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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歸納法 | Induction추리/추론/논증의 방법 가운데 하나. 통칭 귀납법, 귀납 추론이라고도 한다. 연역논증과 함께 논리학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흔히 '구체적 사실로부터 보편적 사실을 추론해내는 방식'이라고 일컬어진다.
2. 설명
- 귀납법: 동일한 현상을 보이는 개별 요소들의 공통점을 통해 하나의 대전제를 이끌어낸다.
- 연역법: 하나의 대전제를 세운 후 관찰을 통해 알맞는 개별 요소에 적용한다.
우선 '대전제'란 어떤 속성(집단)에 대한 일반적인 현상을 의미한다. 가령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가 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 속성(집단)에 해당하고, '반드시 죽는다'가 일반적인 현상에 해당한다.
귀납법은 동일한 현상을 보이는 여러 개별 요소에서 공통적인 속성을 찾아낸 후, 해당 속성 자체가 그 현상을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는 논증 방식이다. 가령 "영철이는 나이 먹고 죽었다(동일 현상). 영희도 나이 먹고 죽었다(동일 현상). 철수도 나이 먹고 죽었다(동일 현상). 그들은 모두 사람이다(공통적인 속성). 그러니 모든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죽는다(해당 속성 자체가 개별 요소의 현상을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결론)."라는 식이 바로 귀납법이다.
사학에서는 귀납법 논증을 확률적 설명이라고 간주한다. 실질적으로 참이라는 증거들을 모아도, 이것들을 한데 묶는(개연성) 대전제(속성)가 정말 맞는지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철수가 암에 걸렸다(개별 요소). 영희도 암에 걸렸다(개별 요소). 영철이도 암에 걸렸다(개별 요소). 그들 셋은 모두 사람이다(공통적인 속성 확인). 그러니 세상 모든 사람은 반드시 암에 걸릴 것이다."라고 속성에 대한 일반적인 현상을 확정지으면, 그게 100퍼센트 맞는 결론이 될까?
애초에 귀납법은 속성을 고르는 것자체가 복불복이기에 확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가령 "철수는 전교 1등이다. 영희도 전교 1등이다. 영철이도 전교 1등이다."라는 공통 현상을 보이는 개별 요소들이 있다고 해보자. 이들의 속성은 '사람'일 수도, 같은 학원을 다닌 것일 수도, 같은 아이큐를 지닌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추리(개연성을 판단)를 하는 사람의 편향에 따라 선택한 속성(집단)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칠면조 역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대충 각색하자면 다음과 같다: 찰스가 1월 1일에 칠면조에 먹이를 주었다. 1월 2일에 먹이를 주었다...(중략)...12월 23일에도 먹이를 주었다. 12월 24일에도 먹이를 주었다. 그러니 찰스는 앞으로도 계속 칠면조에 매일 먹이를 줄 것이다, 라고 사람들이 추측했다. 귀납법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 기념일을 맞이해서 찰스가 먹이를 주지 않고 되려 칠면조를 먹었다. 즉 귀납법을 통한 결론이 틀린 것이다.
