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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3:25:23

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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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페미니즘 기호 화이트.svg 페미니즘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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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개념적 논의3. 심리학적 연구들
3.1. 응시자3.2. 피응시자: 자기대상화의 힘3.3. 남성의 대상화
4. 긍정적 대상화의 가능성5. 유사 개념들
5.1. 비체5.2. 유도체화5.3. 비인간화5.4. 물화
6. 동물에 대한 대상화

1. 개요

/ Objectification

대상화의 정확한 의미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지만, 가능한 한 넓게 정의하자면,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를 이해하고 규정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인간성이 사라지고 사물이나 대상, 물건의 형태로 재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식론, 윤리학, 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된 개념이고, 사물화라는 단어는 때로 철학의 물신화(reification)를 의미하기도 하며, 타자화라는 단어는 '우리-그들 구분법'에서 우리가 아닌 존재로 취급함을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1] 사회학에서는 마르크스주의에서 먼저 사용되었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소외 당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여러 개념요소 중 하나로서 객관화 개념이 제시되었다. 래디컬 페미니즘에서는 이 개념을 전용하여 성애적인 형태에 국한시켜 논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대상화라고 하면 흔히 성적 대상화(sexual objectification)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철학윤리학의 단어로 시작되어 사회심리학, 임상심리학, 커뮤니케이션학 등에서 줄기차게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현대에는 인지과학이나 심지어 저 신경과학(!) 분야에까지 연구대상으로 삼기도 하는 주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들을 종합적으로 넘나들면서 전체적인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간학문적인 조망을 할 수 있는 리뷰는 쉽게 찾기 어렵다.[2] 그런 큰 그림 없이는 결국 개념의 핵심을 놓친 채로 용어의 심각한 오용을 저지르기 십상이다.

다만, 성적 대상화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성적'이 아니라 '대상화'라는 점이다. 최근 페미니즘에서의 성적 대상화 논의가 지나치게 '성적 억압'에만 매몰돼 있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의 핵심은 '대상화'와 관련된 윤리적 쟁점이 바탕이고 정작 이 지점에 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사변적 문제라며 불필요한 논의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대상화'의 개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이거나 가부장제에서의 성적 억압[3]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지 의심을 받곤 한다. 이는 각 학문 분야에서 가리키는 '대상화'의 개념이 조금씩 정의를 다르게 내리거나 심지어 타 학문의 연구결과를 오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신경과학 분야에서 '성적 대상화' 개념을 '공적 자기의식' 개념으로 오용한 사례가 있다. 일종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2. 개념적 논의

"인식론적으로 대상화를 명확하게 나타내 주는 주객관계는 주로 근대철학 중 칸트와 헤겔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칸트에게 대상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 선천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주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된다. 주체가 대상을 직관하고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4] 주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선험적인(a priori) 구성 능력이 그것을 그렇게 보이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대상이 그 대상으로 보였다는 것은 대상이 주체 '안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순수 형식에 맞게 그 대상으로 직관된 것이다(감성). 그리고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판단, 범주, 도식, 원칙들과 같은 주체 '안의'(정확하게는 순수오성의) 선험적 형식들을 통해 대상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이다(오성). 이러한 판단이[5] 가능한 것은 근원적이고 필연적으로 자리하면서 개념들, 즉 오성의 규칙들에 따른 모든 현상들의 종합을 통일하는[6] 자기 동일적 의식[7]이 시작부터 고려되어 있기 때문이다. 칸트의 인식주체는 경험하기에 앞서 선험적으로 대상을 구성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의식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에 대상을 독자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주체는 처음부터 '나는 생각한다'(I think)로 시작하기 때문에 모든 대상에 대한 통일성이나 사고가 언제가 이 표상 안에 포괄되는데, 이는 마치 인식 주체가 내 안에 나의 모든 내적 표상들을 찍어내는 틀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칸트의 주체는 '대상을 통하여'자신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무시간적이고 비역사적인 주체이다. 대상에 대한 이와 같은 주체 완성적인 관계성은 대상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나아가 세상에 대한 총체적 관점을 가능하게 만든다."[8]
"헤겔에게 대상은 의식에 속해있는 대상이라는 형식 안의 대상을 의미한다.[9] 대상을 대상이라고 말할 대 이것은 이미 의식의 대상으로 형태화되어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대상은 다름아닌 "자기의식의 외화"이다.[10] 자기 의식은 자신의 외화를 통해 스스로를 대상으로 정립하고, 다시금 이 대상을 자신과 통일시킴으로써 결국은 자기 자신으로 파악하게 되는데,[11] 이러한 주체 중심적인 의식 행위는 스스로가 타자 존재가 될 정도로 타자의 존재를 전유하는 동시에 이 모든 내용을 아는 존재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지배적인, 더 나아가 제국주의적인[12] 주객관계를 시사하고 있다. 헤겔의 일방적인 주객관계는 모든 대상에 대한 감각과 이해가 이미 전제되어 있는 절대지로 소급되는 도식을 따르게 함으로써 대상을 주체가 반성해 놓은 단순 지식으로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일방적이다. 이에 모든 대상은 절대 정신의 표상으로 놓여지고, 이것은 곧 표상의 내용이 절대정신이라는 결론으로 마침표를 찍기에 헤겔의 동일철학적 관념론은 주체가 대상에 대한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13]
"이러한 주체 중심적인 관념들을 이성의 보편 능력이라고 이해했을 때 대상은 주체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게 되고 근대성은 그런 관계를 충실히 대변해 왔다. 근대적 주객관계 속에서 대상은 지성이 없는 수동적인 존재이자 마음대로 다루어질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한다. 나아가 주체의 능력이 세계를 구성하고 질서를 구획하는 원리로 확장될 때 대상들은 그 세계가 부여한 질서를 모방하는 기계적인 사물로 퇴락하게 되고 그렇게 살아야지만 정상적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있을 수 있게 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불균형한 주체 중심성은 대상에게서 이성의 능력을 완전히 제거하여 사물화하는 데까지 나아간다."[14]
여기서 '어떤 것' 이 인간의 정신을 통한 포섭과 규정과 이해를 거치지 않은 그 자체라면, 대상은 인간의 인식구조로 포섭되고 규정되고 이해된 것으로서, 인간의 정신을 통해 질서 있게 관리되는 위치에 놓인다. 대상의 속성은 정의되고 이해되는 과정 속에서 '어떤 것' 과 다소간 달라지게 되는데,[15] 마침내 완성된 대상이 재현(represent)될 때 이것은 주체의 표상체계에 의해 왜곡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체에 대한 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의 해석을 따를 경우, 주체로서의 이해의 과정은 상호대립변증법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며,[16] 즉 '어떤 것' 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것에 반대(anti-)되는 다른 것이 요구되며, 이때 요구되는 다른 것이 바로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마누엘 칸트의 대상화 논의는 이후 페미니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칸트는 <윤리학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적인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을 욕구의 객체로 만든다. 사랑받던 사람은 그 욕구가 가시자마자 즙이 빨려 메마른 레몬이 버려지듯이 버려진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욕구의 객체가 되자마자, 도덕적 관계의 모든 동기는 그 기능을 멈춘다. 다른 이의 욕구의 객체가 된 사람은 사물이 되어, 모든 이에게 사물로 대해지고 사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칸트는 일부일처제라는 맥락을 벗어나는 성행위, 예컨대 혼전 섹스, 불륜, 성매매, 첩 제도 등에 대해 인간을 성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대할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오직 결혼만이 인격을 서로 양도하여 평등과 호혜성이 보증된 상태이기 때문에 성적 대상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17]

