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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34:54

제39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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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보병사단
第三十九步兵師團
The 39th Infantry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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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힘!
화합, 단결된 충무, 현장에서 승리하는 백전백승 충무부대
<colbgcolor=#18264f><colcolor=#fff> 창설일 1955년 6월 20일
상징명칭 충무(忠武)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2작전사령부
규모 사단
역할 경상남도 지역 방위
(창원시 진해구[1] 제외)
사단장 소장 김종묵(학군 32기)
위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2]

1. 개요2. 상세3. 예하부대
3.1. 사단 직할대3.2. 제117보병여단 독수리3.3. 제118보병여단 용호3.4. 제119보병여단 솔개
4. 과거부대
4.1. 사단장4.2. 장교/부사관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
5.1.1. 과거(창원 주둔 시절)5.1.2. 현재(함안 이전 완료 이후)
5.2. 전설의 사단, 그러나 장교에게는 무덤인 곳5.3. 사단가
6. 사건 사고
6.1. 2023년 김해 예비군 훈련장 사망 사건6.2. 기타 사건들
7. 여담
[clearfix]

1. 개요

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대한민국 육군 제2작전사령부 예하 제39보병사단. 상징명칭은 충무부대이며,[3] 별명이자 구 상징명칭은 파도부대다.

2. 상세

과거 제2군관구사령부 예하부대였으나 2관구가 해체되며 제2야전군으로 예속되었고 현재는 제2작전사령부 소속이다.

제39보병사단(第三十九步兵師團, The 39th Infantry Division, 별명: 충무부대)은 대한민국의 지역방위사단으로 제2작전사령부의 예하 부대이다. 위수구역은 대한민국 해군의 담당구역인 창원시 진해구를 제외한 경상남도 전 지역이다. 사단 사령부는 경상남도 창원시에 위치하다가 2015년 5월 함안군으로 이전을 시작하여 7월 초에 완료하였다.

2000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를 근거지로 했던 제69보병사단이 해체되며 (구)제69보병사단의 일부 예하부대들을 흡수했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제39보병사단 관할 구역인 경상남도[4]에 배치되며 그 외 대구광역시, 경상북도부산광역시, 호남, 충청권으로 가기도 한다. 제2작전사령부 예하 지역방위사단이기 때문에 그 배치는 서울 근처까지만 이루어진다. 경우에 따라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지역방위사단으로 배치가 되는경우도 있으며[5][6] 정말 이례적으로 특수부대 배치를 받기도 한다.[7] 물론 후반기교육을 받으러 가게 되면 거기서 다시 자대 배치를 받게 된다. 또한 희망자에 한해 TO가 날 시, 인근 사단의 해안 경계병 인원을 모집하기도 한다.

창원시 진해구[8]를 제외한 경상남도를 관할 위수지역으로 삼고 있는 지역방위사단이다.

국방개혁으로 인해 2020년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승격되었다.

2022년 제53보병사단 예하에 있었던 양산대대가 해체되어 경상남도 양산시가 제39보병사단 담당구역에 편입되었다.

3. 예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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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보병사단 예하부대
제117보병여단 제118보병여단 제119보병여단
신병교육대
※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소속 부대 문단 참고
※ 과거 소속 부대(제39보병사단 동원지원단 등)는 과거 소속 부대 문단 참고

3.1. 사단 직할대

3.2. 제117보병여단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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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118보병여단 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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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119보병여단 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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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거부대