그래서 연역법처럼 보이는 논증도 '확률성'을 내포한다면 귀납법의 다른 형식이라 간주한다. 가령 "똑똑한 사람은 대체로 수학을 잘한다. 영철이는 똑똑하다. 그러니 영철이는 수학을 잘할 것이다."는 연역법처럼 보이지만 귀납법으로 분류된다. 왜냐하면 처음 제시한 전제 자체가 '대체로'라는 말을 통해 '확률'을 내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귀납논증은 '영원한 진리를 찾기 힘들다'는 이유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논리학에서 배제되었다.. 하지만 프랜시스 베이컨에 의해 논리학의 한 범주로써 인정받게 되었다. 현실에서는 실질적인 증거를 모아 전체성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빈번하기 때문에 학문에서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의 경험으로서의 과학 분야에서 거의 대부분 쓰이는 추론 방식이 되었다. 특히 통계학은 귀납추론을 세련된 방식으로 다루고 탐구하기 위한 별도의 학문이다. 여러 사례를 모아 통계를 내서, 왜 이런 현상이 나온 것인지 추측하니, 귀납법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대로 수학과 형식논리학에서는 함부로 사용했다간 피 볼 수 있는 논증법이다. 실제로 거의 쓰일 일이 없으며, 수학적 귀납법 역시 실제로는 연역논증이다.[1][2]
같은 귀납논증의 결과물이라도 설득력이 높은 정도에 따라 귀납적 강도가 다르다. 귀납적 강도는 1)사례가 많거나, 2)반례가 적거나, 3)일반화가 용이할때 강해지는데 귀납적 강도가 높을수록 신뢰할 만 하다.[3]
연역논증과 반대되는 개념이기는 하나, 맨 처음의 연역논증의 참된 전제는 귀납논증에서 전제되기 때문에 연관이 있다. 왜냐하면 귀납법과 연역법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귀납법은 새로운 전제를 내세울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을 확충할 수 있는 반면, 연역법은 이미 존재하는 전제를 확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의 확충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학자들은 귀납법으로 가설을 만든 후, 연역법을 통해 참인지 검증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때문에 현대의 연역논증은 모두 근원적으로는 귀납에서 유추된 전제에서 시작된다는 한계가 있다.
참고로 귀납법은 '징크스'를 믿는 사람들에게 흔히 보이는 논리 구조이기도 한다. "내가 이 일을 망쳤다. 내가 저 일을 망쳤다. 내가 그 일을 망쳤다. 나는 그때마다 직전에 꼭 물을 마신 듯하다. 나는 일을 하기 전에 물을 마시면 항상 실패할 것이다."라는 식이다.
3. 방법
열거적 귀납법의 틀:
* 전제1: x1는 φ다
* e.g. 2021년 1월 1일에 동쪽에서 해가 떴다.
* 전제2: x2는 φ다
* e.g. 2021년 1월 2일에 동쪽에서 해가 떴다.
* 전제3: x3는 φ다
* e.g. 2021년 1월 3일에 동쪽에서 해가 떴다.
......
* 결론: 따라서 모든 xn은 φ다
* e.g. 해는 매일 동쪽에서 뜬다.
좁은 의미에서 '귀납추론'은 위와 같은 방식을 따르는 추론, 요컨대 열거적 귀납법(enumerative induction)만을 가리킨다. 즉 논증의 결론이 구체적 사실을 관찰하기에 앞서서 미리 제시되지 않는다. 아이작 뉴턴이 프린키피아에서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Hypotheses non fingo)"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가설은 관찰들로부터 추론되지 않는 명제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가설과는 사뭇 다르다.* 전제1: x1는 φ다
* e.g. 2021년 1월 1일에 동쪽에서 해가 떴다.
* 전제2: x2는 φ다
* e.g. 2021년 1월 2일에 동쪽에서 해가 떴다.
* 전제3: x3는 φ다
* e.g. 2021년 1월 3일에 동쪽에서 해가 떴다.
......
* 결론: 따라서 모든 xn은 φ다
* e.g. 해는 매일 동쪽에서 뜬다.
하지만 위와 같은 틀은 너무 이상적이어서 실제 과학 활동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학적 방법에 응용하기는 어려워보인다. 당장 뉴턴의 운동법칙이 입증된 과정조차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틀에 의거해 설명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4] 따라서 가설-연역적(hypothetico-deductive) 모형 또한 대부분 넓은 의미의 귀납 추론에 포함시킨다.
