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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15:52:44

앤더슨 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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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02c3c><colcolor=#ffffff> 앤더슨 쿠퍼
Anderson Cooper
파일:anderson-cooper-mckay-calderon-ac2.jpg
본명 앤더슨 헤이스 쿠퍼
Anderson Hays Cooper
출생 1967년 6월 3일 ([age(1967-06-03)]세)
뉴욕주 뉴욕시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장 178cm
직업 앵커, 아나운서, 기자
소속 CNN (2001년 입사)
학력 예일 대학교 (정치학 / B.A.)
가족 아버지 와이엇 쿠퍼
어머니 글로리아 밴더빌트
형 카터 밴더빌트 쿠퍼
장남 와이엇 모건 쿠퍼
차남 세바스찬 루크 쿠퍼 [1]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1.1. 개인사1.2. 커밍아웃
2. 기자 활동3. 영화 출연4. 방송 활동
4.1. New Year's Eve Live4.2. 객원 인터뷰어4.3. 데이타임 쇼
5. 기타
5.1. 어머니 글로리아 밴더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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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텔레비전 아나운서, 기자

50대의 나이에 머리는 완전히 백발인데 비해 비교적 동안에 목소리는 젊은 아나운서들 못지 않게 깔끔하고 명료한 전달력을 가진 것이 인상적이다.[2] 어머니가 미국의 철도 재벌이었던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가문[3]의 후손으로 재벌 3세로 평생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지만 기자라는 힘든 직업을 선택해서 유명하기도 하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귀족적인 인물 보다는 보통 기자들과는 달리 일단 어느 재난이 터지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상황보도를 하는 언론인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주로 뉴욕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재난 전문 기자로 많이 인식되어 있다. 지금은 앵커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예전처럼 현장에 나가서 취재를 해오기 보다는, 스튜디오에서 뉴스앵커로 보도하는데 더 집중하고 있다. 사실 방송기자들은 이게 일반적인 승진. 하지만 아직도 현장에 나간다.[4]

1.1. 개인사

재벌가의 후손이라는 풍족하다 못해 호화로운 생활을 버리고 굳이 힘든 기자일로 뛰어들게 만든 건 그가 10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수술을 받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형이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14층 아파트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이 요인인 듯하다. 2014년 3월 31일 라디오 쇼인 하워드 스턴 쇼에 출연해 유산은 자신에게 저주라며 포기한다고 한다.

돌턴 스쿨과 예일 대학교 출신인데다가 CIA에서 2년동안 인턴으로 일한 엘리트 출신이지만 어릴 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가 아동복 모델로 활동한 적도 있었던 자수성가형.

어릴 적에는 난독증이 있었고, 17살이었을 때는 혼자서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케냐에서 말라리아에 감염돼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학교 조정팀의 키잡이(Coxswain)를 담당한 적이 있었고[5] 1990년 베트남 하노이 대학교에서 1년 동안 베트남어를 전공하기도 했다.

ABC 방송국에서 말단 일자리를 거절당한 후, 포기하지 않고 가짜 기자 신분증(…)을 만들어 직접 카메라 들고 미얀마에 들어가 인터뷰를 했을 정도로 근성의 사나이.[6] 제대로 된 방탄복도 없어 코트 여러 벌을 껴입고 전장에 뛰어든 적도 있었다. 2001년에는 CNN으로 옮기고 2003년부터는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 앤더슨 쿠퍼 360도(Anderson Cooper 360°)(약칭 AC360)의 앵커가 되었다.

2006년 자신의 가족사를 담은 자서전 'Dispatches from the edge'를 출간했다. 한국에서는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2010년에 출간되었다. 2016년 4월 어머니와 함께 쓴 책 'The Rainbow Comes and Goes: And Other Life Lessons I Learned From My Mom'을 출간했다.

2014년 PBS의 다큐멘터리 'Finding Your Roots'에 출연해 본인의 조상 중에 노예 소유주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7]

여성 코미디언 캐시 그리핀, 데이타임 쇼 호스트 켈리 리파, 브라보TV 호스트 앤디 코헨과 친하다. 2015년부터 앤디 코헨과 함께 토크 콘서트 'AC2 Show' 투어를 한다.

