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이드 게임에서 가장 성공한 게임인 팩맨 |
1. 개요
- 영어: Arcade Game
- 일본어: アーケードゲーム
오락실 등 특정한 장소에서 화폐[1]를 지불하고 플레이하는 게임을 일컫는 말. 한국에서 시장 조사를 할 때 '업소용 게임'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때도 있다.
어원은 아케이드로,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오락실이 주로 쇼핑 아케이드 안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정확히는 아케이드 상가에서 시간 때우기용으로 설치하기 시작한 비디오 게임 기기들을 나중에 PC 게임, 가정용 콘솔 게임과 구분하기 위해 아케이드의 게임으로 구분하던 것이 고착된 것이다. 이후 아케이드용 게임 기기들이 게임 센터 등으로 아케이드를 떠난 뒤로도 해당 게임 장르나 게임 기기를 아케이드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아케이드 게임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대형 게임 회사들이 많을 정도로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거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이지만, 한국에서는 오락실과 아케이드 산업, 콘솔 산업에 부정적인 시선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심한 상황에서 2000년대 이후 인터넷과 PC의 대중화[2]로 거치형 콘솔 게임기나 PC 게이밍에 비해서 해당 분야의 발전이 미비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분야이다.
일반적으로 1980년대 전후를 발흥기와 융성기로 간주하며 19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해왔으나 2000년대초부터 PC와 콘솔의 성능 향상과 그것들의 보급, 2010년대 초부터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장르의 매니아화 등의 이유로 급속도로 쇠퇴했으며 2010년대 이후 사실상 사양길로 접어든 산업이다.
2. 특징
개인용이 아니고 기기 수와 장소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최대한 여러 사람이 많은 동전을 넣고 즐길 수 있도록 내용을 짧고 강렬하며 스피디하게 만드는 것이 아케이드 게임의 특징이다. 이는 아케이드같은, 사람의 소통이 많고 혼잡한 곳에 들어가는 업소용 게임은 가정용 게임과 다르게 회전율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3. 역사
3.1. 아케이드 게임의 태동
~1984년1960년대에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 부흥이 각국에서 이루어지며 문화 및 유흥에 관심이 기울어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기술 발달이 다소 느리게 진행되어 게임을 개발할 의지는 있었지만 쉽사리 진척되지는 못했다. 실질적으로 아케이드 게임 시장은 1970년대 무렵 아타리의 퐁과 타이토의 스페이스 인베이더 등이 이끌었으나 그 구상은 1960년대 후반에 어느 정도 시도된 듯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법복제(해적판, 해킹롬)라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는데, 이 무렵 전 세계의 메이커들이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불법복제 및 모방작을 만들어 자사의 게임인 것처럼 팔았다. 타이토는 일본 내에서 소송을 걸 수 있었지만, 해외에서는 이를 포기함으로써 북아메리카에서는 미드웨이가, 일본에서는 세가 등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게임기 및 아케이드 시장의 질서가 잡혀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 비디오 게임의 등장
1960년대 초반 전후 무렵 윌리 비긴보섬과 스티븐 러셀에 의해 탄생된 비디오 게임[3]은 이후 아타리가 퐁 게임을 출시하게 되면서 핀볼과 같이 사물을 움직이는 형태인 아날로그 계열이 주류였던 당대 아케이드 게임 시장을 바꾸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기 러시아계 유대인에 의해 설립된 타이토는 본래 주크박스 수입 위주였으나, 미드웨이로부터 개발 협력을 얻어내고 일본으로 미드웨이의 게임을 들여왔다. 특히 아스트로 레이스, 부트 힐이나 건 파이트 같은 게임들은 타이토와 미드웨이에 좋은 판매량을 가져다 주었으며 이후 1978년, 타이토와 미드웨이[4]가 공동 제작한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일구어 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각종 아류작들이 발매되었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타 회사의 게임도 많았다.
