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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14:58:41

마거릿 생어

파일:타임지 로고 화이트.svg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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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100: The Most Important People of the Century
지도자들 & 혁명가들 부문 #
파일:external/img.timeinc.net/1101980413_400.jpg
시어도어 루스벨트 블라디미르 레닌 마거릿 생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엘리너 루스벨트
아돌프 히틀러 윈스턴 처칠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다비드 벤구리온 마오쩌둥
마틴 루터 킹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마거릿 대처 로널드 레이건 미하일 고르바초프
레흐 바웬사 넬슨 만델라 요한 바오로 2세 호찌민 탱크맨
같이 보기: 과학자 & 사상가 부문, 예술가 & 연예인 부문, 건설자 & 거인 부문, 영웅 & 아이콘 부문 }}}}}}}}}

파일:LIFE_LOGO.png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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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미국의 시사잡지인 라이프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100인을 선정했다. 순위는 없으며, 만장일치로 선정된 인물은 헨리 포드라이트 형제뿐이다.
제인 애덤스
<사회 개혁가>
무하마드 알리
<권투선수, 인권 운동가>
엘리자베스 아덴
<사업가>
룬 알레지
<방송 경영자>
루이 암스트롱
<재즈 뮤지션>
조지 발란신
<안무가>
존 바딘
<물리학자>
어빙 벌린
<작곡가>
에드워드 버네이스
<홍보 책임자>
레너드 번스타인
<작곡가, 지휘자>
말론 브란도
<배우>
베르너 폰 브라운
<로켓 공학자>
데일 카네기
<작가>
월리스 캐러더스
<발명가, 화학자>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
<에어컨 발명가>
레이첼 카슨
<작가, 해양생물학자>
빙 크로스비
<가수, 배우>
클래런스 대로
<변호사>
유진 데브스
<노동운동가, 사회주의자>
로버트 더그래프
<포켓북 창업자>
존 듀이
<철학자>
월트 디즈니
<기업가, 애니메이션 제작자>
W. E. B. 듀보이스
<NAACP 설립자>
앨런 덜레스
<CIA 국장>
밥 딜런
<포크 뮤지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물리학자>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시인>
윌리엄 포크너
<소설가>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교육자>
헨리 포드
<기업가>
존 포드
<영화감독>
베티 프리댄
<페미니스트 여성 작가>
밀턴 프리드먼
<경제학자>
조지 갤럽
<여론 분석가>
아마데오 지아니니
<은행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
마사 그레이엄
<댄서, 안무가>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영화감독>
조이스 홀
<사업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가>
올리버 홈스 주니어
<법학자>
존 에드거 후버
<FBI 초대 국장>
로버트 허친스
<교육자>
헬렌 켈러
<인권 운동가>
잭 케루악
<시인, 작가>
빌리 진 킹
<인권 운동가, 테니스 선수>
마틴 루터 킹
<목사, 인권 운동가>
알프레드 킨제이
<성과학자, 생물학자>
빌렘 콜프
<생명과학자>
레이 크록
<맥도날드 창업자>
에드윈 랜드
<과학자, 발명가>
윌리엄 레빗
<부동산 개발업자>
존 L. 루이스
<노동당 지도자>
찰스 린드버그
<비행기 조종사>
레이먼드 로이
<산업 디자이너>
헨리 루스
<편집자>
더글러스 맥아더
<군인, 정치인>
조지 C. 마셜
<군인, 정치인>
루이스 B. 메이어
<영화 제작자>
클레어 매카델
<패션 디자이너>
조지프 매카시
<변호사, 정치인>
프랭크 맥너마라
<신용카드 발명가>
마거릿 미드
<인류학자>
칼 메닝거
<정신과 의사>
찰스 E. 메릴
<주식 중개인>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가>
로버트 모세
<공무원>
윌리엄 멀홀랜드
<토목 기사>
에드워드 R. 머로
<종군기자>
랠프 네이더
<소비자 보호가, 환경보호가>
라인홀드 니부어
<윤리학자>
존 폰 노이만
<물리학자, 수학자>
유진 오닐
<극작가, 작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물리학자>
윌리엄 S. 페일리
<방송 경영자>
잭슨 폴록
<화가>
에밀리 포스트
<소설가, 작가>
엘비스 프레슬리
<가수>
재키 로빈슨
<야구선수>
존 데이비슨 록펠러 주니어
<기업가>
리처드 로저스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
<뮤지컬 작곡가, 작사가>
윌 로저스
<배우, 작가>
엘리너 루스벨트
<FDR의 아내, 사회운동가>
베이브 루스
<야구선수>
조너스 소크
<소아마비 백신 개발자>
마거릿 생어
<사회운동가>
앨프리드 P. 슬론
<사업가, 산업가>
벤자민 스팍
<소아과 의사>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사진작가>
로이 스트라이커
<공무원, 사진작가>
빌 윌슨
<AA 창립자>
앤디 워홀
<화가>
얼 워런
<대법원장>
제임스 듀이 왓슨
<생물학자, 유전학자>
토머스 왓슨 주니어
<사업가, 정치인>
테네시 윌리엄스
<극작가>
월터 윈첼
<신문기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가>
라이트 형제
<최초의 비행기 제작자>
말콤 엑스