4. 한계: 반례
칠면조가 한 마리 있다. 주인이 매일 먹이를 가져다준다. 먹이를 줄 때마다 '친구'인 인간이라는 종이 순전히 '나를 위해서'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이 삶의 보편적 규칙이라는 칠면조의 믿음은 확고해진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을 앞둔 어느 수요일 오후, 예기치 않은 일이 칠면조에게 닥친다. 칠면조는 믿음의 수정을 강요받는다. 칠면조는 어제까지의 사건들에서 내일 있을 사건을 알아낼 수 있는가? 아마도 상당히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을 테지만, 아무튼 그것은 칠면조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적다. 그리고 이 '적은' 것이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귀납논증의 한계는 단 하나의 반례만으로도 논증이 통째로 오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상단에 언급된 인용 초반부의 칠면조 언급은 버트런드 러셀이 저서 철학의 문제들에서 귀납법을 비판한 이른바 '러셀의 칠면조'[5]이고, 위 인용문은 흑조 이론의 내용이다.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칠면조에게 주인이 선의로 먹이를 준다고 믿게 하는 것에는 수많은 반복이 필요하고 고니가 모두 하얀 백조라는 것을 증명하는데도 수많은 고니가 필요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것에는 단 한번의 배신이나 단 한마리의 검은 고니로 충분하다. 예를 들어 거듭제곱 연산에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23=8≠9=32이면 충분하다.
대부분의 귀납은 모든 경우에 대한 데이터[6]를 얻을 수 없으므로, 곧 결론의 확실성이 결코 보장될 수 없다. 논리적 오류/비형식적 오류 문서로.
"이론상으로 잘못된 건 없지만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있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브라질 축구 대표팀을 꺾는다거나 미스코리아가 붕어빵 장수와 결혼한다거나...... 어지간해선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모를까......"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中
이 영화는 1998년에 개봉했는데 이 때 브라질은 94년 월드컵에서 우승, 98년 월드컵에서는 준우승한 피파랭킹 1위의 축구 최강국이었고, 한국은 아직 월드컵에서 1승도 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지금 시점에도 일어날 확률이 적어보이는데 그 때는 더더욱 희박한 확률로 보였다.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中
그러나 흥미롭게도 다음해인 1999년, 비록 월드컵이 아닌 평가전이지만 김도훈의 골로 한국 대표팀이 브라질 대표팀을 꺾고 1:0 승리를 거두었다.[7] 월드컵에서 처음 만난 건 2022년 월드컵 16강이었다. 예상대로 한국이 1:4로 패배했지만 비슷한 사례로 귀납논증을 해 보면 나중에라도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 2010년 슬로바키아 3 : 2 이탈리아
- 2018년 대한민국 2 : 0 독일 - 카잔의 기적[8]
- 2022년
5. 가치
귀납법은 불가피하다. 귀납법이 제거된다면 사실상 세상에서 어떠한 전제도 끌어낼 수 없고, 곧 지식과 정보, 사실이라는 개념 자체의 무가치화에 이르게 된다. 오류가 있을 확률을 감수하면서 집단의 원소를 모두 다 조사할 필요없이 일부만 조사해도, 그 집단의 성질을 '추론'할 수 있고, 이것이 곧 지식이자 정보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생수를 마시고 안전했다고 한들 마실 생수도 안전하다는 보장은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생수를 마시지 않고 죽을 수는 없다.또한 연역으로 명제를 얻기 위해선 그 명제의 기반이 되는 참인 명제가 필요한데, 이를 공급해주는 수단이 바로 귀납법이다.[9] 또한 정확하게 연역적인 추론을 해낼 수 없더라도 어느 정도 사용가능한 명제를 만들어내는 수단 또한 귀납법이다. 과학이란 학문 자체가 귀납법에 의해서 발전해 왔는데, 뉴턴의 운동 3법칙(관성의 법칙, F=ma,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나 중력과 전자기력의 공식, 에너지 보존법칙 등 물리학의 근간이 되는 수많은 법칙들이 귀납에서 비롯한 명제들이며, 화학의 기초를 이루는 원자론, 일정 성분비의 법칙, 기체반응의 법칙 등 또한 발견 당시에는 연역적인 추론이 불가능했지만 귀납적으로 얻어내 유용하게 쓰였던 명제이다. 귀납적으로 얻어낸 명제는 항상 거짓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리하여 이전에 진리로 받아들여졌던 명제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반례가 등장하는 일들이 많고, 그때마다 과학은 그 반론을 극복하고 새로운 명제를 만들어 내면서 발전해 왔다.