- 주류 국가의 교체
1978년~1984년은 여러모로 과도기로 그 동안 여태까지 주도했던 미국에서 일본이 실질적인 주도로 바뀐 시기이다. 남코는 79년에 갤러그의 원형인 갤럭시안을 출시하고, 이후 제비우스 등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그렇게 스포츠 장르 외에도 보드 게임 및 슈팅 게임도 역시 본류를 이루어 그렇게 전 세계의 아케이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5]
하지만 이로 인해 일본의 오락실은 남성과 남자아이들만 가득했고 퀴퀴하고 음침한 가게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남코의 게임 디자이너 이와타니 토오루는 이 상황을 바꿔보고 싶었다. 그동안 남자의 전유물이었던 오락실의 비디오 게임을 커플들과 여자아이들에게도 전파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이와타니는 피자의 모양과 귀여운 모양새와 알록달록한 컬러를 이용해 게임을 만들자는 기획하에 팩맨을 탄생시키고, 이는 일본 및 전세계, 특히 북미 시장에 유래없는 붐을 일으켰다.
3.2. 장르의 1차 다변화
1984년~1996년1990년부터 한동안 1코인에 100원이었다.[6] 1983년 패미컴이 출시됨에 따라 아케이드 게임 시장을 위협했다. 이는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였는데 퐁이 세계적인 대히트를 치게 된 이래 슈팅 게임, 보드게임, 스포츠 게임이 기존의 주류였으나, 보다 장르의 다변화가 시도됨으로써 당대 아케이드 게임계에 새로운 혁명이 일어났다. 이때 유행 붐을 일으킨 게임 장르는 다음과 같다.
- 체감형 게임의 태동
남코의 폴 포지션과 세가에서 낸 스페이스 해리어와 행온은 여러모로 충격 그 자체였는데 이는 스틱과 버튼으로 즐기는 것이 기본이었던 아케이드 게임계에서는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아웃런, 선더 블레이드 등의 차기작을 연이어 출시하였고, 타이토와 코나미 등의 제작사들 또한 이를 주목하면서 오퍼레이션 울프, 체이스 HQ, WEC 르망 24시 등의 작품을 제작하였고 거기다 여기엔 당대 최첨단 기술인 폴리곤 기법 그리고 그 기반으로 텍스처 효과가 적용된 3D 그래픽[7]이 90년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선보이면서 정점을 이루었다.
- 쿠니오가 가져다 준 나비 효과
슈팅 게임과 보드 게임이 주를 이루던 1986년 무렵 당시 액션 게임에 대한 여러 노하우를 쌓던 테크노스 재팬에서 출시한 열혈경파 쿠니오군과 본래 그 후속작의 기획으로 시작해[8] 이전의 게임성들을 집대성한 더블 드래곤[9]이 전세계적인 대히트를 치게 되면서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 열풍이 일어났다. 특히 그 중에서는 실사 그래픽을 선보인 나르크, 실질적인 3인 이상 액션 게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크라임 파이터즈과 닌자 거북이, 그리고 희대의 대작이라 할 수 있는 파이널 파이트가 1989년 전후로 연이어 출시되면서 또 다른 게임 장르인 대전 격투 게임의 완성으로 이어졌다.[10]
1991년 초반에 첫 출시된 스트리트 파이터 2는 파이널 파이트 이상[11]으로 전 세계의 서브컬쳐 그 자체[12]를 막론하고 모두 사로잡음으로써 다양한 아류작들을 양산했는데 그 중 스파르탄 X의 제작진을 영입한 SNK와 실사 그래픽에 대한 여러 노하우를 가진 미드웨이의 경우 한동안 캡콤의 아성을 위협했으며, 버추어 레이싱의 노하우를 토대로 출시한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는 기존의 대전 격투 게임 그 이상[13] 전세계적인 대히트를 쳤다. 거기다 심지어 아타리와 세가에 의해 본격적인 유행을 타게 된 테트리스도 역시 그 영향을 받아 훗날 뿌요뿌요 시리즈, 퍼즐버블 같이 변형된 게임들이 나오게 되었다.
