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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 모로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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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과 모로코의 관계에 대한 문서. 양국은 역사적인 이유로 애증관계이고 프랑스어를 상용어로 쓸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 프랑스와는 달리 사이가 안 좋은 편이지만 그러면서도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이웃이라서 교류도 많다.2. 역사적 관계
2.1. 고대
고대에는 스페인 지역과 모로코 지역이 로마 제국의 일부였다. 로마 제국 시절에 세워졌던 유적들이 스페인과 모로코에 남아 있다. 스페인 지역과 모로코 지역은 로마 제국의 통치하에서 로마화되었다. 로마 제국이 서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으로 나뉘어졌을 때 스페인 지역과 모로코 지역은 서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2.2. 중세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이베리아반도에 고트족들이 서고트 왕국을 세웠다. 스페인 지역은 서고트 왕국때에도 라틴어를 보존했고 로마 문화도 보존했으며 서고트 왕국을 세운 서고트족들은 이베리아반도의 로마인들과 통혼하거나 로마화되었다. 반대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동로마 제국이 모로코 지역과 스페인 남부 지역을 지배했지만 동로마 제국이 우마이야 제국에 의해 북아프리카쪽 영토를 잃어버리면서 북아프리카 지역은 아랍화되었다.모로코 지역은 우마이야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그 기세를 몰아서 우마이야 제국은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리고 이베리아 반도까지 정복했다. 이후 이베리아반도 북부의 기독교인들은 레콩키스타로 조금씩 영토를 회복했고 후우마이야 왕조가 붕괴되면서 이베리아 반도는 여러 타이파 국가들 및 무라비트 왕조, 무와히드 왕조 등 여러 이슬람 왕국으로 쪼개졌으며 1492년 나스르 왕조도 멸망하면서 스페인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아랍 세력을 몰아냈다. 즉 모로코와 스페인 남부는 중세 역사를 상당 부분 공유한다. 레콩키스타가 보통 700년대에서 1400년대까지 지속된 걸 보면 무려 70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은 아랍-베르베르 무슬림들의 지배를 받았을 때는 아랍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후 스페인 제국에서는 이슬람 문화의 잔재를 최대한 일소하려고 노력했음에도 아랍-베르베르 문화의 잔재가 아직 스페인 문화에 많이 남아 있다. 아니,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딱히 그리 최대한 일소하려고 한 것도 일관적이지 않다. 펠리페 2세의 치세만 보더라도 일단 형식적으론 2세대 전 강제개종된 무어인들의 아랍어 사용 금지, 아랍 복식 금지 같은 칙령을 내리며 알푸하라스 전쟁 같은 큰 반란을 초래했음에도 막상 대귀족들이나 왕실 본인이 쓸 궁전에는 관련 기술자, 예술가들에게 사면령, 특별 보호까지 내리면서 세비야의 알카사르 같은 예시가 보여주듯 이슬람 문화를 흠뻑 먹은 건축물이나 왕궁 장식 같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종교적, 정치적으로는 안달루스 무슬림들과 적대해도 깊은 역사적 공존에서 온 문화적 교류와 영향만은 막상 스페인 지배계급 본인들도 막기는커녕 향유한 셈이다.
대표적으로 안달루시아 지방의 알함브라 궁전이 이슬람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며 스페인 남부에선 미술이나 예술품, 건축 디자인에서도 이슬람 양식의 영향을 받은 잔재가 꽤 남아 있고 스페인어에는 아랍어에서 차용한 어휘나 문법의 특성들이 조금씩 남아 있다.
2.3. 근세
스페인 왕국은 중남미 외에도 모로코 북부를 정복했다. 세우타와 멜리야는 스페인이 차지하면서 현대에도 스페인의 영토로 되어 있다. 17세기 초에는 스페인이 모리스코들을 추방시키면서 스페인의 무어인들이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로 이주했다.2.4. 20세기
19세기에 스페인은 중남미 쪽의 식민지를 잃어버리면서 아프리카 쪽에 식민지를 얻기 위해 리프산맥 이북, 시디 이프니, 타르파야 등 모로코 땅 일부와 서사하라를 스페인령 모로코. 스페인령 사하라로 묶어 식민지배했다. 스페인은 모로코 전역을 차지하려고 했지만 프랑스의 견제로 인해 북부 지역과 서사하라만 차지했고 중부 지역은 프랑스가 차지했다.이후 리프 전쟁을 거치면서 스페인의 모로코에 대한 영향력은 공고해졌다.
