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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게임

오락실 게임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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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게임에서 가장 성공한 게임인 팩맨
1. 개요2. 특징3. 역사
3.1. 아케이드 게임의 태동3.2. 장르의 1차 다변화3.3. 암흑기3.4. HD 시대 이후
4. 목록5. 관련 문서

1. 개요


오락실 등 특정한 장소에서 화폐[1]를 지불하고 플레이하는 게임을 일컫는 말. 한국에서 시장 조사를 할 때 '업소용 게임'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때도 있다.

어원은 아케이드로,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오락실이 주로 쇼핑 아케이드 안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정확히는 아케이드 상가에서 시간 때우기용으로 설치하기 시작한 비디오 게임 기기들을 나중에 PC 게임, 가정용 콘솔 게임과 구분하기 위해 아케이드의 게임으로 구분하던 것이 고착된 것이다. 이후 아케이드용 게임 기기들이 게임 센터 등으로 아케이드를 떠난 뒤로도 해당 게임 장르나 게임 기기를 아케이드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아케이드 게임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대형 게임 회사들이 많을 정도로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거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이지만, 한국에서는 오락실과 아케이드 산업, 콘솔 산업에 부정적인 시선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심한 상황에서 2000년대 이후 인터넷과 PC의 대중화[2]거치형 콘솔 게임기PC 게이밍에 비해서 해당 분야의 발전이 미비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분야이다.

일반적으로 1980년대 전후를 발흥기와 융성기로 간주하며 19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해왔으나 2000년대초부터 PC와 콘솔의 성능 향상과 그것들의 보급, 2010년대 초부터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장르의 매니아화 등의 이유로 급속도로 쇠퇴했으며 2010년대 이후 사실상 사양길로 접어든 산업이다.

2. 특징

개인용이 아니고 기기 수와 장소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최대한 여러 사람이 많은 동전을 넣고 즐길 수 있도록 내용을 짧고 강렬하며 스피디하게 만드는 것이 아케이드 게임의 특징이다. 이는 아케이드같은, 사람의 소통이 많고 혼잡한 곳에 들어가는 업소용 게임은 가정용 게임과 다르게 회전율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3. 역사

3.1. 아케이드 게임의 태동

~1984년
1960년대에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 부흥이 각국에서 이루어지며 문화 및 유흥에 관심이 기울어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기술 발달이 다소 느리게 진행되어 게임을 개발할 의지는 있었지만 쉽사리 진척되지는 못했다. 실질적으로 아케이드 게임 시장은 1970년대 무렵 아타리의 퐁과 타이토의 스페이스 인베이더 등이 이끌었으나 그 구상은 1960년대 후반에 어느 정도 시도된 듯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법복제(해적판, 해킹롬)라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는데, 이 무렵 전 세계의 메이커들이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불법복제 및 모방작을 만들어 자사의 게임인 것처럼 팔았다. 타이토는 일본 내에서 소송을 걸 수 있었지만, 해외에서는 이를 포기함으로써 북아메리카에서는 미드웨이가, 일본에서는 세가 등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게임기 및 아케이드 시장의 질서가 잡혀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3.2. 장르의 1차 다변화

1984년~1996년

1990년부터 한동안 1코인에 100원이었다.[6] 1983년 패미컴이 출시됨에 따라 아케이드 게임 시장을 위협했다. 이는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였는데 퐁이 세계적인 대히트를 치게 된 이래 슈팅 게임, 보드게임, 스포츠 게임이 기존의 주류였으나, 보다 장르의 다변화가 시도됨으로써 당대 아케이드 게임계에 새로운 혁명이 일어났다. 이때 유행 붐을 일으킨 게임 장르는 다음과 같다.