1.2. 커밍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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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동성애자 잡지 매체인 아웃 매거진의 표지.[8]

사실 이전에도 성적 지향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일단 쿠퍼 본인이 직접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았으나 미남이고 엘리트인 그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공식 석상에서 이런 의문이 제기되면 즉답을 피하는 제스처를 몇 번 보여서 동성애자라고 짐작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9]

커밍아웃 이전의 게이 논란에 대해 심증은 가는데 물증은 없었다. 본인도 '내 성적 정체성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알겠지만 사생활이니까 상관 말아 달라'고 못을 박았다. 유명인들과의 로맨스를 좋아했던 상속녀인 어머니 글로리아 밴더빌트 여사와는 달리 공과 사가 엮이는 것은 싫어서 그러는 것인지 아리송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가 뭐라고 하든 모두들 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게이 잡지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힌 적도 있다. 파파라치에게 애인과의 사진이 찍혀서[10] 직접 언급한 적만 없을 뿐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상황이다. 사실 '논란'이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커밍아웃 여부는 본인의 자유에 달린 것이니 왜 확답을 하지 않느냐며 강요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결국 2012년 7월 2일, 친구 언론인 앤드류 설리번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커밍아웃을 했다.

커밍아웃한 직후 그가 가을에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그가 커밍아웃한 지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그가 크로아티아에서 친구들과 휴가를 지내는 중 그의 애인이 몰래 다른 남자와 외도를 했다는 사실이 그것도 대낮에 공원에서 진하게 키스하는 파파라치 사진으로 알려졌다. 이런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풀리자마자 앤더슨이 휴가에서 돌아와 그의 애인을 함께 사는 집에서 쫓아냈다는 등 루머가 있었으나, 그 이후에도 둘이 붙어다니는 모습이 종종 목격됐다. 2014년 3월 31일에 출연한 하워드 스턴 쇼에서 여전히 파트너를 사랑한다고 밝혔다. 참고로 둘이 동거하는 집은 소방서였던 건물을 개조한 아파트라고. 그러나 결국 2018년 결별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가족을 이루어 살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여러 번 밝혔는데,[11] 그가 아이티 지진 취재를 다녀온 이후 그가 아이티에서 고아를 입양한다는 가십이 떠돌기도 했다.

게이들 사이에서는 금단의 열매로 추앙받고 있다. 2010년 게이들이 뽑은 가장 섹시한 남자 100명11위 차지. 매년마다 꾸준히 랭킹 안에 드는 편. 2013년 동성애자 권익 단체인 GLAAD에서 시상하는 '비토 루소 상'(Vito Russo Award)을 수상했다.[12] 이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나온 마돈나에게 키스를 했다.

이제는 딱히 감출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지, 커밍아웃 이후 자신의 데이타임 쇼나 토크쇼 등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과 관련된 유머를 더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마찬가지로 커밍아웃한 게이이자 미국의 방송인인 앤디 코헨이 본인의 쇼에서 앤더슨과 검열삭제를 했냐는 질문을 받고 "100% 아무것도 한 적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심지어 서로의 나체도 본 적이 없다고. 20여 년 전 앤더슨과 소개팅을 할 뻔 했지만 연락은 닿았는데, 본인은 통화가 잘 되었다고 생각하였으나 앤더슨 쿠퍼는 통화 중 앤디 코헨이 마구 흥분해 손짓발짓하는 것이 상상될 지경이 되면서 흥미가 사라졌다고. 결국 소개팅을 나가지 않았지만 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고 한다. # 다른 토크쇼에서는 코헨이 전화로 마구 흥분하며 난리난리한데다 첫 질문이 "니네 엄마가 글로리아 밴더빌트지?"여서 바로 마음을 닫아버렸다고 #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2차 토론회를 ABC 기자 마사 래대츠와 공동 진행했다. 이로서 역대 미국 대통령 선거 토론회 진행자 중 최초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진행자로 이름을 올렸다.

