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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4 01:14:47

요기(후한)

운대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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銚期
(? ~ 34년)
1. 개요2. 생애

1. 개요

후한의 인물로, 자는 차황(次況). 예주 영천군(潁川郡) 겹현(郟縣) 사람이다. 광무제를 도운 운대 28장의 공신 중 서열 12위이다. 준수한 용모를 가졌고 키도 8척 2촌[1]에 달해 자못 위엄이 있었다.

2. 생애

아버지 요맹(銚孟)이 계양(桂陽)의 태수로 재직하던 중 사망하자 3년상을 온전히 치러 마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경시 원년(23년) 9월, 경시제 유현(劉玄)이 유수를 사예교위로 삼고 낙양으로 보내 궁궐 등을 수리하도록 하였다. 유수가 낙양으로 가기 위해 영천을 지날 때, 부성(父城)을 지키던 풍이가 유수를 영접하고 영천군의 인재를 추천하였다. 이때 요기도 천거받았는데, 유수는 요기의 지조와 효심에 관한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어 그를 등용해 적조연(賊曹掾)에 임명하였다. 요기는 그때부터 유수와 합류하여 나중에 유수가 하북 원정을 떠날 때도 풍이, 왕패, 채준 등과 함께 그를 수행하였다.

유수가 계(薊)에 머무르며 군현을 위로하던 중 유접(劉接)이 성내에서 군사를 일으켜 왕랑에게 호응했다. 유수가 수레를 타고서 성 밖으로 나가려는데, 백성들이 유수를 구경하고자 모여들어 길을 메우고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유수의 수레가 인파에 막혀 나아갈 수 없으니, 요기는 말에 올라 눈을 부릅 뜨고 창을 휘두르며 호령하자 그제서야 무리들이 놀라 흩어졌다. 유수 일행이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때, 소란을 듣고 눈치챈 유접의 군사들이 성문을 걸어 잠가 놓았다. 이에 요기는 자물쇠와 잠금장치를 힘으로 부수고 성문을 강제로 열어 일행들과 함께 성을 탈출할 수 있었다.

유수 일행은 갖은 고생 끝에 동남쪽으로 도망쳐 신도(信都)에서 신도태수 임광과 합세하였다. 유수는 신도에서 군을 재정비하면서 요기를 부관(傅寬), 여안(呂晏)과 함께 비장에 임명하고 모두 등우의 휘하에 배속시켰다. 요기는 등우를 따라 왕랑에게 항복했던 여러 현들을 병탄하고 방자현(房子縣)에 이르러 병력도 추가로 징발했다. 등우는 요기의 유능함을 보고 그를 편장군으로 승진시켜 2천 병력을 이끌도록 하였다. 동기인 부관과 여안이 아직 비장에 수백 병력밖에 이끌지 못했던 걸 감안하면 파격적인 처우였다. 등우가 돌아와 이를 보고하자 유수는 매우 기뻐하며, 요기로 하여금 별도의 부대를 거느리고 진정(眞定), 송자(宋子)를 순행하게 하였다. 유수의 명을 받은 요기는 나아가 악양(樂陽), 고(槀), 비류(肥纍)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경시 2년(24년) 3월, 유수는 경시제가 지원보낸 상서령 사궁의 군대와 합쳐 거록성(巨鹿城)을 한 달여간 공격했다. 거록성은 한단으로 통하는 문이나 마찬가지라, 거록이 떨어지는 순간 왕랑은 순식간에 고립되기에 양군에게 있어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승부였다. 거록성 북쪽에서 왕랑의 장수 아굉(兒宏)과 유봉(劉奉)이 수만 군사를 이끌고 거록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오자, 유수는 장수 등만(鄧滿)에게 거록의 포위를 맡기고 요기, 경단 등과 함께 남련(南䜌)으로 달려가 왕랑군을 요격했다. 경단이 돌기병대로 적진을 마구 헤집어놓으니, 아굉과 유봉을 패배하여 패잔병들을 데리고 달아났다. 요기는 이들을 추격하여 제일 먼저 적진에 뛰어들고는 손수 적병 50명을 베는 기염을 토했다. 이 과정에서 적군의 창이 이마를 깊게 스치는 바람에 큰 상처를 입었으나, 재빨리 두건을 찢어 상처를 싸맨 뒤 계속 싸움을 이어나갔고 마침내 적이 격파되었다. 유수가 한단을 함락시키고 왕랑을 주멸한 후 요기의 공을 높이 평가해 호아대장군에 임명하였다. 이때 요기가 유수에게 말하였다.
"하북의 땅은 국경과 접해 있어 사람마다 병사와 전투를 익히는데 이를 정용(精勇)이라 부릅니다. 지금 경시가 실정하여 한황실의 대통(大統)이 위태로우며, 나라 안으로는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명공(明公)께서 하산(河山)의 견고함에 의거하시고 정예의 무리를 거느리셔서, 만인에게 한나라(漢)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면 천하의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유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경이 그 무리를 이끌고 앞장서 주지 않겠는가?"

