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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6 04:19:37

데드 맨 워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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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개요2. 국가별 사례
2.1. 대한민국, 일본2.2. 중국2.3. 영어권
3. 유명한 최후의 만찬

1. 개요

Dead Man Walking

사형 집행을 직감한 사형수가 형장으로 이동하는 것, 그 걸음걸이와 시간을 뜻하는 영어 단어. 직역하면 죽은 자의 걸음. 확정적으로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이미 죽은 자라고 은유하는 것이다. 때문에 직장의 해고 예정자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어느 의미로든 자주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 한국어에는 직접적으로 같은 표현은 없지만 '도살장 끌려가는 소(같다)'라는 속담이 유사한 정서를 담고 있다.

사형으로 죽기 직전 자신을 고찰하며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사형을 주제로 하는 가상 매체에는 이 장면이 한 번 정도는 포함되기 마련이다.

2. 국가별 사례

2.1. 대한민국, 일본

대한민국일본[1]의 사형 제도는 죄수들에게 정확한 일정을 예고하지 않기 때문에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수감자들은 집행 당일까지 그 여부를 알 수 없다. 당연히 '이제 집행한다.'고 선고하며 데려가는 것도 아니라 사형수들은 항상 공포에 떨며 교도관들의 분위기에 굉장히 민감하다고 한다.

보통 희망자가 아닌 이상 면회가 온 것처럼 위장하고 데려가기 때문에 알지 못하지만 당연히 면회장과 사형장으로 가는 길은 다르며 이것을 사형수가 알아차린 순간이 바로 데드 맨 워킹의 시작인데 이 과정에서 "이쪽은 접견 가는 방향이 아니잖아!"라며 발버둥치는 것은 하나의 클리셰다. 무풍지대에서 임화수도 끌려가며 이 드립을 쳤다. 하모니에서 김문옥이 접견 통보를 받았을 때도 이런 묘사가 나온다. # 이런 식이니 발걸음을 옮기는 사형수가 도중에 저항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몸부림을 제지하는 교도관들이 상당히 힘들어 한다고 한다.[2]

2.2. 중국

중국에는 처형 전에 사형수들이 원하는 복장(대개는 체포 직전에 입은)을 입게 해 주는 전통이 있다고 하며 1990년대의 조리돌림 사진에도 여자 사형수들이 청바지에 빨간 하이힐 같은 걸 신은 모습을 볼 수 있다.

2.3. 영어권

영어권에서는 집행 기일을 사형수에게 고지하며 최후의 만찬이라는 관행이 있는데 사형수가 사형집행일 직전 먹고싶은 음식을 배급해 주는 것이다.[3] 혹시나 사형수가 자살 혹은 자해할 것을 대비해 두 명 정도의 교도관들이 집행 전까지 감시를 한다. 그런데 Teufelskoche라는 책자(한국어 번역 제목 <날 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에 나오길, 미국에서도 보통 이렇게 알려졌는데 전혀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사형수들의 음식을 죽기 전에 만들어 준 주방 담당이 이 책의 한 에피소드에 나와 사진도 찍고 증언했는데 터무니없는 헛소리라고 부정했다. 고작해야 그 형무소에 있는 음식에서 최대한 먹고 싶은 거나 원하는 걸 만들어주는 것이지 먹고 싶은 것이라고 아무거나 다 만들어주는 게 절대 아니라고 증언했다. 실제로 죽기 전에 뭘 먹고 싶냐는 한 사형수는 똥을 요구했는데 형무소 측은 요구르트를 몇 개 줬다든지 고기를 실컷 먹고 싶다는 사형수에게는 형무소에는 햄버거 패티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실컷 먹을래? 햄버거와 패티를 여럿 끼워둔 걸 줬다든지 이런 일이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책에 이디 아민의 전속 주방장으로 일한 오톤데 오데라도 나와 사진 찍고 과거를 이야기하며 이디 아민의 식인 여부에 대해 부정했다.

