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프룬제 군사대학 교수로 근무한 뒤 자바이칼 군관구 제57우랄소총사단장을 역임하다 1938년 7월 5일, 간첩 누명을 쓰고 자바이칼 군관구 장교들에게 체포됐다. 치타 교도소에서 잠도 못 잔 채 7일 간 고문으로 고통받았다. 트로츠키주의 지지 세력임을 자백하는 서류에 서명하도록 강요받고 총살 직전까지 갔으나 1939년 9월 초 내무인민위원부 결의안에 따라 증거 부족으로 석방됐다. 1941년 1월 다시 프룬제 군사대학 교수직으로 복직하게 됐다.
※ 문서가 있는 인물만 종전 당시 계급으로 서술 ※ 병과원수랑 병과상원수는 대장과 동급이나 의전서열상 대장과 원수 사이에 있었다 ※ 포병·기갑·통신·공병·공군 장교는 상장→대장이 아닌 상장→병과원수로 진급 ※ 윗 첨자 † : 전사 1. 반공 및 지시불이행 혐의로 총살당했으나 전후 1957년 7월 31일 무죄로 판결나면서 복권 2. 1944년 4월 20일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 전후 1953년 8월 3일 대장 계급 복권 3. 1942년 3월 17일 원수→소장으로 4계급 강등 및 1945년 7월 19일 중장→소장으로 강등 4. 1942년 7월 12일 독일군에게 생포당한 이후 나치 독일에 전향, 종전 후 체포되어 나치 부역 혐의로 사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