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02 20:59:35

진준(후한)

운대 28장
{{{#!wiki style="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margin: 0 -10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81818,#e5e5e5
고밀후

등우
광평후

오한
교동후

가복
호치후

경엄
옹노후

구순
무양후

잠팽
양가후

풍이
격후

주우
영양후

채준
약양후

경단
안평후

갑연
안성후

요기
동광후

경순
낭릉후

장궁
양허후

마무
신후

유륭
전초후

마성
부성후

왕량
축아후

진준
참거향후

두무
곤양후

부준
합비후

견담
회양후

왕패
아릉후

임광
중수후

이충
괴리후

만수
영수후

비동
창성후

유식
산상후

왕상
고시후

이통
안풍후

두융
선덕후

탁무
}}}}}}}}}}}}}}}

후한서(後漢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권 「광무제기(光武帝紀)」 2권 「명제기(明帝紀)」 3권 「장제기(章帝紀)」
유수 유장 유달
4권 「화제상제기(和帝殤帝紀)」 5권 「안제기(安帝紀)」 6권 「순제충제질제기(順帝沖帝質帝紀)」
유조 · 유륭 유호 유보 · 유병 · 유찬
7권 「환제기(桓帝紀)」 8권 「영제기(霊帝紀)」 9권 「헌제기(獻帝紀)」
유지 유굉 유협
10권 「황후기(皇后紀)」
곽성통 · 음여화 · 명덕황후 · 장덕황후 · 효화황후 · 등수 · 염희 · 양납 · 양여영 · 등맹녀 · 두묘 · 효인황후 · 효령황후 · 영사황후 · 복수 · 조절 · 무양장공주 · 열양공주 · 관도공주 · 육양공주 · 역읍공주 · 획가장공주 · 평양공주 · 융려공주 · 평지공주 · 심수공주 · 평고공주 · 준의공주 · 무안공주 · 노양공주 · 낙평공주 · 성안공주 · 무덕장공주 · 평읍공주 · 음안공주 · 수무장공주 · 공읍공주 · 임영공주 · 문희공주 · 무양장공주 · 관군장공주 · 여양장공주 · 양안장공주 · 영음장공주 · 양적장공주 · 만년공주
※ 사마표의 속한서는 志에 해당. 후한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3><tablewidth=100%><tablebgcolor=#a11><width=50%> 11권 「유현유분자열전(劉玄劉盆子列傳)」 ||<-3><width=50%> 12권 「왕유장이팽노열전(王劉張李彭盧列傳)」 ||
유현 · 유분자 왕창 · 유영 · 방맹 · 장보 · 왕굉 · 이헌 · 팽총 · 노방
13권 「외효공손술열전(隗囂公孫述列傳)」 14권 「종실사왕삼후열전(宗室四王三侯列傳)」
외효 · 공손술 유인 · 유량 · 유지 · 유흡 · 유사 · 유순 · 유가
15권 「이왕등내열전(李王鄧來列傳)」 16권 「등구열전(鄧寇列傳)」 17권 「풍잠가열전(馮岑賈列傳)」
이통 · 왕상 · 등신 · 내흡 등우 · 구순 풍이 · 잠팽 · 가복
18권 「오갑진장전(吳蓋陳臧列傳)」 19권 「경엄열전(耿弇列傳)」 20권 「요기왕패채준열전(銚期王霸祭遵列傳)」
오한 · 갑연 · 진준 · 장궁 경엄 요기 · 왕패 · 채준
21권 「임이만비유경열전(任李萬邳劉耿列傳)」 22권 「주경왕두마유부견마열전(朱景王杜馬劉傅堅馬列傳)」
임광 · 이충 · 만수 · 비동 · 유식 · 경순 주우 · 경단 · 왕량 · 두무 · 마성 · 유륭 · 부준 · 견담 · 마무
23권 「두융열전(竇融列傳)」 24권 「마원열전(馬援列傳)」 25권 「탁노위유열전(卓魯魏劉列傳傳)」
두융 ,두헌, 마원 탁무 · 노공 · 위패 · 유관