이렇게 시작된 대상화의 철학적 고담준론은 어느새 시몬 드 보부아르와 같은 인물들을 통해 여성학계로 넘어가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사회문제에 관련된 논의를 촉발시켰다. 요컨대,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늘 대상화의 숙명을 짊어진다는 것이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저서 《제2의 성》 에서, 여성들의 일생을 고찰해 볼 때 사춘기 이후부터 이들이 '자기 자신의 외부에 위치하게 되는' 경험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고 하였다. 이후 음란물 규제론자로 유명한 래디컬 페미니즘의 거두 앤드리아 드워킨(A.Dworkin) 역시 자신의 저서 《포르노그래피》 에서 여성을 "통나무" 에 비유하며, 굴려지는 것은 통나무의 본질이고, 굴려지기를 거부한다면 이미 그것은 통나무가 아니라는 표현을 통해서 여성들의 대상화를 비판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점차 이 대상화가 비단 남성들의 억압에 한정된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때로는 자기가 자신의 몸을 대상화하는, 자기대상화(self-objectification)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샌드라 바트키(S.L.Bartky)는 《Femininity and domination》 에서 여성들이 날씬한 몸매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소녀스럽게' 앙증맞은 몸짓을 보이려고 하며, 피부미용에 집착하는 경향을 들어서,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규율적 실천(discipline practices)을 한다고 주장했다. 얼마 못 가서 다른 유명 여성학자인 수전 보도(S.Bordo)는 《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 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여성들이 자꾸만 스스로를 못생기고 살이 쪘다고 생각하며, 섭식장애우울증, 성형수술 중독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하였다. 이 두 도서는 각각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자기대상화의 존재,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미적 기준을 고발한다는 의의로 인해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섭식장애, 우울장애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비단 현장의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사들 및 임상심리사들도 보르도의 책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대상화가 정확히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심전심에만 의지하여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18] 다수의 문헌들이 대상화의 요건들을 정리하려 시도했지만[19] 현대에 들어 가장 폭넓게 인정되고 통용되는 정의는 《혐오와 수치심》 의 저자이자 페미니스트 철학자로 유명한 마사 누스바움(M.Nussbaum)의 것이다. 누스바움은 대상화가 총 7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는데,[20]논문은 철학 분야 학술지 논문치고는 어마어마하게 인용되는 영예를 누렸다. 철학 텍스트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원체 쉬운 영어로 쓰였다는 것도 있지만...

물론 누스바움은 "용어의 느슨한 군집" 이라고 말하면서, (예컨대 모나리자 같은) 비싼 예술작품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사물임에도 불구하고 '대체 가능성' 을 충족하지 않는 등, 모든 사물들이 꼭 이 항목들을 만족하는 건 아니라고 하였다. 이런 한계가 있으므로, 위의 방식들은 그저 '많이 해당된다면 의심해 봐라' 정도이지, '7개 중 #개 이상이면 당신도 대상화의 피해자!' 같은 식으로 이해될 수 없다. 애초에 이 논문에서 굉장히 강조되는 것이 전후 맥락을 보라는 것이다. 참고로, 이 논문에서 누스바움은 앞서 각주에서 소개했던 선스타인의 논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쌍방이 잠자리에서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면서 함께 대상화되길 자처한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상화는 대부분 일방향적이고, 그것도 지속적이고 빈번한 데다 사회문화적으로 나타나잖아?"

아무튼 이 분류는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고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는 기준이 되었다. 본격 과학자들도 다들 알고 있는 철학적 분류.[21] 그러다 보니 당연히 철학계에서 개선의 노력이 이루어져서, 예컨대 어떤 논문에서는 누스바움이 7가지 방식 중에서 첫째 방식인 '도구성' 의 해악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비판하기도 했으며,[22] 한편으로 언어철학자 레이 랭턴(R.Langton)은 자신의 도서 《Sexual Solipsism》 에서 3가지 방식을 더 추가해야 한다고 요청하기도 했다(pp.228-229).[23]

3. 심리학적 연구들

심리학자들은 대상화, 특히 성적 대상화가 일단 시각에 관련된 현상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을 바라보는 (들)이 존재하고, 갑의 시선을 받게 되는 을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의 갑은 구체적으로 사람이 아닐지라도 대중매체사회화, 가정과 학교에서의 교육방식 등이 해당될 수 있으며, 때로 을은 갑이 딱히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대상화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24]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을들은 자기 자신의 신체에게 갑이 되는 자기대상화를 하기도 한다.

이제부터는 갑의 성애화된 응시(sexualized gaze)에 초점을 맞추어서, 여기서의 갑을 "응시자" 로, 그 응시의 대상이 되는 을에 대해서는 "피응시자" 로 나누어서 서로의 메커니즘을 각각 설명하기로 한다. 물론 논의를 쭉 보다 보면 대상화라는 것이 일차적으로는 시각에 관련된 것이되 '시각 그 이상' 으로 그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 가까움을 눈치챌 수 있지만, 가장 많은 이해가 축적된 주제가 바로 외모(appearance), 매력(attractiveness), 아름다움(beauty)에 관련된 것인 만큼, 시각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편이 수월할 것이다.

3.1. 응시자

많은 커뮤니케이션학자들과 사회학자들, 심리학 분야의 의사소통 이론가들은 꽤 옛날부터 남성 응시(male gaze)의 존재에 대해서 연구해 왔다. 이들은 남성이 여성을 응시하고 성애화하는 것이 서구 문화권에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으며,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주로 더 많이 보여지는 처지에 놓인다고 하였다. 특히 이런 응시에는 종종 성적인 코멘트도 따라오기 십상이라는 것이다.[25] 미국심리학회(APA)에서 2007년에 발족한 태스크 포스 팀의 보고서에서도[26] 서구 사회가 여성들의 외모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문화를 갖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PDF 이 주제를 다루는 백과사전에서도[27] 남성의 신체보다 여성의 신체가 훨씬 더 자주 파편화되고 성애화된다고 지적했다.

70-80년대에 매스커뮤니케이션 연구가 탄력을 받음에 따라, 대중매체 연구자들은 광고를 포함하여 별의별 수많은 종류의 시각매체에서 여성을 묘사할 때 여성의 몸 구석구석을 훑어 가는 카메라 워크가 존재함을 발견했다. 이는 마치 시청자들이 으레 여성의 몸을 향해 성애화된 응시를 할 것이라고 미리 전제하는 것과도 같았다.[28] 《Gender Advertisements》 라는 도서에 따르면, 1970년대 수많은 광고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클리셰로 '멍하니 공상에 빠진 여성 & 그런 여성을 지그시 바라보는 남성' 구도가 존재했었다고 한다. 여성의 몸을 훑어내려가는 남성의 시선 장면들이 대중매체에 매우 흔했다는 것.

인지과학자들에 따르면, 어느 정도는 옳고 어느 정도는 틀렸다. 인지적 대상화를 연구하는 신진 학자인 필리프 버나드(P.Bernard)에 따르면,[29] 사람들은 아주 일상적인 상황에서 대상화를 밥 먹듯이 한다. 그러니 대상화가 늘 성애화된 양상은 아니고, 남성들만 하는 것도 아닐 따름이다. 이제는 인지과학계에서 업계 표준이 되다시피 한 흔한 실험 기구인 아이트래커(eye-tracker)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과연 대다수의 남성들은 (그리고 소수의 여성들은) 유독 여성들의 얼굴보다 유방국부를 집요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으며, 특히 그 여성이 란제리 차림의 헐벗은 모습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30] 그러나 버나드는 이와 같은 성적 대상화의 효과와 인지적 대상화의 '일반적인' 효과를 구분한다. 인지적 대상화는 단순히, 사람의 신체는 사물로서 정보처리가 이루어지지만, 사람의 머리 부분이 포함되면 비로소 한 명의 '전반적인 인격체' 로서의 사람으로서 외형적 처리(configural processing)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31] 그렇다면 인지적 대상화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보처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인지적 대상화는 신경과학적인 수준의 연구에서도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특히 "사건 관련 전위"(ERP; event-related potential)에 관련된 연구가 대표적이다. 뉴런의 ERP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소위 'N170' 라는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32] 이것은 후측두엽(occipito-temporal area)에 어떤 자극이 가해진 지 170 밀리초 후에 그것을 외형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적 전위가 최고점을 기록하는 현상이다. 연구자들은 사물지각을 하는 뇌에서는 자극물을 똑바로 놓든 뒤집어 놓든 N170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까지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문제는 남녀의 헐벗은 몸에 대해서도 이 N170이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33] 반면, 하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혀놓은 남녀의 사진은 인간의 형태로 지각되었고, 뒤집지 않고 똑바로 두었을 때에만 외형적 처리를 일으켜서 N170이 나타났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이 존재한다. 첫째는,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을 자랑하는 남성의 몸이든 아니면 몸매를 뽐내는 여성의 몸이든 우리 뇌 속의 뉴런은 그것을 사물처럼 처리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N170이 위험자극이라는 점이라는 점에서[34] "남녀의 나체를 위험한 신호로 판단하지 않는 것"으로 인류는 진화했다는 것이다.

