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현판 | |
구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2013. 11. 29. 대통령령 제2488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 현행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
제4조(대검찰청에 둘 부와 대검찰청 검사의 직무) ① 대검찰청에 기획조정부, 중앙수사부, 형사부, 강력부, 공안부, 공판송무부 및 감찰부를 둔다. | 제4조(대검찰청에 둘 부와 대검찰청 검사의 직무) ① 대검찰청에 기획조정부, 반부패·강력부, 형사부, 공공수사부, 공판송무부, 과학수사부, 인권부 및 감찰부를 둔다. |
대검찰청 청사 7, 10, 11층에 중수부 사무실이 있었다. 그 중 중수부장 사무실은 7층이었다.
2. 역사[출처]
대검 중앙수사부의 뿌리는 1949년 12월 20일 제정된 검찰청법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법안 29조에는 '대검찰청에 서기국[2]과 중앙수사국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앙수사국은 수사과, 사찰과, 특무과를 산하에 둔다고 돼 있다.하지만 중앙수사국은 '서류상 기구'에 불과했다. 당초 1950년 4월 발족할 예정이었지만 6.25 전쟁이 나면서 미뤄졌다. 중앙수사국이 실제 발족한 것은 1961년 4월 9일이었다. 이것이 중수부의 전신이다. 이후 1973년 1월 특별수사부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1년 4월 '중앙수사부'로 이름을 바꾼 뒤, 청와대나 검찰총장의 하명(下命) 사건 수사를 담당해 오면서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명성사건, 5공 비리사건, 수서사건, 율곡사업 비리사건,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한보 사태, 김현철 비리 사건, 이용호 게이트 등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획을 긋는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왔다. 이처럼 중수부 수사는 그동안 내로라하는 권력층 부패 인사들을 처단함으로써 '성역 없는 수사'의 대명사로 비유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표적수사 시비를 불러일으키면서 '정치 검찰'의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후반부터 중수부 폐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2003년 2월 대검찰청에서 마련한 '검찰개혁방안'에서도 대검 중수부의 2 · 3과를 폐지하고 1과도 원칙적으로 수사지도 기능만 수행하도록 해 중수부의 인지수사 기능을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으나 실제 시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2009년 중수부 중앙수사1과에서 담당하던 박연차 게이트 수사 도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폐지론이 재점화됐다.[3]
그러나 2013년 2월 25일 출범할 박근혜 정부가 연내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확정하였다고 2013년 2월 2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하였다. 이후 2013년 4월 직접 수사권을 가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전면 폐지되었다.
중수부 폐지 이후 바로 대검 산하에 반부패부가 신설되면서 이 부서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수사 기능이 이관됐다. 그러다가 2018년에 대검찰청 반부패부와 강력부가 합쳐지면서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가 되었다. 이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신설되어 반부패수사부ㆍ강력부의 고위공직자 수사 업무는 자연스레 이곳에서 보게 되었다.
여담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하면서 박근혜는 사상 최초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소환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이전의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은 모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로 소환되었기 때문.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두 번째로 소환된 대통령이 되었다. 만약 황교안 권한대행이 박영수 특검의 활동기한 연장을 승인했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첫 번째로 소환된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면 박근혜는 사상 최초로 특별검사에 소환된 대통령이 되었겠지만...
2016년에 만들어진 특별수사단이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3. 권력기관의 상징
대한민국에서 국가정보원보다도 힘이 더 센 게 검찰인데[4] 그 중 최강 지위의 부서였던 대검 중수부장은 검사 인사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 전국에서 가장 많은 특수사건을 처리하는 서울중앙지검장, 묵직한 공안사건을 담당하는 대검 공안부장과 함께 빅4로 불렸다. 그래서 권력기관의 최강 부서를 표현할 때는 항상 'XX의 중수부'라는 표현이 붙기 마련이다. 대표적 예시로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 등이 있다.그리고 2022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출신 검사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5]
4. 매체에서의 등장
- 드라마 펀치에서는 중수부가 폐지된 시점에 방영되었기에 작중 명칭이 중수부는 아니지만 중수부만큼 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것으로 묘사되는 대검찰청 반부패부가 등장하고 후반부에는 박정환, 신하경, 최연진, 이호성이 소속되어 있다.
- 영화 내부자들에서 후반부에 우장훈이 이강희를 협박하여 낙하산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이전에 미래자동차의 비리를 조폭 출신 안상구를 내세워 폭로했다가 "누가 깡패 새끼 말을 믿겠나"라는 비웃음을 듣고 여론전에서 졌기 때문에 이번엔 중수부 소속 검사 신분으로 폭로하기로 한 것. 결국 대검찰청 중수부 소속 검사가 폭로자라는 것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장필우, 오현수, 이강희는 몰락한다.
