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주의의 상징기이자 바트당 당기(黨旗).[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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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a'athism / البعثية바트주의의 '바트'(بعث, Ba'ath[2])는 아랍어로 부흥이라는 뜻이다. 해당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들을 바트당이라고 부른다.
2. 주요 이념
아랍 내셔널리즘과 아랍 사회주의, 공화주의[3], 세속주의, 반시오니즘적 경향을 지닌다.특히 서구 제국주의에 반대하고(=반제국주의) 아랍 세계의 통일(=범아랍주의)을 추구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바트주의 특유의 좌파민족주의적 성격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론이 아랍 형제들의 단결을 방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4] 따라서 바트주의자들은 강력한 계획경제에 기반해 계급협조적 성격을 짙게 나타낸다. 다만 아사드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하면서도 계급투쟁적 성격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다.
2.1. 신바트주의 (시리아 바트주의)
신바트주의는 시리아 바트주의라고도 불리며, 기존 바트주의와 달리 마르크스주의와 연계, 계급 투쟁, 친소 용공정책 등이 강조된 극좌 이념이었다. 1966년 시리아 신바트주의 쿠데타 이후 4년간 살라 자디드와 알 아타시 하 집권 당시 바트주의 시리아의 이념이었다. 이후 1970년 시리아 수정운동 이후 아사드주의로 변질된다.범아랍주의 성격이 강한 이라크식 정통 바트주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본래 사회주의적 성격을 좀 더 추구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범아랍 통합에 대한 집착을 약화하고 재분배와 노동권익 보호에 더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계급협조적이고 민족주의 독재에 가까웠던 정통바트주의 및 후세인주의와 달리, 신바트주의는 더욱 극좌로 분류되는 편이며[5] 서구 사회주의와 마오주의에 영향받아 계급투쟁적 요소를 일부 수용하였고, 외교적으로도 친소[6], 친중적 노선을 걸었다. 다만 변형된 아사드주의는 원본 신바트주의와 달리 혁명적 사회주의 성향을 포기하고 계급협조로 회귀했다.
시리아 내전 당시에는 시리아 반군 소속인[7] 민주사회주의 아랍 바트당이 자디드의 신바트주의를 계승했다. 이들은 알 아사드 가문이 신바트주의의 혁명적 사회주의적 이념을 북한과 비슷한 족벌주의, 세습 정치로 변질시켰다고 비판했다.
2.1.1. 아사드주의
자세한 내용은 아사드주의 문서 참고하십시오.2.2. 정통 바트주의 (이라크 바트주의)
정통 바트주의, 혹은 단순하게 바트주의는 미셸 아프리크가 창시한 좌익 이념이다. 원래는 시리아에서 1963년 시리아 바트주의 쿠데타로 바트당이 먼저 집권했기에, 바트주의 시리아의 이념이었지만, 1966년 시리아 신바트주의 쿠데타 이후 바트당이 둘로 갈라져서 아프리크 등의 정통 바트주의자들은 이라크로 망명하게 된다. 그 후 1968년 이라크 바트주의 쿠데타로 성립된 바트주의 이라크에서 지도적인 이념이 된다. 다만 1979년 이라크 바트당 숙청 이후 변형된 후세인주의는 크게 우경화되었다.2.2.1. 후세인주의
자세한 내용은 후세인주의 문서 참고하십시오.3. 나세르주의와 차이
나세르주의와 바트주의는 아랍 사회주의의 하위 이념으로 볼 수 있다. 사실상 아랍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양대 이념이다.사실 나세르주의는 안와르 사다트가 나세르가 사망한 후 집권당인 아랍사회주의연합에서 사회주의를 싹 빼버리고 중도 친미 정당으로 변신시키면서 순식간에 잊혀갔고 그나마 개량판인 나세르-카다피주의만이 카다피 정권 하에서 살아남았으며 바트주의 쪽이 그나마 더 오래 살아남았으나 더욱 권위적인 성향 때문에 파시즘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바트주의가 국민 탄압과 전체주의 국가 건설에 더 앞장섰기 때문이다. 현대 나세르주의에서는 나세르의 일인 일당 독재를 레닌과 같이 '혁명 시대의 비상권력'으로 설명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하곤 한다. 바트주의는 후세인 시기의 이라크와 알아사드 시기의 시리아를 보면 알 수 있다(...).
바트주의자들은 개량 계파로써 시리아-이집트 통합에 별 관심이 없는 반면 정통 나세르주의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열정적으로 두 나라의 통합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두 사상간의 사이도 상당히 나쁜편이다. 이라크 공화국 당시 카심주의자[8] 및 나세르주의자와 바트주의자들은 사이가 안좋았고, 미국은 반공 성향이 강한 바트주의 쿠데타를 도와주었다. 시리아에서는 시리아 내전 당시에 반군 일부가 나세르주의, 신바트주의(아사드주의가 아닌) 성향을 가졌다.
4. 주요 사건
1963년 시리아 바트주의 쿠데타1966년 시리아 신바트주의 쿠데타
1970년 시리아 수정운동(아사드주의 쿠데타)
1963년 이라크 바트주의 쿠데타
1968년 이라크 바트주의 쿠데타
1979년 이라크 바트당 숙청
2003년 이라크 바트주의 정권 붕괴
2024년 시리아 바트주의 정권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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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자즈 왕국 국기에서 녹색과 백색의 위치만 바꾸면 똑같다. 또한 팔레스타인의 국기와도 매우 비슷한데, 팔레스타인 국기와 차이점이라면 국기의 규격이 서로 다르고 팔레스타인은 국기의 녹색 부분이 더 밝다.[2] ث가 /θ/ 발음을 내는 문자이기 때문에 원어 발음은 '바스' 내지 '바아스'에 가깝지만 국립국어원에서 아랍어의 한글 표기에 대해 규정한 바가 없는 관계로 로마자 표기를 오독한 바트가 표준으로 지정되었다.[3] 군주제를 부정한다는 고전적인 의미에 더 가깝다.[4] 단 아사드주의로 변질되기 전의 신바트주의는 마르크스주의에 동조적이다.[5] 신바트주의 쿠데타 당시 주요인물이 알라위파 소속이었다. 그 뒤 아사드 가문 역시 소수종파인 알라위파 집안이었다.[6] 아사드주의 역시 매우 강력한 친러 성향을 보였다.[7] 다만 이슬람주의가 주류인 반군 사이에서는 무시당했다.[8] 나세르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았고, 용공성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