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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7:23:16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1. 개요2. 진실3. 분석4. 원래는 브리오슈였다?5. 다른 표현6. 유사 사례7. 진짜로 먹은 경우8. 대중매체

1. 개요

Qu'ils mangent de la brioche!(프랑스어 원문)
Let them eat cake!(흔히 알려진 영역 문장)
그들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을![1]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말했다고 잘못 알려진 유명한 망언. 즉, 실제로 한 말이 아니다.

2. 진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를 '오스트리아의 암탉'이라고 부르며 비웃고 미워하던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퍼뜨린 소문이다.

일단, 이 말 자체는 앙투아네트와는 연관 없는 다른 곳에서 등장한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시집오기 전, 그러니까 프랑스 땅을 밟기도 전에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에 등장한다.
Enfin je me rappelai le pis-aller d’une grande princesse à qui l’on disait que les paysans n’avaient pas de pain, et qui répondit : Qu’ils mangent de la brioche.
최종적으로 나는 빵이 없다는 농부들의 말에 대한 고귀한 공주의 임시 방편, ‘그들에게 브리오슈를 먹이자!’에 대해 떠올렸다.[2]
ㅡ 장 자크 루소, 참회록
이후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와전하고 악의를 덧씌우면서 이 일화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말로 바뀌었다. 그래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가리킨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장 자크 루소는 1766년 회고록을 쓰면서 1740년에 있었던 일화를 떠올린다는 식으로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슨 정치적 비판을 하려는 의도도 아니고, 술 마시려고 빵을 찾다가 문득 저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브리오슈를 안주로 술 마셨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회고록을 쓴 시점 기준으로 봐도 1755년에 태어난 마리 앙투아네트의 나이는 이 때 12살이고, 프랑스에 시집가기로 결정한 건 1770년으로 책이 나오고도 4년 뒤이다. 앙투아네트의 딸인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의 이야기에 따르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후대의 이미지와는 달리, 사생활에서 검소한 모습을 보였고 빈민들의 삶에도 신경을 썼다니 대혁명 시기에 붙은 나쁜 이미지가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현대에는 이러한 루머들이 반박된 것이 서서히 알려지면서 이 대사는 점점 지워지고 있다.

루소가 염두에 둔 '고귀한 공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친인 마리아 테레지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어차피 고증을 살린 이야기가 아니므로 누구라도 별 상관은 없지만. 루이 14세의 왕비인 마리아 테레사에게 따라다닌 오래된 루머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설도 있다. 마리아 테레사는 친정 합스부르크 가의 오랜 근친혼 탓에 다소 지능이 낮았지만 심성은 선량한 편이었는데,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에게 브리오슈라도 주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동정하는 말을 했다는 설이 있다.

정리하자면,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닌 다른 왕비 혹은 여귀족[3]이 선의로 했던 말이 악의적으로 곡해된 다음, 그 곡해된 소문이 다시 앙투아네트에게 뒤집어 씌워지는 이중 모함이 되어버린 것이다.

3. 분석

문장 자체만 보고 따졌을 때, 언어학의 관점에서 보면 제유법을 알아듣지 못해 생긴 오해이다. '빵'이라는 단어에는 '먹고 살 양식'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므로 대유법, 그 중에서도 제유법이라 할 수 있다. 좌우간 잘못된 상식이라도 워낙 유명한 말인 탓에, 종종 다른 사안들과 엮여 돌곤 한다. 특히 세상 물정 모르는 윗사람들의 탁상공론이 튀어나올 때면 빠짐없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실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간의 부르봉 왕조의 사치와 타락에 비하면 상당히 절제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시 감자가 유럽에 처음 도입된 것을 홍보하기 위하여 감자꽃을 장식으로 달고 감자심기를 홍보했으나 감자의 유익성을 파악하지 못했던 프랑스 백성은 이를 무시했다. 하지만 역사 덕후가 아닌 일반인들이 알 만한 서양 왕비는 마리 앙투아네트밖에 없다보니, 오늘날 기준으로는 그나마 선대 왕족들에 비해 검소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옷차림이 사치의 극치로 인지되고 있다.

또한, 의외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해당 발언의 진실을 아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역사 교사들이 그러한데, 비록 교과서에서 직접 언급하는 내용은 아니나, 프랑스 역사의 흐름을 설명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것이 공포정치왕정복고이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에 의한 억울한 희생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중고등학교 수준에서 방데 전쟁을 언급하진 않지만, 왜 로베스피에르장 폴 마라 같은 인물이 사형을 당하거나 암살을 당했는지를 설명하려면 대중들에게 유명한 인물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문화사에 관심이 높은 경우, 이러한 사람 중에는 프랑스 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왕족이나 귀족이 등장하는 포르노 소설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있다. 요즈음으로 치면 유명인이 등장하는 알페스 같은 것인데, 비록 가짜 뉴스이긴 하지만, 이런 콘텐츠가 저들도 우리와 똑같다는 인식을 심어 주어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역사에 대한 선악 이분법적 인식 또한 해당 오해를 아직도 이어나가게 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수업 시간에 프랑스 혁명의 명암을 배우긴 하지만, 역사 덕후가 아닌 학생들은 이런 맥락을 수업 시간에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역사의 진보를 시도했으나 실책을 저지른 후, 보수로 회귀했다가, 과거 문제점을 보완하여 온건 진보로 나아가는 역사의 변증법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혁명 세력 중에 무조건 선하고 올바른 사람만 있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 당시 가짜 뉴스가 있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4. 원래는 브리오슈였다?