4.1. 사단장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6><bgcolor=#18264f> 역대 제39보병사단장 ||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최석용 예) 준장 육사 3기 사단장 조선혁명군 출신
2대 박영준 예) 소장 육사 8기 사단장 한전 사장
17대 김준봉 예) 소장 육사 12기 사단장
21대 반순열 예) 소장 육사 18기 사단장
22대 이태우 예) 소장 갑종 157기 제2훈련소[12] [13]
23대 변길남 예) 소장 육사 22기 사단장 [14]
27대 성유경 예) 소장 육사 27기 사단장
28대 류수희 예) 소장 육사 30기 사단장
29대 정용섭 예) 소장 3사 2기 사단장
30대 이상의 예) 대장 육사 30기 합동참모의장, 제3야전군사령관
31대 김해진 예) 소장 학군 13기 사단장
32대 이준구 예) 중장 육사 34기 사단장
33대 김태교 예) 소장 육사 32기 사단장
34대 황우웅 예) 소장 육사 37기 사단장
35대 장재환 예) 중장 육사 39기 육군교육사령관
36대 김성진 예) 중장 학군 22기 제6군단장
37대 문병호 예) 소장 육사 43기 사단장 [15]
38대 박양동 예)중장 학군 26기 육군군수사령관 [16]
39대 박안수 대장 육사 46기 육군참모총장
40대 권대원 중장 학군 30기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
41대 김종묵 소장 학군 32기 사단장


지역방위사단치고 묘하게 진급률이 높다. 최근 사단장 6명 중 보직해임당한 문병호 소장을 제외하고 5명이 중장 진급에 성공하였으며 39대 박안수 사단장은 30대 이상의 사단장 이후 15년만에 대장에 진급하였다. 서부전선 최주요 길목을 지키는 전방 부대의 대명사인 제1보병사단과 중부전선의 제6보병사단, 화천의 제7보병사단은 정작 사단장 진급률이 낮은 것과 정반대.

4.2. 장교/부사관

4.3.

5. 기타

5.1. 근무환경

5.1.1. 과거(창원 주둔 시절)

창원시내에 위치하던 시절에는 명실공히 현역으로 가게 되면 군생활 최고의 로또 중 하나인 꿈의 사단 취급이었다. 훈련강도는 거기서 거기지만 부대 위치가 경상남도 내 최대도시인 창원시 한복판이라 창원역이 걸어서 15분밖에 안 걸리며 창원시외버스터미널이 택시로 10분, 창원중앙역이 택시로 20분밖에 안 걸리는 등 전방사단들과는 차원이 다른, 집에 가기 매우 편한 최고의 접근성을 자랑했다. 외출, 외박만 나가도 걸어서 몇 분이면 휘황찬란한 창원시 시내를 거닐며 현대 문물(...)을 한가득 느끼고 온갖 싸제 음식들을 사먹을 수 있었다.

사단 사령부 특성상 영내가 겁나게 넓기 때문에 특정 직할대의 경우 사단 사령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자기가 돌아다니는 부분만 보다가 전역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특히 본부대, 공병대대 출신이라면 특별한 용무가 있지 않는 이상 언덕에 위치한 정비대에 갈 일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영내에 PX도 3개나 있으나 보수대, 기동대대, 신병교육대 기간병이 아닌 이상(혹은 부대가 정문위병소와 좀 멀어 돈 뽑으러 가기 힘든 기간병이 아닌 이상)은 본부 PX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크기도 꽤 널찍하고, 바로 옆에 있는 병사휴게실에는 2009년까지 노래방과 당구장, 오락실이 있었는데 잦은 파손 및 도난 사례로 관리담당인 본부대 행정보급관의 분노를 불러일으켜 아예 통째로 본부대로 옮겨버리고 사단 이전 담당 TF가 들어왔다. 다만 바로 코앞에 있는 공병대대를 제외하고는 어느 부대든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짬차면 귀찮아서 잘 안 가게 된다.

