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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8:37:44

굼봉이

1. 개요2. 설정과 구성3. 등장인물
3.1. 굼봉이의 초능력
4. 굼봉이와 좁쌀이의 활약(?) 일부
4.1. 마지막 회
5. 《도라에몽》과의 유사성?6. 주인공 굼봉이와 명랑만화의 주인공들
6.1. 악역이거나 부정적인 인물6.2. 주인공, 혹은 주조연급
7. 기타
7.1. 윤승운 화백의 작품과 꿈7.2. 《굼봉이》의 연출과 잔잔한 여운7.3. 여담

1. 개요

《굼봉이》 1권의 표지[1]

1970년대에 윤승운 화백이 잡지 《어깨동무》에 연재했던 명랑만화다.

2. 설정과 구성

서울의 방개국민학교에 다니는 좁쌀이는 지독하게 공부를 싫어하지만, 운동신경은 좋고 몸도 튼튼해서 왕따는커녕 아이들을 두들겨 패기도 하는 등 지독한 말썽쟁이다. 어느 날 굼봉이라는 소년이 좁쌀이와 같은 반에 전학 온다. 담임교사보다 월등히 큰 굼봉이의 키와 체구에 반 아이들은 다들 놀란다.

다들 굼봉이의 체구에 기가 죽지만, 좁쌀이는 굼봉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굼봉이도 마음이 무척 넓고 착하고 생각이 깊어서 좁쌀이와 금방 친해진다. 그러나 사소한 다툼으로도 좁쌀이는 굼봉이를 두들기기도 하고,[2] 심지어 호구 취급하려고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굼봉이에게는 상상을 초월한 초능력이 있기에 좁쌀이가 오히려 당하기도 한다.

한 예로, 전학 온 다음 날의 등굣길에, 굼봉이를 막 대하는 좁쌀이를 보고, 저 덩치 큰 굼봉이가 좁쌀이에게 꼼짝도 못한다며 급우들은 어리둥절해한다. 얜 덩치만 컸지 아무것도 아니라며 한 번 보여주겠다고 나선 좁쌀이는, 뒤에서 힘껏 굼봉이의 다리를 걷어찬다. 그러나 굼봉이는 살짝 초능력으로 방어하여, 걷어 찬 좁쌀이만 발이 아파 난리가 난다. 이후에도 심술을 부리려다가 굼봉이의 초능력에 당하기도 하면서, 좁쌀이는 굼봉이를 의심하게 된다. 툭탁거리면서 좁쌀이와 정이 들기도 한 굼봉이는 자신의 초능력을 말해주며, 이를 비밀로 할 것을 약속받는다. 이후 둘은 더욱더 친해져 둘도 없는 단짝이 되지만, 좁쌀이 역시 속은 착해서, 굼봉이의 초능력을 악용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늘 100점을 받고 품행도 모범생인 굼봉이는, 공부를 질색하고 말썽만 부리는 좁쌀이와 잘 어울리고, 초능력으로 좁쌀이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주기도 하고, 때론 훈훈하게, 때론 따끔하게 교훈을 주기도 하며, 공부를 하는 게 본분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굼봉이의 초능력으로 둘은 은하수로 걸어 올라가(!?), 은하수 강물(?)에서 천렵(川獵)을 한 적도 있다. 이렇듯 우주(?)는 말할 것도 없고, 북극, 남극, 땅속으로 놀러가기도 한다. 그러나 좁쌀이의 말썽이나 심술 등으로 고생하거나 위기에 처하여, 그러면 안 되는 거였구나, 하고 좁쌀이가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소풍 가자며 굼봉이와 같이 간 좁쌀이는, 얼떨결에 끌려와 빈손인 굼봉이 앞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혼자서만 먹는다. 배고픈 친구를 앞에 두고도 음식이 잘 넘어가냐는 굼봉이의 말에 좁쌀이는, ‘그래, 잘만 넘어간다’고 비웃으며 혼자만 먹는다. 굼봉이는 초능력으로 풀뿌리 같은 것들을 튀어나오게 해서 먹으면서, 배가 고파서 풀뿌리를 캐먹는 거라고 한다. 좁쌀이가 이를 비웃자, 굼봉이는 맛있게 먹으며 ‘이게 바로 산삼이라는 거야’ 한다. 놀란 좁쌀이는 ‘나 좀 줘’ 하며 달려들었지만, 이미 굼봉이가 다 먹어버린 후였다. 발끈한 좁쌀이는 호미를 가져와 산을 파헤치고, 사람의 몸보다 몇 배나 더 큰, 좁쌀이의 표현으로는, 케케묵은 산삼을 캐내고 좋아한다. 하지만 산삼이 아니라며 주의를 주는 굼봉이의 말을 무시하고, 혼자 욕심을 냈다가 호되게 고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좁쌀이가 얻은 교훈과 깨달음은 명랑만화답게 여러 사정으로 곧 헛수고가 되거나, 다음 회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좁쌀이는 다시 말썽을 부리고 있다. 즉, 전체를 관통하는 줄거리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핵심 뼈대를 바탕으로 한 회, 한 회 마무리되는 옴니버스 식 구성이다. 일본이건 한국이건 대부분의 명랑만화들이 이렇긴 하다.

