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0:48

명제(유송)

유송 태종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13E88 0%, #3F51BA 20%, #3F51BA 80%, #313E88); color: #ece5b6;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무제 소제 문제 효무제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전폐제 명제 후폐제 순제
}}}}}}}}}
<colbgcolor=#3f51ba><colcolor=#ece5b6>
유송 제6대 황제
명제 | 明帝
출생 439년 12월 9일
유송 양주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쉬저우시)
즉위 465년 12월 8일
유송 양주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사망 472년 5월 10일 (향년 32세)
유송 양주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능묘 고녕릉(高寧陵)
재위기간 유송의 황제
465년 12월 8일 ~ 472년 5월 10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f51ba><colcolor=#ece5b6> 본관 팽성 유씨
욱(彧)
부모 부황 태조 문황제
친모 명선태후, 양모 효무소태후
형제자매 부황 기준 19남 12녀 중 11남
모후 기준 외아들
배우자 명공황후
자녀 11남 4녀
아명 영기(榮期)
휴병(休炳)
작호 상동왕(湘東王)
묘호 태종(太宗)
시호 명황제(明皇帝)
연호 태시(泰始, 465년 ~ 471년)
태예(泰豫, 472년)
}}}}}}}}} ||
1. 개요2. 생애
2.1. 즉위 전2.2. 즉위 후2.3. 죽음
3. 대중매체에서4. 둘러보기(계보)

[clearfix]

1. 개요

중국 육조시대 유송의 제6대 황제.

묘호는 태종(太宗), 시호는 명황제(明皇帝). 휘는 유욱(劉彧). 장남인 후폐제 유욱(劉昱)과 한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아서 대(大) 유욱으로 부르기도 한다.

전임 전폐제와 후임 후폐제 사이에 끼어서 그렇지, 명제 역시 유송의 다른 황제들처럼 심한 암군이었다. 그나마 유송이 멸망하기 전에 죽어서 편하게 천수를 누린 것이 다행일 정도.

재위 7년 동안은 태시(泰始), 마지막 1년 동안에는 태예(泰豫)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2. 생애

2.1. 즉위 전

원가 16년(439년) 10월, 문제 유의륭과 심용희 사이에서 11남으로 태어났다. 모친 심씨가 일찍 죽어 이복형인 유준(劉駿)의 어머니, 즉 계모인 노혜남이 유욱을 키웠다. 유욱은 원가 29년(452년) 상동왕(湘東王)이 되었고, 유준이 효무제로 즉위하자 진군장군, 옹주 자사가 되었다.

유욱은 바둑과 문학, 서예를 좋아했고, 비록 뚱뚱했지만 풍채가 단아해서 아버지 송 문제 유의륭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유욱은 조카 유자업에게 능욕을 당하고[1] 그의 폭정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자신의 심복인 완전부(阮佃夫)・왕도륭(王道隆), 유자업의 행신(幸臣)인 수적지(壽寂之)・강산지(姜産之) 등 11명과 함께 유자업을 폐위하기로 밀모했다.

영광 원년(465년) 11월 29일 밤, 유자업이 죽림당에서 귀신을 잡으러 다니는 것을 보고, 수적지가 들어가서 칼로 유자업을 죽였다. 그리고 유욱은 12월에 태극전전에서 즉위했는데, 장사 등완(鄧琬) 등이 유자업의 아우인 10세의 진안왕(晉安王) 유자훈을 받들어 심양에서 황제에 즉위시키고 건강을 공격했다. 게다가 전체 274군 가운데 단양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유자훈을 황제로 인정했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명제는 이부상서 채흥종(蔡興宗)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자업의 폭정을 일소하고 관대한 정치로 인심을 안정시켰다. 또 반란군들을 설득시키고 건강에 있던 그들의 가족을 후하게 대우했다. 동시에 사도 유휴인(劉休仁), 보국장군 심유지(沈攸之), 어사 오희(吳喜) 등을 장수에 임명하고, 이듬해 8월에 유자훈을 주살하며 그 일당을 제거했다.

그런데 여기서 잘못 처리한게 있다면 유자훈을 인정했던 서주 자사 설안도, 익주 자사 소혜개(蕭惠開), 양주 자사 류원호(柳元怙), 연주 자사 필중경(畢衆敬), 예장 태수 은부(殷孚), 여남 태수 상진기(常珍奇) 등이 모두 항복을 구걸하지만 이걸 거절한 것이다. 정확히는 명제가 난을 평정하자 이들은 괘씸한 놈들이라면서 50,000명의 군대로 진압하려고 했고, 결국 설안도, 상진기, 청주 자사 심문수(沈文秀), 기주 자사 최도고 등이 모두 북위에 투항한다.

