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龐萌
(? ~ 30년)
1. 개요
전한 및, 후한 시기를 거친 양한교체기의 군벌. 연주(兗州) 산양군(山陽郡) 출신. 본래 광무제 유수의 휘하에 있었다가 반란을 일으켜 독립하였다.2. 생애
처음에는 도망자 신분으로 녹림의 한 갈래인 하강군(下江軍)에 몸을 의탁하였다. 이후 녹림군이 유연(劉縯), 유수 형제가 이끄는 한나라 부흥 세력과 결합하여 경시제 유현을 옹립하자, 유현은 방맹을 기주목(冀州牧)으로 삼고, 군대를 거느리고 상서령 사궁(謝躬)의 휘하에 들어가 함께 군벌 왕랑을 격파하게 하였다. 왕랑 세력이 멸망한 후, 유수가 경시제의 측근인 사궁을 제거하고 그 군대를 흡수하자, 방맹 또한 유수에게 귀순하여 그 휘하로 들어갔다.건무 원년(25년) 6월, 소왕 유수가 호현(鄗縣) 남쪽에서 황제로 즉위하여 후한을 세우자, 방맹은 시중(侍中)으로 임명되었다.
방맹은 사람됨이 겸손하고 온순하여 광무제 유수의 깊은 신임과 총애를 받았다. 광무제는 늘 그를 칭찬하며 말하였다.
"육 척의 고아를 맡기고, 백 리 땅의 운명을 맡길 수 있는 자는 바로 방맹이다."
이후 방맹은 평적장군(平狄將軍)에 임명되었다.건무 4년(28년) 7월, 동해(東海) 일대 군벌인 해서왕 동헌(董憲)의 장수 분휴(賁休)가 난릉(蘭陵)을 들어 후한에 항복하였다. 동헌은 이 소식을 듣고 직접 본거지인 담(郯)에서 출병하여 난릉을 포위하였다. 당시 방맹은 호아대장군 갑연과 함께 초(楚)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난릉으로 가서 분휴를 구원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광무제는 조서를 내려 명령하였다.
"곧장 담(郯)을 공격하면 난릉의 포위는 저절로 풀릴 것이다."
그러나 방맹과 갑연은 분휴가 지키는 난릉성이 위태롭다고 여겨 먼저 난릉으로 향하였다. 동헌은 이들을 맞아 싸우다가 거짓으로 패한 척하며 물러났고, 방맹과 갑연은 그 틈을 타 포위망을 돌파하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튿날 동헌이 대군을 출동시켜 성을 사방에서 포위하자, 방맹과 갑연은 두려워하여 황급히 성을 빠져나와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다. 그리고는 비로소 그리고 담성으로 향하여 공격하니, 광무제는 이들을 꾸짖으며 말하였다."내가 앞서 담(郯)을 먼저 공격하라고 한 것은 적이 예상하지 못한 틈을 노리려 했기 때문이다. 한데 이제 그대들이 달아났으니 적도 이미 대비책을 세웠을 것이다. 이러고서야 어찌 난릉의 포위를 풀 수 있겠는가!"
과연 방맹과 갑연이 담성에 도착하였으나 과연 함락시키지 못하였고, 동헌은 마침내 난릉을 함락시키고 분휴를 죽였다.건무 5년(29년) 2월, 방맹과 갑연이 동헌의 세력과 한창 싸우던 중, 조서는 갑연에게만 내려지고 방맹에게는 내려지지 않았다. 방맹은 갑연이 자신을 참소하였다고 여겨 의심을 품었으며,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 갑연의 군영을 습격해 격파한 뒤에 동헌과 연합하고, 스스로 '동평왕(東平王)'을 칭하며 도향(桃鄉) 북쪽에 주둔하였다. 광무제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방맹을 토벌하러 나서면서 여러 장수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였다.
"나는 평소 방맹을 사직(社稷)을 맡길 만한 신하로 여겼는데, 이제 장군들이 내가 했던 말을 비웃지 않겠는가? 저 늙은 역적은 마땅히 일족을 멸해야 한다. 각자 병사와 군마를 정비하여 수양(睢陽)에 집결하라!"
건무 5년(29년) 3월, 방맹은 팽성(彭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초군태수(楚郡太守) 손맹(孫萌)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자 초군의 말단 관리 유평(劉平)이 손맹의 몸 위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면서 자신이 대신 죽게 해 달라고 청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몸에 일곱 군데나 상처를 입었다. 방맹은 그의 의로움을 가상하게 여겨 손맹을 놓아주었다.