2. 기자 활동

사실 그를 순수하게 재난 전문 기자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면도 있다. 어째서인지 종군 기자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채널원에 재직하던 시절 내전 지역에서 자주 취재하던 경력 때문인 듯하다.[13] 평소에는 AC360을 진행하면서 CNN 메인 스튜디오에서 앵커 역할을 전담하기 때문이다. 그의 프로그램인 AC360도 별 일 없을 때에는 뭐 이런 상황을 다 다루나 싶을 정도로 자잘한 뉴스를 전하기도 하고, 가끔 속보가 들어오면 'Newsroom'[14]의 앵커로서 뉴스를 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큰 사건이 발생하고 자신이 가서 뉴스를 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직접 달려간다.[15] 아래의 사건 목록은 전부 다 그가 현장에 직접 가서 다룬 사건들 중 일부이다.

재난 뿐만 아니라 미국 선거 개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취임식, 영국 윌리엄 왕세손캐서린 미들턴의 결혼식, 새해 맞이 행사 중계 등 굵직한 행사를 현장에서 중계할 때도 있는데, 이 때 CNN은 경쟁 채널들[22]을 제치고 시청률 1위를 기록한다. 정작 평소에는 동시간대 뉴스 중 시청률이 제일 낮게 나오는 건 함정.

2.1. 허리케인 카트리나 보도

이때부터 기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미국 전역에 확실히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마리 랜드루 루이지애나 주 상원의원을 실시간으로 털어버리는 인터뷰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전설이 아닌 레전드. 이후 이 시기가 돌아올 때마다 가끔 가장 큰 피해지역이었던 뉴올리언스에 가서 생방송을 하기도 했다.[23] 자서전에서도 그날의 기억들을 상세히 기록했다.

2.2. 아이티 지진 보도

취재진 중에서 제일 먼저 아이티에 들어갔다. 도미니카 정부의 한 분이 헬기로 도미니카에서 아이티로 가는 길에 자신을 알아보고 헬기에 한 자리가 남아있는데 함께 가자고 했다고. 지진 이후 시내에서 일어난 폭동을 취재하던 중 8mm 카메라를 내려놓고 부상을 당한 소년을 구해준 모습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후, 지진 당시 아이티에서 적극적으로 구호 활동을 펼친 배우 숀 펜과 함께 아이티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숀 펜이 세운 아이티 구호 재단의 모금 행사에 자주 참석하는 모습을 보인다.

2.3. 일본 도호쿠 대지진 보도

재난 전문 기자 아니랄까봐 트위터에 원래는 리비아민주화 시위를 취재하려고 짐싸고 있었지만 일본으로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면서 바로 날아갔다.

처음에는 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된 센다이의 상황을 위주로 보도했으나, 후쿠시마에서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한 뒤 도쿄로 옮겨 방사능 피해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도쿄전력의 간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인들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고 얘기하였다. CNN 동부시각 10시의 그의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상황을 중심적으로 이야기했다.

2.4.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격 사건 보도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인 2016년 6월 13일부터 올랜도 현장에 합류해 사흘 간 야외에서 생방송을 진행했다. 올랜도에서의 360은 2시간 특집으로 방송했으며, 올랜도에서의 첫날 360에서는 용의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대신 희생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들을 추모하는 분위기로 진행했는데, 울컥하는 목소리로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언급했다. 또한,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서도 희생자들의 이름들을 올렸다.