26권 「복후송채풍조모위열전(伏侯宋蔡馮趙牟韋列傳)」 27권 「선장이왕두곽오승정조열전(宣張二王杜郭吳承鄭趙列傳)」
복담 · 후패 · 송홍,송유, · 채무 · 풍근 · 조희 · 모융 · 위표 선병 · 장담 · 왕담 · 왕량 · 두림 · 곽단 · 오량 · 승궁 · 정균 · 조전,조계,
28권 「환담풍연열전(桓譚馮衍列傳)」 29권 「신도강포영질운열전(申屠剛鮑永郅惲列傳)」 30권 「소경양후낭의양해열전(蘇竟楊厚郞顗襄楷列傳)」
환담 · 풍연 신도강 · 포영,포욱, · 질운 소경 · 양후 · 낭의 · 양해
31권 「곽두공장염왕소양가육열전(郭杜孔張廉王蘇羊賈陸列傳)」 32권 「번굉음식열전(樊宏陰識列傳)」
곽급 · 두시 · 공분 · 장감 · 염범 · 왕당 · 소장 · 양속 · 가종 · 육강 범굉 · 음식
33권 「주풍우정주열전(朱馮虞鄭周列傳)」 34권 「양통열전(梁統列傳)」 35권 「장조정열전(張曹鄭列傳)」
주부 · 풍방,풍석, ,유희, · 우연 · 정홍 · 주장 양통 장순 · 조포 · 정현
36권 「정범진가장열전(鄭范陳賈張列傳)」 37권 「환영정홍열전(桓榮丁鴻列傳)」 38권 「장법등풍탁양열전(張法滕馮度楊列傳)」
정흥 · 범승 · 진원 · 가규 · 장패 환영,환언, ,주총, · 정홍 장종 · 법웅 · 등무 · 풍곤 · 도상 · 양선
39권 「유조순우강유주조열전(劉趙淳于江劉周趙列傳)」 40권 「반표열전(班彪列傳)」
유평 · 조효 · 순우공 · 강혁 · 유반,유개, · 주반 · 조자 반표
41권 「제오종리송한열전(第五鍾離宋寒列傳)」 42권 「광무십왕열전(光武十王列傳)」
제오륜 · 종리의 · 송균 · 한랑 유강 · 유보 · 유강 · 유연 · 유언 · 유영 · 유창 · 유형 · 유형 · 유경
43권 「주악하열전(朱樂何列傳)」 44권 「등장서장호열전(鄧張徐張胡列傳)」 45권 「원장한주열전(袁張韓周列傳)」
주휘 · 악회 · 하창 등표 · 장우 · 서방 · 장민 · 호광 원안 · 장포 · 한릉 · 주영
46권 「곽진열전(郭陳列傳)」 47권 「반양열전(班梁列傳)」
곽궁 · 진총 반초 · 양근
48권 「양이적응곽원서열전(楊李翟應霍爰徐列傳)」 49권 「왕충왕부중장통열전(王充王符仲長統列傳)」
양종 · 이법 · 적포 · 응봉 · 곽서 · 원연 · 서구 왕충 · 왕부 · 중장통
50권 「명제팔왕열전(明帝八王列傳)」 51권 「이진방진교열전(李陳龐陳橋列傳)」
유건 · 유선 · 유공 · 유당 · 유연 · 유창 · 유병 · 유장 이순 · 진선 · 방참,시연, · 진귀 · 교현
52권 「최인전(崔駰傳)」 53권 「주황서강신도열전(周黃徐姜申屠列傳)」 54권 「양진열전(楊震列傳)」
최인 주섭 · 황헌 · 서섭 · 강굉 · 신도반 양진,사마포, ,마영,
55권 「장제팔왕열전(章帝八王列傳)」
유항 · 유전 · 유경 · 유수 · 유개(劉開) · 유숙 · 유만세 · 유승
56권 「장왕충진열전(張王种陳列傳)」 57권 「두난유이유사열전(杜欒劉李劉謝列傳)」 58권 「우부갑장열전(虞傅蓋臧列傳)」
장호 · 왕공 · 충고 · 진구 두근 · 난파 · 유도 · 이운 · 유유 · 사필 우후 · 부섭 · 갑훈 · 장홍
59권 「장형열전(張衡列傳)」 60권 「마융채옹열전(馬融蔡邕列傳)」 61권 「좌주황열전(左周黃傳)」
장형 마융 · 채옹 좌웅 · 주거 · 황경
62권 「순한종진열전(荀韓鍾陳列傳)」 63권 「이두열전(李杜列傳)」 64권 「오연사노조열전(吳延史盧趙列傳)」
순숙 · 한소 · 종호 · 진식 이고,이섭, ,조준, · 두교 오우 · 연독 · 사필 · 노식 · 조기
65권 「황보장단열전(皇甫張段列)」 66권 「진왕열전(陳王列傳)」
황보규 · 장환 · 단경 진번 · 왕윤
67권 「당고열전(黨錮列傳)」
