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이승만
1. 개요
구한말과 독립운동기, 대한민국 초기를 다룬 역사물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단순히 반영 및 재현을 위해서 등장하는 수준도 있지만 이승만이란 인물을 캐릭터로서 깊게 묘사하여(특히 대체역사물에서) 주로 유능하지만 정치적이며 권력 지향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명과 암이 뚜렷한 인물이다보니 그가 언급될 때마다 그에 대한 평가를 두고 항상 병림픽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능구렁이 같은 거물 정치인'이라는 이승만의 대중적 이미지 자체가 창작물에서 써먹기 좋은 소재라서 주인공의 협력자나 라이벌로 많이 등장한다.2. 실사 매체
- 1959년 신상옥 감독 작품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최초로 이승만이 주연인 영상물이며 임화수가 제작에 개입한 사실상의 관제 영화이다. 젊은 시절의 이승만 역을 김진규가 연기하였다. 1959년작 <한말풍운과 민충정공>에선 방수일이 연기했다.
- 1968년에 만들어진 영화 <잘 돼 갑니다>와 1973년작 <광복 20년 백범 김구>에서 이승만과 외모가 비슷한 일반인 최용한이 연기했다. 1968년 당시 72세의 최용한은 최고령 데뷔 신인배우 라는 이채로운 기록을 남겼다.
- 1979년작 KBS-TV <일요사극 맥> '벼랑 위의 파수병(2부작)'에선 배우 민지환이 연기했다.
- 역대 이승만 전문 배우 중 배역을 잘 소화한 배우로는 역시 최불암이 첫손에 꼽힌다. 1981년 MBC 드라마 제1공화국 에서 처음 이승만을 연기한 이래, 거의 드라마 자체의 상징처럼 되었으며 1982년 8.15 특집드라마 <한: 단재 신채호 일대기>와 1987년작 <산하>, 1989년 <제2공화국> 및 <독도수비대>, 1990년 8.15 특집극 <반민특위>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나올 정도였다. 그 특유의 스타일은 그 이후 이승만을 맡게 된 후배 배우들이 이승만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최불암을 흉내냈다고 일컬어질 정도다.
- 1982년 KBS1 8.15 특집드라마 <그 여름의 이틀>에서는 성우 이강룡이 연기했다.
- 1984년작 KBS1 다큐드라마 <휴전 6.25>에서는 배우 출신인 양동군 교수가 연기했는데, 목소리 대역은 성우 구민이지만 영어 대사는 본인 목소리다.
- 1984년 KBS 대하드라마 <독립문>에서는 배우 서인석이 이승만 역을 맡았다. 다만 드라마의 시대 배경이 동학 농민 운동 이후 경술국치 이전까지의 시기를 다루다 보니까 이승만이 2~30대때 독립협회에서 활동했던 것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 1985년 KBS1 국군의 날 특집드라마 <전웅실록: 오성장군 김홍일>에선 배우 최정훈이 연기했는데, 1993년 <다큐멘터리극장>과 2004년 EBS 드라마 <명동백작>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등장했다.
- 1989년작 KBS2 미니시리즈 <무풍지대>에선 배우 하대경이 연기했다.
- 1989년 MBC 특집드라마 <백범일지>에선 배우 김인태가 연기했다.
- 1994년작 뮤지컬 <4월 하늘 어디에>에서는 배우 김진해가 연기했다.
- 2003년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에 등장하는 이승만은 배우 권성덕이 연기했는데, 그는 이듬해 MBC 특별기획 드라마 <영웅시대>, 2006년 KBS 대하드라마 <서울 1945>에도 같은 배역으로 나왔다. 특히 <야인시대>에선 종영 후 2010년대 들어 인터넷상에서 밈화돼 있고, <서울 1945>에선 장택상과 함께 여운형 암살의 배후로 그려졌는데, 방영 직후 양자 이인수와 장택상의 3녀 장병혜 등 유족들이 담당 PD 윤창범과 이한호 작가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나 2010년에 대법원은 '이승만이 여운형의 암살을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장면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대법원 2007도8411)
- 2024년작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에서 이승만의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었다.
- 2024년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삼식이 삼촌>에서 이승민이라는 캐릭터의 모티브가 되었다.
3. 애니메이션
- 영 저스티스(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릴래시아(Rhelasia)라는, 1850년에 설립된 가상의 국가 지도자인 Rhelasia의 대표 이름이 "승맨 뤼"이다. 특이한 점으로는 북한을 모티브로한 북릴래시아 지도자다. 생김새도 김정일을 닮았다.