3. 영화 출연

4. 방송 활동

4.1. New Year's Eve Live

2002년 연말부터 매년 연말마다 타임 스퀘어에 나가서 CNN을 통해 새해 맞이 행사 생중계를 맡고 있는데, 몇 년 전부터는 미국의 여자 코미디언 캐시 그리핀과 진행한다. 캐시 그리핀은 생방송 중에 욕설은 기본이고 심지어 속옷 바람으로 나온 적도 있어 CNN의 몇 안 되는 방송 사고의 지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이후로 매번 생방송 초반에 캐시에게 '욕설 금지, 노출 금지'라고 써진 팻말로 경고하지만 전혀 소용없다.[25]

2012년 연말 생방송에는 생방송 중간에 싸이와 MC 해머가 깜짝 등장한 적이 있었는데, 앤더슨은 싸이와 함께 있었던 남자가 MC 해머였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2014년 연말에도 캐시 그리핀과 생방송을 했다. 이날 캐시는 로드의 히트곡 'Royals'의 가사를 개사해 앤더슨을 놀렸고[26], 앤더슨의 옆머리를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염색해주면서 인간 성조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5년에도 캐시와의 생방송이 결정되었고, TV 광고에서마저 캐시가 "생방송 때 호흡을 맞추기 위해 더 친해져야 한다"면서 앤더슨의 집에 쳐들어가는 등 연말 생방송 전부터 예고를 했고, 생방송 당일에는 작년의 인간 성조기에 이어 캐시가 앤더슨에게 얼굴이 너무 창백하다며 눈만 가리고 얼굴에 식용 금 스프레이를 뿌려서 황금 면상을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2017년 후반에 들어서 부터는 캐시가 피칠갑이 된 듯한 트럼프의 머리 모형을 들고 촬영한 사진을 업로드하고 큰 파장을 일으키자 둘의 사이가 틀어진듯하다.

4.2. 객원 인터뷰어

2006년부터 미국의 지상파 방송사 CBS에서 일요일 저녁 7시(동부시간 기준)에 방송되는 시사 프로그램 '60분(60 Minutes)'[27]의 인터뷰어로도 활동하고 있다.[28]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에미넴, 레이디 가가, 아델을 비롯한 톱스타들과 데이비드 베컴, 마이클 펠프스 같은 스포츠 스타들을 인터뷰했는데, 마이클 펠프스와 인터뷰할 때는 일 대 일로 수영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인터뷰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해 취재할 때는 자신도 스쿠버다이빙으로 직접 바닷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4.3. 데이타임 쇼

데이타임 쇼의 여왕이라 불리던 오프라 윈프리가 본인의 방송국을 설립함과 함께 쇼를 종영한 후, 그 시간대를 그대로 물려받은 데이타임 쇼 'Anderson'이 2011년 9월 첫방송을 했다. 첫 시즌은 콜럼버스 서클이 보이는 전망 좋은 링컨 센터에서 녹화했다. 두번째 시즌은 프로그램 제목에 'Live'가 붙어 CBS 뉴욕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했는데, 진행자가 워낙 바쁘신 몸이다 보니 미리 녹화한 방송분을 방영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그러나 'Anderson Live'는 전 시즌보다 시청률이 영 좋지 않아 시즌 중간에 캔슬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시청률은 쇼의 캔슬을 위한 명분이고, 사실은 새 시즌을 시작하기 직전 앤더슨이 커밍아웃을 했고 이에 높으신 분들이 압력을 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었다.

본인의 데이타임 쇼를 하기 한참 전부터 그는 절친이기도 한 켈리 리파가 진행하는 'Live! with Kelly'에 남자 호스트 대타로 자주 출연했다. 최근에 켈리 리파의 파트너 호스트를 하던 마이클 스트라한이 제작진, 켈리 리파와의 불화를 까닭으로 쇼 하차 선언을 한 이후 앤더슨이 켈리 리파의 새로운 정식 파트너 호스트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그가 또 데이타임 쇼 호스트를 겸업으로 투잡을 할지는 미지수.

5. 기타

얼마 후 앤더슨도 코난을 맞디스했다.

