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스 캐리어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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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d700>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 Willis Haviland Carrier | |
출생 | 1876년 11월 26일 |
미국 뉴욕주 앵골라 | |
사망 | 1950년 10월 7일 (향년 73세) |
미국 뉴욕주 뉴욕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코넬 대학교 (기계공학 / 석사[1]) |
직업 | 공학자, 발명가, 사업가 |
종교 | 개신교(장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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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발명가이자 기업가. 에어컨의 기초가 되는 냉매의 증기압축식 공기 조화 장치의 개발 및 이를 이용한 대형 냉장 창고 시스템을 확립한 발명가이자 본인의 이름을 딴 회사인 캐리어 사의 창업주이기도 하다.2. 생애
1876년 11월 26일 미국 뉴욕주 앵골라에서 태어나 1901년 코넬 대학교에서 기계공학 석사과정을 졸업하였으며, Buffalo Forge Company라는 회사에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회사의 실험개발팀장이 되었다.1902년, 그는 인쇄과정에서 종이를 변형시키는 문제를 야기하던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를 개발하던 중, 온도와 습도의 관련성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는데, 결국 1906년 이슬점 강하에 따른 상대습도 변화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제어하는 시스템 즉, 현대 에어컨의 원리를 발명해 1907년 '공기 조절 장치(The Apparatus for Treating Air)'로 특허를 획득했다. 그의 시스템이 미국을 비롯해 일본 요코하마의 비단 공장으로 수출되자, 1908년 그가 근무하던 Buffalo Forge Company는 'Carrier Air Conditioner Company of America'이라는 이름의 자회사를 설립하고 그를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모회사는 주요분야인 중장비 생산에 주력하기 위해 다른 부문의 사업을 접었고, 결국 캐리어는 1915년에 6명의 친구들과 32,600달러를 들여 캐리어 공학 회사(Carrier Engineering Company)를 설립하였는데, 이는 현재 우리가 아는 캐리어의 모체가 되었다.
1922년에는 세계 최초로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터보 냉동기를 발명, 소개했다. 터보 냉동기는 넓은 공간의 공기를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첫 번째 실용적인 제품이었으며 1924년에는 디트로이트 허드슨 백화점에 터보 냉동기를 설치하여 냉방 분야에 데뷔하였는데 백화점 세일에 몰려든 고객들이 쇼핑을 쾌적하게 즐기게 됨에 따라 캐리어의 연구는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1925년에는 각 극장에 에어컨이 설치됨으로써 여름철 극장 산업의 붐이 일고 에어컨 시스템이 매력적인 장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1928년에는 대공황으로 인해 모든 산업이 침체에 빠져 에어컨 산업에 있어서도 좌절을 맛보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속적인 연구 개발로 20년대 말부터 소형 에어컨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1939년에는 높은 건물들을 위한 에어컨 시스템을 발명하고 세계 박람회에 캐리어의 공조 시스템이 전시되는 등 활발한 공기 조화 산업의 미래를 제시하였다. 1950년 캐리어는 73세의 나이로 뉴욕주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출처: 캐리어에어컨 공식 홈페이지 캐리어 역사란
노년기의 모습
3. 업적과 밈
에어컨의 발명가로 여름때마다 그의 발명품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었으며 더위에 지친 몸으로 시원한 곳에 들어갈때 감탄사를 내뱉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때문에 그를 "진정한 인류의 구원자", "인류의 대성인", "현대문명의 숨은 건설자", "신은 존재하며 그는 미국인이다", "노벨물리학상과 노벨평화상을 다 받아도 손색없는 위인"[2]이라는 찬사를 듣고[3] 여름만 되면 각종 커뮤니티에 그를 찬양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4] 반대로 에어컨이 필요 없어지는 겨울[5]이 되면 이를 역으로 비틀어서 "오존층 파괴범", "환경 테러리스트"같은 소리를 하다 다시 더워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 싹 닦고 찬양을 재개하는 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현대 기술력으로 이보다 뛰어난 공조기술 자체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폄하받을 이유가 없다. 아예 캐리어는 인류를 살린 동시에 위험에 빠트린 사람이라는 평가도 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도 'He invented the air conditioner'같은 캐리어찬양 밈이 있다. 구글 검색결과
💀 에어컨은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 💀 에어컨의 위엄 ㄷㄷ… |
- 공기 조화 장치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한 공간에서도 실내 온도와 대기의 질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대형 건물과 시설들이 생겨났다. 마천루, 쇼핑몰, 멀티플렉스, 백화점 등 각종 대형 복합 시설이 건설될 수 있었다. 위 생애 문단에서 볼 수 있듯이 캐리어가 발명한 공조 장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곳이 바로 극장이었다.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와 많은 사람들로 인해 발생한 실내 열기를 견디고 앉아서 영화를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굳이 더운 날이 아니어도 공조 장치가 없으면 '환기'를 시켜야 하므로 개폐가 가능한 창문과 대형 팬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결정적으로 습기 제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공조 장치에 비해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공조 장치는 대형 건축물을 설계하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한국에서도 2006년에 통과된 건축물 설비 기준등에 관한 규칙 제11조에 의거하여 100세대 이상의 공동 주택이나 다중 이용 시설엔 의무적으로 공조 시스템이 들어가야 한다.