3.3. 암흑기
1996년~2005년그동안 플레이스테이션 등 가정용 게임기와 PC 플랫폼 기반의 게임들이 우후죽순 출시되어 대세로 자리 잡았어도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 건재했었다. 왜냐하면 당시 PC나 가정용 게임기의 성능이 아케이드 게임을 못 따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플랫폼의 게임이 발달하고 게임 외의 대체 컨텐츠가 부상하면서 아케이드 게임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세계 규모로 보면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아케이드 시장을 넘어선 1991년, 1994년, 그리고 1998년 이후 계속인데, 이 시기가 아케이드 게임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 미국시장은 1992년을 피크로 1차 하락, 1996년을 피크로 2차 하락하여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다. 일본은 아케이드 시장 규모 자체는 2006년이 피크이지만 이미 1997년 이후 기존의 BM(액션, 슈팅, 대전 격투 등)이 먹히지 않게 되어 경마, 퀴즈, TCG융합 등의 새로운 BM을 도입한 결과이다.[14] 일본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1986년에 이미 아케이드 게임기 시장을 넘어선지 오래였으나[15] 하드웨어 성능과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했기에 현상유지 자체는 가능했다. 아케이드 시장은 1992년을 피크로 해서[16] 대전 격투 게임 붐을 타서 현상유지를 하다가 1997년부터 다시 하락했는데 파이널 판타지 7 등 차세대기의 인기 작품이 아케이드 게임이 대체 불가한 경험을 제공하자 유저가 대거 떠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일본에서는 조금 늦은 2007년부터 대세를 이젠 더 이상 거스를 수 없었는지 가정용 PC와 NVIDIA GeForce 2 MX같은 합리적인 그래픽 카드들의 보급, DVD 플레이어 대안이라는 마케팅 덕을 본 후속 기종인 플레이스테이션 2의 전세계적인 초대박[17]으로 인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축소가 본격화되었다.
그와 동시에 1990년대에 가장 인기가 높았던[18] 대전 격투 게임 장르는 복잡성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잘하는 사람만 살아남는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되어 버리기 쉽다는 한계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점차 새로운 것을 원하기 시작했는데[19][20] 한편 코나미에서 1997년 말 BM, 1998년 DDR을 필두로 한 BEMANI라는 게임 브랜드를 등록하고, 남코도 2001년 태고의 달인 시리즈을 내놓아 극악의 채보를 원하는 하드코어 유저와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원하는 라이트 유저들을 동시에 열광시킴으로써 기존 대전 격투 게임이 장악하고 있던 파이를 리듬 게임이 조금씩 가져가게 되었다.
이 시기 국가별 아케이드 게임계 상황은 다음과 같다.
- 한국
1999년에 EZ2DJ와 펌프 잇 업이라는 국산 리듬 게임을 중심으로 그 열풍이 불면서[21] 오락실 시장의 축소가 지연되었을 뿐, 1999년 10월 국민PC, 2002년 2월 PS2의 정발과 PC 플랫폼 기반 온라인 게임의 보편화로 기존의 '친구들과 함께 놀러가는 곳'이었던 오락실은 PC방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고, 한국 역시 기존 아케이드 게임 장르의 몰락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 일본
2001년부터 아케이드 게임에 ALL.Net같은 네트워크 서비스를 도입하기 시작하고, 개인 플레이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한 마그네틱 카드 등을 도입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활로를 모색하면서 이제까지 오락실에서 볼 수 없었던 장르인 육성,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들[22]이 등장하는 등 오락실 게임에서의 장르 2차 다변화가 시작되었다.
한편 2001년부터 건담 vs 시리즈가 나오게 되었는데,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롱런한 전뇌전기 버추얼 온과 유사한 방식을 계승한 게임으로 비록 기존 대전 격투 게임이나 리듬 게임처럼 장르 자체의 붐은 가져오지 못했지만 그냥 시리즈 자체가 일본 아케이드 시장 대표 타이틀이 되었다.