모로코는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아프리카군 장성이었던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처음으로 거병해 내전을 시작한 곳이자 전쟁 말기까지 국민파의 핵심 거점 중 하나였다. 스페인은 내전 이전부터 보호령이었던 모로코에서 현지 무슬림들을 모병해 현지 전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 이전에도 공화국 정부가 노동자들의 폭동을 진압하는 데 아프리카 군단 소속 모로코인 식민지병 레굴라레[1]들을 동원한 적이 있지만 이들을 스페인 내부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 내전 당시 국민파였다.[2]
20세기 중반이 되면서 모로코는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독립하고 스페인군은 나중에 서사하라에서 철수했다.
2.5. 21세기
현재도 스페인과 모로코는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세우타와 멜리야를 두고 모로코는 스페인과 영토분쟁이 있고 갈등이 있으며 여러 무인도를 두고 서로 자국령이라고 선포하면서 해군끼리 일촉즉발로 대립할 정도로 사이가 나쁘다.한때 모로코 어선이 재해로 침몰하면서 선원들이 무인도로 피해서 구조를 요청했는데 모로코와 스페인 해군이 나서서 서로들 자기 땅이니 자신들이 구해야한다고 난리를 치다가 일단 모로코 국적인지라 모로코 쪽이 구조한 적도 있었다.#
양국의 극우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영토와 관련한 갈등이 더욱 치열한데 스페인의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구 스페인령 모로코 지역을, 모로코의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상술한 세우타와 멜리야 뿐만 아니라 옛 알안달루스 문명의 영역이었던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가리켜 자국이 수복해야 할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후자는 사실 라틴족이 아랍인보다 훨씬 먼저 이베리아 반도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현대 스페인인들의 입장에서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현대 모로코인들이 침략자의 후예 주제에 큰소리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알안달루스 문명 자체가 매우 오랫동안 이어졌기 때문에 현대 모로코인들의 입장에서 이베리아반도는 단순히 조상들이 정복한 남의 땅을 넘어 자국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역이다.[3] 그러다 보니 스페인으로 밀입국한 모로코인들이 스페인 경찰에게 체포될 때 자신들은 그저 조상님의 영토로 돌아왔을 뿐인데 왜 체포하냐는 말을 하면서 반항하기도 하며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의 후손들이 스페인 국적을 취득할 때 모로코인들이 이걸 보고 자신들도 추방당한 무어인의 후손이라며 스페인 국적 부여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갈등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난민 문제에서는 협력하고 있다. 세우타와 멜리야는 모로코와 접해 있어서 모로코인들이 세우타와 멜리야로 일하러 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모로코에서는 스페인어가 프랑스어와 함께 주요 외국어라서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모로코인들이 많이 있다. 지리적으로 유럽과 매우 가까워서 유럽쪽의 항공사들이 모로코 노선과 연결된 경우가 많이 있으며 모로코는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의 참관국에 가입되어 있고 스페인에도 모로코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5.1. 2020년대
2021년 3월 스페인 대표였던 무니르 엘하다디가 모로코 대표팀을 선택하였다.5월 18일에 세우타에서 모로코인 1천명 이상이 세우타에 들어가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 멜리야에서도 1명이 사망하는 등의 사건이 보고되자 스페인 외무부가 모로코 대사를 조치했다.# 게다가 스페인과 모로코가 외교갈등을 빚기까지 했다.# 스페인 정부는 세우타에 몰려든 모로코인 8,000명중 절반을 돌려보냈다고 밝혔고 보안도 강화한다고 밝혔다.# 19일에 스페인-모로코 간 국경을 폐쇄하기로 했다.# 스페인 정부와 모로코 정부간에 갈등이 생겨났고 스페인 정부는 모로코를 비판했다.# 5월 23일에 모로코의 외무장관은 모든 책임은 스페인에 있다고 밝혔고 스페인과 EU가 해결책 모색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 비상착륙한 모로코인들의 불법이주가 일어났고 일부는 체포됐다.#
2022년 3월 18일, 스페인이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자치계획을 인정했다.#
2022년 5월 17일 양국은 2년만에 관계를 개선하고 국경을 재개방하기로 했다.#
6월 24일에 멜리야에서 국경을 넘으려던 이주민 수십명이 사상당했다.#
2022년 12월 8일, 모로코에서 튀르키예로 가던 여객기가 임산부의 출산 문제로 스페인 영토에 비상착륙했다. 스페인 당국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구조팀을 급파하였으나 사실은 모로코인들의 불법 입국을 위한 페이크였다. #
2023년 2월 3일,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모로코를 방문해 서사하라 문제 등으로 인한 갈등을 봉합하려고 노력했다.#