2.2. 즉위 후

명제도 황제가 되자 잔인해졌고, 곧 자신의 은인이었던 유휴인을 포함한 자신의 형제들과 그 후손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유휴인과 유휴우(劉休祐)를 죽인 경위가 정말 가관인데 유휴우을 즉위시키자는 역모가 나오자 유휴약(劉休若)이 명제와 유휴인은 세트니까 같이 죽이라고 유휴우에게 말했는데 유휴우는 오히려 이를 유휴인에게 말했고 그 보고를 들은 명제는 유휴인과 유휴우를 죽였다. 참고로 유휴인과 명제는 반란군도 둘은 세트라고 보고 있었으며 명제가 죽으면 유휴인이 황태제가 되거나 그 아들이 황제가 되겠지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결국 송 문제 유의륭의 아들들은 이전에 북위에 투항한 유창과 명제 본인, 계양왕 유휴범 외에는 모두 죽었다. 그나마 계양왕 유휴범은 무능해서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나 이후 후폐제 유욱이 즉위한 뒤 사소한 문제로 난을 일으켰다가 죽는다. 송 명제는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서 효무제의 아들 10명을 모두 죽였고, 결국 효무제의 대는 끊기고 말았다. 그러고는 형의 자손들이 죽었으니, 선심 쓴다고 자기 아들인 유찬을 효무제의 양자로 삼았다.[2]

명제는 귀신을 지나치게 믿어서 해로운 글자는 말하지도, 쓰지도 못하게 했고 이를 어기면 즉시 죽였다. 또 침대를 옮기고 벽을 장식할 때도 토지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더구나 명제의 판단 실수로 서주, 청주, 기주 3주가 북위로 넘어간다. 이미 430년, 450년에 북위의 태무제에게 크게 패해 강북과 회남은 북위로 넘어간 상태여서 이름 뿐인 직함이었다. 때문에 송나라는 촉 지역과 장강 이남, 장강 이북의 극소수 영토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황제의 위엄도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명제도 이전 황제들 못지 않게 음란하고 사치스러워 궁 안에서 황실의 궁녀들을 알몸으로 발가벗기고 그것을 보며 즐기는 잔치를 벌이는 것을 좋아했다. 왕황후(왕정풍)가 이를 보고 낯뜨거워하며 부채로 얼굴을 가리자 명제가 화를 내며 말했다.
"처갓집은 참으로 궁상맞구려! 지금 함께 즐기고 있는데, 어찌하여 혼자만 보지 않는 것이오?"[3]
그러자 왕황후가 대답했다.
"즐기는 일에는 그 방법이 많은데, 어찌하여 고모와 누나 그리고 여동생이 모여 있는데, 부인들을 발가벗게 하여 웃음거리로 삼습니까? 처갓집에서 즐기는 것은 본래 이런 것과는 다릅니다."
송명제가 크게 분노하여 왕황후를 연회 자리에서 쫓아냈다. 황후의 오빠 왕경문이 이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황후가 집에 있을 때에는 나약했는데, 지금 시점에서 드디어 이처럼 굳세고 바르기가 이와 같구나!"

태예 원년(472년) 3월, 예장태수 유음(劉愔)이 반역을 저지른다고 꿈 속에서 누군가 알려주자 일어나서 즉시 유음을 죽였다.

송 명제는 어느 날 갑자기 고자가 되자 일부러 종친들의 첩 가운데 임산부가 있으면 데리고 와서 아들을 낳으면 생모를 죽이고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 상식적으로 피도 안 섞인 남 대신, 최소한 아버지가 같고 자신을 살려준 이복동생인 유휴인을 후계자로 삼는 것이 정상이다.[4]

말년에는 매우 부패해져서 관리들의 봉급을 중단하고 축재한 재산을 숨기기 위해 상궁사라는 절을 지었으며, 그 절 아래에 재산을 숨겼다.