4. 소설
이하 작품은 전부 대체역사물 웹소설이다.-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에서는 주인공 유진 킴의 재능을 보고 감탄하며, 웨스트포인트 입학 추천서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 유진 킴을 장기말로 쓰려다가 힘의 차이를 인정하고 유진킴에게 한인 커뮤니티를 헌납, 대신에 유진킴의 후광덕에 임시정부를 장악하고 한국 독립후 친미파라는 특징 답게 초대 대통령이 된다. 권력욕은 여전해서 장기집권을 할 꿍꿍이를 가졌지만 유진의 개입으로 무산되어서 결국 2선을 끝으로 퇴임했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정권도 내주었다.
- <한국 독립 전쟁>에서는 안창호와 루즈벨트의 합의를 통해 주미 한국대사로 선정되었다. 이게 은근 이승만에게 독인게, 루즈벨트의 연임기간 동안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1] 루즈벨트에게 아시아 문제를 조언해주며 본인도 미국에서 사는게 행복한지 그냥 미국에서 쭉 살고 있다. 그외에는 치사함과 그에 비례하는 정치력 덕분에 주인공인 백범과 안창호에게 가끔씩 언급된다.
-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는 임시정부를 대신해서 단독으로 독일과 협상하려고 하나 주인공 디트리히 샤흐트는 이승만의 정치적 기반이 모두 미국에 있기에 결국 미국의 개입 말고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알고 그를 무시하고 임정과 직접 협상하자 독일에서 자신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대한민국 광복 이후 임정에 단단히 찍힌 탓에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 <대통령 각하 만세>에서는 주인공 조지원이 처음 만나는 역사적 인물로 등장. 조지원과 비슷하게 뛰어난 인물이라 금방 동지가 되고 열강과의 협상을 주도하여 조선의 독립을 지켜내지만 지도자 자리를 두고 조지원과 경쟁하다가 열강과 맺은 굴욕적인 조약을 핑계로 국외 추방당한다. 추방되어도 미국에서 한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오랜시간이 지난뒤 귀국해서 조지원의 딸인 조가은을 지도하거나 다양한 정치고문, 명예직을 맡는다. 권력욕은 여전해서 어떻게 하면 조지원 대신에 자신이 대통령 자리에 취임할지 고민 하지만 조지원의 철인적인 면모에 낙담하고 귀국 직후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안창호의 러브콜을 받지만 대통령이 되어봤자 조지원보다 못하다는 소리만 들을 게 뻔하다며 거절, 권력에 대한 미련을 깔끔하게 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 <조선, 혁명의 시대>에서는 황제가 된 완화군 이선의 신하로서 등장. 유능한 황제 밑에서 일하면서 왕정에 대한 반감은 없지만 내심 민주주의를 채택했음에도 황제가 모든 정치방향을 이끄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황제의 외교방향이 자신과 일치하기에 큰 불만은 못내는 상황[2].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외교관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김규식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총리가 되기 위해 이런저런 정치적 공작을 펼치다가 친구 였던 안창호, 박용만(1881)등과도 결별하고 야당 지도자인 여운형, 전봉준과도 마찰을 겪어서 결국 선거에서 패배하지만 이를 교훈삼아 다시 재기할것을 꿈꾼다. 여기서도 일본패는 실력은 여전해서 관동 대학살의 한국인 희생자가 대략 추산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바로 추산치의 4배로 부풀려 일본정부를 미칠 듯이 압박한다. 자세한것은 이승만(조선, 혁명의 시대)참고.
- <레전드 1957>에서는 역사대로 혁명이 일어나 하야한다. 하야하면서 군 앞에서 탱크맨 역할을 한 주인공을 불러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 하는 변명을 하지만, 준영에게서 "당신의 가장 큰 죄는 독재가 아니라 미래를 짓밟은 것"이라는 팩트폭력을 당한다.
- <고종, 군밤의 왕>에서는 남의 아래에서 '이놈 저놈' 소리 듣기 싫다는 일념으로 죽어라 서책에 몰두하여 고시에 합격하고 학사장교로 임관했다. 전역후에는 출세하기 어려워져 고민이 많은 젊은 식자들을 끌어들여 자유당 안에 교양사라는 단체를 차려 자신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꿈꾸는 이완용과 경쟁하고 있다. 싱겁고 부드러운 음식이 취향이고 입맛도 까다로워 다른 조선인들이 맛있게 먹는 짜장면을 혹평했다.