<인권 운동가>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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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선정 세계의 여성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black,#white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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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을 선정했다.
긍정적 영향을 미친 여성들뿐 아니라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여성들'을 뽑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물들 혹은 논란 있는 인물들도 있다.
성인들
성모 마리아 예수의 테레사 마더 테레사
지도자들
앙겔라 메르켈 베나지르 부토 예카테리나 2세 캐시 프리먼 서태후
클레오파트라 코라손 아키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다이애나 스펜서
지우마 호세프 에디트 크레송 엘레오노르 다키텐 엘리너 루스벨트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2세 엘런 존슨 설리프 에바 페론 골다 메이어 그로 할렘 브룬틀란
한나 수호츠카 하트셉수트 인디라 간디 이사벨 1세 제니 시플리
줄리아 길라드 칼레다 지아 킴 캠벨 마거릿 대처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로빈슨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미첼 바첼레트 미셸 오바마 박근혜
잔 다르크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쑹메이링 탄수 칠레르 테오도라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빅토리아 여왕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비올레타 차모로 측천무후
잉락 친나왓
발견자들
에이다 러브레이스 어밀리아 에어하트 바버라 매클린톡 캐롤라인 허셜 도러시 호지킨
엘리자베스 블랙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히파티아 제인 구달 캐서린 존슨
리제 마이트너 마거릿 미드 마리아 미첼 마리 퀴리 마리암 미르자하니
레이첼 카슨 로잘린드 프랭클린 사카자위아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예술가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코코 샤넬 도로시아 랭 프리다 칼로 카라 워커
메리 카사트 쿠사마 야요이 자하 하디드
사회운동가들
앨리스 워커 앤절라 데이비스 앤 로이페 아얀 히르시 알리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엘프리데 옐리네크 그레타 툰베리 제인 폰다 주디 시카고 리마 보위
나오미 클라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수잔 팔루디 타우왁쿨 카르만 와리스 디리
말랄라 유사프자이 마거릿 생어 마리아 몬테소리 해리엇 터브먼 캐롤리 슈니먼
로자 파크스 시린 에바디 왕가리 마타이 에멀린 팽크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
작가들
에밀리 디킨슨 제인 오스틴 사포버지니아 울프 마거릿 애트우드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헬렌 켈러 J. K. 롤링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무라사키 시키부
시몬 드 보부아르 안네 프랑크 토니 모리슨
운동선수들
베이브 디드릭슨 빌리 진 킹 파니 블랑커스쿤 재키 조이너커시 미아 햄
나디아 코마네치 세레나 윌리엄스
퍼포머들
비욘세 엘라 피츠제럴드 캐서린 헵번 마돈나 메릴 스트립
미리엄 마케바 오프라 윈프리 사라 베르나르 움 쿨숨
정치인들
에이미 클로버샤 바바라 조던 캐롤 모즐리 브라운 엘리자베스 워런 프랜시스 퍼킨스
제럴딘 페라로 해티 캐러웨이 힐러리 클린턴 저넷 랭킨 매들린 올브라이트
낸시 펠로시 넬리 테일로 로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셜리 치점 빅토리아 우드훌
참정권주의자들
앨리스 폴 앨리스 스톤 블랙웰 캐리 채프먼 카트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 도리아 샤픽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프랜시스 하퍼 프랜시스 윌러드 해리엇 스탠턴 블래치 헤르타 아일톤
후다 샤아라위 아이다 벨 웰스 제인 애덤스 줄리아 워드 하우 케이트 셰퍼드
루크레티아 모트 루시 번스 루시 스톤 메리 처치 테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이 라이트 슈 밀리센트 포셋 소저너 트루스 수전 앤서니 버지니아 루이자 마이너
출처 }}}}}}}}}}}}
<colbgcolor=#000><colcolor=#fff> 마거릿 생어
Margaret Sanger
파일:margaret-sanger_opt-1.jpg
본명 마거릿 루이즈 히긴스
Margaret Louise Higgins
출생 1879년 9월 14일
미국 뉴욕 주 코닝
사망 1966년 9월 6일 (향년 86세)
미국 애리조나 주 투손
직업 사회운동가, 간호사, 작가
배우자 윌리엄 생어 (1902년 ~ 1921년, 이혼)
제임스 노아 헨리 슬리 (1922년 ~ 1943년, 사별)
자녀 3명
1. 개요2. 생애3. 업적4. 비판5.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산아제한 운동의 창시자. 피임 역사에서 가장 손꼽히는 인물로, 피임 및 임신중절 클리닉인 미국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 Of America)를 창립하기도 했다. 산아제한 운동이란 여성이 자신의 재생산 능력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생어는 특히 빈곤층 여성의 산아제한에 큰 관심을 가졌다.

