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주 부분에 '바다에 가면'이 있지만, 후반부에 반주만 나오는 버전 |
해군 식전(式典)용 반주 |
1. 개요
군함행진곡([ruby(軍艦行進曲, ruby=ぐんかんこうしんきよく)])은 당대의 유명한 작사가였던 도리야마 히라쿠(鳥山啓)의 시인 <군함의 노래>에 병사들이 곡을 붙여 부르던 것을 1897년에 작곡가 세토구치 도키치가 편곡한 것이다. 영어로는 'Warship March', 혹은 'Japanese Navy March'로 표기한다. 그래서인지 현대 일본에서는 이 곡의 제목을 '軍艦マーチ'로 표기한다. 원래 병사들이 민요처럼 부르던 <군함의 노래>는 4분의 3박자인 왈츠풍의 곡이지만, 세토구치의 곡은 4분의 2박자인 전형적인 행진곡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 후 토오기키 카오루가 작곡한 바다에 가면(19명의 곡과는 다른 곡이다)의 선율을 현악삼중주풍으로 편곡한 것을 덧붙여서 지금의 군함행진곡이 되었다.1897년에 작곡되어 1900년에 공개되었다. 일본 제국 당시부터 불렸던 일본 해군의 군가(軍歌)로,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에도 해군의 명맥을 이어 재조직된 해상자위대의 각종 식전에서 가사만 없애고 연주되고 있다.
원래 곡 제목은 토리야마의 가사 제목을 따라 '이 성(此の城)'이라고 했었지만, 1900년에 처음 연주되었을 때 현재 제목으로 바뀌어 소개되었다. 초연 직후 이 곡은 일본 제국 해군을 상징하는 공식 군가로 자리잡았고, 세토구치도 작곡 공로로 군악장 직함을 수여받았다.
피아노 소품집 악보에도 실려 있고, 지금이야 음반 취입 등이 뜸하기는 하지만 리즈 시절이라고 할 수 있던 20세기 초중반에는 원본인 취주악 외에 합창, 독창, 중창, 기악 독주, 관현악 등등 별의별 버전의 음반들이 미친듯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1935년에는 독일의 국가대표격 관현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까지도 취입했다. 편곡과 지휘는 1930~40년대 도이체 그라모폰의 녹음 전속 지휘자로 활동했던 알로이스 멜리하가 맡았다. 원곡과는 가락과 화음이 좀 다르다.
일단 일본 군가들 중에선 비교적 곡이 현대에도 먹힐 만큼 괜찮은 편이라, 서구권에서도 이런 식으로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이렇게 행진곡 모음집에 자주 수록되다 보니 가끔 초등학교 운동회 등에서 이 곡이 흐르기도 한다(!). 2006년 경 국내 굴지의 모 대기업 공장에서 점심식사 벨소리로 간주 부분을 사용한 적이 있다. 물론(?) 연주곡 버전으로.
이 곡의 마이너 체인지판은 미얀마군의 군가 Tot Ya Tatmadaw라는 곡이다. 미얀마에서는 이 곡이 꽤 유명한 지, 군부 통치 기간 동안 해단되었던 미얀마 국립 교향악단이 재창단된 뒤 2013년 3월 2일에 일본 지휘자 후쿠무라 요시카즈의 지휘로 개최한 첫 공연에서도 연주된 바 있다. 교도통신의 공연 보도와 동영상 다만 군함행진곡이라는 제목으로 연주되었는 지는 알 수 없다.
대륙에서는 이 곡이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옛 뮌헨 육군사관학교의 교가를 작곡자 세토구치 도키치가 표절했다는 주장인데, 증거도 불충분하고 중국 내에서만 발견되는 정보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전후에는 파칭코에서 군함행진곡이 쓰인 적도 있다. 그래서 전쟁을 겪고 자라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이 곡의 진가를 모른 채 '뭐야 이거 도박장 싸구려 배경음 아냐'라고 캐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가, 패전 후 파칭코 등에 탐닉하게 되어 버린 군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마약으로는 히로뽕, 음악으로는 군함행진곡이었던 것일까.
