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미야상 미야상(宮さん宮さん)은 보신 전쟁 중인 1868년에 만들어진 사실상 일본 최초의 군가이다. 「トコトンヤレ節」라고도 한다. 작사자는 시네가와 야지로(品川弥二郎)이고, 작곡가는 오무라 야스지로(大村益次郎)이다. 미야상(宮さん)은 일본 황족의 호칭이고,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대략 '왕자님'과 비슷하다. 여기서 미야상은 아리스가와노미야 제9대 당주이자 동정대총독인 아리스가와노미야 다루히토 친왕을 의미한다.2. 배경
게이오 4년 1월(1868년 1월) 보신 전쟁 당시 사쓰마번(시마즈씨), 조슈번(모리씨), 도사번(야마우치씨) 세 번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번들로부터 편제된 신정부군은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막부군과 싸워 승리했다. 그 다음 달에는 신정부총재인 아리스가와노미야 다루히토 친왕이 동정대총독을 겸무하여 메이지 천황으로부터 니시키노미하타와 절도를 하사받고 도카이도를 향해 진군을 시작한다. 이 군가는 진군 시점에서 군의 사기 상승을 위해 신정부 측에서 직접 작곡하여 배포한 노래이다.3. 가사
1절
[ruby(宮, ruby=みや)]さん[ruby(宮, ruby=みや)]さんお[ruby(馬, ruby=うま)]の[ruby(前, ruby=まえ)]に
미야상 미야상, 말 앞에
미야상 미야상 오우마노 마에니
ひらひらするのは[ruby(何, ruby=なん)]じゃいな
펄럭이는 저것은 무엇이옵니까?
히라히라 스루노와 난쟈이나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1]
あれは[ruby(朝敵, ruby=ちょうてき)][ruby(征伐, ruby=せいばつ)]せよとの
저것은 조적을 정벌하라는
아레와 쵸우테키 세이바츠 세요토노
[ruby(錦, ruby=にしき)]の[ruby(御旗, ruby=みはた)]じゃ([ruby(知, ruby=し)]ら([ruby(無, ruby=な)]いか
니시키노미하타이니라 모르느냐?
니시키노미하타쟈 시라나이카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2절
([ruby(一天万乗, ruby=いってんばんじょう)]の([ruby(帝, ruby=みかど)]に
일천만승[2]의 폐하께
잇뗀반죠우노 미카도니
手向かいする奴を
거스르는 놈들을
테무카이스루야츠오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狙い外さず 狙い外さず
겨누어 놓치지 않고 겨누어 놓치지 않고
네라이하즈사즈 네라이하즈사즈
どんどん撃ち出す薩長土
척척 쏘는 삿초도[3]
돈돈 우치다스 삿쵸우도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3절
伏見鳥羽淀橋本葛葉の
후시미, 토바[4], 요도, 하시모토, 쿠즈하[5]의
후시미 토바 요도 하시모토 쿠즈하노
戦いは
전투는
타타카이와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薩長土肥の 薩長土肥の
삿초도히의 삿초도히의
삿쵸우도히노 삿쵸우도히노
おおたる手際じゃ無いかいな
적수가 안되는구나
오오타루테키와쟈나이카이나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4절
音に聞こえし関東武士
소문이 자자한 간토 사무라이
오토니 키코에시 간토우 사무라이
どっちへ逃げたと問うたれば
어디로 도망쳤냐고 물으니
돗치에 니게타토 토우타레바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城も氣慨󠄁も
성도 기개도
시로모 키가이모
捨てて吾妻へ逃げたげな
버리고서 아즈마[6]로 달아났다네[7]
스테테 아즈마에 니게타게나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5절
国を追うのも人を殺すも
나라를 쫒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것도
쿠니오 오우노모 히토오 코로스모
誰も本気じゃ無いけれど
아무도 본의는 아니다만
다레모 혼키쟈 나이케레도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薩長土肥の薩長土肥の
삿초도히의 삿초도히의
삿쵸우도히노 삿쵸우도히노
先手に手向かいする故に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기에
사키테니 테무카이 스루유에니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6절
雨の降るよな
비 내리듯
아메노 후루요나
鉄砲の玉の来る中に
총알 날아오는 속에서
텟포노타마노 쿠루나카니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命も惜しまず先駆けするのも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먼저 가는 것도
이노치모오시마즈사키가키스루노모
皆んなお主の為故じゃ
모두 폐하를 위해서이니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ruby(宮, ruby=みや)]さん[ruby(宮, ruby=みや)]さんお[ruby(馬, ruby=うま)]の[ruby(前, ruby=まえ)]に
미야상 미야상, 말 앞에
미야상 미야상 오우마노 마에니
ひらひらするのは[ruby(何, ruby=なん)]じゃいな
펄럭이는 저것은 무엇이옵니까?