5.1. 어머니 글로리아 밴더빌트

앤더슨 쿠퍼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어머니 글로리아 밴더빌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지나가기가 어려운데 한국에서는 글로리아 밴더빌트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앤더슨 쿠퍼가 유명해지기 전에는 어머니 글로리아 밴더빌트가 훨씬 유명했다. 글로리아가 어린 시절 벌어진 글로리아 양육권 재판의 주인공으로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글로리아 양육권 재판에 관한 이야기는 1982년 Little Gloria... Happy at Last라는 제목으로 2부작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한국에서도 1984년 KBS1 TV에서 리틀 글로리아라는 제목으로 방영했다. 유튜브에도 풀려 있어서 볼 수 있다.
Little Gloria... Happy at Last 1부
Little Gloria... Happy at Last 2부

유명한 대재벌 밴더빌트 가문의 상속녀에 관한 양육권 분쟁이라 재산 싸움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재산과는 큰 관련없는 양육권 분쟁이었다. 실제 양육권 재판 당사자 중 한 쪽 이었던 글로리아의 고모는 글로리아가 상속받을 재산보다 월등하게 많은 재산을 보유한 자산가였고, 글로리아의 어머니 글로리아 모건에게 글로리아의 상속재산보다 더 많은 금액을 주겠노라 제시했음에도 글로리아의 어머니 글로리아 모건은 이를 거부하고 재판을 진행했다.

글로리아 모건(이하 모건으로 통칭)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글로리아의 아버지와 결혼했고 19살에 글로리아를 낳았지만 글로리아가 18개월 때 남편이 사망하며 20살의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모건은 아직 어린 글로리아의 양육을 자기 어머니 즉 글로리아의 외할머니와 도도라는 별명을 가진 유모에게 맡기고 자신은 파티에 놀러다니거나 연애하기 바빴는데, 이 생활이 계속되다보니 글로리아는 도도라는 유모를 자신의 친어머니인 모건보다 더 친근하게 여겼다고 한다.[42] 모건은 이를 알고 자신의 일란성 쌍둥이인 텔마와 함께 이 도도라는 유모를 해고하려 했으나, 글로리아가 먼저 외할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글로리아의 외할머니는 글로리아가 유모 도도를 얼마나 의지하는지 잘 알고 있는데다 자기 딸이 얼마나 막장인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글로리아의 고모[43]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한다. 글로리아의 고모 입장에서는 애 엄마가 얼마나 막장이면 외할머니마저 본인의 딸을 믿지 못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나 싶어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고, 이것이 그만 모건과의 감정 싸움으로 번져 결국 재판까지 가게 된다.

이 재판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미국내 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일본 언론에까지 대서특필되어 재판이 끌날 때까지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재판의 결과는 글로리아와 모건, 양쪽 모두에게 큰 상처만을 남겼다. 유모 도도는 글로리아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았고, 어머니 모건은 딸 글로리아에 대한 양육권을 박탈당하고, 동성애자임이 세상에 알려졌으며, 방탕하고 음란한 인물로 인식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글로리아가 성인이 된 뒤에야 화해할 수 있었다. 글로리아는 이후 패션디자이너와 배우 등으로 활동하게 되며 하워드 휴즈오손 웰즈 등이 포함된 당대의 유명인사들과 교제한다.
여담이지만 글로리아의 어머니 글로리아 모건은 영국 왕실과도 상당히 관련이 있었다. 그녀의 일란성 쌍둥이인 텔마 모건은 에드워드 8세의 왕세자 시절 애인이었고, 글로리아 모건 자신은 동성애자로 밀포든 헤이븐 후작부인 나데이다 마운트배튼[44]과 염문이 있었는데, 글로리아 양육 재판 당시에 글로리아 모건의 난잡한 사생활에 대한 증거로 밴더빌트 가문의 메이드에 의해 재판장에서 두 사람의 동성애 관계가 폭로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당시에는 적극적으로 부인했지만 훗날 글로리아는 어머니와 후작부인이 함께 침대에 있는 걸 어린 시절 목격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다만 두 사람의 성관계를 목격한 건 아니고 두 사람이 잠옷 차림으로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보았다고 한다. 앤더슨 쿠퍼는 외할머니의 동성애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자신의 동성애 성향이 유전인가 싶어서 엄청 괴로웠다고 한다.

