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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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 대표 당선과 이후 (2015. 2. ~ 2015. 5.)
변화와 단결로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습니다.
- 당대표 경선에서
- 당대표 경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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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2월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치러진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45.30%의 득표율을 얻어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 2015년 2월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치러진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45.30%의 득표율을 얻어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 당대표로 선출된 이후, 이승만, 박정희 두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1] 안보 행보를 연이어 선보이고, 당직에서의 탕평책[2]을 추진하는 등 혼란에 빠졌던 당을 잠시 수습하는 듯하였으나, 4.29 재보선 패배 이후 당이 다시 내홍에 빠져들어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3][4]
-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때 리퍼트 대사를 위로 방문하고 더불어민주당 브리핑 주한미군은 통일 후에도 계속 있어야한다고 했었다. 연합뉴스, 혈맹은 혈맹이라면서 한미는 70년 친구 사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 유투브 1:57부터 시작
- 본인의 SNS를 통해 영화 암살에서 나타난 시대상을 거론하며, 광복 70주년을 맞고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도 우리나라가 완승한 현재, 약산 김원봉을 비롯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 '5.24 조치[5]'를 해제하자는 주장과 서부전선 포격 사건이 터지고 나서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제안할 것을 주장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6] 결국 그 이상의 무력충돌이 없이 협상이 진행되자 해당 부분을 비판했던 여론이 쏙 들어가기도 했다. 자세한 부분은 서부전선 포격 사건 참조.
- 당대표로서 새정치민주연합 셀프 디스 캠페인에 제일 먼저 참여했다. 카리스마를 보이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는데, '결국 내가 착해서 그래요'라는 뜻 아니냐며 셀프디스가 아니라 자기 자랑이라며 비판하는 사람과 실제로 늘 지적 받던 부분이 '너무 부드럽다', '천성적으로 야성적인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자신이 저런 부분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를 고쳐나가겠다는 뜻을 밝혔으니 기대가 된다는 반응이 양분하고 있다. 그리고 애초에 셀프디스 캠페인 자체가 홍보위원회에서 나온 홍보의 일환이었으니, 성공한 셈. 2015년 12월 기준으로 비주류 측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그동안 유화책으로 대처해왔던 방침을 강경책으로 수정한 것을 보면 셀프디스에서 보여준 다짐을 이제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2. 혁신위 출범과 재신임 제안 (2015.5. ~ 2015. 9.)
* 2015년 5월, 당의 혁신을 위해 외부 인사를 영입해 혁신위원회를 꾸렸다. 처음에는 안철수 의원에게 제안하였으나 안 의원이 거부하였고, 이후 유명한 진보 논객인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물망에 올랐으나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최종 낙점되었다. 조국 교수는 이후 김상곤 혁신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 2015년 8월 11일, 문 대표는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지뢰 피해 장병을 위로하기 위해 해당 병실로 위로 방문을 왔다. 문 대표는 피해 장병을 위로, 격려했다.