칼 포퍼의 반증주의는 귀납법이 아니다. 포퍼는 과학의 방법이 연역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경험적 검증을 귀납이 아니라 연역적 실험이라고 부를 정도.
귀납법은 생물 뉴런의 학습 원리와 닮아있다. 귀납적 비약의 유무에 따라 완전귀납과 불완전귀납으로 나뉘기도 한다.
사실 귀납법에서 귀납법의 반례로 언급한 흑조이론의 진정한 공포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흑조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흑조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수많은 이론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연역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리고 막상 흑조가 등장하자 왜 흑조가 등장하는 것이 필연적이었는지에 대한 수많은 이론들이 등장했다. 이것도 연역법에 근거한 것들이었다.
6. 귀납의 문제
데이비드 흄은 저서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에서 귀류법을 사용해 (수학이나 논리학 등을 제외한) "사실 문제", 즉 인과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과학적 지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귀납논증의 정당성을 옹호하려는 유력한 논증이 사실은 순환논증이라는 점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전제: 수학이나 논리학을 제외한 "사실 문제"를 아는 것은 귀납 논증에 의존한다.
* 가설: 귀납 논증은 정당한 추론 방식이다
* 가설에 대한 논거1: 귀납 논증은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항상 잘 통했기 때문이다.
* 논거1에 대한 논거2: 미래는 과거와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논거2는 수학이나 논리학 명제가 아니므로 "사실 문제"다.
* 전제에 의하여 논거2는 귀납논증에 의존하며, 곧 논거2가 정당하기 위해선 가설이 옳아야 한다.
* 하지만 현시점에서 가설에 의존하는 것은 순환논증이므로, 곧 논거2는 정당한 논거가 될 수 없으며, 곧 논거1 또한 정당한 논거가 될 수 없다.
* 가설에 대하여 논거1을 제외한 별도의 마땅한 논거는 없는 것 같다.
* 결론: 따라서 가설은 비합리적이다.
이와 같이 모든 귀납논증은 '세계가 규칙적으로 작동한다'라는 대전제에 의존하는데, 이를 자연의 균일성 원리(uniformity principle of nature)라고 한다. 그런데 자연의 균일성 원리는 선험적 법칙이 아니므로 수학이나 논리학처럼 이론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자연의 균일성 원리가 경험적 진리라면 이를 귀납적으로 정당화할 수밖에 없는데 귀납은 다시 자연의 균일성 원리에 의존하므로 순환논법에 빠지고 만다.* 가설: 귀납 논증은 정당한 추론 방식이다
* 가설에 대한 논거1: 귀납 논증은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항상 잘 통했기 때문이다.
* 논거1에 대한 논거2: 미래는 과거와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논거2는 수학이나 논리학 명제가 아니므로 "사실 문제"다.
* 전제에 의하여 논거2는 귀납논증에 의존하며, 곧 논거2가 정당하기 위해선 가설이 옳아야 한다.
* 하지만 현시점에서 가설에 의존하는 것은 순환논증이므로, 곧 논거2는 정당한 논거가 될 수 없으며, 곧 논거1 또한 정당한 논거가 될 수 없다.
* 가설에 대하여 논거1을 제외한 별도의 마땅한 논거는 없는 것 같다.
* 결론: 따라서 가설은 비합리적이다.
간단히 말해 귀납 논증이 정당하다는 근거는 지금까지 잘 맞았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잘 맞았으니 이번에도 맞을 것이라는 것은 귀납 논증이다. 즉, 귀납논증 그 자체가 귀납논증에 의존한다.