건무 5년(29년) 6월, 광무제가 친히 방맹을 토벌하러 온다는 소식을 들은 동헌은 양왕 유우, 장수 소무(蘇茂), 교강(佼彊)과 함께 하비(下邳)를 떠나 난릉으로 돌아가고, 소무와 교강을 보내 방맹을 돕게 하였다. 방맹은 이들과 병력을 합쳐 30,000명으로 도성(桃城)을 급히 포위하였다. 당시 광무제는 몽(蒙)에 행차해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치중을 남겨 둔 채 직접 경기병 3,000명과 보병 수만 명을 거느리고 밤낮으로 달려갔다. 광무제는 임성(任城)에 주둔하였는데, 도성(桃城)에서 60리 떨어진 곳이었다.
이튿날 아침, 여러 장수가 광무제에게 진군할 것을 청하였고, 방맹과 소무 등의 연합군도 병력을 정렬하여 싸움을 걸어왔다. 그러나 광무제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병사들을 쉬게 하여 적의 예리한 기세를 꺾으려 하였다. 성안에서는 광무제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굳세어졌다. 이때 대사마 오한 등이 동군(東郡)에 있었으므로 광무제는 급히 사자를 보내 이들을 불러들였다. 한편, 방맹 등은 이에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성을 공격하였으나, 20여 일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고 병사들만 지쳐 갔다. 오한과 여러 장수가 도착하자 광무제는 비로소 여러 군대를 거느리고 도성(桃城)으로 진군하였다. 광무제가 친히 전투에 나서서 싸운 끝에 방맹 등은 크게 패하여 밤을 틈타 치중을 모두 버리고 달아났다.
건무 5년(29년) 7월, 광무제가 호릉(湖陵)으로 진군하자, 동헌은 유우와 함께 수만 명의 병력을 모두 동원하여 창려(昌慮)에 주둔하고, 자신은 정예병을 거느리고 신양(新陽)에서 후한의 군대를 막아섰다. 하지만 광무제가 먼저 오한을 보내 신양에서 동헌을 격파하자, 동헌은 창려로 달아나 돌아갔다. 이어 오한이 진군하여 창려를 포위하니, 동헌은 두려워하여 오교(五校)의 잔당을 불러 모았으며, 보병과 기병 수천 명을 이끌어 창려에서 30리 떨어진 건양(建陽)에 주둔하였다.
때마침 광무제는 번(蕃)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동헌이 주둔한 곳에서 100여 리 떨어져 있었다. 여러 장수가 또다시 광무제에게 진군할 것을 청하였으나, 광무제는 동헌이 동원한 오교의 잔당이 식량이 부족하여 반드시 철수할 것임을 알고, 각 군대에 진영을 굳게 지키면서 적이 지치기를 기다리라고 명령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교의 잔당은 군량이 바닥나자 과연 철수하였다. 이에 광무제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사방에서 동헌을 공격하였으며, 사흘 만에 다시 크게 격파하니, 적군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광무제가 오한을 보내 추격하자, 교강은 자신이 거느린 무리를 이끌고 항복하였고, 소무는 또다른 군벌인 제왕 장보에게 달아났으며, 방맹은 동헌과 함께 증산(繒山)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 뒤, 관리와 병사들은 동헌이 아직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곳곳에서 모여들었다. 이들은 기병 수백 명을 모아 동헌을 맞이하여 담(郯)으로 들어갔다.
건무 5년(29년) 8월, 오한이 광무제의 명령을 받들어 담(郯)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동헌과 방맹은 다시 달아나 구(朐)를 지켰고, 오한이 곧이어 구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건무 6년(30년) 정월, 성안의 곡식이 모두 바닥나자, 방맹과 동헌은 몰래 성을 빠져나와 감유(贛榆)를 습격하여 점령하였으나, 후한의 낭야태수(琅邪太守) 진준의 공격을 받아 다시 늪지대로 달아났다. 그때 마침 오한이 구성을 함락시키고 진군하여 그들의 처자식을 모두 사로잡았다. 동헌은 눈물을 흘리며 휘하 장병들에게 사죄하였다.
"처자식이 모두 사로잡히고 말았다. 오한에게 붙잡힌 것이다. 아아! 오랫동안 그대들을 고생시켰구나."
이에 동헌은 기병 수십 기를 거느리고 밤에 떠나 샛길로 가서 항복하려 하였다. 그러나 오한의 교위 한담(韓湛)이 추격하여 방여(方與)에서 동헌을 참수하였고, 방여 사람 검릉(黔陵) 역시 방맹을 참수하였다. 이들은 두 사람의 수급을 모두 낙양(洛陽)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