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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
이름 | 한국어 | 조선왕조의궤 |
영어 | Uigwe : The Royal P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 | |
프랑스어 | Les uigwe, protocoles royaux de la dynastie Joseon | |
국가·위치 | 대한민국 서울 | |
소장·관리 | 서울대학교 규장각 외 13개처 | |
등재 유형 | 기록 유산 | |
등재 연도 | 2007년 | |
제작 시기 | 1392년∼1910년 |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 수록된 반차도의 모습
1. 개요
朝鮮王室儀軌조선 시대 왕실이나 국가에서 주요 행사나 잔치가 있을 때 그 행사에 동원된 인원, 행사 내용, 사용된 재물, 행렬의 배치, 의식과 절차 등의 제반 내용들을 정리한 기록물. 의궤, 조선왕조의궤라고도 불리며, 유네스코에는 '조선왕조의궤'란 명칭으로 등재되었다. 다만 일반인들에게는 조선왕실의궤란 명칭으로 가장 잘 알려졌고 네이버 지식백과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같은 곳에도 조선왕실의궤란 명칭이 자주 쓰이므로, 나무위키에서는 조선왕실의궤로 작성하였다. 규장각, 장서각, 프랑스 국립도서관 등 13개처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중 국내본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의궤는 전대 왕조나 중국, 기타 다른 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조선만의 독특한 전통이다. 기록상으로는 중국의 한(漢)나라 때 처음 작성했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이후 의궤 작성 문화가 실전된데다, 한나라 때 작성한 의궤들도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만들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조선 세종대왕 때 국조오례의를 편찬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의궤라는 단어 자체를 '조선왕실의궤'를 지칭하는 말로 쓴다.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왕이 열람하던 어람용이고, 하나는 지방의 사고에 보관하기 위한 보관본이다. 당연히 어람용이 가치가 더 높다. 종이는 모두 최고급 종이인 초주지(草注紙)를 사용하였고, 물감도 색이 탈색되지 않는 최고급 물감을 사용하였다. 겉표지를 어람용은 비단으로, 보관본은 당대 일반 종이를 두껍게 겹친 것으로 하였다.[1] 보관본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현저한데, 어람용에는 나온 내용이 보관본에서는 생략
특히 행사 진행과정과 장면 하나하나를 색을 입혀 매우 세밀하게 그려서 시각적 효과가 매우 우수한 자료이다. 수백여 년간의 생활상과 건축, 의식주, 복식, 미술 등의 변천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희귀성을 전 세계에 인정받았다.
조선왕실의궤로 한민족이 영원히 상실한 줄 알았던 궁중 문화의 복원과 재현이 가능했고, 창덕궁과 창경궁, 경희궁 등의 궁궐 복원도 가능했다. 당시의 복식과 장식품 등을 알 수 있어 복제사, 풍속 연구에도 도움이 되었고, 이두 등 한국식 한자어를 많이 사용했기에 언어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의궤(儀軌)를 통해본 조선의 왕실 축제
임진왜란 이전 의궤는 모두 소실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궤는 선조 34년(1601) 만들어진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懿仁王后山陵都監儀軌)와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懿仁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이다. 전해지지는 않지만, 기록상으로 최초의 의궤는 태조 이성계 4년(1395), 정도전이 경복궁을 창건하며 그 건설 과정을 기록한 경복궁조성의궤(景福宮造成儀軌)이다.
현재 모든 의궤를 복사 및 데이터 베이스화하여 저장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로써 의궤가 소실되어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렇다고 원본이 소실되는 일이 벌어져선 절대로 안 된다.
2. 보물 지정
세계 기록 유산이 된 의궤가 국내에선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 여러 번 나왔고 #, 결국 2015년 12월 31일 조선왕실의궤를 국가 지정 문화재(보물)로 지정할 것을 예고했다. 네이버 기사마침내 2016년 5월 3일, 국내에 있는 약 3800여 책의 의궤 중 기준을 통과한 1757종 2751책을 보물로 지정했다.###
보물로 지정된 의궤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경남 사천시청, 국립중앙도서관, 한국 순교자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연세대, 삼척 시립 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청주시청, 이화여자대학교 등 13개처에 소장되었던 것으로 지정 기준은,
1. 일제강점기 이전에 제작된 의궤
2. 어람용 의궤
3. 분상처가 확인되는 분상용 의궤
4. 분상처가 확인되지 않는 의궤는 필사본만 지정
이다. 규장각 2203책, 장서각 384책, 국립 고궁 박물관 133책, 국립 중앙 박물관 9책, 사천시청 3책, 국립 중앙 도서관 3책 등이다.