- 쾌적한 지하철, 여객기, 철도 환경을 조성하면서 인류의 교통과 물류 인프라에 큰 기여를 했다. 항공 여객이 시작될 수 있었던 핵심 기술 중 하나가 바로 공조 장치의 탄생이었다.[6] 공조 장치가 없었다면 지하 수십 미터를 뚫고 나가는 지하철은 산소 공급 및 매연 배출을 하느라 골머리를 썩혔을 것이고 다수의 승객을 태우고 대기가 희박한 수십 킬로미터 상공을 비행하는 여객기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제로 공조 장치가 개발되기 전의 초창기 비행기는 고도가 높으면 고산병과 추위, 저고도에서는 미칠 듯한 진동 때문에 기내식은커녕 뱃멀미처럼 토악질을 하는 등 승객들이 생고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조 장치가 발명되면서 '항공 여객'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될 수 있었다.
- 더위에 취약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각종 전자기기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서버들이 모여 있는 데이터 센터는 에어컨의 냉각 시스템 덕분에 존재할 수 있다. 에어컨이 없었다면 현대 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 IT기업들이 성장할 수 없었다. 지금도 구글의 데이터 센터에는 초당 수십 메가의 유튜브 동영상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고, 전 세계의 수많은 디지털 데이터들이 저장되어 있으며, 수억 개가 넘는 서버들이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7] 그 막대한 데이터를 보관하기 위해 돌아가는 전자장치가 내뿜는 열을 '실내'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장치가 바로 공조 장치다. 다시 말하지만 공조 장치가 없었다면 IT혁명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나더라도 매우 극소수의 사람들만 누리는 혜택이었을 것이다. 실내에 설치할 수 있는 서버의 숫자가 크게 제약되므로 비용이 크게 올랐을 것이기 때문. 한마디로 에어컨 없으면 당신이 위키질도 맘대로 못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데스크탑의 수랭 또한 에어컨의 원리를 그대로 데스크탑에 이식한 것이니, 초전도체가 개발될때까지 CPU와 GPU의 코어갯수를 늘리는것과 클럭을 높이는것은 상당히 제한되었을 것이다. 공랭 또한 펌프가 없는 것을 빼면 유사한 만큼 어쩌면 극지에서나 히트파이프 같은거 없이 CPU코어나 히트스프레드에 팬 공기를 직접 닿게 하여 제한적으로 구동하게 했을 가능성도 있다.
- 공조 장치의 등장은 냉장, 냉동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만들어 식품을 그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냉장/냉동 컨테이너에 실려 전 세계로 식품이 신선한 상태로 운송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전 세계 식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내어 언제 어디서나 지구 반대편에서 온 육류와 과일, 채소, 어패류, 곡물 등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공조 장치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음식을 부패하지 않게 최대한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염장, 훈제, 발효 등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였으나 이를 적용할 수 있는 식재료는 각 방식마다 다르다는 단점이 있었고 이러한 방식으로도 부패를 완벽히 막을 수 없어 상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으로 쓰러져 죽는 사람이 너무나도 흔한 시대를 살아왔다. 그러나 공조 장치의 등장으로 바다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내륙에서 생선 요리를 먹거나 한 겨울에도 여름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것, 한 여름에도 얼음을 씹어 먹을수 있는 것, 대도시에서 고기를 사 먹는 것, 방 안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된 특산품을 먹는 것 등은 단순히 농업기술의 발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공조 장치다. 채소와 육류, 과일 등을 운반하는 대형 선박이나 철도, 트럭 등에 냉장/냉동 보관 장치가 없다고 생각해보자.
- 의학계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냉장과 냉동 기술은 '백신 및 치료제, 기증 장기 저장 기술'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공조 장치가 없었다면 바이러스나 암을 비롯한 질병과의 싸움,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의 전쟁도 불가능하거나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이다. 일례로 화이자의 백신인 코미나티주는 보관을 위해 '영하 70도'의 온도가 필요하다. 공조 장치로 인한 냉동기술의 발달이 없었으면 우리는 백신 연구소를 남극에 세우고 백신 접종을 위해 남극까지 와야 하는 대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하다못해 페니실린만 해도 냉장시설을 갖추고도 유통기한이 1-2주였다.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수술실의 멸균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공조설비가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여기에 입원 환자의 스트레스를 대폭 낮춰준 건 덤이다.