- 2015년 9월 9일, 4개월 간의 진통 끝에 김상곤 혁신위원회의 10차 혁신안[7]이 당무위원회에서 통과되면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9월 16일에 열리는 당 중앙위원회에 혁신안이 받아들여지지 못하면 당대표직에서 물러날 것이며, 또 혁신안이 중앙위를 통과하더라도 국민과 당원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자회견 영상 재신임 문제를 놓고 주류와 비주류의 접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9월 16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10차 혁신안이 압도적으로 가결[8]되고, 20일 국회의원 및 당무위원들이 함께하는 연석 회의에서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을 결의하자 21일 문재인 대표는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모두의 충정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재신임의 뜻을 접었다. 문 대표는 마음을 더 비우고 책임을 더 무겁게 하여 반드시 총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 덧붙이자면, 재신임 투표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던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 의사를 철회한 건 당 중진 의원들이 '앞으로 비주류 진영이 함부로 당대표를 흔든다면 우리가 앞장 서서 제지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진 의원들은 이때의 약속과는 달리 비주류의 공세에도 2015년 12월을 기준, 현재에도 뜨뜻 미지근한 반응만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표가 중진 의원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
- 2015년 9월 22일, 재신임 정국이 마무리되자 최고위원들을 비롯한 당 지도부 인사들을 자택에 초대해 만찬 회동을 가졌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으며 새정연 지지층 사이에서도 호평이 잇따랐다. 해당 기사
- 2015년 9월 23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에서 문재인 대표를 비롯해 안철수 의원, 김한길 의원, 이해찬 의원, 문희상 의원, 정세균 의원 등등 지도자급 의원들에게 20대 총선에는 새누리당 강세 지역으로 출마해 살신성인과 백의종군하는 자세를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당대표에 당선되면 20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었던 문재인 대표는 혁신위의 요구에 대해 심사숙고하겠다며 불출마의 뜻을 접고 부산광역시, 강남구 등 새누리당 강세 지역에 출마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러나 '사령관을 한 곳에, 그것도 적진에 묶어두는 건 미친 짓이다'라는 반발 여론이 있었고 전략적으로 자해 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20대 총선에 끝내 나서지 않았다. 대신, 전국을 돌아다니며 후보 단일화와 지원 유세 등에 전력을 쏟았고 이건 더불어민주당의 20대 총선 승리 요인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3. 재신임 제안 철회 이후 (2015.9. ~ 2015.12.)
* 10.28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또 패배하자 "정치가 국민들께 희망드리지 못해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도 실패했다. 저희가 더 겸허하게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비주류 측에서는 10.28 재보선이 치러진 지역 중에 가장 투표율이 높았던 전남 신안군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것 등을 이유로 들며 대표직에서 물러나란 말도 했지만 워낙 관심도가 낮았던 선거였고(총 투표율 20.1%) 국회의원이나 광역자치단체장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힘을 가진 공직자를 뽑는 선거는 아니었던 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에 묻혀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표는 재보선 결과에 대해 언급하면서 2015 개정 교육과정 역사 교과용도서 국정화 논란에 대해서는 "교과서 문제는 그것과 별개다.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의 문제이고 교육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 박근혜 정부가 2015 개정 교육과정 역사 교과용도서 국정화에 대한 확정 고시를 내리자 2015년 11월 4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에 반박하는 성격의 담화문으로,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는 생중계했던 지상파 3사는 정작 황 총리의 담화를 반박하는 문 대표의 대국민 담화는 생중계를 거부해 논란을 일으켰다.
- 안철수 의원으로 대표되는 당내 비주류 의원들이 대표직 사퇴 요구와 혁신위원회의 혁신안 폐기를 요구하자, 당내 대선 지지율과 인지도가 높은 3인방 '문재인-안철수-박원순'이 힘을 합쳐 함께 당을 이끌어나가자는 '문안박 연대'를 제안했다. 이에 박원순 시장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나, 현직 단체장 신분이라서 직접적인 연대 참여보다는 상징적인 참여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안철수 의원은 문 대표가 사퇴하고 새 전당대회를 개최해 당대표를 새로 뽑을 것을 요구했다. 이것을 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대권 잠룡이기도 한 안희정 충남지사는 이에 대해 전당대회로 선출된 대표에 대한 쿠데타라며 비판했다.
- 반대로 안철수 의원의 혁신 전당대회 제안은 20대 총선이 겨우 150일 정도 남은 시점에서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거부했다. 더불어 "당의 화합을 위해 용인해야 할 경계를 분명히 하고, 그 경계를 넘는 일에 대해서는 정면대응하여 당의 기강을 세우겠다"고 밝히며, 당내 비주류 세력의 거듭된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총선까지 당대표직을 이어갈 것을 천명했다.