물론 귀납추론이 없다면 과학 같은 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으니 흄은 여전히 귀납추론을 쓸 수 있다고, 오히려 써야만 한다고 한다.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논증은 여전히 귀납추론에 대한 합리적 근거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양 철학사에서 등장한 것이 절대적인 진리, 즉 신이다. 신은 그 자체 원인이자 결과이므로 이러한 논변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신학자 혹은 철학자들조차 신이 신을 참조하는 순환 논리를 사실상 해결하지 못했고, 아래 문단에 언급되듯 절대적인 진리라는 개념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6.1. 서양철학사에서 귀납의 문제
서양철학사에서 귀납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를 기점으로 소위 "절대적 진리"에 도달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몰락했기 때문이다.플라톤과 같이 "이성"을 통하여 진리를 밝힐 수 있을 거라는 신념은 서양사에서 2천년을 유지되어 왔다. 우주는 수로 쓰여졌다는 피타고라스나 수는 신의 언어라는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모두 이성과 절대적 진리에 대한 '맹목적'이란 표현이 과장이 아닌 수준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흄 이전에도 가깝게는 데카르트, 멀게는 중세 프랑스 유명론에서도 거의 같은 문제의식으로 등장했었다. 다만 흄 이전의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기독교 신이 보증해주신다." 또는 "신이 우리를 속일 이유가 없다."는 논리로 빠져나가버렸었다.
데이비드 흄의 시기 귀족 지식인 층에서는 전통 신앙에서 벗어나려는 추세가 존재했다. 이는 기독교 신 대신에 뉴턴의 과학적 방법론과 실증주의를 신봉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귀납의 문제'가 나타나자 계몽주의자들의 과학에 대한 믿음도 근거가 없다는게 밝혀진다. 따라서 불가지론, 즉 인간의 감각적 경험만(과학적 관찰이나 시험 데이터)을 통해서는 절대로 자연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경지에 도달 할 수 없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문제는 이것을 당시의 서양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흄 본인이야 "진리따위 모르면 어때?" 라는 주장을 펼쳤지만 그에 반박하려는 학자들도 존재했다. 흄과 거의 동시대 사람인 칸트는 선험적 종합 판단의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이후에 셸링에 의해서 지적 직관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그래도 인류가 점진적으로 진리의 근사치를 찾으며 발전하고 있다 주장하며 한동안 이어졌다.
반면 프리드리히 니체는 지적 직관이니, 선험적 종합 판단이니 모두 헛소리라고 단언한다. 온갖 철학 용어와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감추고 있지만 그 본뜻은 "내가 딱 보면 안다."라는 교조적인 주장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니체는 절대적 진리는 소위 '이성적 인간'의 바람이 만든 미신에 불과하다고 맹비판한다. 인간은 절대적 진리를 찾는 게 아니라 그저 유용한 해석, 상상물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러 철학자들의 논쟁을 지나 귀납의 문제는 1910년대 조지 무어, 윌리엄 제임스, 버트런드 러셀 등에 의해 현대적인 형태로 정립되었다. 이들은 독일철학의 형이상학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명확하면서도 일상적인 용어의 사용을 추구했다. 한편 포퍼는 이들의 실증주의적 입장에 반대하여 과학이 경험에만 의존하는게 아니라 가설-반증이라는 더 이론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귀납의 문제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고 있으며 21세기에도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 등은 귀납의 문제를 두고 활발한 연구를 진행했다.
6.2. 귀납에 얽힌 새로운 수수께끼: 초랑(Grue) 논변
넬슨 굿먼은 흄이 제시했던 '귀납에 대한 옛 수수께끼'와 대비되는 '귀납에 대한 새로운 수수께끼(New riddle of induction)'을 제안한다.굿먼은 경험적으로 확고히 입증된 것으로 보이는 경험적 가설로 (Green)을 제안한다:굿먼은 (Green)에 대한 경쟁 가설로 볼 수 있는 가설 (Grue)를 제안한다.
(Grue) 모든 에메랄드는 초란색이다.
이때 '초란색'(Grue)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x는 초란색이다 := x는 시각 2000-01-01 00:00:00 이전에 관측됐고 초록색이거나, 2000-01-01 00:00:00 이전에 관측되지 않았으며 파란색이다.