영내가 겁나 넓기 때문에 유격 훈련과 혹한기 훈련(2009년부터 혹한기 훈련은 진주예비군훈련장으로 A조/B조로 나뉘어 사단사령부가 통채로 이동하여 혹한기 훈련을 시행하였다.)도 영내에서 다 치러냈다. 게다가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경상남도 남단에 볕 잘 들고, 북적대는 시내 한복판이라 혹한기 훈련 시기라 한들 평균 최저 기온이 영하 1도 수준으로 매우 따뜻하다. 당연히 날이 매우 포근하니 눈도 거의 안 와서 겨울만 되면 전방사단들의 악몽인 무한제설지옥에 시달리는 일도 거의 없는 건 덤이며 온다 해도 한낮이면 따뜻해져서 금방 녹아버리니 센치미터 이상 쌓이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훈련하면서 좀 구르다 보면 땀까지 난다. 유격훈련도 훈련시설은 영내에 다 있는데, 다만 유격장 입소행군은 영외로 나가서 한다. 사격장이 북면에 있는데, 보통은 북면사격장까지 걸어서 찍고[17] 돌아오는 코스로 진행된다. 단, 사단 사령부 내 충무 사격장이 있어서 대대장 짬이 높거나 사전 예약을 했던 경우 사단사령부 내에서 사격을 실시하고 끝내기도 했다.(영내에 위치하였던 사격장 바로 왼쪽에 아파트가 존재하였으며,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사격은 북면사격장에서 차량을 배차하여 진행하였다.)

부대내 복지시설들도 빵빵한 편으로 정문 위병소 바로 옆에 있던 복지회관에서는 치킨(치킨이 피흘림)과 피자를 팔았다. 2층의 식당에서는 오리 바베큐와 삼겹살까지 먹을 수 있었다. 특히 본부대 병사들은 복지회관 관리병들이 같은 본부대 소속이기 때문에 주말에 복지회관에서 분대 회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대 밖이야... 창원시 한 마디로 설명이 끝난다.

물론 지금에서는 더이상 볼 수 없는 풍경이고, 여기에는 창원 중동 유니시티가 들어선 지 오래라 이제는 흔적도 찾기 어렵다.

5.1.2. 현재(함안 이전 완료 이후)



위에서 설명한 창원 시절의 이야기들은 사단이 이전하기 전인 2015년 6월까지의 이야기였다. 이전한 곳은 당연히 시골이다. 그러나 도회지 사람 기준으로 시골이라고는 해도 면 소재지가 코앞이다.[18] 전방 현역들 기준으로 설명해보면 제3군단 관내인 인제군, 양구군, 원통보다는 크고 제5군단 관내인 연천읍내보다 약간 작다. 게다가 모든 무궁화호 열차가 다 서는 역도 존재한다. 창원까지는 기차든 버스든 30분 내외로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 닿는다. 시간 잘 맞추면 외박이나 외출시 창원에 나가서 놀다가 복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이곳은 과거 군 시설이 있던 곳이 아니라 집 몇 채 드문드문 있던 논두렁 와지선[19]을 싹 밀어버리고 사단본부 전체를 이전해 오는 것이므로 당연히 모든 시설은 2015년 현재의 최신 사양으로 지어졌다.[20] 창원시내 한복판에 박혀 있던 시절만은 못해도 여전히 꿀의 전설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여기까지는 사단 직할대만 해당된다. 지역방위사단답게 예하 3개 여단의 대대는 동에서 밀양 서로는 함양, 남으로는 남해에서 북으로는 거창까지, 어디의 촌구석으로 들어가 박힐지 모른다. 시 단위 행정구역에 있는 예하부대라고 해도 보통은 시내버스를 타고 꽤나 달려가야 하는 곳에 있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남해안에 있는 행정구역(고성, 통영, 거제)에 배치를 받으면 전방 철책부대와 흡사한 근무조건의 해안초소가 기다리고 있다. 즉 직할대가 아닌 이상은 그냥 평범한 제2작전사령부 예하 경계/예비군훈련 부대의 환경이라는 이야기다.

자대 배치는 사단 사령부 외에도 경상남도 전역에 있는 3개의 여단에 배치받게 되는데 이 3개의 여단는 1개 여단 전부와 다른 여단 일부가 해안 경계를 맡고 있다. 각 대대 예하 해안 중대에서 소대별로 돌아가면서 약 3개월간 해안 소초 생활을 하게 된다. 한 연대는 전부 내륙 부대라 주로 예비군 훈련을 맡는다. 해안 소초에 투입될 경우 3개월간 휴가[21], 외박을 할 수 없으며 소총 분대일 경우 교대로 매복을 나가게 된다[22]. 하나 더 추가하자면 해안중대는 침대형(분대형) 생활관을 사용하고 있으며 해안소초도 동일하다. 예비군 훈련을 전담하는 내륙 부대로 갈 경우 예비군 훈련이 있는 날에는 그날 일과 전부가 예비군이다. 하지만 도시급 부대와 군급 부대에 들어오는 예비군의 수가 꽤 차이가 나서 군급 부대에서는 하루에 예비군이 한두 명밖에 안 와서 그냥 돌려보냈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한다.