2.3. 죽음

송 명제는 유달리 뚱뚱하고 식탐이 많았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생선 창자로 만든 젓갈로, 이와 흰 쌀밥을 즐겨 먹었다. 젓갈과 밥을 섞어서 매끼 몇 그릇씩 먹은 그는 항상 배가 부른 상태였다. 소화가 잘 안 되는 음식인 젓갈을 즐겨먹은 것과 폭식으로 그는 복창증에 걸렸고, 그의 사인은 결국 복창증으로 추정된다. 한마디로 많이 먹어서 죽은 것이다. 생전에 그의 조카 겸 원수인 전폐제 유자업이 그를 돼지왕이라고 불렀다.

그러한 이유로 472년 4월, 명제는 경복전에서 34살에 사망했고, 5월에 고녕릉에 안장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2018년 드라마 《봉수황》에 조연으로 등장한다. 조카인 유자업의 명령으로 저울에 돼지와 명제를 올렸는데 명제가 훨씬 무거운 것이 판명되자 돼지왕이라는 별명을 하사받았다. 미친 유자업한테 죽기 싫어서 일부러 어전에서 오줌을 지리고 똥통에 다이빙하기도 했다. 황제가 된 직후 화풀이로 유자업 시체를 칼로 난도질하더니 시체를 갈아서 돼지 먹이로 주라고 명했다. 명제는 불임이기에 동생 유휴인에게 자신의 후궁과 성관계를 맺도록 했다. 도성을 지나며 민가의 미인들을 수집해 궁녀로 만들기도 했다. 궁녀들을 함부로 죽이고 안구를 적출하기도 했다.

4. 둘러보기(계보)