3. 문화 교류
정치적, 역사적 악감정과는 별개로 모로코 북부와 스페인 남부는 공유하는 역사도 굉장히 깊고 문화적 연속성도 강한지라 실제 사회적 측면에서는 스페인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무슬림 이민자 문제는 한결 덜 시끄럽고 충돌이 덜한 이유 중 하나가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무슬림 이민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모로코인들의 사회적 융합이 영 문화적, 역사적 연고도 없는 다른 유럽 국가-이슬람권 관계보다 한결 쉬운 편이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많다.[4] 물론 깊게 들어가면 여기도 여전히 모로코인들을 무어인 운운하며 멸시하는 문제도 없는 건 아니지만 통합이 아예 안 된 무슬림 이민자들이 공권력도 함부로 개입하기 힘든 대규모 슬럼가를 형성하며 범죄의 온상이 되는 다른 유럽 국가의 이민자 문제에 비해 확실히 마찰이 덜한 편이다. 특히 안달루시아 지방의 알안달루스 문화유산과 관련하여 학계나 문화계의 상호 교류가 깊은 건 물론이다.이베리아반도에서 라틴족(스페인인의 조상)과 무어인(모로코인의 조상)의 혼혈이 지속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5] 오늘날 스페인인과 모로코인의 외모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데 스페인어를 잘하는 모로코인이 스페인 현지인들에게 자국민으로 오해받거나 반대로 아랍어를 잘하는 스페인인이 모로코 현지인들에게 자국민으로 오해받을 정도다. 특히 안달루시아로 대표되는 스페인 남부 지역과 리프로 일컬어지는 모로코 북부 지역의 사람들은 정말 외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편이다. 문화적으로도 스페인은 아랍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반대로 모로코도 스페인으로부터 들어온 라틴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6] 현재 스페인에는 모로코 출신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93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슬람 특유의 다산 선호까지 겹쳐 갈수록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유명인으로는 아슈라프 하키미, 무니르 엘하다디가 있다.
3.1. 스포츠
2022년 12월 7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에서 맞붙었다.# 승부차기에서 모로코가 승리해 8강이 진출하면서 결국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대한 복수를 성공한 셈이다.4. 교통 교류
양국은 항공노선을 통해 교류하고 있으며 양국 항공사들은 항공노선을 통해 자주 왕래하고 있다. 모로코와 스페인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서 관광객들이 항공사를 통해 자주 왕래하고 있다.세우타, 멜리야는 모로코와 접해 있어서 모로코인들이 세우타, 멜리야로 일하러 오고 있다. 세우타와 멜리야를 통해 도로가 이어져 있다.
5. 관련 문서
- 스페인/외교 / 스페인/외교/옛 식민지 국가들과의 관계
- 모로코/외교
- 스페인/역사
- 모로코/역사
- 세우타 / 멜리야[7] /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
- 스페인/경제
- 모로코/경제
- 스페인인 / 모로코인
- 스페인어 / 아랍어 / 아랍어 방언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프리카 국가/북아프리카 국가
[1] Regulares[2] 대략 7만 5천여명에 달하는 모로코 무슬림이 국민파 진영에 모병되어 레굴라레로 참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내전 초반부터 말기까지 스페인 국민파의 정예부대로 이름을 날렸다.[3] 튀르키예로 치면 현재까지도 튀르키예령으로 남아 있는 동트라키아를 제외한 발칸반도가 현재는 튀르키예인들의 땅이 아니고 해당 지역 선주민들(그리스인, 불가리아인, 세르비아인 등)의 입장에서 튀르키예인들은 그저 침략자일 뿐이지만 해당 지역이 이스탄불과 더불어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 역할을 한 만큼 튀르키예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역인 것과 비슷하다. 일본 야마토 민족 시점에서의 한반도와 한국인 시점에서의 만주 일대(중국 둥베이+내몽골 동부+러시아 연해주)도 조상들이 거주했던 땅이었고 자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역이었다는 인식 측면에서 모로코인 시점에서 보는 이베리아 반도와 비슷하다.[4] 인류학자들이 보편적으로 지적하는 거지만 사실 종교적 차이를 넘은 명예 중시, 국가가 아닌 소집단에 대한 소속감, 지방 도시 중심 사회 같은 문화적 요소들은 범지중해권 자체가 동질성이 높은 편이다.[5] 사실 오늘날 모로코 북부 주민들도 따지고 보면 아랍화된 라틴족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다. 모로코는 통일 로마 제국 시절에 라틴 문화권이었으며 레콩키스타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 조상 대의 가톨릭 신앙을 되찾기를 거부한 무슬림 라틴족이 가장 많이 이주해온 곳도 오늘날의 모로코 북부지역이었다.[6] 애초에 모로코인들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여기는 알안달루스 문명이 아랍 문화와 라틴 문화의 결합으로 형성되었다.[7] 모로코와 스페인은 세우타와 멜리야를 두고 영토분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