유숙 · 이응,이수, · 두밀 · 유우 · 위영 · 하복 · 종자 · 파숙 · 범방 · 윤훈,윤목, · 채연 · 양척 · 장검 · 진상 · 공욱 · 원강 · 유유 · 가표 · 하옹
68권 「곽부허열전(郭符許列傳)」 69권 「두하열전(竇何列傳)」 70권 「정공순열전(鄭孔荀列傳)」
곽태 · 부융 · 허소 두무 · 하진 정태 · 공융 · 순욱
71권 「황보숭주준열전(皇甫嵩朱儁列傳)」 72권 「동탁열전(董卓列傳)」 73권 「유우공손찬도겸열전(劉虞公孫瓚陶謙列傳)」
황보숭 · 주준 동탁 유우 · 공손찬 · 도겸
74권 「원소유표열전(袁紹劉表列傳)」 75권 「유언원술여포열전(劉焉袁術呂布列傳)」
원소 ,원담 · 원상, · 유표 유언 · 원술 · 여포
76권 「순리열전(循吏列傳)」
위립 · 임연 · 왕경 · 진원 · 왕환 · 허형 · 맹상 · 제오방 · 유구,유광, · 유총 · 구람 · 동회
77권 「혹리열전(酷吏列傳)」
동선 · 번엽 · 이장 · 주우 · 황창 · 양구 · 왕길
78권 「환자열전(宦者列傳)」
정중 · 채륜 · 손정 · 조등 · 선초 · 서황 · 구원 · 좌관 · 당형 · 후람 · 조절 · 여강 · 장양 · 조충
79권 「유림열전(儒林列傳)」
유곤 · 규단 · 임안 · 양정 · 장흥 · 대빙 · 손기 · 구양흡 · 모장 · 송등 · 장순 · 윤민 · 주방 · 공희 · 양륜 · 고후 · 포함 · 위응 · 복공 · 임말 · 경란 · 설한 · 두무 · 소순 · 양인 · 조엽 · 위굉 · 동균 · 정공 · 주택 · 손감 · 종흥 · 견우 · 누망 · 정증 · 장현 · 이육 · 하휴 · 복건 · 영용 · 사해 · 허신 · 채현
80권 「문원열전(文苑列傳)」
두독 · 왕륭 · 하공 · 부의 · 황향 · 유의 · 이우 · 소순 · 유진 · 갈공 · 왕일 · 최기 · 변소 · 장승 · 조일 · 유량 · 변양 · 역염 · 후근 · 고표 · 장초 · 예형
81권 「독행열전(獨行列傳)」
초현 · 이업 · 유무 · 온서 · 팽수 · 삭로방 · 주가 · 범식 · 이선 · 왕돈 · 장무 · 육속 · 대봉 · 이충 · 무융 · 진중 · 뇌의 · 범염 · 대취 · 조포 · 상허 · 양보 · 유익 · 왕열
82권 「방술열전(方術列傳)」
임문공 · 곽헌 · 허양 · 고획 · 왕교 · 사이오 · 양유 · 이남 · 이합 · 단예 · 요부 · 절상 · 번영 · 당단 · 공사목 · 허만 · 조언 · 번지장 · 선양 · 한열 · 동부 · 곽옥 · 화타 · 서등 · 비장방 · 소자훈 · 유근 · 좌자 · 허자훈 · 해노고 · 장초 · 왕진 · 학맹절 · 유화평
83권 「일민열전(逸民列傳)」
상장 · 봉맹 · 주당 · 왕패 · 엄광 · 정단 · 양홍 · 고봉 · 대동 · 한강 · 교신 · 대량 · 법진 · 한음노보 · 진류노보 · 방공
84권 「열녀전(列女傳)」
환소군 · 조아(趙阿) · 반소 · 이목강 · 조아(曹娥) · 여영 · 마륜 · 조아(趙娥) · 순채 · 조원강 · 숙선웅 · 채염
85권 「동이열전(東夷列傳)」 86권 「남만서남이열전(南蠻西南夷列傳)」 87권 「서강전(西羌傳)」
부여국 · 읍루 · 고구려 · 북옥저 · · 남만 · 서남이 서강
88권 「서역전(西域傳)」
구미국 · 우전국 · 서야국 · 자합국 · 덕약국 · 안식국 · 대진국 · 대월지국 · 고부국 · 천축국 · 동리국 · 율과국 · 엄국 · 엄채국 · 사거국 · 소륵국 · 언기국 · 포류국 · 이지국 · 동저미국
89권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 90권 「오환선비열전(烏桓鮮卑列傳)」
남흉노 오환 · 선비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11><tablebgcolor=#a11> ||
}}}}}} ||