- 2015년 12월 5일 민중총궐기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과 대거 참여해 시민 사회, 종교계와 평화지킴이 역할을 자처했고, 실제로 시청 앞 광장에서부터 행진해 대학로 서울대병원 집회가 종료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런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12월 5일 제2차 민중총궐기는 별다른 마찰 없이 잘 마무리 되었으며, 야권 지지층의 호평을 받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집회 당시 문재인 대표의 말을 전했는데, 이 발언의 논조를 보면 왜 문재인의 집회 참석이 호평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것. 손혜원 위원장 페이스북
- 2015년 12월 8일 국민TV와의 인터뷰 말미에 "새누리당과 1:1 구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의당-천정배 신당을 아우르는 정당 통합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10]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미국의 민주당을 모델로 하는 듯. 이 사안을 놓고 정의당과 천정배 신당과 논의가 이뤄졌는지는 확실치 않다.[11] 천정배 의원 측에서도 문재인 측의 접촉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사실 이 제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문재인은 대표에 취임할 때부터 새누리당과의 1:1 구도를 염두에 둔 발언을 꾸준하게 해왔고[12], 심상정 의원이 정의당 대표로 취임할 당시에도 연대[13]가 아닌 통합[14]을 제안한 바 있다.[15] 하지만 12월 23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정권 교체를 목표로한 연합은 적극 추동하겠지만 통합은 현재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새정치연합과의 통합설을 부정했다.#[16]
문재인 대표는 이렇게 야권 연대를 넘어 통합까지 제시할 만큼 기타 야당들과의 협력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차르'가 된 김종인 대표는 처음에는 '야권 통합'을 주장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민의당의 내홍을 유발하기 위한 전략적인 발언이었고, 정의당과는 아예 '당 대 당 야권 연대'를 철저히 거부하면서 '야권 연대? 그건 먹는 건가? 우걱우걱'(...) 이런 식의 정책을 취하면서 20대 총선은 공식적인 야권 연대가 파괴된 상태에서 치러지게 됐다. 여기서 문재인 전 대표는 개인간 후보 단일화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여러 곳의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또 유권자들의 교차 투표[17] 덕분에 더불어민주당은 야권 연대가 거의 허물어진 상태에서도 꽤나 짭짤한 성적을 냈다.그렇지만 정의당은 ...
- 2015년 12월 9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체포를 두고, 경찰과 조계사의 대립이 극심해진 가운데 "경찰의 조계사 관음전 진입은 불심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며 경찰의 경내 진입 포기를 촉구했다.
- 2015년 12월 15일 : 김해국제공항에서 김포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가장 대표적인 당내 反문재인 인사인 비주류 조경태 의원과 마주쳤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8]
조경태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넘어가면서 이제 만날 일도 없을 듯하다
- 2015년 12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박근혜정부 복지 후퇴 저지 토크 콘서트'에서 박근혜정부의 복지 정책 후퇴를 비판하며 의회 권력이 교체되어야 이 기조를 바꿀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박근혜정부 들어서 노인 빈곤율이 50%에 달하는 와중에도 어르신들은 박근혜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 (이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지가 없으신 거다. 젊은 세대가 노력하고 이 노력을 어르신들이 응원해야 (이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새누리당은 이 발언을 두고 '노인 폄하 발언'으로 규정, 이슈 쟁점화를 시도하였지만 김무성 대표의 '피부색이 연탄색과 똑같다'는 실언에 부딪히면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1 #2 이 발언은 청년층이 정치에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노년층이 새누리당에게 더 이상 '묻지마 지지'를 보내줘선 안 된다는 의도였으나 세대 갈등을 부추긴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4. 안철수 前 대표 탈당을 둘러싸고 (2015.12.)
* 2015년 12월,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고[19] 최재천 정책위의장과 이종걸 원내대표가 당무를 거부하는 등 비주류 인사들이 계속해서 사퇴하라고 압박을 하자, 문재인 대표는 최고위원 정족수를 줄여 후유증을 줄이는 한편, 원내대표는 전체 의원들을 아울러야 하는데 특정 계파의 편에 서서 당무를 거부하는 건 문제이며 당직을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당무를 거부한다면 인사 교체를 할 수밖에 없다며 단호히 경고했다. 더 이상의 유화책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내대표는 의원들에 의해 선출된 선출직이라 당대표가 인사 교체를 할 수 없지만, 정책위의장은 임명직이며 당대표가 인사권자라 면직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 결국 12월 6일 최재천 정책위의장이 사임을 표명하자[20] 이를 수용하고 후임자 인선에 착수했다. 그리고 새 정책위의장에 당내 강성 개혁파이자 노동 전문가인 이목희 의원을 임명하였다.