3. 등장인물

3.1. 굼봉이의 초능력

극중 굼봉이의 초능력 사용은, 명랑만화적, 정확히는 윤승운 화백답게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묘사되었다. 결코 화려한 시각적, 만화적 효과를 넣은 건 아니지만, 몇 번 보면, ‘아하, 굼봉이가 초능력을 사용하는구나’ 하고 바로 알 수 있다. 《6백만불의 사나이》에서 스티브 오스틴이 힘을 쓸 때의 효과음이 청각적인 효과가 컸다면, 이 만화에서는 시각적 효과라는 것이 다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80~90년대, 전자오락실의 뿅뿅~ 하는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다고도 한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유치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1. 염동력(念動力: psychokinesis): 투수가 던진 야구공의 궤도를 맘대로 바꿀 수 있다. 이 능력으로 투수 훈련을 받은 적이 거의 없던 좁쌀이를 마구투수로 만들어준 적이 있다. 사람을 공중으로 띄울 수 있고, 굼봉이 스스로 허공을 걸어 올라가거나 물위를 걸을 수도 있다.
  2. 신체강화: 전체, 혹은 일부를 경화(硬化), 혹은 강화(强化)하여 타격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심한 고통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좁쌀이가 종종 당한다.
  3. 변신술(變身術): 동물이나 다른 여러 생물로 변신할 수 있고, 타인에게도 가능하다. 개미로 변신하여 좁쌀이와 함께 개미굴을 탐험하기도 했다.
  4. 텔레파시, 독심술, 의사전달능력: 동물이나 곤충 등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개미로 변신하여 좁쌀이와 함께 개미굴로 들어갔을 때 특히 두드러진다.
  5. 환각, 혹은 정신조작술[Mind Control]: 다종다양한 환각을 보고 듣고 경험하게 만들 수 있다. 어찌 보면 이야기 전개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초능력으로, 당연히 좁쌀이가 주(主) 대상이다.
  6. 초능력 전이(轉移): 타인에게 자신의 초능력을 일부 전해주거나 다시 회수할 수 있는 듯하다. 좁쌀이가 굼봉이처럼 물 위를 걸어보고 싶다고 자꾸 조르자, 잠시 물 위를 걷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7. 공간이동(空間移動: teleportation) 혹은 물질이동: 자신의 몸이나 다른 물체, 심지어는 바람이나 찬 기운, 더운 기운 등도 임의로 옮길 수 있는 듯하다. 북극의 찬바람을 자루 속에 넣어 가져와서, 한여름인데도 일부 범위 내에서나마 한겨울로 느껴지게 만들기도 했다.
  8. 기타 여러 능력: 위기 혹은 필요한 상황일 때마다 다종다양한 능력과 대처로 그 상황을 모면하거나 해결한다.[8]