꾸준한 인기를 얻었던 네오지오 기판은 1997년에 피크에 달하고 1998년부터 하락세를 보이다가 2004년에 사무라이 스피리츠 제로 스페셜을 끝으로 신작 제작을 종료했고 신작은 다른 회사의 신규 기판을 사용하게 되었다.
- 구미권
북미를 비롯한 구미권은 다양한 원인으로 아케이드 시장 침체가 더욱 심하게 진행되었고[23] 1990년대 후반부터 아케이드 게임 센터 자체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아케이드 게임기는 대학 매점 등 한정된 공간에 설치되는 수준이었다. 북미를 대표하는 아케이드 게임 모탈 컴뱃 시리즈도 1997년작인 모탈 컴뱃 4 이후는 콘솔로만 발매되었다.
3.4. HD 시대 이후
2005년~2009년 전후 물가 사정으로 사실상 거의 모든 전국 오락실이 1코인에 500원이 되었으며, 이전과 다르게 스틱형게임의 경우 단일 소프트보다는 월광보합처럼 합팩으로 가동되고[24] 코인노래방, 인형뽑기 등과 함께 영업하고 있는 곳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는 전자기기의 대혁명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25]
특히 리듬 게임을 보면 알 수 있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터치 스크린을 사용했던 게임들 중 DJMAX TECHNIKA 시리즈, 유비트 시리즈, 리플렉 비트 시리즈, 비트스트림, CROSSxBEATS, 싱크로니카, THE iDOLM@STER 무인판 등등 여러 게임들이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해 터치 스크린이 대중화되면서 굳이 오락실까지 와서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 게임을 즐길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서비스가 종료되었거나 인기가 굉장히 시들시들해졌다.
거기다 노스텔지어, maimai 시리즈, 퀴즈 매직 아카데미, 마작 파이트 클럽의 경우 터치 스크린보다는 버튼, 혹은 전신을 이용하는 성향이 더욱 강한 작품 혹은 리듬 게임이 아닌 머리를 써야하는 보드, 퍼즐 게임인 데다가 대부분 일본에서만 돌아간다. 특히 노스텔지어의 경우 게임 상에서 터치 스크린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곡 선곡시에 터치 스크린을 사용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리듬 게임은 꾸준히 완전히 새로운 플레이 방식이나 새로운 이벤트를 통해 유저 수를 끌어들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고, 그에 걸맞게 댄스러쉬, 츄니즘, WACCA 등의 여러 게임들이 등장하여 유저들을 끌어모으는 유의미한 성과를 보였다.
- HD 및 온라인화
2005년, Xbox 360의 발표 이후 가정용 콘솔 게임기가 7세대로 접어들면서 HD 화질이 대두되었고, 오히려 가정용에 화질을 역전당한 상태였던 아케이드 게임도 기판 업그레이드 겸 HD급 모니터를 채택하여 2005년 말에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4와 철권 5 DR을 기점으로 와이드 스크린 또는 HD 트렌드에 따라가기 시작함에 따라 타임 크라이시스 4와 버추어 파이터 5같은 다른 몇몇 게임들도 HD에 합류했다.