그러면 2000-01-01 00:00:00 이전에 관측된 에메랄드가 초록색이라는 증거는 "에메랄드는 초록색이다"는 가설과 "에메랄드는 초란색이다"는 두 개의 다른 가설을 동시에 증명하게 된다. 문제는 이 두 가설은 서로 동시에 참이 될 수 없는 모순적인 가설이라는 점이다.굿먼의 Grue의 오해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grue (초란색)은 전세계 에메랄드가 2000-01-01 00:00:00 이후에는 갑자기 뿅하고 파란색으로 변한다는 말도 안 되는 가설로 생각하는 것이다. 초란색은 시간에 맞추어 색깔 자체가 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언어에 사실적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검증불가능한 의미를 담을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한 단어인 것이다. 에메랄드가 2000-01-01 00:00:00에 색깔이 초록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하는 것은 관측할 수 있고, 반증할 수 있다. "그 시간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면 어쩔 거냐"는 그냥 흄이 제기한 귀납논증의 문제이지, 굿먼이 새로 주장한 귀납논쟁의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한 즉각적인 반론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제기될법 한다.
- 보편적인 과학적 가설 혹은 법칙은 영구적인 것이므로 특정한 시점이 명기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Grue)는 버젓이 '2000-01-01 00:00:00'라는 특정 시점을 명기하고 있다.
- 만족스러운 과학적 가설 혹은 법칙은 오컴의 면도날에 따라 단순성 혹은 우아함을 띠어야 한다. 고전역학의 운동법칙들이 그 대표적 예시다. 그런데 (Grue)는 그런 면에서 처참하기 그지없다.
이에 대한 굿먼의 반론은 '특정한 시점의 명기 여부', '단순성' 및 '우아함' 등은 어디까지나 언어-상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초란색'에 이어 다음과 같이 "파록색"을 정의하자.
x는 파록색이다 := x는 시각 2000-01-01 00:00:00 이전에 관측됐고 파란색이며, 2000-01-01 00:00:00 이전에 관측되지 않았으며 초록색이다.
한국어와 거의 비슷하되 미묘하게 다른 언어인 한국어-2를 생각해보자. 한국어-2는 한국어와 모든 점에서 일치하되, 유이하게 다른 점은 '초록색'과 '파란색'이라는 두 어휘가 빠진 대신 '초란색'과 "파록색"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요컨대 한국어-2 모국어 화자는 '초록색'이라는 말만 들었을 때는 그게 뭔지를 모르며, 다음과 같이 정의를 필요로 한다.x는 초록색이다 := x는 시각 2000-01-01 00:00:00 이전에 관측됐고 초란색이며, 2000-01-01 00:00:00 이전에 관측되지 않았으며 파록색이다.
한국어-2 화자가 (Green)과 (Grue)를 비교한다고 해보자. 한국어-2 화자는 대번에 눈살을 찌푸리며 불평할 것이다: "(Green)은 말도 안되는 가설이야. '초록색'이라는 말도 안되는 어휘를 쓰잖아. 그건 '2000-01-01 00:00:00'라는 특정한 시점 표현이 들어가는데다가 오컴의 면도날을 명백히 어기잖아!"요컨대 한국어-2 화자는 '초록색'이라는 표현을 볼 때 한국어 화자가 '초란색'이라는 표현을 보는 것과 똑같이 반응할 것이며, 한국어-2 화자 또한 경험적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문제가 없는 이상 한국어-2가 한국어에 비해 잘못되었다고 볼 근거가 없다. 적어도 귀납 추론의 원리에 의거하면 말이다. 따라서 (Green) 옹호자들 또한 똑같은 반론에 직면한다.
'새로운 수수께끼'에 대한 넬슨 굿먼의 답은 '옛 수수께끼'에 대한 흄의 대답과 비슷하다. "초록"이 "초랑"보다 나은 까닭은 그냥 우리가 '초록'이라는 말을 지금까지 잘 써왔기 때문이다. 좀더 나아가자면, (Green)이 (Grue)보다 나은 까닭은 그냥 우리가 (Green)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며 이것만으로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답이 만족스러운지는 열린 문제다.