성애화된 몸이 식스팩 복근의 남성보다는 쭉쭉빵빵한 비키니 미녀로 제시될 때, 여성보다는 남성 관찰자들이 그 사진을 인간으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 지각하는 변화를 보인다. 앞서 아이트래커 사례에서처럼, 이런 맥락에서는 남성들이 더 강한 성적 대상화를 보였다. 과학자들은 각종 패션잡지남성지에서 스크랩한 헐벗은 처자들의 사진들과 우락부락한 사나이들의 사진들을 신체부위별로 잘라서 뒤섞어 보기도 하고, 흰 티셔츠를 입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진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사진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도 하면서[35] 비교해 보았지만, 여성의 헐벗은 몸은 만성적인 대상화 효과를 초래했고, 남성의 헐벗은 몸은 일시적인 대상화 효과만을 초래했다. 게다가 연구 참가자들은 여성이 헐벗을수록 그녀가 인간미도 없고 유능하지도 못하며 부도덕할 거라고 인식하는 경향까지 보였다.[36] N170은 상대방의 신원이 구체화될수록, 상대의 성별을 인지한 경우에, 감정이나 표현을 나타내는 동작일수록 보다 높게 나타난다. 사변적으로나 가능성이 제기되었던 성적 대상화가 시각적 자극의 정보처리 수준에서 실재하는 현상으로 확인된 셈이다.

바버라 프레드릭슨과 토미-안 로버츠의 분석에 따르면, 남성의 짝 선택에 있어서 여성의 신체적 매력은 재생산 가치에 대한 중요 지표이기 때문에, 남성은 여성의 신체를 면밀히 살피려는 생물학적 경향이 있다. 성적 대상화가 가부장제 하에서 만들어진 문화적 관습이라는 주장도 있다. 맥키넌, 앤드리아 드워킨 등은 여성의 신체가 대상화되는 제1원인을 포르노그래피라고 지적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에 대해서는 첨예한 대립이 있다. 캐머런이나 로널드 드워킨은 포르노가 남성들에게 대상화의 메시지를 심는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Cameron&Frazer, 2000).

이런 응시의 힘, 대상화의 힘은 그 시선을 받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사회구조적으로도 그 효과를 갖게 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연구결과도 있다.[37] 해당 연구결과에서 N170 반응은 오히려 누드 상태가 얼굴보다 더 크게 나타났다.

3.2. 피응시자: 자기대상화의 힘

앞서 소개했었던 페미니스트 수전 보도가 《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 을 저술하던 1990년대 당시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미적 기준에 부응하기 위하여 극단적으로 굶다가 어느날 잔뜩 먹고 다시 게워내고, 자신의 몸의 '군살' 들이 드러날까 봐서 남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길 괴로워하고, 성형수술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얼굴에 칼을 대고, 그러고 나서도 여기도 고쳐보고 저기도 고쳐보고 싶다는 끝없는 유혹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대상화의 표적이 된 여성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과학적 방법을 통해 그 인과성까지 구명해 낸 사례는 많지 않았다.

우선 자기대상화는 외모관리행동의 연구 결과와 관련지어 설명될 수 있다. 20-30대 여성의 외모관리행동의 동기는, 아름다움의 추구, 자신감 향상, 동조를 통한 인정의 욕구, 과시욕구, 이성의 호감 획득, 원하는 의복착용 추구, 주위의 놀림과 권유, 취직외모요건 등의 8개 차원으로 분류된다(Lee and Kho, 2006). 여성들에게 외모는 원만한 대인관계 형성과 사회적 성취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사회의 이상적인 신체미에 도달하고자 하는 동기가 자기대상화의 직접적인 요인임을 알 수 있다(Noh, 2011). 한편, 20-30대 남성 외모관리행동의 영향요인으로 성적매력/관심유도, 신분상징/사회적 지위 향상, 신체 보완, 동조성을 도출할 수 있고, 특히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들일수록 타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위하여 자기대상화에 적극적인 것임을 볼 수 있다(Shin, 2006). 또한 성별을 막론하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높은 자신감을 갖고 있었으며 실제 연령보다 젊어보이게 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38]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록, 자신을 아끼는 사람일수록 화장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39]

부정적 자기 대상화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시도는 크게 1) 생리적 원인, 2) 사회적 원인, 3) 심리적 원인,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생물학에서는 생리적 원인으로, 주류 페미니즘에서는 사회적 원인으로 자기 대상화를 설명하려 했다면,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원인 뿐만 아니라 개인의 심리적 원인도 존재함을 밝혀내고자 했다. 1997년 심리학 분야에서 상당히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지는데, 연구자들에 의해 대상화 이론(objectification theory)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이론적 조망은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가 남들에게 "보여지고 있다" 고 느낄 때[40] 어떤 심리적 결과들을 경험하게 되는지를 종합적으로 설명해 낸 최초의 프레임워크가 되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여성들은 성애화된 응시가 자신의 몸을 향하고 있다고 느낄 때, 신체 수치심(body shame)과 외모 및 신변상의 불안, 몰입(flow)의 실패, 그리고 신체내적 상태 인식의 실패를 경험한다. 이 설명은 물론 여성심리학자들의 주목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임상심리학 분야의 주목도 많이 받았다.[41]

그 이전부터 몇몇 임상적 현상들은 뚜렷한 이유 없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더 많이 발생한다고 임상심리학자들에게 여겨졌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울증, 성적 불감증, 그리고 식욕항진(bulimia)이나 거식증(anorexia nervosa)과 같은 섭식장애였다.[42] 그리고 대상화 이론은 어째서 이런 심리적 어려움을 남성보다 유독 여성들이 많이 겪는지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가능하게 했으며, 현대에도 임상심리학계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몇 안 되는 '사회적' 인 수준의 논의에 속한다.[43][44] 이 이론은 게다가 임상적 접근뿐만 아니라, 대상화의 악영향이 초기 청소년기에서 폐경을 맞는 중년 후기에 걸친다고 지적함으로써 발달심리학의 전생애적 발달 접근을 가능하게 했으며, 자기대상화가 조절효과를 갖는 특질(trait) 변인이라고 전제함으로써 성격심리학의 개인차 접근까지도 가능하게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만한 흥미로운 지점은, 사회적으로 작용하는 대상화와 개인의 자기대상화가 그 여성의 성생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아름다워지려고 애쓰는 여성일수록 섹스 중에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힘들다. 여기에는 몇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45] 1) (적어도 착의섹스가 아니라면) 이런 여성들은 섹스를 하는 동안 자신의 몸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일지, 상대방이 실망하지는 않을지 불안해하며 공포에 떨고, 자신의 '군살' 이 잡힐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섹스에 한창 열중하기도 바쁠 시간에 이렇게 주의분산이 되고 흥이 식어 버리니 오르가즘도 요원해지게 되는 것이다. 2) 여성들은 섹스 시에 주도적이고 능수능란하게 리드하기보다는 남성이 이끄는 대로 얌전하고 조신하게 따를 것이 요구된다. 그 결과, 문화적 규범에 순종적인 여성들은 '지금 어찌어찌 하면 가버릴 것 같은데...' 라고 느끼는 순간까지도 그걸 대놓고 실천에 옮기기 힘들다. 3) 맹렬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일수록 몸 속의 '배고픔 신호' 를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 심리적 수준에서 일반화(generalization)가 발생하게 되며, 나중에는 자신의 전반적인 생리적 상태에 무지하게 되어, 지금 자신이 어느 정도로 몸이 달아올랐는지조차 부정확하게 느끼게 된다.

물론 이러한 대상화의 경험은 누구나 동일하게 경험하지만, 관찰자의 관점을 내면화하는 자기 대상화의 정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동일한 대상화가 이루어져도 모든 여성에게 동일한 정신 건강의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자기대상화, 즉 "지금 내 몸이 남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라는 생각이 유독 심한 여성이 있고 유독 덜한 여성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연구자들은 극도로 자기대상화가 심한 여성들은 각종 특이한 경향들을 많이 보임을 발견했다.[46] 이들은 남들 앞에 자신의 몸을 드러내 보일 일이 생기면 즐거워하며, 어떤 연구에서는 자기대상화 척도 설문지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받은 어떤 여성 참가자들이 휴대폰으로 이리저리 셀카를 찍어서 페이스북에다 그걸 올리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개인차를 제외하더라도, 때때로 별 생각 없이 살던 여성들일지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거울 한번 더 보고, 머리 한번 더 정리하게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사회심리학자들은 상태(state)로서의 일시적인 자기대상화의 효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47]