2007년, 철권 6를 기점으로 대중화에 접어들면서 아케이드 게임의 그래픽이 가정용보다도 뒤쳐진 퇴물이라는 편견이 점차 없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광회선의 도입으로 네트워크의 속도가 향상되었는데, 가정용 콘솔 게임기나 PC에 구현되었던 실시간 멀티 플레이 기능이 아케이드 게임에서도 구현되었다. 하지만 철권 8부터 완전히 가정용 전용으로 내게 된다. 다른 대전 격투 게임은 일단 가정용으로 먼저 낸 뒤 특별 버전으로 아케이드판을 한정된 장소에 제공하는 식의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바다이야기 사태로부터 시작된 게임 이미지 악화 및 극단적인 규제 강화로 인해 아케이드 시장은 물론 한국 전체 게임 시장에 큰 타격을 받아 한동안 침체기를 맞이 했다. 그러다 2008년에 철권 6의 한국 정발과 DJMAX TECHNIKA를 기점으로 한국에서도 HD 아케이드 게임 물결에 합류하여 시장이 재정비 되었고, 침체기를 조금이나마 벗어나 재도약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 새로운 적
2000년대 중후반 이후에 본격적인 HD 및 네트워크 아케이드 게임으로 오락실 시장의 부흥을 기대했으나, 2007년 iPhone의 등장, 2008년 앱스토어, 2010년 안드로이드 OS의 전세계적인 대중화로 인해 스마트폰 모바일 플랫폼이 급부상되면서 PSP, 닌텐도 DS처럼 한때 흥했던 휴대용 콘솔 게임기마저 사이좋게 침체되었다.
한편 오큘러스 리프트와 HTC VIVE, 플레이스테이션 VR 등의 각종 VR HMD 기기의 경우 체감형게임에 접목한다면 마치 현실과도 같은 느낌을 선사할 수 있어 미래에 다시 붐을 일으킬 수도 있다.[26] 하지만 이것도 역시 일반인들이 구매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대로 예상되면서 안 그래도 수익성이 예전만큼 보장되지 않는 아케이드 게임인데다 HD화로 인해 개발비가 상승함으로 기체와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덩달아 상승해버려 들여 놓기가 부담스러워진 오락실 업주에겐 VR 장비를 접목한 아케이드 게임 자체를 들여 놓기가 버거운 존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VR HMD 소비자 시장도 원활한 사용을 위해 필요한 준비물이 적고, 가격도 큰 폭으로 낮아진 Oculus Quest 2로 대표되는 독립형 VR HMD가 주도하게 되더라도 아케이드 게임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추세이다. 또한 체감형 VR 게임 같은 경우는 테마파크용으로 돈을 많이 들여 제작하는 쪽이 그나마 반응이 좋은지라 이 역시 '아케이드 업소'와는 멀어지고 있다.
4. 목록
자세한 내용은 아케이드 게임/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5. 관련 문서
[1] 대부분 동전.[2] 2000년대 초중반 PlayStation 2 정발 이후 가정용 콘솔 게임이 온라인 PC 게임 못지 않게 흥행했다.[3] 당시로써는 테레비 게임[4] 타이토가 미드웨이로부터 기판 제공을 받았다.[5] 물론 이 시기에도 다른 종류의 게임도 출시되거나 제작되기도 했지만 제대로 주도하게 된건 80년대 중반부터이다.[6] 일본은 규모가 큰 게임 센터의 경우 80년대 후반부터 계속 100엔, 대형 기기는 200엔을 유지했다.[7]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케이드 게임기가 기술적인 선구자격 플랫폼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 등 스펙이 대폭 강화된 5세대 가정용 게임기의 등장으로 아케이드 게임기와 가정용 게임기의 기술적인 격차가 대등해졌다. 물론 버추어 레이싱~버추어 파이터 2 그 이전에 1988년의 위닝 런과 탑 랜딩, 1989년의 하드 드라이빙 등과 같이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게임들도 입체감은 있지만 정작 해당 게임들은 투박하여 잘 만든 2D 그래픽은 이길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8] 열혈경파 쿠니오군 출시 당시 후속작으로 적의 무기를 주워 공격하고 조직의 보스를 쓰러트리기 위해 주인공의 라이벌이 일시적으로 협력한다는 내용의 기획으로 시작했다고 한다.(출처)[9] 다만 일본 GAMEST에 따르면 출시 후 인기 1위에 오르지만 5개월 후 10위권 아래로 떨어지는 등 롱런을 하지는 못하고 평가면에서도 대상 10위권에 들지 못하였다. 그래도 인컴면에서는 3위를 했는데, 1위가 R-TYPE, 2위가 1943 미드웨이 해전으로 명작 슈팅 게임들에 밀렸다.