4. 굼봉이와 좁쌀이의 활약(?) 일부

만화 규장각 소장 《굼봉이》의 표지
당시 별책부록으로 나왔던 《굼봉이》의 표지
해당 내용이 담긴 연재분의 표지인 듯한 《굼봉이》의 별책부록 표지

4.1. 마지막 회

좁쌀이는 굼봉이가 어딘가로 멀리, 영원히 떠나는 을 꾼다. 가지 말라고 펑펑 울다가 잠에서 깬 좁쌀이는 ‘다행이다. 꿈이었구나’ 하며 안도한다. 다음 날 학교에서 좁쌀이는, 뒷자리의 굼봉이에게, ‘네가 멀리 가버리는 꿈을 꾸고 나 많이 울었단다’ 하며 웃지만, 굼봉이는 고개를 팍 숙인 채 눈물만 뚝뚝 흘린다. ‘어?! 왜 그러니? 기운이 없어 보인다’ 라며 좁쌀이는 걱정하지만, 네가 너무 때려서 그런 거라며, 옆의 반 아이는 좁쌀이에게 삿대질하며 비난한다. 하지만 굼봉이의 슬픔은 다른 데에 있었다. 바로 초능력 세계로 돌아가게 된 터라 친구 좁쌀이와 이별하는 게 너무 안타까운 것이었다.

곧 담임선생님이 들어와서 굼봉이의 전학사실을 알린다. 급우들도 놀랐지만, 좁쌀이는 경악하여 사실이냐며 굼봉이에게 묻는다. 그러자 굼봉이는 슬픈 얼굴로 진실을 밝힌다. 자신이 눈물을 흘린 이유는 자신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게 아니라, 때가 되어 영원히 고향인 초능력 세계로 돌아가게 됐다는 말이다. 그래서 흘린 눈물은 좁쌀이와의 이별이 너무 안타까워 흘린 거였지만 옆 반 아이는 그걸 모른 채 좁쌀이에게 비난부터 일삼았으니 더더욱 마음이 아픈 굼봉이. 그러자 굼봉이의 말에, 좁쌀이는 절대 안 된다며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하지만 결국 굼봉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좁쌀이는 굼봉이와 이별 후 밤하늘을 보면서 별 하나, 별 둘을 세다가 굼봉이를 찾으며 우는 등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다. 좁쌀이의 아버지도 이를 보며 아들의 약한 모습에 안타까워 눈물짓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기운을 차린 듯, ‘비켜라. 방개국민학교 좁쌀이 나가신다’ 하며, 신나게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몰고 가는 좁쌀이의 모습으로 만화는 마무리된다. 만화가가 덧붙인 해설은 덤. ‘(…전략)우리의 좁쌀이 군. 신나게 잘 놉니다.’

5.도라에몽》과의 유사성?

초능력을 가진 믿음직한 친구가 말썽꾸러기 친구를 도우며, 우정을 나누고 이끌어주려 노력한다는 설정만 들으면, 도라에몽노비타를 떠올리는 만화 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등장시기도 《도라에몽》이 몇 년 앞선다. 다만 도라에몽은 미래 초과학의 산물인 로봇이고, 굼봉이는 초능력을 가진 소년이라는 점이 다르다. 또한 노비타는 머리가 나쁘고 매사에 멍청하고 게으른 열등생이며, 심성이 착한 것도 있지만, 운동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기도 해서 말썽이나 폭력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좁쌀이는 공부를 안 할 뿐 머리는 좋고, 애들은 물론 굼봉이도 두들겨 팰 때가 많을 정도로 기운이 넘치며, 운동부나 아이들끼리의 시합 등에서도 환영받을 정도로 운동능력도 뛰어나다. 그러나 기본 구도와 핵심 주인공들의 설정에서의 유사성은 부정하기 힘들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표절이라고 하기에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좀 애매한 부분들이 있다. 우선 주인공과 여러 등장인물들의 외모, 성격 등의 설정이 《도라에몽》과는 판이하다. 그리고 윤승운 화백 특유의 감성과 연출, 특히 훗날의 작품, 《맹꽁이 서당》에서 특히 돋보이는, 한국적, 동북아적 전통이나 야사(野史) 등이 가미된 연출이 곳곳에서 보이는 등, 내용과 전개에서 《도라에몽》과 유사한 부분이 별로 없다. 다른 등장인물들의 설정과 관계에서도 아무 유사점이 없다.