송서(宋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d1d5e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2·3권 「무제기(武帝紀)」 4권 「소제기(少帝紀)」 5권 「문제기(文帝紀)」
유유(劉裕) 유의부 유의륭
6권 「효무제기(孝武帝紀)」 7권 전폐제기(前廢帝紀)」 8권 「명제기(明帝紀)」
유준(劉駿) 유자업 유욱(劉彧)
9권 「후폐제기(後廢帝紀)」 10권 「순제기(順帝紀)」
유욱(劉昱) 유준(劉準)
※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3f51ba> 41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42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43권 「서선지등전(徐羨之等傳)」 44권 「사회전(謝晦傳)」
유목지 · 왕홍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사회
45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46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47권 「유회숙등전(劉懷肅等傳)」
왕진악 · 단소 · 상정 · 유회신 · 유수 조륜지 · 왕의 · 장소 유회숙 · 맹회옥 ,맹용부, · 유경선 · 단지
48권 「주령석등전(朱齡石等傳)」 49권 「손처등전(孫處等傳)」 50권 「호번등전(胡藩等傳)」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손처 · 괴은 · 유종 · 우구진 호번 · 유강조 · 원호지 · 장흥세
51권 「종실전(宗室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준고
52권 「유열등전(庾悅等傳)」 53권 「장무도등전(張茂度等傳)」 54권 「공계공등전(孔季恭等傳)」
유열 · 왕탄 · 사경인(1) · 원담 · 저숙도(2) 장무도(3) ,장영, · 유등지 ,유병지, · 사방명 · 강이 공계공 · 양현보 · 심담경
55권 「장도등전(臧燾等傳)」 56권 「사첨등전(謝瞻等傳)」 57권 「채곽전(蔡廓傳)」
장도 · 서광 · 부륭 사첨 · 공림지 채곽
58권 「왕혜등전(王惠等傳)」 59권 「은순등전(殷淳 等傳)」 60권 「범태등전(范泰等傳)」
왕혜 · 사홍미 · 왕구 은순 · 장창 · 하언 · 강지연 범태 · 왕준지 · 왕소지 · 순백자
61권 「무삼왕전(武三王傳)」
유의진 · 유의공 · 유의계
62권 「양흔등전(羊欣等傳)」 63권 「왕화등전(王華等傳)」 64권 「정선지등전(鄭鮮之等傳)」
양흔 · 장부 · 왕미 왕화 · 왕담수 · 은경인 · 심연지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65권 「길한등전(吉翰等傳)」 66권 「왕경홍등전(王敬弘等傳)」 67권 「사령운전(謝靈運傳)」
길한 · 유도산 · 두기 · 신념 왕경홍(4) · 하상지 사령운
68권 「무이왕전(武二王傳)」
유의강 · 유의선
69권 「유담등전(劉湛等傳)」 70권 「원숙전(袁淑傳)」 71권 「서담지등전(徐湛之等傳)」
유담 · 범엽 원숙 서담지 · 강담 · 왕승작
72권 「문구왕전(文九王傳)」
유삭 · 유굉 · 유창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약
73권 「안연지전(顏延之傳)」 74권 「장질등전(臧質等傳)」 75권 「왕승달등전(王僧達等傳)」
안연지 장질 · 노상 · 심유지 왕승달 · 안준
76권 「주수지등전(朱脩之等傳)」 77권 「유원경등전(柳元景等傳)」 78권 「소사화등전(蕭思話等傳)」
주수지 · 종각 · 왕현모 유원경 · 안사백 · 심경지 소사화 · 유연손
79권 「문오왕전(文五王傳)」
유탄 · 유위 · 유혼 · 유휴무 · 유휴범
80권 「효무십사왕전(孝武十四王傳)」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81권 「유수지등전(劉秀之等傳)」 82권 「주랑등전(周朗等傳)」 83권 「종월등전(宗越等傳)」
유수지 · 고침 · 고기지 주랑 · 심회문 종월 · 오희 · 황회
84권 「등완등전(鄧琬等傳)」 85권 「사장등전(謝莊等傳)」 86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등완 · 원의 · 공기(孔覬) 사장 · 왕경문(5) 은효조 · 유면
87권 「소혜개등전(蕭惠開等傳)」 88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89권 「원찬전(袁粲傳)」
소혜개 · 은염 설안도 · 심문수 · 최도고 원찬
90권 「명사왕전(明四王傳)」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91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劉瑜) · 가은 · 곽세도 · 자원평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민 · 손극 · 하자평
92권 「양리전(良吏傳)」
왕진지 · 두혜도 · 서활 · 육휘 · 완장지 · 강병지 · 왕흠지
93권 「은일전(隱逸傳)」
대옹 · 종병 · 주속지 · 왕홍지 · 완만영 · 공순지 · 유응지 · 공기(龚祈) · 적법사 · 도잠 · 종욱지 · 심도건 · 곽희림 · 뇌차종 · 주백년 · 왕소 · 관강지
94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완전부 · 왕도륭 · 양운장
95권 「삭로전(索虜傳)」 96권 「선비토욕혼(鮮卑吐谷渾)」
삭로 토욕혼
97권 「이만전(夷蠻傳)」
임읍국 · 부남국 · 가라타국 · 가라단국 · 반황국 · 반달국 · 사파파달국 · 사자국 · 가비려국 · 고구려 · 백제국 · 왜국 · 형옹주만 · 예주만
98권 「저호전(氐胡傳)」 99권 「이흉전(二凶傳)」
구지 · 저거몽손 유소(劉劭) · 유준(劉濬)
100권 「자서전(自序傳)」
심약
(1) 본명이 사유(謝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인(景仁)으로 표기되었다.
(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권 「송본기상(宋本紀上)」 2권 「송본기중(宋本紀中)」 3권 「송본기하(宋本紀下)」
유유(裕) · 유의부 유의륭 · 유준(駿) · 유자업 유욱(彧) · 유욱(昱) · 유준(準)
4권 「제본기상(齊本紀上)」 5권 「제본기하(齊本紀下)」