- 2015년 12월 10일, 한명숙 前 총리에게 탈당을 권유했다. 안철수 의원의 부패 의원 혁신안을 측근에서부터 적용함으로써, 비주류 의원들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칼춤의 전조로 보는 입장과 안철수 의원과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립한다. 이에 한명숙 전 총리는 탈당계를 제출하는 것으로 대표의 뜻을 받아들였다. 더불어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윤건영 특보까지 제20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즉,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한 전 총리와 친노 삼철은 문재인과 뜻을 같이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이에 안철수 의원은 장고 끝에 13일 기자회견을 한다고 밝혔다.
- 문재인 대표가 현재 비주류와 안철수 의원을 분리하여 투 트랙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사실 문재인, 안철수 양쪽의 선택의 폭은 모두 넓지 않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 자신이 제안한 10대 혁신안(비리 혐의로 기소만 돼도 잘라낸다는 게 핵심 내용)이 당헌에 반영되면 현재 자신과 목소리를 같이 하고 있는 비주류 의원들이(김한길 전 공동대표의 경우 죽은 성완종 회장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대한민국 검찰청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었다) 잘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문 대표의 화해를 쉬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문 대표도 현재 중진들이 혁신 전당대회 가능성을 열어둔 문-안 비대위 창설을 주장하는 등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황에 빠져있는데, 문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최재성 총무본부장은 앞서 언급한 중진들의 중재안이 현실화되어 문 대표가 혁신 정책을 중단한다면 문 대표와 단호히 결별하겠다고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일각에선 대타협 가능성을 제기하나, 상황이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 2015년 12월 13일 예견된 안철수 의원의 기자회견이 탈당 선언으로 가시화되자, 이를 만류하기 위해 12일에서 13일로 넘어가는 새벽 안 의원의 자택을 방문했으나 40여분간 기다리다가 "맑은 정신으로 다시 만나자"는 안 의원의 인사에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안철수 의원의 지지자들은 알리지도 않은채 갑자기 찾아와서 문재인이 쇼맨십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며 비판한 반면, 문재인 지지자들은 겨울 한밤에 문전박대한 것은 너무했다며 문 대표를 두둔해 여론이 갈리고 있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 12일 밤에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성명서가 채택됐고, 긴급 의원 총회는 문재인 대표, 안철수 의원에게 특사 중진 의원 3인(박병석, 원혜영, 노웅래)을 보내며 성명서도 그 편에 보내기로 했다.
- 문 대표는 과거 대선 당시 자택 방문처럼, 약속이 되지 않는 한 오히려 그것이 안 의원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압박을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약속이 되어야만 가겠다고 했다.
- 특사 중진 의원 3인 중 박병석 의원은 안철수에게 갈 때, 같이 만나게 해주겠다며 여러 차례 권유했고, 그제야 문 대표가 방문을 결심했다.
- 특사와 함께 안 의원의 집을 방문했지만, 안 의원은 박병석 의원을 포함한 의원들만 집으로 들이고 문재인 대표를 문 밖에 세워둔 것.