3.3. 암흑기

1996년~2005년

그동안 플레이스테이션 등 가정용 게임기와 PC 플랫폼 기반의 게임들이 우후죽순 출시되어 대세로 자리 잡았어도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 건재했었다. 왜냐하면 당시 PC나 가정용 게임기의 성능이 아케이드 게임을 못 따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플랫폼의 게임이 발달하고 게임 외의 대체 컨텐츠가 부상하면서 아케이드 게임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세계 규모로 보면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아케이드 시장을 넘어선 1991년, 1994년, 그리고 1998년 이후 계속인데, 이 시기가 아케이드 게임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 미국시장은 1992년을 피크로 1차 하락, 1996년을 피크로 2차 하락하여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다. 일본은 아케이드 시장 규모 자체는 2006년이 피크이지만 이미 1997년 이후 기존의 BM(액션, 슈팅, 대전 격투 등)이 먹히지 않게 되어 경마, 퀴즈, TCG융합 등의 새로운 BM을 도입한 결과이다.[14] 일본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1986년에 이미 아케이드 게임기 시장을 넘어선지 오래였으나[15] 하드웨어 성능과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했기에 현상유지 자체는 가능했다. 아케이드 시장은 1992년을 피크로 해서[16] 대전 격투 게임 붐을 타서 현상유지를 하다가 1997년부터 다시 하락했는데 파이널 판타지 7 등 차세대기의 인기 작품이 아케이드 게임이 대체 불가한 경험을 제공하자 유저가 대거 떠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일본에서는 조금 늦은 2007년부터 대세를 이젠 더 이상 거스를 수 없었는지 가정용 PCNVIDIA GeForce 2 MX같은 합리적인 그래픽 카드들의 보급, DVD 플레이어 대안이라는 마케팅 덕을 본 후속 기종인 플레이스테이션 2의 전세계적인 초대박[17]으로 인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축소가 본격화되었다.

그와 동시에 1990년대에 가장 인기가 높았던[18] 대전 격투 게임 장르는 복잡성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잘하는 사람만 살아남는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되어 버리기 쉽다는 한계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점차 새로운 것을 원하기 시작했는데[19][20] 한편 코나미에서 1997년 말 BM, 1998년 DDR을 필두로 한 BEMANI라는 게임 브랜드를 등록하고, 남코도 2001년 태고의 달인 시리즈을 내놓아 극악의 채보를 원하는 하드코어 유저와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원하는 라이트 유저들을 동시에 열광시킴으로써 기존 대전 격투 게임이 장악하고 있던 파이를 리듬 게임이 조금씩 가져가게 되었다.

이 시기 국가별 아케이드 게임계 상황은 다음과 같다.

3.4. HD 시대 이후

2005년~

2009년 전후 물가 사정으로 사실상 거의 모든 전국 오락실이 1코인에 500원이 되었으며, 이전과 다르게 스틱형게임의 경우 단일 소프트보다는 월광보합처럼 합팩으로 가동되고[24] 코인노래방, 인형뽑기 등과 함께 영업하고 있는 곳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는 전자기기의 대혁명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25]

특히 리듬 게임을 보면 알 수 있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터치 스크린을 사용했던 게임들 중 DJMAX TECHNIKA 시리즈, 유비트 시리즈, 리플렉 비트 시리즈, 비트스트림, CROSSxBEATS, 싱크로니카, THE iDOLM@STER 무인판 등등 여러 게임들이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해 터치 스크린이 대중화되면서 굳이 오락실까지 와서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 게임을 즐길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서비스가 종료되었거나 인기가 굉장히 시들시들해졌다.

거기다 노스텔지어, maimai 시리즈, 퀴즈 매직 아카데미, 마작 파이트 클럽의 경우 터치 스크린보다는 버튼, 혹은 전신을 이용하는 성향이 더욱 강한 작품 혹은 리듬 게임이 아닌 머리를 써야하는 보드, 퍼즐 게임인 데다가 대부분 일본에서만 돌아간다. 특히 노스텔지어의 경우 게임 상에서 터치 스크린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곡 선곡시에 터치 스크린을 사용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리듬 게임은 꾸준히 완전히 새로운 플레이 방식이나 새로운 이벤트를 통해 유저 수를 끌어들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고, 그에 걸맞게 댄스러쉬, 츄니즘, WACCA 등의 여러 게임들이 등장하여 유저들을 끌어모으는 유의미한 성과를 보였다.

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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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문서