여담으로 일개 부대는 토요일 오전에도 일과[23]가 있는데 그것에 대한 보상 휴가를 9박 10일[24] 정도 준다. 즉 해안소초를 3번 모두 갔다오면 보상 휴가를 12박 13일이 붙는다는 소리(어디까지나 예전 21개월 기준이다.)

지역방위사단의 공통점이긴 하지만 훈련소에 들어가 보면 상근이 절반, 현역이 절반이다. 그래서 현역으로 온 사람들은 상근인 동기 훈련병들을 볼 때마다 그저 피눈물만 흘린다. 역으로 그걸 노려서 '어차피 집에 가는 녀석들 주제에 ㅉㅉ' 하면서 장난섞인 비아냥을 해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 중 해안경계만을 전담하는 부대는 준 격오지로 처리되어 군 내에서도 GOP급 다음 대우를 받는다. 실제로 신형군복 보급이 전방과 특수작전부대에 이어 2순위로 처리되어 상당히 빠른 기간에 신형군복이 전 병력에게 보급되었다. 사단 내에서도 장교 진급 코스로 유명하여 일부러 이쪽으로 발령받기 위해 해당부대 간부와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많으며, 실제 정년퇴직 직전 고위간부가 진급하는 사태도 일어난 적이 있다. 물론 딱 중대장까지만 진급코스며 대대장 이상은 진급코스가 아니다.

5.2. 전설의 사단, 그러나 장교에게는 무덤인 곳

다른 지역방위사단도 다 그렇지만 이곳도 대개 진급코스는 아니다. 병으로 오면 지상천국(해안경계부대만 아니면)이지만 장교로서는 장기복무 생각이 있다면 되도록이면 피하는 것이 좋은 부대이다. 게다가 부대위치 역시 후방도 거의 맨 밑의 후방인지라 여기로 부임하면 전방의 다른 유명 사단과 비교해 보았을 때 진급과는 멀어지게 된다. 사실 해안경계부대라 진급에 가산점이 부여될 것 같지만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상비사단이 죄다 휴전선에 몰려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결국 진급서열은 무조건 휴전선에 배치된 부대 또는 특수작전부대 위주로 돌아가고 그들에게 다 돌아가고 남은 자리가 이 부대에 오게 되는것이다. 대대장이나 여단장을 이 부대에서 복무하고 장성진급을 한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흔치 않은 케이스다.

그리고 애초에 장성으로 진급할 영관장교들은 죄다 전방(또는 제7기동군단 예하사단) 위주로 보직을 주기 때문에 최소 두 번 하는 지휘관 보직을 둘 다 전방(또는 7기동군단 예하사단)이거나 하나는 전방, 하나는 특전사 이런 식으로 주지 장성으로 쓸 재목을 절대 후방 따위로 빼지 않는다. 장성들 중에 상당수가 월계윙을 달고 다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 특히 전두환 시절 특전사는 주요 장성 진급 코스 중 하나다.

그리고 장교 특성 상 보직과 진급이 출신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학사장교ROTC의 경우는 이런 곳으로 보직되어도 진급에 큰 영향이 없지만 육군사관학교출신이 여기로 왔다면 얄짤없다. 여기 사단장이나 해안경계부대 소, 중대장[25] 이라면 모를까 특히 육군사관학교 출신 중, 대령이 여기로 왔다면 그냥 그 계급으로 전역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장교는 출신별로 진급 경로가 매우 다른데, 육군사관학교는 빨리 진급하는 대신 불필요한 보직은 하면 안되지만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경우 늦게 진급하는 대신 보직을 많이 거친다. 결론적으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진급을 빨리 한다고 좋은 게 아닌 것이다. 물론 사단장이라는 보직 자체가 요직이기 때문에 여기 온다고 해서 그 이유로 진급이 누락되진 않는다.