- 굿먼의 논변이 가지는 핵심적인 논점과는 좀 거리가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색이다" 라는 명제는 '확고히 입증된 것으로 보이는 경험적 가설'이 아니라 '어휘의 사전적 의미'라는 전제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연역논증이다. 왜냐하면 '에메랄드'는 '녹주석 중에서 초록색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녹주석 결정체는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질 수 있는데, 그중에서 녹색인 것만 에메랄드이고 다른 색인 것은 (하늘색인 것을 아쿠아마린이라고 부르는 등) 에메랄드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굿면의 Grue 논변의 핵심과는 동떨어진 문제이므로, 정 아니꼬우면 에메랄드 말고 우리가 경험적으로 초록색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무언가로 바꿔 생각하도록 하자.
이는 2016년 공직적격성평가 언어논리영역 문 19-20에 출제된 바 있다.
7. 기타
- 수학의 수학적 귀납법(mathematical induction), 게임이론의 전진귀납(forward induction) 및 후방귀납/역진귀납(backward induction)과 같이, 용어에 '귀납(induction)'이 들어가는 것들이 알고 보면 연역논증인 경우가 많다. 이것들은 모두 전제가 참일 때 결론이 확고한 참이기 때문이다.
- 귀납의 정의와, 논리적 한계인 귀납의 문제를 다룬 지문이 2016년 수능 국어 A형의 22번~26번에서 출제된 바 있다.
8. 관련 문서
[1] 다만 아이디어나 모티브를 얻는 경우에는 쓰인다. 십만 가지를 테스트해봤는데 들어맞으면 '아 이거는 된다'는 심증을 잡을 수 있고, 실제로 증명할 주제를 찾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직관적인 사고력이 필요하기 때문. 하지만 순수수학에선 상상도 못 할 만큼 큰 수에서 반례가 난다든지 해서 이런 심증을 다이나믹하게 뒤통수치는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대표적인 사례는 333333331 문서로. 원의 분할에서 튀어나오는 1 2 4 8 16 31도 꽤나 고전적인 예시다.[2] 귀납을 연역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 역시 수학계와 철학계에서 연구되어온 주제다. 완전히 안 다루는 것은 아니다.[3] 김용규,'설득의 논리학',웅진지식하우스,2007,p136[4] 뉴턴 본인은 일반역학의 법칙을 귀납법(소박한 귀납법, 위의 사례)으로 얻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그렇지 않다. 만유인력이 적용하는 태양계의 행성들은 완벽한 타원궤도로 돌지 않는다. 행성들 간의 중력에 의해 약간 찌그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케플러 제1법칙을 만족하지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이 되어 버린다. 이는 케플러의 법칙들로부터 만유인력의 법칙을 얻었다는 뉴턴의 주장과 상충한다. 위의 틀이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5] 정작 해당 책에서 러셀은 닭을 예시로 들었지만 어느샌가 칠면조로 변해서 퍼졌다.[6] 시간과 관련된 것이라면 미래의 경우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미래'라는 말의 정의상 불가능하다. 한편 정말로 모든 경우에 대한 데이터를 알아낸 다음에 시전되는 귀납법인 '매거적 귀납법'이란 것도 있는데, 이것은 오히려 사이비 귀납법이라고 불린다. 매거적 귀납법 문서로.[7] 브라질은 선수층이 엄청나게 두껍기 때문에 2~3군 선수였다 해도 매우 강한 건 마찬가지다.[8] 승리국이 대한민국인 데다, 패배국이 지난 월드컵 우승국에 피파랭킹 1위였다는 것까지 일치한다.[9] 아무것도 사실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어떠한 것도 얻어낼 수 없다. 사실상 귀납을 인정하지 않는 수학과 철학은 이처럼 '기반이 되는 명제'가 없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공리라는 것을 가정하고 전개된다.[10] 전통의 형성 과정은 귀납법과 유사하다. 옛날 사람들이 술을 만들 때 효모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리가 없듯이, 그 많은 전통과 철학들은 수많은 시도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 오랜 세월을 버텨 온 전통이 앞서 언급된 칠면조의 사례처럼 한 번의 큰 변화로 모순이 생겨 동시다발적으로 순식간에 붕괴되는 현상이 보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