3. 의의
조선왕실의궤는 조선 시대 왕실이나 국가에서 주요 행사나 잔치가 있을 때 그 행사에 동원된 인원, 행사 내용, 사용된 재물, 행렬의 배치, 의식과 절차 등의 제반 내용을 정리한 기록물이다. 조선왕조의궤는 장기간에 걸쳐 조선왕조의 주요 의식을 방대한 양의 그림과 글로 체계적으로 담고 있으며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조선만의 독특한 전통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문화재이다. 특히 행사 진행 과정과 장면 하나하나를 색을 입혀 매우 세밀하게 그려 놓아 시각적 효과가 매우 우수한 자료로 알려져 있으며, 수백여 년간의 생활상과 건축, 의식주, 복식, 미술 등의 변천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희귀성을 전 세계에 인정받았다. 이 조선 왕실 의궤를 통해 현대에 당시의 궁중 문화의 복원과 재현하는 것을 할 수 있었고, 조선의 궁궐을 복원하는 것 또한 가능했다. 그리고 당시의 복식과 장식품 등을 알 수 있어 복제사, 풍속 연구에도 도움이 되었고, 이두 등의 한국식 한자어를 많이 사용했기에 언어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4. 목록
조선왕실의궤/목록 문서를 참조.5. 나무위키에 항목이 개설된 의궤
- 경종대왕수정실록의궤
- 고종무진진찬의궤
- 고종정해진찬의궤
- 광해군일기찬수청의궤
- 기해진연의궤
- 단종대왕실록부록찬집청의궤
-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
- 선조대왕실록수정청의궤
-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
- 숙종대왕실록찬수청의궤
- 순조기축진찬의궤
- 순조대왕실록의궤
- 영조갑자진연의궤
- 영조대왕실록청의궤
- 원행을묘정리의궤
- 인조대왕실록찬수청의궤
- 정미가례시일기
- 정조대왕실록산절청의궤
- 철종대왕실록청의궤
- 풍정도감의궤
- 헌종실록청의궤
- 현종대왕실록개수청의궤
- 현종대왕실록찬수청의궤
- 혜경궁진찬소의궤
- 효종대왕실록찬수청의궤
- 화기도감의궤
- 화성성역의궤[2]
6. 소장처
6.1. 한국
원행을묘정리의궤 영상.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546종 2,940책,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287종 490책, 총 3,430책이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6.2. 일본
오대산 사고(史庫)에 보관되어 오던 것으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81종 167책이 반출되어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었다.
2010년 11월에 일본 정부는 다른 한반도 유래 도서 1205책과 함께 의궤 81종 167책 전부를 영구 반환하기로 합의하였다. 원래는 반환 목록에 의궤는 없었으나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혜문 스님 등의 노력으로 합의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2011년 4월 27일에 반환 법안이 일본 중의원 외무 위원회를 통과하였고, 2011년 4월 28일에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당시 일본의 집권당이 한국에 유화적이었던 민주당이었던 점이 겹쳐 비교적 순탄하게 환수되었다.
10월 19일 환수가 시작되어, 12월 6일 모든 환수가 완료되었다. 2011년 12월 2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조선 왕조 도서 환수 기념 특별전을 열었다. 의궤 81종 167책과 왕실 도서 66종 938책이 전시되었다.
2016년 5월 3일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된 조선왕조의궤 81종, 167책 중 1910년 이전에 만들어진 68건, 122책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6.3. 프랑스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오던 것으로, 병인양요 때 297권이 프랑스로 약탈당했다. 현재 한국이 프랑스 정부로부터 의궤를 임대한 것으로 되어있으며 5년 단위로 임대계약이 갱신된다. 이론적인 소유주는 여전히 프랑스이기 때문에 주요 유산임에도 국보나 보물지정을 할 수 없으며 만약 계약연장을 하지 않으면 의궤를 다시 넘겨야 한다. 하지만 현 상황이 양국 모두 명분과 실리를 챙기고 있기에 프랑스로 다시 넘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프랑스입장에서는 공식적인 반환대신 임대라는 형식을 빌렸기에 여전히 자신들의 소유라는 주장이 가능하고 한국은 형식과는 관계없이 어쨌든 유물이 한국내부에 있기 때문에 여러 관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의궤는 한국에게 완전 반환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2016년 1월 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외규장각 의궤 297책, 총 11만 3,832쪽 전권의 원문 이미지와 텍스트를 홈페이지에 무료 공개했다.기사 2013년부터 외규장각 의궤 종합 데이터 베이스(DB) 구축을 시작해 3년만에 거둔 성과로, 원문 이미지와 전자 텍스트를 제공하고 의궤에 수록된 그림 자료에 대한 알기 쉬운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외규장각 의궤 홈페이지 이제 외규장각 의궤 또한 영구 소실의 걱정은 없어진 셈이다.
6.4. 가장 오래된 한글의궤 발견
네이버 뉴스 : 가장 오래된 ‘한글의궤’ 프랑스서 찾았다외규장각 도서 환수가 모두 완료된 후, 2016년 7월 20일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한글로 만들어진 의궤 13권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현재 프랑스에 소장되어 있다.
6.5. 새로운 의궤 존재?
세계일보 : ‘직지’ 보다 오래된 고서 佛 국립도서관에 있다KBS : 佛국립도서관에서 ‘직지’보다 앞선 고서 확인…유일본 여럿 확인
YTN : '직지' 있는 佛국립도서관에 한국 고서적·고지도 134종 더 있다
연합뉴스 TV : '직지'보다 앞선 14세기 고서적, 프랑스에 있다
2017년 4월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의 조사 결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중요 한국 고문헌이 134종 306책 더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번에 발견된 주요 문헌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직지심체요절보다 7년 빠른 육조대사법보단경, 조선 세조 2년(1456)에 인쇄한 능엄경, 18세기 평안도 지역을 그린 관서전도, 경상도 해안부터 일본 혼슈, 오키나와까지 그린 영연도 등이다.
해당 책들 대부분은 1887년도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로 근무한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구입한 문헌을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보석상 앙리 베베르가 재구입한 서적들이다[3]. 2002년도에 플랑시 컬렉션의 존재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4].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이의 협약 체결로 한국고문헌종합목록에서 원문을 열람할 수 있다[5].
학계에서는 위와 같은 여러 정황상으로 볼 때, 프랑스 측에서 한국 쪽에 알리지 않은 의궤 등 중요 한국 문적들이 비밀리에 더 많이 존재하리라고 여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이에 해외 소재 한국 고문헌 목록을 조사해 발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