다만 이 지역 출신 영관급 이상의 일부 간부들은 전역 후에도 나름 지역유지[26]로 사는 경우도 있다. 대민지원과 지역행사에 많이 참여하기에 부대장이 지역에서 많이 알려지곤 한다. 그 이유는 지역방위사단 위수지역이 전방의 군단 위수지역보다 넓은 탓이다.

예를 들자면 전방의 경우 같은 '시,군' 내에 2개의 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지역방위사단은 하나의 시, 도 단위에 한 개 사단이 주둔한다. 이렇다 보니 지역방위사단장은 상비사단장과 달리 지역 내 모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 하다. 따라서 대대장, 연대장, 부사단장이 지역행사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장성이 아닌 영관급 장교도 지역언론에 자연스럽게 노출이 많이 이루어져 지역 내에서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

한편으로는 장교와 부사관의 차이일 수도 있겠으나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중대장을 맡았고 예하부대 주임원사로 여생을 즐기던 원사 한 분이 급작스럽게 사령부 주임원사로 불려가자마자 합참주임원사로 발령받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해당 항목 참고.

실제로 장성이 되기가 전방이나 특전사보다 힘들다 뿐이지 대위→소령[27], 소령→중령, 중령→대령[28] 진급에 있어 영향력 있는 디스어드벤테이지는 없다.

5.3. 사단가

푸른 물 굽이치는 남해의 기슭
충무혼 이어받은 겨레의 사자
지축을 울리면서 뭉치어 섰다
우리는 조국간성 향토의 역군
나가자 씩씩하게 노도와 같이
이 나라 지켜나갈 삼십구사단

끓는 피 뛰는 가슴 용솟음치고
화랑혼 높이 떨친 민족의 방패
더욱더 인화단결 굳게 뭉쳤다
우리는 나라의 꿈 무적의 용사
나가자 씩씩하게 노도와 같이
이 나라 지켜나갈 삼십구사단
- 39사단가

6. 사건 사고

6.1. 2023년 김해 예비군 훈련장 사망 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해 예비군 훈련장 사망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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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2023년 5월, 39사단 소속 김해 예비군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던 예비군이 의식불명 뒤 48일만에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6.2. 기타 사건들