[1] 두 자녀를 대리모를 통해 얻었다.[2] 원래는 짙은 밤색머리였다. 덕분에 그의 별명은 Silver Fox or White Fox.[3] 밴더빌트 대학교를 세운 사람이다. 참고로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역에 밴더빌트의 동상이 있다. 옛날에는 밴더빌트가 그랜드센트럴역을 소유했었다.[4] 물론 속보를 전해야 할 경우에는 데스크에서 급파시키기도 한다. 이 때문에 휴가를 보내던 중 복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5] 조정 경기에서 콕스웨인은 가장 우수한 사람이 맡는다. 일종의 사령관. 미국 명문대의 조정 경기 팀의 위상을 생각해본다면, 말인즉슨 엄청난 엘리트였다는 의미이다.[6] 사실 ABC 방송국에서 거절당한 후 채널원에 들어가서 기사의 사실 여부를 체크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일을 그만두고 미얀마에 가서 찍은 비디오를 채널원이 구입하고 그는 정식 기자로 채용됐고, 결국 ABC 방송국으로 들어갔다. 후에 CNN으로 옮기지만.[7] 배우 벤 애플렉 역시 조상 중 노예 소유주가 있었는데, 이에 벤 애플렉은 통편집을 요청했다가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해프닝을 일으키기도 했다. 유명인이 자신의 조상의 잘못을 사과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사죄를 요구하거나 망신주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저런 프로그램에 나와서야 알게 될 정도면 평소 알지도 못했을 정도로 먼 조상의 이야기이기도 하고.[8] 함께 등장한 여성은 마찬가지로 레즈비언인 조디 포스터이며, 2013년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을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했다.[9] 그러나 정작 쿠퍼 본인은 이런 반응을 은근히 즐겼는지, 스스로 방송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 논란에 대한 농담을 한 적도 있었다.관련영상[10] 커플티 차림이었으며, 상대는 프랑스계 6살 연하에 뉴욕의 게이바 오너라고.[11] 참고로 중앙일보와 했던 이메일 인터뷰 후반부에 그가 과거에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한 것을 바탕으로 가정과 일에 대해 어떻게 균형을 이룰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그는 둘 다 잘하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12] 코미디언 로지 오도널, 디자이너 톰 포드, 섹스 앤 더 시티로 유명한 배우 신시아 닉슨, 팝 스타 리키 마틴도 수상한 적이 있다.[13] 사실 종군 기자로서의 경력을 따지자면 선배인 영국계 이란인 여기자 크리스티안 아만포가 훨씬 더 경력이 많다.[14] 지상파, YTN의 정시 뉴스 같은 프로그램이다.[15] 다만 위의 각주에서도 기술했듯이 데스크에서 급파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16] 이때부터 말로만 대책을 세우던 루이지애나 주의 상원의원을 생방송으로 까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17] 이 때 처음으로 머리를 맞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18] 현지 날짜 2013년 4월 15일에 발생한 보스턴 폭탄테러 사건을 보도하기 위해 보스턴에 갔다 이틀 뒤 웨이코 비료공장 폭발 사고가 발생하자 다음날 바로 사고가 발생한 텍사스의 웨스트시로 날아갔다.[19] 그리고 2018년 8월 18일 'CNH 2018 포럼' 참석 차 정식 방한한다.[20] 원래는 1주일 동안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에서 생방송을 할 예정이었으나, 무슨 이유인지 사흘 만에 뉴욕 스튜디오로 돌아와 생방송을 했다.[21] 사건이 발생한 2015년 1월 7일, 아침 9시에 뉴욕 스튜디오에서 속보를 전하고 곧장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프랑스 현지 시각 새벽 2시에 생방송을 진행했다. 그리고 본인의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Je suis Charlie'(나는 샤를리다)라는 메시지가 적힌 그림으로 바꾸었다.[22] CNN의 경쟁 채널들로는 대표적으로 폭스 뉴스MSNBC가 있다.