사실 기본적인 설정만 보고 표절을 논하기는 좀 곤란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주인공이 어떤 시련을 겪거나, 자신을 핍박하는 악역 때문에 위기에 처하지만, 혼자 힘으로, 혹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마침내 그 시련이나 위기를 극복한다는 설정을 벗어나는 이야기가 얼마나 있을까? 표절을 논하려면, 인물과 배경, 세계관 등의 세부적인 설정이나, 대사와 묘사, 이야기 전개(story-telling)의 흐름 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도라에몽》은 저학년 독자가 대상인 경우, 노비타의 한심함과 친구들의 왕따, 뜬금없는 소원 등으로 도라에몽이 도구를 꺼내 도와주려 하지만, 노비타가 그걸 엉뚱한 곳에 쓰거나 하여 벌어지는 일이 많다. 다소 고학년 독자들이 대상이면, 노비타의 성장 이야기 등도 다루고 어른들도 생각해볼 만한 주제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를 절묘하게 섞으면 《굼봉이》와 비슷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런 시각으로 보자면 대부분의 버디 무비들이나 성장물도, 《도라에몽》보다 이후에 나왔다면, 표절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도 (상대적으로) 능력 있는 친구나 동료가, 착하지만 무능력하거나 불쌍한 친구, 혹은 동료를 돕는 설정이 있으므로, 광의(廣義)의 정의(定義)로 표절을 거론하면, 《도라에몽》도 채플린 영화의 표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유럽의 동화 《장화신은 고양이》의 표절이라거나, 《알라딘과 요술 램프》의 변형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도….

윤승운 화백 특유의 개성과, 때로는 동화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 감성적인 연출 등에 점수를 주어 그 독창성을 높이 사는 쪽도, 《도라에몽》과의 설정 유사성을 지적하는 쪽도 저마다 나름의 근거는 있는 셈이니, 판단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15]

6. 주인공 굼봉이와 명랑만화의 주인공들

제목이자 주인공인 굼봉이의 설정은 상당히 이례(異例)적이다. 당시 명랑만화에서, 들창코의 주인공은 멍청하거나, 친구들에게 은근히 꺼려지거나 하는 등 다소 부정적인 인물 혹은 악역인 경우가 많았다.

1970~80년대 명랑만화 주인공들이나 등장인물들 중 들창코를 넘어 돼지코로 묘사된 인물들을 일부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들창코 등이 외모로 설정된 주인공들 중에서는, 굼봉이가 거의 유일하게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선역(善役)이자 먼치킨인 주인공이다.