7. 여담



[1] 대한민국 해군진해특정경비지역사령부 관할.[2]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중동에 위치해 있었으나, 2015년 6월 말에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으로 사령부와 직할대가 이전되었다. 현재도 창원시 쪽에 제39보병사단 예하부대가 몇 개 있다. 창원시에 사령부와 직할대가 주둔했던 옛 부지에는 현재 창원 중동 유니시티 단지가 들어서있다.[3] 과거 상징명칭은 남해안이 위수지역이기도 하고 부대마크에서 따온 '파도부대'였으나, 2010년대 들어서 개칭. 상징명칭의 유래는 충무공인데 다들 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할 때의 그 충무는 물론, 같은 충무공인 김시민 장군과도 관련이 있다. 일동 묵념 할 때 읊어주는 내용을 들어보면 이순신의 23전 23승과 김시민의 진주 대첩을 둘 다 언급한다.[4] 거창군, 고성군, 산청군, 김해시 등이 있다.[5] 실제로 자기가 제39보병사단에 그대로 자대배치 받을줄 알았던 훈련병이 화살부대로 가버린 적이 있었다.[6] 이전 각주 사례와 비슷한 사례로 화살부대국군지휘통신사령부등 서울, 경기권 자원들이 많은 기수가 있었다. 기수 전원 대비 약 20% 정도다. 여기서 야전수송교육단[40] 및 이래저래 후반기교육 인원을 제하면 50프로 정도만이 자대 및 제2작전사령부 예하로 남았었다.[7] 간혹 훈련소에 신속대응여단 간부가 수료한 훈련병들 중 적절한 인원을 데려가려고 면접보러 오는 경우도 있다.[8] 대한민국 해군진해기지사령부 담당이다.[9] 해당문서 참조.[10] 공식 명칭이 제39보병사단 동원지원단이었으나 2018년 4월 6일 육군동원전력사령부가 창설된 이후 동원전력사령부 예하 부대로 독립되자 "제39동원지원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11] 2022년 해체.[12] 39사단장 재임 후 육훈소장으로 영전했다.[13] 재임기간 1989~1992. 김영삼정부의 하나회 해체와 맞물려 1993년 소령 진급 심사위원장으로 선발되는 등, 군 인사개혁의 핵심 중 하나였다. 이때문에 이례적으로 육군훈련소장+갑종출신 장교임에도 중장 진급이 유력했으나, 본인의 의사로 1995년 제2훈련소장으로 전역하였다.[14] 재임기간 1992~?. 6공화국 출범 이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강제진압을 주도한 것이 밝혀졌다. # 전임 소장 이태우 장군이 5.18 강제진압을 주도한 하나회 척결에 앞장선 점을 생각하면 매우 아이러니한 대목.[15] 후술할 갑질 사건으로 인해 보직해임당했고 당시 2작전사 동원처장이었던 정진섭 준장(학군23기, 경상대, 임기제 진급)이 직무대리를 수행하였다.[16] 2017년 9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사단장을 역임하다가 합동참모본부 민군작전부장으로 영전하였으며 2019년 11월 중장으로 진급하였다. 금오공고에서 3년 금오공대에서 4년간 군장학금을 받고 학군 26기로 임관하였으며 의무복무기간(9년 4개월)이 육사와 비슷하게 되면서 소령달 때까지 의무복무기간을 채우고도 현재까지 비교적 진급이 잘된 군장학생의 끝판왕이다.[17] 거리로 치면 전방 현역들 기준으로 별거 아니다 싶은데, 창원에서 북면 가려면 산을 넘어가야 한다. 이것도 화악산에서 산악구보 하던 분들에겐 별거 아닌 걸로 보일 수 있겠지만 행군이란 게 미아리고개 수준의 고지 하나만 나와도 욕나오는 건 당연지사.[18] 그냥 냇물 하나 건너면 바로 면 중심지이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가 보급되던 1990년대 말에 이미 PC방마다 100Mbps급 광랜이 깔려있었다. 군청 소재지인 함안(가야읍)이 아직 10Mbps급이던 시절이었다.[19] 산과 들이 만나는 경계를 의미하는 군사용어.[20] 엄밀히 말해 아예 군부대와 연관이 없던 곳은 아니고, 조그마한 소대가 있긴 있었다. 그런데 내무반 막사 크기는 보급창고 하나 수준, 연병장은 마사토에 골대 두 개 덜렁 있던 군북면 공설운동장을 그대로 썼고, 당시 부임 중이던 소대장이 토끼를 기르고 일병이 장터에 걸어가서 사료를 사 짊어지고 오는데 소포리 사는 동네 할배 경운기 얻어타고 그야말로 할 일 없이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지던 곳 이었다.[21] 다만 한 번 갔다올 때마다 보상 휴가 8박 9일이 붙는다. 18개월 시절 기준 군생활 중 최대 2번은 투입 되므로 총 17박 18일의 휴가가 붙는다.[22] 화기 분대이거나 소대본부 M60 기관총사수/부사수인 경우라면 24시간 기준 하루 2시간 총 3번 6시간 정도 탄약고 근무를 서게 된다. 소초마다 입초를 서는 경우와 동초를 서는 경우가 있다.