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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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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21439c> 제18-20대 경상북도 구미시장 남유진 南洧鎭 | Nam Yoochin | |
자 | 덕원(德元) |
본관 | 영양 남씨[1]# |
출생 | 1953년 4월 7일 ([age(1953-04-07)]세) |
경상북도 선산군 옥성면 산촌동 (현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산촌리)[2]# | |
학력 | 선산초등학교 (졸업) 대구중학교 (졸업) 경북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 /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3]) 조지타운 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정책학 / 석사 과정 수료) 금오공과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박사[4]) |
소속 정당 | |
재임기간 | 제18-20대 경상북도 구미시장 |
2006년 7월 1일 ~ 2018년 1월 25일[5] | |
경력 |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경상북도 청송군수(관선) 행정자치부 공기업과장 대통령비서실 국장 경상북도 구미시 부시장 국가청렴위원회 홍보협력국장 구미경영기술지원센터 대표 제18·19·20대 경상북도 구미시장(민선) |
외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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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 정치인. 본관은 영양(英陽).2006년부터 2018년까지 12년 동안 경상북도 구미시장을 3선 연임했다. 그리고 박정희 기념 사업에 지나친 예산 투입을 반복하여 결국 구미시 경제를 파괴해 역사상 최악의 구미시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국내내륙 최대공업단지를 말아먹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2. 생애
1953년 4월 7일 경상북도 선산군 옥성면 산촌동(현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산촌리)에서 선산군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6] 아버지 남기혁(南基赫)과 어머니 강릉 유씨 유만덕(劉萬德)의 딸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산초등학교와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취득했으며,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한 뒤 2013년 2월 금오공과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제22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총무처,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산림청 등에서 근무하다가 노태우 정부 후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였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는 관선 경상북도 청송군수를 지냈다. 이후 다시 내무부, 행정자치부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김관용 구미시장[7] 밑에서 구미시 부시장을 지냈다.
3. 구미시장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까지는 경제가 호황이었고 D램 시장이나 여러 디스플레이 시장이 호황이었기 때문에 이 때까지는 괜찮았다. 수출액도 2006~2007년 4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구미 역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기도 했고 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긴 했지만,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덮쳤기 때문에 이는 전국 모든 도시의 일부 대기업들과 꽤 많은 중소기업들이 박살나는, IMF와 비견되는 그런 상황이었기에 남유진 한 사람 만의 책임으로 몰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쨌든 기업들은 피터지는 환경을 겪긴 했어도 나름 선방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구미시장 재선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구미에 암운이 드리웠다. 이 즈음부터 대기업들이 하나둘 씩 구미를 떠나기 시작했고,[8] 2010~11년을 전후해서 구미 1공단이 급격히 몰락한데다 2012년 즈음에는 2, 3, 4공단도 완벽하게 터져버렸다. 구미시민들은 안 그래도 물가도 비싸고 생활 환경은 최악의 수준임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불황 속에서 정말로 경제를 살려줄 수 있는 다른 후보가 혹여나 나설 수 있는지를 내심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에는 또 3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게다가 그 당시 대통령이 대통령인지라. 결국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로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3선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이때 시민단체인 구미참여연대에서 만든 성남시와 비교카드뉴스가 화제가 되기도 하는 등 민심 이반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
극렬 친박 성향의 정치인 중 하나로, 박정희 반인반신 발언의 당사자라고 하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생지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시 예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서 그게 논란이 됐다.[9] 물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도 참석해서 비판을 받았다.[10] 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는 반신반인” 신격화 논란 남유진 구미시장, 기초 지자체장 중 첫 탄핵반대 집회 참석 논란
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는 반신반인, 우표 무산 자괴감" 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 우표' 발행 촉구 1인 시위
박정희 '탄신' 100주년 기념우표 발간을 추진하다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좌절될 위기에 놓이자 박정희 기념우표 발간 촉구 1인 시위를 진행하는 등의 행보로 빈축을 사고 있다. 그 외에도 시정 능력까지 도마에 올랐다. 사실상 12년간 제대로 구미를 위해 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미의 몰락을 이끌어간 그의 행보에 경제 발전에 목말라 있었던 시민들의 반감도 상당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남유진 전 시장은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를 통해 기념우편을 철회한 것은 위법하다며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각하당했다.[11] 이로써 철회가 완전히 확정되었다. #
남유진 전 시장이 구미시 예산을 얼마나 형편없이 책정했냐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에는 무려 1,0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그냥 일시불로 결제했으면서, *
정작 당연히 기본으로 공공장소에 깔려야 하는 휴지, 고작 한 롤에 500원이면 충분히 매입 가능한 이런 단순한 것들도 예산이 없다면서 제대로 지급 자체를 못하는 진풍경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박정희 기념 사업, 새마을운동 관련 사업 같은, 후순위로 미뤄도 되는 일에는 구미시 한 해 예산(1조 1,000억 원 내외)의 25%에 가까운 2,600여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3년 동안 써댔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J가 확인해봤습니다] 구미시 지원금 없어 화장실 휴지 없다? 하지만 이런 기사가 나왔다고 해서 나빠질대로 나빠진 평가가 나아지진 않았다.