프랑스어 원문인 Qu'ils mangent de la brioche 를 직역하면, '그럼 그들에게 브리오슈를 먹으라고 하세요!' 이라는 뜻이다. 철자를 잘 보자. brioche가 브리오슈다. 'Let them eat cake' 는 저 문장이 영국으로 전달되면서 브리오슈라는 단어보다는 케이크가 더 익숙하다고 생각했는지 단어를 약간 바꾼 번역이다. 가끔은 원문을 존중해서 Let them eat brioche 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한편 불어 원문이 케이크가 아닌 브리오슈라는 점 때문인지 아래와 같은 낭설이 존재한다.
앙투아네트가 어린 시절 오스트리아에서 살던 무렵에 사람들이 "빵 좀 주세요"라고 외치며 궁전 앞에 모이자 그녀가 시종들에게 "저 사람들에게 브리오슈를 주세요."라고 한 말이 퍼지고 왜곡해 저 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브리오슈(brioche)라는 것은 원래 빵집에서 빵을 구우면서 생기는 찌꺼기를 말하는 것이었는데,[4]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였을 시절에는 귀족들 사이에서 즐기는 부드럽고 달콤한 페스츄리를 브리오슈라고 부르고 있었다. 당시 왕비의 반대세력이 악의적으로 왕비가 한 말 그대로를 사람들에게 전달하자, 사람들은 '찌꺼기나 받아먹고 돌아가라'라는 말로 받아들여 분노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런 식의 말조차 한 적이 없다. 브리오슈 설도 결국은 거짓이다.

브리오슈가 빵 찌꺼기였다는 것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 사건 1세기 전인 17세기에 이미 "pâté à tarte briochée", "a pain à brioche pauvre"라는 빵에는 밀가루 1kg 당 계란 세개와 버터 250그램을 넣으라는 '요리법'이 있었다. 겨우 찌꺼기에 '만드는 방법'이 나올 리가 없다.

물론 찌꺼기도 예나 지금이나 엄연한 요리법이나 제조법 정도는 있다. 이를테면 비지 제조법과 비지를 이용한 요리법 등. 하지만 이건 식품이 풍족해져서 찌꺼기도 일부러 만들 수 있는 현대에서나 '찌꺼기 요리를 먹으려고 일부러 생산'하지, 식품이 매우 진귀했던 중세 사회에서는 '찌꺼기 요리를 먹으려고 일부러 생산'하는 때는 별로 없다. 일례로 우유는 오늘날 누구나 즐기는 음료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나라의 유일한 존귀한 존재인 임금님이 우유를 먹으려 들면 전국 유생들이 '어찌 장차 나라에 큰 일을 해줄 짐승(송아지)의 생명줄을 해하려 드십니까!'하며 항의서한을 올릴 정도였다. 실제로 중세시대까지는 권력자라도 아무거나 막 못 먹었고, 근대에서도 냉동,냉장차 보급 전까지는 비쌌다.

즉 브리오슈는 일반적인 '음식'으로, 버터와 설탕이 귀했던 당시에 반죽에 많은 버터와 설탕, 달걀을 넣어 만든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5. 다른 표현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어라'고 번역된 경우도 있다.

한국 사극에서 "밥이 없으면 떡을 먹으면 되지 않나"라는 대사로 패러디되었다 한다. 또한 다양한 막장 사극 드라마에서 왕이 "쌀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나"[5] 등의 대사가 자주 나온다. 어째 원본도 그렇고 패러디도 마찬가지로 전자보다 후자가 구하기 더 어렵다는 게 미스터리다. 그래서 그 뉘앙스가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6. 유사 사례

마리 앙투아네트는 실제로는 이런 말을 안 했지만, 역사상으로는 이것과 유사한 사례가 존재하긴 한다. 그 점이 본 대사에 신빙성을 더해준 것으로 보인다.