1998년사회심리학계에서 독특한 연구 패러다임으로 화제를 모았던 논문이 있었는데,[48] 이 연구는 실험법을 본격적으로 활용하여 자기대상화가 갖는 심리적 악영향의 인과관계를 밝혀냈다. 연구자들은 실험실에 큼지막한 전신 거울을 가져다 놓은 뒤, 참가자들 중 일부(통제집단)에게는 스웨터를 시험 삼아 입어보게 하고, 다른 일부(실험집단)에게는 수영복을 입어보게 했다. 그리고 그 옷을 입은 상태로 거울 앞에 서서 연구자가 내는 수학 문제를 얼마나 잘 푸는지 살펴보았다. 속칭 "수영복 패러다임"(swimsuit paradigm)이라고 불리는 이 재밌는 실험설계는 남녀 참가자들 모두에게 이루어졌으나, 연구 결과 유독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만이 수학 문제를 줄줄이 틀리는 것이 확인되었다. 참가자들의 학업성취가 전부 엇비슷한 출신임을 고려한다면, 이 여성들의 저조한 성적은 수영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쓰고 불안해하느라 초래된 것으로 보였다. 단, 앞의 각주에서 소개했던 커할론은 자신의 리뷰에서 이 효과에는 고정관념 위협의 효과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Kahalon et al., 2018b.) 심지어 이런 경향은 생리학적 수준에서도 확인되어서, 심장 활동을 측정하는 의학 장비를 붙여놓고 똑같은 실험을 실시하자,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은 더 높은 심근계 스트레스 반응을 나타냈다.[49]

어째서 실험실에서 살짝 부여한 자기대상화조차도 여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50] 잠정적인 메커니즘은, 그것이 외모 감시(appearance monitoring) 혹은 습관적 자기감시(habitual self-surveillance)를 일시적으로 유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51] 연구자들은 "내가 지금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지?" 라는 관찰자로서의 관점을 통해 자기 자신의 신체를 바라보는 정신적 활동이 '생각하는 힘' 을 소모시켜서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그 자체로는 섭식장애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는 밥을 좀 적당히 먹어야겠어" 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외모 감시의 결과로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52] 결국 외모 감시의 결과가 많은 경우 신체 불만족(body dissatisfaction)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의 식단관리와 다이어트 의욕은 바로 이런 불만족으로 인해서 촉발된다는 것.

이러한 자기 대상화를 병리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방식은 정신 건강에서 나타나는 성차에 대해 대안적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자기 대상화'라는 개념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자기 대상화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감시, 혹은 관찰을 의미한다고 하나, 결국 '공적 자기의식'이나 '신체 불만족'과 유사한 개념이다. 자기 대상화를 유사 개념과 구분할 수 있는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반대로, 대상화 이론에서의 '대상화' 개념은 기존 철학계에서 논의하던 '대상화' 개념과는 개념적 차이가 있다.

3.3. 남성의 대상화

여기까지 여성들의 대상화 이슈를 정리했으니, 이제부터 "과연 남성들도 성적 대상화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의 질문을 던져 보기로 하자. 우선 언급해야 할 것이 있는데, 위에서 소개한 많은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문헌 속에서 "남성들을 향한 대상화의 경향이 현대사회에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논의가 될 것" 이라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53] 심지어 위에서 소개한 인지과학 분야의 연구들은 늘 성애화된 남성 사진과 성애화된 여성 사진을 한꺼번에 연구해 왔다. 일단 위에서 소개한 인지적 대상화 연구의 흐름이 말하듯, 인지적 수준에서는 남녀 모두 정보처리에 있어 차이가 없고, 아이트래커로 연구했을 때에는 남성이 더 성애화된 응시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남은 이야기는, 남성들도 자신의 신체에 여성의 응시가 쏠리게 되면 과연 여성들처럼 섭식장애, 우울증, 성형수술 의도 등을 나타낼 것인가 하는 문제겠다.

앞에서 잠깐 소개했던 그 연구, "수영복 패러다임" 으로 되돌아가자. 당시 연구자들은 여성 참가자들과 남성 참가자들에게 수영복을 입혔지만, 남성 참가자들은 수영복 바람으로도 그다지 수학 점수의 저해를 겪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연구자들은 "아마도 남성들은 자기대상화에 그다지 신경 안 쓰는 모양임" 정도로 논의를 적당히 마무리지었고, 다른 연구자들도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남성들이 경험하는 대상화에 대해서도 문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54]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 연구자였던 미키 헤블(M.R.Hebl)은 이 수영복 연구를 저격하기로 결심하고, 아예 한술 더 떴다.[55] 기존 연구에서는 남성 참가자들에게 사각 트렁크 수영복을 입혔지만, 이번에는 몸에 꼭 끼는 삼각 스피도(Speedo) 수영복을 입혀 본 것이다. 연구 결과, 이 남성들은 여성들처럼 자신의 '완연한 실루엣' 에 대해 매우 불안해한 모습을 보였고, 수학 문제도 여성들처럼 틀렸다. 다른 연구들의 경우,[56] 남성들도 대중매체 속 다른 남성의 식스팩을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고 답했으며, 자신의 몸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활동을 한 남성들은 의식적으로 밥을 덜 먹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남성들에게서도 대상화의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남녀 모두 똑같이 대상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겠다. 심리학이 대개 그렇듯이, 다수의 연구들은 혼합된(mixed) 보고를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많은 문헌들에서 남성들은 자기대상화의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과학적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57] 남성들은 자기대상화 상황에 처해도 자신에 대해 그다지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웰빙이 저하되지도 않으며, 자기대상화 직후에도 여성과 만나서 대화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려 하지 않고, 신체 감시를 남성들은 거의 괴로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런 차이는 만11-13세 정도의 어린이 내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할 때에도 나타났다. 그 중에서 한 연구는[58] 여성들은 자기대상화 상황에서 이성의 성적인 신체 부위에 대한 관심이 크게 감소했는데, 남성들은 그 와중에도 이성의 성적인 신체 부위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더라는 발견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남성들은 자신이 강조되거나 인식되지 않는 순간, 심지어 집중적으로 인식되는 순간조차도, 자기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속칭 미러링이 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남성이 여성에게 "쿵쾅이" 라고 말할 때 여성이 받는 대미지와, 여성이 남성에게 "쿵쾅이" 라고 (거울처럼) 받아칠 때 남성이 받는 대미지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클까? 혹자는 남성들도 여성들이 느끼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똑같이 받게 될 것이라고 믿지만, 남성들은 여성들만큼 "자기 대상화"에 의해 압박을 받지는 않는다.

그럼 남은 것은, 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단계다. 꽤 오래되긴 했지만 어떤 발달심리학 문헌에 따르면[출처] 여성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을 '신체적 매력'을 기준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남성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을 '신체적 효과성'을 기준으로 설명하려 하는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 차이가 자신의 몸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백과사전에 자신이 서술한 문헌에서, 칼로게로는 남성들의 심리 속에는 대상화가 영향을 끼치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강력한, 혹은 원초적인 다수의 변인들이 혼재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커할론의 리뷰에서는, 자기대상화를 일으키는 메커니즘들이 4가지 존재하는데, 그 중 2개는 남녀 공히 경험할 수 있지만 나머지 2개는 여성만이 경험하는 것이어서 이런 상반되는 결과들이 나온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앞서 소개한 스피도 수영복 연구에서 미키 헤블은, 미국인 남성들이 곧 죽어도 삼각팬티는 입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음을 들어서, 남성들은 어차피 자기대상화에 처할 상황 자체를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60]

어쩌면 남녀 간의 대상화 경험의 차이는 단지 그 강도에 있을지도 모른다. 앞서 소개한 생리학 수준 연구의 후속연구로서,[61] 책임연구자 멜린다 그린(M.A.Green)은 기존 자신의 연구에서처럼 참가자에게 심장 활동을 측정하는 기기를 부착시키고, 미키 헤블의 방식을 따라서 남성들에게는 스피도 수영복을 입혀 보았다. 연구 결과, 남성 수영복 집단과 여성 수영복 집단 모두, 스웨터를 입은 집단에 비해 더 높은 심근계 스트레스 반응이 관찰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수영복을 입은 참가자들 사이의 차이였다. 양쪽 성별 모두 생리적 스트레스를 느끼기는 했지만, 그 측정된 크기는 수영복을 입은 남성들보다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에게서 더 크게 나타났던 것이다. 즉, 남성들도 자기대상화를 경험하면 힘들긴 했지만, 여성들이 더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이다. 이는 남녀의 심리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즉, 남성이 다른 사람들 앞에 삼각팬티만 입은 채로 자신의 몸을 드러낼 때 느끼는 수치심과 불안함도 있지만, 여성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기로 결정하는 것은 그것을 초월하는 스트레스를 극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어째서 흔한 여성들이 "올 여름을 위해서 지금부터 다이어트" 라고 외치곤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의 대상화보다 더 혼란스럽고 어려운 연구분야는 "성 소수자들도 자기대상화를 하게 될까?" 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충분한 연구가 누적되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선적으로 연구자들은 레즈비언들은 남성 응시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으니 신체 감시로 고통받는 일도 덜하리라 생각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는 이들 역시 남성 응시로 인해 자기대상화를 똑같이 겪지만, 대신 신체 불만족을 호소하는 경향은 확실히 더 적었다.[62] 한편 게이 남성들의 경우 아직 이렇다 할 일관된 연구결과가 별로 없다.[63] 대신 그나마 밝혀진 것으로는, 게이 남성들이 경험하는 자기대상화는 이성애 여성들이 경험하는 자기대상화와 유사한 수준으로 심하여, 이성애 남성들의 시선에서 보기 좋은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것이다. 명확하진 않지만, 게이들이 보통 패션 센스가 좋고 단장을 자주 한다는 통념도 이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나, 성 소수자들의 경험에 관련된 연구는 아직까지 확신하기 어려운 단계에 있다.

