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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1 10:55:50

남만

북적
(北狄)
서융
(西戎)
<nopad> 중화(中華)
중원(中原)
동이
(東夷)
남만
(南蠻)

1. 개요2. 역사3. 창작물의 남만
3.1. 삼국지3.2. 무협지
3.2.1. 매체에서의 등장
3.3.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남만무역
4.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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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만()은 직역하면 남쪽의 야만인이란 뜻이다. 중화사상에 따라 중국을 기준으로 화중, 화남 남쪽에 있던 이민족들을 부르던 이름. 사실 만()자는 원래 단순히 남쪽 이민족을 호칭하는 글자였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남쪽 이민족에 대한 나쁜 인식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에 가깝다. 즉 기원을 따지면 폄하적 의미로 지은 호칭이 아니다. 애초에 만()은 미얀마와 어원이 같은 동계어이다. 미얀마라는 국호 자체는 남만한자 과 동계어이다. 상고한어 발음으로는 므론(mron)으로 재구되는데, 이는 미얀마의 옛 발음인 므란마(မြန်မာ / mranma)와 매우 유사해서, 상나라주나라 때의 고대 한족들이 버마인의 조상격 민족과 접촉한 흔적으로 추정된다.

2. 역사

2.1. 중국사

고대에는 주로 형만(荊蠻)으로 호칭되었는데[1] 춘추시대에는 초나라(楚), 오나라(吳), 월나라(越) 등이 남만으로 취급되었다.[2]

초나라중원에 진출하면서 중국 문화권에 편입된 후 중화의 범위가 넓어지게 된 한나라 시대에는 형만이라 하면 대체적으로 무릉만(武陵蠻)을 의미하게 되고, 남만은 이민족을 의미하는 4개의 개념어가 다 그렇듯 지금의 푸젠성, 광둥성, 광시 좡족 자치구, 구이저우성, 윈난성, 베트남 북부(교주), 미얀마 동부 일대에 거주하는 이민족을 남만 또는 서남이(西南夷)로 범위가 확장되어 불리게 되었으며, 동남아시아 일대의 임읍, 부남, 사파 등의 국가도 남만으로 분류하게 되었다. 한국, 일본, 월남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 같은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16세기에 들어서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서양 세력도 남만으로 호칭하게 된다. 이는 당시 유럽 세력이 지중해 - 대서양 - 인도양 - 남중국해 등을 거쳐서 중국이나 일본에 도착했는데 중국, 일본 입장에서는 이들이 남쪽에서 올라왔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서양 물품들을 지칭할 때 남만이라는 접두사를 붙였다.

2.1.1. 제갈량집

제갈량이 저술한 제갈량집의 남만편에서 그 특성과 공략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南蠻多種,性不能敎,連合朋黨,失意則相攻,居洞依山,或聚或散。
남방의 이민족은 종족이 많고 성질이 교화하기 어려우며 서로 연합했다가 붕당을 이루며[3] 여차하면 서로 공격한다.[4][5] 동굴에 머물거나 산에 의지해 때마다 모이고 흩어진다.

西至崑崙,東至洋海,海產奇貨,故人貪而勇戰
서쪽으로는 곤륜산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큰 바다에 다다르며, 바다의 산물은 진기한 것이 많다, 고로 사람이 탐욕스럽고 용감하게 싸운다.

春夏多疾疫,利在疾戰,不可久師也
봄과 여름에 역병이 많으므로 빨리 싸우는 것이 유리하며, 오래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6]

지금과 달리 2~3세기경에는 '로마 온난기'라고 해서 당시 지구 기후가 전체적으로 더 높았기 때문에 제갈량, 맹획이 살던 시기 진짜로 독천과 밀림이 펼쳐졌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유럽프랑스, 독일까지 지중해성 기후가 이어졌다.

2.2. 한국사

한반도 정남향에 위치한 나라나 민족들을 남만으로 불렀다. 백제의 경우는 탐라 혹은 전라남도 일대를 남만이라고도 했다. 백제가 탐라 및 전남 서남부 일대를 남만으로 칭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일본서기 신공기 기록에 나타나는 "남만 침미다례"라는 표현을 근거로 삼는다. 당시 왜의 입장에서는 현 전라남도의 영산강 유역에 있던 침미다례가 북쪽이거나 최소 서쪽에 위치한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백제에서 본 방향인 '남쪽에 있는 오랑캐'라는 뜻인 남만이라는 호칭이 일본서기에 그대로 쓰여있는 것이다. 때문에 신화 시대를 제외한 일본서기의 한국사 관련 내용은 현존하지 않는 당시 백제의 사서를 기반으로 주체를 백제에서 왜로 바꾸어 다시 쓴 것이며, 위 남만 표기는 그 과정에서 '북적'이나 '서융'으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남겨놓은 일본서기 저자의 실수일 것이라는 학설이 제기된 바 있다.