구미시가 개인 사업자인 구미버스터미널에 전 해까지 매년 보조금을 지원하다 중단한 것은 사실이나, 보조금 지원 대신 버스터미널 화장실 청소 인력을 구미시가 대신 고용하게 돼 오히려 지원이 30% 정도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화장실에 들어가는 휴지도 함께 지원한다는 것이다. 저 기간 화장실에 휴지가 없었던 것은 예산 항목을 보조금이 아닌 '근로자 임금'과 '공공운영비' 명목으로 바꾸는 과정이 오래 걸렸고 그에 따른 공백 기간이라는 것이다.
저 글은 구미종합버스터미널의 한 임원이 내건 것으로, 그해 갑자기 바뀐 지원 방식을 두고 구미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한다. 버스터미널 관계자는 구미시가 갑자기 지원을 중단해 버려 항의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며, 아무리 돈이 없다 해도 휴지 채워넣을 돈이 없진 않다고 이야기 했다.
이렇게 남유진 전 시장이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 찬양에 정신이 팔린 동안 구미시에 있던 공장들은 줄줄이 도산했으며, 크나큰 오판으로 인한 잘못된 정책 수립으로 주택을 과잉 공급하여 집값이 3년간 무려 30%나 폭락하는 등 부동산 시장마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우상화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던 한반도의 윗 동네랑 다를 게 뭔가 싶을 정도이다. 즉 남유진은 시민과 민생보다 박정희 일가를 우선시 하는 막장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4. 경북도지사 경선 패배, 그 이후
지자체장은 원칙상 한 지역에서 3선까지밖에 못 하므로 2018년 1월 25일, 시장직을 자진사퇴하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북도지사 출마 선언을 했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석 이력을 강조하며 공약으로 포항 영일대에 박정희 동상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 하지만 자유한국당 경상북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11.0%를 득표함으로써 경선을 꼴찌로 마감하면서 출마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후 이철우 경상북도지사 후보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시장 재임 기간 실정으로 인해 경북에서 젊은 세대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구미시민들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비록 보수표가 세 갈래로 분열되기는 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후보를 선택하면서 투표로써 제대로 응징했다.
그리고 비단 시장 하나 뿐만 아니라 제반 정치 환경까지 새로 바뀌었다. 경북 도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에 비해 앞섰으며, 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이 공천한 모든 후보가 1위 혹은 2위로 모두 당선되었다. 남유진 시장의 아스트랄한 실정들에 지친 구미시민들이 시장과 시의회를 통째를 바꾸게 된, 즉 위 아 더 월드를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쯤 되면 TK에 얼마나 더불어민주당이 자리잡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구미 같이 평균 연령이 낮은 TK 지자체에서도 더민주는 각 선거구별로 후보가 아예 없거나 단 1명 정도만 내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 후보와 비교하면 후보 수 자체(시의회 후보 더민주 7명 VS 한국당 17명, 2.5배 차이다.)가 딸리기도 하고, 그 자유한국당 쪽 의원도 여러 명이 공천이 되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한 더민주 후보(혹은 무소속)를 제끼면 최소 한명은 당선되는 시스템인데다가 그마저도 선산읍, 도개면, 무을면, 옥성면, 해평면처럼 고령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시외 읍면 지역에서 당선된 인물이 5명이다.