소도성 · 소색 소소업 · 소소문 · 소란 · 소보권 · 소보융
6·7권 「양본기상·중(梁本紀上·中)」 8권 「양본기하(梁本紀下)」
소연 소강 · 소역 · 소방지
9권 「진본기상(陳本紀上)」 10권 「진본기하(陳本紀下)」
진패선 · 진천 · 진백종 진욱 · 진숙보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1·12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은숙의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 진도정 · 유지용 · 배혜소 · 왕보명 · 하정영 · 왕소명 · 유혜단 · 저영거 · 왕순화 · 장상유 · 치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장요아 · 심묘용 · 왕황후 · 유경언 · 심무화 · 장여화
13·14권 「송종실급제왕전(宋宗室及諸王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의경 · 유준고 · 유의진 · 유의강 · 유의공 · 유의선 · 유의계 · 유소 · 유준(濬) · 유삭 · 유굉 · 유탄 · 유위 · 유창 · 유혼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무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범 · 유휴약 ·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15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16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유목지 ·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왕진악 ·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 주수지 · 왕현모
17권 「유경선등전(劉敬宣等傳)」
유경선 · 유회숙 · 유수 · 손처 · 괴은 · 상정 · 유종 · 우구진 · 맹회옥 · 호번 · 유강조
18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19권 「사회등전(謝晦等傳))」
조륜지 · 소사화 · 장도 사회 · 사유 · 사방명 · 사령운
20권 「사홍미전(謝弘微傳)」 21권 「왕홍전(王弘傳)」 22권 「왕담수전(王曇首傳)」
사홍미 왕홍 왕담수 ,왕훈,
23권 「왕탄등전(王誕等傳)」 24권 「왕유지등전(王裕之等傳)」 25권 「왕의등전(王懿等傳)」
왕탄 · 왕화 · 왕혜 · 왕욱 왕유지 · 왕진지 · 왕소지 · 왕열지 · 왕준지 왕의 · 도언지 · 원호지 · 장흥세
26권 「원담전(袁湛傳)」 27권 「공정등전(孔靖等傳)」 28권 「저유지전(褚裕之傳)」
원담 공정 · 공림지 · 은경인 저유지
29권 「채곽전(蔡廓傳)」 30권 「하상지전(何尙之傳)」 31권 「장유전(張裕傳)」
채곽 하상지 장유 ,장승,
32권 「장소전(張邵傳)」 33권 「범태등전(范泰等傳)」 34권 「안연지등전(顔延之等傳)」
장소 범태 · 순백자 · 서광 ·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안연지 · 심회문 · 주랑
35권 「유담등전(劉湛等傳)」 36권 「양흔등전(羊欣等傳)」 37권 「심경지등전(沈慶之等傳)」
유담 · 유열 · 고침 · 고기지 양흔 · 양현보 · 심연지 · 강이 · 강병지 심경지 · 종각
38권 「유원경전(柳元景傳)」 39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40권 「노상등전(魯爽等傳)」
유원경 은효조 · 유면 노상 · 설안도 · 등완 · 종월 · 오희 · 황회
41권 「제종실전(齊宗室傳)」
소도도 · 소도생 · 소요광 · 소요흔 · 소면 · 소경선 · 소적부 · · 소탄 · 소탄지
42·43권 「제고제제자전(齊高帝諸子傳)」
소억 ·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44권 「제무제제자·제문혜제자·명제제자전(齊高帝諸子·文惠諸子·明帝諸子傳)」
소장무 ·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
45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46권 「이안인등전(李安人等傳)」
왕경칙 · 진현달 · 장경아 · 최혜경 이안인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무 ·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47권 「순백옥등전(荀伯玉等傳)」 48권 「육징등전(陸澄等傳)」
순백옥 · 최조사 · 설연 · 우종 · 호해지 · 우완지 · 유휴 · 강석 육징 · 육혜효 · 육궐
49권 「유고지등전(庾杲之等傳)」 50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유고지 · 왕심 · 공규 · 유회진 유환 · 명승소 · 유이 · 유규
51·52권 「양종실전(梁宗室傳)」
소경 ,소매 소발 소앙 소욱, · 소의 · 소부 · 소창 · 소융 · 소굉 ,소정인 소정의 소정덕 소정립,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53권 「양무제자전(梁武帝諸子傳)」
소통 · 소종 · 소적 · 소속 · 소윤 · 소기
54권 「양간문제자·원제제자전(梁簡文帝諸子·元帝諸子傳)」
소대기 · 소대심 · 소대관 · 소대림 · 소대련 · 소대춘 · 소대성 · 소대봉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훈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대원 · 소방등 · 소방제 · 소방구 · 소방략
55권 「왕무등전(王茂等傳)」
왕무 · 조경종 · 조의종 · 석천문 · 하후상 · 길사첨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 장혜소 · 장징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56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57권 「심약등전(沈約等傳)」 58권 「위예등전(韋叡等傳)」
장홍책 ·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 악애 심약 · 범운 위예 · 배수