[1] 대부분 동전.[2] 2000년대 초중반 PlayStation 2 정발 이후 가정용 콘솔 게임이 온라인 PC 게임 못지 않게 흥행했다.[3] 당시로써는 테레비 게임[4] 타이토가 미드웨이로부터 기판 제공을 받았다.[5] 물론 이 시기에도 다른 종류의 게임도 출시되거나 제작되기도 했지만 제대로 주도하게 된건 80년대 중반부터이다.[6] 일본은 규모가 큰 게임 센터의 경우 80년대 후반부터 계속 100엔, 대형 기기는 200엔을 유지했다.[7]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케이드 게임기가 기술적인 선구자격 플랫폼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 등 스펙이 대폭 강화된 5세대 가정용 게임기의 등장으로 아케이드 게임기와 가정용 게임기의 기술적인 격차가 대등해졌다. 물론 버추어 레이싱~버추어 파이터 2 그 이전에 1988년의 위닝 런과 탑 랜딩, 1989년의 하드 드라이빙 등과 같이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게임들도 입체감은 있지만 정작 해당 게임들은 투박하여 잘 만든 2D 그래픽은 이길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8] 열혈경파 쿠니오군 출시 당시 후속작으로 적의 무기를 주워 공격하고 조직의 보스를 쓰러트리기 위해 주인공의 라이벌이 일시적으로 협력한다는 내용의 기획으로 시작했다고 한다.(출처)[9] 다만 일본 GAMEST에 따르면 출시 후 인기 1위에 오르지만 5개월 후 10위권 아래로 떨어지는 등 롱런을 하지는 못하고 평가면에서도 대상 10위권에 들지 못하였다. 그래도 인컴면에서는 3위를 했는데, 1위가 R-TYPE, 2위가 1943 미드웨이 해전으로 명작 슈팅 게임들에 밀렸다.[10] 여담이지만 1989년에 WWF 슈퍼스타즈, 바이올런스 파이트 그리고 2년 뒤 WWF 레슬페스트스트리트 파이터 2가 출시되었다.[11] 물론 파이널 파이트 이전에 스트리트 파이터 1이 더블 드래곤과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었으나 이 게임도 더블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실질적으로 조작 가능한 캐릭터는 색깔만 다른 1p, 2p 캐릭터 뿐이다. 이에 한 개발진은 레츠 같은 적 캐릭터로 플레이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였으며, 야스다 아키라가 미국에서 더블 드래곤 등이 인기를 모으는 광경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후속작은 처음엔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12] GAMEST 순위를 보면 스파2의 새로운 버전이 나오면 기존 버전은 2위를 차지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13] 기존의 대전 격투 게임의 경우 장풍과 같이 비교적 만화적인 연출을 보여준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는 핵심 개발자인 스즈키 유의 경험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이에 대세로 철권 시리즈 그리고 소울 시리즈와 같은 게임들이 후발주자로서 나서게 된다.[14] 또한 스티커 사진이나 크레인 게임 등 다른 계통의 수입도 아케이드 업소의 수입의 일부였고 아케이드 게임이 푸대접을 받자 점점 그 비중이 커졌다.[15] 1986년은 드래곤 퀘스트가 발매된 해이고, 패미컴이 1983년에 출시되어 점점 보급율이 높아지던 시기이다.[16] 스트리트 파이터 2아랑전설이 출시된 직후이다.[17] 2년 먼저 나왔던 드림캐스트는 DVD 매체를 지원하지 않았다.[18] 역사상 가장 인기가 높았던 장르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부류이다.[19] GAMEST 대상을 보면 1996년은 버추얼 온을 제외하고 10위권이 모두 대전 격투 게임이었지만 1997년은 3위가 전차로 GO!, 4위가 도돈파치, 5위가 G 다라이어스, 1998년 대상은 변형된 대전 격투 게임인 사이킥 포스일 정도라서 장르적으로는 다시 다양성이 생겼다.[20] 비록 2000년을 넘어가면서 아케이드 게임의 대세가 2D보다 3D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2D 대전 격투 게임은 점차 하향세로 접어들었지만, 철권 시리즈,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KOF 시리즈, 길티기어 시리즈, 멜티 블러드 등 몇몇 견인작 덕분에 아케이드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조금이나마 유지하게 되었다.[21] 이때를 기점으로 국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은 리듬 게임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기 시작했고, 현재에도 대부분의 오락실들은 리듬 게임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많다.[22] 예를 들어 THE iDOLM@STER 무인판, 삼국지대전 등. 트레이딩 카드 게임비디오 게임을 융합한 독특한 시스템도 구축하였다.[23] 독일 같은 경우는 아케이드 게임에 사행성 게임과 같은 규제를 가하기 시작해서 완전히 몰락했다고 한다. 현재도 신규 점포를 열 수 없는 수준이라고.[24]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콘셉트로 운영되고 있다. 합법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 대표적으로 네시카 크로스 라이브exA-Arcadia가 있다.[25] 여담으로 국내에서도 최후의 온라인 아케이드 대전 격투 게임이었던 철권 7 페이티드 레트리뷰션이 2018년 5월 31일에 서비스 종료됨에 따라 국내 오락실에서의 대전 격투 게임 씬도 이때를 기점으로 종언을 맞이했다.[26] 예를 들어 남코가 인기작이던 갤러가를 다시 VR로 만드는 것. 레이싱 아케이드와 같이 우주선 기기 모양의 기계에 타고 VR 고글을 쓰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으로 적들을 죽이는 게임이 탄생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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