나머지 동 지역들은 죄다 더불어민주당이 1위를 휩쓸었다. 사실 도의원 결과만 봐도 바로 설명이 끝난다. 구미시의 도의원 당선자 6명 중 3명이 더불어민주당, 나머지 3명이 자유한국당 소속인데, 이 중 1선거구, 4선거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과반(52.22%, 50.33%)으로 당선되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이 당선된 선거구 중 2선거구는 무투표 당선, 3선거구는 (비록 1:1이 아니고 보수표가 갈렸지만) 단 254표(0.8%p) 차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6선거구는 읍면 지역. 그만큼 자유한국당이 TK에서 그 동안 견제 세력 없이 얼마나 횡포를 부려댔는지를 알 수 있고, 그걸 무기로 남유진이 자신의 사리사욕+덕질을 통한 자기만족을 위해 얼마나 구미시민들을 만만하게 봤는지를 알 수가 있다.
선거 이후 “먼저 그동안 뒷바라지를 위해 고생한 집사람과 쉬며 조용히 정리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 “40여년 공직생활 경험과 공부한 분야로 지역 후학들과 후배들에게 강연을 통해 자주 만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2019년 10월 조국 사태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저점을 찍던 시기 여론조사에서 구미시 을 선거구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자유한국당 잠재 후보군 중 유일하게 더불어민주당 김현권에게 패했다. #[12]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경북 구미시장 | | 98,758 (75.89%) | 당선 (1위) | 초선 |
2010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71,717 (53.09%) | 재선 |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새누리당|]] | 82,905 (52.59%) | 3선[13] |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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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호공파(萬戶公派)-구미 선산 문중 18대손 진(鎭) 중(重) 항렬. 영양 남씨 26세.참조[2] 영양 남씨 집성촌이다.[3] 석사 학위 논문 : 地方自治制度 變化에 따른 機能配分에 關한 硏究 : 地方自治團體間의 機能을 中心으로(지방자치제도 변화에 따른 기능배분에 관한 연구 : 지방자치단체간의 기능을 중심으로).[4] 박사 학위 논문 : 행정조직의 임파워링 리더십, 직무만족, 혁신행동 및 직무임베디드니스간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 - 직무의미성과 절차공정성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5]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출마를 위한 사퇴[6] 40여 년 간 공직생활을 하다가 1983년 5급 사무관으로 퇴직했다.#[7] 제15-17대 경상북도지사를 지냈다.[8] 2005년 수도권 규제 완화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파주 같은 과세율이 낮은 지역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기감은 인식했고, 그 당시 구미시장 김관용도 어느 정도 이 현상을 감지는 하고 있었다. 다만 두 시장 모두 제대로 대처하지는 못했다.[9] 남유진 재임기간 중 구미시 1년 예산은 1조 가량 되는데 매년 수백억을 박정희 관련해서 낭비했고 임기 말에는 1,400원억짜리 박정희 타운까지 계획하고 있었다.[10] 다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인용(파면) 판결에는 존중한다고 했다.[11] 기각이 아니라 각하이다. 우표 발행 및 판매 여부는 우정사업본부의 전적인 재량에 속하므로 우정사업본부의 철희 결정이 행정소송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12] '박정희 부녀만을 바라보는 시장은 필요 없다. 오롯이 시민을 바라보고 시민을 위하여 봉사하고 발로 뛰는 시장이 필요할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받은 셈이다. 정당 지지율을 씹어먹을 정도로 이 사람에 대한 평판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13] 2018.01.25. 사퇴(자유한국당 경상북도지사 후보 경선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