히라히라 스루노와 난쟈이나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1]
あれは[ruby(朝敵, ruby=ちょうてき)][ruby(征伐, ruby=せいばつ)]せよとの
저것은 조적을 정벌하라는
아레와 쵸우테키 세이바츠 세요토노
[ruby(錦, ruby=にしき)]の[ruby(御旗, ruby=みはた)]じゃ([ruby(知, ruby=し)]ら([ruby(無, ruby=な)]いか
니시키노미하타이니라 모르느냐?
니시키노미하타쟈 시라나이카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2절
([ruby(一天万乗, ruby=いってんばんじょう)]の([ruby(帝, ruby=みかど)]に
일천만승[2]의 폐하께
잇뗀반죠우노 미카도니
手向かいする奴を
거스르는 놈들을
테무카이스루야츠오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狙い外さず 狙い外さず
겨누어 놓치지 않고 겨누어 놓치지 않고
네라이하즈사즈 네라이하즈사즈
どんどん撃ち出す薩長土
척척 쏘는 삿초도[3]
돈돈 우치다스 삿쵸우도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3절
伏見鳥羽淀橋本葛葉の
후시미, 토바[4], 요도, 하시모토, 쿠즈하[5]의
후시미 토바 요도 하시모토 쿠즈하노
戦いは
전투는
타타카이와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薩長土肥の 薩長土肥の
삿초도히의 삿초도히의
삿쵸우도히노 삿쵸우도히노
おおたる手際じゃ無いかいな
적수가 안되는구나
오오타루테키와쟈나이카이나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4절
音に聞こえし関東武士
소문이 자자한 간토 사무라이
오토니 키코에시 간토우 사무라이
どっちへ逃げたと問うたれば
어디로 도망쳤냐고 물으니
돗치에 니게타토 토우타레바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城も氣慨󠄁も
성도 기개도
시로모 키가이모
捨てて吾妻へ逃げたげな
버리고서 아즈마[6]로 달아났다네[7]
스테테 아즈마에 니게타게나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5절
国を追うのも人を殺すも
나라를 쫒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것도
쿠니오 오우노모 히토오 코로스모
誰も本気じゃ無いけれど
아무도 본의는 아니다만
다레모 혼키쟈 나이케레도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薩長土肥の薩長土肥の
삿초도히의 삿초도히의
삿쵸우도히노 삿쵸우도히노
先手に手向かいする故に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기에
사키테니 테무카이 스루유에니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6절
雨の降るよな
비 내리듯
아메노 후루요나
鉄砲の玉の来る中に
총알 날아오는 속에서
텟포노타마노 쿠루나카니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命も惜しまず先駆けするのも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먼저 가는 것도
이노치모오시마즈사키가키스루노모
皆んなお主の為故じゃ
모두 폐하를 위해서이니
トコトンヤレトンヤレナ
토코톤야레톤야레나
4. 여담
멜로디가 군가라기보다는 일본 전통 음악처럼 들리기 때문에 가사와 상관 없이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일본풍의 노래로 인지도가 있었던 듯 하다. 1885년 초연한 오페라 미카도에서 멜로디가 사용되었다. 1904년 초연된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야마도리 공이 등장할 때 나오는 음악도 이 곡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귀멸의 칼날 도공 마을 편에서 칸로지 미츠리가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만화에만 있고 애니메이션에는 짤렸다. #
5. 영상
[1] 반복되는 이 구절은 '둥둥둥' 같은 북치는 소리의 의성어로, "때려부수다", "최선을 다하다" 의미로도 볼수 있는 일종의 말장난이다.[2] 주나라 때 천자는 만 대의 병거를 소유했다는 데서 유래해 천자의 자리를 뜻하는 고사성어.[3] 이 시기의 신정부를 지탱하던 주요한 번들인 웅번들이다. 삿초 동맹과 삿도 맹약 등 군사동맹 관계로 엮여 있었다.[4] 도바-후시미 전투. 보신전쟁의 시작이 된 전투다. 이때까지만 해도 막부가 조적이 아니었으므로 사츠마와 조슈의 군사만으로 싸웠다. 하지만 우세한 전력의 막부군이 실수 끝에 패퇴하였다.[5] 요도-야마자키 전투. 도바-후시미 전투 바로 다음에 일어난 전투로, 이 전투 시작 전에 막부가 교토 공격을 죄목으로 하여 조적으로 선포당하고 반막부군이 니시키노미하타를 받아 공식적인 관군이 되었다. 이에 사기가 오른 신정부군은 요도, 하시모토에서 막부군을 무찌르고 잇달아 쿠즈하 요새까지 점령했다.[6] 에도, 가마쿠라 등 관동의 중심 지역을 일컫는 고어.[7] 당시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오사카 성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조적이 되었다는 사실에 이미 사기가 꺾인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막신들이 아직 세가 약한 신정부군을 직접 치러 나갈 것을 권하자, 알겠다면서 오사카 성의 막부군에게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뜨거운 연설을 한 후 그날 밤에 군함 카이요마루를 타고 에도로 야반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