6.1. 악역이거나 부정적인 인물

6.2. 주인공, 혹은 주조연급

7. 기타

7.1. 윤승운 화백의 작품과 꿈

윤승운 화백의 명랑만화에선 극단적이거나 위기상황으로 치닫다가, ‘어?! 꿈이었네!’하는 전개나 마무리가 꽤 있다. 윤화백의 작품들 중 꿈이 가장 빈번하게 활용되는 작품은 아무래도 《탐험대장 떡철이》일 것이다. 아무래도 탐험, 모험 등 극단적인 위험요소가 나오기 쉬운 데다가, 주인공이 어린이라는 것으로 인해 검열 등이 작용한 탓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요철 발명왕》에서도 꿈이 잘 활용되는데, 요철 박사의 조수 맹물이가 꿈에서 발명 힌트를 얻고, 마침 요철 박사와 대판 싸우게 되어 요철 박사로부터 독립한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무명 시절, 싸구려 객실에서 끙끙 앓으며 자다가 꾼 악몽이 《터미네이터》의 탄생 배경이 되었듯, 맹물이도 꿈에서 본 그대로 실용적인 발명품을 만들어낸다. 거대한 자석과 철제 옷을 이용, 말썽꾸러기 아이가 자석에 찰싹 달라붙은 채 꼼짝 못하고 책상 앞에서 공부만 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이것이 특허국을 통해 두 아이의 부모님의 손에 들어가, 요철이와 맹물이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는 것이 함정.

꿈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이야기를 대충 때워 수습하려고 하는 거라는 비판도 있지만, 지금 새삼 이 문서를 작성하면서 기억을 되새겨보다가 든 생각이기도 한데 굼봉이의 초능력과 굼봉이의 성품을 생각해보면, 좁쌀이에게 여러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는 그런 경험들을 그저 꿈으로 여기게끔, 굼봉이가 초능력으로 배려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실 굼봉이가 초능력 등으로 좁쌀이에게 무언가 깨우치게 해주려거나,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려고 해도, 좁쌀이의 말썽 등으로 엉망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초능력으로 가야만 하는 먼 곳이나 환상계 등에서 일이 커지다 보면, 굼봉이가 초능력으로 대처해도 때가 늦어서 뒷수습에 그칠 때가 많으니까. 물론 70년대는 검열이 현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18]이었기에, 만약을 대비하여 만든 빠져나갈 구멍이거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7.2. 《굼봉이》의 연출과 잔잔한 여운

윤승운 화백은 길창덕 화백 생전에, 같은 실향민이고 만화계 선후배 관계로서 절친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길창덕 화백의 연출과 일부 통하거나 비교되는 부분도 보인다. 길창덕 화백의 작품에는 알게 모르게 길화백의 문학적 소양(素養)이나 교양 등이 녹아있다면, 윤승운 화백의 이 《굼봉이》는 곳곳에서 불가(佛家), 도가(道家), 유가(儒家)적 향취가 조금씩 배어나온다. 훗날의 작품, 《맹꽁이 서당》은 느닷없이 나온 작품이 아닌 셈이다. 그리고 정형화되어 윤승운 화백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이후 여러 명랑만화에서도 거의 클리셰가 된 연출과 내용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리고 굼봉이의 초능력 덕에 좁쌀이가 교훈이나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는, 그냥 웃고 넘기기엔 사뭇 진지한 부분이 드물지 않다. 어린이용 만화를 넘어, 마치 어린이용 동화가 아닌 동화(童話)를 가볍게 만화로 옮긴 듯 감동적이거나, 어른들도 한 번 생각해봐야할 화두(話頭)를 여운으로 남기는 내용도 있다.

이 《굼봉이》를 본 적 있거나 여전히 기억하는 이들 중에서는, 추억보정일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만화는 걸작이었다고 평하거나, 어떻게든 다시 보고 싶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복간 등의 얘기는 좀처럼 나온 적이 없기에, 어찌 보면 묻혀버린 걸작이나, 잊힌 환상의 작품이 된 셈이다.

7.3. 여담

《스티브 오스틴과 제이미 소머즈》라는 단편만화가 있었다. 《굼봉이》 연재 당시 KBS, MBC에서 6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라 방학특집만화로 등장했다.스티브 오스틴과 제이미 소머즈가 한국 여행 도중 산 속에서 자동차가 멈추자 계곡에 내던졌더니 주먹대장이 위로 던진 다음, "다 큰 어른이 산에 쓰레기를 버리면 되냐?"고 훈계하고, 굼봉이가 초능력을 써서 풀 한 포기도 못 뽑고 메뚜기보다 점프를 못하는 폐인으로 만드는 등 망신당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단편이었다. 70~80년대는 저작권 개념자체가 거의 없어서, 김철호는 이소룡, 성룡, 이주일 등 국내외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을 이름만 살짝 바꿔 등장시키고 했고, 마징가 Z스파이더맨 같은 외국 유명 캐릭터들도 갖다 쓰던 시기였다.