- 문 앞에서 40여분간 기다리다 대화를 마치고 나온 박병석 의원이 인사라도 하라는 권유를 해, 악수 등 간단히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
- 썰전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의 정보통에 따르면 문 대표의 자택 방문이 오히려 안 의원을 자극했다고 한다. 대선 때도 그러더니 왜 또 같은 방식이냐며 굉장히 화를 냈다고. 2017년 1월 6일 업로드된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손혜원 의원이 밝히길 저날 문 대표의 주머니에는 당대표 사퇴서가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충격과 공포. 문 대표는 당이 깨지기 직전인 혼란상을 수습하기 위해 그나마 가장 믿을 수 있는 안 의원에게 대표직을 넘기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넘긴다고 당대표가 넘겨지는 게 아니고 절차를 밟아 선출되는 것이지만 안 의원을 만나러 갈 때 당대표 사직서를 가지고 갔었다는 것이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 안철수 의원이 탈당한 후, 고향인 경남 양산으로 내려가 짧은 휴식을 취하며 앞으로의 정국을 구상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16일 서울로 돌아온 그는 안 의원에 탈당에 유감을 표하고 모든 국회의원 공천을 상향식으로 바꾸겠다는 뜻을 밝혔다. 각 계파 보스들 간의 이른바 '나눠먹기 공천' 관행을 끝내겠다는 것. 자신의 사퇴를 요구하였던 비주류 세력를 두고는 '혁신을 공천 싸움과 당권 투쟁으로 전락시키려는 시도는 절대 성공 못할 것'이며, '당내 투쟁을 야기하면서 혁신을 무력화하고, 당을 흔들어서 결과적으로 정권 교체를 방해할 세력에게는 이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5.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준비 체제 돌입 (2015.12. ~)
* 2015년 12월 18일,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정동영 전 의원과 만났다. 당초 이날 오후 4시에 만날 예정이었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3시간 30분 늦게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문 대표는 이 자리에서 "야권이 분열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주문했지만, 정 전 의원은 "마음은 형제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길에 서 있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천정배 의원의 당선 이후 호남발 신당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 후보를 지낸 경력이 있고 전북의 맹주로 불리는 정동영 전 장관까지 신당 세력과 손을 맞잡게 되면 곤란해진다는 불안감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간 정치권에서는 천 의원이 광주와 전남, 정 전 의원이 전주와 전북을 기반으로 신당이 추진될 것이라는 "정-천 연대설"이 계속 있어왔다. 그리고 결국 정동영 전 장관은 국민의당에 합류하며 천정배 의원과 손을 잡았다. 이에 문재인 의원은 본인 SNS에 "잘 된 일이다. 구도가 명확해졌다. 누가 적통이고 누가 중심인지 명확해졌다. 결국 현 야권의 분열을 극복하고 현 야권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일은 더민주의 몫이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
- 정책위의장직을 사퇴한 최재천 의원의 뒤를 이어 강성 개혁파이자 노동 전문가인 이목희 의원을 새 정책위의장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전략공천 관리 위원장에 여수에서 4선을 하였으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성곤 의원, 공직선거 후보자 검증위원장에는 백재현 의원, 예비후보자 이의신청처리위원장에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 비례대표 선출의 시행 세칙을 제정할 태스크포스 팀장에는 홍익표 의원을 임명하며 본격적인 총선 준비 체제에 돌입했다.
-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가 발표되자, 12월 30일 외교통상부의 위안부 합의는 대한민국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 조약이나 '협정'에 해당하며, 해당 합의는 국회의 동의를 얻지 않았으므로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 문제에 대해 "국내외 수많은 양심 세력들, 위안부 어르신들과 함께 일본의 법적 책임과 사죄, 배상을 끝까지 묻겠다. 일본은 (위안부 재단 설립 기금으로 주기로 한) 10억 엔이 배상금이 아니라고 분명히 못을 박은 상태다. (그러니) 정부도 그 돈을 받으면 안 된다. 위안부 어르신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한다면 우리 모두의 돈으로 설립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위안부 문제 해결의 핵심인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그에 기초한 사과 및 배상이 빠진 합의는 '최종적', '불가역적(본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성격을 띈 것)'일 수 없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사신 피해자들을 빼고는 대통령이 아니라 그 누구도 최종과 불가역을 말할 자격이 없다. 가해자의 법적 책임을 묻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야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오히려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게 이해를 해달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쟁점이 되고 있는 위안부 소녀상 문제에 대해서도 문재인 대표는 "어두운 과거를 역사에서 지우려고 하는, 교과서 왜곡과 같은 반역사적 행위이다. 