2. 음원 및 가사
'''{{{#ffffff 軍艦行進曲''' | ||||
1절 | 2절 | |||
守るも攻むるも黑鐵の 마모루모 세무루모 구로가네노 지키는 것도 공격하는 것도 강철과 같이 浮かべる城ぞ頼みなる 우카베루 시로조 타노미나루 떠있는 성처럼 듬직하구나 浮かべるその城日の本の 우카베루 소노 시로 히노 모토노 떠있는 그 성은 태양의 뿌리인 皇國の四方を守るべし 미쿠니노 요모오 마모루베시 황국의 사방을 지켜야하노라 眞鐵のその艦日の本に 마가네노 소노 후네 히노 모토니 강철의 그 함선은 일본에 仇爲す國を攻めよかし 아다나스 쿠-니오 세메요카시 대적하는 나라를 쳐부수리라 | 石炭の煙は大洋の 이와키노 케무리와 와다츠미노 석탄 연기는 너른 바다의 龍かとばかり靡くなり 타츠카토 바카리 나비쿠나리 용과 같이 나부끼며 彈擊つ響きは雷の 타마 우츠 히비키와 이카즈치노 포탄 쏘는 소리는 천둥치는 聲かと許り響むなり 코에카토 바카리 도요무나리 소리와 같이 울려퍼지노라 萬里の波濤を乘り越えて 반-리노 하토-오 노리코에테 만리길 파도를 타고 넘어서 皇國の光輝かせ 미쿠니노 히-카리 카가야카세 황국의 영광을 빛내리라 |
군함행진곡 자체는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부분이 없고,[1] 같이 포함하는 바다에 가면은 그 부분이 있다. 버전에 따라서는 1절과 2절의 가사에 3절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가사는 바다에 가면(海行かば)이라는 전혀 다른 군가의 것으로 원래의 것이 아니니 주의해야 한다.[2]
또한 위에 세번째 동영상 버전에 따라서는 바다에 가면을 안 부르고 다시 1절을 부르기도 하여 3절과 4절 둘 다 기재했다.
3. 기타
- 아돌프 히틀러가 이 곡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 이 곡의 작곡자인 세토구치 도키치는 이 곡의 유명세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편으로 그 이후로도 애국행진곡과 피아노 소곡 벌레의 춤등 다양한 곡을 작곡하였으나 군함행진곡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묻혔다.
- 오늘날 일본을 비롯해서 대한민국, 대만 등 1930년대와 그 이전 출생자들은 이 노래를 매우 잘 알고 있다. '전시체제때 너무 지겹게 들었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래서 많은 식민지 백성이 지겹게 들었던 탓에 당시 만들어진 여러 노래가 군함행진곡에서 가사만 바꾼게 많았다. 물산장려가[3]나 찬송가, 심지어 독립군 군가들 중에서도 일부 곡들은 군함행진곡에서 가사만 바꾼 것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독립운동가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것은 아니다. 당시엔 작곡가 인력도 부족했고 선무해야 하는 민중들이나 대원들이 가장 잘 아는 곡조를 찾아야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일본 군가는 아니지만 당시 일본의 유행곡을 개사한 용진가도 있었으며 보병의 본령, 용감한 수병 등의 군가도 그렇게 유용되었으니 오해는 하면 안 된다.[4] - 또한 식민지 조선에서는 앞서 말한 곡조 차용뿐 아니라 군함행진곡의 가사를 일본 제국과 총독부를 조롱하고 규탄하는 내용으로 바꿔 부르는 개사가 여럿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군함행진곡이나 애국행진곡 등의 일본 군가들이 강제로 보급된 식민지 조선에서는 해당 군가들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조롱성 개사를 하여 가사를 바꾸어서 불러 조선총독부가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5] 일례로 애국행진곡의 경우 "보라 도조의 대머리"라는 식으로 가사를 바꿔 부른 사례도 있다고 한다.[6] 이렇게 비슷한 사례의 소극적인 저항은 창씨개명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 교회에서 천국행진곡으로 개사하여 부른다.