[1] 얼음 구멍 위로 고개를 내민 아이가 좁쌀이, 얼음 위에 서있는, 덩치 크고 맹해 보이는 아이(?)가 초능력 소년 굼봉이[2] 명랑만화이기도 하지만, 2010년 이후의 시각으로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1970년대는, 원래 애들끼리는 싸우며 크는 것이고, 큰 잘못을 했다면 곤죽이 되도록 맞아도 싸다는 것을, 일반인들은 물론 일선 경찰들도 거의 당연하게 여겼다. 서부시대를 다룬 영화를 보며, 사적제재 운운하며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3] 윤승운 화백이 《보물섬》에 게재한 단편, 가훈 때문에 강제로 멀리 여행을 떠나게 된 소년을 다룬 만화에서, 열차에서 만난 주인공의 같은 반 여학생들이 주인공 돌이에 대해 유명한 아이라면서 한 말이기도 하다.[4] 당시에는 국민학교였으니까[5] 얌전하다는 뜻.[6] 오른쪽 아래의 흰 수염 노인이 굼봉이의 아버지, 그 아래 꼬마가 좁쌀이, 맨 오른쪽이 굼봉이이다.[7] 이를 좁쌀이와 굼봉이에게 요리해서 먹으라고 한다. 당시는 야생동물 사냥 등에 딱히 규제가 없던 시대였다.[8] 그러나 좁쌀이에게 무언가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인지, 재깍 해결하지는 않는 듯한 경향이 있다.[9] 당시에는 일본에서 넘어온 이 말을 꽤 많이 쓰던 때였다. 원어는 영어의 rucksack【‘rʌksæk: 럭색】인데 일본어로 リュックサック(륫쿠사쿠)라 하므로 우리나라에는 륙색으로 들어온 듯하다.[10] 길창덕 화백의 《선달이 여행기》에서, 뚝갑이와 선달이가 한강에서 배를 빌려 노 저으며 뱃놀이 하다가 강화도에까지 흘러가는 과정에서, 둘이 이 노래의 우리말 번안곡을 합창하는 부분이 있다.[11] 당시 흥행에 대성공했던 영화 《죠스》의 영향이 있었던 듯하다.[12] 신문수 화백의 《도깨비 감투》에 나온 벽촌 국민학교 축구부 이야기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주인공 혁이는, ‘우리 같은 시골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에게 안 되는 거구나’ 하고 시골 아이들이 좌절하게 두면 안 되겠다며, 도깨비 감투를 쓰고 축구 경기에 개입, 손으로 공을 빼앗아 한 골을 넣고, 벽촌 축구팀이 골을 넣게끔 도와주는 등 패배 위기의 경기를 역전시킨다. 결승전 등에서는 혁이가 개입 않지만, 그 축구부는 우승을 거둔다. 그러나 이후의 경기에도 혁이는 개입하려 했지만, 헤딩에서 실수해 감투가 벗겨져 도망 나온 후에야 포기했던 걸 감안하면, 여러 가지로 생각해봐야 할 소지가 있다 하겠다.[13] 좁쌀이가 동네에서 소문난 말썽쟁이임을 알 수 있다.[14] 1970~80년대 대부분의 난방수단은 연탄이었다.[15] 다만 《굼봉이》는 지금은 절판되어 거의 구하기 불가능한 희귀본이 되었다는 게 함정….[16] 설정상 최종보스로 온갖 재물을 불법축적하며 범법도 자주 저지르는 악당.[17]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18] 어리고 가난한 남매가 쪽방에서 밤에 자는 경우, 경고를 받고 둘을 형제나 자매로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남녀가 한 방에서 자는 걸 그렸다는 게 이유였다고 한다. 남매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