일본이 소녀상 철거를 요구한 건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처사이며, 그 부당한 요구에 끌려다닌 우리 정부도 부끄럽긴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위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문재인 대표는 본인 SNS에 일본이 위안부 재단 설립 기금으로 제공하겠다는 10억 엔을 보고 "일본은 10억 엔이 배상이 아니라고 분명히 못 박았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굴욕입니다. 정부가 10억 엔에 우리의 혼을 팔아넘긴 것입니다. 10억 엔에 할머니들을 팔아넘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굴욕적인 협상 결과로 얻는 10억 엔을 거부합니다. 정부는 그 돈을 받지 말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라며 비판하며 위안부 어르신들을 위한 재단은 일본의 10억 엔이 아닌 우리의 돈으로 만들자는 국민 모금 운동을 제안하며 본인이 가장 먼저 실천에 옮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글 전문
[1] 두 전직 대통령 모두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5.16 군사쿠데타', '10월 유신' 등등 종신 집권을 위해 민주주의 질서를 여러 차례 파괴하고 민주화운동가들을 탄압한 과거가 있는지라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던 이들이 많은 야권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는 참배하지 않았었다.[2]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 등등 당 핵심 요직들을 비주류 인사들로 임명했다. 그러나 2015년 12월을 기준으로 문 대표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비주류 인사들이 당을 박차고 나가버리거나 당무를 거부하면서 주류 진영 인사들로 인사 교체가 이루어졌다.[3] 2015년 초까지만 해도 압도적 1위였던 차기 대권 지지율에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에게 1위를 내주고 같은 당의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박빙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2015년 12월을 기준으로 김무성 대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등 부활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20대 총선이 끝난 다음부터는 반기문 UN 사무총장과 더불어 투톱 체제를 굳혔다.[4] 2012년 대선에서 맞붙었던 박근혜는 자신이 지휘봉을 잡은 선거에서 진 적이 없다. 그래서 별명이 '선거의 여왕'인 반면, 문재인 대표는 대선 이후 20대 총선 전까지 자신이 치른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다. 특히나 4.29 재보궐선거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 아래서 치러졌던데다가 모두 야권 강세 지역에서 치러졌었기 때문에 문재인 당시 대표에겐 치명적인 상처였다. 그러나 인재 영입의 성공과 20대 총선의 승리로 명실상부한 더민주 최강의 차기 대권 주자로 부활하게 된다.[5] 이명박 정권에서 실시된 대북 관계 단절 조치[6] 북한의 도발에 단호한 조치는 필요하지만 대화 역시 병행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언론에서 의도적으로 대화하자는 부분만 잘라서 확대 보도한 측면이 있다. 타이밍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지만.[7] 현직 의원 중 성적이 낮은 하위 20%를 공천 탈락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천제도 개혁안.[8] 비주류는 중앙위원회를 보이콧하려 했으나, 실제로 참석한 400여명의 당직자들 중 20여명 정도만 보이콧했다.[9] 부패 관련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탈당 및 제명 조치를 해야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10] 같은 날 있었던 관훈 클럽 초청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논지의 계획을 밝혔다.[11] 말미에 인터뷰어가 논의 여부를 묻자, 대답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시도는 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 듯.[12] 정계를 떠난 시기인 2011년에 출간된 그의 회고록 '운명'의 마지막 부분에도 연대보다는 아예 하나의 세력으로 통합하는 게 확실한 방법이라는 그의 의견이 담겨 있다.[13] 선거를 맞아 후보를 조율해서 공천하는 '선거 연대'라든가, 정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정책 연대', DJP(김대중-김종필)의 공동 정부, 혹은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에 한나라당에 제안했던 대연정 같은 한시적, 물리적 결합[14] 완전히 하나의 정당으로 합치는 통합[15] 이에 심 대표는 "연애도 안했는데, 결혼 얘기부터 하느냐"며 거절 의사를 밝힌 바 있다.[16] 정의당은 문재인과 안철수를 둘다 비판할 더라도 안철수를 더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연립 정부는 몰라도 선거 연대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반면 안철수는 천정배, 박주선 등의 야권 신당과의 연대는 기본적으로 열려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17] 지역구는 될 사람을 찍고, 비례대표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정당을 찍는 전략적 투표 행위.[18] [19] 사퇴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표를 '악마'에 비유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20] 처음엔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정작 문 대표가 인사 교체 가능성을 시사하자, '원래는 사퇴하려고 했는데 나가라고 하니 못 나가겠다. 이는 정치적 자존심의 문제'(...)라며 발끈했다. 그러나 결국 자리를 내려놓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