59권 「강엄등전(江淹等傳)」 60권 「범수등전(范岫等傳)」 61권 「진백지등전(陳伯之等傳)」
강엄 · 임방 · 왕승유 범수 · 부소 · 공휴원 · 강혁 · 서면 · 허무 · 은균 진백지 · 진경지 · 난흠
62권 「하창등전(賀瑒等傳)」 63권 「왕신념등전(王神念等傳)」 64권 「강자일등전( 江子一等傳)」
하창 · 사마경 · 주이 · 고협 · 서리 · 포천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강자일 · 호승우 · 서문성 · 음자춘 · 두즉 · 왕림 · 장표
65권 「진종실제왕전(陳宗室諸王傳)」
진의 · 진상 · 진혜기 · 진창 · 진담랑 · 진백무 · 진백산 · 진백고 · 진백공 · 진백인 · 진백의 · 진백례 · 진백지 · 진백모
진숙릉 · 진숙영 · 진숙견 · 진숙명 · 진숙경 · 진숙헌 · 진숙제 · 진숙문 · 진숙달 · 진숙탄 · 진숙표 · 진숙웅 · 진숙중 · 진숙엄 · 진숙신 · 진숙우 · 진숙평 · 진숙오 · 진숙흥 · 진숙선 · 진숙목 · 진숙검 · 진숙징 · 진숙소 · 진숙광 · 진숙순 · 진숙모 · 진숙현 · 진숙륭 · 진숙영
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 진전 · 진번
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위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호영 · 서도 · 두릉 · 주철무(1) · 정령세 · 심각 · 육자륭 · 전도집 · 낙문아 · 손창 · 서세보 · 주부 · 순랑 · 주경 · 노실달 · 소마하 · 임충 · 번의
68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조지례 · 채경력 · 종원요 · 한자고 · 화교 · 유사지 · 사기 · 모희 · 심군리 · 육산재
6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심형 · 우려 · 부재 · 고야왕 · 요찰
70권 「순리전(循吏傳)」
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71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7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최위조 · 조충지 · 가희경 · 원준 · 유소(昭)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협 · 하사징 · 임효공 · 안협 · 기소유 · 두지위 · 안황 · 잠지경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완탁
73·74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瑜) · 가은 · 곽세통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구걸 · 사각수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인 · 손극 · 하자평 · 최회순 · 왕허지 · 오경지 · 소예명 · 소교처양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 구관선 · 손담 · 화보 · 해숙겸 · 한영민 · 유풍 · 봉연백 · 오달지 · 왕문수 · 악이지 · 손법종 · 유도민 · 등담공 · 도계직 · 심숭소 · 순장 · 길분 · 견염 · 조발호 · 한회명 · 저수 · 장경인 · 도자장 · 성경준 · 이경서 · 사린 · 은불해 · 사마고 · 장소
75·76권 「은일전(隐逸傳)」
도잠 · 종소문 · 심도건 · 공순지 · 주속지 · 대옹 · 적법사 · 뇌차종 · 곽희림 · 유응지 · 공기 · 주백년 · 관강지 · 어부 · 저백옥 · 고환 · 두경산 · 장영서 · 오포 · 서백진 · 심인사 · 완효서 · 등욱 · 도홍경 · 제갈거 · 유혜비 · 범원엽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77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78·79권 「이맥전(夷貊傳)」
임읍 · 부남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 백제국 · 신라 · · 부상국· 하남왕국 · 탕창 등지 · 무흥국 · 형옹주·예주만 · 고창 · 쿠처 · 우전국 · 파사국 ·연연
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 ||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45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45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무려 '돼지왕' 이란 칭호를 받았다. 유자업에게 불려간 다른 형제들은 살인왕, 도적왕, 나귀왕이란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2] 효무제는 2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10명이 요절했고 2명이 유자업에게 살해당했다. 나머지 16명의 아들들은 모두 명제가 즉위한 뒤 살해당했다.[3] 왕황후는 동진원제명제밑에서 재상을 지냈던 왕도의 현손녀이자 왕승랑(王僧朗)의 딸이다. 그런 명문가를 폄하한 것이다.[4] 물론 왕가의 특성상 대를 잇는 것이 중요하다보니 생물학적 친자식이 안 생기면 사람들을 어찌저찌 속여서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아이를 공식적으로 공인된 "공식적인" 친자식으로 만들 수는 있으며 친척을 입양하는 방법보단 이런 꼼수가 정통성 측면에선 더 안정적이긴 하다. 다른 왕조들 역시 DNA 검사가 불가능한 전근대 시절에는 그런 케이스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명제의 문제점은 그걸 숨길 생각조차 안 했다는 것이다. 이는 훗날 아들이자 후대 황제인 후폐제가 "짐은 이장군이다!"라고 선언하는 계기가 된다. 후폐제는 나이도 어린 데다 기본적인 개념조차 결여되어 정치적 감각 자체가 전혀 없었기에 이런 망언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