7. 진짜로 먹은 경우

8. 대중매체


[1] 영역 문장을 바탕으로 중역한 것. 흔히 알려져 있는 문장은 이것이나, 후술하듯 불어 원문을 번역하면 '그럼 그들에게 브리오슈를 먹으라고 하세요!'가 옳다. 위 문장은 프랑스어 접속법의 대표적인 예시다.[2] 이 전설 속에서, 그 공주가 아는 빵의 이름이라곤 오직 브리오슈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즉, 공주는 친절한 마음에 자기 빵을 농부들에게 나눠주려고 했다는 것이다.[3] 그녀가 가상의 인물이던 실존 인물이던 간에.[4] 오븐과 베이킹 팬 안에 들러붙는 밀가루 반죽, 따라서 빵 찌꺼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면 솥에 밥할 때 생기는 누룽지, 시루떡 찔 때 시루에 두르는 시룻번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빵집에서 매일 가게 문을 닫을 때 팬과 오븐에 생긴 찌꺼기를 긁어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5] 진혜제가 말한 "쌀이 없으면 고기죽을 먹으면 되지"의 패러디일 수도 있다.[6] 사마의의 증손이다.[7] '하불식육미'라고 읽는다. 직역하면 '왜 고기죽을 먹지 않는가'[8] 아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이미 프랑스 혁명 이전인 1777년에 진혜제의 일화가 기록된 역사서 중 하나인 자치통감강목의 프랑스어 번역본이 출간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9] 정확한 판단은 아니지만 현대 학계에선 사서의 내용으로 보건대 대략 경계선 지능이라고 추정한다. 유사 사례로 송도종이나 명희종 천계제도 경계선 지능이라고 추정하는 의학계나 역사학계의 연구가 있다.[10] 패관잡기에서도 사마충이 한 "어째서 고기죽을 먹지 않는 것이냐?" 라고 한 말과 같다고 되어있다.[11] 다만 조선에서 접두사 없이 그냥 고기라 하면 소고기를 뜻했으니, 소고기 없으면 개고기라도 챙겨먹으라는 뜻이다.[12] 참고로 그나마 무타구치는 식인하란 말은 안 해서 후일 희대의 식인마인 다치바나 요시오를 두들겨패던 이들 중에는 무타구치 밑에 있던 병사가 있었는데 그는 이 때 "무타구치도 식인하란 소리 안 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13] 2011 태국 홍수로 HDD 공장이 침수해 때아닌 HDD 품귀 현상이 일어났을 때 나오고 있다.[14] 그리고 이 발언은 4:3 같은 식으로 경기가 끝나면 소환된다.[15] 맨해튼 계획 시절은 2차 세계대전중이였으므로 구리 공급의 최우선은 탄피황동 생산이었다.[16] 은이 비싸서 안 쓰는 거지 전선용 재료로서의 성능은 금속 중에선 최상위로 구리보다 두 수 위이므로, 빵보다 케이크가 맛이 좋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17] 이 때 맨해튼 프로젝트 담당자와 은의 불출을 담당한 재무부 담당자의 대화라고 전해지는 것이 "은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까?"고 묻는 재무부 담당자의 질문에 "대략 1만톤 정도 필요할 겁니다"고 프로젝트 담당자가 대답하자 재무부 담당자가 "우리는 은을 톤 단위가 아니라 트로이 온스(약 31.1g) 단위로 셉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래서 정말 환산해서 다시 요청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은 이 일화가 진짜인지도 알 수 없지만 이미 세계 곳곳으로 퍼진 유명한 일화.[18] 사실 손실율은 0.036% 이하에 불과했다고 하므로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큰 손실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어쨌건 맨해튼 계획의 예산중 절반정도가 일단 저 은값이었다고 한다.[19] 티타늄은 지금도 제련과 가공이 어려운 소재이다. 20세기였으니까 당연한 결과.[20] 아예 관련이 없다고 하기는 애매한게 엘리자베트의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 1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둘 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후손이면서 합스부르크 왕가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혈연적으로는 연결되어있다.[21]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녀 출신의 프랑스 왕비이고, 엘리자베트는 독일 공녀 출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로 시집 온 황후이다. 합스부르크 왕가라는 매개체이자 공통점이 있지만 그 이외에 각자의 개인적인 연관성은 서로 없다는 것.[22] 초연 당시 풀렸던 프로필 사진에서 루케니 역 배우들의 의상과 메이크업이 진짜 고기를 탐할 듯이 영 거지꼴이었던 것도 한몫 했다.[23] 그런데 실제 인물 모리 모토나리는 어릴 때 궁핍한 생활을 했고, 게임 3편에서도 모토나리가 힘들게 생활했다는 게 언급된다.[24] 물론 밝기만 한건 아니라서 평소엔 드러내지 않을 뿐, 생전의 자신과 남편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을 처형시킨 프랑스에 대한 원망도 존재한다.[25] 사실 망언이라기보단 1절만 하고 그만하라는 투로 내뱉은 말이다.[26] 황당한 점은 저 발언을 한 심용환이 역사 전공자라는 점이다. 물론 역사는 워낙 분야가 방대하여 자기가 전공한 시대가 아니면 잘 모르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해당 루머는 앞서도 언급되었듯이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발언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방송을 내보낸 KBS2 제작진에게 있다. 본래 일선 교사들에게는 앝고(?) 넓은 지식이 요구되는 반면,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논문을 쓰는 특정 시대만 깊이 파야 하므로 의외로 저런 점은 허술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을 보완해 주는 것이 제작진의 역할이다. 그동안 숱한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KBS에서 왜 이런 오류를 못 걸려 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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