- <대한민국 전쟁 영웅이 되었다>에서는 주인공의 개입 덕에 전쟁 트롤러들을 일찌감치 치워내고 체통 신경쓰지 않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러 가는 등 이미지 개선은 많이 되었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 친일파 청산 등으로 정치 기반이 다 사라져 전쟁이 끝나고도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머무르며 대통령 자리도 신익희에게 넘어간다.
- <히틀러가 되었다>에서는 전후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아 통일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친미 성향 탓에 방한한 히틀러를 경계하면서도 이를 기회 삼아 독일에게 무기를 팔아달라고 부탁해 이를 경계한 미국이 무기를 비롯한 각종 지원을 하게 만들 생각을 한다. 히틀러가 예상보다 많은 무기를 지원해주자 놀라워하며, 해명을 요구하는 주한미국대사를 구워삶아 미국의 추가 지원을 얻어내는 신기를 보인다. 이후 독재자로 타락하는 일은 없었는지[3]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4.19 혁명이 일어나지 않아 12년의 임기를 마치고 무사히 퇴임하였다.
5. 게임
- <Hearts of Iron 시리즈>에서 한국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2편과 3편까지는 권위주의 계열 한국의 지도자였으며, <하츠 오브 아이언 4>에서는 민주주의 한국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배경이 2차세계대전 시기인지라 한국은 해방시켜야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민주주의 내전이 터져서 독립하거나, 민주주의 국가가 일본을 항복시키고 해방해주거나 괴뢰국으로 삼지 않는 한 보기 힘들며 본인 얼굴이 아닌 아시아 기본 지도자 초상화로 나온다.[4]
- 위 게임의 모드인 <The Road to 56>에서 해방 한국을 플레이하면 고증대로 한국의 지도자로 나오는데 뜬금없이 이념이 파시즘이다.[5] 만일 제정복고를 택한다면 지도자에서 내려가게 되는데, 제정이 복고되어도 황실의 일원이 지도자가 되지는 않는다. [6]
- 한국산 모드인 《KOREA: REVOLUTION OF 1896》에서도 반공을 이유로 집권가능한 파시즘 지도자로 등장한다.
- 한국과 일본이 역전된THE LAST EMPIRE에서 민주주의 개혁가로 제국주의 국가가 된 대한제국에서 도망쳐서 미국에 망명간다. 한국이 미국에게 패배하면 한국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다.
- 독일제국이 1차대전에서 승리한 모드 카이저라이히에선 미국에 한국 독립 운동 지원을 설득했으나 실패했고, 이로 인한 지도력 상실로 임시정부에서 축출당해 미국에 망명해서 미주한인사회를 이끌었다. 그러다가 2차 미국내전 이후 하와이에서 살해당한다. 개발진이 공인한 내용으로 게임 내에선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다.
- 1906년 민주주의 한국이 건국된 세계관의 대체역사 모드 <하츠 오브 코리아>에서 한국의 지도자로 등장. 설정상 대공황 시기 '조선의 모스크바'라 불리던 대구에서 음식, 일자리, 의료 보장과 본인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비폭력 시위가 발생하자 시위 참여자 20만명을 전차로 짓이겨 진압했다고 한다. 민주주의 루트 플레이시 김구와 이승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주 선제타격, 아시아 연합 창설 등 대외 팽창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김구 루트와 달리 이승만 루트는 '이승만선'이라는 요새를 짓고 연합국에 가입하거나 미국과 새 세력을 파는게 끝이다. 김구 루트도 만주국 공격 타이밍을 태평양 전쟁 즈음으로 맞추거나 그때까지 세력 없이 뻐기면 연합국에 쉽게 가입할 수 있다. 공산이나 파시 루트를 가면 대구 코뮌, 국가재건최고회의[8]와 내전을 해야 한다.