이상의 남성 대상화 논의들은 '성적 대상화'에 국한된 것일 뿐이다. 남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아닌, 대상화 그 자체에 대해서는 기존의 학계에서 별로 논의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남성을 "돈버는 기계", "지갑"으로 도구화하는 경우를 들 수 있고, 연애 과정에서의 '어장 관리'도 남성을 도구로 보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매춘 시장에서 성구매자는 성판매자를 성적 욕망의 충족수단으로 보아 상대방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며, 반대로 성판매자는 성구매자를 경제적으로 대상화한다. 페미니즘에서의 성적 대상화 논의는 인간에 대한 도구화 또는 물화를 '성적 대상화'에만 국한시킴으로써 마치 대상화가 성별 비대칭을 이루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대상화 그 자체를 포괄하는 시각에서 보면 이는 틀렸다는 것이다.

4. 긍정적 대상화의 가능성

대상화의 존재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하는 추세이지만, 대상화가 인간성 존중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견해에는 상당한 반론들이 제기되어 왔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대상화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유명한 마사 누스바움(M.Nussbaum)은 정작 대상화가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현상은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Nussbaum, 1995). 누스바움이 진정 문제삼았던 건 '대상화'가 아니라 대상화의 하위개념인 '도구화'였다. 도리어 대상화의 몇몇 특징은 어떤 경우에서는 성적 생활의 정말 좋은 특징일 수도 있다고 본다. 따라서 드워킨이나 맥키넌처럼 대상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것이 아니라 "평등, 존중, 동의와 어떻게 결합할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D.H.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두 남녀는 서로를 자신의 신체 기관과 동일시하여 섹스에서 자율성이 상실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이 맥락 속에서 자율성은 존중되고 증진된다. 더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자면 팔베개가 있다. 팔베개는 분명 누군가를 대상화하고 있지만 팔베개가 쓰이고 있는 맥락에 따라 충분히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이다. 즉, 누스바움에 따르면, 대상화의 존재 그 자체는 중립적이고 대상화가 전체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따라 긍정적인 영향, 부정적인 영향이 모두 가능하다.

레슬리 그린은 누스바움과 다른 접근방식으로 긍정적 대상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인물이다. 그린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객체들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칙에 종속되며 시간 속에 현존하는 객체이다. 하지만 객체인 동시에 객체 이상의 존재인 것도 분명하다. 문제는 객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객체로 보는 것이 문제다. 칸트의 정언 명령에서는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 걸 금지하는 것이었음을, 그린은 재차 강조한다. 우리는 주체뿐만 아니라 타자를 항상 필요로 하고 모든 생활에서 대상화를 시킨다. 하지만 타인을 대상으로 대하려면 그와 동시에 타인을 자기 나름의 목적을 지니는 행위자임을 인정해야만 윤리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으며, 이 경우 긍정적 대상화 역시 가능하다(Green, 2000).

5. 유사 개념들

5.1. 비체

abject

음차하여 '아브젝트' 라고 부르기도 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인문학자들은 세상 속에 놓인 '어떤 것' 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대상화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상화의 과정은 결국 무엇을 이해하고 정의하는 과정에서 현실을 정적이게 하고, 경계를 세우고, 기준점을 만들고, 혼란 속에서 질서를 잡아가는 것을 포함한다. 주체는 주체가 되기 위하여 자신과는 상반되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만들게 된다는 설명 속에서도, 어쨌거나 그 대상이라는 것은 주체의 대상화에 일체 저항하거나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때로 세상 속의 '어떤 것' 들 중 일부는 이해와 정의의 노력 자체를 좌절시킬 수 있다. 아예 인식의 체계에 포섭 자체가 안 되는 것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주목한 줄리아 크리스테바(J.Kristeva),[64] 메리 더글러스(M.Douglas), 엘리자베스 그로츠(E.Grozs) 등의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여성들은 단순히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규정하는 무언가로 정의될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대상(object)이 아니라는(a-) 의미의 "abject", 즉 비체(非體)라는 개념이 새롭게 나타났다. 이 단어는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본래는 역겹고 비천함을 의미하는 용어였다고 한다.

젠더 이슈에서 비체는 "지배적 젠더 체계의 외부에 놓인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는 마녀, 히스테리 환자 등으로 종종 나타나며, 주류 젠더 질서의 영향을 받는 사회는 이들을 '더러운 것', '분비되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공포스러운 것' 으로 인식했다고. 이 점에서 비체(非體)는 동시에 비체(卑體)이기도 하다. 물론 비체들 본인부터가 그런 존재가 되기를 자처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성주의 철학에서 볼 때, 어떤 여성들은 남성중심적 젠더 체계에 공모하기를 거부하고, 가부장제로부터 역겨운 존재라는 취급을 받을지언정 개인적으로는 무한한 자유와 가능성을 마음껏 누리는 비체가 되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라면 이렇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가부장적 사회는 비체들을 보면서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라고 당혹스러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비체-되기의 실천" 이라고도 부르는데, 심지어 이런 비체성은 페미니즘의 인식론에 대해서도 나타날 수 있다. 기존의 페미니즘적 이론의 틀로 설명이 불가능한 젠더적 실천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대상과 비체의 개념적 비교
대상
object
비체
abject
규정됨규정될 수 없음
언어적으로 이름붙여짐이름붙일 수 없음
정적 개념, 고여 있음동적 개념, 흐르고 있음
경계를 세움경계를 허물어뜨림
알 수 있는 존재불가해한 존재
규범적 기준이 존재일체의 기준을 거부
질서를 세움교란시킴
착한 타자나쁜 타자
혐오에 공모함혐오에 저항함

본격적으로 비체라는 개념을 소개하는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라는 책에서,[65] 이현재(2016)는 비체를 바탕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즉, 여성혐오는 여성 전반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여성 비체들을 향한 정동이며, 나머지 여성들은 교환물로서의 가치를 갖는 존재로 대상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이 주체-되기를 실천할 때 필연적으로 타자를 대상화하고 혐오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여성들이 타자를 혐오하지 않으면서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체가 되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한상원(2017)은 해당 도서에 대한 자신의 서평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예컨대, "촛불시민은 한국 정치의 주체이다" 라는 진술에서 객체로서 배제되어야 할 대상은 대체 누구인가? 이렇게 본다면 "여성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는 진술 역시 객체를 억압하는 맥락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이현재(2016)의 주장처럼 주체-되기의 실천이 늘 누군가를 억압할 가능성을 갖는다는 것은 지나친 자기검열이며, 주체라는 단어가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비체-되기의 실천 역시 주체-되기를 실천하는 한 방식일 수 있다. 국내에서 비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은 촛불집회메갈리아 등을 거치면서 일종의 "정치화" 를 거쳤지만, 비체들이 정치화할 때에는 일체의 청사진이나 정교한 이론, 공통의 목표, 마스터플랜이 전무한 상태로 우발적으로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비체들은 주류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을 무슨 거창한 사회운동가쯤 된다는 식으로 인정투쟁을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현재(2016)에 따르면, 여성들이 비체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은 크게 네 가지 전략으로 나타난다. 1) 주디스 버틀러(J.Butler)가 《젠더 트러블》 에서 언급했던 패러디(parody)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체가 주체를 패러디할 때에는 자신이 그 주체와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현재(2016)는 작금의 미러링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숨기지 않는다. 미러링을 하는 비체가 패권적 남성성에 스스로를 동일시한다면 그것이 과연 비체냐는 것이다. 2) 남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여성에게 강요할 때, 이에 순응하는 척하면서도 여성이 자신의 이익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다. 3) '착한 여자' 가 되라는 사회구조적 압력에 저항하기 위해, 자유롭게 섹스와 쾌락, 섹슈얼리티에 탐닉하는 것이다. 이현재(2016)는 그 사례로서 슬럿워크를 들고 있다. 4) 여성들의 윤리를 남성지배적인 영역 혹은 공적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여성적 리더십', '돌봄의 기업경영' 과 같은 것이 있다.