[10] 여담이지만 1989년에 WWF 슈퍼스타즈, 바이올런스 파이트 그리고 2년 뒤 WWF 레슬페스트와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출시되었다.[11] 물론 파이널 파이트 이전에 스트리트 파이터 1이 더블 드래곤과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었으나 이 게임도 더블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실질적으로 조작 가능한 캐릭터는 색깔만 다른 1p, 2p 캐릭터 뿐이다. 이에 한 개발진은 레츠 같은 적 캐릭터로 플레이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였으며, 야스다 아키라가 미국에서 더블 드래곤 등이 인기를 모으는 광경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후속작은 처음엔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12] GAMEST 순위를 보면 스파2의 새로운 버전이 나오면 기존 버전은 2위를 차지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13] 기존의 대전 격투 게임의 경우 장풍과 같이 비교적 만화적인 연출을 보여준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는 핵심 개발자인 스즈키 유의 경험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이에 대세로 철권 시리즈 그리고 소울 시리즈와 같은 게임들이 후발주자로서 나서게 된다.[14] 또한 스티커 사진이나 크레인 게임 등 다른 계통의 수입도 아케이드 업소의 수입의 일부였고 아케이드 게임이 푸대접을 받자 점점 그 비중이 커졌다.[15] 1986년은 드래곤 퀘스트가 발매된 해이고, 패미컴이 1983년에 출시되어 점점 보급율이 높아지던 시기이다.[16] 스트리트 파이터 2와 아랑전설이 출시된 직후이다.[17] 2년 먼저 나왔던 드림캐스트는 DVD 매체를 지원하지 않았다.[18] 역사상 가장 인기가 높았던 장르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부류이다.[19] GAMEST 대상을 보면 1996년은 버추얼 온을 제외하고 10위권이 모두 대전 격투 게임이었지만 1997년은 3위가 전차로 GO!, 4위가 도돈파치, 5위가 G 다라이어스, 1998년 대상은 변형된 대전 격투 게임인 사이킥 포스일 정도라서 장르적으로는 다시 다양성이 생겼다.[20] 비록 2000년을 넘어가면서 아케이드 게임의 대세가 2D보다 3D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2D 대전 격투 게임은 점차 하향세로 접어들었지만, 철권 시리즈,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KOF 시리즈, 길티기어 시리즈, 멜티 블러드 등 몇몇 견인작 덕분에 아케이드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조금이나마 유지하게 되었다.[21] 이때를 기점으로 국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은 리듬 게임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기 시작했고, 현재에도 대부분의 오락실들은 리듬 게임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많다.[22] 예를 들어 THE iDOLM@STER 무인판, 삼국지대전 등. 트레이딩 카드 게임과 비디오 게임을 융합한 독특한 시스템도 구축하였다.[23] 독일 같은 경우는 아케이드 게임에 사행성 게임과 같은 규제를 가하기 시작해서 완전히 몰락했다고 한다. 현재도 신규 점포를 열 수 없는 수준이라고.[24]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콘셉트로 운영되고 있다. 합법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 대표적으로 네시카 크로스 라이브와 exA-Arcadia가 있다.[25] 여담으로 국내에서도 최후의 온라인 아케이드 대전 격투 게임이었던 철권 7 페이티드 레트리뷰션이 2018년 5월 31일에 서비스 종료됨에 따라 국내 오락실에서의 대전 격투 게임 씬도 이때를 기점으로 종언을 맞이했다.[26] 예를 들어 남코가 인기작이던 갤러가를 다시 VR로 만드는 것. 레이싱 아케이드와 같이 우주선 기기 모양의 기계에 타고 VR 고글을 쓰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으로 적들을 죽이는 게임이 탄생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