사실 미국도 주마다 사정과 역사가 모두 다른데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했듯 사형수가 부탁을 해도 그냥 교도소에 있는 비슷한 재료로 때우는 교도소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바깥 음식을 먹게 해주기도 하는데 이 경우 보통 $40 이내로 금액에 제한을 둔다. 예시로 오클라호마는 $25까지만 허가하고, 루이지애나에서는 전통에 따라 교도소장이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다. 미국의 몇몇 지역들은 원래는 최후의 만찬을 줬으나 2011년부로 후술할 사건 때문에 폐지했다. 마지막이었도 술과 담배는 기각당한다.

참고로 미국에선 사형이 집행된 뒤 그 주의 대변인이 언론에게 사형 집행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히 설명하는데, 이때 사형수들이 마지막으로 뭘 먹었는지도 알려준다.

3. 유명한 최후의 만찬

여기 나오는 설명은 이 영상을 참고하면 이해가 된다.


[1] 일본에서는 처음에는 알려줘서 마지막을 준비하게 해 주었는데 소식을 듣고 형 집행 전에 자살해 버리는 사형수들 때문에 사전 고지하는 것을 없애 버렸다고 교도관 나오키에 나온다. 조갑제의 1970년대 르포 '사형수 오휘웅'에도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2] 이게 괴로울 수밖에 없는데 암만 법적 절차에 의해 사형을 구형하며 선고 및 집행하는 것이라도 현직 교도관들의 입장에서 극단적으로 보면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이고 만약 사형수가 발버둥친다면 어떻게든 죽이고자 억지로 끌고 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교도관 나오키라는 만화에서는 사형수 전담 교도관들의 정신적 고통을 다룬다.[3] 미국에서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라고 나오는 메뉴 품목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집행 이후 주 법무부 대변인이 사형 집행이 끝난 후 언론사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집행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모두 말해준다.[4] 연쇄살인[5] 연쇄살인. 경찰을 살해한 뒤, 도주하다 자수를 하겠다며 경찰을 불러내곤 그 경찰관도 살해했다. 당시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이 직접 그의 사형 집행을 보러 왔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다.[6] 연쇄살인 및 강간. 어린이 병원과 자선 행사에서 광대일을 했었는데, 소년 피해자들에게 마술을 보여주겠다는 핑계로 집으로 데려와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7] 한때 KFC 지점의 매니저로 일한게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다.[8] 연쇄살인. 이 사건을 다룬 영화 몬스터로 유명하다.[9] 살인 및 증오 범죄. 백인우월주의자로 두명의 친구와 함께 흑인 남성을 살해했다. 증오 범죄가 인정되어 재판을 받고 최초로 흑인을 죽여 사형 선고를 받은 백인이 되었다. 공범 중 한명은 2019년에 사형되었고, 다른 한명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10] 강도살인. 아이오아 주에서 사형당한 마지막 사람이다.[11] 납치 및 살인[12]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의 범인이다.[13] 살인, 강도 혐의로 체포되었다 가석방한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다.[14] 강도 살인.[15] 최소 21명의 소년과 청소년들을 강간 살인했으며, 그의 피해자들의 시신이 켈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발견됐다는 이유로 고속도로 살인마(Freeway Killer)라는 이명으로 불렸다.[16] 살인과 강간. 자신이 빚을 지고 있던 상대와 그의 여자친구를 찾아가 남자는 총으로 쏴 죽이고, 여자는 강간한뒤 감금했다. 충격적이게도 자신이 죽인 남자의 시신을 토막낸뒤 악어 밥으로 던져줬다. 그 사이에 감금되있던 여자는 탈출에 성공해서 경찰을 불렀고, 시몬스는 체포되었다.[17] 연쇄살인.[18] 미국에서 파는 통조림 스파게티의 일종으로, 파스타 모양이 동그라미여서 스파게티오라고 불린다.[19] 강도살인. 