이현재(2016)는 이들 비체들의 전략이 상충되거나 서로가 비체라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주체가 비체를 혐오하는 것만큼이나 비체끼리도 서로를 혐오하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비체들 간에 서로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저하시킨다. 그래서 그는 비체 간의 연대의 본질이 통일된 인식이 없는 "소란스러운 연대" 일 것이라고 하였으며, 이들을 느슨하게나마 한데 묶는 계기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상태에서 상호적, 감응적으로 '함께 느낌'(co-feeling)의 경험을 나누는 배려의 윤리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되어, 윤김지영(2017)은 이와 같은 정동적 정의를 거부하고, 그 대신 프랑스 철학의 바탕에 기초하여 새롭게 '통감'(immersio-pathy)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66] 어쨌거나 비체들은 한데 뭉치기도 힘들고, 그나마 뭉친다고 해도 말 많은 존재들이 되며, 주류 사회에서 체계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을 거라는 얘기다.

5.2. 유도체화

derivatization

성적 대상화에 대한 논의들은 ① 남성의 성적인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써 여성의 신체가 사물처럼 표현되고, ② 그 과정에서 여성의 인간성은 부정되며, ③ 여성의 가치는 오직 유방, 그리고 자궁 등 여성의 성징을 지니는 신체 부위들이 갖는 기능에만 있고, ④ 이들 부위들의 존재가 여성의 존재 자체를 온전히 대표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이루어져 왔다. 사실 이상의 정리는 성적 대상화라는 단어에 대한 꽤 좋은 정의이기도 하다.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은 남성이 섹스를 요구할 때 그것을 거부할 수 없고, 남성들은 섹스 현장에서 여성과의 의사소통을 기대하지 않는다. 요컨대,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은 찬장에 놓인 오나홀과 딱히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에노 치즈코나 안드레아 드워킨 등의 많은 철학자들과 페미니스트들도 이것이 딱히 문제 없는 설명이라고 여겨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러 문헌들에서 산발적으로,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인식들이 나타났다. 각종 음란물들의 연출이나 실제 강간가정폭력 등의 증언 기록들을 보면, 남성들은 자신이 범하는 여성이 진짜 오나홀처럼 무기력하게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남성들이 섹스 중에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다면, 남성이 그렇게나 집착적으로 "좋아? 좋아?" 를 물어보는 건 무엇인가? 남성들이 여성을 정말로 '살아있는 자위도구' 취급한다면, 어째서 많은 강간범들이 "피차 솔직해지자고, 너도 이걸 원하잖아.", "닥치고 좋아하는 척이라도 해" 라고 말한다는 말인가? 남성들이 여성을 저항하지 못하고 거부하지 못하는 존재로 여긴다면, 어째서 많은 가정폭력 가해자들이 "나는 네가 저항하는 모습이 좋더라" 라면서 좋아한단 말인가? 이런 피해 여성들을 돕는 일을 하던 운동가들에게 있어서, 기존의 대상화 담론은 뭔가 어긋난 부분이 있었다.

기존의 대상화 개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결과, (앞의 각주에서 지나가듯 언급한 바 있는) 카힐은 《Overcoming Objectification》 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67] 새롭게 유도체화라는 개념을 대안적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 단어 자체는 유기화학에서 활용되다가 카힐에 의해 페미니즘 분야로 차용된 것. 역시나 문화 이론가들이 과학 분야의 용어들을 명확한 이해 없이 상습적으로 전용하는 버릇이 있다는 비판은 하루 이틀 나왔던 것이 아니다. 유도체화는 상대방을 유도체(derivative)로 만드는 것으로, "행위자 A의 욕망과 정체성과 감정을 행위자 B에게 투영하고 표현하고 반영시키도록 강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자료(영어) 유도체화가 나타날 때, 가해자는 피해자를 단순히 성욕 해소를 위한 '정적인 사물' 로 본다는 맥락을 넘어서서, 가해자가 욕망하는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수용해 주는 역할이 되기를 바라는 심리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유도체화는 여성이 단순한 사물이라기보다는 좀 더 명확히 말하면 인형에 가깝다고 본다.

결국 누스바움의 제안처럼 활동성을 인정하느냐 불인정하느냐, 주관성을 인정하느냐 불인정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성이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 어린 판타지에 복종할 것을 요구할 때, 그 내용 중에는 다분히 활동적으로 반응하거나 주관적인 느낌을 표출하는 장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페미니즘계에서 말하는 남성 가해자 여성 피해자 프레임을 세울 수가 없으니 페미니즘 계에서는 아예 유도체화라는 새로운 단어를 통해서 '여전히 상존하는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 를 어필하려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대상화 개념은 시각적인 맥락에 크게 의존하나, 유도체화는 말하기, 행동하기, 심지어 옷 입기와 같은 다양한 맥락을 통해 나타날 수 있기도 하다.

현대사회에서 언중이나 학계에 의해 활용되는 단어의 빈도를 보면, 아무래도 유도체화라는 단어는 그렇게 호응을 받지 못한 듯 보인다. 그래도 그 핵심 메시지는 현대에 들어 굉장히 폭넓게 받아들여져서, 여성학계와 젠더학계, 신체-문화 비평가들과 문화평론가들은 흔히 욕망이 투영되는 몸이 어떻게 대중매체와 흔한 문화적 요소들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지를 자주 강조하고 있다. 여성의 몸이 일견 주체적이고 활동적인 것처럼 보일 때, 그 몸은 그 여성이 그러하게 움직여 주기를 바라는 남성의 욕망과 맞아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일종의 윈-윈 관계에 가까운 것이라 여성의 욕구와 남성의 욕구가 일치한다는 점만으로 여성이 남성의 욕구에 착취당하고, 굴복하고 말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답정너식 과도한 억지다. 그래서인지 이런 류의 논변은 개별 영화광고 등을 평론할 때 흔히 접할 수 있으며, 국내의 영화평론가인 손희정도 자신의 저서 《페미니즘 리부트》 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여성의 몸을 어떻게 그려내는지에 대해 설명했던 적이 있다.

5.3. 비인간화

Dehumanization

사회심리학계에서 비인간화에 대한 중요한 리뷰를 쓴 것으로 유명한 닉 해슬럼(N. Haslam)은,[68] 비인간화를 당한 개인은 인간으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취급을 받고, 도덕적 배척(moral exclusion)을 겪으며, 그때그때의 이기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처럼 간주된다고 정리했다. 심리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들은 국가 간의 전쟁,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의 맥락이나, 혹은 이와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맥락의 집단 간 갈등, 예컨대 인종차별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었기에, 비인간화라는 개념은 "전쟁 중인 국가가 상대방 국가를 인식할 때, 백인들이 흑인들을 묘사할 때"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특히 하위인간화(infrahumanization)라는 용어를 제안하기도 했는데,[69] 사람들은 내집단보다 외집단이 인간으로서의 복합적이고 깊은 '이차적 정서'(secondary emotions)를 경험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할수록 그 상대방 집단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덜 돕고 평소에도 교류도 잘 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작게는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성금을 보내지 않거나, 크게는 심지어 저 나치 독일홀로코스트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집단 간 갈등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양상은 비인간화의 한 하위 유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헌데 앞서 설명한 해슬럼의 리뷰 이후로, 심리학자들은 이 비인간화라는 것이 적어도 두 종류는 될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앞서 설명했던 대상화에 관련된 논의들을 살펴보자. 대상화는 한 개인이 상대방의 인간성을 배제하고 마치 사물처럼 취급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특히 성적 대상화는 상대방을 사물로 취급하는 목적이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있으며, 이 과정에서 누스바움이 지적했듯 상대방의 비활동성이나 소유권 등을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이 보기에,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인간을 사물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동물처럼 생각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미워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마치 그들이 유인원쯤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전자에는 기계적 비인간화(mechanistic dehumanization), 후자에는 동물적 비인간화(animalistic dehumanization)의 이름을 붙였다.
두 가지 비인간화의 개념적 비교[70]
인간성동물적 비인간화
교양 있음교양 없음
세련됨투박함
도덕적 감수성무도덕함
자기절제 없음
이성
논리
비이성
본능
성숙함유치함
인간성기계적 비인간화
감정적 반응성비활동성
타인에게 따뜻함타인에게 냉담함
인지적 개방성뻣뻣한 사고방식
주체성
유일무이함
수동성
대체가능성
심오함피상적임

위에서 보듯이 동물적 비인간화는 상대방을 '문명화되지 못한 짐승'처럼 생각하는 측면이 강하다면, 기계적 비인간화는 위에서 살펴보았던 전통적인 대상화 논의에 좀 더 가깝게 이해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심리학적으로도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동물보다는 기계처럼 취급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이론이 주로 인종에 관련된 맥락에서 나왔음을 고려한다면, 흑인 여성들은 대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동물로 취급될 가능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71] 그보다 최신의 다른 리뷰에 따르면,[72] 여성의 성적 기능이나 특성인 임신출산에 초점이 맞춰질 때에는 여성을 동물적으로 비인간화하게 되지만, 반대로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나 외모의 기준으로 쓰이는 쓰리사이즈외모지상주의에 초점이 맞춰질 때에는 여성을 기계적으로 비인간화한다고 한다.