6. 음성 매체
- 잘 돼 갑니다
1967년 DBS에서 방송했던 라디오 드라마로 총 120부작에 극본은 한운사, 연출은 안평선 PD가 각각 맡았으며 이승만 역은 성우 구민, 류기현이 조병옥, 고은정이 영부인 프란체스카, 주상현이 이발사 김광제, 이창환이 해설을 각각 맡았다. 이 작품은 이승만의 전속 이발사 김광제의 시점을 토대로 자유당 정권 말기 6년간의 인간과 권력, 권력의 무상함 등을 중점적으로 다뤘고, 훗날 MBC TV드라마 <박마리아>와 <제1공화국> 등 정치드라마 장르의 토대를 구축한 역사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 이 라디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1968년에는 아세아필림[9]이 조긍하를 감독으로 맡겨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했는데, 이기붕 역은 장민호, 조병옥 역은 박노식, 최인규 역은 허장강, 박마리아 역은 김지미, 이발사 역은 김희갑 등이 각각 맡았다. 당시 일반인 최용한이 자신과 똑같은 외모를 지닌 이승만 대통령 역을 맡았으나 얼굴이 제대로 안 나왔다. 초기에는 공보부로부터 데모 장면 등 일부 수정 지시를 받았긴 해도 정부는 청와대를 촬영 장소로 제공하고 이기붕 자살 장면까지 실제 이기붕 자택에서 찍게 하는 등으로 배려하면서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 하지만 영화 개봉 하루 전에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로부터 서울 국도극장에 걸린 간판이 뜯어졌고, 이에 김상윤은 문화공보부에 수차례 상영 허가 요청을 한 후 문공부 측의 지시에 따라 문제가 된 내용들을 개작했지만 1971년 문공부 측은 영화진흥공사로 하여금 융자금 540만원을 주는 한편, 필름을 강제로 압수하면서 상영이 아예 성사되지 못했다.
- 결국 공동제작자였던 김상윤은 늘어나는 빚과 정신적 충격 등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1975년에 뇌출혈 투병 중 숨졌고, 차남도 1979년 4월 청와대에 호소하려다 경비경찰에게 구타당해 정신이상을 앓는 등 가정이 풍비박산나기도 했다. 이에 아내 홍정순 등 유가족들이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10여 년간 호소한 끝에 1987년 6.29 선언 뒤 이듬해 상영 허가를 얻어 1989년 9월에야 합동영화가 배급을 맡은 뒤, 서울 명보극장에서 추석 특선 프로로 처음 개봉됐지만, 이미 관심이 사라져 흥행을 못했다. 2000년에 유가족이 이 영화 제작행위와 관련해 국무총리 직속기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민보상위)'에 민주화운동 보상금 신청을 했으나 2001년과 2007년에 각각 2번 기각됐다가, 2013년에야 직권으로 인정받았다. 다만 보상은 2013년에 법원에서 손해배상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해당 영화는 2016년 12월 20일에 TBS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2002년 오마이뉴스 기사, 2012년 일요신문 기사)
- 1967년작 DBS 드라마 <잘 돼 갑니다>와 TBC 라디오 드라마 <광복 20년>에서 이승만 역을 깔끔히 소화해낸 구민이 알려져 있으며, 방송 당시 청취자들은 이승만 목소리가 실제 육성인지 구민의 연기인지 점심내기를 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 MBC <격동 50년>의 박일도 선배 구민을 능가할 정도로 맛깔스럽게 대사를 구사했다. 동시에 이승만의 능구렁이같은 면도 세세하게 표현하여 많은 호평을 받았다. 미중년을 많이 맡았던 박일의 또 다른 면을 보여 준 연기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원조 이승만 전문 성우 구민은 2001년에 미국으로 이민갔고, 박일마저 2019년 7월 31일 돌연사했다.
[1] 알다시피 루즈벨트 임기는 4선 대통령이다.[2] 주인공 완화군 이선(에 빙의한 현대인 이선우)의 정치적-외교적 지향점은 이승만과 일치하는 것이 많다. 무리한 팽창을 경계하고 미국과 친하게 지낸다 등등. 차이점이라면 이선은 자신과 주장이 달라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공산주의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점이 있다.[3] 분단이 일어나지 않아 6.25 전쟁도 발생하지 않은 게 한몫한 듯하다.[4] 호이 4는 한국의 모든 지도자 초상화가 아시아 기본 지도자 초상화로 되어 있어 얼굴은 볼 수 없다. 즉 이승만, 김일성,의친왕, 영친왕의 얼굴이 전부 김정일 비스무리한 기본 초상화로 나온다.[5] 일민주의 때문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6] 바닐라처럼 일본내전이 발생하면 한국이 독립을 하긴 하는데 이럴 경우 바닐라처럼 이승만이 지도자가 아니라 영친왕으로 등장한다.[7] 과거에는 고향 호남에서 선생하고 있었으나 모택동 수준의 인물이 그냥 교사1로 지내는건 말이 안된다 여겼는지 결국 사망처리 됐다.[8] 여기서는 박정희가 아닌 이범석이 세운 파시즘 단체로 등장한다. 이름만 빌려온 것.[9] 영화제작자 이지룡이 이끌던 제작사로, 1972년 영화사 법정등록요건 및 제작실적 미달로 등록 취소 후 폐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