- 일본 극우파들이 각종 시위에서 애국행진곡과 함께 항상 시끄럽게 틀어대는 노래 중 하나이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의 유슈칸의 러일전쟁 코너에서 틀어주는 관련 영상에서도 흘러나온다.
- 대한민국 국군이 처음 베트남 전쟁에 파병을 결정하면서 1진으로 도착한 비둘기부대의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이 도착했을 때, 사이공에서 이들에 대한 환영행사가 열렸는데 여기 도열한 남베트남 군악대가 환영의 음악으로 군함행진곡을 연주하는 당황스런 사건이 있었던 적이 있다.[7]
- 1983년 당시 일본 총리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나카소네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환영하가 위해 도열한 미 군악대가 이 곡을 연주했다. 일본 해군 주계 소좌 출신인 나카소네 총리를 배려했던 것이다.
- 2.28 사건 당시 대만인들이 중화민국 국군(중국군)에 맞서 반대 시위를 전개하면서 라디오 방송국을 점거하고 이 곡을 틀어 중화민국(중국)에 맞서 대항하도록 대만인들의 단결과 저항의식을 유도했었다. 대만인들에게는 일제 하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그걸 노리고 한 행동이었겠지만 당시 대륙에서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차 있는 상태였고, 결국 중국은 대만인들을 매국노로 몰아 대량학살을 일으키는 단초가 되었다.
- 전시뉴스 즉 대본영발표에 삽입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개전을 알리는 뉴스. 초반에 삽입된 곡은 후술할 '바다에 가면(海行かば)'이며, 본 곡은 후반에 삽입되어 있다.
- 국내 음원 서비스 멜론에서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이 가능하다. 정확히는 영화 군함도의 사운드트랙으로 삽입된 곡이다.
- 2014년 중국 상하이의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원아들이 군함행진곡에 맞춰 율동을 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계획을 입안했던 교사는 "인터넷에서 괜찮은 노래를 찾아 틀게 되었다"고 해명했으나 학부모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원장과 함께 자아비판후 직위해제 되었다.
- 2011년 하와이에서 연주되었다.# 휘날리는 성조기 옆에서 군함행진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말 그대로 장관이다.
4. 매체 속 군함행진곡
워낙 유명한 군가이다 보니 일제강점기를 상징하는 곡으로 여러 매체에서 사용된다. 일제강점기를 그리거나 당시를 기억하는 장면 등에서 사용될 경우 문제가 없지만, 그저 경쾌한 행진곡으로 알고 사용할 경우 방송사고로 취급되며 미친듯이 까이게 된다. 다만 전자의 경우 엉뚱하게 일본 제국 육군이 나오는 장면에서 쓰이는 재현오류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MBC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 2015년 11월 29일에 삽입되었다. ###
- 드라마 야인시대 - 37화에서 첫 등장. 만주로 출정하는 일본군들의 출병식 장면에서 나온다. 개코랑 삼수가 떼놈들을 박살내버리라고 말하다가 정진영한테 중국엔 독립군들도 있다며 극딜을 맞는다. 49화에도 나오는데, 부민관 폭탄의거를 실행한 사람들이 공사장에서 폭약을 빌리려다 감독관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다. 그 전에도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켰을 때 종로 거리에서 헌병들이 행군하는 모습과 함께 삽입된다.
그리고 1기 마지막회인 50화에서 미와 경부가 '청산리 전투에서 죽은 군인인 동생을 따라가겠다'며 죽기 직전에 쇼와 덴노에게 '옥쇄를 결정했다'며 비장하게 최후 인사를 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일본인인 미와의 입장에서는 순국을 앞둔 비장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배경음악은 일제를 대표하는 경쾌한 행진곡이니 아이러니하면서도 분위기가 잘 맞는다.