여기서의 남만은 그저 방향에 따른 비하적 칭호일 뿐 백제가 딱히 탐라, 전남 일대와 스스로의 종족적 계보를 구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앞서 중국 항목의 남만과는 좀 다른 상황. 백제는 지배층이 침미다례의 주축이기도 한 토돈분구묘인과 고구려인의 연합인데, 종족적 이유를 근거로 침미다례더러 남만이라고 했다면 백제 또한 남만 종자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종족적 차이가 이유였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고려의 문인 이규보경상도를 두고 남만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상주로 가는 길에 들른 황려현(지금의 여주) 근곡촌에서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남만 억양 같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류큐 왕국, 필리핀, 자바섬, 시암조공 무역을 했는데 이 이종족들을 남만이라 부르고 선박은 남만선, 상품은 남만물산이라 하였다. 16세기 이후에는 중국, 일본처럼 마카오에서 유입된 서유럽 세력을 남만이라 칭하며 그 때 들어온 문물 앞에 남만을 붙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남만초, 남만대포.

2.3. 일본사

일본은 규슈 남부 및 오키나와 지역을 만(蠻)이라 호칭했었다. 고대 큐슈 남부지역은 하야토, 구마소, 츠치구모라고 일컫는 남방계 종족들이 야마토 왕권과 별개의 성읍국가를 구성했고, 야마토 조정에서 이들을 만이라고 비하했던 것에서 유래한다.

이후 근세 16세기에 들어서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서양 세력도 남만으로 호칭하게 된다. 포르투갈 제국마카오를 본부로 일본, 중국을 드나들어서 당시 광둥성이었던 마카오=남만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추정된다.[7] 일본은 이양선들과의 무역을 남만 무역이라 호칭하며 이들한테 들여온 물건이나 건물에 남만(南蛮)~이란 단어를 붙이는데 그 예로 남만시 (남만의 감, 토마토), 남만과 (남만과자, 카스테라), 남만사 (성당) 등이 있다. 단추로 앞을 여미는 면직 셔츠를 흔히 "남방"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남만"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유럽식 셔츠를 일본에서 "난반(南蛮)"이라고 했고, 그것이 근대에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남방"이 된 것이다.

근대 일본 제국에서는 탈아론을 신봉하는 성향이 우세했지만, 이 때에도 오히려 뿌리 깊은 국수주의적 사상으로 서양인들에게 만(蠻)이라는 멸칭을 붙여서 칭하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8] 실제로 일본 학계 내에서도 역사적으로 일본인들 사이에 알타이 콤플렉스와 같은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 정서가 생겨난 것은 19세기 어느 시점에 갑작스럽게 퍼진 것이라고 본다. 다만 그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서 아직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할 뿐이다.

서양식 요리를 접목한 일본 요리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용어를 사용한 요리로는 치킨난반이 있다. 그 외에 사극 판타지, 근대 일본 판타지 등에서 서양스러운 것, 또는 신비한 것(마법 등)을 남만식이라고 뭉뚱그려 일컫는 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3. 창작물의 남만

3.1. 삼국지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의 남만 정벌칠종칠금 에피소드삼국지연의에서 내용이 추가되면서 삼국지를 읽어 본 동양권 독자들에게는 낯설지 않는 지역으로 꼽힌다.

코에이사의 삼국지 시리즈에선 무력이 80대 중반인 돌머리들만 모여있는 세력. 사섭 일가가 이끌고 있는 교주가 나오는 시리즈가 아닌 이상 필연적으로 촉을 뚫고 나가야 하는데, 영지 운남과 건녕은 금이 많이 나지 않는 가난한 땅인데다가 영 쓸만한 인재들도 없어 상당히 어렵다. 그나마 연의 원작에서 독자적 세력으로 등장했던 타사대왕, 목록대왕, 올돌골 등이 맹획의 부하로 등장해서 망정이지... 예외로 삼국지 6, 삼국지 9, 삼국지 12, 삼국지 14에서는 남만이 맹획과 별도의 세력으로 존재하는데 병력이 무려 30만이나 되는데다 있어서 꽤나 성가시다. 또 지력이 낮은 것과는 별개로, 연의에서 목록대왕이 요술을 썼다는 점을 반영해서 웬만한 S급 무장도 가지지 못하는 레어한 요술 스킬을 달고 나오기도 한다. 자세한 건 맹획(삼국지 시리즈) 문서 참조.