陳俊
(? ~ 47)
1. 개요2. 생애

1. 개요

양한교체기의 인물로, 자는 자소(子昭). 형주 남양군(南陽郡) 서악현(西鄂縣) 사람이다. 광무제의 천하통일을 도운 운대 28장 중 한명이다.

2. 생애

젊었을 적부터 군(郡)의 관리로 등용되었다. 경시제현한 정권이 들어서자 친척인 유가(劉嘉)는 태상장군에 임명되고 한중왕에 봉해졌는데, 진준은 그의 밑으로 들어가 장사(長史)가 되었다. 유수가 경시제의 명령을 받아 하북으로 향할 때, 유가는 자신의 부하인 진준과 가복을 유수에게 천거하였다. 유수는 백인(柏人)에서 그들을 맞아 진준을 안집연(安集掾)에, 가복을 파로장군에 임명하였다. 진준은 이후로 유수를 따라 하북 평정에 종군하였다.

경시 2년(24년), 유수가 동마적을 토벌할 때, 진준은 그를 따라 청양(淸陽)에서 동마적을 격파하고 포양(蒲陽)에서 동마적, 중련거, 고호거 연합군과 용맹히 싸웠다. 포양에서 도적들을 항복시키고 난 후, 유수는 진준의 공로를 치하해 강노장군으로 승진시켰다. 유수는 이어서 안차(安次)에서 오교적(五校賊)을 토벌하였다. 이때 진준은 전투 중에 말에서 내려 손에 단병(短兵)을 들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닥치는대로 적들을 베어가며 바깥에서 20여 리 안쪽까지 들어가 적장의 목을 따고 돌아오니, 멀리서 진준의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던 유수가 감탄하며 말했다.
"전투에서 싸우는 장수들이 모두 이와 같다면 어찌 근심할 수 있겠는가!"
안차에서 패배한 오교적은 북쪽으로 도망쳐 어양(漁陽)으로 들어가 지나는 곳마다 노략질하며 자신들이 쓸 군량과 마초를 모았다. 이를 본 진준이 유수에게 자신의 계책을 말했다.
"마땅히 경기병(騎兵)을 보내 적의 앞길을 막게 하고, 각지의 백성들로 하여금 보루와 성벽에 의지해 굳게 지키게 한다면 도적들은 금세 식량이 고갈되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유수는 이를 옳게 여겨, 진준에게 경기병을 이끌고 선봉에 서도록 하였다. 그리고 보루와 성벽이 있는 마을에는 명령을 내려 굳게 지키게 하고, 들에 있는 곡식들은 모두 거두어 들이도록 했다. 이윽고 취할 것이 없어진 도적들은 식량이 떨어졌고 제 풀에 지쳐 끝내는 해산하였다. 도적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진준이 경기병대와 온전히 귀환하자 유수가 그를 칭찬해 마지 않았다.
"적로(賊虜)들을 곤경에 빠뜨린 것은 모두 장군의 책략이었소."
얼마 후, 진준은 유수의 명을 받아 경엄, 오한 등 13명의 장수들과 함께 로수(潞水) 동쪽까지 남은 하북의 도적떼들을 추격하였고, 평곡(平谷)에서 두 번 전투를 벌여 1만 3천여 명을 참하였다. 그리고 도망가는 잔당들을 쫓아 무종현(無終)과 토은현(土垠)까지 추격하다가 다시 군사를 돌려 귀환하였다.

건무 원년(25년) 6월, 유수가 군신들의 추대를 받아 칭제하자 열후에 봉해졌다. 그 해 7월에는 표기대장군 경단과 함께 중산(中山)으로 진군해 그곳을 기반으로 할거하던 유무(劉茂)의 항복을 받아냈고, 광무제가 하내군으로 행차할 때 건위대장군 경엄과 함께 오사진(五社津)에 주둔하였다.