[23] 참고로 뉴올리언스는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다.[24] 본인 역할로 특별출연[25] 주로 캐시가 앤더슨에게 짓궂은 장난을 걸면 앤더슨은 이에 어쩔 줄 몰라하는 편. 이 둘은 평소에도 죽이 잘 맞는 친한 사이다.[26] 앤더슨이 밴더빌트 가문 출신임을 언급하며 'And we'll never be royals'라는 가사를 'I am a royal, You wrong Lorde, I am a totally royal'로 개사했다.[27] 우리나라의 시사매거진 2580같은 프로그램이다.[28] 매주 출연하는 고정 인터뷰어는 아니다. 가끔 취재를 위해 해외로 나갈 때는 자신의 프로그램 'Anderson Cooper 360°'을 동료 기자가 대타 진행한다.[29] 우리나라에서는 '더 몰: 스파이를 찾아라'라는 제목으로 QTV에서 방영한 적이 있었다.[30] 다만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커피맛이라고 밝혔다. 그냥 뜨거운 커피만 못 마시는 듯.[31] 한 번은 자신이 뜨거운 음료는 안 마신다는 걸 피력하며 커피향이 첨가된 콜라인 코카콜라 블랙을 꺼내서 자신이 언제나 마시는 콜라와 섞인 시원한 커피라면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며 얼음이 담긴 컵에 따라 마셨다가 곧 표정이 구겨지며 슬쩍 옆을 보더니 입 안에 있는 액체를 바닥에 퉤 뱉어버렸다. 아무래도 커피의 향과 쓴 맛이 불호인 모양.[32] 베이컨 버티는 두 개의 번 사이에 베이컨만 끼운 샌드위치로, 그 자리에 있던 영국인 특파원의 말에 의하면 해장용으로 먹는다고 한다.[33] 실제로 백지연은 앤더슨을 섭외 후 SNS로 이에 대한 기쁨을 표현했다.[34] 차트를 달리는 남자 방송사고 2편에서 보여준게 있는데 프랑스의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의 비행기 무단방뇨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이였다. 그리고 농담으로 '소변이 아니라 대변이였음 어쩔 뻔 했냐.'로 말했는데[35] 이때 "Get ready for Anderson Cooper 360!"라고 말한다.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Anderson Cooper 360°'을 이용한 개그.[36] 물론 뉴욕 JFK 공항에서 출발하는 팔라우 직항도 존재한다.[37] 앤더슨 뿐만 아니라 실제 기자들이 영화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케이스가 많이 있는데, 007 스카이폴에서도 CNN 기자 울프 블리처가 영화 속에서 본인의 프로그램을 통해 뉴스를 보도하는 모습이 나온다.[38] 미드 '키친 컨피덴셜'의 원작 저자로도 유명하며 CNN에서 요리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8년 6월 8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39] 테드 크루즈의 아내.[40] 참고로 루오모 보그 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항상 자기는 아버지처럼 50세에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41] 이 행동을 여성 혐오로 보는 쪽은 인터뷰 내용을 떠나 발언하는 여성을 상대로 눈알을 굴리는 행동을 한 것 자체에 비판을 했고, 그렇지 않은 쪽은 켈리앤 콘웨이가 먼저 윙크를 해서 그에 대한 반응이라고 봤다. 실제로 켈리앤 콘웨이는 아이 롤을 시전당하고 이것을 여성 혐오라고 반격을 했다.[42] 글로리아의 증언에 의하면 뭘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도도가 자신의 친엄마이고, 정작 친엄마는 그저 뭔가 좀 다른 존재인 줄 알았다고 한다.[43] 글로리아의 아버지의 누나로 글로리아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 차가 많아서 글로리아의 외할머니보다 나이가 많았다.[44] 본명은 나데이다 미하일로브나 데 토르비이며, 2대 밀포든 헤이븐 후작 조지 마운트배튼의 아내다. 니콜라이 1세의 친손자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대공과 메렌베르크의 조피 여백작이 귀천상혼으로 결혼하여 낳은 1남 2녀 중 차녀로, 외가쪽으로 가면 증조할아버지(어머니 조피의 외할아버지)가 무려 러시아의 국민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다. 그이외에 친척관계로는 필립 마운트배튼의 큰외숙모이자 루이 마운트배튼의 형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