토탈 워: 삼국에서는 '흉폭한 야생' 확장팩으로 맵이 이 지역까지 크게 확장되었다. 남만인들은 이 지역에서 다양한 보너스를 받는 반면 한나라 세력은 이 지역에서 이동 속도 등 각종 페널티를 받는다.

3.2. 무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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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
南蠻
파일:베트남 후에왕궁.png
베트남의 대표적인 건축물 후에왕궁
<colbgcolor=#F7B938> 소속 새외무림
중심지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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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물에서는 중원에서 한참 남쪽에 있는 새외무림으로, 남만 지역의 문파들은 주로 야수, 맹수들을 다루거나 주술이나 독을 다루는 문파로 등장한다. 공간적 배경이 거의 아마존, 아프리카 밀림 수준으로 묘사되는데, 삼국지에서 묘사된 남만의 판타스틱한 이미지가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고수들도 끔살할 수 있는 사나운 야수들과 더불어 낙엽이나 시체 등이 썩어서 만들어진 장독(瘴毒)에 의해 아지랑이처럼 독기(毒氣)가 밀림에 가득 차 있고 온갖 극독을 지닌 동식물 및 광물이 도사리고 있는 절독한 마경 지대로 묘사된다.[9] 남만의 히로인은 더워서 대체로 옷이 짧아 반쯤 헐벗은 듯한 검은 피부나 갈색 피부미녀, 미소녀.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남만의 문파는 셋이다.
특이하게도 설악전전 등 중국의 고전소설에서는 북방 유목민족들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남쪽에 위치한 한인들을 남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인 자신의 중화주의적 지리 방위 관념을 북방민족들의 관념에 그대로 같이 복사 붙여넣기했다가 벌어진 참사.[12]

3.2.1. 매체에서의 등장

3.3.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남만무역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대항해시대 온라인/남만무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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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같이보기


[1] 이 형(荊)은 '가시나무'라는 뜻으로, 楚 역시 유사한 의미였기에 통용되어 쓰였다. 형주(荊州) 역시 여기서 온 말이다.[2]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장강 문명권의 묘족, 월족이 기원이라 오랑캐 개념이 처음 나온 상나라, 주나라의 후신인 중원한족 직계 선조와는 기원부터 달랐다.[3] 혹은 연합해 붕당을 이루다가[4] 참언하자면 현대에도 대만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언어를 쓰는 대만 원주민들이 살고 있고, 중국 남부에서 어족이 다른 몽몐어족, 타이카다이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을 쓰는 종족들이 살고있다. 현대에도 어족 자체가 다른데 그 당시에야 다 같은 정체성을 지닐리는 없었다.[5] 백지원과 더불어 사이비 역사 저술가로 악명이 높은 김운회의 경우 이 기록을 옮기면서 또 그 이전 장에서는 붕당이 중국의 종특이자 중화사상에 매몰된 한국의 종특이란 식으로 운운했다. (동이 항목에서도 보면 알지만 상하가 화목하니 어려운데 이간하면 이길 수 있다 이야기를 그 자체가 이간이 잘 된다는 식으로 이해한 경우) 빠르게 통일과 중앙집권을 확립한 국가에서 여타 세력을 바라보면 당연히 비교적 분열된 모습일텐데,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말이다.[6] 원문에서 질(疾)은 병이 아닌 신속함을 의미하고, 사(師)는 스승이 아닌 군대를 말한다.[7] 포르투갈은 동방확장을 위해서 마카오를 명나라 시대부터 지배했는데, 당대에는 극동까지 세력 투사가 불가능했기에 중국 조정에 조공하며 빌리는 형식으로 수백 년 동안 이 형식을 유지했다. 즉,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매시기 임대료를 주는 식으로 수백 년 단위의 토지임대를 한 셈이다. 19세기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열강들의 반식민지가 되자 아예 집어삼켰다가 훗날 중국에게 돌려준다.[8] 실제로 일본은 한창 중화문명을 수용하던 시절에도 중국을 '서남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9] 실제 중국 역사에서 '남만'이라고 칭해지던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시아는 밀림이 많으니 현실성 없는 묘사는 아니다.[10] 또는 오독신궁(五毒神宮)/오독궁(五毒宮).[11] 남만독림(南蠻毒林)이나 만독문(萬毒門)이라 명명될 때도 있다.[12] 물론 오호십육국 시대 ‘호월지간’이라는 말로 호족-한족 관계를 일컫기도 하였고, 원나라는 남중국 일대를 만인들이 사는 땅이라 해서 ‘만지’라고 부른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