* 영화 꽁치의 맛 - 주인공이 해군 장교 출신이라 그런지 주요한 극중장치로 기능한다. 가령 술집에서 이 노래가 연주되자 술집 손님들이 이걸 듣고 거수경례하며 추억에 잠기는 씬이 있다. 극이 흘러감에 따라 군함행진곡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변화도 눈여겨볼 부분.
* 영화 꽁치의 맛 - 주인공이 해군 장교 출신이라 그런지 주요한 극중장치로 기능한다. 가령 술집에서 이 노래가 연주되자 술집 손님들이 이걸 듣고 거수경례하며 추억에 잠기는 씬이 있다. 극이 흘러감에 따라 군함행진곡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변화도 눈여겨볼 부분.
- 영화 장군의 아들 2편 - 종로에서 일본군이 행진할 때 군악대가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 영화 군함도에서도 초반에 여러 차례 나온다.
- 영화 귀신이 온다에도 오프닝부터 등장.중일전쟁와중에 포로(?)로 잡힌 일본군[9]에 대한 영화인데, 포로로 붙잡힌 마을 근처에 일본군 해군군악대가 주둔해 있어서 이 곡을 자주 연주한다. 또한 영화 후반에 포로에서 풀려난 후 중국인 마을에서 일본군들에게 잔치를 베풀 때 해군 군악대가 연주하는데, 경쾌한 행진곡에 맞춰 마을사람들을 학살한다(...).[10]
- 영화 모던보이에서도 등장한다. 조선총독부에서 중일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이 노래가 울려퍼지며,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도 총독부 축체에서 이 노래를 부른다.
- 애니메이션 학생회 임원들 2기 OVA 5화에서 짧게 앞부분만 나왔다.
[1] '황국'이라는 가사가 2번 등장하지만, 당시의 일본 제국은 엄연히 천황이 통치권을 행사하는 국가였고 천황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으로서 추앙받고 있었기 때문에 '천황의 나라'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이것이 군국주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2] 만엽집에 수록된 시이다. 참고로 바다에 가면'은 따로 곡이 있으나(2차 대전 당시는 사실상 제2국가), 여기에서 이 가사에 붙은 곡은 그것이 아니라 일본 국가 기미가요를 편곡한 가락이다. 곡은 1880년에 붙여졌고 최소한 2개의 버전이 있다.[3] 조선의 동포들아 이천만민아 두손들고 두팔들고 나오너라~~로 시작되는 노래. #[4]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 부대가 불렀다는 혁명가 중 상당수도 일본 군가의 곡조를 따와서 가사만 바꾼 것이 많다.[5] 아무튼 이런 식의 저항은 해방 후에도 이어져 유행가나 군가에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가사를 붙여 부르곤 했는데 한국에 민주화가 실현되는 1990년대까지 노가바라는 이름으로 계속되었다. 오월의 노래가 대표적이다.[6] 애국행진곡을 '도조의 대머리'로 개사한 패러디는 일본 본토에서 시작되었는지 조선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불분명하나 일본과 조선에서 모두 인지도가 있었다고 한다. 애국행진곡 항목에 가면 수록되어 있다.[7] 이는 남베트남국군이 일본의 군함행진곡과 국군의 군함행진곡을 혼동해서 일어난일 가능성이 높다.[8] 타카오급 중순양함 마야 함의 승조원이었다.[9] 이 역할의 배우가 카가와 테루유키다.[10] 포로가 된 이후 부대에서는 죽었다고 생각해 전사로 처리하였는데 몇 달만에 멀쩡히 살아돌아온 것을 보자 중국인들과 결탁한 것으로 생각해 중국인 마을 사람 모두를 죽여버린다.[11] 일본군은 전통적으로 육군과 해군간의 관계가 매우 나빴다. 따라서 육군이 해군가를 부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 보병의 본령, 눈의 진군, 발도대 같은 육군가를 부르는 게 고증에 맞을 것이다. 워낙 군함행진곡의 인지도가 높다 보니 생긴 오류로 보인다.눈의 진군이었으면 훌륭한 플래그였을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