5.4. 물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생산자가 노동상품으로부터 소외되면서 물건과 물건 사이의 관계만 남는 것. 대상화와 거의 비슷한 개념이며 실제로 마르크스도 '물화' 개념을 대상화와 혼동해서 썼다.

6. 동물에 대한 대상화

<육식의 성정치학>에서 페미니스트 '캐롤 애덤스'는 성적 대상화와 동물에 대한 대상화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두 대상화의 유사성은 비건 페미니즘의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실제로 비건이면서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1] 상품화(commodification)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동의어는 아니다.[2] 특히 각각의 분야들의 리뷰를 보면 지적 불균형을 짐작할 수 있는데, 예컨대 인지신경과학 분야의 최신 리뷰인 Bernard, Gervais, & Klein(2018)를 보면 대상화라는 단어의 인문학적인 배경에도 관심을 갖고 지면을 할애하는 걸 볼 수 있지만, 반면 여성학계나 사회운동 분야의 단행본 등에서는 과학계의 최신 성과들을 포괄하는 사례가 그만큼 많지 않다.[3] 안드레아 드워킨의 안티포르노 운동보수 기독교 세력과 손 잡았던 것처럼[4] 칸트에게 있어서 직관의 능력은 감성, 이해는 오성, 그리고 추론은 이성의 기능이다.[5] 칸트적 용어로 선험적 종합판단[6] Immanuel Kant, The Critique of Pure Reason, translated by Norman Kemp Smith, London:Macmillan, 1958, A103-108, 133-137.[7] 칸트적 용어로, 이것을 선험적 통각(transcendental apperception)이라고 한다.[8] 진미리(2021). "'대상화'의 의미와 여성신학적 관점에서의 비판," 신학사상 제193집 여름호, 296-297.을 그대로 인용.[9] G.W.F.Hegel/ 임석진 역, 정신현상학2, 파주:한길사, 2005, 339.[10] Ibid., 339.[11] Ibid., 340.[12] Cf. Oh, Seung-Sung, Critical Reflection on Wolfhart Pannenberg's Hermeneutics and Theology of History, Berlin:lit-verlag, 2007, 200.[13] 진미리(2021). "'대상화'의 의미와 여성신학적 관점에서의 비판," 신학사상 제193집 여름호, 297-298.을 그대로 인용.[14] 진미리(2021). "'대상화'의 의미와 여성신학적 관점에서의 비판," 신학사상 제193집 여름호, 298.을 그대로 인용.[15] 이는 외부 세계를 감각(sense)하는 것과 지각(perceive)하는 것이 서로 같지 않다는 심리학자들의 관점과도 흥미롭게 대비되지만, 그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16] 성창기 (2012). 헤겔의 주체: "부정적인 것에 머무르기"--지젝의 헤겔 해석을 중심으로. 철학사상, 46, 259-282.[17] 이러한 칸트의 생각은 래디컬 페미니즘에 비판적으로 계승됐다. 다만, 결혼 제도에 관련한 생각들은 완벽하게 부정당했다.[18] 예컨대 《넛지》 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등으로 국내에도 이미 잘 알려진 캐스 선스타인(C.R.Sunstein)은 대상화에 대해서 "그게 뭐가 문제임? 여성들 쪽에서 스스로가 대상화되기를 원할 수도 있잖아? 게다가 상대방을 대상화하는 게 성생활에는 좋을 수도 있는데?" 라고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페미니스트들에게 개념적인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대상화라는 개념 자체가 이때만 하더라도 너무 뜬구름에 가까워서, 좀 더 본격적으로 논의를 정립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19] Haslanger, S. (1993). On being objective and being objectified. In L. M. Anthony & C. Witt (Eds.), A mind of one's own: Feminist essays on reason and objectivity (pp.209-253). Westview Press.[20] Nussbaum, M. C. (1995). Objectification. Philosophy & Public Affairs, 24(4), 249-291.[21] LaCroix, J. M., & Pratto, F. (2015). Instrumentality and the denial of personhood: The social psychology of objectifying others. Revue internationale de psychologie sociale, 28(1), 183-211.[22] Papadaki, E. (2012). Understanding objectification: Is there special wrongness involved in treated human beings instrumentally?. Prolegomena, 11(1), 5-24.[23] 이렇게 대상화의 개념에 대해서 명백하게 정의내리려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상화'는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대상화 이론에서의 '대상화'는 철학적 '대상화'보다는 '공적 자기의식'이나 '신체에 대한 불만족'에 가까운 측면도 있다. 이러한 개념의 애매모호성은 누스바움 본인도 인정한 바 있고 이론 간에 균열이 생기는 원인이기도 하다.[24] 사실 이 점은 생각해 볼 만한 여지가 있다. 대상화는 응시자로서의 '갑' 의 성애적 의도로 특징지어지는 현상인가, 아니면 피응시자로서의 '을' 의 주관적 불쾌감으로 특징지어지는 현상인가? 예컨대 다섯살바기 남자아이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의 다리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 여성이 그것에 불쾌감을 느꼈다면, 우리가 그것을 대상화의 사례라고 간주할 수 있을까? 이 점을 명확히 지적하는 문헌은 없으나, 일단 이 문서에서는 갑이 성애적 의도로 바라본 사례만을 대상화라고 간주하겠다.[25] 이상의 서술의 문헌적 근거는 다음을 참조: Hall, 1984; Westkott, 1986; Kaschak, 1992; Schur, 1983; Argyle & Williams, 1969; Gardner, 1980; Allen, 1984.[26] Zurbriggen, E. L., Collins, R. L., Lamb, S., Roberts, T. A., Tolman, D. L., & Ward, L. M. (2007). APA Task Force on the Sexualization of Girls.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27] Calogero, R. M. (2012). Objectification theory, self-objectification, and body image. In T. F. Cash (Ed.), Encyclopedia of body image and human appearance Vol. 2 (pp. 574-580). San Diego: Academic Press.[28] 이상의 서술의 문헌적 근거는 다음을 참조: Kuhn, 1985; Berger, 1972; Solely & Kurzbard, 1986; Copeland, 1989; Sommers-Flanagan, Sommers-Flanagan, & Davis, 1983; Ferguson, 1978; Duncan, 1990; Mulvey, 1975; Archer, Iritani, Kimes, & Barrios, 1983. 사회학, 영화학, 방송학, 광고학 등의 다양한 분야들의 저널 논문들과 단행본들이 일관되게 동일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음에 유의.[29] Bernard et al., 2018. 구글 스칼라에서 검색해 보면 이 양반의 h 인덱스가 2010년대 후반 들어 수직상승중인 것을 볼 수 있다.[30] 이상의 서술의 문헌적 근거는 다음을 참조: Gervais, Holland, & Dodd, 2013; Gervais, Vescio, & Allen, 2011; Wenzlaff, Briken, & Dekker, 2016; Cikara, Eberhardt, & Fiske, 2011.[31] 특히 사람의 신체 사진이나 그림에서 머리 부분만 잘라내 없애면 인간의 뇌는 그것을 개별 부위들의 집합으로 인식한다. 그 몸이 란제리 차림의 헐벗은 상태, 즉 성애화된 상태일 때에 이 효과는 극대화된다고.[32] 잠재적인 교미 상대와 경쟁 상대를 식별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는 시각화된 처리.[33] Bernard, Rizzo, Hoonhorst, Deliens, et al., 2017; Bernard, Content, Deltenre, & Colin, 2018.[34] Potentiation of the early visual response to learned danger signals in adults and adolescents, 2015[35] 유방과 국부를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은 인지적 효과를 극적으로 감소시켰다. 해당 성적 부위들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인지적으로 터널시야(tunnel vision)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36] 한 연구에서는 성애화된 여성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이 섹시 화보는 명문대 졸업을 앞둔 한 의대생이 암 투병 중인 어린이들을 돕는 자선 기금을 걷기 위해 찍은 사진들입니다." 라고 안내했다. 이런 전후맥락이 제시됨으로써 사람들은 그 헐벗은 몸을 보면서 그녀가 굉장히 인간적인 것으로 느꼈으며, 유능하면서도 따뜻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Bernard, Gervais, Allen, Delmee, et al., 2015.[37] Hietanen JK, Nummenmaa L (2011) The naked truth: the face and body sensitive N170 response is enhanced for nude bodies. PLoS One 6: e24408.[38] 이윤경.이혜원, 외모관리 행동과 이상적 연령 추구경향 -20~30대를 중심으로- 참조[39] 김미화.김기연, 화장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성격특성에 관한 연구 참조[40] 자기대상화는 자신의 신체에 대해 개인이 관찰자적 관점을 취하여 바라보는 것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사실상 눈을 뜨고 있는 시간 내내 자기대상화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41] Fredrickson, B. L., & Roberts, T. A. (1997). Objectification theory: Toward understanding women's lived experiences and mental health risks. Psychology of women quarterly, 21(2), 173-206.