마침 동마적 수십만 명이 청양(淸陽), 박평(博平)을 약탈하자, 요기는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앞장서서 박평성 아래에서 동마적과 싸웠다. 그러나 동마적의 인해전술에 밀려 연전연패하였고, 궁지에 몰린 요기는 일부로 배수진을 쳐 장병들에게 필사의 각오로 동마적과 맞서게 했다. 당연히 이러한 요기의 배수진 작전은 전혀 통하지 않아 되레 사상자만 속출하였다. 보다못한 유수가 직접 나와 동마적을 격파해 요기를 구원하였다. 유수는 요기, 경엄 등과 함께 승세를 몰아 도망치는 동마적을 관도(館陶)에서 따라잡아 다시 한번 격파하였다. 그때 고호거(高湖渠)와 중련거(重連渠)가 동쪽으로 내려와 동마적을 구원하려 하였다. 금세 힘을 되찾은 동마적은 포양산(蒲陽山)에 모여 유수군과 결전을 준비했다. 유수가 친히 요기, 경엄 등 제장들을 능숙하게 지휘해 적을 전멸시켰고, 동마적은 모두 항복하여 유수 세력에 흡수되었다.

청독(靑犢), 적미(赤眉), 대동(大彤) 등 10만여 명의 도적떼가 사견(射犬)에 주둔해 인근 지역을 약탈하였다. 이에 유수도 출병하여 사견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제일 먼저 유수군을 발견한 청독적이 달려가 군영의 치중과 군수품들을 마구 약탈하였다. 요기는 즉시 사람을 보내 유수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말에 올라 자신의 부대와 함께 적들을 향해 돌격하였다. 요기는 이번에도 무쌍을 찍으며 손수 적병 수십 명을 베었고 몸에 큰 상처만 3개나 입었으나 물러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수의 원군이 도착하니, 안그래도 요기의 용맹에 기세가 꺾인 청독적은 급히 후퇴하였다. 이후 요기는 유수의 지휘 아래 사견에 있는 도적 무리를 모조리 격파했다.

건무 원년(25년) 6월, 유수가 황제에 즉위하자 안성후(安成侯)에 봉해지고 식읍 5천 호를 받았다. 광무제는 요기를 위군태수에 임명해 부임하게 하였는데, 당시 위군(魏郡)의 정세는 매우 불안정하였다. 단향적(檀鄕賊)과 오루적(五樓賊)이 번양(繁陽), 내황(內黃)을 유린했고, 위군의 호족들은 변덕이 심해 자주 반란을 일으켰다. 여기에 더해 사궁이 유수에게 살해되면서 항복했던 사궁의 부장 탁경(卓京)[2] 등이 업(鄴)에서 반란을 일으키려 들었다. 요기가 위군에 이르자 먼저 군사를 보내 탁경을 격파하고 600여 명을 참수했다. 탁경은 산으로 도망쳤지만 계속 추격하여 그를 따르던 장교 수십여 명과 처자식을 잡아 전부 처형하였다. 그리고 다시 군사를 몰아 번양, 내황으로 들어가 단향과 오루를 몰아내고 또 수백 명의 목을 베니, 마침내 위군 경계까지 깨끗이 소탕되었다.

외부의 적을 제거한 요기는 위군 내부로 눈을 돌려 강경하게 대응하던 도적들과는 달리 호족들에게는 회유책을 썼다. 한번은 업의 호족인 독도적(督盜賊) 이웅(李熊)의 동생 이륙(李陸)은 단향적과 공모하여 도적들을 위군 내로 끌어들인 죄가 있어, 혹자가 이를 요기에게 일러바쳤지만 요기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고발하는 자가 서너 명에 달하자 요기는 이웅을 소환해 자초지종을 물었다. 평소 요기의 용맹을 자주 들어 그를 두려워했던 이웅은 머리를 조아리며 노모와 함께 자신을 죽여달라 청했다. 그러자 요기가 말했다.
"관리의 무리로 지내는 것이 도적으로 지내는 것만 못하다면 노모와 함께 동생 이륙에게 가도 좋다."
그리고 이웅을 성 밖으로 내보냈다. 이웅은 이륙을 찾아가 그를 설득하고는 업성 서문으로 가 요기에게 사죄하게 하였다. 이륙은 요기의 아량을 몰라본 자신이 무척 부끄러워 자살로써 그에게 사죄하니, 요기는 애석해하며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게 하고 이웅은 원래 직책을 그대로 유지하게끔 했다. 위군 사람들은 모두 요기의 위신(威信)에 감복하였다.

건무 5년(29년), 광무제가 위군에 행차하여 요기를 태중대부에 임명했다. 요기는 광무제를 따라 수도 낙양에 들어갔고 얼마 안가 위위(衛尉)로 옮겨졌다. 요기는 장수를 지낼 때 한번도 점령지의 백성들을 약탈한 적이 없었는데, 조정에 들어가 대신이 되어서는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커 광무제에게 충성을 다해 간하였다. 일례로 광무제가 수레에 올라 가벼이 성문을 나서려고 하자 요기가 수레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간했다.
"신(臣)이 듣기로 옛 말에 변고(變故)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난다 하였으니, 부디 미미한 일로 출입을 자주하지 말아주십시오."
광무제는 요기의 간언을 듣고 수레를 돌려 궁으로 돌아갔다.

건무 10년(34년), 요기가 사망하였다. 광무제는 친히 요기를 염하는 자리에 참석하여 안성후의 인수를 하사하며 애도를 표했다. 시호는 충(忠). 광무제는 그의 아들 요단(銚丹)에게 아버지의 작위를 잇게 하였고, 요단의 동생 요통(銚統)도 불러 건평후(建平侯)에 봉했다.


[1] 본래 1척은 30cm이나 이 시기에는 순제척(舜帝尺)에 따라 1척에 약 23.5cm 정도다. 따라서 8척 2촌이면 대략 192cm라 볼 수 있다.[2] 탁원(卓原)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