[23] 일과라 해봐야 별것 안 한다. 진지공사나 병기본 같은 큰 일과는 일체 하지 않는다. 다만 가끔 제초작업은 했다. 점심식사 직전 내무검사라는 것을 실시하는데 그냥 연대장님 오셨다는 마음으로 인심쓰고 생활관 청소한 후 각 중대 중대장이 검사하고 잔소리 좀 하다 끝난다. 다시 청소하라고 해도 완전 개또라이이거나 그날 지휘통제실장(당직사령)인 중대장이 아닌 이상 본인도 퇴근해야하므로 재검사 따위 하진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24] 단 자대배치 받자마자 이 정도 주지는 않고 말년 병장 때 되면 이 정도 쌓여 있다.[25] 오히려 이 보직들은 진급에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 제법 선호하기도 한다. 장교들의 특성상 후방지역도 반드시 돌아야 하는데, 후방 보직을 해안경계부대로 돌면 후방도 돌고오고 경력관리에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26] 지역구에서 출마해 정계로 진출하기도 한다. 물론 그래봐야 국회의원, 도지사까지는 힘들고 보통 시,군의원, 도의원, 정말 잘해봐야 시장, 군수 정도까지다.[27] 다만 이 경우는 대개 전방으로 올라간다. 만약 못 올라간다면 다음 진급에 데드락이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28] 이쪽은 정확히 말해서 임관루트가 더 영향을 미치겠지만, ROTC 같이 비주류 임관출신은 여기를 거쳐도 페널티가 거의 없지만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면 출신을 등에 업고도 여기로 온 것이므로 준장은 커녕 대령진급도 힘든 경우가 많다.[29] 인근에 공군교육사령부가 있다.[30] 과거에는 공군사관학교 출신을 제외한 모든 공군 장병들은 예외 없이 양성과정 중 월아산 장군대봉에 올라갔다. 지금은 학사장교후보생과 부사관후보생만 월아산에 올라가고 훈련병은 가지 않는다.[31] 이후 제2작전사령관은 2018년 10월에 3사 20기의 황인권 대장이 부임하였으며, 39사단장은 2019년 5월에 육사 46기의 박안수 소장이 부임하였다.[32] 국군대구병원과 가까운 예하 대대 및 여단급 부대거나 해군해양의료원에 진료과목이 없다면 그쪽으로 간다. 해군해양의료원이 시설은 좋은데 진료과목이 많이 부실하기 때문. 예를 들자면 어지간한 육군 사단급 의무대에도 다 있는 치과 군의관이 없어서 다른 군 병원으로 보내거나 휴가나와서 그냥 민간병원에서 진료 받을 정도. 장병들 사이에선 대구통합병원을 줄여서 대통이라 부른다.[33] 52군수지원단, 육군 종합정비창, 항공기정비단, 항만단 등이 있다. 하지만 저 부대들은 대부분 기행부대라 병사가 얼마 없다. 39사단도 전방보다는 병력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저들 부대에 비할바는 아니다.[34] 공군교육사령부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때 상급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면 해양의료원으로 보내는게 아닌 함평이나 대전으로 보낸다[35] 없진 않은데 장병들 대부분이 눈이 거의 오지 않는 경상도 출신이라 눈이 오면 신기해 한다. 병장들은 눈싸움도 하더라[36] 실제로는 눈이 1cm만 와도 도시가 마비되기 때문에 대민지원을 나가고 제대로 된 제설장비가 구비되어 있지 않아 힘들다.[37] 원래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창원군 변두리였는데, 국가시책으로 계획도시가 조성되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38] 무려 3,000여 점이 출토되었는데, 함안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매장문화재 조사였다고 한다.[39] 이 곳은 서북쪽으로 뚫려 있기 때문에 논밭만 있었고, 사람들은 겨울 바람을 야트막한 산이 막아주는 중암리나 동촌리, 덕촌리 근처에 모여 살았다. 마찬가지 이유로 같은 덕대리라도 군북초등학교 기준 서쪽으로는 민가가 하나도 없고 동쪽으로만 동네가 모여있다. 심지어 동촌리 일부 지역은 지금도 군 훈련장만 있고 민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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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2019년부터 구제1, 3야전군이 폐지되고 지상작전사령부가 신설되어 야전군 예하에 있던 야전수송교육단이 육군종합군수학교로 이관되어 수송교육연대로 격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