2. 생애

1879년 뉴욕의 코닝이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무신론자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에서 태어난 생어는 부모님에게서 다각적인 영향을 받았다. 간호학교를 졸업한 후 화이트 병원에서 훈련을 받고 보건간호사가 되었다. 1902년에 사회주의 활동을 했던 윌리엄 생어와 결혼하고 3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리니치로 이사한 후에는 다양한 사상가들과 만남을 가졌다. 생어는 이때 받은 사상적 영향과 더불어 헤스팅에서 한 독일 사회주의자의 연설을 듣고 사회당원이 되었다.

생어가 산아제한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받은 충격이었다. 1912년 생어는 낙태를 하려다 실패하고 피투성이로 병원에 이송된 빈곤층 여성인 새디 작스를 만나게 되었다. 위험한 상태의 작스에게 생어는 마땅한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몇개월 후 작스는 사망했다. 큰 충격을 받은 생어는 여성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3. 업적

간호사로 일하면서 생어는 다산과 빈곤이 산모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사상을 가져, 산아제한 운동을 벌였다. 1916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최초의 산아제한진료소를 열었으며, 1921년 산아제한연맹을 세워 1928년까지 회장을 맡았다. 192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1차 세계인구회의를 개최했다. 1922년, 중화민국일본 제국을 방문, 자신의 산아제한론을 설파하였으며 이후 국민혁명을 통해 집권한 중국국민당 정권은 생어의 산아제한론에 깊은 인상을 받고 30년대부터 적극적인 계획 생육 정책을 도모하게 된다. 하지만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이 승리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승리하자 마오쩌둥은 생어의 산아제한론을 제국주의 이론이라고 비난하며 중국에서 금지시켰다.[1]

산아제한에 대한 글을 집필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으며, 대중들 앞에서 당시 불법이었던 피임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컴스톡 법으로 인해 피임에 관한 연설을 하거나 성적인 글을 배포하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생어는 이 활동을 하면서 여러 차례 경찰에 체포되었다.

피임 투쟁을 벌임으로써 19세기부터 불법이었던 피임을 합법으로 인정받게 하였다. 그 뒤, 미국의 생물학자 그레고리 핀커스에게 피임약 개발을 권유하고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 등 피임약 개발에 앞장서 경구피임약이 개발되는 데 일조했고, 1952년부터 1959년까지 국제가족계획연맹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생식권(Reproductive Right) 운동의 확산과 산모의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4. 비판

한편, 우생학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그녀는 환경적으로 얻어진 특성이 자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우생학자들의 견해를 수용하여, 산아제한운동에서 생식자를 경제적 여건, 살고 있는 환경, 장애 여부 등에 따라 출산 '적격'자와 '부적격'자로 나누어 부적격자의 출산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여러 인종차별 단체와 제휴를 맺었다.

또한, 그녀가 창립한 미국가족계획연맹은 이름만 허상뿐인 낙태 클리닉이라는 점에서 더욱 비판을 받는다.[2]

5. 여담



[1] 다만 1970년대 초반에 중국의 인구폭발 문제가 가시화되자 이를 철회하기는 했다.[2] 가족을 전제한 채로 태동한 개념을 표현한 용어가 가족계획인데, 가족 구조상 외재된 개개인마저도 포괄하는 논리에 가족계획이란 용어를 남용하는 경우이기에 이런 오남용에 따른 비판을 받는다. 당장 대한민국에서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낙태 클리닉이 아니라 가족의 건강과 복지를 추구하는 기관임을 생각해 봐라. 또한, 생명존중 단체 및 기독교 계열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