-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는 소속인물등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극 진행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 달수와 은지가 돈을 흥청망청 쓰러온 호텔에 같은 시각 대검 중수부장이 각 지검 검찰청장들을 호출하여 미팅중이여서 달수를 정부의 비밀요원으로 착각[6]한 서실장 일행이 돈세탁 정보가 새나간걸로 오해, 본격적으로 킬러들을 고용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2002년 당시 중수부가 건재하던 시점에 서민영 검사가 순양을 들쑤신 용기를 인정받았는지 중앙지검 금조부에서 중수부로 발령을 받는다. 민영 본인은 정권이 교체되면 곧 없어질 부서라며 영전이 아닌 좌천이라고 한탄한다.
- 유튜브 경영권전쟁에서 이창호(코미디언)이 중앙중수부 검사 역할로 열연했다.
5. 역대 담당 사건들
- 5공 비리 사건
- 1기 신도시 투기 의혹 합동 수사
- 수협 회장 금품수수 사건
- 율곡사업 비리사건
- 대전 엑스포 수뢰 공무원 구속 사건
- 농협 중앙회 비자금 조성 사건
- 안병화 뇌물수수 사건
- 한국도로공사 사장 수뢰 사건
- 손홍균 서울은행장 대출비리 사건
- KLH 사업 뇌물수수 사건
- 외환 위기 축소 보고 의혹
- 세풍 사건
- 종합금융협회 비리 사건
- 경성그룹 이권청탁 및 로비 사건
- PCS 사업자 선정비리 사건
- 김윤환 의원 비자금 의혹
- 채영석 공천헌금 수수 사건
- 사직동팀 내사 보고서 유출 사건
- 대전 법조비리 사건
- 김만제 전 포항제철 회장 비리 사건
- 한진그룹 탈세 사건
- 홍석현 보광그룹 회장 탈세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11]>
- 나라종금 로비 사건
- 로또사업자 선정 비리 의혹
- 삼성그룹 채권 수수사건
- 권철현 의원 금품수수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13]>
* C&그룹 사건
-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
- 민주통합당 공천헌금 의혹 사건
6. 역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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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수 (2012~2013)[15]
7. 관련 문서
[출처] 박문각 시사상식사전[2] 이 서기국은 훗날 사무국으로 변경되었고, 여기는 검찰수사관들이 근무하는 곳이다.[3] 당시 중수부장은 이인규, 수사 주임검사(중수1과장)는 우병우(!!!), 언론담당(수사기획관)이 홍만표였다![4] 양지에서는 수사권이 있지만 음지에서는 확실히 대통령이 어디에 힘을 실어주는 내에 따라 다르다. 정치적인 사건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이명박의 2인자 원세훈이 국정원을 이끌 때는 국정원이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고 박근혜 정부때는 선 채로 죽어있었던 곳이 국정원이다.[5] 윤석열 대통령은 2006년 대검 중수부 연구관, 2010-12년 대검 중수부 1,2과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6] 매일 군복차림으로 출퇴근,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사격실력이 특등사수, 마을에는 유엔평화유지군 혹은 아프리카 파견군등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문과 결정적으로 부모들이 직업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니(자식이 날건달백수인걸 떠들고 다닐 부모가 있겠는가?) 엉뚱한 결론이 내려졌다.[7] 전 대통령 전두환, 노태우 구속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93년 당시에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킹메이커로 불리는 그 정치인이 맞다)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16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한 함승희가 당시 주임검사였다.[8] 2000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화관광부장관을 지내며 정상회담의 성사를 총지휘했던 박지원이 수사를 받았는데, 수감생활 중 녹내장이 악화되어 한쪽 눈을 실명하기도 하였다.[9] 당시 대검이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을 강도 높게 수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를 12시간 이상 조사하면서 검사와 수사관들이 번갈아가며 추긍을 하는 이른바 '돌림방 추긍' 을 하거나, 심지어 전화번호부로 정 회장의 머리를 내리쳤다는 말도 있었다. 결국 2003년 8월 4일, 정몽헌 회장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하였다.#[10] 이 사건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가장 잘 지켜졌다고 평가받는 사건이다. 당시 중수부장 안대희는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여권에도 칼을 겨눴고 안희정, 강금원 등 여권 실세를 구속하였다. 이에 국민검사, 국민검찰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대검 중수부에 꽃이 배달되기도 하였다. 당시 참여정부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려고 하였으나 이 수사의 보복성 조치로 비춰질까봐 하지 못했다고 한다. 후에 대검 중수부는 대통령 노무현을 퇴임 이후에 수사하게 된다.[11] 왼쪽부터 이인규 춘천지검 원주지청장,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 남기춘 대검 중수1과장[12] 이 문단의 알파이자 오메가. 대검 중수부하면 십중팔구 이 사건부터 먼저 떠올리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케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이다. 그리고 당시 수사 담당 검사는[13] 왼쪽부터 이동열 대검 첨단범죄수사과장, 우병우 대검 중수1과장,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 이석환 대검 중수2과장[14] 충남대학교 졸업, 지방대 출신으로는 무려 22년만이다.[15] 김경수 전 경상남도지사와는 동명이인, 드루킹 사건의 변호인이기도 하다.