이 외에도 자신이 의식때 재물을 바치기 위해 6명을 죽였다고 주장했으나 증거가 없어서 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20] 살인. 1930년,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누이에게 부상을 입힌 뒤 도주했다. 그의 형제들이 $500(2020년대 물가로 약$9100)의 현상금을 걸었고, 8개월의 도주 끝에 자수하였다. 재판에서 그는 자신이 어머니를 죽인건 정당방위였다 주장하였으며, 이때문에 배심원단은 결정을 못해 재심 판결이 나왔다. 한편 베렛은 차량 도난과 장물 판매로 FBI의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를 체포하려던 FBI 요원 두명에게 총을 쏴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부상을 입혔다. 그러나 죽어가던 요원이 그의 다리에 총을 쐈고, 베렛은 바로 체포되었다. 베렛은 당시 새로 제정된 법에 따라 최초로 FBI 요원을 죽인 죄로 교수형을 선고 받았다.[21] 살인. 친구 한명과 함께 살인을 저질렀다. 공범은 자신이 직접 총을 쏴서 피해자들을 죽였다 자백하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텍사스의 법에 따르면 직접 피해자를 죽이진 않았어도 살인의 공범일신 살인죄가 인정되기에 우즈는 사형을 선고 받았다.[22] 살임 및 강간. 두명의 공범과 함께 벽돌을 차에 던져 고장낸 뒤, 차 주인인 여대생 두명에게 도와주려는 척 접근하곤 납치한뒤 강간하고 살해했다. 쿠이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걸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니고, 친구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한명은 단순 가담으로 인정되어 15년형을 선고 받은 뒤 1년후 가석방되었고, 다른 한명은 미성년자였기에 사형을 선고 받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23] 쿠이의 몸무게는 125kg이었으며, 변호인은 이때문에 약물주사가 잘 통하지 않을테니 비인간적인 처사라 주장했다.[24] 살인. 총 3번을 결혼했었는데, 그중 2번째와 3번째 결혼은 그의 조카와 한거였다. 피해자는 그의 이복 누이와 그녀의 전남편이었는데, 동시에 무어스의 장인 장모이기도 했다. 그들을 죽인 이유가 그들이 자신의 결혼 생활을 방해하고, 자신의 별거중인 아내와 딸을 라스베가스로 대려가 매춘과 마약에 노출시킬 거라 믿어서였다.[25] 연쇄살인. 미국 최대 흑인 갱단 크립스의 창시자이며, 먼저 편의점 직원을 죽이곤 모텔에서 돈을 빼앗기 위해 3명의 일가족을 죽였다.[26] 살인. 강도짓을 하다 잡혀 13년 형을 선고 받았으나, 5년 뒤 가석방 됐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훔쳐 지정 주거 지역을 벗어났다. 1987년, 그가 도주중인 범죄자란걸 모르던 리처드 어니스트(Richard Ernest)는 히치하이킹을 하던 그를 태워주고, 파슨스는 어니스트가 휴게소에서 잠을 잘때 살해 한뒤 차를 훔쳐 도망쳤다. 그는 재판에서 어니스트가 동성애자이며 자신을 성추행 하려 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오히려 검찰은 감옥에서 그를 본 증인을 찾아 동성애적 성향을 보인 전적이 있는건 파슨스란걸 입증했다.[27] 1936년, 프랭크 아구일러(Frank Augilar)가 한 가정집에 처들어가 딸 한명을 죽였다. 아구일러는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경찰은 IQ 46에 6세의 지능을 가지고 있던 조 아리디를 심문을 위해 불렀다. 그들은 아리디를 속이고 협박하여 거짓 자백을 하게 했다. 아리디가 범행을 했다는 물증이 없었고, 피해자의 가족 역시 아리디가 현장에 없었다 증언 했으나 결국 아리디는 사형을 선고 받았다.[28] 2002년 미국 무차별 연쇄저격 살인사건의 범인이다.[29] 살인. 크롤리는 어렸을때 그의 형이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사살당한 뒤부터 경찰에게 강한 증오심을 느꼈다. 살인 미수와 강도죄로 쫓기던 와중 1931년 경찰 두명이 그에게 신분증을 요구하자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부상을 입힌 뒤 도주했다. 이때 맨하탄에 있던 5층 건물로 피신했다. 그를 체포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의 수는 300명이었으며, 이들은 소총, 기관총, 최루가스로 무장한 상태였다. 총격전은 두 시간동안 일어났으며, 1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구경하러 나왔다. 700발이 넘는 총알이 오간 끝에 크롤리는 총알 4발을 맞고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