왕국으로 국호를 변경했고, 애설스탠이 잉글랜드 왕국 최초의 왕으로 즉위했다. 다만 이후에도 잉글랜드에는 바이킹을 비롯한 이민족의 침략이 계속되어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1세노르만 왕조까지는 정복 왕조가 반복되었다.

7. 칠왕국 이외의 국가들

칠왕국이라는 명칭은 근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인데, 실제로 7개 국가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더 많은 국가들과 중소부족들이 존재했으나 지속적인 합병과 확장을 통해 8-9세기에는 5개로 정립되었다. 애초에 7개 국가가 모두 동시에 독립국으로 존재했던 시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7왕국이라는 명칭은 엄밀히 말해 어폐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나열되는 국가들은 7왕국에 끼지는 못하지만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앵글로색슨계 국가들이다.
여기에 7세기까지 존재한 브리튼계 왕국들의 존재까지 합치면 이 시기 잉글랜드의 정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며, 7왕국이라는 명칭은 현실을 단순화하고 왜곡하는 간편한 명칭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8. 기타

20세기에 영국역사학자들은 이 시대를 칠왕국으로 표기하는 것이 과연 적당한지를 두고 여러 논쟁을 거쳤다. 고대, 중세 등의 시대 구분도 아니고 애초에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7개 국가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의 깃발 유니언 잭 아래 합병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지의 역사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통용되어 온 보편성 탓에 칠왕국이란 명칭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7]

베데의 저서, 《색슨 연대기》, 전설들에 따르면 이때 잉글랜드로 넘어온 앵글로색슨 지도자들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공통적으로 'Woden'(오딘)이 나온다.

이들이 숭배한 북유럽 신들의 이름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전쟁의 신 티우(Tiw)는 화요일(Tuesday)의 어원이며, 주신 워든(Woden)은 수요일(Wednesday), 천둥의 신 토르(Thor)는 목요일(Thursday), 평화의 여신 프리그(Frig) 혹은 미의 여신 프레이야(freyja)에서 금요일(Friday)이 나왔다.

9. 창작물

영국의 역사에서 분리된 시기가 길었던 때인 만큼 이후의 영국 문학 등에 여러모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시작은 앵글로 색슨의 침공이고 후반은 바이킹의 침공인지라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는 대규모 전쟁 사극의 소재로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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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표를 기준으로 대한민국 역사와 비교하면, 나제동맹한강 유역 점령가야멸망전 즈음부터 앵글로색슨족이 브리튼섬에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해, 고구려 영양왕 즉위시점 즈음 7왕국이 확립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7왕국이 웨식스로 통일된 시기는 통일신라고려로 전환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2] 2022년도의 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앵글로색슨족의 이주는 피지배층과 여성들을 포함한 대규모 가족단위 이주 모델로 보인다. 중세 초 남동부 잉글랜드에서는, 정착민 2세대까지도 유의미한 수준의 성 염색체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3] 정복이 소수 남성 엘리트층에 한정된다면, 정복자의 2세 혼혈들은 토착 사회에 동화되는 겅우가 대부분이다. 노르망 정복처럼 사회 중하부에는 기존 사회 구조가 유지되는 경우, 침략자의 언어가 기층언어의 영향을 받는 거나 피지배층의 언어에 동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켈트어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어나, 콥트어의 영향을 받은 이집트 아랍어,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은 오스만어 같이. 그러나 영어에 켈트어의 흔적이 거의 없다는 것 때문에 언어학자들은 앵글로색슨족 소수 남성 정복자들이 단순히 켈트족을 정복한 게 맞냐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었는데, 앵글로색슨의 이주 규모는, 토착 브리튼 사회보다도 우세한 규모의 가족 단위 대이동으로 보인다. 즉, 전쟁과 역병, 교역망 붕괴로 토착 브리튼 인구가 감소하고 사회가 붕괴하면서, 앵글로색슨족이 가족-부족단위로 브리튼에 대규모 정착한 것이 현재로서는 정설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잉글랜드는 북미-아르헨티나처럼 기존 사회가 붕괴되며 앵글로색슨인들이 대규모로 정착하고, 브리튼인 선주민들은 서쪽의 웨일스콘월 등에서 버틴 것이다.[4] 또한 시펠스 박사는 현대 영국인 유전자를 연구한 2016년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잉글랜드 주민의 혈통 중 앵글로색슨계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전체적으로는 1/3 정도(10~40%)에 불과하다고 했고, 동부 지역은 전반적으로 약 38% 정도가 앵글로색슨이라고 주장했으나, 시펠스 박사가 5세기~7세기 기준의 80개 인골의 DNA를 재조사한 2020년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침략 기간 동안 잉글랜드 남동부 토착민의 80%가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며 새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즉, 영국인의 게르만계 유전자가 10~20%라는 것은 오히려 중세 초기 잉글랜드인으로 확정된 유골이 적고 유전학계에서 현대인의 유전자를 토대로 연구하는 것이 주류이던 2010년대까지 연구되던, 현대 영국인의 유전자를 토대로 연구한 구 학설이다.[5] 또한 바이킹 시대이전인 5~7세기에도 바이킹급 규모만 아니었을 뿐, 게르만 거주 지역엔 대규모 운송선을 운용한 흔적이 발견되었고, 최근의 고고학계와 유전학계의 협업 연구 및 영국의 도시 개발을 위한 발굴 조사, 유전학 및 고고학 기술 발달등으로 잉글랜드 각지에서 수백구 규모의 중세 초기 앵글로색슨인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들을 최신 2020 시펠스 박사 연구와 2022 네이처 연구에 이용한 것이다.[6] 사실 지명은 새로운 정복자들이 들어와도 기종 지명으로 유지되거나 일부만 변경되는 경우가 많기에 큰 근거는 되지 못한다.[7] 경우는 좀 다르나, 중국 전국시대 당시 정확히 7개 국가가 존재했던 건 아니었지만 전국칠웅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과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