[42] 이상의 서술의 문헌적 근거는 다음을 참조: Nolen-Hoeksema, 1990; Frank, Anderson, & Rubenstein, 1978; Heiman & Verhulst, 1982; Morokoff, 1990; Hyde, 1991; Oliver & Hyde, 1993; Garfinkel & Garner, 1982; Johnson, Lewis, & Hagman, 1984.[43] Fitzsimmons-Craft, E. E. (2011). Social psychological theories of disordered eating in college women: Review and integration. Clinical psychology review, 31(7), 1224-1237.[44] 사회 연구에서는 정신병의 개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상당 부분은 "병리적 상태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 으로 규정되어야 할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이라는 이름붙이기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인간 대상화이기 때문에 임상심리학계가 사회적인 논의라고 하면 일단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사회적 고정관념과 편견의 영향력이라든지 연구자 본인의 신념 등 주체성의 문제 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는 커녕 그러한 문제조차 인식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다. 그런 종류의 논의들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조르주 캉길렘(G.Canguilhem) 같은 사람들의 저술들도 만날 수 있다.[45] 이하의 서술의 문헌적 근거는 다음을 참조: Hyde, 1991; Oliver & Hyde, 1993; Tevlin & Leiblum, 1983; Martin, 1996; Roberts & Pennebaker, 1995; Laan & Everaerd, 1998; Laan, Everaerd, Van der Velde, & Geer, 1995; Heatherton, Polivy, & Herman, 1989; Adams, Haynes, & Brayer, 1985; Hoon & Hoon, 1978.[46] 이하의 서술의 문헌적 근거는 다음을 참조: Liss, Erchull, & Ramsey, 2011; Choma, Foster, & Radford, 2007; Fea & Brannon, 2006; Kahalon, Shnabel, & Becker, 2018a.[47] 이와 관련해서 텔아비브 대학교의 로텀 커할론(R.Kahalon)이라는 연구자가 박사과정생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좋은 리뷰 논문을 쓴 사례가 있다. Kahalon, Shnabel, & Becker, 2018b.[48] Fredrickson, B. L., Roberts, T. A., Noll, S. M., Quinn, D. M., & Twenge, J. M. (1998). That swimsuit becomes you: sex differences in self-objectification, restrained eating, and math performa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5(1), 269-284.[49] Green, M. A., Read, K. E., Davids, C. M., Kugler, D. W., Jepson, A. J., Stillman, A., ... & Ohrt, T. K. (2012). The psychophysiological consequences of state self-objectification and predictors of clothing-related distress. Journal of Social and Clinical Psychology, 31(2), 194-219.[50] 해당 연구결과가 기존에 논의되던 '자기대상화' 개념과 일치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 즉, 위 실험에서 '자기대상화'라고 해석된 지점들은 사실 '공적 자기의식' 개념에 더 가깝고 성적 대상화와는 미묘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51] 이하의 서술의 문헌적 근거는 다음을 참조: Kahalon et al., 2018b; Fredrickson et al., 1998; Calogero & Pina, 2011; Tiggemann & Andrew, 2012; Ford, Woodzicka, Petit, Richardson, & Lappi, 2015; Hopper & Aubrey, 2016; Quinn, Chaudoir, & Kallen, 2011.[52] 연구자들의 예시를 빌리자면, 남자친구와의 낭만적 데이트를 준비하는 여성이 거울 앞에 앉아서 자신의 머리를 즐겁게 매만지고 있을 때, 이 여성은 외모 감시를 하고 있긴 하지만, 신체 불만족을 경험한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53] 나무위키에 한하여 말하자면, 마치 남성혐오라는 개념이 언어도단이라는 식으로 "남성에 대한 대상화는 구조적 배경을 무시하기 때문에 대상화라고 부를 수 없다" 는 주장이 나온다면, 이는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개념들에 대한 전반적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남성혐오가 언어도단이라는 주장은 그것이 정동(affect)과 동성사회성(homosociality)이라는 두 가지의 구조적 배경에 거스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다지만, 성적 대상화에 대해서라면 사회구조는 배경이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consequence)에 속한다. 따라서 케이힐(A.J.Cahill)의 논변처럼 남성의 대상화가 젠더 억압구조를 영속화한다는 식의 설명은 가능하겠으나, 남성의 대상화가 개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식의 설명은 심각하게 재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54] Wernick, 1991; Van Zoonen, 1994.[55] Hebl, M. R., King, E. B., & Lin, J. (2004). The swimsuit becomes us all: Ethnicity, gender, and vulnerability to self-objectifica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0(10), 1322-1331. (참고로 이 연구의 제1저자인 헤블은 여성이다.)[56] Rollero, 2013; Register, Katrevich, Aruguete, & Edman, 2015.[57] 이하의 서술의 문헌적 근거는 다음을 참조: Quinn, Kallen, & Cathey, 2006; Johnson, McCreary, & Mills, 2007; Saguy, Quinn, Dovidio, & Pratto, 2010; Gervais, Vescio, & Allen, 2011; Calogero, 2012.[58] Roberts, T. A., & Gettman, J. Y. (2004). Mere exposure: Gender differences in the negative effects of priming a state of self-objectification. Sex Roles, 51(1-2), 17-27.[출처] Lerner, R. M., Orlos, J. B., & Knapp, J. R. (1976). Physical attractiveness, physical effectiveness, and self-concept in late adolescents. Adolescence, 11(43), 313.[60] Calogero, 2012; Kahalon et al., 2018b; Hebl et al., 2004.[61] Green, M. A., Ohrt, T. K., Nguyen, C., Blasko, K., Khatiwada, S., Martin, A., ... & Marie, C. (2014). Heart rate and affective reactions to state self-objectification as a function of gender. Basic and Applied Social Psychology, 36(3), 259-271.[62] Morrison, M. A., Morrison, T. G., & Sager, C. L. (2004). Does body satisfaction differ between gay men and lesbian women and heterosexual men and women?: A meta-analytic review. Body image, 1(2), 127-138.[63] Michaels, Parent, & Moraldi, 2013; Martins, Tiggemann, & Kirkbride, 2007.[64] 크리스테바는 자신의 저서 《공포의 권력》 에서 정신분석학적이고 라캉철학적인 지적 배경을 통해, 주체가 아닌 것과 주체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짓지 못하게 됨으로써 양자가 서로 섞여드는 상태, 즉 "코라"(chora) 상태가 되는 것은 주체에게 엄청난 불안과 공포를 유발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65] 이현재 (2016).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도서출판 들녘, 파주.[66] 윤김지영 (2017). 헬페미니스트 선언: 그날 이후의 페미니즘. 일곱번째숲, 서울.[67] Cahill, A. (2012). Overcoming objectification: A carnal ethics. Routledge.[68] Haslam, N. (2006). Dehumanization: An integrative review.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10(3), 252-264.[69] Leyens, J. P., Demoulin, S., Vaes, J., Gaunt, R., & Paladino, M. P. (2007). Infra-humanization: The wall of group differences. Social Issues and Policy Review, 1(1), 139-172.[70] Haslam, 2006, Figure 1.[71] Cowan, 1995; Leidholdt, 1981.[72] Morris, K. L., Goldenberg, J., & Boyd, P. (2018). Women as animals, women as objects: Evidence for two forms of objectifica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4(9), 1302-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