건무 2년(26년) 봄, 광적(匡賊)을 공격해 도적들이 점거하고 있던 4개의 현을 빼앗았다. 이에 광무제는 그를 신처후(新處侯)에 봉했다. 진준은 다시 군대를 거느리고 돈구(頓丘)를 공격하여 3개의 성을 함락시키니, 대사마 오한이 광무제를 대리하여 그를 강노대장군에 임명하고 하내군에서 일어난 금문적(金門賊)과 백마적(白馬賊)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진준은 이들을 모두 격파하였다.

건무 3년(27년) 4월, 오한을 따라 경시제가 임명한 양왕 유영(劉永)을 정벌하다가 수양(睢陽)에서 난이 일어났다. 오한의 군대는 광낙(廣樂)에서 유영의 장수 소무(蘇茂)와 싸우고 있었는데, 하는 수 없이 진준을 광낙(廣樂)에 남겨 소무를 상대하게 하고 자신은 호아대장군 갑연과 함께 수양을 포위하러 갔다. 오한이 수양을 함락시키고 유영이 부하의 배신으로 사망하니, 소무는 군을 거두어 물러났다.

건무 4년(28년) 4월, 광무제를 수행하여 업(鄴)으로 갔다. 광무제는 어느새 하북에서 오교적들이 다시 슬금슬금 나오는 것을 보고 오한, 진준, 왕량을 임평(臨平)으로 보내 토벌케 하였다. 진준은 별동대를 거느려 여양(汝陽)과 항(項)에서 도적들을 무찌르고 남무양(南武陽)을 평정하였다. 태산(太山)에서 제왕(齊王)을 자칭하던 장보(張步)의 세력이 점점 강성해지자, 오한이 광무제에게 장보를 진압할 인물로 진준을 추천했다. 이에 광무제는 진준을 태산태수로 삼고 대장군의 업무를 보게 하였다. 장보가 그 소식을 듣고 장수를 보내 진준을 치니, 양군은 영(嬴)에서 크게 싸웠다. 격전 끝에 진준은 대승을 거두고 제남(濟南)까지 적을 추격해 인수(印綬) 90여 개를 취했으며, 장보가 점령하고 있던 태산군의 여러 현들도 전부 병탄하였다.

건무 5년(29년), 팽총의 난이 진압된 후, 건위대장군 경엄이 군대를 이끌고 내려왔다. 진준은 경엄을 영접하고 그와 군사를 합쳐 동쪽으로 진군하였다. 진준은 경엄을 도와 힘껏 싸워, 마침내 장보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이후 낭야태수에 임명되어 부임지인 낭야와 그 주변의 도적떼를 모두 소탕하는 한편, 공유(贛楡)에서 해서왕 동헌(董憲)을 공격하고, 구적(朐賊) 손양(孫陽)도 토벌하였다.

건무 8년(32년), 항복했던 안구후 장보가 다시 난을 일으켜 낭야로 들어오려 하자 진준이 출격해 격파하고는 그를 사로잡아 참수하였다. 광무제는 진준의 공을 치하하며 청주(靑州)와 서주(徐州)를 다스리게 했다. 진준은 지방을 다스리면서 가난하고 약한 자를 도왔으며, 의로운 자를 표창하고, 군사를 엄격히 관리해 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였다. 그의 엄정한 군율 덕에 군사와 관리가 방종하여 지역에 다툼이 생기는 일은 일체 없었다. 도적들이 사라지고 군사들이 약탈하지 않으니, 서주와 청주의 백성들은 노래하며 즐거워하였다. 진준은 어느정도 동쪽이 안정되었다 생각하여 광무제에게 농(隴)과 촉(蜀) 정벌에 동참하겠노라 청했지만, 광무제는 이를 거절하며 조서를 보내 일렀다.
동주(東州)가 막 평정된 것은 대장군의 공이다. 동주가 등지고 있는 바다에는 대륙을 노리는 교활한 도적들이 출몰하는 지역으로 나라에서 매우 걱정되는 지역 중 하나이니, 그대는 방어와 백성을 달래는 것에 힘쓰도록 하라.

건무 13년(37년), 마침내 천하가 통일되었다. 광무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의 식읍을 늘려 주었다. 이때 진준은 축아후(祝阿侯)로 개봉되었다.

건무 14년(38년), 봉조청(奉朝請)을 겸하게 되었다.

건무 23년(47년), 사망하고 그의 아들 진부(陳浮)가 작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