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 아우구스타(Flavia Iulia Helena Augusta, 248년 ~ 330년)소아시아 출신.[1] 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의 첫 아내이자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모후이며 그리스도교에서 공경하는 성인으로, 가톨릭의 축일은 8월 18일, 정교회의 축일은 5월 19일이다. 예수의 십자가형 당시 그가 매달렸던 성십자가와 그의 몸에 박혔던 못인 성정을 발견하였다고 전해진다.
2. 생애
270년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와의 결혼해 콘스탄티누스 1세를 낳았으나, 출신이 미천했던 탓에[2] 콘스탄티우스는 헬레나와 이혼하고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의붓딸 플라비아 막시미아나 테오도라와 결혼했다. 이후 아들이 황제로 옹립되자 그녀도 황후로 받들어졌고, 313년 기독교로 개종해 열렬한 신자가 되어 밀라노 칙령이 공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또한 기독교의 전승에 의하면 325년에는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나 예수가 못박힌 성십자가 및 예수가 부활하기 전 3일간 매장되었던 무덤을 발견했다고 한다.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꿈에서 본 환시를 통해 예수의 무덤과 성십자가의 위치에 관한 단서를 알게 되었다.[3] 발굴해보니
그녀는 성십자가와 성묘를 발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곳에 교회를 세웠는데, 이 교회가 바로 성묘 교회이다. 이 때문에 기독교의 성인으로서는 성 헬레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헬레나 등으로 불리며 지물은 십자가이고 고고학자,[5] 기독교로의 개종자, 이혼한 사람, 황후, 세인트헬레나의 수호성인이다.
성녀로 추앙받고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그녀가 큰 손자 크리스푸스와 며느리 플라비아 막시마 파우스타를 제거하여 아들 콘스탄티누스 1세와 어린 손주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크리스푸스와 파우스타를 콘스탄티누스에게 참소하여 둘 다 죽이도록 한 음모를 꾸몄을 거라고 주장한다. 장성한 후계자 크리스푸스가 불명예스럽게 죽었기 때문에 후계구도가 불안정해졌고 그 결과 그녀의 손자 콘스탄티우스 2세는 337년 콘스탄티누스 황족 학살 사건이라는 피비린내나는 가족 살해를 저지르게 된다.
3. 바티칸에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헬레나가 가져온 성십자가의 파편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며, 지물인 십자가와 함께 묘사된 그녀의 조각상도 세워져 있다. 가톨릭 전례력에서는 9월 14일을 성십자가 현양 축일로 기념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받치는 남서쪽 기둥의 벽감에 있는 성녀 헬레나의 5m 높이 성상. 벽감 윗부분과 성상 기단부에 각각 라틴어 명문이 새겨져 있다. | ||
벽감 윗부분 | PARTEM·CRVCIS·QVAM·HELENA·IMPERATRIX·E·CALVARIO·IN·VRBEM·AVEXIT VRBANVS·VIII·PONT·MAX·E·SESSORIANA·BASILICA·DESVMPTAM ADDITIS·ARA·ET·STATVA HIC·IN·VATICANO·CONDITORIO·COLLOCAVI (헬레나 황태후가 갈바리아에서 로마로 가져온 십자가의 부분을 교황 우르바노 8세가 예루살렘 성 십자가 성당에서 이곳 바티칸 성해함으로 옮겨 제대와 성상을 추가하였다.) | |
조각상 기단부 | SANCTA HELENA AVGVSTA (성녀 헬레나 황태후) |
[1] 니코메디아 시 근방의 헬레노폴리스(드레파나)라고 전해진다. 읽어 보면 알 수 있듯 콘스탄티누스가 어머니를 기념하여 원래 이름을 갈았다.[2] 선술집 딸로 추정이 된다. 하필이면 아버지 직업이 선술집 주인인 바람에 매춘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창녀의 아들이라고 폄하되기는 했지만 내전시기 활용한 기록은 없기 때문에 그냥 선술집 딸이 신빙성이 가장 높다.[3] 당시 헬레나가 예수의 성십자가 발견에 관한 꿈속 계시를 받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도 있을 정도.[4] 디스마, 제스따스[5] 일부에서는 아예 그녀를 '세계 최초의 고고학자'라고 일컫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