- 한술 더 떠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는 에어컨이 없었다면 싱가포르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싱가포르는 상당히 덥고 습하고 비가 주야장천 내리는 열대 우림 기후라[8] 아무리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 한들 사람이 장기 주거가능한 환경이 아니라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불리한 기후 조건임에도 대형 빌딩에 공조 장치를 빵빵하게 때려넣은 덕분에 더위를 극복하고 손꼽히는 대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다. 북위 33도 이하에 속하는 아열대, 열대 지방에 대도시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에어컨 덕분이라고 하니 인류의 활동반경을 넓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셈. 비슷한 예로, 에어컨이 없었다면 싱가포르는 물론이고 미국의 피닉스, 휴스턴, 라스베이거스 같은 서남부 메트로시티, 리야드나 두바이 등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도시가 대도시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며, 여름이 덥고 습한 나라인 대한민국[9] 또한 에어컨이 없었다면 3개월은 아무 것도 할수 없어 선진국으로 올라서는데 엄청난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10]
따라서 캐리어는 인류의 건축 기술, 교통 물류, IT 인프라, 농업, 축산업, 수산업, 의학계에 지대한 공헌을 끼쳤음은 물론이고 적도 반경까지 인류 문명의 활동반경을 넓히고 대도시를 건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위인이며, 그의 발명은 인류가 더위라는 장애물은 물론이고 온도에 얽매인 과학과 문명의 판도를 바꾸고 확장시켜버린 어마어마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1] Master of Engineering[2] 현재까지 인류 역사에서 노벨과학상과 노벨평화상을 다 받은 사람은 라이너스 폴링 단 한 사람밖에 없다.[3] 사실 이 사람 업적을 보면 이렇게 매년 여름마다 밈으로 소비되는 현실이 민망할 정도로 인류 역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사람 중 한 명이다. 프리츠 하버가 받은 노벨상도 전혀 못 받았다. 오죽하면 명암이 엇갈리는 사람의 이름을 딴 상 대신 윌리스 캐리어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프리츠 하버가 인류의 숙원이었던 식량난 해결에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인데 캐리어도 냉장, 냉동고의 기반 기술을 개발해내면서 식량의 장기 보존을 이끌어내어 그에 비견되는 업적을 세웠기 때문이다.[4] 이런 한국의 찬양 여론을 캐리어 코리아에서도 잘 알고 있어서 자사 홍보에도 잘 써먹고 있다. #[5] 단, 어디까지나 이것은 밈이며 실제로 에어컨은 겨울에도 필수적이다. 이는 한국에선 에어컨이 냉방장치라는 선입견이 있어서다. 대한민국은 가정용 냉방은 에어컨으로, 난방은 보일러로 이원화되어 있지만 대형 건물이나 데이터 센터에 설치되는 공조기는 여름에는 냉방, 겨울에는 난방기로 사용한다. 냉난방을 하지 않더라도 밀폐된 환경에서는 실내 공기 순환을 위해 필수적이다. 애초에 이름이 '쿨러'가 아니고 '에어 컨디셔너'인걸 떠올려보자.[6] 나머지 하나는 '여압 장치'다. 높은 고도에서는 기내 압력 조절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7] 당장 방에 있는 컴퓨터로 무거운 게임만 돌려도 방 전체가 순식간에 후끈해지고, 특히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튼 채로 게임을 하게 되면 대부분 방 온도가 30도를 웃돌며 지옥을 맛보게 된다. 그래도 데스크탑이면 성능을 좀 포기해서라도 저전력 제품을 쓰면 되지만, 그보다 고사양의 컴퓨터와 저장장치 수백 수천 개를 모아두고 동시에 돌리는 데이터 센터는 단순 공랭만으로는 절대 발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8] 매우 덥고 습할 뿐 아니라 하루에도 두세 번씩 간헐적으로 스콜이 내리는 날이 드물지 않다. 이런 식인데 냉방 및 제습기능을 수행하는 공조 장치가 없었다면 싱가포르가 세계적인 금융 허브이자 오피스 밀집 지구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9] 중화민국 자유지구 포함. 이 쪽은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고 다닌다. 일부 지방은 아예 비까지 억수로 내려서...(날씨의 아이에서 나온 폭우가 현실에 강림했다는 밈이 있다.)[10] 즉 에어컨이 없었다면 동남아시아 같은 열대기후 국가들은 산업화는커녕 과거부터 존재하던 도시들을 제외하면 제대로 생존하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기후변화라는 유례 없는 대재앙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온도가 증가하는 현상으로 역사와 전통이 존재하는 도시들을 생존을 위해 떠나야만 하는 비극을 당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열대기후 국가들에겐 현대국가로 도약할 기회를 준 메시아라고 해도 문제 없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